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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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은 정확한 해석을 바탕으로 대상을 재배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모호한 심적 멜랑콜리가 아니라 대상을 명확히 밝혀 제 자리를 찾아주는 경건한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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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톰프슨은 말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에드워드 영은 말했다. ‘태어난 순간 죽음은 시작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뇨? 그저 울부짖을 뿐 아예 태어나지 말 것을, 태어났으니 얼른 죽을 것을.’ 블라디미르 나보고프의 말하라, 기억이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우리는 단지 영원이라는 두 어둠 사이 잠시 갈라진 틈으로 새어나오는 빛과 같은 존재다.’ - 27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쉼 없이 책을 읽고 공부하며 생각하고 토론하는 것은 아닐까. 생물학적인 삶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영원히 살 것처럼 경쟁하고 욕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들은 한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삶의 절대 조건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그리고 심각하게 고민할 때 삶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건넬지도 모른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걷는 것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우리 몸의 생명은 죽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는 비관적 태도를 보였을까. 하루하루 견뎌내는 일이 힘겨울 때도 있고 가슴 벅찬 환희로 영원히 살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 삶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만 가지 사연 속에서 우리는 매일 죽음을 맞이하고 새로운 탄생을 준비한다. 하지만 당장 내일 나에게 죽음이 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데이비드 실즈는 너무 당연해서 웃음이 나올 법한 제목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외면할 뿐.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죽은 사람도 살아있는 사람도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실즈는 97세 되신 아버지와 오십이 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10대 딸을 둔 가장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둔 아들로 삶의 한 복판에서 선 저자의 목소리는 떨림이 없다.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스토리텔링한다. 어렵지도 난해하지도 않지만 결코 감상에 치우친 에세이나 낭만적 자기고백은 아니다.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태도가 반드시 진지할 필요는 없다. 미국식(?) 글쓰기 특유의 유머와 편안한 입담이 즐겁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더듬는 동안 저자 자신은 아마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들은 물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방식의 자신의 삶을 성찰하리라.

 

하지만 내게는 그리 큰 감동이나 깨달음을 주지 못한 책이다. 편안한 서술, 가독성 있는 문장, 간간이 섞여 있는 금언들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지만 선뜻 추천할 만하다고 하기엔 2% 부족하다. 그것은 평범한 저자의 삶에 대한 자기고백에 대한 부담감일 수도 있고 한 유년기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하는 과정에 대한 지루함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 나서 느껴야 하는 울림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전에 읽었던 죽음에 관한 많은 책들의 간섭현상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다시 한 권의 책을 더 펼쳤다.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다. 한 사회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죽음의 사회학적 표현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군대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법 한 그 느낌이다. 내가 없어도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이 세상 전부가 아무 일도 없이 잘 돌아가는구나 하는 그 느낌. 현대사회에서 죽음의 특수성은 수명, 체험, 구조적 경험적 특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화로 요약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죽음은 한 마디로 고독이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삶은 또한 고독이 아닌가.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에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건강과 행복의 기준으로 강조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예전 세대는 인간관계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의 일과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필요한 것은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먹고사는 일에 너무 바빠서 인간관계라는 복잡한 문제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삶에서 고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삶이 고독인데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라니. 아니 어쩌면 삶이 고독이었으니 죽음이라도 고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일까.

 

오늘날처럼 조용하게, 위생적으로, 고독감을 조장하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죽게 되는 건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 92

 

사회, 문화, 역사적 상황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죽음을 맞이하는 개인의 생각도 달라진다. 하물며 예술은 어떠하겠는가. 루이스 멈퍼드는 고도의 기술 발전의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예술과 기술은 그렇게 우리 시대를 간파한다. 우리는 재미난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 재미는 수많은 충격과 모순과 비극적 역설에 있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그러나 우리가 궁금한 것은 예술과 기술의 상관관계가 아니다.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기술과 예술이 하나였던 시대를 넘어 이제 예술과 기술의 영역이 분리된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한 분야에서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보여주는 것은 생활과 기술이 곧 예술의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가. 예술 작품을 보고 미적 충격을 받거나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히려 현란한 인간의 기술이다. 그것이 몸으로 체득된 것이든 기술로 구현된 것이든 말이다. 백남준처럼 기술적 토대가 없으면 예술 자체가 불가능해진 미디어 아트 시대에 멈퍼드의 예술에 관한 관점과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물적 토대가 신앙이 되어버린 시대에 유기체와 인격 전체를 향한 관심의 촉구로 읽힌다.

 

기계의 무력한 동반자나 수동적인 희생자가 되는 대신 상실한 개성을 찾고 창의성과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예술은 타락하고 상상력은 부정되며, 전쟁이 모든 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치지 말고 멈퍼드처럼 예술은 고양되고 상상력은 강화되며 평화는 모든 나라를 지배합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우리의 눈만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혹사당하는 귀에 대해 살펴보려면 에두아르트 한슬리크의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하여를 천천히 읽어보면 된다. 이 책은 음악 애호가를 위한 감상능력 배양 프로젝트가 아니다. 미학적 관점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선 한슬리크는 음악이 절대 감정 미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는데 할애한다. 음악에 내용이 있느냐는 논쟁으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시작부터 음악에서 감정을 걷어내는데 주력한다. 물론 여기서 음악은 클래식에 해당한다. 가사는 음악이 아니다. 대중가요가 주는 감동과 눈물에만 익숙하다면 한슬리크의 책은 집어던지게 된다.

 

하지만 음악적 아름다움은 형식미학에서 출발한다는 한슬리크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는 음악에서 화성, 리듬 등에 대한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막귀에 닥치는 대로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 한슬리크의 이야기는 이론에 불과하다.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틀어놓고 제주 해안도로를 달리던 감동을 잊지 못하는 것은 20대의 감수성 때문이지 렌트카의 음질이나 바흐의 음악적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눈멀과 귀멀어 사는 헛똑똑이들의 관심사는 몇 가지로 수렴되는 것이 아닐까. 심봉사 지팡이를 더듬듯 보이지 않는 곳을 두드리며 손 끝에 신경을 집중하고 더듬으며 살고 싶다. 얼마 남지 않지 않았을까, 우리는 언젠가 죽을 테니까.

 

 

141130-1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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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풀도 아니고 북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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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2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책을 엄청 많이 읽으시는군요. 존경스럽네요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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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책의 시작은 말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은 말해 줘도 모른다는 저자의 도발적인 프롤로그로 요약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굳이 말로 확인할 필요가 없으며 말해도 모르는 것 때문에 설득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발적인 변화와 인식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인간의 사유는 그가 살아온 테두리 안에서 결정되며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설령 관심을 갖는다 해도 공감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말하자면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낭만적 혁명론은 부정되어야 한다. 이기적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 이타적 사랑에 대한 갈급한 욕망은 오히려 혁명을 비현실적 꿈의 세계로 안내할 뿐이다. 고독한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 의지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혁명은 시작될 수 있으며 사랑은 그 나머지 것들에 대한 작은 인정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어느 더운 여름 일요일 저녁 공원을 거닐 듯 가벼운 마음으로 치유 받고 싶을 때 권할 만한 책,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는 인문학적 산책의 동반자로 어울린다. 류동민은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책 말미에 덧붙이듯 열 명의 저자와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가리타니 고진, 알랭 바디우, 김훈, 슬라보예 지젝, 홍상수의 <북촌방향>, 알랭 드 보통, 루이 알튀세르, 마오쩌뚱, 폴 스위지, 프리드리히 엥겔스, 장하준이 그들이다. 폴 스위지를 제외하고 모든 작가의 책들을 한 두 권씩 읽어보았고 <북촌방향>도 보았다고 해서 류동민의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마르크스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느냐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만 남겨지는 이 책은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마르크스식 힐링 캠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단기적인 일상에 파묻히지 않고 개인의 행동이 사회 전체의 구조와 연결되는 지점과 방식을 이해하는 것, 즉 사회과학적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6이라고 강조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부터 유리된 사회과학적 논리는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6)라고 선언한다. 고개를 들고 문득 인문학적 상상력사회과학적 논리사이의 간극에 대해 고민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어떤 소통과 믿음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랑이나 배려라는 이름으로 위무되는 행위인지.

 

책을 쓰면서 책 읽기를 통해서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7)라는 말에 밑줄 그는 내 손을 바라보며 나는 점점 더 그 배움의 의미 반대편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배운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와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서로 가 닿지 못할 것에 대해 노력하는 것은 자기파괴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의 열 한 번째 테제를 자기 묘비명으로 삼았을까.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33)라고.

 

이 책의 구조는 --사회의 단순하지만 복잡한 관계 양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안에서 각각의 작동원리를 살펴보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적 삶의 태도를 기웃거린다. 관계의 비대칭성과 권력관계로 민주주의를 분석하거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꿈꾸는 공산주의를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그러하듯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인생은 뚜렷한 목표와 자명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우연과 엇갈림의 클리나멘이 때문이다. 저자는 클리나멘은 사물의 변화와 그로 말미암은 결과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직선 운동이 아니라 엇갈림의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78)라고 정리하지만 인과관계와 논리에서 벗어난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은 또한 관계의 비대칭성으로부터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권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사람과 권력의 대상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힘이 배분되는가의 문제이지, 대상에 대한 절대적 힘의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프루스트가 얘기한 것처럼 질투가 사랑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것과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 203

 

타인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과 질투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화상이다. 권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 작동원리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고정된 틀로부터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나의 자유를 위해, 내 생각과 행동의 합리화를 위해 만들어낸 논리를 객관적으로 검증받으려는 노력은 게으른 자의 또다른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류동민은 이 책에서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허락하라는 경구는 그래서 거꾸로 읽으면,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이미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229)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원칙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1인치의 논리도, 합리적 판단도 없이 맹목적인 자기애로부터 출발한다. 자기 소외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사회적 관계로 나아가고 그 사회적 관계들이 자기 자신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자신을 찾으려는 여정에 불과하다고 본다. 저자 류동민과 함께 떠나는 마르크스식 자기 치유 산책 프로그램에 동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선택했던 여정, 즉 개인의 자기소외로부터 출발하여 사회관계로 올라갔다가, 다시 그 사회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개인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발전을 분석하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냉철함과는 다른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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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 - '수학사랑' 박영훈 선생의 수학사 특강
박영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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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폭탄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존 매클레인 형사는 5갤런과 3갤런 물통 두 개를 가지고 정확히 4갤런의 물을 담아 테러를 막아야 한다. <다이하드 3>에서 테러리스트가 낸 이 문제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풀었을지 궁금하다. 수학은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차분하게 고민하는 해결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학은 우리에게 어렵고 지겹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과목일 뿐이다. 즐기지 못하고 극복해야 하는 과목이라는 선입견은 많은 학생들에게 집합과 명제를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면서 시작되는 현대인의 하루는 철저하게 수의 세계 안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부나 시험에서 벗어나 사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학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수학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은 현실에서 적용할 수 없는 문제 풀이 위주의 추상화된 세계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지적 호기심도 자극하지 못하고 현실적 유용성도 없는 분야로 수학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시험과 점수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이런 부담을 덜어내고 수학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논리적이고 명쾌한 수의 세계에 매료되면 그 어떤 분야보다도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분야가 수학이다. 강석진은 <수학의 유혹>을 통해 이러한 즐거움의 세계로 우리를 유혹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의 수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도 있지만 수학에 미친 강석진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재미있고 유쾌하다. 가장 실용적인 학문임에도 가장 추상적인 내용의 문제 풀이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이 책은 수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수학이 왜 재미있는 학문인지 알려준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이론적인 해설서와 수학공부 비법이 오히려 아이들과 수학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단기간에 점수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수학의 중요성을 스스로 체득하는 데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책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내용들을 설명하면서도 수학적 원리와 문제 해결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축구공의 표면을 덮고 있는 정다면체의 비밀을 수학으로 설명하면서 우리가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들일수록 수학의 숨결과 신비가 숨어 있다고 말하는 강석진은 수학이 우리 생활을 더욱더 풍부하고 깊이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을 준다.

 

이렇게 즐겁고 편안하게 실제 생활에서의 유용성과 재미를 통해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면 수학의 기원을 더듬어 볼 차례다. 박영훈의 <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를 따라가면 또 다른 수학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오로지 공식을 외우고 수많은 기호를 통해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수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수학의 기원을 살펴보자. ‘우리의 삶에는 끊임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등장한다. 수학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며, 수학이라는 학문은 인류가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문화유산’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수학에 접근하는 자세를 바로잡아준다. 우리의 인생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수학이라고 말하는 강석진의 말이나 문제해결의 도구라고 말하는 박영훈의 이야기는 기능적 수학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으로서 수학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고대 철학자들이 수학자들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논리적인 사고와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철학자들을 자연스럽게 수학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최초의 수학자 탈레스부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물론이고 유클리드까지 다양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은 수학이 시작된 역사의 현장을 찾아 수학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준다.

 

1부터 9까지 숫자 중에 하나를 떠올려 보자. 그 숫자에 9를 곱하고 두 자리 수가 나오면 각각의 숫자를 더한다. 그 수에서 5를 빼고 제곱을 한 다음 2를 더하면 당신이 어떤 숫자를 떠올렸든지 오늘 날짜인 ‘18’이 된다. 마술 같은 수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수학을 만나게 된다. 중세 문학을 전공한 앤 루니의 <수학 오디세이>는 단순히 수학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거나 수학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학이 발생한 배경과 역사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된 수학은 시대에 따라 그 발달 속도를 달리한다. 기원전 400년께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심에서 비롯되어 2000년 전 나일강의 삼각주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의 평지 사이에서 단순한 셈 이상의 수학적 활동이 시작되었다. 앤 루니는 수학의 시작인 ‘숫자’에서 시작해서 수열, 기하학, 삼각법, 대수학과 방정식은 물론이고 미적분과 통계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전 영역의 기원과 발생 과정을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문제해결 과정은 뛰어난 상상력과 추론 능력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학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려면 공식과 계산에 얽매이지 말고 실제 주어진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방식은 세상을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삶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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