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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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어떤 내용일지 떠올려봤을때 사실, 음악과 마약이나, 총기 같은 것이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읽고보니 온통 치열하고 복잡한 그야말로 자신과 싸우느라 지쳐 너무나 작아보이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 "내 삶이 나아질 거라고요? 정말 그렇게 믿으세요?" 나는 선생님이 뭐라고 말할지 알면서도 그렇게 물어봤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어른들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다고 느끼는 그런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압도적인 증거들과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람들의 삶이란 죽을 때까지 더 나빠지기만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정말 행복하지 않다. 그게 진실이다. 하지만 실버맨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면 덜 거짓말처럼 들릴 거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럴 수 있어. 네가 기꺼이 그 일을 하려고 들면." "무슨 일이요?"

"세상이 널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 않는 거지. 그건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전쟁이야." ]

 

 창밖으로 세 대의 소방차와 두 대의 응급차가 긴급한 경보를 울리며 도로를 헤쳐 달리는 경광등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에게 벌어지고 있을 불운한 사고를 떠올린다. 방금 손에서 떼어낸 레너드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있는 와중에. 누가 혹은 무엇이 다른 존재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생각해보았다. 증오, 총이나 칼, 분노나 미움 같은 것들도 분명하지만 기댈 길 없는 외로움이나 풀어낼 수 없는 괴로움, 막혀있는 듯한 절망도 안에서 스스로를 좀먹어가는 죽음의 일부같다 생각했다. 레너드의 괴로움들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일상적이어서 안쓰러웠다. 상처를 - '그의 것'을 통칭으로 상처라 불러야 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 받은 자가 어디에도 그 아픔을 호소할 수 없는 외로움에 고립되어 있을 때, 치료되거나 한 번도 드러내어진 적 없는 아픔이 어떻게 곪아가는가를 우리에게 적나라히 보여줬다. 끔찍하고 괴로운 일 앞에서 사람을 다시 서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전화번호를 건네주는 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 한대도 택시비로 이십만원 정도로 써서 함께 돌아갈 여지를 남겨두는 일이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는 사소함이라니. 막막한 와중에 한켠으로는 안심되도록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레너드는 분명 복잡하고 또 까다로워서 다루기 힘든 소년이다. 그의 상담 선생이거나 학교의 교감이라면 때로 골치를 앓을 수 있을 만큼.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기꺼이 그것을 웃음으로 만들 줄 아는 매력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그를 학생으로만 본다면. 애셔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을 하면서도 축하받지 못한 생일에 대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들은 그것에 아직도 많은 의미를 두는 레너드의 어린아이다운 점이기도 했다.  

 

 안쓰럽게도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한 소년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이 소년의 이야기를 하려면 반드시 그에게 사과를 건네야만 하는 작은 장치를 마련해놓은 점이 재치있다고 느껴졌다. 마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시대적으로, 또한 범인류적인 애도를 가지고 사과해야하는 것처럼. 다행히도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애처로우면서도 눈길을 끄는 상처받은 연약한 존재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므로, 누군가와 레너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에 -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알려주고 싶을 때에도, 반드시 사과받지 못한 그 소년을 위해 기꺼이 말할 용의가 있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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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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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은 너에게서 떨어져 어딘가 먼 곳의 진흙탕 속으로 갈거야. 너의 음울함 모두를 등에 짊어진 채로. 그리고 그 넓고 더러운 진흙탕 속에 묻혀버려. 다시 나올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어디 이래도 버티나 보자, 라고 할 만큼 떡이 되게 두들겨 맞고, 참혹하게 쓰레기처럼 묻혀버려. 그리고 너는."

남자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내 얼굴을 보았다. 뭔가 미안하다는 듯이.

"그럭저럭 명랑해질 거야. 장래에는 뭔가 일을 하면서 여자도 사귀고 너 나름대로 이 따분한 세계 속에서 살아갈 거야. 다들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세계가 제시해주는 다양한 인생 모델, 그중 어느 것 하나를 자연스럽게 선택할 거야. 때로는 외국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동정심을 베풀어도 좋아. 때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봐도 좋아. 그럭저럭 재미있을 거야. ...... 아마도." ]

 

이런 시작점을 가지고 있는 책인데,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덕분에 읽는 동안은 꽤 재미있게 읽었다. 한시간 남짓하는 거리를 전철로 가면서 책 읽는 동안은 금방 내릴 역이 가까워 왔었다. 이 책을 들고 전철을 한 서너번 탔을까, 싶다. 매번 다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고, 그 중 두번 정도 읽으면서 갔는데 그러고 나니까 스무장 정도가 남았었다. 몰입도도 좋고 읽는 속도도 빠르게 유지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인물도 간결한 편이라 텀을 두고 읽으면서도 앞 내용이 기억 안나 딱히 되짚어 읽었다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썩 마음에 흡족한 기분이 남질 않는 책이었다.

 

 내용 자체가 음울하다. 초반에는 사실 어떤 괴물이 탄생하겠거니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시작을 보여줬는데, R의 존재가 흐려지면서 주인공에 대한 관심도 조금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R과 다시 이야기하게 되는 부분에서 마치 R 또한 주인공에게서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닌가 여겨질 만큼. 주인공은 그저 주변을 관찰하면서 '사실 내 안에도 무언가가 있는데'라고 과거의 자신을 반추하기만 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사나에처럼 '히어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 소설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길 바랐고 그것이 R이라는 존재를 품고 있던 주인공이기를 바랬다. 너무나 흔한 공식이라고 하더라도 그랬었더라도 그 과정을 충분히 잘 그려낸 작품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기대마저 흩트려놓은채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전말을 풀어내며 이야기가 끝났다. 과거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평범한 현재를 살아가게 될 주인공들을 보면서 불만족을 느끼는 독자가 오히려 더 이상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마냥.

 

 작가의 다른 작품 왕국도 읽은 적이 있다. 그 작품도 높은 몰입도로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나카무라 후미노리 작가 특유의 문체나 장점으로 꼽을만한 좋은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밋밋함이나 아쉬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말이 평이하고 수수하게 맺어진다고 해도 그 안에 깊은 불유쾌함이나 처연함을 내재시킬 수 있는 작품을 써내려간다면 좋겠다. 심층심리를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다독여줄 수 있는 힘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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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매혹 문학과지성 시인선 344
양진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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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첫 시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제 마지막으로 시집을 읽었더라 기억도 안나고 사실 이 책이 올해의 첫 시집이었는지도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다. 각인된 첫 시집이라고 해두자, 새로이 시에 매혹되는 첫 시작인 것 처럼.

 

 시집을 들 때마다 하는 푸념이지만 '시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도통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책장을 넘기며 깨닫는 일이 시를 읽는 일 아니고 또 무엇일까 싶을 정도로. 양진건 시인의 시는 처음 읽는데, 역시나 누군들 구면이겠냐마는, 어떤 시들은 너무나 사소하여 못미덥다가도 어떤 시들은 또 낯설어서 막막하고 그런 기분 사이를 오가는 반복이었다. 익숙한 주제를 잡아 시를 쓰면 가슴 한 구석을 확 잡아끄는 힘이 없는 것 같아 아쉽고 도저히 알 수 없는 함축이 담겨 있는 시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은 커녕 머리로도 읽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하니... 쉽사리 곁을 내어주지 않는 시.

 

 몇 권 읽어보진 않았지만 꽤 자주 시인들이 야생화같은 작은 풀꽃이나 자연물을 두고 시를 쓰는 것 같다. 양진건 시의 시집에서도 같은 주제로 쓰여진 시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공통된 시적 정서, 시스러운, 시다운 정서를 공감하게 된다면 뭔가 또 달라질까 싶다. 재미있는 건 표제작인 '귀한 매혹'은 "여러 종류의 버섯으로 요리되는 태국식 볶음국수"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버섯국수라 해도 될 법한데 굳이 볶음국수라 명명한 데서 오는 태국식 볶음국수의 맛나는 구조에서 의미를 찾다니. 재밌다. 게다가 태국식 볶음국수가 주는 매혹은 충분히 공감할만 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겠다.

 

 가장 인상적인 시들은 병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문을 옮기려는 것은 '그들처럼 나도' 라는 시.

 

내 입원실 창 아래로

유년의 긴 골목,

양편에 흐릿한 옛집들이 서 있고

그늘에 치어처럼 아이들 서너 명,

어느 때인가 그들처럼 나도

지느러미에 빛 오를 적이 있었다.

삶은 그런 힘이려니 했지만

나뒹구는 신문지처럼 구겨진 내 생이여.

세월의 강은 유속이 빠르고

이젠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데

참으로 그리움이란 비루한 것.

입원실 창문을 닫으려니

모든 풍경이

이상하게 가볍다.

 

골목의 풍경을 너무나 공감할 수 있는 시여서 몇번이나 읽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완연히 어른인 것만 같단 생각도 든다. 해마다 나이는 먹어도 속알맹이는 변한 것 없이 그대로려니 했는데도 설명할 길 없는 이 적막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의 전문을 옮긴다.

 

'환술'

 

TV나

인터넷만한 환술이

또 있을까?

환술의 호랑이가 오히려

마술사를 삼켰듯

그것들은

내 땀 냄새,

심지어는 내 혼절의 시간,

오늘은 내 그리움까지도 삼킨다.

어떤 쓸쓸함도 없다.

아, 씨발.

 

나름 오랜기간 동안 스마트한 삶을 거부해 왔었는데, 확실히 내 모든 것을 순식하게 스마트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기의 사용은 보이기에 스마트할 지 모르나 매우 피폐한 것임을 통감하는 요즘이다. 정말이지, 내 모든 것을 삼켜 스마트하게 만드는 그 환술들! 그리고 그것에 속절없이 매혹되는 나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

아, 씨발.

 

 물론 다른 달콤한 시들도 많다. 예를 들면 '베추니아'"내 마음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아침이 오고/ 이제 횡포한 바람도 불 테지만/ 베추니아가 만개하는 동안/ 그리움은 더 견고해질 테고/ 당신을 잃어도/ 나는 당신 속에 있습니다." 하는 내용처럼. 읽고자 하는 사람을 두고 혼자만 멀리 가버리는 시들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음미하자 권유하는 시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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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과 잉여 논문선 1
김상민 외 지음, 백욱인 엮음 / 지식공작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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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편이다. 책 읽는 공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오가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그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곤 하는데, 이 책은 들고 다니며 읽고 좀 민망한 면이 없지 않았다. 제목 자체가 마치 나의 이름표인양 강렬하다. '속물과 잉여'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보여지는 것에 연연하는 체면치레에 민감한 속물적인 존재이자 생산 활동을 하는 시간 외의 나머지를 잉여적인 '컴질'에 쏟아붓는 여느 서대와 다름없는 잉여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런 내가 '속물과 잉여'를 들고 읽고 있다니. 마치 '철수사용설명서'를 들고 있는 철수와 같이 느껴진다.

 

 사실, 잉여와 속물에 관한 글들은 많다. 그동안 나왔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속물적인 인간에 대한 잉여적인 삶에 대한 글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 논문선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언급되곤 하는데, 처음 몇 편이야 파격이고 세태반영이겠지만 반복되다보면 물리고 지루하고 그래서 결국은 '뭐 어쩌라고' 하기에 이르게 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물과 잉여라는 주제를 떡하니 들고 나온 책을 읽게 된 까닭은, 이 책이 논문을 모아놓은 선집이라는 이유에서 였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그렇고 그런 비슷한 삶의 구질함이 좀 지겨운 찰나 좀 더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시선으로 이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논문선을 읽어보고 싶다는 속물적인 마음과 잉여 시간도 있었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속물이나 잉여라는 단어의 광범위함과 트렌디한 뜻의 사용을 잘 못 짚어낸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속물이니 잉여니 하는 건 그렇게 딱딱한 범주로 설명되는 뜻이 아니기도 한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증여의 논리' 부분은 그저 디시인사이드 소개글에 지나지 않은, 그것도 아주 단편적인 내용들만을 뜬금포로 나열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잉여스러운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내포하는 말인 것 같아 하고싶지 않지만, 현 시대를 반영하는 코드로 학술적인 분석을 했다기 보단 이런 문화나 현상이 있었다는 소개 나열에 머무른 것 같아 아쉬웠다.

 

 학부 때 레포트 작성하려고 몇 편 뒤적여 본 것이 다 인 논문을 아예 선집으로 모아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새로웠다. 그 점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주제가 주제니 만큼 논문 사례들도 흥미로운 것도 많아서 부담갖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글들에 비해서는 다소 딱딱하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는 가볍게 읽었다. 읽으면서 이 책의 리뷰군을 디시나 다른 거대 포털 쪽에 두면 어떨까, 더 재미있는 리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좀 더 실험적인 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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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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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 그래서 쉽게도 이 책을 읽어보겠노라고,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이 어딘가 익숙한 것처럼 그녀의 문장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우습지 않은가, 누가 누군가의 이름을 듣고서 그 사람도 알 법하다 여기겠는가. 그런데 매번 책을 고르는 일 만큼은 그렇게 사사로운 것들을 계기로 백에서 이백그램정도 할 법하다 여기는 하나의 종이 뭉치를 손에 쥔다.

 

 그녀는 흥미로운 작가이고, 그녀가 보여주는 날카로운 시각이 책장의 결 안에서 느껴질때면, 그 예리함에 몸 속 어느 부분을 관통 당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이를테면, [ 나는 나 자신이 선천적인 권위를 타고났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강한 인간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다만 나는 교양 있는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교양 있는 이들을 대할 때면 나는 여유에 넘쳤다. 그런데 뻔뻔스러운 인간을 만나기가 무섭게 내 그런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 87p ] 하는 구절에서 그동안 사람을 상대하며 말문이 막혔던 그 지독한 이기와 무례함의 감옥에서 - 왜 나는 피하지도 이겨낼 겨를도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깨달아야 했다. 나는 나 자신이 그보다는 더 능숙하고 조리있게 그들의 요구에 응대할 수 있는 교묘한 말재간이나 타당한 이성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상식을 뛰어넘는 파괴적인 무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력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 무력함 - 사람들 삶의 한순간을 그보다 더 적확할 수 없는 한 구절로 응축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작가의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인간이란 자기 행동을 반복하는 존재다.> 시적인데. 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걸."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한 번만 하고 말진 않아. 어떤 사람이 어느 날 한 행동은 그 사람의 본질에서 나온거야. 인간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살아가지. 자살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야. 살인자들은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연인들은 다시 사랑에 빠지지." ] 강렬했던 부분이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오히려 점차 4시부터 6시까지 반복되는 매일의 만남처럼 패턴화되어 눈에 붙어왔는데, 그 중에서 유독 이 대화가 눈에 도드라졌다.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본질에서 나온다라는 내용은 한편으로는 책의 그 어떤 부분보다 무서웠다. 이웃이 문을 열 때까지 환영받지 않는 방문객이 문을 두드린다거나, 그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이 나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으로 들어서길 서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전부터 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는데, 나의 행동이 곧 나의 본질에서 떨어져 나온 증거물로 남는다는 것은 또다른 두려움이요 기대이다.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얼마 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집 안에서 이런 기묘한 방문자와 그보다 먼저 마주하였던 것만 같단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이 읽은 순서의 시점을 두고 그런 생각을 떠올려서야 안되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정말 독특하다 할 수 있는 주제를 두고 겹쳐지는 인상을 받으니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낯설어야 할 이 생경한 방문자와 이미 통성명을 나눈 사이였던 것 같은 사소한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긴가민가 하는 마음을 그러안고 쥘리에트와 에밀, 그리고 베르나르댕의 만남을 주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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