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짜 합리성에 대항하는 논리학 백신
스티븐 로 지음, 윤경미 옮김, 이종권 감수 / 와이즈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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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분류는 인문에서 논리학쪽으로 카테고리가 된다는 것을 인터넷 서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고를 때 바로 직전에 읽은 책이 마케팅과 관련된 책이라 이 책도 역시 그 쪽이나 심리학처럼 우리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바보같은 행동인지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조정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선택을 했다. 얼핏 봤을 때 쉬운 책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흥미는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읽었다.

 

책을 한 참 읽은지 100페이지 정도 되었을 때 이 책은 내가 생각한 부분이랑은 전혀 관계가 없는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범주를 정한다면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고 책의 3분의 2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다. 특정 종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서양 사람이다 보니 주로 공격대상은 크리스트교이다. 잘못된 믿음을 똑똑 한 사람들이 왜 믿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지만 그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물타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책에 나온 사례는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 카드', '어쨌든 들어맞잖아.라며 이야기를 단 하나라도 맞게하는 방법, 넓게 범주를 정하는 '핵 폭탄 터트리기', 논점을 변경하거나 다른 전개를 이야기하는 '의미적 골대 옮기기', 더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난 그냥 알아'방법, 무척이나 대단한 말인듯 하는 '거짓 심오', 다수가 아닌 몇몇 개별 사례를 이야기하는 '일화 나열하기', 사람들을 교묘하게 세뇌시키는 '조종 버튼 누르기'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그렇다고 종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종교에서 말하는 것중에 과학적으로 지식적으로 믿음으로 설명하기에는 터무니 없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공격을 한다. 공격 대상에는 창조론과 젊은 지구론, 외계인, 주술, 질병을 과학이 아닌 민간요법에 의한 치료 등등 그래도 꽤 재미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내 자신도 종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공격은 솔직히 없지 않아 거부감도 있지만 타당성있는 주장이며 수긍할 수 있는 논리적 전개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과학적인 논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내용에는 공감한다. 과학은 우리가 믿고 있는 잘못된 믿음에 대해 꾸준하고 끊임없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했고 올바른 진실과 정확한 사실을 증명하고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을 한다. 특히, 외계인 부분이나 주술사가 한 개인의 과거나 미래에 대해 맞추고 이에 대해 상담을 해주는 것과 같은 일에 대해서 스스로 별로 탐탐치 못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어 이런 내용은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저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인간의 나약한 면을 건드려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면으로 유도하고 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인간들을 볼 때면 더더욱 이 책의 주장에 공감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8가지 방법은 그 어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에도 제대로 먹혀드는 방법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만들어 준다. 누군가 나에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것도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적당하게 그럴 수도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며 하는 이야기에는 강력한 설득과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이 있다. 아무리 지식을 갖고 있어도 그럴 수도 있다라고 나도 모르게 순간 긍정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어서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왜 믿는지 궁금하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라면 저자는 너무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말처럼 똑똑한 사람들은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책에 나온 내용들을 이미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똑똑하지 못하고 아주 작은 계기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이다. 동물들도 어느 정도 지능을 갖고 있지만 인간과 같은 행동이 없는 것은 지능만 갖고 있지 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과 감정과 같은 말로써 꼭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이 많은 지식과 과학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세상을 창조하고 있고 인간의 머리가 점점 발달하고 있지만 그 영역과는 조금은 다른 가슴에서 나오는 믿음의 영역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고 정복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신비한 영역이라 인간의 지식이나 온갖 수식으로 풀 수 있거나 풀려고 하는 과학과는 달라서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잘못된 믿음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게 되고 긍정적인 믿음은 인간을 기대 이상으로 만들어 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이 부분은 철학과도 연결이 되고 정리가 완벽하게 되지 않기도 하지만 평생 살면서 안고 가야할 영역이라 보인다. 절대 믿음이라는 것은 없지만 사실을 부정하거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는 단호히 거절한다. 문제는 그게 내 마음대로 잘 될 것인가이다. 갈수록 교묘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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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8 - 난리편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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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품은 분명히 작가가 쓴 가공의 세계이며 작가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스스로 신이 되어 만든 세계를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생각대로 하는 것을 무엇이라 할 수 있는 권리는 읽는 독자에게 있지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하는 일이 벌어질 때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공화상태에 빠질 정도까지는 말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전편에서 어느 정도 복선을 깔아 작품이 끝나기 전에는 양웬리가 퇴장을 할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이렇게 빨리 퇴장을 할 지는 생각을 못했다. 워낙 영웅들은 아자 사소하고 별 일 아닌 것으로 역사에서 퇴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퇴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은 없다.

 

그렇다해도 개연성이라는 부분에서 사실 좀 그렇다. 지구교라는 단체가 하려는 의도와 그를 추종하는 인물들의 맹목적인 믿음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없이 그저 광신교들은 그렇다고 하는 단순한 설정으로 치부하고 그들의 행동에 모든 면제부를 주는 것은 이 책이 단편소설이나 한 권짜리도 아니고 벌써 8권이나 되는 분량동안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나오지 않은 것은 작가가 좀 소홀한 것이 아닐까싶다.

 

율리안이 지구에 갔을 때도 사실 지구교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보다는 표피적인 이야기와 지구교가 공식적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 이외에는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알지만 그 과정은 이해하기 힘든 전략적, 전술적 요소가 많아 어딘지 작품의 요소를 더욱 탄탄하기 보다는 풀기 어려운 퍼즐을 광신도라는 이름으로 해결하려 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 말미에 작가가 직접 훨신 이전에 양웬리의 퇴장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할 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이해도 간다. 드라마에서 초반에 퇴장하기로 한 배우가 생각지도 못한 인기로 인해 드라마 끝까지 생존하거나 조연이면서 주연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제목에서 영웅은 단 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의미하며 전제국가와 대비되는 민주국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단 한명의 영웅보다는 그 이후에 민주적으로 점점 발전하는 국가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재미가 급감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9권부터는 거대한 라인하르트의 세력과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율리안의 세력과 어떻게 하든 권모술수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구교 일당들의 이야기가 그려 질 듯은 하지만 사족을 읽는듯한 느낌이 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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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 속옷만 갈아입지 말고 생각도 갈아입어라!
유영만 지음 / 위너스북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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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유영만교수는 - 현재 교수이기 때문에 어딘지 교수라고 표현해야 할 듯 - 우연히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엄청난 지식인이라는 문구를 보고선 이 분의 블로그를 쫓아 들어 간 적이 있었다. 엄청난 지식인이라는 표현에 대해 내가 왈가불가 할 정도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이 분의 놀라운 필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거의 매일같이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소재를 갖고 끊임없이 여러 글을 쓴다. 아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에 대해 쓰고 또 쓴다. 하루에도 본인이 생각한 수많은 생각을 글로 쓴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 솔직히 조금은 지겹기도 해서 - 이제는 읽지 않고 그냥 오늘도 글이 올라오고 이 분이 무엇인가 생각을 한다는 점만 파악할 뿐이다.

 

이미, 이 분이 여러 책을 썼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핑'이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같은 책도 번역을 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를 어쩌면 초 단위로 철저하게 나눠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나로써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한 삶을 살고 있어 보인다.

 

가장 최근의 책이 바로 이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라는 것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책 제목이 약간 아리까리하다. 어떤 이야기인지 제목을 보고 모르겠다. 책을 읽어보니 제목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을 자신이 다양하게 써 놓은 생각에 관한 지도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목이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라고 한다. 네이밍도 잘 하는것을 보니 마케팅쪽을 하셔도 될 듯 하다.

 

본인 스스로 지식 생태계 지식산부인과의사라는 표현을 한다. 솔직히 이 정도로 엄청나게 본인의 생각을 쓰는 사람에게 반론을 한다는 것이 어딘지 무섭다. 그 근처도 가까이 가지 못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하겠지만 나로써는 도저히 비판은 커녕 감탄만 할 정도이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정말로 세상을 살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인구의 10%도 안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란 '오늘 점심으로 뭘 먹을까?'나 '낼 사장님의 지시는 다 준비했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당연한 현상에 대해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을 이야기하면 너무 유명한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누구나 다 똑같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사과가 떨어진다는 현상을 보고 누구는 그저 사과가 떨어졌으니 이게 왠 횡재냐는 생각에 사과를 먹을 생각밖에 안 하거나 사과가 떨어졌으니 저 사과는 분명히 썩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나 사과가 떨어졌지만 내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생각하고 지난친 사람과 달리 뉴튼은 이 너무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이라 생각했던 것을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인류역사를 엄청난 발전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군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한 결론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무임승차를 하며 살고 있다. 본인은 오늘도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솔직히 이런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알려고 노력할 때 이런 생각이라는 것도 나에게 온다. 또한, 세상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비로소 의문을 갖게 되면서 저절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어보면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 하나에도 온갖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를 다양하게 분해하고 또 조합하고 뒤집어 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연관된 단어나 연상작용을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의미에 대해 파악하고 또 파악한다. 흔히 편집증적인 사람이 역설적으로 성공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편집증적으로 참 다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한다고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산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의식하지 않고도 저절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또한, 투자라는 것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두뇌라는 것을 갖고 있는 인간은 어떠한 자극을 주워지면 그에 반응을 하게 된다. 동물은 그 반응이 거의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본능에 가깝지만 인간은 본능에 의한 반응도 있지만 신이 만들어 낸 오묘한 두뇌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지적 자극에 반응을 하게 된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쾌세라 세라에 가깝게 그저 삶을 사는 듯 해도 끊임없이 책과 투자를 통한 자극은 나도 모르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만들고 어제 와 다른 나를 만들어 내고 있다. 누구나 어제와는 아주 사소한 의미로라도 다른 내가 되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가 주입하거나 생각한 관점이나 세상에 대한 시선이 아니라 내 스스로 판단하고 고민한 결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때 비로소 나만의 생각지도란는 것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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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7 - 노도편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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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두 진영은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면서 서로 상대방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하고 상대방의 재능에 대해 한 명은 감탄을 하고 한 명은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누가 더 뛰어난 인물인가에 대한 부분은 당연히 사람들마다 틀리다.

 

엄청나게 악인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칭하는 사람도 누군가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존경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족이 갖고 있는 대단한 착각내지 자기 에고가 아닐까 한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선택이 강요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내가 취직을 하고 싶었으나 그 회사가 생각지도 못하게 어음처리를 제대로 못해 어려움에 빠져 당분간 신입사원을 뽑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지만 어떤 경우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에도 이런 쪽으로 치부하여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세상 탓을 한다는 것은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운명을 과감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을 리드하는 인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후대에 볼 때는 결국 역사에 의해 이끌려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라인하르트는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자신이 운명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 오히려 애쓰는 모습이라고 하면 좀 과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것 자체가 바로 운명에 이끌리는 것이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을 해야 하는 모습도 많고 말이다.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양과 라인하르트가 제대로 직접 모든 전략을 짜서 서로에게 서로를 이기기 위한 전투를 한 적은 없다.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만 양은 아직 세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라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7권에서는 이 둘이 드디어 서로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면서 싸울 수 있는 준비가 거의 다 끝이 난다. 책은 작가가 후대에 역사를 다시 쓰는 듯한 분위기로 쓰고 있는데 조금은 거슬리는 묘사도 있다. 뉘앙스를 보니 양은 얼마 있지 않아 죽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라인하르트가 우주를 통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는 흔히 우주라고 하면 지구인 말고도 다양한 종족이 나오는데 이 책에는 오로지 지구에서 시작된 인간만이 출현을 한다. 결국 이 우주에는 지구인말고는 살아가는 종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인구수가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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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7
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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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길어 아마도 이 보다 더 긴 제목의 책이 드물지 않을까 싶다. 책 내용도 제목만큼 쉽지 않고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솔직히, 굳이 이 책을 나는 왜 선택해서 읽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하다보니 선택해서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안 읽은 것보다는 읽은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건너온 금융자본주의와 세계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는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 내가 우리 나라이외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절대 선과 같은 분위기로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그에 따른 체계를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다른 대안이나 반대 이론들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이 특별히 논의의 상대가 되지도 못했지만 기회조차 주워지지 않았다고 본다.

 

오로지 금융이라는 현상만으로 시작된 금융 위기 이후에 전 세계는 우리가 추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그때까지 오로지 미국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약간 맹목적으로 추구했지만 어느 순간 최면에서 풀리고 보니 바로 눈 앞에 아슬아슬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잘 못 되었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등에 대해서는 불행히도 제대로 된 논의는 없고 여전히 우리는 잘 먹고 잘 살아야한다는 화두에 메몰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내가 감히 더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그저 감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점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는 여전히 가난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어떤 문제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점에 대해 지지하고 고민하고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공감이 되고 내가 너무 미국식 자본주의에 물들어있다는 부분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똑같은 기술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미국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고 한 사람은 베트남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기술은 똑같다. 심지어 베트남에서 택시 운전하는 사람이 미국에 와 택시 운전을 한다고 달라 질 것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다르다. 이처럼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서 버는 수입은 틀리다. 물론,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버는 것 같지만 각자 나라에서 꼭 필요한 생활비 수준과 지출되는 금액을 볼 때 너무 도식화 한 것은 아닐까 하기는 하지만.

 

책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엄청나게 많이 언급이 된다. 그 이유는 대표적인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나라의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 한국이라는 나라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변화하는 나라가 극히 드문것인가에 대해 이 책은 설명을 하고 있다. 단순하게 현 상황에서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의 출발점부터 들어가서 이야기한다.

 

철학에서 출발한 경제학은 아담스미스나 리카도와 같은 경제학자 - 지금은 경제학자라고 불리우지만 이 당시에는 철학자 - 들의 이론에서부터 출발하여 현재의 화폐통화와 관련된 경제학자까지 끌여들여서 논의를 확대하고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경제사와 경제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고 경제학 원론이나 그 유명한 맨큐의 경제학같은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어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산업 자본주의를 출발하여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그 전까지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기에는 수준이 미미한 자본은 산업이라는 획기적인 인류발달의 체계를 만든다음부터 거칠것 없이 질주를 했다. 그 후로 포드회사로부터 출발한 대량생산의 체계는 엄청난 자본가를 만들며 많은 사람들을 먹고 사는데 지장없게 만들었다.

 

그후로 산업자본주의는 현재의 금융자본주의로 발전을 했다. 산업자본주의까지는 여러 회사가 생기고 무엇인가를 만들어감에 따라 인류는 생산적인 일들을 창출했다.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여 먹고 사는 것 부터 출발하여 그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산업과 이러한 물건들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지만 그 후에 발달한 금융자본주의는 더 많은 자본가와 부자를 탄생시켰지만 실제로 인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본다. 오히려 인간들에게 먹어도 먹어도 갈증을 채우지 못하는 탐욕만 더 키웠을 뿐이다.

 

수확 체증과 수확 체감이 있다. 무엇인가를 하면 늘어나는 것과 줄어드는 것이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산업 자본주의는 수확체증이라는 법칙에 유효했다. 이러한 수확체증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부자나라가 되었다. 이제 가난한 나라들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확체증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산업을 키워가야 한다. 하지만, 부자 나라들은 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수확체증보다는 수확체감을 요구했다. 수확체감에 해당하는 것은 원자재 수출이다. 원자재를 수출하여 당장 먹고 살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발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수확체증을 통해 발전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면성실도 있었고 교육열과 우리고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과 같은 국가적인 일심동체의 원동력도 있었지만 마샬플랜이라는 부자 나라들의 정책적인 도움도 있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점이다.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산업을 키워주었다는 점도 굳이 반박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후 마샬플랜이라는 것이 폐기된 후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정책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극단적으로 말하는 미국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산업을 키워주면 부자 나라들의 산업이 망가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자유무역주의를 관철한 것이다. 한국도 일본도 일정 수준이 될 때까지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정부가 방패막이를 해서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최소한 자신들 나라만의 산업으로 먹고 살 시스템이 만들어 진 후에 무엇인가를 해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지 못하니 가난한 나라는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도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도 독일도 모든 부자가 된 나라들은 똑같이 자신들의 산업을 보호 무역으로 철저하게 지켰다. 이들의 산업이 최소한의 경쟁력은 갖출 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개방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가난한 나라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왜냐하면 그 산업은 국민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엄청난 교육열은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국가가 된 원동력이라고 하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교육을 해도 교육을 활용할 곳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외국으로 나가게 되고 이들이 보내주는 달러는 자국의 국민들이 먹고 살 기회를 제공하지만 역으로 자신들이 버는 것보다는 보내주는 달러가 더 크기 때문에 게을러질 수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모기로 인해 죽는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모기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모기는 피할 수 있지만 가난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굶어죽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나라들이 부자가 된 것은 이러한 모방에서 출발한다. 자신 나라들보다 우수한 부분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한 발자취를 똑같이 따라하며 산업을 일으켰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반도체나 자동차라는 것을 우리나라 혼자 힘으로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서 몰래 훔치기도 하고 어깨 넘어 배우기도 하여서 우리 실정에 맞게 끊임없이 만들어 지금의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지금 부자나라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따라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드는 것이 조금은 지나친 감도 있지만 특허권이나 지적 재산권과 같은 무기로 가난한 나라들이 모방을 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를 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의 자국의 산업을 일으킬 기회 자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산업을 일으키고 싶어도 부자나라들이 끊임없이 개방을 요구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결국에는 산업이 클 수 없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에는 끝까지 보호 무역을 관철해서 부자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뭐, 우리나라가 부자 나라라는 부분에서 동의를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GDP라는 숫자로 보이는 부분을 보면 안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당장 우리나라가 수출과 수입에 여러 문제가 생긴다고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보고 여기서 개개인이 더 잘 살 수있는 부분은 없어 보인다. 국가의 GDP가 늘어나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선진국 기준에 부합할지라도 국가의 국민들은 더이상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중국과 인도같은 나라들도 지금처럼 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자국의 산업을 보호했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만이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시하는데 내가 다른 지식이나 연구를 해 본적이 없어 딱히 뭐라 할 수 없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주장이 옳다고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각 국가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에 속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샬플랜이 생긴 이유중에 하나가 공산주의때문이라 탈레반의 도발로 인해 마샬플랜과 같은 정책이 부자나라들에게 다시 도출되었으면 한다는 조금은 과격한 이야기도 아주 아주 살짝 언급한다.

 

산업 자본주의를 넘어 금융 자본주의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다음은 어떤 자본주의로 들어가게 될 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자본주의가 아닌 체계로 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앞에는 다른 단어가 들어가도 뒤에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아직은 존재할 것이라 본다.

 

이 책은 조금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너무 한쪽 면에 함몰되어 있는 사고를 다른 쪽의 사고도 할 수 있는 측면을 제공해 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나 세계화의 반대로 치부되고 있는 복지에 찬성하는 책이 아니라 더더욱 균형잡힌 시선을 제공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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