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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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기만 한 귀한 시간들을 귀한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린 걸 이제와 후회해서 뭐 하겠냐만, 그럼에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후회할 수 밖에 없기에 참 착잡하다.

이럴때면 다들 저마다의 먹먹한 맘을 한 켠에 두고, 오늘 하루를 또 살아 나가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급히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P. 13) “이건 하느님의 실수가 분명하당께요. 어쩌케 날씨 좋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봄가을만 요로코롬 짧고 바쁘게 만들었당가요. 하느님의 실수가 아니믄 심술이랑께요.”

“좋은 날은 말이제, 짧아서 좋은 것이여. 귀한 건 희귀하니께 귀한 것이고. 그랑께 감사함이 있고 겸손함이 있는 거제. 하이튼 하느님한테 답장 오믄 나한테만 살짝 알려주드라고잉. 하하하.”


하늘은 높푸르고 대추 밤 호두도 따야하고, 가을 운동회랑 소풍도 가야해서 바쁜, 그러면서도 좋은 날 많은 봄가을이 짧아 아쉬움을 말하는 아이 ‘평이’에게, 좋은 날은 짧아서 좋은거라는 신부님 말씀에 난 왜 울컥 하는건지.

좋은날을 떠올리니, 그 자체만으로 좋으면서도 같이 회상하고, 또 같이 계속 누리고 싶지만 그럴수가 없는 떠나간 사람들이 떠올려져 내가 그렇게 먹먹한 감정을 느끼는가 보다.

아버지와 할머니를 일찍 여윈 후, 허우룩한 마음이었을 평이는 그럼에도 씩씩하고 식구들 챙길줄도 아는 속 깊은 어른스러운 아이다. 그 속마음을 모를 수가 없기에 참 대견하면서도 애잔하다.

어찌나 동네 사람들에게도 싹싹한지 모른다.
나는 평이처럼 넉살도, 수더분한 면도 다 부족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대차지도 않아 그림자처럼 주변을 서성이다 맛있는거나 ‘쓰윽’하고 가져가 보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보는 사람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사람으로써, 서로들에게 살뜰한 사람들이 내뿜는 에너지만으로도 나란 사람은 서서히 충전이 필요해진다.

‘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이런 나일지언정 박노해 시인의 어린시절 이야기 속, 서로 다붓다붓 정을 나누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흐뭇하고 충만한 감동과 깨달음을 얻게 한다.
본명인 박기평으로 살아갔던, 모두가 평이라고 불렀던 그 시절에 함께 했었던 사람들이, 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말들과 굳이 또 말로 하지 않아도 참된 인간의 길을 알려주는 행동들이, 여러면으로 부족한 나란 사람에게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필요했던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도 해줬다.


모내기를 앞두고 논일을 도와주는 일손들을 위해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다가, 갯장어 손질 중 손을 다친 어머니.
대신에 급히 어머니가 알려준대로 장어요리를 해버려야(?) 하는 8살 평이.

그 어린것이 어머니 손에서 뿜는 붉은 피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이미 가슴이 두근두근 머리가 하얗게 질렸을텐데, 생전 해 보지도 않은 요리까지 해야 했으니, 그 막막함과 부담감과 분주함의 식은땀이 안 봐도 생생하여 내가다 초조했다.

더구나 자기집 논일을 도와줄 일꾼들을 위해 정스러운 마음으로 푸지게 차려주고 싶었을 어머니 대신 아닌가. 이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으니 8살 인생에 이 또한 얼마나 큰 사건이었을까.

그럼에도 평이는 인생 첫 요리를 잘 마쳤고, 자신이 아플 때 받았던 정성들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꿰매고 온, 어머니 이마의 수건을 올려 땀을 닦아줄 줄 아는 다부진 아이였다.

(P. 81) 울 엄니가 크게 베인 손을 움켜쥐고 핏방울 떨구며 홀로먼 황톳길을 걸어가던 꿈같이 어질하고 절박했던 그날 이후, 나에게 요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어느 날, 준비도 연습도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 울며 기도하며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주어지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꼭 해내야만 하는, 내인생의 모든 것이 그날 정오에 시작되었다.
생각할 때마다 아뜩하고 목이 메이는 나의 첫 요리. 내 인생의 첫 요리.


이야기에 빠져서 들여다보는 내내, 자꾸만 책 장수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가며 읽었다. 최종회를 남긴 드라마를 보며 ‘아, 이제 다 끝나가네.’ 하면서 아쉬워하듯 그 마음을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재밌다. 글이 너무 재밌다.
토끼털 귀마개를 하고 누빈 솜옷을 입은 찐빵 같다던 방물장수가 사랑방에 모인 마을 사람들 앞에서 펼치는 말 보따리는 청산유수가 따로 없고, 실감나는 묘사에 나도 사랑방 어디 한 귀퉁이에 자리펴고 앉아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날 방물장수에게 어렵게 얻어 낸 무협지를 호롱불 밝혀 밤새도록 홀린 듯 읽으며 품었을 평이의 장대한 꿈도 그려지는 듯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성실하고 좋은 어른들이 계시는 모두가 정답게 지내던 시절속에서, 조금씩 자라났을 아이 ‘평이’가 바라본 세상은, 기대했을 세상은, 분명 무협지를 보며 키웠을 그 꿈을 키울만한 가치가 있는 따뜻한 세상이었을텐데......

(P. 104) 봉지 속에 꽃씨들이 땅에 묻혀 새근새근 연초록 새싹을 내밀고 그 환하고 해맑은 얼굴로 향기를 날리며 피어날 봄을 기다리며, 내안에도 나만의 속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살아온 길을 들여다보니, 그 사람이 걸어간 길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배짱 좋던 아이가 어느 새 자라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향해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고,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려 평등과 희망과 사랑을 말하는 길 위에 서 있게 할 수 있었던 그 힘의 뿌리가 되었을 부모님과 할머니와의 이야기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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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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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었을 7명의 흑인여성들은 폭력과 차별로 얼룩진 현실에도 서로를 끌어안는 연대의 힘을 보였다. 반면 그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차별과 침묵은 씁쓸한 사람의 이면을 느끼게도 했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한 용기를 주고 묵인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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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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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흙냄새와 메마른 열기로 가득 찼던 8월의 어느 날.
숲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에도 더운 열기로 달궈진 흑인 남녀의 몸을 차마 식혀주진 못했다.
오후의 태양처럼 빛나던 풋풋하고 앙큼함을 품은 설레임으로 가득 찬 그 시절속에 흑인 남성 ‘부치’와의 기억을 떠올려 보는 어느새 중년이 되버린 한 여성.

과실치사 사건의 가해자가 된 아들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고, 살던 집에서 나와 과거에 살았던 곳으로 이사를 온 ‘매티’가 그 때의 향을 맡으며, 마음 속에 묻혀 두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녀가 서 있는 이 곳은 도시의 자유로움을 좇아 하나 둘 떠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달리고, 버스가 밟는 땅 위에서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곳이었다.


비 온 뒤 진득해진 땅을 밟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서로 엉겨붙어 치열하게 사는 어른들. 뿌옇게 김이 올라오는 냄비에서 끓고 있는 훈제 돼지고기 냄새와 날리는 먼지까지 보이는 것 같은 세밀한 문장들이 이 책에 금세 빠져들게 만들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곳의 시절과 풍경과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그 시절의 향에 너무 취한 것일까. 곧이어 모든 것이 산산조각을 내며 절망감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 생기고야 만다.


이 책은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시작된 직후의 미국 북부 도시의 빈민가 ‘브루스터플레이스’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동성애 혐오, 사회적 격차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7명의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하여, 그 특징답게 서로가 연결되어 저마다의 사연과 생각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여러 관점을 동시에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뱃속에 아기를 품고 미혼모의 삶을 택해 집을 나와야만 했던 ‘매티’는 이제 중년 여성이 되어, 살아온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운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에게 모진 삶을 지탱하는 힘을 불어 넣어주며 살고 있다.

그 안에는 모성애가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남성들에게 얻지 못한 삶의 희망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구축해 나가려는 진취적인 삶의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고난이란, 절망만 주는 게 아니라 용기도 주는 것인지 모두들 각자의 방식대로 맞서서 살아가고 있었다. 풍족하지 못한 생활 뒤에 따라오는 역경 속에서도 순간의 평안을 주는 ‘종교’가 있었으며, 등을 두드려주는 ‘자매들’이 있었으며, 자신의 헛된 욕망 앞에 질척거리는 대신 체념이란 빠른 선택으로 지켰던 ‘자존심’이 있었다.

북쪽 끝에서 불어오는 자유를 실은 바람에도 낡은 아파트에 사는 그녀들이 잃지 않았던 것은 서로를 향한 손길과 마음이었다.

과거에 집을 나와 추운 겨울 날, 오고갈데 없는 ‘매티’와 자신의 품에 안긴 어린 아기를 따뜻한 보금자리 속으로 품어준 ‘이바 할머니’처럼 ‘매티’가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성들에게 보여준 이타심이 참 따뜻했다. 그 어떤 지위와 환경의 반짝임보다도 멋있고 대단하고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모진 세월과 자신의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음에도 굳건하게 그들을 끌어안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 인물이다.

특히, 아기를 잃고 영혼마저 죽어버린 듯 상실과 슬픔에 힘들어하는 여성 ‘시엘’을 위해 그녀의 어머니 대신, 그녀를 버리고 간 남편 대신, 상처의 고름을 씻겨 내듯이 목욕을 시켜주고, 그녀가 고통의 신음을 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 그 슬픔을 밖으로 쏟아낼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모습에서는 참으려고 해도 목이 뻐근하고 아파오는 통증을 느끼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중산층의 자녀로써 풍족한 삶을 버리고 빈민층 거주지역 브루스터로 이사를 온 여성 ‘키스와나 브라운’은 흑인 인권운동에 열심인 혁명적인 여성이다. 허름한 이 아파트와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그녀는, 현실적 조언을 하는 엄마와의 갈등에도 팽팽하게 맞선다. 물론, 딸을 사랑하는 만큼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에 현실 모녀(?)의 불꽃튀는 대화는 힘들이지 않고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삶의 고통과 아픔의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조금씩 차지했을 그들의 우정.
이렇게 서로 버팀목이 되어 지낼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일까?


조금만 세대를 올라가도 잔혹한 노예무역으로 강제이주 당하며 유럽인들의 노예가 되고, 백인우월주의 속에서 유대감을 가질 수 없었던 흑인들이, 이 열등감과 설움을 이어받아 어느 한쪽 귀퉁이에서 더이상 떨어져 나갈 수 없기에 서로가 서로의 손과 발목을 묶어 단단한 큰 덩어리로써 연대를 구축해 나가려는 ‘한’이 그 힘을 만들어낸 것일까?


누군가는 찬란한 시기 속에서 부를 축적하며 배를 채웠겠지만, 그 속에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고 파는 물건처럼 지냈어야 할 생명의 존엄이 사라진 피눈물의 시기를 겪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똘똘뭉쳐 이어나가려는 이유가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이란 것은 가슴아픈 일로써 떠올려 지지만, 때때로 아픔과 설움이 만들어 낸 ‘연대의 힘’일지언정 그들의 단단한 결속이 부럽기도 하다. 사실 우리들의 현 삶은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사람들과는 점점 다른 형태와 가치관으로 멀어져가고 있다. 이들처럼 ‘상호 부조’하며 사는 것이, 어느 순간 점점 불편하고 때론 부담으로 느끼며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게 되버리지 않았나.

(물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의 결속은 그 무엇보다 빠르긴 하다. 우리들은 오랜시간 지켜 봤으며,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는 듯,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성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애를 향한 차별을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내쳐지는 레즈비언 커플 ‘테레사’와 ‘로레인’ 이 두 여성을 향해 이기죽거리는 사람들.
물론 모든 이들이 비난을 하고 차별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침묵’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차별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공동체의 결속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국적이나 인종도 상관 없이 악순환이 돌고 도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참 씁쓸하다.

자신들이 오래도록 일궈 놓은 울타리의 안락함을 침범 당한 듯, 새로운 이들의 유입에 배타적으로 대하는 무리들은, 우리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삶에서는 꼭 인종이나 사회적 지위, 성 정체성 등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여러 이유가 만들어 낸 ‘차별’이 존재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그려놓은 허상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은 누군가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심판대 위에 올려진게 내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편견과 차별에서 오는 상처는 깊다.
그 상처를 더욱 곪아가게 하는 것은 침묵이 아닐까.
현재를 받아들이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만이 최선인 것일까.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써 이들이 겪은 사연들은 분명 갈길이 멀게 느껴지는 막막함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두를 끌어안는 ‘매티’가 있고, 다듬어지지 않은 공동체 속에서도 분투하며 소외된 구석에서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끌어 올리는 ‘키스와나’가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차별을 당하는 상처입은 ‘로레인’에게 말벗이 되어주던 ‘벤’과 같은 존재가 있었기에 현실의 좌절감에도 모든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열정과 베푸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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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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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외로움이 묻어나는 첫 문장이었다.

(P. 11) 그 기억의 편린들은 좀처럼 휘발되지 않을 것 같고, 어느덧 나의 일부분으로 스며든 듯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 어떤 순간들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남은 생을 고스란히 들여도 소거할 수 없는 얼룩을 남기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어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찰나의 순간에서 느낀 감정들을 섬세하게 풀어낸 문장들을 발견하면, 금세 내 삶에서 축적된 감정들과 맞닿아 보며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8편의 단편으로 엮인 이 책은 보통의 연애와 만남 그리고 일과 퇴사 같은 일상에서 분출되는 감정들을 담고 있다.


“ 뭐 그걸 꼭 겪어봐야 아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말들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 겪어봐야 안다. 큼직하게 나눈 카테고리 안에서의 예측 가능한 감정 말고, 촘촘하게, 굳이, 기어코,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그 사람의 연약한 감정 세포 하나하나를 어떻게 겪어보지 않고 다 알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그 섬세한 표현들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그 사람의 감정에 접근할 수 있었다.

(P. 98) 나는 손을 뻗어 낙하하는 빗방울을 쥐어보려고 했다. 추락의 궤적을 자꾸만 낚아채려고 했다. 쥔채로 입술 가까이 가져와 봤을 때에야 내가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실 나와 다른 부분들이 많았다.
모두가 뜯어 말리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삶을 위해 주저없이 퇴사를 하는 모험적인 사람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모든게 다 공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쿨럭’하고 나오는 기침을 가슴과 목의 날카로운 쓰라린 통증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갑갑했던 가슴 속을 긁어주는 시원함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 없다.

사랑의 관한 부분은 거의 동성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의 관한 부분은 개인의 존중되어야 할 자유의 몫으로 생각하기에 나에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에 가닿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보고 판단하기엔 광활한 우주 앞에 인간은 요만한 먼지일 뿐.

물론, 수용하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그 기다림이 무척이나 외로웠을 사람들의 ‘고민’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고, 불편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그 날의 계절들을 품은 문장들은 생생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좌절감을 느끼는 등장인물의 쓰린 감정들은,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P. 101)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옷깃에 인 보풀을 발견하고는 무십코 잡아당겼는데 그게 쭉 늘어나기만 하고 끊어지진 않아서 아이씨 뭔데, 하는 채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알 듯 말 듯 주변을 멤돌다 없어져 버리는 관심이나 위로 말고, 걱정이나 두려움에 싸여있는 어두컴컴한 방안에 있는 누군가가, 온기를 머금은 아늑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서로가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게 당연한 ‘보통의 일상’을 누릴 수 있길. 더이상, 특별하게만 비춰지는 사랑이 아닌,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가 있는 그저 평범의 사랑으로서만 비춰지며 자신이 택한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경험하지 못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경험해 보는 것 어떨까.

한 걸음 내디기가 참 어렵고, 매 순간 무너짐으로 시끄러운 속을 달래야만 했던 나와, 어떤이들이 마음의 고통을 나눠보며, 그 속에 갇혀 있는 막막함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로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심의 위로와 손길을 ‘사람’에게서 채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로 스스로에게 더 상처를 내고, 문을 닫아 버렸던 사람들이 한 손에 쏙 잡히는 작은 ‘책’으로부터 조금씩, 촘촘하게, 차곡차곡 구멍이 나 버린 마음을 채워 보는 것이 때론 충분한 온기를 얻게 된다는 걸.

이 또한 어느 정도의 현실이 받쳐줘야지만 가능하다는 불신의 마음으로 또 한번 낙심하더라도, 나와 닮은 인물과 내 마음을 닮은 구절에 생각지 못한 ‘치유’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걸.


어떤 간절함이 느껴지는 등장인물의 떨림과 주저, 깊게 내쉰 숨으로 가득 찬 방 안에 공기만으로도, 나는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어딘가 관심이 필요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아닌 척 해보이는 이별 뒤에 한 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떠올리는 그리움에서 살짝 ‘찌질미’를 느끼게 하는 모습들이 꽤 마음이 갔다. 그런데 만일 그 이별의 사유가 서로의 식은 사랑이 아닌 사회의 억압과 사람들의 시선에 의한 포기라면 좀 슬플 것 같다.

은은하게 속 터지게 하는 묘한 신경쓰임 대비 정작 본인은 나른해 보이기도 했던, 아니 그런 척 해 보였던 등장인물의 모습에는 ‘피식’ 웃기도 했다. 꼭 쓸쓸하고 헛헛함만이 아닌, 친근하면서도 익숙한 사람들의 관계 속 그 안에서 아직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을 저자의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이 책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을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한정된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새 삶을 살기 위해 과감히 퇴사를 하고 떠나버리기도 하고, 후회도 하고 헤매기도 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담은 걸로 보였으니까.


기억에 남는 문장들과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이미지들이 많지만, 특히 <고요한 열정>편에서 누나 ‘연수’가 많이 떠오른다.
상처를 입은 남동생 ‘연후’가 집을 떠난 뒤, 본인도 외로움과 통증이 있음에도 누나 ‘연수’는 동생을 찾으러 다닌다.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헤아려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던 존중의 마음이 참 뭉클했고 고마웠다.
외면하지 않아서 말이다.


생경한 계절의 풍경에서, 급한거 없이 느긋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지나가다 눈에 띈 상점에 진열된 여러가지 물건들에서 과거를 떠올리 듯, 사람의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조금은 쓸쓸했던, 그리고 공허함과 과거의 그 날들이 남긴 후회가 느껴지기도 했던 <우리는 같은 곳에서>였다.


(P. 154) 어째서 나 같은 삶에는 단 하나의 예시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들은 대체 어떠한 생을 견디다가 이렇다 할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나는 그들처럼 소거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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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 강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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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할안이 UN 총회를 통과 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를 받은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포했다.

나치의 학살을 겪은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나라가 없기 때문에, 유대인 국가 건립이 씨앗이 되어 그들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박해를 받는 고통 속에 유대민족주의 정체성을 위한 이스라엘 건국이 결과적으로는 팔레스타인과의 충돌,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적인 대립을 만들게 된다.

그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 등의 나라들이 만든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의 수도를 공격했지만 거듭 된 패배로 난민만 발생하는 비극을 낳고 만다.

팔레스타인 해방 문제를 알리는 방법으로 테러를 선택하는 무장단체 ‘PLO’를 시작으로 지금의 ‘하마스’까지, 이런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조직들의 행보가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 전쟁은 언제쯤에야 끝이 나는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갑갑한 마음에 최소한의 의미를 담아 책을 펼쳤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간의 갈등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인 ‘나크바(대재앙의 날)’ 전쟁이 벌어진 이후의 상황을 배경으로 1949년 8월 9일부터 8월 13일 닷새간 벌어진 일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군 소대장과 군대가 벌인 참혹함을 보여준다. 2부는 그로부터 25년 후, 어느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은 과거의 참혹함을 마주하도록 한다.


이집트와 경계선이 있는 남부지역에서 군인들은 진지를 설치하고 훈련과 군사작전을 전개한다. 그리고 순찰을 하면서 아랍인들을 색출하는 것 또한 그들이 하는 일이다.
1949년 8월 이글거리는 햇볓이 내리쬐는 어느 날, 아랍인들과 잠입자들의 움직임이 감지 됐다는 공군 소식통에 소대장과 병사들은 순찰을 하러 나간다.

모래는 먼지구름을 내며 이동하는 차를 따르고, 병사들은 소대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언덕과 언덕을 이동하며 순찰을 하던 중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멈췄던 차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 그 때,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랍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랍의 유목민 ‘베두인족’을 향한 총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색출의 완벽한 성공을 알리고, 그 무리 중 한 ‘소녀’를 자신들의 막사로 데려간다.

소녀가 ‘생존의 비극’을 얻게 된 순간이다.


25년후,

팔레스타인의 한 여성은 1부에서 다룬 소녀의 대한 기사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일과 우연히 일치하게 된 그 사건에 궁금증을 품게 된다. 결국 그 날의 범죄를 단죄할 단서를 찾기 위해 그녀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경계선을 넘는다. 무모하리만큼 위험한 여정이 예상되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쿵쾅대는 가슴으로 나 또한 그녀의 동선을 뒤쫓아갔다.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개가 그녀의 차를 향해 달려 들면서 짖어댄다. 앞날의 불행을 예견하는 듯한 징조들 때문에 침착함을 유지 하기가 힘들다. 무섭고 불안하다.


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알려지는 비극에 ‘저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뎌내고 살아갈까’하는 마음과 함께, 어느 순간 원래 전쟁통 속에 있는 나라, 복잡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멈춰있는 고통을 겪는 나라로 인식이 될 만큼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날의 지속은 점점 ‘무딘 감정’을 만드는게 현실이다.

당장에 눈 앞에 펼쳐진 내 나라 문제에 가려져 우리의 시선은 금세 일상으로 돌려지고, 저자는 이를 경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낸다.


온종일 굉음과 건물을 부수는 포격, 수류탄 소리 가득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끔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에서 알려주는 조각 조각의 기억들을 우리가 가슴에 담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 조각들이 결국 사소한 일처럼 묻혀지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사건들을 끊임없이 끄집어 내고, 더 선명하게 빛을 내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만드니까.


이 책 속에서 다뤄진 끔찍한 사건들만 조심히 도려내어 옮겨 놓고 들여다 보면, 각자의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어느 날의 일상들을 읊어 내려가는 듯하다. 현실의 상황과 대조적으로 보이는 그 감정들을 얇은 두께의 이 책에 담아내는 저자의 방식이 그 날의 사건들을 대하는, 이제는 무딘 감정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와 내 삶의 터전이 부서지고 내 가족들이 희생 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관한 이야기를 읽을때면 늘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뿐이기에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듯한 나의 감정들이, 시작은 ‘진심’을 담아 들여다봤어도 결국에는 ‘관심’으로만 끝나버린 듯한 원치 않는 칙잡함을 만들어 언제나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어째서 멈추지 않는 것인가?

강대국들이 개입되고 국제 사회 문제로 까지 번진지 오래된 이 갈등은 ‘종교’가 정치적 영역까지 침범하여 종교적 극단주의자들로 인해 ‘타협’이 안 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만 머물러 있다.
오히려 이 극단주의자들로 인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강경파들만 득세하게 만들었다. 공존하지 못 하고, 평화를 찾지 못 하고, 시민들은 죽어 나가고 있다.

이것이 현재 대부분 사람들의 시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억압은 민족, 종교, 성별의 대립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윤리적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사소한 일>은 저자의 그런 시각을 담고 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 해가 밝았다.
잠에서 깨면 일어날 것이고 일을 할 것이고 가족과 함께 할 것이고 TV를 볼 것이고 책을 읽을 것이고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을 바라 볼 것이고 잠에 들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는 아픔이, 피부에 느껴지는 폭격에 가까워짐이, 이 시간 어딘가에서 그들에게 하루의 시작을 알리며 기어코, 일상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도 한 줄기 빛을 바라는 절망감 섞인 희망을 품어 보면서 무연한 마음으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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