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비디오 볼 때가 좋았다. 비디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그 기분이 있다. 빼곡하게 꽂혀있던 비디오를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친구와 함께 고르는 동안의 그 시간이 좋았다.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생긴 비디오 가게는 그리 크지 않고 비디오도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대부분 있었다. 작은 곳이라 비디오 가게 주인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한다기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아저씨는 영화광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장 클로드 반담 팬이라서 그런지 반담 영화의 추천을 많이 했다. 장 클로드 반담 영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길 건너편에 대형 비디오 대여점이 생겼다. 동네 사람들부터 해서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전부 대형 비디오 대여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근데 나는 처음에 갔던 작은 비디오 가게를 계속 갔다. 큰 이유는 없고 귀찮아서 갔던 비디오 가게를 계속 갔다. 나는 이상하게도 연어 같은 회귀성 본능이 강한지 한 번 갔던 곳에 계속 가고, 늘 다니던 길로 다니고 가던 식당에 늘 간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처음 생긴 작은 비디오 가게를 계속 갔다. 작은 비디오 가게는 맞은편에 생긴 대형 비디오 대여점 때문에 망할 판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대형 비디오 대여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 폐점을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처음에 생긴 작은 비디오 가게로 사람들이 다시 몰렸다. 친구와 함께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골랐다. 그런데 나는 반값이었다. 친구가 왜 자신은 반값이 아니냐고 물었다. 주인은 나를 베스트 회원으로 등록시켜 놓았다. 베스트 회원은 반값이라고 했다.

나의 고집스러운 습성이나 습관이 나를 공격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롭게 하는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로 그런 경우가 지금까지 꽤 있었다. 빵집도 45년이 된 오래된 빵집에서 빵을 자주 사는데 단골이라고 주인이 생각하면 가격도 깎아주고, 빵도 하나씩 더 넣어준다. 처음 생각한 대로 해주길 바란다. 처음에 생각한 그 선택이 올바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평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던 처음에 선택한 대로 선고를 해주기를 헌제에게 간절하게 바란다. 숱한 고학력의 바보들을 봤지만, 헌제는 그러지 말자.

어린 시절의 비디오 가게가 있던 동네의 골목이 며칠 전에 사라졌다. 재미있는 건 딱 한 집은 회수하는 데 실패해서 그 집만 빼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이 집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 일대가 전부 이런 집들로 빼곡했는데 몇 년 동안 전부 허물고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이 집만은 그냥 이대로 살래요, 같은 분위기로 버텼다. 이 동네의 오래된 집들은 5억씩 받고 철거가 되었다고 한다. 5억이면 적은 돈은 아니나 5억만 가지고 또 어딘가로 훌쩍 가서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구획정리하에 다 떠나고 이 동네는 아파트 기초 공사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집은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오랫동안 살고 계시다가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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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노트북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얼리어답터 그런 건 아닌데 주위에서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신기하게 보곤 했다.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하려는 건 아니고 그저 워드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생각이 나면 무조건 메모를 했다. 길을 걷다가 요즘처럼 폰으로 메모를 하는 게 아니라 벽에 대고 수첩에 메모했다. 대출 회사에서 주는 메모지도 모아서 거기에 메모를 빽빽하게 했었다. 정말 활자 중독이었다. 글을 적는 사람은 알겠지만, 활자가 주는 편안함, 충만감 그런 게 있다. 글을 적고 있으면 행복한 거지. 그렇게 나를 거쳐 간 수첩이 수십 권이었다. 

그러다가 주머니에 들어가는 노트북을 사용했는데, 들고 다니면서 꺼내서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불편했다. 컴퓨터라 로그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터치는 아닌데 옆의 검은 부분을 엄지로 이렇게 움직이면 마우스가 움직였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나왔다. 신세계였다. 무엇보다 메모장이라는, 나에게는 아주 마음에 드는 어플이 있었다. 스마트폰은 바로 켜졌다. 카페에서, 거리에서, 벤치에서 어디서든 메모를 할 수 있었다. 걷다가, 누워서, 영화를 보다가도 메모를 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이전에는 책상과 불빛이 있어야만 글을 쓰는 게 가능했었는데 이제 그 무엇도 필요 없다. 

나에게는 블랙베리도 있었는데 오직 글 때문에 구입했었다. 블랙베리는 자판이 있어서 손에 익으면 폰을 쳐다보지 않아도 메모를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떠오르는 글이 있다면 밑으로 내려서 화면을 보지 않고 자판을 꾹꾹 눌러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정말 지치지 않고 매일 일정량의 글을 적었다. 지금도 지치지 않고 매일 메모를 하고, 소설을 쓰고, 글을 적고 있다. 지치지 않는다. 이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데 석 달 동안 매일 글을 적는 게 힘들다. 윤석열이 때문에, 검사들 때문에, 지금은 헌제 때문에 힘들다. 어제는 검사들이 또 기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제 좀 편안하게 글을 쓰고 싶다. 모든 신경이 헌제에 쏠려 있어서 이야기를 적다가도 나도 모르게 헌제 이 새끼들이, 같은 글을 적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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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갈수록 미래인도 나오고 초능력자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 능력이라는 게 대단한데 대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어야 하는데 이상능력인들이 나타나자 꿍하다.

따지고 보면 세 능력자 중에 외계인의 피를 이어받은 타카하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발표했을 때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던 세 명의 소꿉친구들이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능력자들에게는 스고이 같은 반응이라 약간 삐진다.

미래인도 50년 후의 이 동네에 살던 무라카미가 한 터널을 통과해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고, 초능력인은 손을 대면 컴퓨터 데이터를 삭제되거나 전기를 끊는 정도다. 그러면서 호텔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지키기 위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어쩔 씨구리 타카하시의 비밀을 알아간다.

그 과정을 보는 게 재미있다. 능력자들의 능력보다는 모든 캐릭터들의 대화와 표정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다. 바카리즘의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등장해서 더 재미있다. 일본의 잘 나가는 20대 초반의 배우들이 나오지 않는 게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전부 중견배우들로 연기에 푹 빠질 수 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계약서를 훔치기 위해 밤에 전부 모여 건물로 간다. 타카하시는 사람들의 응원 속에 건물 속으로 홀로 들어가고 그 모습을 본 후 사람들은 차 안에서 사 온 과자를 뜯으며 즐겁게 나눠 먹는다. 웃기고 너무 재미있다.

호텔이 없어져도 다른 사람들은 호텔 사장이 가지고 있는 리조트에 재취업으로 아무렇지 않은데 타카하시는 목욕을 하지 않으면 능력 사용 후 몸의 회생불가 때문에 모두가 계약서를 훔치는 것에 동참한다.

암튼 재미있다. 와하하 하는 웃음은 아닌데 큭큭하며 웃음이 피식피식 나오는 그런 시리즈다. 요즘은 드라마가 다들 재미있네. 협상의 기술도 그렇고, 리처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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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집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이기에 나만의 방법으로, 나만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또 인간이다. 인간이란 그래서 참 알 수 없다. 집에 십일만 있으라고 하면 지겹고 심심하기만 하다. 좀이 쑤셔 미칠 것만 같다. 아무리 집이 좋아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집이란 악착같이 들어가고 싶은 곳인 동시에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한, 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소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어딘가 여행을 갈 때는 집으로 간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도착지의 숙소가 자신이 지내는 집에 가까운 형태를 띤 장소를 말한다. 호텔이나 모텔 같은 박스형 숙소에서 벗어난 곳을 찾아서 간다. 내가 지내는 집처럼 생긴 구조물에서 숙박하려고 애를 쓴다. 여행하다 보면 집이 또 그리워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의 느낌과 기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장소라 사람의 손때가 타고 들숨과 날숨이 오고 가야 깨끗하게 유지가 된다. 며칠 비워두고 여행을 다녀오면 먼지가 쌓이고, 한 달 이상 비워두면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형태를 가진 어떤 물품이든 가만두면 더 오래가고 깨끗한데 집은 그 반대다.


집이란 무엇일까. 집은 우리에게 너무 힘들면 요만큼 기운을 내봐,라고 한다. 절대 이만큼 힘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들어오면 수고했다며 편하게 잠들라고 한다. 나에게 집은 그런 의미다. 집은 내 아버지의 등이자 엄마의 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되면 비록 떠나야 하지만 돌아오면 좋은 느낌이 집이다.

멍하게 있는 걸 좋아하는 난 (오래된 집 의) 벽 뷰 또한 좋아한다. 눈앞에 벽이 있으면 앞이 꽉 막혀 답답하다고 하는데 나는 벽을 쳐다보고 있는 게 좋다. 불멍, 바다멍보다 벽멍이다. 벽은 갑갑할지 모르나 벽이 없다면 나 같은 소심한 자는 불안하다. 벽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벽이 없으면 기댈 수도 없어서 더더욱 불안하다. 사람들은 벽은 썩 유쾌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벽이 없다면 세상은 끔찍할 것이다. 그런 안전한 벽, 우리의 벽, 민주주의 벽을 주말에는 더 크고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살면서 이토록 간절하게 기다려 본 적이 있었는가. 극우들이 겁을 잔뜩 집어먹을 수 있는 우리의 거대한 벽을 세워 헌제에게 보여줘야 한다. 의식의 벽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날 수 있게. 이젠 집으로 가고 싶다. 

의식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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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잊기 위해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오늘도 날이 어제와 비슷합니다. 3월인데 추위가 봄이 오는 게 싫어 해를 먹어 버리고 날을 흐리고 스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온도의 경계가 있고, 계절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더불어 뿌연 먼지 역시 가득합니다. 불안한 오늘은 견뎌내고 덜 불안한 내일을 바라지만 눈을 뜨고 나면 내일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나는 그런 오래된 세계에서 나날이 변하는 바다의 날씨를 느끼며 날짜변경선 위에 올라서서 위태롭게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여기서 보면 날씨라는 건 사람의 마음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같은 날이 없고 변덕도 심합니다. 이거다 싶으면 어느새 모습을 바꿔버리고 심술을 부리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울어버리고 예상치 못하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도 변덕 심한 날씨 덕분에 바다에 나오면 매일 달라지는 사색을 할 수 있어서 나쁘지는 않습니다. 가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닷가를 걸을 때가 있습니다. 비가 오고 난 다음, 화가 났던 모래가 기운이 빠졌을 때 모래 알갱이들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가 감싸는 느낌이 좋거든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 이불에 비빌 때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바닷가에서는 신발을 들고 맨발로 걸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두고 온 기억하나를 떠올리기 위해 맨발로 바다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임계점의 선을 넘어가면 밤은 눈처럼 내립니다. 의식의 뒤편으로 달의 어두운 부분처럼 밤은 그렇게 눈처럼 내려와서 고독이라는 이불이 되어 몸을 덮어 줍니다. 얼굴만 빼고 이불을 덮고 있으면 너무 따뜻해서 외로움이 식은땀처럼 흘러내립니다. 옆에 있는 이와 포개짐으로도 그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시간의 그리움도 달래지 못해 이렇게 초조함을 덧입힙니다. 이번 주는 이 불안한 오늘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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