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진짜로 믿는 망상주의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스티븐 킹의 일화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당시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사건의 시작은 프린스턴에 살고 있는 앤 힐트너라는 여성이 스티븐 킹을 고소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저리라는 소설은 원래 제가 쓴 작품입니다. 거의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제가 쓴 그대로예요. 최소한으로 잡아도 90퍼센트는 그렇습니다. 그 남자가 저희 집에 들어와서 원고를 훔쳐 간 거예요] 그 주장에 킹의 고문 변호사 아더 그린은 앤 힐트너의 이야기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엉터리라고 단언했다.

그녀는 10년 동안 킹에게 말 같지 않은 편지를 보낸 작가 지망생인데, 그런 사람을 진지하게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앤 힐트너라는 여성은 스티븐 킹이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그녀의 집에 여러 번 침입해서,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이 쓴 원고를 훔쳐 간 후, 그의 작품 속에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여러 번 항의했지만, 특히 이번에 나온 [미저리]는 뻔뻔스럽게도 거의 자신의 작품을 그대로 베낀 거라서, 방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책의 판매액과 영화화로 벌어들인 수입을 양도하고, 즉시 서점에서 책들을 회수하라고 했다.

힐트너는 소설에 등장하는 정신 이상자지인 애니 윌크스는 자기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나는 스티븐 킹의 책 같은 데에 등장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주장했다. 힐트너는 자신이 스티븐 킹에게 협박장을 쓴 건 부인하면서

[나는 그 남자에게 엽서를 네 장 보냈을 뿐이에요. 킹은 나에게 한 번 편지를 보냈는데, 정신과 의사에게 가보라고 적혀 있더군요]라고 말했다. 기사 옆에는 푹신해 보이는 모피 코트를 입고, 털모자를 쓰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앤 힐트너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앤 힐트너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보통 여자였다. 그것뿐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머리가 좀 이상한 아줌마]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건은 그다음에 좀 이상하게 전개된다. 며칠 후인 4월 26일 새벽 여섯 시에, 메인 주에 있는 킹의 빅토리아풍 저택에 에릭 킨이라는 스물여섯 살의 남자가 침입했다. 그때 킹은 없고 그의 아내인 타비터 밖에 없었는데, 킨은 그녀에게 자기 배낭 안에는 폭탄이 들어 있다고 했다.

킹의 아내는 그대로 집에서 뛰쳐나와 이웃집에 도움을 청했다. 달려온 경찰은 다락방에서 칩입자인 킨을 발견, 경찰견과 함께 쫓아가서 킨을 체포했다. 결국 배낭 안의 폭탄은 가짜였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그는 스티븐 킹이 뉴저지에 사는 자신의 고모가 쓴 원고를 불법으로 훔친 뒤, 그것을 도용해서 [미저리]를 쓴 사실을 규탄하기 위해 가짜 폭탄을 집에 장치하고 위협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킨이라는 젊은이가 프린스턴에 사는 앤 힐트너의 조카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킨과 앤 힐트너는 전혀 모르는 사이다. [트랜턴 타임스] 신문에서는 플로리다에 사는 앤 힐트너의 작은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는데,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친척 중에는 그런 이름이 없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앤 힐트너는 이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폭탄 소동은 스티븐 킹이 조작한 연극이에요, 내겐 에릭 킨이라는 친척은 없어요. 킹이 자기 선전을 위해서 꾸민 게 틀림없다구요. 그 남자는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인간이니까요. 킹은 머리도 나쁘고 생각이 짧은 남자예요. 그런 놈은 앞으로도 계속 남의 글을 있는 대로 훔쳐다 써먹겠지요]

침입범인 에릭 킨은 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 킹의 소설인 [미저리]는 자기 고모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진 거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미저리]의 속편을 써서 킹의 도움을 얻어 출판하려고 했는데, 그 교섭이 잘되지 않았던 것이다.

앤 힐트너는 며칠 후 킹에 대한 고소를 스스로 취하했다. 그녀는 공정한 판정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고소를 취하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로부터 사흘 후에 똑같은 고소장을 법원에 다시 제출했다. 앤 힐트너 같은 사람에게 잘못 걸리면 무슨 말을 들을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편집광적인 집요함이 있으니까, 뭔가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본인은 자기가 옳다고 굳게 믿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확신을 갖고 말하니까, 앞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대로 믿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거짓을 진실로 믿고 편집광적으로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바로 민경욱 같은 극우주의자들이다. 절대 굽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부정선거에 대해서 믿어 버릴 수 있다. 무서운 일이다.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파고 시리즈 5에 잘 나온다. 존 햄이 빌런의 최고 수장으로 나오고 조 키어리가 극우주의자로 나온다. 주노 템플의 작은 몸집으로 이들에게 맞선다. 그녀의 뒤를 제니퍼 제이슨 리가 받쳐준다. 아주 재미있다.


극단으로 치닫은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정부에게도 총을 들고 대항한다. 이 시리즈의 재미있는 점은 주노 템플의 남편이 기아 자동차 판매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거짓을 진실로 믿는 극우집단을 그냥 두면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게 있다. 그게 진실이라면 진실이고 사실이다. 스티븐 킹과 앤 힐트너의 일화는 하루키 에세이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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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수동기어 차를 몰고 다니는데

오늘은 기어가 마치 뜨거운 칼로

버터를 자르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비가 그치고 밤새 내린 비 비린내가 가득한,

꿉꿉하고도 축축한 유월의 막바지다.

이런 날에는 아무것도 하기 않거나,

땀을 미칠 듯이 흘리면서 조깅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흩날리는 비가 죽죽 내리는 비보다

더 사람을 찝찝하게 젖게 하는 것처럼,

이런 날 움직이면 더워서 땀이 나는데

흐르는 땀이 아니라 더 짜증이 난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수박을 먹으며,

대야에 물을 받아서 발을 담그고,

큭큭 거리며 소설이나 읽고 싶은,

그런 날, 그런 나.



책을 넘기는 듯한 마음으로 https://youtu.be/_KmCy56WvjY?si=6Friw94VNhPMy5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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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밥을 한술 떠 눈물에 말아먹었더니 심장이 심한 기침을 한다 너를 은유로써 간직하고 싶지만 너는 너무도 구체적이다 고양이의 폭신한 발바닥 같은 너의 은유는 구체적이어서 쉽게 허물어진다

수고스러움을 버려가며 나는 너의 기억 속으로 허물을 벗고 들어간다 그곳에는 추억보다 고통이 많지만 나는 술이 되어 사람인지도 사랑인지도 모르고 가랑이를 찾는다

너는 나의 메타포라 나는 보이지 않는 헛된 것들을 버리려 태양과 맞서면서 내 몸에서 나는 진실의 냄새를 맡게 되었다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난다 나에게 너라는 절망의 냄새가 나고 나에게 너를 잃은 허무의 냄새가 난다 나에게 너가 떠난 소멸의 냄새가 진동을 하고 너를 놓쳐버린 눈이 타들어가는 검은 냄새가 코를 녹인다 그리하여 나는 살기 싫어 죽기로 결심했지만 죽음의 자리는 꽉 차 있기만 하다

떠나가라 가버려라 나는 그저 너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너의 사랑이 되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 죽기보다 너를 위해 살기로 했다 어떻게든 살자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자 너를 떠올리며 눈물에 밥을 말아먹을수록 내 심장은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다

나쁜 사랑아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은 것이다 나쁜 사람아 나는 단지 너를 보고 싶으니 분쇄기에 내 육체를 넣어 갈아다오 그리하여 수만 개의 점이 되면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지는 유월에 하늘로 올려다오 저 먼 하늘의 끝에서 너를 지켜줄 수 있게 가끔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이 심하게 울면 내가 너를 떠올린다고 생각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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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 이상은 노래가 나온다. 이상은이 부르는 [삶은 여행]은 깊이 있는 노래다.

이 정도의 노래를 만들려면 부딪치지 않고서, 경험 없이는 가사를 만들 수 없다.

좌절을 맛보고 절망을 벌리고 들어가서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희망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가사다.


삶은 여행과 삶은 계란의 [삶]이라는 글자는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삶]이라는 명사와 [삶다]라는 동사는 비슷한데 다르다.

따지고 보면 [삶]과 [삶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익어가면서 영글어 가는 명확함이 있다.


그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하고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명확함의 관념은 달라진다.

그 공백 속에는 [기반]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보통 [기반을 잡는다]라는 말을 한다.

기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반이라는 단어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면 기반이란

기. 본. 반. 찬.이라는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매일 기본 반찬을 챙겨 먹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 끝나는 [삶은 여행]을 계속 듣고 있으면 조금 불안하다.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두려움이 따라붙는 것처럼 행복 속에 싹트는 껄끄러운 불안이 고개를 든다.


늘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한 게 나은 삶일까,

썩 행복하지 않다가 한 번 행복해지는 것이 나은 삶일까.


삶이란 인간의 긴 여행이고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난다.

소중한 널 잃는 게 두려워서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 만은 않다.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도 없다.

하지만 노래처럼 이젠 알 수 있을 때가 온다.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는 걸.


‘삶’이라는 단어를 떨어트려 놓으면 ‘사람’이 된다.

사람의 ‘ㅁ’과 ‘ㅁ’이 만나면 부딪혀 깎이고 깎여

시간이 흘러 ‘ㅁ’이 ‘ㅇ‘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랑'이 된다.



https://youtu.be/jeOg6SeGcVg?si=gfh3GM9YzHeDJa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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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일.

이 모든 중요한 일들을 위해

항상 충전을 해 놓는다.

충전이 충분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든다.

충전이 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불안에서 조금 멀어진다.

주위를 보면 어디서든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무장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기들을 충전하는 일에만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닐까.

정작 본인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닳고 닳아 없어지는데 알아채지 못하는 건 아닐까.

정말 충전이 필요한 건 내 몸,

내 정신이 아닐까.

밤새도록 충전한 휴대폰 에너지가

꽉 차지 않아서 불안했던

나에게 충전을 하자.

아톰처럼 코드를 꼽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하루 한두 시간은

폰과 노트북을 멀리 두고,

나의 여기를 시로 충분한 충전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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