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디자인 학원에서 알게 되었다. 둘 다 말이 별로 없어서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학원에서 주말에 야유회를 가게 되면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형은 나보다 두 살 많았다. 형은 재즈를 늘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형과 이야기를 하면 정말 재즈를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재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조용하던 형은 많은 말을 했다. 보통 그런 형의 말을 사람들은 잘 들어주지 않았고, 형도 재즈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형이 이야기해 주는 재즈는 그렇게 밝은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주로 흑인들이 많은 재즈 연주가들은 인종차별을 심하게 받았다.

차별.

차별에 대해서 형은 많이 이야기했다. 마일즈는 자신이 백인 우위 사회에서 얼마나 학대당하고 고통받아 왔는지를 소리 높여 절실하게 말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착취당하고 차별받아 왔는지를. 그리고 마일즈나 밍거스, 맥스 로치 같은 당대의 뛰어난 재즈 음악가들은 모두 인종 차별과 열심히 싸워 왔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그들은 처해 있었다. 사회구조 자체가 그들을 포함시켜 주지 않는 세계에서, 그들은 자기를 주장하고 그 음악을 심화시켜 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분노와 슬픔과 기쁨 하나하나가 마일즈의 손바닥에서 넘쳐흐르듯이 절실히 전해지는 게 재즈다. 형은 재즈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고 그 이면의 세계를 들었다.

재즈의 아픔, 고통, 통증을 느꼈다. 형도 항상 어두웠다. 그렇지만 나에게 재즈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번은 형이 집으로 초대를 했다. 컬렉션을 보여주고 제대로 된 마일즈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형의 집은 바닷가에 있었다. 횟집을 했다. 컬렉션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횟집 가게 안 벽면에 가득 있었다. 벽면 옆에는 손님들이 즐길 노래방 기기가 붙어 있었다. 창문으로 바다가 보이는 그런 횟집이었다.

재즈 컬렉션과 횟집은 어디를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날 나는 형과 횟집 바닥에 누워 재즈를, 마일즈를 들었다. 형은 며칠 학원을 나오지 않더니 부고 소식이 들렸다. 무차별만큼 무서운 게 차별이었다.


Miles Davis Quintet - It Never Entered My Mind https://youtu.be/-Np8PJDGq_A?si=J1u4NMpbNHze7T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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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성애자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등장한다. 이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때 군국주의자 거나 혐한이라는 소문이 났었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평화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아베를 비판했다.


어렸을 때 난 일본이 싫었다, 전쟁을 통해 가족이 돈을 벌었고 전쟁을 통해 일본이 잘못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됐기 때문이다, 역사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일본이 청산을 해야 했다, 하시모토의 말로 그 문제가 또다시 오르내리는데 굉장히 굴욕적이다, 일본은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하루키의 장편 소설에도 여러 군데 나와 있다. 양. 쫓. 모에서 양박사의 머리로 들어간 양은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일본은 역사적으로 주위를 배척하는 분위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하야오의 작품에는 비행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런 비행기 작화 때문인지 군군주의자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밑에서 처음으로 작화를 시작한 안노 히데야키 둘 다 모두 예전에 한국 업체의 품질 문제로 혐한 아니냐는 오해를 받은 일이 있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센과 치히로 이후부터는 한국 업체에 아주 만족하고 있고 나디아 같은 경우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중간에 감독을 했던 히구치 신지의 말로는 설과는 반대로 오히려 한국에서 열심히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에반게리온 역시 코믹스(만화)를 제외하고 티브이판과 구 극장판은 제작위원회가 수익을 다 가져간다고 한다. 출판사, 방송국, 음반사, 피규어 회사, 게임회사로 수익이 분배된다. 제작비 외에는 지속적으로 제작진에게 수익에 따른 자본이 지급되지 않는다.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1100만 달러 정도인데 에반게리온의 가장 큰 돈줄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파칭고가 70% 이상으로 가장 높다. 이 파칭코 가게의 80%가 재일 동포 소유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을 지원했던 회사 가이낙스의 총괄이사인 타케다 야스히로도 재일 동포다. 한국이름으로 윤강광이다. 에반게리온의 작화 감독인 스즈키 슌지는, 일한국교단절이라든가 도항금지가 되면 거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종료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 의존도는 한국이 최고다, 개인적으로 한국인 애니메이터 능숙한 사람을 몇 명이나 알고 있고 자극도 받는다, 일러스트 분야에서 많은 인재들이 나오고 있다,라고 했다.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을 보면 외국 업체 중 한국 업체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반게리온이 한국과 등을 지면 제작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한다.


아키라, 은하철도 999, 캡틴 하록, 캔디, 마크로스, 나디아 등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한국 외주 50%가 넘는다. 그러니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과 공생관계에 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또는 미국이나 제3 국가나 예술가들은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있다.


잘못된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거짓 뉴스를 내보내는 사람들은 작품을 보지 않았거나 그저 만화?라고 해서 깔보는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는 반전주의자다. 전쟁은 되도록 참혹하게 묘사해야 한다, 그래야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 어린이라고 총알이 피해가진 않는다,라고 했다. 그래서 요시유키의 작품을 보면 어린이고 여자고 임산부도 전쟁에서 가차 없이 죽는다. 그런 스토리를 모르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인간들이 부쩍 많아졌다. 콧물 흘러내리듯 여기저기 막 말로 댓글을 장식하고 있다.


‘바람이 분다’에서 지로의 목소리를 연기한 사람이 안노 히데야키 감독이다. 그래서 뭐라고 해야 할까, 세상에는 건물이나 정치인보다는 예술가들이 많아져야 하고 문화가 크고 높아져야 한다.


바람이 분다 예고편 https://youtu.be/KmIn0XjaWAQ?si=7X2cTKMFZIgBqX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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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빵집에서 인기가 좋은 소라빵을 운 좋게 건졌다. 소라빵을 먹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소라빵은 추억의 맛이다. 그래서 맛있다. 한 입 먹는 순간 오래전 공백 속으로 잠시 들어간다. 그 공백에는 질감이 있다. 느껴지는 질감 속에서 일종의 부유감을 느낀다. 나는 이내 작은 부표가 되어 공백 속을 유동한다. 이리저리 부유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소라빵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빵집에서 구입했다. 빵집이 한 40년은 됐다. 오래된 빵집이 있는 건물은 건물로서 기능은 잃어버리고 [실패]라는 낙인 하에 비참해 보였다. 그러나 빵집만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할머니, 할아버지 주인이 열심히 빵을 굽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발전했지만 빵집 건물과의 부조화가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빵집으로 들어가면 아주 작은 공간이 나온다. 빵집 정문, 천장과 벽면 사이에 티브이가 이질감 돋게 설치되어 있고 소리는 죽어있다. 기분 좋은 침묵이 빵에 가득 스며있다. 저녁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래전 살던 동네의 빵집에 들러 운이 좋으면 소라빵을 구입할 수 있다. 빵집의 총면적이 2평 정도다. 저녁이면 선반 위는 거의 비어 있고 인기가 떨어진 빵들이 남아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늦은 저녁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빵들은 애처로워 보인다. 멋지게 태어났지만 남은 빵들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빵집에 들어가면 제빵실에서 늘 비슷한 톤과 늘 비슷한 옷차림과 늘 비슷한 표정의 할머니 주인이 나와서 반겨준다. 오늘도 운동 중이신가? 이렇게나 더운 날에도 대단하시네, 같은 인사를 건넨다. 다리는 계절과 나이에 관계없이 열심히 움직여줘야 해,라며 가끔 철학적인 말도 하신다.


주인 할머니는 언제나 비슷한 모습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모습을 부여받은 것처럼. 안경을 썼고 느릿하지만 목소리 그 어디에도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요만큼의 증오도 묻어있지 않다. 인간은 참 사소한 것에서 큰 무엇인가를 얻거나 느낀다는데 그런가?



Summer Fiction https://youtu.be/dIVuNaw1HFM?si=bqni592sAOoHeT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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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필모 중에서 가장 한 소리를 여러 곳에서 듣는 영화다. 거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거에 매몰된 징징거림이 많다고 하는 이도 있고, 평론가들은 이 영화는 피해자를 가장한 가해자의 코스프레 같은 영화라 일컫는다.

이 영화는 원폭피해를 다루고 있다. 그 사건을 겪지 못한 손자손녀들이 할머니의 집에서 그 사건을 직접 겪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원폭이 떨어진 곳들을 다니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1990년 여름, 원폭이 떨어진 나가사키에 사는 할머니 댁에 여름방학을 맞이해 손주들이 놀러 온다. 할머니는 손주들이 와서 마냥 기쁘다. 음식도 해주는데 손주들 입에는 맞지 않다.

그리고 손주들이 하와이에 사는 친척이 미국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클락(리처드 기어)이 찾아올 것이라는 편지를 받는다. 할머니의 기억 속 원폭의 모습은 마치 섬광 속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그려면서 손주들에게 45년 8월 9일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클라크가 할머니를 찾아온다. 클라크를 호텔로 데리고 가려는 어른들에게 클라크는 고모부가(원폭피해로 죽은 할머니의 남편) 돌아가신 곳에 먼저 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인으로 할머니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한다. 삼광이 터졌던 그 산과 산 사이의 달을 배경으로 두고 사과가 이루어진다. 할머니는 그 사과를 받아들인다. 손주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45년 그때처럼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자 할머니는 그 당시의 원폭이 떨어질 때로 되돌아간다. 나가사키에서 도망치듯 푸르른 비바람을 뚫고 달린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감독이 힘이 달리는 가운데 만들어서 인지 다른 작품에 비해 좋은 평은 없다. 그러나 주인공 할머니의 대사에서 처럼 전쟁은 일본사람도, 미국사람도 전부 죽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전쟁의 피해 뒤에 숨어서 아무렇지 않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그저 일반 시민, 국민뿐이다.

지금 전쟁 중인 나라들을 보라. 네타냐후 같은 지도자는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만약 윤석열의 바람대로 북한과 전쟁이 터졌을 때 피해를 보고 길거리로 나가게 되는 건 그저 일반 국민일 뿐이다.

원폭은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굉장한 악몽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일본인, 그 후의 세대에게는(손주들) 지나간 일,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일 뿐이다. 내 가족이 죽어 없어져도 인간은 일 년 뒤 오늘은 잘 지내고 있다.

할머니의 무의식에는 원폭 섬광의 악몽이 너무나 커 폭풍 속에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기억 속의 자아가 되어 무서운 향수에 젖어 들어간다.

이 영화에 돌입할 때에는 이미 구로사와 시스템을 갖추었던 스텝들이 다 떠난 상태였다. 홀로 남겨진 거장의 안타까운 몸부림 속 고독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평화를 위해 언제나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개소리라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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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조깅을 한지도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2018년도인가? 그 해에는 이틀을 제외하고 밖으로 나가서 열심히 달렸더라.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나가고, 엄청난 추위의 겨울날에는 몇 겹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내가 달리는 걸 보고 살을 빼고자 몇 명이 붙어서 달렸다가 다 포기하고 나갔다.

대체로 이유는 하나로 모아지는데 몇 달 달리는 것으로 20년 이상 방치한 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다. 일 년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꾸준하게 달리고 그 뒤에는 조금 생각을 하며 달려야 한다. 생각을 좀 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코스나 운동화나 시간 같은 것들이 측정이 된다.

내가 매일 조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잠을 자는데 달리는 것도 매일 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깅을 하면서 휴대폰은 두 대를 주웠고, 돈도 삼만 원을 주웠다. 돈은 현금이라 그냥 내가 써 버렸다. 과자도 뜯지 않은 채 여러 봉 주운 적도 있고, 지갑도 주웠다. 지갑과 휴대폰은 경찰서에 갖다 줬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를 작성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날은 요즘 같은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날이다. 이런 날 달리는 걸 좋아한다.

데드포인트까지 도달할 수 있다. 평소에 어떤 한계나 극한을 경험하니까 좋다. 마지막 코스에는 오르막길을 넣어서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오는데, 그 고통이 기분이 좋다.

요즘 같은 날은 아무튼 조심해야 한다. 지난번에도 한 번 썼는데, 코로나 시기에 폭염으로 인해 재난문자가 오는 날이었다. 해가 있는 시간에는 야외 활동을 삼가라고 하는 날이라 조깅을 하러 나갔다.

잘 달리고 있는데 내 앞에서 한 사십 대 남성이 픽 쓰러졌다. 하필 내 앞에서. 내 뒤에서 쓰러졌다면 그냥 갔을 텐데 내 앞에서 쓰러지는 바람에 당황했다.

온열질환으로 탈수증 같았다. 그늘로 옮긴 다음에 응급처치 그거 대충 하고 119를 불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주위에 구경꾼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나는 가보라고 했지만 구경꾼들은 어떡해,라며 조금씩 조금씩 모여들었다.

쓰러진 곳과 119가 오는 도로가 좀 떨어져 있어서 그곳까지 가서 또 119 대원들을 데리고 왔다. 코로나 시기라 소방복 위에 감염복인가? 그것까지 입고. 보는 것만으로도 덥다 더워. 아무튼 더운 날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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