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소감
그들은 여행 중이었다 200자 원고지에다 글을 쓰던 시절의 사람들,
신춘문예 당선 소감의 그들은 무작정 길을 떠났고 그렇게 길 위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여행을 상상했다
기차에는 홍익회의 카트가 시시때때로 오가며 구운 계란과 오징어,
그리고 밀감을 팔았을 것이다 12월이었으니까, 성탄절 즈음이겠지
지난주에는 유리막대가 주르륵 세워져 있는데, 하나가 깨지는 꿈을
꿨다 재수없는 꿈이군 오늘 하루는 조심해야겠어 다행히 하루 종일
별일이 없었다 시시하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는 식기 건조기에
차곡차곡 포개어 놓는다 이걸로 끝이야 아무 일도 없는 하루
삐익삐익, 건조기의 20분은 눈썹이 되어 떨어지고 뚜껑을 여는 순간,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는 싸구려 머그컵이 바닥에 조각조각 삼켜지고
아, 그랬군, 그런 거였어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깨어진 유리 막대의
꿈이 완벽히 실행되었으니까 부엌 바닥은 진창이 되어 내 발은 한없이
가라앉고 나의 여행은 안온하게 실패한다 이제 홍익회의 카트는
더이상 운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세월이
원고지가 아닌 컴퓨터의 키보드 자판으로 환원될 때, 나는 응답하지
않는 자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쓰지도 않은 200자 원고지는
아직도 책꽂이에 한 무더기가 있다 베란다에 들어온 도둑 고양이가
새끼를 두 마리 낳고는 사라졌다 나는 새끼 고양이들이 부담스럽다
베란다에서 내어던지면 고양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꿈에서 깼다 고양이의 척추는 매우 유연하므로 살아날 것이다
내가 무자비하게 세상에 내던지는 나의 글들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