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한국 문화가 가부장적이라고 하지만 러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미투’ 확산에 대한 반응이 그 증거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 비서나 부하 직원에게 부적절한 제안을 하거나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은 법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남녀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이렇게 수용한다. 오히려 이런 사건이 공개되면 여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비서로 취직했을 때 뭘 기대했나? 비서가 그런 거지 뭐.”, “어린아이도 아니고 남자 상사가 그럴 몰랐나?”, “이런 게 싫었으면 남자가 없는 직장에 들어가든가.”, “거부를 제대로 안 했으니까 그렇지.” 이게 러시아 사회의 분위기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때도 반응이 똑같았다. “클린턴, 그래도 남자구만.” 이 정도였다. 이런 일로 대통령을 탄핵한다면서 미국을 비웃었다.

여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에서는 성 상품화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남자가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 스캔들이 터지면 둘이 눈이 맞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니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은 러시아에서 보면 그냥 해프닝 정도에 불과하다.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짓거리하고 있네.” 이런 평가를 내린다. 그들을 조롱하면서 ‘쟤네들보다는 우리가 더 좋은 나라’라고 정신 승리를 한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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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소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가혹했다. 아니 여성에게 오히려 더 가혹했다고 하는 게 맞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스템은 바뀌었다. 문화적으로 가부장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올라갔고, 정치적 권리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녹아 있지 않았다. 소련 시절 여성들은 국가에서 원하는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상관없었다. 남자와 똑같이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남자들도 힘들다고 꺼리는 일을 똑같은 할당량을 받아 몸을 갈아가며 해치우고 집에 와서는 또 집안일을 해야 했다.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사회적 배려가 실제로는 배려가 아니었다. 가부장제 문화는 그대로 둔 채 바뀐 시스템에서 여성들의 부담은 오히려 배가됐다. 당시 여성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집에서 가사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게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이었다.

이런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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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은 푸틴이 정권을 잡고 나서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0년대 초중반은 세계 경제가 호황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특히 석유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급격히 올랐다. 산유국 러시아 입장에서는 호재였다. 석유 판매가 러시아 GDP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였다. 유가 상승 덕분에 러시아는 하루아침에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세계 최대 산유국과 엇비슷한 수준의 돈을 벌어들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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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리스 옐친이 당선됐다. 소련 시절 예카테린부르크 시와 주에서 활동을 했던 그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많은 당원의 지지를 받았고, 공산당 안에서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그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너무 흐지부지하다고 비판하며, 보다 더 강하고 개혁적으로 나라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1년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경쟁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옐친은 탱크를 앞세워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를 점령한 후 공산당을 해체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내렸다. 당시 공산당 지도부는 너무도 나약한 나머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고, 결국 그대로 물러나고 말았다. 고르바초프는 1991년 12월 25일 스스로 하야했다. 옐친은 전국에 대통령 선거를 공포했고, 1992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하루아침에 새로운 러시아의 첫 대통령이 됐다.

소련의 흔적이 희미해질 무렵, 새로운 러시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문제들이 겹겹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생 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 불법 또는 탈법적인 방법으로 국가 재산을 사유화해서 하루아침에 많은 부를 갖게 된 옐친 대통령 측근들, 너무 느리게 진행되어 효과가 사라진 개혁들. 정치 세력들의 투쟁 때문에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하락한 사회 구조. 말로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실제로는 비리를 저지르고 국가 예산을 횡령하기 바쁜 정치인들. 러시아 국민들의 머릿속에 ‘민주주의’와 ‘비리와 부패’는 동의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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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 입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쩌면 배신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나에게 천성의 생각하는 갈대였다. 그런 그가 지금 살찐 돼지가 되려고 열심히 자신과 식구들은 훈련시키고 있었다. 말이 많아지면서 표정도 과묵하던 때의 준수한 모습은 간데없이, 소심하고 비루해지고 있었다. 오빠가 넘어온 이데올로기의 전선은 나로서는 처음부터 상상을 초월한 것이긴 했지만 이런 오빠를 보고 있으면 그 선의 잔인하고 음흉한 파괴력에 몸서리가 쳐지곤 했다. 오빠 같은 한낱 나약한 이상주의자가 함부로 넘나들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오빠가 얼굴을 잃고 돌아왔다고 해도 지금의 오빠보다는 유사성을 발견하기가 쉬울 것 같았다. (43~44쪽)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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