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두 번째 임무는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고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이 해양 탐사는 물론 영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일종의 문명화 사명이기도 했다. 영국이 낳은 가장 저명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쿡 선장의 활동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동안 제국주의에 대한 관심은 경제적 측면에 집중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제국이 얼마나 이득을 가져다주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식민지들은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이득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이익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영제국의경우, 그 방대한 제국을 지키는 데 들어간 방위비는 제국이 가져다준 경제적 이익을 훨씬 앞질렀다.  - P22

자유무역 지대는 단순한 경제 블록이 아니었다. 그곳은 인류 모두의 염원인 평화가 지배할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면 영국도 영토적 욕심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제국주의라는 시대정신에 휩쓸렸던 것이다.
- P22

19세기 말 영제국의 팽창에서 전략적 동기는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독일의 통일 후 재편된 국제 정치적 판짜기에서영국은 전략적으로 제국을 팽창시켜야 했다. 제국 팽창의 전략적 동기에 주목하는 하이엄(Ronald Hyam)은 영국 정치인들에게는 전략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기에 경제적 고려가 우선시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 P23

한편 경제적·전략적 동기가 중요한 만큼이나 소위 ‘문명화의 사명은 제국주의의 가장 큰 명분이었다. 우월한 문명의 전파는 사실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제국이 자임한 명분이었다.
로마제국도,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락제가 즉위 전 연왕으로 있던 시절에 ‘정난‘, 즉 ‘어지러움을 평정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남경의 건문제 세력을 무너뜨리고 황제로등극한 곳은 당연히 명의 수도 남경이었다. 여기서 주체에게 어지러움[難]‘이란 황제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군측(君側)의 악의 세력이었다. 구체적으로 건문제에게 삭번(削藩) 정책, 즉 북변에 위치한 왕들의 번국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태상시경(太常寺卿) 황자징(黃子澄)과 병부상서제태(泰) 및 그들의 추종자를 지칭했다. 건문제에게 북변에 위치한 연왕을 비롯한 번왕들은 촌수로도 숙부(叔父)에 해당하며, 각각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시한폭탄 같은 존재들이었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50년대에 대학 졸업장은 여성에게 여러 형태로 이득을 가져다주었는데, 대부분의 이득은 고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졸업 후 곧바로 일자리를 잡는 데서도 그랬지만 대학교육이 줄 수 있는 이득의 상당 부분은 미래에 발생했다. 대학 졸업장(과 교사 자격증)은 결혼 생활이 예기치 않게 파경에 이를 때를 대비하는 보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널리 쓰이던 표현으로, 일자리는 "뒤로 넘어질 때 받쳐 줄 안전장치 였다. 이혼, 장애, 사망은 어느집에나 예기치 않게 올 수 있었으므로 남편에게 불시에 무슨 일이 닥치지 말란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7년 졸업생인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한 여성에게 교육은 일종의 보험이라고 볼 수 있습22니다." 또 다른 여성은 교육을 안전망"이라고 표현했다. - P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이트칼라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농촌의 초등학교나8학년까지만 있던 19세기 도시의 초등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교육에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노동시장에 생겨난 새로운 수요와 맞물려 ‘고등학교 운동 high school movement‘이 벌어졌다. 이는 1910년 무렵에 미국전역에서 중등교육이 급격하게 확대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고등학교 운동은 20세기 초입에 시작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전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아카데미 학교 운동‘이 먼저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서 수업료는 학부모들이 냈는데, 부모가 중등교육에 학비를 낼 의향이 있었다는 말은 고등학교 운동이 진정으로 풀뿌리에서 일어난 움직임이었음을 말해 준다. - P120

청소년들은 곳곳에 생겨난 고등학교에 대거 진학했다. 그리고1920년대에는 미국의 모든 주에서 남성 청소년보다 여성 청소년의고등학교 진학률과 졸업률이 더 높았다. 여학생들은 고등학교 생활에 더 잘 적응했고 졸업하는 비중도 더 높았다. 

오늘날 여성이 남성보다 대학 진학률과 졸업률이 더 높은 것과 비슷하다. 능력을 펼칠 여건만 주어진다면 여성이 남성보다 학교 환경에서 더 좋은 성과를내는 것으로 보인다.
- P1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