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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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과 정유년 사이 6년의 소강상태

임진왜란은 크게 1592~1593년에 한 번, 1597년 정유년에 또 한 번 그리고 1599년에 일어난 싸움을 거쳐 총 세 번의 싸움으로 기록됩니다. 1597년은 정유년에 있던 전투를 의미하고, 1598년은 도망을 가다가 발생한 전투를 말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소강상태였어요. 1593년부터 1597년까지는 전투가 거의 없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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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이긴 후 한양을 비우고 부산 쪽으로 내려와요. 그래서 일본 본진은 부산에 자리잡게 됩니다. 명나라 본진은 평양에 있고, 일본의 본진은 부산에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본진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무슨 전쟁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래서 6년 동안 전투가 없었죠. 그동안 농민들은 모내기하며 농사짓고 살았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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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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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3대 대첩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3대 대첩은 각각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1592), 진주 목사 김시민의 진주성 전투(1592), 권율 장군의 행주 대첩(1593)이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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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은 우리와 달리 일반적으로 벽제관 전투(1593), 칠천량 해전(1597), 울산성 전투(1597)를 임진왜란의 3대 전투로 꼽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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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항하는 습지


 습지는 부와 도시를 산출했지만 이후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는 등장하지 않았다. 습지에서의 활기차고 다양한 생계 활동은 밭을 갈아 경작하는 농업 경관과 달리, 국가 형성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큰 강의 삼각주 지역이 초기 국가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확인하는 데는 나일강의 삼각주가 그 비교 사례를 제공한다. 초기 이집트 국가들은 삼각주에서 떨어진 강의 상류 지역에서 생겨났다. 삼각주 지역에는 이미 인구가 많았고 생계 자원이 풍부했지만 그것들이 국가 형성의 토대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삼각주 지역은 국가에 적대적이고 저항적인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 P175

황허강을 따라 형성된 초기 국가들의 중심 역시, 유사하게, 끊임없이 변화하며 요동치는 삼각주 지역이 아니라 상류 지역에 있었다. 서곡농사이긴 했지만,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에서 밀과 보리가 중요했듯, 중국의 국가 형성 핵에서도 경작은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중국의 국가 건설 프로젝트는 복잡하고 다양한 황허강 삼각주와 그 사이에 있는 양쪽의 언덕진 땅덩이들의 야만 지역들)은 제쳐둔 채, 경작가능한 풍요로운 풍적토 지대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폴짝폴짝 건너뛰었다고 할수 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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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민의 승리 이유는 ?
- 번식률의 차이
- 생산성이나 위험도의 차이가 아니라

신석기 곡물 복합체가 궁극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도무스의 역학적 상황으로는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농경 문명의 부상에 당황했을 뿐 아니라 신석기시대 경작민이 대면했던 병원체들을 고려할 때, 이 새로운 형태의 농경 생활이 번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짧은 답은, 내가 알기엔, 정착생활 그 자체다. 정착생활을하는 농경민은 수렵·채집민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건강상태가 불량하고 유아사망률과 모성사망률maternal mortality 이 높았음에도 전례 없이 번식률이 높았다. 곧 전례 없이 높았던 사망률을 보상하고 남을 만큼 인구 재생산율이 높았던 것이다.  - P158

수렵채집민은 자녀 터울을 대략 4년씩 두는데, 이 4년 터울을 맞추기 위해서는 젖떼기를 늦추거나, 낙태를 유도하거나, 혹은 영아를 방치하거나 살해하는 방식을 취했다. 수렵채집민은 더욱이 대체로 기름기가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유지하면서도 격렬한 신체 활동을 한 만큼 사춘기가 더디게 왔고, 배란은 덜 규칙적이었으며,
폐경기는 일찍 왔다. 

정착생활의 농경민에게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녀 터울이 적더라도 이동 수렵 채집민보다 그 부담이 적었다. 그리고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자녀는 농경에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이 되는 만큼 그 가치는 더욱 컸다. 정착생활로 초경이 빨라졌고, 곡물 식단으로 유아의 젖떼기가 이유식에 의존해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단으로 여성의 배란이 촉진되었고 가임 기간이늘어났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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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보상이론의 허구
- 농경민의 인내심과 수렵인의 충동성 대비의 허구
- 뵘바베르크의 우회이론
- 마시멜로 실험



사회진화론자들 사이에서 한동안 선호되었던 이론적 경향은 농경을 문명의 중대한 도약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는데, 농경이 ‘지연된 보상 delayed-return‘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경작민이란, 지연된 보상 이론 - P96

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받을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씨를 뿌리고 그런 다음 김을 매고 작물을 돌보면서 그것이 자라나 그의 희망대로 수확할 식량을 생산해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질적으로 새로운 인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잘못된 것은 내가 보기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농경민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수렵채집민에 대한 묘사다.
이 주장에서는 합의된 대비를 통해 수렵채집민은 앞날을 생각하지않고 충동에 따라 즉흥적으로 살아가면서 운 좋게 사냥감을 발견하게나 나무나 수풀에서 따 먹을 만한 뭔가 좋은 것을 찾아내길 (즉각적 보상 immediate return‘을 바라면서 경관을 헤집고 다니는 존재라고 암시한다. 이것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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