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들어 다마지오는 안와전두피질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면 환자들이 대체로 감정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환자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어떤 감정을 당연히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이들이 보인 자동 반응(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반응들)에 대한 연구를 봐도 이런 환자에게서는 우리 같은 일반인이 끔찍하거나 아름다운 광경을 봤을 때 보통 경험하는 순식간의 신체 반응이 분명 나타나지 않았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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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이나 논리적 능력은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지능 테스트나 사회 규칙 및 도덕 원칙 관련 지식에서도 이들은 일반인에 필적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19
그렇다면 이들이 문밖을 나서 세상을 만나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는 감정에서 해방된 만큼, 고도로 논리적인 사람이 되어, 우리 같은 이의 앞을 가리는 갖가지 감정의 안개를 걷어 내고 완벽한 합리성이 길을 꿰뚫어 보지 않을까? 실제로는 그 정반대다. 이들은 간단한 결정이나 목표 설정조차 버거워하게 되며,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삶이 차차 무너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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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눈앞에는 수십 개의 선택지가 어른거리지만 정작 내면에서는 당장 호불호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즉, 모든 선택지의 장단을 자신의 추론으로만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감정이 없다 보니 개중에 어느 하나를 고를 이유를 거의 찾을 수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바깥으로 눈을 돌려 세상을 바라본 순간, 벌써 감정 두뇌들이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여러 가능성들을 평가해 놓고 있다. 또한 보통은 그중 한 가지 가능성이 누가 봐도 가장 좋은 선택지로서 단박에 우리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이성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어떤 가능성 두세 개가 똑같이 좋아 보일 때뿐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정교한 정서에 기대는 바가 무척이나 크다. 어떤 식이든 우리의 추론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 두뇌가 아주 원활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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