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사업가 백종원을 둘러싼 논란이 나날이 확산되는 모양새이다. 지난 설날 즈음에 자사의 햄 통조림 할인 판매 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그 시작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이후 원산지 표기며 함량 미달 문제를 거쳐 프랜차이즈 관리와 각종 법령 위반 문제로까지 번지더니, 급기야 그간 치적이라 평가되던 재래시장 살리기며 축제 지원에 대해서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처럼 논란 대부분이 충분한 근거를 지닌 것은 사실이니 결국 백종원도 사죄의 뜻을 표한 모양이지만, 이후로도 논란의 기세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훨훨 불타오르는 모양이니 희한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정치 상황과 관련된 음모론도 제기되는 모양이지만, 이보다는 그간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터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한비자> "세난"(說難) 편에 나온 미자하(彌子瑕)의 고사다. 위(衛)나라 왕이 미자하라는 신하를 워낙 총애하다 보니 간혹 '선 넘는' 경우조차 너그럽게 봐주고 넘어갔다. 예를 들어 왕의 수레를 몰래 타고 어머니에게 다녀온 것이며,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건네준 것 등이 그러했는데, 하나같이 중형을 피할 수 없는 불경죄였다.


하지만 왕은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그랬으니 얼마나 효자냐!'라거나, '나를 생각해서 먹어보라고 권했으니 얼마나 착하냐!'면서 좋게 해석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미자하도 늙어서 볼품없어지자, 그때 가서는 왕도 총애를 거둔 나머지 '저놈은 예전부터 내 수레를 몰래 타고 다니는가 하면, 제가 먹던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던 놈'이라며 욕을 했다던가.


"세난"(說難)은 "설득의 어려움"이란 뜻이며, 한비자는 해당 편에서 군주를 상대하는 유세객이 취해야 할 태도를 조언한다. 군주의 마음을 움직여서 등용되는 것이 유세객의 목표이지만, 자칫 무리해서 군주의 심사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니, 미자하의 일화 다음에 '용의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는 조언이 등장하는 것만 보면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법하다.


백종원의 경우도 미자하와 마찬가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을 때에는 갖가지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지만, 대중의 사랑이 줄어들면서부터 줄줄이 부각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인기가 절정이었던 시절에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마냥 내놓았던 수많은 조언이 뒤늦게야 자승자박이 되었다는 점에서 한비자가 말한 유세객의 실수를 반복한 것도 같다.


흥미로운 점은 한때 백종원과 함께 '한국의 3대 선생님'으로 꼽히던 오은영과 강형욱 역시 논란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세 명 모두 TV 출연을 통해 명성을 얻으며 여러 분야로 활동을 넓혔는데, 결국에 가서는 논란을 일으키고 대중의 반발을 사게 되었으니, 어떤 면에서는 '사람은 그 무능이 드러나는 지위까지 승진한다'던 피터의 법칙의 증명 사례 같기도 하다.


물론 권위에 맹종하는 대중의 속물근성도 비판할 만하다. 다만 오늘은 환호하고 내일은 비난하는 변덕의 가능성은 늘 있게 마련이고, 아무 근거 없이 매도당한 사람도 실제로 있으니, 대중의 과도한 추앙을 받는 경우라면 '선생' 스스로도 조심해야 맞지 않았을까. 이른바 '선생 노릇하기 좋아하지 말라'는 조언을 예수와 맹자 모두 내놓은 것도 이유가 있는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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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편을 놓고 '더 내고 더 받기'라고 생색 내는 뉴스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요율이 높아져서 부담만 늘어날 뿐 나중에 받는 연금이야 반토막에 불과한 셈이니 한심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홈플러스에 투자해서 9천억 원을 날리게 생겼다니, 국민연금 개편에 앞서 자금 운용 담당자부터 끌어내서 공개 처형부터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은데.


홈플러스는 그렇잖아도 갑작스러운 기업 회생 절차 돌입으로 몇 주째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끔 산책길에 옆동네 익스프레스에 가서 천 원짜리 콩나물을 사오는 게 전부인 나귀님이야 직접적인 상관까지는 없지만, 거래업체며 입점업체와 직원 등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소식을 들으니, 덩달아 걱정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귀님도 예전에는 홈플러스 대형 매장에 몇 번인가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알라딘 중고매장 가운데 몇 군데가 홈플러스에 입점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마트에도 입점한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은 홈플러스와 하나로마트에만 있는 듯하다. 확인해 보니 서울에 강서홈플러스점, 경기에 의정부홈플러스점과 인천계산홈플러스점이 남아 있다.


뉴스에 따르면 이번 홈플러스 사태로 입점업체 일부가 자체 결제기를 도입했다고도 한다. 알고 보니 입점업체에는 갑과 을 두 가지 종류가 있어서, 갑의 경우에는 애초부터 자체 결제기를 이용하고 홈플러스에는 월세만 지급하는 임대인인 반면, 을의 경우에는 홈플러스 결제기를 이용해서 매출금을 고스란히 넘겼다가 수수료를 빼고 돌려받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갔으니, 을의 경우에는 수익 정산이 늦어지거나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홈플러스 결제기 대신 자체 결제기를 사용하더라는 이야기이다. 당국이며 본사에서 입점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하지만, 이전의 여러 사례를 보아도 그런 약속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보니, 입점업체 쪽에서도 불안할 수밖에.


그렇다면 홈플러스에 입점한 알라딘 중고매장은 갑/을 중 어느 쪽일까? 이 정도 기업 규모라면 충분히 자체 결제기를 이용할 법하니, 현지 진행 중인 사태에서도 크게 손해를 볼 일까지는 없을 듯하다. 물론 나귀님이야 언제부턴가 우주점 상품을 구매해도 기본 마일리지나 추가 마일리지 적립을 빼먹는 것이 괘씸했으니, 내친 김에 골탕 먹어도 쌤통이겠다 싶지만.


그런데 알라딘 중고매장 중에는 위치가 정말 요상한 곳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목동점은 큰길에서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뭔가 낡고 썰렁한 느낌의 쇼핑센터에 있고, 영등포점은 아예 공실 천지라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옛 의류 상가 건물의 지하 2층에 있어서, 처음 갔을 때에는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려다가 불이 다 꺼진 것을 보고 놀라서 다시 나오기도 했으니.


나귀님은 맨 먼저 생긴 종로점과 신촌점을 제일 많이 갔고, 나중에 지점이 더 늘어나면서부터는 가로수길점과 강남점(Yes24 중고매장 포함), 서울대입구역점과 신림점, 영등포점과 목동점(Yes24 중고매장 포함), 합정점과 신촌점(Yes24 중고매장 홍대점 포함), 종로점과 대학로점과 수유점처럼 가까운 곳을 연이어 방문하는 코스를 주말마다 한 번씩 돌곤 했었다.


경기도 매장 중에서는 전철로 가기 쉬운 부천점, 수원점(야구장 건너편 이마트에 있었던 지점은 이제 없어진 모양이다), 산본점을 여러 번 갔었고, 분당점과 일산점은 살짝 번거롭기는 하지만 시외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도 했었다. 더 멀리 있는 지방 매장 중에서는 대전시청역점엔가를 갔었는데, 어쩐지 '작고 소중한' 느낌의 대전 지하철이 상당히 신기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형태의 매장은 역시 일산점이다. 원래 나이트클럽이었던 곳을 개조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넓기는 하지만 서점을 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구조가 아니었던 것 같다. 겨울에 방문해서 그런지 유난히 추웠던 기억도 있고. 지하철 환승 통로 중간에 자리한 이수역점도 꽤나 특이한 구조인데, 일종의 무대 공간이었던 곳을 개조했던 듯하다.


건대점은 책장 사이 통로가 워낙 좁아서 맨 아래 있는 책을 꺼내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나고, 반대로 부천점은 상당히 넓은데다 복층이기도 해서 책 구경하느라 다리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앉아서 책 읽으라며 놓아둔 탁자에 딸린 의자는 유난히 무거워서 움직일 때마다 끌리는 소리가 요란했던 것이며,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줄곧 엎드려 자던 사람들도 생각난다. 


한 번은 어느 매장에서 자기가 찾는 책이 해당 위치에 없다며 계산대에 와서 항의한 여자 손님이 있었는데, 잠시 후에 다른 위치에서 찾아냈다며 '없어진 책을 내가 찾아냈으니 가격을 할인해 달라'고 따지기에 신박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마치 도서관을 이용하듯 커피와 노트북을 들고 들어와 탁자에만 앉아 있는 손님들도 있기에 참 대단하다 생각도 했고.


물론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이고, 나날이 확장일로인 알라딘 중고매장 걱정도 마찬가지일 법하니 공연한 말만 떠들어대는 나귀님일 뿐이다. 그나저나 현재 홈플러스의 토대 가운데 일부는 저 악명 높은 까르푸/홈에버라 했으니,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려 30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잔혹사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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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니 미국 트럼프 정부의 폭주에서 선봉을 담당한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에서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해체에 돌입했다는 뜻밖의 소식이 나온다. VOA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설립된 미국 정부의 선전 부서로 냉전 시기에는 소련과 동구권을 상대로 방송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독재 정권 시기 검열을 피해 외부 세계 소식을 듣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정희 정권의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한 보도였으니, 국내 언론이 검열로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 VOA가 오히려 민주화 운동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지금도 러시아나 중국 등의 독재 국가를 상대로 비슷한 역할을 지속하는 까닭인지, 이번의 갑작스러운 VOA 폐지 소식에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오히려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전한다.


물론 미국 정부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 매체이니 자국의 이익을 항상 염두에 두게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보도 내용도 항상 공정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해외원조국(USAID)의 갑작스러운 폐지 결정과도 유사하게, 수십 년째 이어진 사업을 하루아침에 없앤다는 것이 과연 미국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할지 여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이번 VOA 폐지 조치로 가장 당혹감을 느낀 쪽은 바로 탄핵 반대 시위를 주도하는 윤석열 지지자들이라는 뉴스도 있었다. 무슨 뜻인가 알아보니, 그중 다수가 탄핵 심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VOA의 방송 내용 일부를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생활 영어 프로그램의 내용 일부를 일종의 암호 메시지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나!


그렇잖아도 극우 세력이 탄핵 반대 집회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들고 나오고, 조만간 트럼프가 윤석열을 구해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입에 올리며, 심지어 탄핵 찬성 연예인을 미국 CIA(?)에 신고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꾸준히 있었다. 그런데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미국 정부의 뒤통수로 VOA가 폐지되었으니,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 당황할 수밖에!


한편으로는 쌤통이다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명분 없는 비상 계엄을 실시한 현직 대통령이며 그 지지자들 모두가 이처럼 극우 유튜버의 갖가지 가짜 뉴스를 신봉한 까닭에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한심하고 남부끄럽기 짝이 없다. 물론 트럼프 정부의 VOA 폐지가 실현되더라도, 극우 세력은 또 다른 가짜 뉴스로 억지 주장을 지속하겠지만.


그나저나 이쯤 되니 예전에 VOA에서 방송한 강연을 엮어 만든 책이 기억나서 책장을 뒤져보게 되었다. <미국소설론>(VOA 편저, 서숙 옮김, 탐구신서 83, 1985)이라는 문고본인데, 원제는 "미국의 소리 포럼 강연: 미국 소설"(The Voice of America Forum Lectures: The American Novel)이며, 쿠퍼의 <개척자>부터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까지 19종의 작품 해설이다.


셔우드 앤더슨의 연작 소설 <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를 해설한 평론가 어빙 하우를 제외하면 강연자 대부분은 영 낯선 편인데, 그래도 헤밍웨이 전기로 유명한 칼로스 베이커가 해당 작가의 대표작 <무기여 잘 있거라>의 해설을 담당한 것을 보면, 대부분 현직 교수였다는 나머지 강연자들도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왕 책을 꺼낸 김에 몇 가지 읽어보자 싶어서, 그나마 줄거리를 비교적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작품 위주로 고르다 보니,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앤더슨의 <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편을 읽어보게 되었다. 비교적 평이하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목해 주니, 이것이야말로 비평의 미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허클베리 핀>에 대한 헨리 내쉬 스미스의 설명이다. 마크 트웨인의 이 소설은 <톰 소여>의 속편이자, 백인 부랑아의 방랑기이자, 유머를 앞세운 작품에, 최근 많이 비판받는 것처럼 "깜둥이"를 비롯해서 갖가지 인종차별적 표현이 넘쳐나는 등의 갖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이른바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스미스는 출간 이후 50년간 뜨뜻미지근했던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올라간 까닭을 미국의 현실에서 찾아보려 한다. 평범한 부랑아였던 헉 핀이 보물 찾기로 벼락부자가 되어 하루아침에 모두의 주목과 선망이 되자 오히려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꼈듯이,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갑작스레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란 나라도 비슷한 처지였다는 것이다.


급기야 헉 핀은 재산과 명성을 모두 내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방랑을 떠났고, 이 과정에서 도주 노예를 친구로 삼고 위기에서 구출하며, 결국 다시 문명 세계로 돌아와서도 새로운 도주를 꿈꾸는데, 이 과정 내내 반복되는 임기응변이 미국인 특유의 실용주의와 공명한 까닭에 큰 인기를 끌었으며, 급기야 "위대한 미국 소설"로 공인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헉 핀의 자유분방하면서도 무책임한 태도에는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뚜렷하다. "이처럼 행동하는 소년, 또는 국가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예측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태도로 행동한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101쪽) 이는 트럼프 정권 1기부터 줄곧 지적되었듯, 미국 문화의 저류인 반지성주의가 실용주의와 표리 관계인 것과 유사하다.


심지어 트럼프 정권 2기 출범과 함께 지속되는 폭주를 미리 예견한 것처럼 보이는 문장도 있다. "이런 소년이나 국가는 신뢰할 수 없는 우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무도 어떻게 그가, 또는 그 나라가 미래의 상황에서 행동할 것인지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추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통해 미국의 국가 정책은 세계에 그같은 인상을 흔히 주어 왔다."(101쪽)


"묵계된, 또는 성문화된 법률보다는 직관적인 정의감에 호소하는 것은 바로 헉 속에 있는 미국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우리는 법을 준수하지 않기로 유명한 국민이다. (...) 이런 뜻에서 우리 문화 속에는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이 분명히 있다. (...) 법과 법을 대변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불경은 열정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우리 문화의 어두운 면이다."(102쪽)


물론 트럼프 정권의 폭주를 마크 트웨인 탓으로 돌리려는 것까지는 아니다. 다만 초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하루아침에 내버리고 고립을 택하려는 저 나라 지도자의 행동이야말로 끝까지 문명화를 거부하며 개척지로 도주하기를 꿈꾼 저 부랑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위대한 미국 소설"로 평가되는 이유를 아이러니하게도 실감했을 뿐이다.




[*] 검색해 보니 이보다 더 먼저 간행된 <지식과 사회: 미국의 사회학>(탈코트 파슨즈 편저, 임희섭 옮김, 탐구신서 56, 탐구당, 1972) 역시 "미국의 소리 포럼 강연" 시리즈의 번역서라고 한다. 이제 와서 다시 꺼내 보기 귀찮으니 그냥 그렇다는 것만 적어놓고 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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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탄핵 찬반 시위 뉴스를 보니 문득 해방 직후의 신탁 통치 찬반 시위가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좌익과 우익이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어 서로를 매도하며 극렬 시위를 벌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사안이야 다르지만, 툭하면 하나임을 강조하던 민족이 이처럼 양분되어 대립한 사례를 더 찾기도 어려워 보이니, 이번 일도 후세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탄핵 반대를 주도하는 극우 세력의 행보는 나날이 기세를 더해 가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마저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최근 시내에 다녀온 바깥양반의 목격담에 따르면, 야당 대표의 이름을 부르고는 '밟아! 밟아!'를 외치며 함께 발을 구르는가 하면, 지하철 안에서까지 '탄핵 찬성하는 놈들은 때려죽이자'고 외치는 노인네들도 있다던가.


이른바 증오 범죄에 대해서는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귀님으로서도 (왜냐하면 '증오'와 '범죄' 사이의 간극은 예상 외로 넓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직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를 좋아할 리 만무한 나귀님이지만, 설령 두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고 해서 주먹부터 휘두를 리는 없지 않겠나!) 이쯤 되면 진짜 큰일이 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탄핵 심판 선고일에 경찰이 갑호비상령을 발동하는 한편, 헌법재판소 인근 학교며 주유소(!)까지도 휴업하게 만들 예정이라니, 이미 어느 정도는 폭동이 당연히 벌어지리라 예견되는 상황은 아닐까. 이쯤 되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제목처럼 "삶은 콩을 곁들인 연한 구조물, 또는 내전의 예감" 속에 살아가는 판이니,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싶다.


여차 하면 과거 다른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내전 상황과 별 차이 없는 상황이 여기서도 펼쳐지려나. 예를 들어 유고와 르완다 내전 당시에는 수십 년 알고 지낸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이웃집에 쳐들어가는 끔찍하다 못해 초현실적인, 정말 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선례가 없지는 않았다.


바로 육이오 전쟁 동안 우리도 그놈의 '동족상잔'을 지겹게 저질렀다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리거나 외면해버린 상황이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그 무지막지함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와 좌익이 기세등등하게 누군가를 학살하면 훗날 국군이 진격하며 우익이 돌아와 보복을 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하니까.


최근 완독한 강신항 교수의 전쟁 일기에도 그런 목격담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 전쟁이 벌어져서 고향 아산으로 내려갔더니, 인민군이 들어오고 좌익이 위원회를 만들어 동참을 권유했는데, 몇 번 협조하는 척하다가 자택 다락에 숨어 나가지 않았더니, 나중에는 좌익 여럿이 반동 분자를 잡겠다며 집으로 쳐들어오기도 했다던가.


동네 사람 여럿이 목숨을 잃고서야 인민군이 물러갔는데, 곧이어 국군을 따라 돌아온 우익이 원수를 갚겠다며 좌익 협력자를 뒷산에 끌고 가 처형했다는 것이 당시 자경단이었던 강 교수의 목격담이다. 비록 본인도 구사일생의 상황을 겪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악순환만큼은 좌익이건 우익이건 양쪽이 똑같이 잘못한 듯 보이더라고 평가한다.


지난번 서부지법 난입 사건으로 대표되는 탄핵 반대 세력의 행보에서 가장 사람 질리게 하는 부분도 그 폭력성이다. '태극기 집회'로 지칭되는 극우 활동이야 이전부터 있었지만, 자기네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을 공격하는 모습이야말로 사실상 유례가 없는 호전성의 표출이었으니까. 그야말로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행위가 아닌가!


그런 행동들의 원인 규명은 아마 이번 탄핵 심판이 끝나고 나서도 숙제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 비리에 발목 잡힌 대표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야당의 입법과 탄핵 폭주가 매우 나쁜 선례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극우 세력의 증오와 폭력 표출도 그에 못지않게 나쁜 선례를 만들어 놓은 판이니, 솔직히 어떻게 해야만 법치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나날이 격화되는 정치적 대립을 지켜보면 결국 지난 반세기 이상의 역사가 결국 제자리 걸음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육이오의 동족상잔도 결국 이념 대립의 허무함을 보여준 사례일 뿐이었건만, "내전의 조짐"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상황은 마치 75년 전으로 돌아간 셈이니 이래저래 착잡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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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를 하다가 이전에 알맹이만 꺼내 놓았던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구판 <일본단편문학선>과 <나는 고양이다 (외)>를 케이스에 도로 넣다 보니, 새삼스레 케이스 앞면 하단에 있는 그림에 눈길이 갔다. 무슨 옛날 필사본의 삽화에서 가져온 듯한 모양새인데, 알파벳이 적혀 있기에 뭔가 궁금해 검색해 보니 무려 중세 영국의 헤이스팅스 전투를 묘사한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의 일부였다!


헤이스팅스 전투는 1066년에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가 후사를 두지 않고 사망하면서, 그 왕위를 물려받은 잉글랜드 귀족 해럴드와 그 왕위를 넘기라고 주장하는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이 벌인 전투이다. 그 결과 해럴드가 전사하고 윌리엄이 승리하면서 막이 오른 이른바 '노르만 정복'은 이후 영국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이 사건을 기념하려 제작되었다.


높이 50센티미터에 길이 70미터에 달하는 이 초대형 직조물은 해럴드가 에드워드의 명령에 따라 노르망디에 가서 윌리엄을 만난 장면부터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가 윌리엄에게 패해 전사하는 장면까지 총58개 장면에 걸쳐서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 과정을 묘사했다. 을유 세계문학전집 케이스에 나온 부분은 그중 23번째와 24번째 장면의 일부로, 해럴드가 윌리엄을 만나고 돌아와 즉위하는 내용이다.


왜 굳이 이 장면을 케이스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을유문화사 50년사나 창업자 정진숙 회장의 전기 같은 관련 자료를 다시 뒤져 보면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늘 보면서도 몰랐던 내용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감개무량이다. 한편으로는 그림에 나온 라틴어 문장만 검색해도 대번 결과를 도출하는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되었다. 진짜 세상 참 좋아졌구나!



[*] 헤이스팅스 전투 자체를 다룬 단행본까지는 없지만, 글항아리에서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전기가 나오기는 했다.(번역도 편집도 영 엉터리인 출판사이지만, 그래도 책 고르는 눈썰미 하나는 인정할 만하다!) 기타 중세사며 전쟁사 관련서를 뒤지면 관련 내용이 나올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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