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종영한 <지락실 3>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은 이른바 '전남친 토스트' 퀴즈였다. 인터넷 밈의 일종이라는데, 그 명칭을 이미 아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이영지는 영 생소했던 모양인지 '이걸 모든 사람이 다 아느냐', '내가 지금 당장 라이브 진행해 확인해 보겠다', '전남친이 안 들어갔는데 어떻게 전남친 토스트냐' 하고 노발대발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본 장면을 새삼스레 상기한 까닭은 알라딘의 광고 중에 "김혜순, 아시아 최초 국제문학상 수상"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다양한 수상 실적을 내는 작가이니 뭔가 또 받기는 받았겠구나 짐작하면서도, 솔직히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국제문학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영 감감하기만 했다. 혹시 남들은 다 아는데 나귀님 혼자 모르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나귀님은 저 김혜순이라는 시인의 책을 아직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에 관한 글은 이미 한 번 쓴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이번 사안과 마찬가지로 그가 수상한 해외 문학상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알라딘의 오락가락 행태만 봐도 '뭔지 모르지만 칭찬하자'는 속물근성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지난번에는 김혜순이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s)을 수상했다며 알라딘에서 대대적으로 광고했는데, 알고 보니 명칭이 유사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s)을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나귀님이 지적한 한강의 "부커상 수상"과 살만 루시디의 "부커상 3회 수상"처럼 명칭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오류가 반복되었던 셈이다.
결국 모두들 그 상이 무슨 상인지도 모르면서 추켜세웠던 셈이니 참으로 낯간지러운 일이다. 물론 상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니 널리 알려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정보를 유포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식이라면 10년 쯤 뒤에는 한강이 실제로는 '부커상' 본상을 받은 적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 노벨문학상 음모론을 주장하는 '한진요'도 등장할 만하지 않겠나.
이번에 김혜순이 받은 문학상을 알라딘에서는 "2025 국제문학상"이라고도 지칭했는데, 이렇게 하면 실제로 "국제문학상"이라는 상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국제적인 문학상"을 탔다는 건지 헛갈린다. 구글링해 보니 정식 명칭이 "국제문학상"(Internationaler Literturpreis, ILP)인데, 종종 뒤에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이 붙는 모양이다.
주한 독일 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설명에 따르면, "세계 문화의 집"은 1988년 설립된 독일 정부 기관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비유럽 (즉 영미유럽권 이외의?) 국가의 여러 분야 예술을 독일에 소개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바로 이 기관에서 2009년부터 제정한 "국제문학상"은 독일어로 처음 번역 소개되는 해외 산문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듯하다.
따라서 정식 명칭은 "국제문학상"이라도, 일반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언론에서 쓴 것처럼 "세계 문화의 집 국제문학상"이라고 적어 주든가, 아니면 "독일 국제문학상"이라고 적어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수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게 도대체 무슨 상인지 알아보려고 나귀님처럼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이전에도 지적했듯이, 한강의 "말라파르테상" 수상 실적을 익히 알고 있는 독자라도, 정작 저 문학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또는 그 연원인 독일계 이탈리아인 작가가 정확히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단적으로 알라딘에서도 "추천도서" 메뉴의 "해외문학상" 항목에 "말라파르테상"을 집어넣었지만, 수상작이라곤 역시나 한강의 책 하나뿐이다.
알라딘의 다른 "해외문학상" 항목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쩌다 한국 작가나 작품이 수상한 경우에만 추가되다 보니 정말 너무 생소한 상들도 많고, 그나마도 완전하거나 충실한 목록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부커상"과 "부커상 번역 부문"을 줄곧 (심지어 기꺼이!) 혼동했던 것처럼, 마치 국내 작가의 수상 실적 외에는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듯한 태도이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 모두의 무지와 편견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솔직하고 편리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미 널리 알려진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이외의 수상 실적은 모조리 '기타 등등'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도 방법이겠다. 전미도서상이건 전미비평가협회상이건, 말라파르테상이건 말레피센트상이건,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고 알고 싶은 사람도 없어 보이니...
[*] 글을 쓰고 나서 보니, 김혜순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 표지 하단 (띠지인가?) 노란색 바탕에 적힌 수상 실적 가운데 "2019 미국 최고 번역도서상"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것 역시 생소한 명칭이어서, 도대체 뭐를 가리키는 건지 궁금해 구글링해 보았다. 알고 보니 미국 로체스터 대학(University of Rochester) 산하의 온라인 문학 잡지 스리퍼센트(Three Percent) 주관으로 2008년부터 시상한 '최우수 번역도서상'(Best Translated Book Award, BTBA)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설명한 내용대로 주관사 이름을 넣어서 '스리퍼센트 최우수 번역도서상'이라고 해야 적절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막상 위키피디아의 해당 도서상 항목에 들어가서 2019년 시 부문 수상자를 살펴보니 김혜순이 아니라 브라질 시인 힐다 힐스트라고 나온다. 알고 보니 김혜순은 그해의 최종 후보 5인에 들었을 뿐이었는데, 표지에는 마치 그 문학상을 실제로 수상한 것처럼 착각하게끔 적은 것이다. 차라리 "도서상 후보작"이라고 썼다면 모를까, 무작정 "도서상"이라고 해 놓으면 그 위의 다섯 가지 수상 실적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수상작"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 발 양보해서 "문학상 후보작"이라고 홍보하더라도, 전미도서상이나 퓰리처상처럼 훨씬 더 권위 있는 문학상을 제외하면 "후보작" 이력까지 홍보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듬해인 2020년까지만 시상하고 결국 중단된 '스리퍼센트 최우수 번역도서상'의 인지도에 비해서는 뭔가 좀 과도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김혜순이 이번에 수상했다는 '독일 세계문학상'의 2017년 "후보작" 가운데 하나였지만, 정작 해당 작가나 작품의 정보에서는 그와 같은 이력이 굳이 강조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아니, 이건 거꾸로 '독일 세계문학상' 측에서 자랑스러워할 만한 이력이 아닐까. 훗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자기네가 더 일찍 주목했다는 점에서, 말하자면 뛰어난 눈썰미를 입증한 셈이니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수상 실적 홍보 자체는 나쁠 게 없지만, 이 과정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심지어 저자에게도 누가 되는 일이 아닌가 싶어 해 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