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과 임어당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다가 후자의 휘문출판사 전집을 오랜만에 꺼내 뒤져 보니, 예전에 한 번 보고서 어디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쉬웠던 반세기 전의 은행 금리 안내 전단이 나온다. 예전에 아름다운가게에서 구입했던 책이니, 십중팔구 거기 딸려 왔던 물건이었던 듯하다. 1970년대 책이니 원래 주인이 보고 책갈피로 끼워 놨던 게 아닐까.


전단 내용만 보면 마치 예전에는 통장에 돈을 넣어두기만 해도 쑥쑥 불어났던 것처럼 보이지만, 예금 금리와 함께 나온 대출 금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디 가서 돈 빌리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설령 저 당시에 많은 돈을 벌어 둔 사람이라도 반세기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갖가지 흥망성쇠를 겪었을 수 있으니, 과연 예전이 지금보다 낫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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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스틴 파워>에서 세계 정복을 꿈꾸다가 주인공에게 저지당한 악당 두목은 좆같이 생긴 (욕하는 게 아니라 진짜 레이더에 c==3 형태로 나온다!) 우주선을 타고 도망쳐 냉동 인간이 되었다가 30년 만에 돌아와 다시 지구를 위협한다. 그런데 수십 년 사이에 화폐 가치가 달라졌음을 모르고 무려 "100만 달러"를 협상 조건으로 내놓았다가 오히려 비웃음만 당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현재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불과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가 내놓는 정책마다 이처럼 세상의 변화를 감안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발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에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혼란이 지속되던 차에, 급기야 무분별한 관세 부과와 실시 유예의 영향으로 미국과 한국 모두 증시가 요동쳤다고 전한다.


관세 장벽은 어느 나라에나 있게 마련이고, 때로는 나름대로 자국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악명 높은(?) '칼라 힐스'가 출몰하던 시대도 아니고, 게다가 이른바 세계화로 인해 지구 전역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상호 영향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상황에서 거칠고 섣부른 조치가 이어지니 자연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탄핵 심판으로 쫓겨난 한국의 전직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그의 정신 상태에 대한 진지한 의문도 제기되었던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비상 계엄 선포 동영상을 유튜브로 보면서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반국가 세력이니, 공산주의 위협이니, 마약 천국이니 하는 횡설수설한 내용이 어딘가 시대착오적이라 느꼈던 까닭이다.


일각의 지적처럼 극우 유튜버 동영상이나 인터넷 뉴스 댓글 내용과도 유사하니, 마지막 계엄 선포가 있었던 한 세대 전 사고방식 그대로 머리가 굳어진 걸까. 어쩌면 계엄 선포가 일상적이었던 시대에 살았던 까닭에 그걸 상당히 쉬운 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파장 따위는 계산하지 못한 채 일단 저질러 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이런 식으로 '내가 곧 법이다'라는 주장이 흔해진 것만 같다. 한국과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여전히 논란이 지속 중인 동덕여대 락카칠 사태며 뉴진스의 계약 파기 사태에서도 핵심은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런 독불장군 행보가 국가와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마치 시대정신이라도 된 듯한 모양새다. 


트럼프부터 뉴진스까지 저 여러 사건의 공통점은 '내 생각에는 불법이 아니므로 실제로도 불법이 아니다'라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주장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말처럼 간단할 리는 없으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가 봐도 무리하고 설득력 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저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거나, 조만간 치르게 생겼으니 사필귀정이 아니려나.


특히 미국은 그놈의 세금 때문에 혁명이며 독립까지 했던 나라임을 감안해 볼 때 미국인들로서도 지금의 사태가 달가울 리 없을 듯하니, 트럼프가 폭주의 결과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궁금하다. 이미 야당에서부터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보도가 있으니, 여차 하면 징검다리 재선 대통령에서 징검다리 탄핵 소추 대통령이라는 진기록도 세울 만하다고나...



[*] 그나저나 트럼프 당선 직후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 갖가지 '예측' 서적 중에서 지금의 사태를 정확히 예언한 것이 있기는 했는지 궁금하다. 알라딘에서 목차를 살펴보니 아닌 게 아니라 '관세'에 대해 언급한 책도 몇 권 있기는 하던데, 만약 지난 주의 주가 요동 같은 구체적인 사건까지 콕 집어냈더라면, 적어도 그 서적과 저자의 '주가' 만큼은 급등하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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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넷의 신간이 나왔기에 클릭해 보니, 신작이 아니라 무려 반세기 전인 1972년에 나온 초기작을 번역한 것이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왔다가 한동안 품절되었던 다른 책 두 권도 재간행된 것으로 미루어 꾸준히 독자가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바깥양반이 어디선가 이 양반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책을 좀 구해 보라고 하는데 절판된 것이 많아서 꽤 고생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책을 사 놓으라고 말만 해놓고 바깥양반이 곧바로 흥미를 잃었던가, 아니면 다른 주제로 넘어갔든가 했다는 점이다. 나귀님이야 일단 사기 시작했으니 이후로도 신간이 보이면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한 번은 <짓기와 거주하기>라는 책을 구입해서 뒤적이다 이 저자에게서 '이야기꾼'이라는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사회학자이다 보니 딱딱한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인지 논의 중에 개인적 회고가 종종 곁들여져서 희한하다 싶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게 의외로 재미있다! 예를 들어 <짓기와 거주하기>에는 도시 이론가인 제인 제이콥스와 루이스 멈포드와 직접 만나서 나눈 대화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일화가 소개되는데, 이게 웬만한 소설 뺨치게 상당히 재미있었다.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은 서두에서부터 이혼 후 사회복지사로 일한 어머니와 함께 20세기 중반 도시의 빈민 주택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후 첼로를 전공했지만 손에 이상이 생겨서 음악을 포기하고 사회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는데, 이 과정에서 루돌프 제르킨과 머리 페라이어, 데이비드 리스먼과 에릭 에릭슨 등이 언급되니 눈이 번쩍할 수밖에 없다.


여하간 이론보다 여담이 더 재미있는 사람이다 보니, 본격적인 사회학 저서보다는 차라리 회고록이 더 흥미로울 듯한데, 이미 80대에 접어들었건만 자서전 출간 소식은 없는 듯하다. 2024년에도 <공연자>라는 신작을 내놓으면서 음악에서 사회학으로 건너온 본인의 경험에 대해서 언급했던 모양이지만, 본격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까지는 아닌 듯하니 살짝 아쉽다.


그나저나 <살과 돌> 신판 역자후기를 보면 구판에도 참여했던 번역자가 "1999년 우리나라에서 세넷의 저작 중 처음으로 번역되기도 했던" 책이라고 설명했는데, 미안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1977년 작 <공적 인간의 몰락>이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리차드 세네트 지음, 김영일 옮김, 일월서각, 1982)라는 제목으로 먼저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침몰>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뒤적여 보니, 제14장 제목이 "예술을 빼앗긴 연기자"인 것으로 미루어, 결국 2024년 신작의 단서가 1977년 구작에도 이미 들어 있지는 않았나 싶기도 하다. 반세기 동안의 꾸준한 연구에 감탄하는 한편, 결국 누구에게나 범위, 또는 한계는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하간 어서 빨리 회고록을 좀 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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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지브리풍(風) 그림 만들기'가 인기라고 한다. 챗GPT에 사진이나 그림을 올리고 '지브리풍'으로 바꿔달라면 진짜로 그 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바꿔준다던가. 심지어 이 유행 덕분에 챗GPT 유료 사용자가 급증했다고 보도하는 뉴스 기자들도 취재를 핑계로 자기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꿔 게재할 정도이니, 확실히 인기는 인기인 모양이다.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명 작가나 특정 시대 고유의 화풍을 모방한 모작이며 위작이 종종 등장해서 훗날 그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직접 그림을 그려야 하는 모작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일인 반면, 챗GPT를 이용한 화풍 따라하기는 일반인도 가능할 만큼 손쉽고도 파급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과 논란의 대상이 되는 듯하다.


이런 인기는 다른 무엇보다도 지브리의 명성 때문일 것이다. 이미 수많은 걸작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까닭에, 그림체마저 거부감 없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아닐까.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만한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는 이유도 자칫 대중의 열광에 찬물을 끼얹었다 생길 역풍이 두려워서는 아닐지.


일각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전 인터뷰를 근거로 '지브리풍' 그림의 원조인 그가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추론하지만, 비록 저작권 위반일망정 전세계가 자신의 그림체에 열광한다는 사실 자체를 기분 나빠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진짜' 지브리의 신작이 나온다면, 일본과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마 전세계를 제패하게 될 것도 같아 보이니까. 


어쩌면 지브리는 자기네가 가장 잘 하는 방법으로 복수를 계획 중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기술 문명을 비판하고 전원 생활을 예찬하며, 질주와 낙하, 로봇과 비행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신작 애니메이션에서 타인의 생각을 훔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은 '샘'이라는 지브리 캐릭터가 나와서 빌런 노릇을 하다가 결국 주인공 소년소녀에게 응징당한다든지...




[*] 그런데 '지브리풍'의 원조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체도 역사상 선례가 없는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도 하다. 나귀님이 맨 처음 본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은 지브리 이전에 그가 제작진의 일원으로 참여한 <태양의 왕자 홀스의 모험>(1968)이었는데, 훗날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특징으로 자리잡은 소년, 소녀, 꼬마, 동물, 질주, 낙하, 거인(로봇), 비행(기) 같은 소재가 모조리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림체 자체는 오히려 <하늘을 날으는 유령선>(1969) 같은 동시대의 애니메이션과 유사하지, 지금 유행하는 '지브리풍'과 아주 똑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홀스>는 이후의 본격적인 지브리 애니메이션만큼 '지브리풍'은 아니지만 (어쩐지 '영향에 대한 불안' 개념도 떠오른다. 제프 다이어는 재즈 분야에서 '마치 빌 에반스의 연주가 키스 재릿의 연주를 모방한 것처럼 들린다'는 예시를 통해 이를 깔끔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래도 미야자키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지브리풍'이라고는 할 수 있으니, 과연 문제의 '지브리풍'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서부터 갑론을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귀님이 보기에도 챗GPT의 '지브리풍'은 어디까지나 '요즘 지브리풍'이지, <나우시카>나 <라퓨타> 같은, 또는 <코난>이나 심지어 <홀스> 같은 '옛날(?) 지브리풍'까지는 아닌 듯하니, 어찌 보면 이것 역시 과거의 콘텐츠보다는 최근의 콘텐츠가 더 흔하게 마련인 인터넷을 답습한 챗GPT의 근본적인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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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어서 뒤척이자마자 바깥양반이 문득 "애도의 장인"이라는 책이 있더라고 말하기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장인(丈人)"일 가능성은 없으니, 십중팔구 "장인(匠人)"일 것인데, 그렇다면 <애도하는 사람>인가 하는 일본 소설의 내용과도 비슷하게 여기저기 문상 다니며 애도하는 전문가를 뜻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애도의 장인"이 아니라 "에도의 장인"이라는 일본 만화를 말한 것이었다. 나귀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으니, 지난번에 바깥양반이 갑자기 '에도에 관한 책이 있느냐'고 묻기에 일본사 여러 권과 에도의 미술이며 식물이며 패스트푸드에 이르는 여러 주제의 책을 꺼냈다가, '에도(江戶)'가 아니라 '애도(哀悼)'라고 하기에 머쓱했기 때문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에도'와 '애도' 모두 최근에 와서 관련서가 여럿 나오는 등 새삼스레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일본의 옛 도시에 대한 관심은 소설이나 만화 같은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하고, 상례의 한 과정을 가리키는 용어는 과거에만 해도 의례와 관련해서만 사용되었던 듯한데 최근 들어서는 개인과 관련해서도 사용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바깥양반이 말한 만화는 결국 옛날 에도(江戶)에 살았던 장인(匠人)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실용적이고 서민적인 성격이 강한 지역이자 시대였다고 알고 있으니, 대략 <일본영대장>에 수록된 것과 비슷한 내용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에도 산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그런 장인 가운데 하나일지 모르겠다.


제목 그대로 에도 시대에 산책을 핑계로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거리를 재고 지도를 그린 남자의 이야기인데, 일본의 지도 제작자인 이노 다다타카를 모델로 삼았다고 알고 있다. 거기 나온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 중에는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판화 <명소에도백경>의 장면을 오마주한 것도 종종 나타나서 흥미로웠는데, 봄을 맞이해 오랜만에 다시 꺼내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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