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초에 무함마드 깐수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석방 이후로는 정수일이라는 본명을 사용한 모양이지만, 과거의 아랍인 행세를 텔레비전에서 익히 봤던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깐수'일 뿐이다. 분단의 희생자니, 아까운 지식인이니 하는 호의적 평가가 대세라는 것이야 알고 있지만, 뭐랄까, '잘도 속였구나' 생각하면 괘씸한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추앙되는 깐수의 학술에 대해서도 비판적 검토의 여지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나귀님이 그의 연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거 고서점 호산방 대표 박대헌이 제기한 논문 표절 의혹 때문이었다. 한국이 언급된 서양 고서를 오랫동안 수집하고 연구했던 자신의 글을 단골 손님 깐수가 표절해서 논문을 발표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에 <월간 조선>에서 이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깐수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더니, 순순히 실수를 인정하고 사죄하기에 일종의 해프닝으로 조용히 마무리되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간첩 활동이 밝혀지자 해당 기자가 과거의 표절 소동을 떠올리며 '어쩐지 수상했다'며 후속 기사를 썼고, 출소 직후 깐수가 박대헌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어째서인지 없는 것이 없다는 인터넷에서도 관련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으니 기묘한 일이다. 물론 논문 표절 1건을 가지고 깐수의 학술 성과 모두를 부정해야 마땅하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활동에 번번이 따라붙는 독보적이고, 선구적이며, 전무후무하다는 찬사에 잠시 제동을 걸기엔 충분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과거 중국의 2인자였던 주은래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던 어학의 천재라며 치켜세우지만, 그렇게 대단한 인재를 기껏해야 간첩으로밖에는 써먹지 못했던 북한도 한심하고, 본인의 기질이며 능력과는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명령을 따랐던 깐수 양반도 한심할 수밖에 없다. 염소 노려보기를 비롯해 황당한 냉전 시대 첩보 작전들에 버금가는 코미디가 아닌가!


백 번 양보해서 학술로야 칭찬할 수 있더라도, 과연 후세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해 보면 살짝 민망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100년 뒤의 후손이라면 십중팔구 어이없다는 듯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지 않을까? '도대체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눈이 나빴던 거야? 아무리 봐도 외모가 한국 사람인데, 어째서 아랍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거지?' 


어쩌면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중국 고사로 답변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가만 보니 이웃이 훔쳐간 것 같았다. 이웃의 행동을 살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딱 도둑놈 같았다. 그런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도끼는 알고 보니 주인이 다른 곳에 놓아 두었을 뿐이었다. 그제야 다시 살펴보니 이웃의 행동은 전혀 도둑놈 같지 않았다.


결국 한국 사람 정수일을 아랍 사람 무함마드 깐수라고 사실상 전국민이 착각한 까닭은 '믿음'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보였던 것이며, 이후로는 달리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발동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일단 대학 교수라는 쉽지 않은 지위까지 꿰어찬 후에는 외모나 억양 같은 몇 가지 단서로 의심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무함마드 깐수를 텔레비전에서 직접 봤던 나귀님 같은 사람의 입장일 뿐이니, 처음부터 단지 정수일로만 알던 젊은 세대에게나, 또는 더 미래의 세대에게는 또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100년 뒤에 가서는 십중팔구 전청조 같은 유사 사칭 사건과 함께 옛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즉 그냥 웃음거리로만 소비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실제 간첩 사건을 각색한 희곡 <M. 나비>이다. 북경 주재 프랑스 외교관이 중국 여자와 사귀게 되어 아이까지 낳았고, 급기야 여자의 재촉으로 외교 서류를 빼돌리며 간첩질까지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사실 '남자'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 남자는 빈번히 성관계를 가졌는데도 정작 상대방이 '남자'임을 몰랐다고 전한다!


이런 착각이 가능했던 것은 문제의 중국 '여자'가 경극에서 여자 배역[旦]을 담당하는 남자 배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프랑스 남자도 상대를 '남자'로 여겼지만, 그 '남자'가 자기는 사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남장 여자'라고 고백하며 평소에 숙달된 여자 연기까지 곁들이자, 프랑스 남자도 상대방을 '여자'라고 착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극작가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에서 동양 여자를 농락한 서양 남자와도 유사한 사고방식이 저 프랑스 외교관에게도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거꾸로 서양 남자가 동양 여자에게 농락당한 셈이라고 바라본 듯하다. 그래서 <M. 나비>는 간첩 실화와 푸치니 오페라를 극중에 중첩시켜 "신사"(Monsieur)와 "부인"(Madame)이라는 "M."의 중의성을 드러낸다.


진부한 표현을 쓰자면, 프랑스 남자는 '오리엔탈리즘' 때문에 중국 남자를 여자로 착각했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서양인은 사실 양성애자였다니, 과연 그가 어디까지 알았고 어디부터 몰랐는지는 두고두고 이야깃감이 될 만하다. 짐작컨대 희곡과 영화가 망각된 후에도 그 이야기가 회자된다면, 깐수나 전청조처럼 그저 쓴웃음만 자아내서가 아닐까...




[*] <M. 나비>는 동인출판사에서 나온 영한대역본으로 읽었는데, 황당한 오역이 많아서 차라리 절판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간단히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흙바닥(dirt floor)"을 "더러운 마룻바닥"으로, "그 말 취소할게요"(I take it back)를 "그 말을 되돌려드리죠"로, "외교신서사(courier)"를 "우편배달부"로, "바이에른"(Bavaria)을 "원시족"으로 오역하는 식이다. 심지어 2009년의 3쇄본이 여전히 이 지경이다! 차라리 예전 포도원에서 나온 박준용 번역본을 헌책방에서라도 구해 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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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어딘가 엇비슷해 보여서 헛갈리는 "00의 00" 형식의 이름을 지닌 출판사들을 성토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바로 "사월의책", "오월의봄", "봄날의책", "남해의봄날"이라는 곳들인데 (아우, 헛갈려서 쓰기도 힘드네!) 얼마 전이었나, 예전에 적어 놓은 메모를 뒤지다 보니 지난번에 깜박 하고 거기 집어넣지 못한 "사월의눈"이라는 출판사도 있었다!


그런데 "사월"이니 "오월"이니 하는 이름이 있는 것을 보니, 문득 이와 비슷하게 일 년 열두 달의 이름에서 따온 출판사가 더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심심풀이로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의외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일부는 친숙한 출판사이지만 대개는 생소한 출판사이며, 또 일부는 여전히 영업 중이지만 일부는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은 듯하다.


우선 1월은 "일월서각"이 맨 먼저 생각나지만, 이건 아마도 동음이의어인 일월(日月), 즉 "해와 달"일 가능성이 크다. "일월"로 검색해서 나온 "일월당", "일월산방", "일월문학사"도 비슷해 보인다. 이번에는 숫자를 넣어 "1월"로 검색해 보았더니 "일월일일"이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이건 누가 봐도 "1월 1일"을 가리키는 듯하다. 2월과 3월은 해당 출판사가 없다.


4월은 앞서 말한 "사월의책"과 "사월의눈"이 있었다. 5월은 앞서 말한 "오월의봄"을 비롯해서 "너의오월"과 "오월달", 그리고 멕시코 만화가 리우스와 말레이시아 만화가 라트의 책을 냈던 "오월"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월동주"라는 출판사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의외로 없어서 살짝 실망했다. 물론 거기서의 오월(吳越)은 또 다른 뜻이지만.


6월은 특이하게도 "육월"로 검색해도 "유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발견한 곳들이 "유월서가", "유월사일", "유월의샘" 같은 곳들인데, 달 이름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7월은 "칠월의숲"이라는 곳 하나뿐인 듯하다. 8월은 해당 출판사가 없다. 9월은 "구월"이라는 곳이 있던데, 역시 달 이름인지 아니면 다른 뜻인지까진 모르겠다.


10월은 의외로 결과가 가장 많았다. 역시나 "십월"로 검색하니 "시월"이 나왔다. 우선 2019년 10월 5일에 창업한 "시월"이라는 출판사가 있던데, 특이하게도 대표가 브런치에 "1인 출판 분투기"를 연재 중이다. 구분을 위해서인지 알라딘에서 한자를 넣어 "시월(十月)"로 표기한 다른 출판사도 있던데, 특이하게도 활판 인쇄 한정본 시집을 전문으로 내는 듯하다.


그 외에 "시월이일"이라는 출판사는 영어명이 "1002books"인 것으로 보아 10월 2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사월의책"과 유사한 "시월의책"이라는 출판사도 있다. "시월출판"이라는 출판사는 특이하게도 <오디오파일>이라는 잡지의 발행처로 나온다. 1998년에 창간해서 2004년까지 간행한 잡지라는데 알라딘에는 어째서인지 2004년 7/8월호만 등록되어 있다.


11월은 "십일월출판사"가 있었다. 12월은 해당 출판사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13월"로 검색해 보았더니 "13월"이라는 출판사가 진짜로 있었다! 하지만 14-20월, 30월, 50월, 100월, 200월로 검색해도 결과는 전무했으니, 출판사 이름은 1-13월까지가 전부인 듯하다. 물론 "49월"이나 "213월" 출판사가 있을 가능성까지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겠지만.


생각해 보니 "일 년 열두 달"을 망라하는 "사계절" 출판사도 있기에, 혹시나 싶어 검색했더니 "오계절출판사"도 있었다! 문득 "17차"라는 음료수를 상표 등록할 때 유사품을 막으려 "1차"부터 "99차"까지 모조리 등록했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생각났다!(실제로는 "18차"부터 "25차"까지만 등록했으며, "17차"도 사실은 일본의 "16차"의 유사품일 뿐이라 한다!)


이번에는 "한 달"부터 "열두 달"까지 검색해 보았지만 해당 출판사는 없었다. 중간에 "열달란트"라는 출판사가 나오기는 했지만, 당연히 달 이름과는 무관해 보이는 기독교식 작명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 년"은 어떨까 싶어 검색하니 어째서인지 "삼육오(PUB.365)", "체온365", "에브리삼육오(Every365)"처럼 1년의 일수인 "365"가 들어간 출판사가 줄줄이 나왔다!


"이년"부터 "구년"에 해당하는 결과는 없었는데, 뭔가 욕설 같아 보이는 "십년"은 의외로 "십년후"라는 출판사가 있었다! 한편 "백년"은 상당히 많아서 "백년동안", "백년후", "백년도서" 등이 있었다. 또 "천년"은 "천년의상상"과 "천년의시작"이라는 출판사 두 곳에서 나온 책이 무려 1천 권 이상이었는데, 알고 보니 후자가 사반세기 역사의 시 전문 출판사였다!


여하간 심심풀이로 검색해 본 것뿐인데 의외로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삼월" 출판사는 없지만 "십삼월" 출판사는 있는 것도 그렇고, 특이하게도 "시월"이라는 이름을 넣은 출판사가 많은 것도 그렇다. "사계절"은 알았지만 "오계절"도 있을 줄이야! 여기서 문득 "이상한" 출판사도 있나 싶어 검색해 보니, "이상한빛"과 "이상한출판사"라는 곳도 나온다!


여하간 출판사 이름이 엇비슷하고 몰개성하다며 투덜거린 나귀님이지만, 위에 열거한 결과만 보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고민스럽기는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까치"나 "동문선"처럼 충분히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을 만한 출판사 이름은 이미 대부분 선점된 상태이니 말이다.(물론 "까마귀"는 "세발까마귀"뿐이고, "서문선"이나 "소명문선"은 아직 없지만서도).


알라딘 검색창에 뭔가를 입력하려다 보면 자동 완성 기능 때문에 글자 하나만 적어도 뭔가가 쓱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심심할 때 하나하나 눌러보면 희한한 결과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ㄱ"를 입력하면 "알라딘 책팔기 중고 가방"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게 왜 연관 검색되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시간 나면 ㄱ부터 ㅎ까지, A부터 Z까지 정리해 볼까...




[*] 쓰다 보니 한겨울에 숲에서 모닥불을 쬐는 "열두 달의 요정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예전에 TV에서 본 기억이 나서 검색해 보니, 소련 작가 사무일 마르샤크(1887-1964)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의 또 다른 작품이 예전에 동서문화사의 에이브(ABE) 시리즈에 하나 수록되었나 해서 그 해설을 읽다가 "열두 달의 요정들" 이야기를 상기했던 기억이 난다. 검색해 보니 일본에서는 <숲은 살아있다>라는 제목으로 암파소년문고에서 간행되어서 미야자키 하야오도 <책으로 가는 문>에서 언급한 모양인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으니 희한한 일이다. 동생도 작가라고 했던 것 같아서 확인해 보니, 한때 여기저기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교양서로 간행했던 <인간의 역사>의 저자 미하일 일리인(본명은 일리야 마르샤크)이라고 나온다. "열두 달의 요정들"은 그림책으로인가 나온 것을 본 기억이 나서 지금 다시 "마르샤크"로 검색해 보니 절판본 한 권을 빼면 동생 책만 줄줄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구입해서 마루 한구석에 놓아둔 에이브 전집이 있었는데, 이것도 한 번 훑어보고 치워 버리든지 해야 되겠다. 한때 아동서 출판사 편집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 전집이라고 하던데, 대부분 일본에서 나온 번역서를 중역한 짜깁기 전집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괜찮은 것들이 종종 있던데 막상 실제로 재발매된 작품은 별로 없는 듯하다. 하긴 진짜 고전이 아니라면 독자나 출판사나 간에 차라리 같은 소재로 다시 만든 최근작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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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아니겠지만, 예전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인이 플라톤 대화편을 접할 기회도 흔치 않았을 뿐더러, "가혹해도 법은 법이다"라는 라틴어 격언에서 유래했다는 이 표현이야말로 어찌 보면 마치 법치주의의 원칙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처럼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과거 일본의 한 법학자가 소크라테스의 사례에 나타난 실정법 존중의 정신을 "악법도 법이다"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던 것이 저 유명한 철학자의 실제 발언인 것처럼 와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역설적인 사실은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고스란히 감내했고, 심지어 주위의 탈옥 권유를 물리치면서까지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하나인 <크리톤>은 제목과 동명인 인물이 감옥에 갇혀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서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크리톤은 자기가 미리 다 손을 써 놓았으니 그냥 일어나서 나가기만 하면 쉽게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지금 상황에서야 탈옥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반박하면서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껏 국가와 법률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양쪽 모두에 반대했었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외국으로 이주하는 편이 나았겠지만, 결국 그곳에 남아서 지금까지 살았다는 것은 국가와 법률 모두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 와서 그중 뭔가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문맥을 감안하고 보면 "악법도 법이다"도 <크리톤>에서 자세히 설명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제대로 요약하고 있는 표현인 것은 맞다. 물론 무조건적 법률 준수에 앞서 표현과 이동의 자유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다면, 예를 들어 과거의 한국 같은 독재 치하에서는 자칫 나쁜 법률까지도 정당화하는 핑계로 남용되기가 쉽겠지만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다른 대화편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강조하기도 했었으니 상호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재판 중에 열띤 변론을 내놓았던 것이나 판결 후에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 모두 저 철학자의 전체적인 태도며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반론 역시 있다.


여하간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격언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 까닭은 당연히 최근의 여러 가지 사건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 심판, 야당 대표의 개인 비리 재판, 원내 3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재판에서 한결같이 "악법"에 대한 비난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세 명 모두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출신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를 더해준다.


쉽게 말해 나에게 유리하면 "현명한 판결", 불리하면 "잘못된 판결"이라는 식이니, 각자 정의와 양심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물론 법률도 절대적인 것까진 아니지만, 양심도 절대적인 것까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논란이 된 뉴진스의 행보처럼 '내가 보기에는 불공정'이라 해서 뭐든 불공정이 되지는 않으니까.


지금에 와서 이런 모든 사법 불신의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는 그간 권력과 재력에 좌우된 불공정한 판결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법 절차 모두를 불신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피고인의 입에 발린 발언도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를 전제하는 만큼, 판결 불복은 단순한 이의 제기 이상의 심각한 위반이다.


이번의 대통령 탄핵 재판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 계기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사법 불신이 원래 오늘날 제1야당의 근간인 운동권의 주특기였다는 점이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을 줄곧 불신했던 까닭인지 지금까지도 사법 불신 풍조가 지배적인데, 심지어 민주당의 전직 대통령 두 명과 현직 대표가 변호사 출신임에도 그렇다.


최근 서부지법 난입 사건으로 절정에 도달한 사법 불신 풍조는 일차적으로 현직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책임이라 할 수 있지만, 민주당 대표와 원내 3당 대표의 책임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개인 비리에 대한 재판마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며 비난해 왔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법치주의를 부정했다는 점은 결국 너나 없이 똑같지 않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입법가인 국회의원부터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일삼아 오다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물론 트럼프가 이미 수년 전에 비슷한 일을 해내기는 했지만!) 난입 사태가 벌어졌으니, 툭하면 국격 운운하는 나라에서 완전히 나라 망신이고, 이러다가는 과연 탄핵 이후에 법치주의가 재건될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든다.


극우 지지자를 위시한 탄핵 반대 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법원이고 법관이고 간에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실정인데,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서 일단 내려진 판결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해 무효화되고 손상되었는데도,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서 여전히 존속할 수 있을 것 같은가?"(50b) 


어쩌면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내재한 위험을 지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마치 현재 극우 세력의 난동과도 유사하게 대중 선동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빙 스톤 같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반민주주의자라 비판했지만, 저 철학자를 죽인 당시의 정치 상황 자체도 그리 민주적이지는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함으로 재판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비교적 경미한 처벌로 끝날 법한 상황에서 직접 변론하며 '어그로'를 끌어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 동기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데, 혹시 민주주의의 타락 가능성을 목숨 바쳐 경고한 것은 아닐까? 현재 민주적 절차조차 각자의 목적에 악용하는 권력자와 지지자의 모습을 보면, 새삼 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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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트럼프의 인생책" 운운 하는 광고가 있기에, 도대체 어떤 책을 읽었기에 저런 괴물이 생긴 건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엉뚱하게도 <손자병법>이 나온다. 알라딘의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담은 손자병법을 반드시 읽어보라"는 트럼프의 발언 인용문과 함께, 빌 게이츠와 손정의 같은 유명인이 남긴 평가도 한 줄씩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저서 <챔피언처럼 생각하라>에는 이렇게만 나온다. "맥아더도 이 책을 연구했고, 역사 속의 다른 여러 유명한 전략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즈니스스쿨의 추천 도서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담컨대 결코 이례적이지 않다. 그만큼 귀중하고,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즉 그냥 '좋은 책이니 한 번 읽어보라' 정도였다.


물론 트럼프야 저서도 많으니 다른 곳에서는 '필독서'나 '인생책'이라고 밝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우습게도 정작 미국 언론에서 그와 이 병법서를 연관지은 경우는 "트럼프는 <손자병법>을 읽어야 한다"며 거친 태도를 질타할 때가 대부분이니, 취임 직후부터 줄곧 '닥공' 모드인 미국 대통령을 이 책의 홍보에 사용한 것이 과연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나귀님은 현암신서의 <손자병법>,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의 <무경칠서>, 책세상 밀리터리클래식의 <손자병법>처럼 가급적 사례 제시 없이 원문 해석에만 충실한 것으로 번역서를 몇 가지 갖고 있다. 이번에 나온 <손자병법>을 미리보기로 살펴보니 사례 제시에 치중한 듯한데, 산만한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애매모호한 문장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영웅이란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세기의 명장들이 <영웅전>을 읽고 추종했던 리더의 길이 이것이었다. 손자가 말한 리더의 길, 오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25쪽) 그런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뭐, 한니발이 <영웅전>을 읽었다고?


위의 인용문에는 생략했지만, 해당 본문에는 플루타르코스(AD 46-120)와 한니발(BC 247-183)의 생몰년이 병기되었는데, 이것만 봐도 <영웅전>의 저자가 카르타고의 장군보다 더 나중임을 알 수 있다. 카이사르(BC 100-44) 역시 기원전의 인물로서 한니발과 함께 <영웅전>에 등장했었으니, 이건 마치 "조조와 유비가 <삼국지>를 읽고 추종했다"고 말하는 격이다.


애초에 "나폴레옹과 세기의 명장들"만 언급했다면 무난했을 문장에 굳이 "카이사르, 한니발"까지 갖다 붙여서 틀린 것인지, 아니면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세기의 명장들"이 "추종했던 리더의 길"에 굳이 <영웅전>을 갖다 붙여서 틀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사와 전쟁사의 전문가라는 저자의 남다른 이력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애매한 문장은 바로 뒤에도 나온다. "수백 개의 지역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이 통일국가와 강력한 국가, 민족주의를 이룬 데는 참혹한 내전이었던 30년 전쟁과 전 유럽을 상대로 싸운 7년 전쟁, 유럽 전체만큼 강했던 나폴레옹 전쟁이 큰 역할을 했다."(26쪽) 여기서도 "나폴레옹"과 "전쟁" 사이에 "-과의"나 "-을 상대로 싸운" 정도가 들어가야 할 듯하다.


지난번 코페르니쿠스 번역본에 붙은 서울대 교수의 해제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문장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어째서인지 요즘에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까지는 갈 것도 없이 그냥 이해가능한 문장을 쓰는 저자도 드물어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역량 하락이 문제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출판사의 역량 하락도 문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인지 최근 인기를 끄는 고전 해설서들을 보면 아무래도 얕고 급한 느낌을 받게 된다. 새로운 해석도 좋고, 친근한 화법도 좋고, 사례의 열거도 좋지만, 뭔가 천천히 음미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영과 처세에 적용하기 앞서 군사 전략으로서 <손자병법>의 원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던 어느 군사학자의 일침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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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재판 관련 뉴스를 접하다 보니 이른바 '오염된 증거'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는 듯하기에, 문득 예전에 읽은 토니 힐러먼의 단편 내용을 떠올리게 되었다. 황금가지의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2권에 수록된 "치의 마녀"라는 작품인데, 애초에 남녀 모두에게 쓸 수 있는 단어인 "주술사"(witch)를 "마녀"로 옮긴 것부터 시작해서 오역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번에 '수상쩍을 만큼 한 가지에 꽂힌 출판사들' 운운 하는 글에서 '사슴 대가리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언급했지만, 미국의 추리소설가 토니 힐러먼(1925-2008)은 젊은 시절 나바호 인디언 보호 구역에 갔다가 그곳의 풍습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 원주민 경찰 콤비 '조 리프혼'과 '짐 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범죄 소설 시리즈를 35년간 18권 간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중 6권 <고스트웨이>, 8권 <시간의 도둑>, 11권 <카치나의 춤>, 17권 <스켈리톤 맨>, 18권 <셰이프시프터>가 간행되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모두 절판이다. 흥미롭게도 고려원에서 간행된 6권과 11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의 번역자는 원로 영문학자 설순봉인데, <고스트웨이>에는 이 저자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는 역자의 설명이 나온다.


'리프혼과 치' 시리즈는 그 제목에서부터 인디언 고유의 풍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고스트웨이'는 푸닥거리의 일종을, '시간의 도둑'은 유물 절도범을, '카치나의 춤'은 제사를 위한 춤을, '스켈리톤 맨'과 '셰이프시프터'는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존재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디언의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야 그 재미를 더욱 만끽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염두에 둘 점은 주인공들이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만 활동하는 원주민 경찰관이기 때문에, 워낙 소규모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경찰관에게는 얕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미드에서도 지역 경찰과 FBI의 알력이 종종 묘사되는데, '나바호 경찰'은 그보다 좀 더 안습한 처지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청학동 경찰'이나 '마라도 경찰' 정도 느낌이라고 할까.


앞서 언급한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2권의 "치의 마녀"도 인디언 고유의 미신과 외부 세계의 편견을 범죄 소설 특유의 설정과 버무린 독특한 작품이며,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장편으로만 이루어진 '리프혼과 치' 시리즈의 외전 정도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원주민 경찰 콤비 가운데 '짐 치 경장' 혼자서만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바호 경찰 소속 짐 치 경장은 최근 나바호 지역민 사이에서 '주술사'('마녀'로 오역!)로 지목되어 곱지 않은 눈길을 받는 외지인에 관해 수사하던 중에 그 지역 담당자인 FBI 요원 제이크 웰스의 호출을 받는다. 알고 보니 문제의 외지인은 범죄 조직의 피라미 가운데 하나였다가 검찰 증인으로 돌아서면서 FBI의 관리 하에 은둔 생활 중인 인물이었다. 


문제는 그 증인이 나바호족 출신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FBI가 인디언 보호 구역을 은신처로 삼은 것이었다. '사과를 숨기려면 같은 사과들 사이에 두면 된다'는 백인들의 예상과 달리, 정작 그 지역 원주민 사이에서는 그 외지인이 유독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백인이 보기에는 다 같은 사과 같겠지만, 원주민들은 어떤 사과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있으니.


급기야 지역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겪는 갖가지 불운을 새로 온 남자의 탓으로만 돌린다. 레스코프의 <괴물 셀리반>에 묘사되었듯 농사를 망친 것도, 가축이 죽은 것도, 사람이 아픈 것도 다 누군가의 주술 때문이며, 문제의 주술사는 바로 새로 온 남자일 수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 치 경장이었지만, 신고가 들어오니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만 해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던 치는 제이크와 대화를 지속한 끝에 비로소 상대방의 숨은 속내를 간파한다. 문제의 나바호족 검찰 증인은 조만간 이송되어 재판에 나설 작정이었는데, 알고 보니 판결을 좌우할 만큼의 결정적인 증언까지는 보유하지 않은 피라미인 관계로, 자칫 그를 증인으로 소환한 검찰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될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마침 FBI에서는 문제의 증인이 나바호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다는 점에 착안, 타인의 방문이나 협박으로 인해 변심했을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 든다. FBI 요원이 나바호 경찰을 부른 이유도 증인의 '오염' 가능성에 대한 발언을 유도해 내기 위해서였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치는 제이크의 의도를 간파하자마자 확답을 주지 않은 채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건 발생부터 추리와 해결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대화 위주인 내용 전개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FBI의 증인 보호 절차가 원주민 사회의 미신이며 미국 사회의 편견과 맞물릴 때에는 어떤 역설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범죄물의 클리셰를 뒤집는 독특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문제는 번역이 워낙 엉망이라 대명사를 잘못 이해하는 등 종종 헛다리를 짚다 보니, 양측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지 이 작품만이 아니라 책 전체가 문제로 보이는데, 예를 들어 함께 수록된 렉스 스타우트의 단편에서는 대사 가운데 한 행이 누락되어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어서, 결국 구입한 독자만 손해이다!


앞서 말했듯이 "치의 마녀"를 떠올리게 된 까닭은 최근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 '오염된 증거'에 대한 주장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상 계엄의 위헌성과 몰상식이 뚜렷한 상황에서 일부 절차나 증거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은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해 보인다. 마침 오늘 최종 변론이 마무리될 예정이라니, 머지않아 결과가 정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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