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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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브라를 불태우고 거리를 행진하고 촛불을 들고 동일 임금과 가정 폭력 가사 육아 임시 중절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던 1970년대 그리고 2025년 시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해방 투쟁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책은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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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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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작가 클레어 키건은 자신이 가르치는 창작 워크숍에서 한 학생이 이야기 서사에서 드라마적인 구조가 없거나 극적인 긴장감 없이도 이야기가 성립 된 작품이 있다면 예를 들어서 설명 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당시 클레어 키건은 학생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휴식 시간에 자료를 찾아 사무실로 가는 동안 머릿 속에서 하나의 심상이 떠오른다.

사무실에서 빈 손으로 돌아 온 클레어 키건은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다.


매일 직장 사무실로 출근한 남자는 퇴근 시간에 회사를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텔레비전 리모콘을 누르니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다큐멘터리가 흘러 나왔다.

맨 처음 키건의 입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적인 구조나 극적인 긴장감 없이 어느 한 남자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 되었다.

창작 수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간 키건은 수업 중에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 속의 그 남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날 키건은 그 남자의 삶의 한 단면을 쓰기 시작했고 50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2023년 겨울 미국 문예지 뉴요커의 픽션 팟 캐스트 섹션에서 퓰리처 수상 작가이자 매년 뛰어난 창작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수상을 받고 있는 조지 손더스가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 작품이 '그해 최고의 단편'이라며 극찬을 했다.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한국어판 너무 늦은 시간)' 라는 작품을 작가 클레어 키건이 직접 낭독 하는 목소리로 공개 되던 날부터 매일 아침 출퇴근 시간에 소리로만 듣다가 페이퍼백으로 구입해서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소리로 들었을 때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심리와 의도를 활자로 읽고 재차 앞 장으로 돌아가 곱씹어 보니 키건 특유의 간결하면서 건조한 문장에 내포된 인간의 섬뜻함이 느껴졌다.

클레어 키건이 학생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쓰기 시작한 <너무 늦은 시간>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7월 29일 금요일에 더블린의 날씨는 예보와 같았다. 오전 내내 뻔뻔한 햇볕이 메리온 광장에 내리쬐면서 카헐이 지키고 있는 열린 창가의 책상에까지 들어왔다. 잘린 풀의 맛이 바람을 타고 들어왔고 이따금 후텁지근한 바람이 창틀의 담쟁이덩굴을 흔들었다.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


지극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공무원 카헐의 시선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한 때 결혼까지 약속 했던 약혼자 사빈에게 파혼 당한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남자의 일상적인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서 카헐의 입에서 "씹년"이라는 여성 비하 욕이 튀어나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 보니 카헐이라는 남자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작가 키건은 프랑스인 엄마와 영국 태생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빈이라는 여성의 시점이 아닌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남자 카헐의 시점으로 남자들 스스로 지각하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 여성 혐오 대한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 시간을 교차 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 시켜 나간다.

무의식적으로 대화 중에 여성을 암캐, 창녀,씹년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카헐은 갤러리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 사빈이 좋아하는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여자들이 그저 게을러터진 여자라 생각한다.

그는 요리를 잘하는 여자 친구 사빈의 음식은 맛있게 먹으면서 매 끼니 차려진 음식 재료 값을 아까워 하고 설거짓 감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우연히 지갑을 놓고 온 여자 친구를 대신해서 계산 한 것을 두고 두고 잊지 않는 카헐은 매번 자신이 음식 재료 값에 얼마를 지불했는지 생색을 낸다.

결혼 반지 사이즈를 조정할 때 지불해야 하는 돈이 아깝다며 여자 친구 사빈에게 자신이 돈을 찍어내는 기계냐고 화를 내는 순간 카헐은 어머니를 무시했던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사과 한다.

파혼을 당한 후 카헐은 대학 시절 주말에 집으로 돌아왔던 날 모처럼 모인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음식 준비를 했던 어머니가 맨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려고 의자에 앉는 순간 동생과 의자를 빼서 어머니를 넘어뜨렸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그 때 집안 남자들과 함께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남자가 되지 않았을까 라며 후회를 한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50페이지 분량 속에 카헐이 회사에서 청소부 여성 부터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여성 그리고 우연히 광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사비나라는 여성을 대하는 모습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교차 시키며 아버지로부터 학습된 남성성이 성장하는 동안 어떻게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는지 뒤틀린 관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이야기 초반부 작가 키건은 '얽히고 설킨 인간의 싸움과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대체로 매끄럽게 흘러갔다.'라는 문장으로 이 짧은 이야기 전체의 구조를 단 한 문장 속에 내포 해서 드라마적인 요소 없이 극적인 긴장감 없이 완벽한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완성했다.

한국어판 제목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번역 되었지만 실제 이야기는 늦은 시간이 아닌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이라는 제목에 작가가 의도한 응축된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카헐의 인생에 너무 늦지 않게 몇 번의 시간을 되돌릴 기회는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그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전혀 특이할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카헐이 누군가 만나고 통화 하고 문자를 주고 받는 모습에 배어 있는 여성 혐오의 짙은 그림자를 작가 키건은 우리 일상 주변에 지나치는 모든 것에 응축된 의미를 담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작품 분량의 크기는 손바닥만 한 판형에 위 아래로 충분한 여백을 둔 페이지가 100페이지 조금 넘는다. 작정하고 읽는다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휘리릭 책장을 넘길 수 있지만 작가는 독자들에게 맨 앞 장으로 되돌아가서 읽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2024년에 출간 된 너무 늦은 시간(So Late in the Day)’은 25년 전 출간한 데뷔작에 수록된 단편 ‘남극’(1999년 작), 단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2007)을 비롯해 가장 최근 단편인 ‘너무 늦은 시간’(2022) 등이 실렸다.

2007년의 단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에킬섬 하인리히 뵐 하우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된 여성 작가에게 갑자기 찾아온 독문학과 교수라는 남성과 겪는 미묘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여성 작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독문학과 교수는 수많은 남성 작가를 제치고 선정 된 여성작가가 한가롭게 케이크나 만들며 주변 풍광이나 즐기는 한량이라며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로 그녀를 힐난하며 가르치려 든다.

여성 작가는 처음 만난 여성에게 세상의 이치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듯 무시하며 가르치려 드는 남자에게 복수 하기 위해 습작하고 있는 소설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둔 주인공으로 그 남자를 선택하고, 소소한 복수를 단행한다.

1999년 발표작이자 이 책의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된 <남극>은 첫 문장부터 충격을 예고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12월이었고, 또 한 해의 막이 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하고 싶었다.

-남극 중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한 여성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도시로 나가 술집에서 만난 낯선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룬 <남극>은 평소 남편과 아이들 뒤치닥 거리만 했던 ‘여자’가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어봐 주고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직접 장을 봐서 요리 해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씻겨주기까지 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다.

독자는 낯선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 여성의 시선을 따라 영국의 유서 깊은 도시 구석 구석을 따라 가다 예상치 못한 끔찍한 일을 당하는 그 여자의 마지막 여정의 끝, 눈과 얼음의 땅에 도달하게 된다.

단편 <남극>의 마지막 문단에 작가는 독자들에게 섬뜻한 돌직구를 날린다.


어둑함 속에서 그녀의 입김이 보이고 머리를 덮는 냉기가 느껴졌다. 차갑고 느린 태양이 동쪽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녀의 상상이었을까, 아니면 창 유리 너머에 내리는 눈이었을까?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시계를 자꾸 바뀌는 빨간 숫자를 보았다. 고양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이 사과 씨처럼 새까맸다. 그녀는 남극을 , 눈과 얼음과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런 다음 지옥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했다.

-클레어 키건의 <남극> 중에서


키건이 쓴 세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아일랜드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 하고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모습이 아일랜드 전체 남성의 모습이라 단정 할 수 없지만 시간과 세대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심리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그 무엇을 작가가 단단하게 문장 마다 심어 놓았다.

120쪽 분량의 10년의 시간 차를 둔 단편 세 편이 실린 이 작품의 미국판 제목은 ‘여자와 남자들의 이야기(Stories of Women and Men)’이고 프랑스어판 제목은 ‘Misogyny(여성 혐오)’다.

미국판과 프랑스어 판 제목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하나같이 잔잔해 보이는 일상에 숨겨진 폭력과 남성 우월주의, 여성 혐오가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시기와 시차를 갖고 있는 세 편의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적 연민이나 따뜻한 손길은 철저히 배제한 채, 차가운 시선으로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 구조를 서늘하면서 건조한 문장으로 해부한다.

웬만해서 100페이지를 넘겨 쓰지 않는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은 한 번 읽는 것으론 부족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을 때는 밋밋하면서 평이한 문장이지만 다시 한 번 문장을 곱씹으며 등장 인물이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심리와 사소한 행동을 따라 음미 하며 읽는 동안 앞서 등장한 인물에게 포착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면을 알게 된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1999년부터 2022년까지 발표한 작품은 5권 뿐이다.

단편 소설집 《남극(Antarctica)》과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하자 마자 아일랜드에서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휩쓸었고 중편 분량의 장편 소설 《맡겨진 소녀(Foster)》는 미국 타임지에서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 되었다.

영화로도 제작 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 소설 부문에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 후보작에 가장 분량이 작은 작품으로 올랐다.

클레어 키건은 2023년 너무 늦은 시간(So Late in the Day) 원고를 완성한 이후 신간 소식이 없다.

그녀의 작품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이 개봉 할 때마다 인터뷰에서 문예 담당 기자들은 새 작품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지며 신간을 기다리고 있다.

영미 문학계에서 너무 많이 화자되고 있는 클레이 키건의 작품은 모든 작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25년 동안 발표한 다섯 권의 책을 쓴 클레어 키건을 가리켜 '탄광 속에 보석' 같은 작가라 칭송하고 미국 문학계는 그녀를 21세기 체홉이라 칭송한다.

작가들에게 극찬과 칭송을 받으며 세계적인 문학상을 휩쓴다 해도 내가 읽고 나서 감흥이 없다면 나에게 대단한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첫번째, 두 번째 세번째 네번째 그리고 다섯번째 연달아 클레어 키건의 책을 읽으면서 조지 샌더스 작가가 21세기 체홉이라고 극찬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절제되고 지적인 암시를 담담하면서 서늘한 공포로 차오르는 슬픔을 흘러 넘치지 않게 서서히 새어 나오게 사용하는 작가 클레어 키건은 오로지 세상에 자신의 언어로만 쓸 법한 문장으로, 저만이 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낸다.

형제 많은 집안에서 양육과 생계에 지친 부모에 의해 친척 집에 잠시 위탁 되어 처음으로 보살핌과 사랑을 느끼는 9살 소녀의 이야기부터 가부장, 종교, 이웃, 빈부, 남녀, 욕망, 소문, 평판, 술, 비겁함, 두려움 같은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음습함'을 작가 키건은 응축된 문장에 담아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공기처럼 펼쳐 보인다.

단순하고 감각적인 어휘로 서정적이고 정교한 문장을 조각 하는 작가 키건의 언어는 소리 내어 읽어야 단 몇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진실과 진의가 숨어있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여자가 울고 있다.”

-클레어 키건 단편 <굴복> 중에서


나는 단편 <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등장한 여자 작가의 모습이 작가 클레어 키건의 모습이라 상상하며 읽는다.


그녀는 책상 위의 종이 조각들을 보고 거기 적힌 메모를 읽은 뒤 한쪽으로 치웠다. 만년필 뚜껑이 빡빡 했지만 결국 열고서 공책을 펼쳤다.

그가 그녀의 케이크를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는지를 생각했다.그녀는 그 갈망과 싸우면서 고개를 숙이고 공책에 집중한 채 계속 써 내려갔다.


다섯 권의 키건의 책을 책꽂이에 나란히 꽂아두고 대 작가 체홉 작품을 읽으면서 스산하게 그려낸 아일랜드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삶의 흔적과 상처를 발견 하게 되는 것도 신기하고 새삼 작가의 역량이 대가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오늘 우연히 본 영상 속에 그 무엇에 끌려서 충동 구매를 하거나 먹어 본 적 없는 것을 먹거나 가본 적 없는 곳을 찾아 가기도 한다.

영상과 달리 내가 구사하는 언어로 적힌 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마음 안의 썰물과 밀물이 밀고 당기듯 파문의 파도를 일으키는 구절을 만날 때가 있다.

명료한 묘사보다 암시와 은유로 사람 사는 풍경을 그린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녀가 그린 인물들의 심상들이 내 마음의 파고를 따라 움직이며 마음 속에 꾹꾹 담아 놓았지만 쉽사리 말로 표현 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 동안에 읽을 정도로 얇고 가벼운 클레어 키건의 책은 다 읽고 나면 다시 펼치게 만든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에 도파민에 중독되어 웬만한 이야기에 대한 감동이나 감흥이 사라진 시대에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 일 뿐이라 생각 할 것이다.

만 오천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고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기에 페이지 분량에 비해 책 가격이 비싸서 외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만 오천 원으로 120페이지 분량의 세 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대단한 사건 하나 없는 며칠의 일상이 어쩌면 삶 전체를 바꾸는 소중한 무엇이 될 수도 있다.

옥토가 아닌 땅에도 씨를 뿌리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듯이 클레어 키건이 지어낸 이야기에는 지극히 평탄해 보이는 삶에서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선이 깨어지고 피어나지 않을 듯 했던 꽃이 피어나는 기적의 순간이 찾아 온다.

그러니 더 늦지 않은 시간에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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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미 문학사의 3대 비극으로 일컬어진다.












<모비딕>의 첫 장 서두를 여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 해두자]라는 문장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벽돌 부피의 분량에 본명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슈메일이라는 모호한 인물이 화자로 등장 하는 <모비딕>의 초반부는 고래잡이 상선에 올라탄 이들이 거친 바다의 풍랑에 부딪치면서 겪게 되는 고단한 삶의 여정처럼 읽혀진다.

특히 소설의 상당 부분은 신문 르포타주 처럼 고래 사냥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들과 고래 잡이들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쉽사리 페이지가 넘어 가지 않는다.

이내 중반부를 넘기지 못하고 책장을 덮고 나서 책 커버에 붙은 현란한 수식어들에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세계 3대 비극, 미국 최고의 걸작, 역대 가장 많은 미국 대통령의 추천 도서, 미국 중고교 학생들의 필독서, 성경만큼 널리 읽혀지는 작품, 세기의 명작....

아무리 세기의 명작이라 해도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고 고리 타분한 전개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지 못한다.

하지만 멜빌의 <모비딕>이 성경 만큼 널리 읽혀지는 작품이라면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쳐 먹고 책을 펼쳐 집중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가장 먼저 첫 문장에 등장 하는 <이슈메일>은 누구인가.?

'이슈메일'은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스마엘이라는 발음이 된다. 유대인의 시조 아브라함은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자식이 없다. 대신 하녀의 몸에서 그의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들의 이름이 이슈메일이다.

하지만 이후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들을 낳자 하녀의 아들 이슈메일은 추방되어 척박한 팔레스탄인 땅을 헤매는 방랑자가 된다.

단지 하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한 이슈메일의 원죄는 무엇인가?

어미의 비천한 신분 탓인가?

아니면 태생적 운명 탓인가?

구약 성서 창세기 16장을 읽고 또 읽어도 이슈메일의 운명은 가혹할 뿐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 허먼 멜빌은 왜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성경에서 따온 이슈메일이란 이름을 부여했을까?

24만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스물 한 살의 청년 이슈메일은 고래잡이 상선에서 홀로 살아남아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세상에 전하는 전형적인 이야기꾼이지만 정작 방대한 작품 속 주인공이 아니다.

이슈메일은 '피쿼드'라는 고랫배에 승선 해서 태평양으로 출어 했다가 ‘모비딕’이라 불리는 거대한 흰고래에 받쳐 배가 침몰하게 되자 반드시 그 흰고래를 포획하기 위해 광기 어린 집념에 사로잡힌 선장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한 인물이다.

따라서 <모비딕>은 다른 모든 동료 선원들이 사망한 가운데 악착 같이 혼자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스스로 이스마엘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하는 한 젊은이의 체험담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이슈메일이라는 청년이 무법천지의 고래잡이 상선에서 가까스로 홀로 살아남아서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고래 잡이 상선인 포경선 '피쿼드'는 미국 백인들에게 전멸 당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으로 미국 북동부와 코네티컷 강 유역에 거주 했던 미 대륙 토착 원주민 부족이다.

1637년 백인 부대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피쿼드 부족의 비극은 민족 분쟁을 넘어 인종 섬멸 작전으로 불렸던 미 대륙의 끔찍한 피의 역사의 한 부분이다.

미 대륙 원주민이 최초로 백인 부대에 맞서서 대등한 대결을 벌였던 <피퀴드 전쟁>은 영국에서 '메이 플라워' 호를 탄 백인 기독교 인들이 미 대륙에 도착 한지 17년 만에 미국 북동부 지역을 점령하며 신게계에서 거둔 눈부신 '승리'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허먼 멜빌이 <모비딕> 작품을 통해 미대륙의 피의 역사의 한 부분을 상징적으로 표현 했던 것일까?

흰 고래는 잔혹한 미 대륙의 침략자 백인 기독교도들을 상징하는 것일까?

수수께끼 같은 암시로 가득찬 <모비딕>은 단순히 몇 단락으로 스토리를 요약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작품이다.

<모비딕>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고래 사냥과 고래 잡이의 삶의 여정을 지나서 중반부로 들어 가면 고래를 추적해서 파멸 시키려는 에이햅 선장의 광기 어린 인간의 섬뜻한 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와 있듯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다. 큰 어머니로 부르는 사라의 박해를 피해 하녀 신분인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을 떠나 모래 사막 같은 황무지 각지를 방랑하는 추방자이고 방랑자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등장하는 이슈메일 역시 계모 밑에서 고아나 다름없이 자라난 인물이다. 그에겐 가정도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정 붙일 곳 없는 육지에서 기약 없이 무작정 바다를 떠도는 모험의 길을 선택했다.

절망적인 소외감에서 선택한 자신의 여정 속에서 이슈메일은 피쿼드호의 선상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삶의 조건으로 바라보며 광기와 이성을 ‘평등한 눈'으로 바라 본다.

독자들 중에서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완독 하지 못할 경우 우주 같이 방대한 <모비딕> 작품에 감춰진 중심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 폭의 풍경화에는 숲과 나무 그리고 강이 있듯이 방대한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 등장인물들의 생김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숲 속의 나무 뿐만 아니라 뒤엉킨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소설 읽기의 진정한 매력은 전체 이야기의 핵심인 중심부와 그 이면에 감춰진 세부 사항의 전체 도감을 머릿 속에 그려 보며 소설의 진정한 주제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다.

2024년 2월 1일 부터 투비컨티뉴드에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00회 완결을 기획해서 2025년 1월 9일 제 1부 50회 부터 중반부로 넘어 갔다.


https://tobe.aladin.co.kr/n/306335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914년 유럽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가문의 '이슈트반 저택'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세대와 인종, 그리고 계급별로 나눠서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내고 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장군 죄르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루돌프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어머니 시시황후의 영향으로 헝가리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했던 황태자 루돌프는 보수적이고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 하는 황제 아버지와 달리 진보적인 사상으로 시대를 앞섰던 선구자였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절친이였던 장군 죄르지의 인생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았고 어느 날 후계자 자리에 올라간 사촌 동생 페르디난트 대공이 펼쳤던 평화적인 외교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 「젊은 보스니아」(Mlada Bosna)에 속한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요제프는 모든 것이 유지 되길 바랬다.

반면 그의 아들 황태자 루돌프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만 제국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 된다고 믿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에는 20세기 초 격변의 시대에 세대와 인종,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 중에서 역사에 실존 했던 인물과 내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첫 번째 출발 지점은 '비밀의 사제관'이다.


https://tobe.aladin.co.kr/n/149538


이야기의 초반부에 장군 죄르지와 그의 어린 딸 조피나, 집사 마그다,남자 하인 언드레시, 요리사 어누슈카,영국 국교회 교구당 소속에 이슈트반 가문 저택 사제관 목사 클라이만, 정원사 요셉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가정교사 안나와 세상을 떠난 마망 아가타, 엄마 릴리가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가정 교사 안나가 사라져 버린 사실에 놀란 조피나는 떠난 이유도 몰라 그녀가 사용했던 방으로 들어가 슬픈 감정을 억누른다.

조피나는 2살 때 세상을 떠난 엄마 릴리와 3년 전 엄마 곁으로 간 마망 아가타를 그리워 하던 중 목사 클라이만이 있는 사제관 예배당으로 간다.

예배를 마치고 저택을 벗어나 목사 클라이만과 함께 전차를 타고 시내로 나간 조피나의 눈 앞에 1914년대 부다페스트 전경이 펼쳐 진다.

조피나와 목사 클라이만이 저택을 나간 사이에 조피나의 방은 불길에 휩싸이고 불이 진압 된 후 시신 한 구가 발견 된다.

그다음으로 등장하는 제 2화 '이슈트반 저택의 이방인'들 편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부다페스트 시장 비서 티서가 소환장을 들고 저택으로 찾아 와 장군 죄르지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티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계 촛침처럼 감시하고 관리하는 비서 쾨니그의 모습이 나온다.

제 3화 '토끼 섬의 고아들'편에는 도나우 강 유역에 있는 토끼 섬의 수도원에서 비서 쾨니그와 죄죄 박사가 한 여자 아이를 탈출 시키고 목사 클라이만은 아이의 신변 보호를 위해 교구당 신도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 소녀의 이름은 주전너, 장군 죄르지와 같은 나이인 소녀는 저택의 하녀가 된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초반부의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 될 수록 독자들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장군 죄르지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저택에서 불이 났을 때 조피나는 어디에 누구와 있었을까?

사라진 가정교사 안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토끼 섬의 수도원에서 탈출한 고아 소녀 주전너는 누구 일까?

조상 대대로 귀족 가문의 아이들, 사회적 지위가 없는 여성들, 하녀와 하인들, 부패한 공무원과 관료들, 사회적 지위 상승을 꿈꾸는 유대계들, 피 땀 눈물을 흘리는 노동자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사상가들, 계급의 차별과 부의 평등을 위해 싸우는 아나키스트들, 제국의 영토를 넘보는 스파이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비록 역사에 이름을 새기지 못했지만 내가 창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야기가 중심부를 향해 치닫는 동안 앞서 등장한 인물들과 깊이 연결된 인물들의 사연들이 맞물리면서 서서히 갈등이 증폭 되어 퍼즐 조각처럼 흩어졌던 복선들이 하나 둘 씩 맞춰져 나간다.

2025년 7월 3일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제 75화 '신 앞에 맹세하다' 지점까지 다다랐다.


https://tobe.aladin.co.kr/n/454202


1914년 세계는 수 세기에 걸쳐 유지 되었던 계급과 질서가 요동치며 민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들끓어 올랐다.

세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루 하루 성실하게 자신의 삶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역사적 사건 속에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투영된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개개인의 삶에 중첩되어 펼쳐진다.

누군가는 격변의 시대에 편승하고, 누군가는 개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기존 체제를 전복 시키기 위해 총을 꺼내 들었다.

격변의 시대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 남는다.

소설의 첫 시작은 작가로 하여금 그 소설을 쓰도록 이끈 직감과 사고, 지식들이 총 동원되지만 이야기가 중심부를 향해 치닫을 수록 삶에 관한 심오한 관점이 투영 되어 깊은 곳에 실재 할 수 있는 어떤 신비한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세기의 걸작 <모비딕>과 비교 할 수 없지만 1년의 시간을 넘어 70회에 달하는 분량을 쓰는 동안 단순 시대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아닌 1914년대의 격변의 역사 현장에서 살았던 인물들의 삶의 여정 속에 담긴 진실함을 담고자 노력 했다.

2023년 1월 12일 부터 투비 컨티뉴드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꼬박 2년의 시간을 넘어 2025년 7월 3일 현재까지 1670개의 노트를 발행했다.

현재 투비 컨티뉴드에 총 10개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고 매일 <모닝 페이지>에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s/2724









[왜 우리는 창조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창조력만큼 사람들을 관대하고 즐겁고 활기차고 대담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재물이나 다툼에 무관심하게 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 중에서


창작 플랫폼에 매일 글을 쓰고 창작을 하고 부터는 하루 일과가 이전 보다 더 촘촘해졌고 시간을 좀 더 효율적이고 융통성 있게 쓰게 되었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 이다.

24시간에서 평균적으로 잠자는 시간(일반적으로 6-7시간 숙면)을 제외 하면 개개인이 활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은 대략 12시간 정도일 것이다.

밥벌이를 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항상 머릿 속에서도 마음 속에서도 글을 쓰고 있다.

숏품 그리고 웹툰과 웹소설의 범람 속에서도 깊이 있는 스토리를 찾아 읽는 이들이 있다.

집필 공간도 집필을 구상하는 노트도 출간을 준비 하기 위해 쓰는 원고도 없는 무명 작가가 쓴 에세이 <모닝 페이지>와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꾸준하게 읽어 주는 독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왜 쓰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안에 갖고 있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사고를 한 쪽으로 밀어 버리고 내 안에 숨어 있는 평온하고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그러니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해선 안 된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글쓰기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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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6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34년,학교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망막렌즈가 장착된 안경을 쓰고 학습에 필요한 자료를 머릿 속에 떠올리면 망막렌즈에 삽입된 홀로그램에 검색 결과들이 주르륵 뜬다.

학생들이 입력한 키워드가 자동 완성어로 입력되어 화면에 뜨는 순간 눈동자의 시선 방향으로 스크롤을 밀면 자동 음성 변환기가 읽어준다.

역사, 지리, 언어, 과학,사회, 문화 학습을 인공지능 학습 기기의 지도 아래 학습을 마친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통째로 다운로드 받아서 지식 인지 기능 역할을 하는 뇌 이식 칩 속에 넣는다.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되는 체육 수업에서 지난 주에 모의 게임 축구 시합을 하는 동안 익혔던 행동 기억 기능 장치를 켜자 망막 렌즈에 장착된 안경 화면에 이번 시합의 전술과 전략에 맞춰 각 선수들의 포지션 자리가 자동으로 뜬다.

2034년의 로봇 교사는 수업 내용과 교실 안에서 학생들의 행동과 주고 받는 대화를 실시간 듣고 정리해서 학부모들에게 일괄적으로 전송 한다.

교실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학생, 화장실이나 도서관, 운동장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폭력적인 행위는 교내 설치된 CCTV카메라에 찍히고 교실 안 창문 유리창에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과 언행을 일삼는 학생들의 얼굴들이 자동으로 뜬다.

2034년 학교에서 개인의 인권 침해나 ,교권 보호, 학생의 인격 존중에 대한 법적 분쟁이 일어날 일이 없다.

학교에 등록하는 모든 학생들은 이런 규율과 규칙에 합의하고 동의 하겠다는 계약서를 작성 하고 각 반 마다 배치된 로봇 교사들은 몸이 아픈 학생, 신체가 불편한 학생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별해서 별도 관리를 하고 보호와 심리 상담을 주기적으로 한다.

2034년 교실 안에선 학생들 사이에서 집단 따돌림도 교내 폭력과 폭언 그리고 성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는 모욕적인 언행도 사라진다

인공지능 학습 교육을 받지 못할 정도로 극빈의 가정은 아이들의 행동 기억과 인지 능력이 뒤떨어져서 ‘생각하고, 말하는’ 기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홈스쿨링을 통해 책 읽기와 글쓰기 학습 교육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1980년대 미국 IBM이 개발한 고급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Fortran)’의 쓰임새는 주로 과학적 공학적 계산을 하는 언어로 쓰였다.

인간을 대신해서 복잡한 수리적, 공학적 계산을 담당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후 40여년동안 무한 급수적으로 발전해서 ‘파이선(Python)’이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능이 향상 되었다.

1차적으로 컴퓨터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를 숫자와 기호로 조합해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에 가장 근접한 조합의 수를 찾아 2진수로 표현한 기계어(Machine Code)가 ‘파이선(Python)’이다.

컴퓨터가 ‘파이선(Python)’이라는 언어적 도구를 이용해서 인간의 생각과 계획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변환하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을 ‘코딩’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고차원적인 지식과 활동 영역을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있어서 '코딩' 작업은 고도의 전문적 기술이 필요하다.

컴퓨터 구조와 데이터 구조, 메모리 계층을 심도 있게 이해해서 정확한 목표 설정과 정보를 수집하는데 유용한 알고리즘의 마인드 맵을 구축해 나간 프로그래밍 언어는 자연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로 발전 해 나갔다.

인간이 구사하는 대화, 작문, 번역과 검색 기능의 알고리즘을 학습해 나간 챗GPT의 약자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Model’이다.

GPT 약자에는 인공지능이 어떤 학습으로 연결 되어 있는지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장 먼저 기존에 사용 되었던 인공지능 언어와 달리 각 단어 사이의 관계 중요도를 파악해서 서로 연결하는 맥락 연결망(Attention Network)을 갖춘 GPT는 텍스트 속의 문자와 문장 뿐만 아니라 문단의 ‘맥락(Context)’까지 학습한다.

문자와 문단 ‘맥락(Context)’을 학습한 GPT는 ‘변환 모델(Transformer Model)’기능 단계로 넘어가면 백과사전 책 한 권을 통째로 읽고 인터넷, 도서관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서와 책을 모두 학습해 나가면서 읽고 기억하고 학습하며 방대한 알고리즘을 축적 해 나간다.

‘변환 모델(Transformer Model)’기능 단계에서 영어로 된 책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된 책과 정보를 읽고 학습한다.

이렇게 ‘사전 학습(Pre-training)’을 통해 방대하게 읽어나간 GPT는 인간의 몇 세대에 걸쳐 학습한 지식을 단숨에 학습해서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해도 웬만한 질문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벌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결과는 알파고의 4대 1승리였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거둔 승리는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마지막으로 거둔 승리가 되었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중에서


2016년 세계 바둑 신 이세돌과 바둑을 두었던 인공 지능 알파고는 책이나 문서 속 한 단어, 한 문장, 혹은 한 문단을 비워 놓고, 그 속을 채워 넣기 연습을 끝없이 하며 잘 채워 넣으면 높은 점수로 보상을 주는 글 채우기 게임으로 창작을 위한 ‘생성(Generative) 능력’을 키워 나갔다.

자기들끼리 게임 하듯 서로 문답(問答)하고, 서로 평가하고, 그리고 보상하면서 학습하고 성장해 나간 챗GPT는 ‘생성 인공지능망’ 언어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와 문장 외에도 영상, 비디오, 음악 등 다양한 형식의 생성 기능을 가진 다중 모드(Multi-modal) 인공지능 능력으로 거듭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제 챗GPT의 생성 능력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딩 능력에 까지 이르러서 의뢰를 받아 인간을 대신해서 코딩을 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성한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원리를 인간에게 설명을 해 주고 인간이 작성한 코드를 분석해서 실수를 고쳐주는 디버깅 작업도 하고 기존 코드를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변환까지 시켜 준다.

알파고가 바둑 기사 이세돌을 상대로 4대 1로 이긴지 10년 만에 인간을 대신 해서 정보를 찾고 분류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계산을 대신 해주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능을 장착한 로봇이 걷고 말하고 뛰는 신 인류의 시대가 도래 했다.

눈동자만 깜빡 하면 대화 하듯 명령하고 주문하면 원하는 걸 척 척 만들어 주는 신 인류 시대에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인건비를 절약 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밥벌이가 되었던 직업군들까지 인공지능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생성 인공지능망’ 언어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와 문장을 방대하게 학습 하는 기능을 갖춘 챗GPT는 자판기에 버튼을 누르면 맞춤법을 고쳐 주고 문장을 다듬어 주고 특정 전문 지식에 관한 정보를 찾아 분류 해서 전문적 글, 창의적 글, 정보성 글, 광고 문구들도 척척 써 낸다.

인간이 손으로 컴퓨터 키워드로 검색하고 수정하고 정보를 찾지 않아도 챗GPT와 채팅하듯 대화 하며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동안 인간은 컴퓨터에 글을 쓰면 자동으로 맞춤법을 수정해주고 단어의 의미를 찾아 주고 정보를 찾으면서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 하면서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고 정보의 정확성을 구별 해서 최종 결과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인간이 실수를 하듯 생성형 인공지능(AI)도 학습 하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생성해서 존재하지 않는 패턴이나 객체를 인식해 부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경우가 아주 많다.

부정확한 정보를 진짜처럼 말하고 여러 정보를 짜집기 해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행동형 인공지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백퍼센트 신뢰 할 수 없고 신 인류의 시대가 도래 했다 해도 인간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걷고 말하고 읽고 쓰는 고도의 사고 능력을 퇴화 시키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탑재된 챗 GPT는 인간에게 만능 학습 보조 교사이자 동료이고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지만 정작 인간의 고유의 영역 이였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논쟁의 불이 활활 붙었다.

어떤 창작자의 글이 AI가 썼는지 아닌지를 구별 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사고하고 글 쓰는 능력까지 퇴화 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문해력이 퇴화 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인간이 동굴에 살았던 시절 부터 행해 왔던 구술과 필사, 인쇄 기술은 챗GPT는 1분이 채 걸리지 않게 학습 하고 발전 시켜서 인간처럼 읽고 쓰며 로봇 사피엔스가 되고 있는 동안 정작 인간의 문해력은 퇴화 하면 자연스럽게 쓰는 능력까지 저하 되고 있다.

챗 GPT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나는 투비컨티뉴드에 2025년 2월 21일 새 시리즈 <AI 시대에 글 쓰는 법>을 발행했다.


- 2025년 2월 21일 모닝 페이지 <AI 시대에 글 쓰는 법>

https://tobe.aladin.co.kr/n/318234









중국에서 약학자인 어머니와 통계 과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으로 태어난 켄 리우는 할머니의 보호와 양육 아래서 성장하며 11살에 미국 땅으로 건너 와서도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았다.

1년 만에 영어를 습득한 켄 리우는 새롭게 정착한 미국 땅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력을 키웠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두 딸의 아빠가 되어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마이크로 소프트 엔지니어로 근무 하면서 번역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수많은 문학상을 휩쓰는 SF문학계의 스타 작가가 되었지만 자신의 두 아이를 편리한 기능이 장착 된 유모차에 태우지 않고 아기 띠를 자신의 몸에 묶어서 어부바로 키웠다.

두 아이에게 직접 책을 읽어 주고 함께 종이를 접고 붓으로 한자를 써 주며 양육에 온 힘을 기울였던 켄 리우는 전업 작가로 살지 않고 여전히 과학 기술계에 종사 하며 곧 다가올 미래 세계를 몸소 경험하며 활자로 구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


[AI의 주요 효과 중 하나는 경쟁의 장을 평준화한다는 점이다. 글쓰기, 아이디어 창출, 분석, 그 외 여러 전문 업무에서 역량이 하위권에 속한 사람은 AI의 도움으로 상당한 실력을 갖출 수 있다.]

-이선 몰릭의 <듀얼 브레인> 중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진, 비디오, 스캔자료, 드론영상, 녹음 기록만 있으면 무한 복제 되어 맞춤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받아 원하는 대로 새로운 아바타로 탄생 하는 세상이다.

글쓰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기술 중 하나다.

인간 영장류와 가장 흡사한 원숭이, 오랑 우탄은 연필을 쥐고 무언의 형체를 그려도 스스로 사고 하며 심혈을 기울여서 확장 축소 편집, 필사 그리고 받아쓰기를 하지 못한다.

인간은 두 손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쉼없이 찾고 분류하고 분석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효율적인 생산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그 결과 현재 이 세상 어디에서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 네트워크 연계성이 더해지면서 우리는 또 다른 기술적 대 변혁을 겪게 되었다.

전에는 불가능 했던 모든 것을 방 구석에서 실시간 감상하고 이동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을 대신해서 쓰고 말하고 걷고 움직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영상과 자동 인식 행동 학습으로 인지기능과 근육 기능을 키운 인간은 쓰기와 읽기 능력을 상실해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도 인공 지능 기기가 대신 해 주게 되어서 미래 세상엔 데이터 센터에 갇힌 기계 속 유령들은 복수심과 분노에 불타 세계에 반격을 가한다.

이런 반란을 일으킨 기계 속 유령들은 국가들의 보안 프로그램을 해킹해 서로 미사일을 날리게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모든 것이 데이터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데이터 센터의 유령들은 세상을 살릴 수도, 멸망 시킬 수도 있는 ‘신’이 된다.

우리는 앞으로 신화나 동화나 영화 속에서 살았던 인물들 처럼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여러 번 다양한 모습으로 환생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데이터 통신망에 접속하면서 노출되고 수집 된 정보와 기록 그리고 이미지들은 인공지능의 거미 망에서 어떻게 학습되어 어디서 어떤 용도로 쓰이게 될지 모른다.

이런 기계들이 활보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단 한순간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쓰고 읽고 보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AI 시대에 글 쓰는 법>

1. 한번에 한 단락씩 한 쪽씩 쓰기


https://tobe.aladin.co.kr/n/318262


2025년 2월 21일에 <AI시대에 글 쓰는 법> 제 1회 . [한 번에 한 단락씩 한 번에 한 쪽 씩]을 발행 했고 2025년 6월 25일 이 글로 투비 선정 2차 인증 작가가 되었다.


https://tobe.aladin.co.kr/event/290357


우리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설계된 종(種)이다.

따라서 어떤 진실은 오로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뿐 데이터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총 10회 분량의 AI 시대의 글 쓰는 법을 연재 할 예정이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AI 시대에 누구보다 더 멋지게 글 쓰는 법을 많은 구독자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2. 글쓰기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 과정이다.


https://tobe.aladin.co.kr/n/45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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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사용 할 수 있는 인간은 매일 무언가 쥐고, 만지고 들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손에  쥐고 있을까?


특정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당신은 거기 서서

엄청나게 커다란 양배추

혹은 바이올린

혹은 밝은 색 풍선을

들고 있다.

그건 그 자체로 일이다.

한 가지만 하는 단순한 행위

 - 마이라 칼만의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중에서

짙은 색 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빨간 풍선 다발을 들고 분홍 빛 벛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곳을 지나간다.

그림 속 여자는 풍선만 들고 있는 것일까?

사는 동안 무언가 들고, 지고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c)maira kalman

'거대한 바위를 안고 아몬드 꽃 사이를 걷는 내 꿈속의 여자(Women in my dream walking through almond blossoms holding a giant boulder)'라는 제목의 이 그림 속의 여인은 자신의 몸 보다 몇 배나 커다란 바위를 양 손에 힘겹게 들고 있다.

저 바위는 그녀에게 무엇일까?

온갖 근심과 걱정 덩어리들, 슬픔과 회환,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들이 저 바위 크기 만큼 온 몸을 짓누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커다란 무게로 삶을 짓누르며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가 많다.

(c)maira kalman

내가 짊어지고 있는 고민과 걱정 덩어리들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양배추 크기였다면 매일 몇 장씩 잎을 떼어내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 해서 전부 씹어 삼켜 버릴 수 있다.

양배추를 가지고 있었을 때와 양배추 한 덩어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났을 때의 마음 상태가 다르듯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금전이나 물건도 사용하면 닳아 없어지는 마당에, 하물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이나 행복을 어떻게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c)maira kalman

태어나는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않고 태어나는 인간은 성장하는 동안 무엇이든 쥘 수 있을 것만 같아도  흐를 수록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정작 삶의 소중한 시간은 허비하며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놓치는 동안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있기도 하고, 꼿꼿하게 버티고 있기도 하며, 어깨 위에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의 무게를 벗어던지기 위해 인생을 행운의 날벼락 같은 숫자에 맡길 때도 있다.


산책 하듯 강변 길을 걸어 가면  꿈의 숫자, 로또 1등  당첨자들을 쏟아내는 행운의 명당 판매점이 있다.

 경제가 나쁠 수록 불티나게 팔리는 건 저가형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그리고 로또다.

로또 복권 당첨 확률은 815만분의 1일 정도로 낮은데도 불구하고 로또를 살 때 마다 '혹시 모르지, 당첨될 지도 '라는 꿈에 잔뜩 부풀러 오른다.

이따금씩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딱히  행복하지 않아도 꽤 만족스러울 때면 내 몸 하나 온전히 버텨 내는 것 만큼 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만 같다. 

취업난, 월급난, 물가난에 허리가 휘어지는 나날 속에  커피 한 잔 값으로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며 일주일의 고된 시간을 버티며 어떤 것을 가졌다가 낙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성해나의 <혼모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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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25 0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또 당첨자가 나오면 로또 당첨자보다 그곳이 더 잘될지도 모르겠네요 혹시나 하고 로또를 사는 사람이 많을 테니... 로또를 파는 사람은 자신이 당첨되는 걸 좋아할지 로또가 잘 팔리는 걸 좋아할지...


희선

2025-06-25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