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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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다양한 생태계와 기후 상태를 연구 하고 그 지역에 생존하고 있는 생태계의 습성과 진화 상태를 관찰 하기 가장 좋은 지형은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다.

일본 홋카이도 쪽으로 흐르는 쿠릴 열도의 출발지인 캄차카반도는 태평양과 오호츠크해에서 미국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알류산 열도와 인접해 있어서 북극의 툰드라 기후와 남쪽의 습한 기후로 인해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으로 전 세계 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몰려 가는 곳이다.



17세기말에 러시아인들이 도착하기 이전까지 캄챠카 반도에는 곰과 순록 그리고 연어를 사냥하며 기후 변화에 맞춰 이동하며 살았던 이텔멘족, 코랴크족 원주민들이 드문 드문 살고 있었던 곳이였지만 19세기 러시아와 일본 열강들의 침략으로 백 러시아인들과 일본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러시아가 캄차카 반도를 점령 하면서 핵원료 생산과 핵실험 장소가 되었다.

대 자연은 시간이 축적되듯 핵 방사능에 오염 되었고 반도 땅에서 다양한 민족들과 평화롭게 공존 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은 극소수만 살아 남게 되었다.

소련 체제 아래서 방출된 엄청난 방사능이 캄차카 반도의 자연과 생활 터전을 오염 시켜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전 세계에서 백혈병과 각종 암, 기관지염 같은 질병의 발병률이 높은 곳이 되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나서 서구인들은 이 지역에 탐사와 탐험, 관광과 연구 목적으로 방문 하면서 무분별하게 들어 오는 서구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생태계가 파괴 되었고 토착 원주민들과 토종 동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멸종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보다 약간 넓은 크기의 캄차카 반도는 1년 중 활동 하기 좋은 온화한 기후가 단 3개월 뿐이고 이 시기에 현지인들은 연어와 곰 사냥 그리고 외지인들을 위한 관광 안내와 숙박으로 생계를 유지 하고 있다.

수도 주변 지역은 광물 자원이나 핵실험으로 마구잡이로 개발 되어서 생태계가 파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지구 생태계의 다양한 기후와 멸종 직전의 동물들을 볼 수 있고 특이한 지형이 많아서 외지인들이 끊임없이 이 곳으로 몰려 가고 있다.

불꽃이 치솟는 활화산 부터 얼음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이칼 호수와 바다 깊숙한 심해까지 전부 외지인들이 훑고 지나가서 생활 터전을 빼앗긴 곰과 순록들이 인간들이 거주 하는 지역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아 다니거나 습격을 하는 일이 자주 발생 하고 있다.


파리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프랑스 태생의 나스타샤 마르탱은 알래스카 지역의 원주민인 그위친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습성과 문화를 탐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알래스카 북부와 캐나다의 유콘 지역에 걸쳐 살고 있는 애서바스칸 인디언의 11개 지파 중 한 종족인 그위친(Gwich'in)족은 침략자 러시아와 미국에 대항하며 북극야생보호구역의 석유 자원 개발에 반대했던 유일한 부족이였다.

하지만 수 세기 전에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로 이주한 그위친족은 러시아와 일본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잔혹하게 학살로 극소수만 살아남아서 무자비한 자원 개발이나 동식물 사냥을 막는데 대항하지 못했다.

2015년 그위친족의 이동 경로와 습성과 문화를 연구 하는 젊은 인류 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 북동부로 이주해서 그곳 원주민과 혼혈 된 에벤인을 대상으로 인류학 연구를 진행 하기 위해 캄차카 화산 지대 근처에 연구 기지에 터를 잡는다.

2015년 8월 인류학자 마르탱은 에벤인 족의 한 가정에 거주 하던 중 활화산 움직임이 시작되던 날 연구 진척을 확인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 간다.

몇 날 몇 일 동안 산을 오르며 강과 불화산을 만나는 위기가 도사리는 숲 속 한 가운데서 동료들이 잠시 다른 지역을 탐사 하러 갔던 날 곰 한 마리가 인류학자 마르탱이 거주 하고 있던 공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단 몇 분 만에 곰의 날카로운 이빨은 그녀의 얼굴 반의 뼈와 살을 무너뜨렸고 턱의 반쪽도 부숴버렸다.

마르탱은 치료를 받는 중에 극심한 통증으로 발 버둥치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상처 부위에 파고 들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마르탱은 무사히 러시아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가 후속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러시아 의료진 치료를 불신한 프랑스 의사들이 강행한 재수술에서 병원성 세균에 감염되어 혼수 상태에 빠진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곰이 이빨을 드러내며 그녀를 공격 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간을 지나 병원에 긴급 우송 되어 곰에게 습격 당한 부위를 수술하고 회복되는 시기에 마르탱은 곰과 마주 했던 끔찍한 순간을 떠올리며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날 늦은 밤, 문장들이 종이 위를 가로지른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명백한 것들, 내 마음속 깊이 충격을 준 것들을 쓴다. 나에겐 두 권의 현장 노트가 있다. 하나는 주간용으로 세세한 묘사와 대화 혹은 말의 녹취가 어수선한 형태로 한가득 적혀 있다.

집으로 돌아가 체계를 부여 하기 전까지는 상세한 정보의 축적을 정리해서 그것을 토대로 균형적이고 알기 쉬우며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기 전까지는 대부분 몹시 난해 하다.

다른 한 권은 야간용이다. 여기 적힌 내용은 불완전하고 파편적이고 들쭉 날쭉 하다. 나는 그것을 검은 노트라고 부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간 노트와 야간 노트는 나를 갉아 먹는 이중성의 표현이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상징이다.

-나스타샤 마르탱의 <야수를 믿다.>

마르탱은 인류학자로서 관찰하고 목격하고 경험한 것까지 모두 연구 자료의 토대로 활용하려는 의지 만으로 노트에 그 날의 사건을 떠올리기 시작하지만 곰에게 무자비하게 습격 당한 육신의 통증으로 정상적인 사고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캄차카 반도 땅에서는 오래 전 부터 곰과 혼혈 종족들이 서로 경계 하며 공존 하는 삶을 살아갔지만 침입자인 외부인들의 약탈과 파괴로 소멸과 멸종의 시간대로 들어섰다.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회생한 인류학자 마르탱은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곰에게 큰 습격을 받고도 이 사건을 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지 않고 과거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의 경계가 파열 되어 균열을 일으킨 것이라 스스로 정의 한다.

나는 내가 곰과 함께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었나? 내가 기다리던 자가 누군지, 꿈에서 본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나?

내가 사방으로 그의 흔적을 밟은 이유와 언젠가 그와 눈을 마주치기를 은근히 바란 이유를 알고 있었나?

자연의 생태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종족을 탐구했던 인류학자 마르탱은 회복 되는 동안 그날의 습격으로 부숴지고 함몰된 현재 자신의 몸 안에서 가족에게 받았던 정신적 상처의 트라우마와 조우하게 된다.

유년기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 홀로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양육 했던 엄마,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 엄마를 위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지구 반을 돌며 인류학 연구에 매진 했던 마르탱은 마음 한 구석에 도사 리고 있던 우울증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육신이 파괴된 캄차카 반도 땅에 다시 찾아 간다.

곰에게 습격 당하기 전 마르탱은 캄차카 반도 땅의 동과 서, 겨울과 봄 그리고 새벽부터 밤까지 탐험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논문에 채워야 하는 탐구 대상 목록을 찾아다니는데 급급했었다.

하지만 반쪽 얼굴이 함몰 되고 다리를 절뚝 거리는 육신으로 다시 찾은 캄차카 반도에서 마르탱은 처음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빛이 나는 밤 하늘의 별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는 태곳적 만남을 따라 끝까지 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있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인간 애니미즘의 근본은 가면의 변형된 얼굴이다. 반절은 사람, 반절은 바다표범, 반절은 사람, 반절은 독수리, 반절은 사람, 반절은 늑대, 반절은 여자 반절은 곰, 얼굴의 이면, 짐승들의 인간적인 실체, 그것이 봐서는 안 됐을 자의 눈 속에서 곰이 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눈 속에서 내 곰이 본 것이다.

-나스타샤 마르탱

인간은 캄차카 반도의 땅 속 깊이 매몰된 광물을 캐고 화산재를 퍼 날라서 핵 개발을 하고 강과 바다의 밑바닥까지 훑으며 기후의 변화를 연구 하고 자생하는 동식물을 마구 잡이로 채집하고 사냥 하는 사이 곰의 개체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고 부화 한 곳으로 되돌아와 생을 마감하는 연어들은 방사능으로 오염 되어 인간에게 먹히지 않아도 곧 죽을 운명이 되었다.

영화 보다 더 악랄한 악당 지도자들이 활개 치고 있는 현 시대에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원과 드넓은 땅을 소유 하고 있는 미국의 지도자는 인접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집어 삼키고 북극과 가까운 그린란드에 미국 국기를 꼽고 더 나아가 미국 땅으로 건너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내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으로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을 보유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땅을 집어 삼키려는 러시아의 푸틴은 캄차카 반도 땅 속에 매몰 시켜 놓은 핵무기를 만지작 거리며 인류 전체를 위협 하고 있다.

숲 속의 사냥꾼은 먹잇감의 냄새를 풍기며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사냥감을 유인 할 수 있어도 지구의 회전 방향을 뜻대로 바꿀 수 없지만 연어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고 곰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 온 침입자들을 공격 할 수 있는 본능을 갖추고 있다.

자연에서 가장 초라하고 빈약했던 인간은 동굴과 숲을 벗어나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 도시 생태계를 건설 했지만 남쪽에 살던 기러기가 먹이를 찾아 생명을 부화 시키기 위해 북극 하늘로 날아 오는 걸 막지도 못한다.

눈부신 과학 기술로 문명의 진보를 이룩해 온 인류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기술 발명이 인류의 모든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사이에 빙하는 녹아 내리고 있고 땅바닥은 갈라져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다.

홍수와 쓰나미, 지진과 산불로 철새들은 떼 죽음을 당하고 있고 연어는 돌아 오지 못하고 오염된 토양에서 태어난 가축들은 인간에 의해 살처분 당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분석하고 통제 할 수 시대가 되었다 해도 현재 지구 곳곳은 붕괴되고 무너지고 있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데로 변화되거나 바뀌었던 적이 없었다.

지구 상의 악당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의료 기술과 치료로 생존 시간을 끌어 올린다 해도 100년을 넘어 설 수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삶은 자연을 거슬러서 영원 불멸한 삶을 살 수 없다.

과거를 반복에서부터 조금이라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이상한 과업이다.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결속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오묘하고도 가련한 과업이다. 지나간 일, 일어난 일,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연결고리를 푸는 일은 단순하지만 힘든 과업이다.

-파스칼 키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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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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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고백>은 신인 각본상 가작 수상을 시작으로 창작라디오 드라마 대상을 수상 하고 같은 해 소설 추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일본 내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일본 문단에서 <미나토 가나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 미나토 가나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류회사에 근무 하던 중 일 년 만에 퇴사하고 남태평양에 위치한 통가 섬에서 청년 해외 협력대 대원으로 2년 동안 봉사 활동을 했다.

귀국 후 효고 현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 하다 같은 학교 국어 교사와 결혼과 동시에 교사 일을 그만둔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결혼 생활 10년 동안 아내로 엄마로 살고 있는 자신의 인생이 무기력 하다 생각해서 무작정 서점에 달려가 창작법과 글쓰기에 관한 책을 사서 매일 밤 식구들이 잠든 시간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이 바로 우리 반에 있다”는 고백과 함께 열세 살 중학생 범인들을 상대로 가혹하게 복수하는 교사 이야기 <고백>으로 추리 소설계의 돌풍을 일으킨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첫 작품 <고백> 이후 출간하는 작품 마다 미스터리 랭킹 1위를 차지 하며 400만부 가까이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인간의 마음 속에 스며든 독을 소름 끼치게 해부하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데뷔 이후 첫 작품을 출간 한지 15년 동안 세상의 악을 마주 보며 글을 썼다고 고백 할 정도로 죽기 살기로 작가로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글을 썼다.

독자들에게 읽고 나면 기분이 찝찝해진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작가는 일본 내 최고 작가의 자리에 올려 주었던 살인, 복수극이 아닌 '아무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쓴다.

데뷔 15년 만에 발표한 8편의 연작 소설 ‘여자들의 등산일기’는 이별의 슬픔, 사랑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 오랜 열등감 등 제각각의 고민을 안고 산에 오르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 단숨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서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대학 시절 취미가 등산이였던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자전거를 타고 일본 열도를 여행 하며 오르지 않은 산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배테랑 등산 매니아로 드라마에서 산행 하는 등산객 중 한 명으로 카메오로 출연했다.

2014년에 발표한 ‘여자들의 등산일기’에서 일본 니가타의 묘코산과 히우치산을 시작으로 홋카이도의 리시리산, 뉴질랜드 통가리로산 등을 경유하는 산과 국립공원, 산악 페스티벌까지 등정 하는 모습을 담았다.

2021년에 출간한 <노을진 산정에서> 는 앞서 발표한 등산일기의 속편 연작 소설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산은 다음과 같다.

-우시로타테야마 연봉(도야먀/나가노)

-북알프스 오모테긴자 (나가노)

-다테야마ˑ 쓰루기다케 (도야마)

-부나가타케ˑ 아다타라 산 (시가)

작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우시로타테야마 연봉은 도야마에서 나가노까지 펼쳐진 산으로 이 산에 오르는 여성들은 평지부터 시작해서 1530미터까지 올라가서 리프트를 타고 1673미터에 위치한 지조노카라시 도미 능선을 걸어서 2490미터에 있는 고류 산장을 목표로 등정 하기 시작한다.

우시로다테야마 연봉 등산 코스는 위험한 쇠사슬 구간이나 사다리 타기도 없는 비교적 안전한 코스다.

이 등산 코스 대열에 참여한 여성들의 나이대는 60대와 40대들로 1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현재는 카페 ‘GORYU’를 경영하고 있는 65세의 다니자키 아야코는 생전에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그 산 코스 등정에 처음 참여 했다.

훗교쿠 유업에 다니는 회사원 마미야 미코는 42세로 거래처인 카페 ‘GORYU’에 들렀다가 단골이 되어 카페 주인 다니자키 아야코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그녀는 대학시절 산악부 출신으로 처음 산에 올라가는 아야코를 등산로 입구로 이끌어주다가 함께 산 정상에 올라간다.

은퇴 후 남편이 등산에 미쳤다 생각했던 아야코는 산 정상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살아 생전에 함께 오르지 않았다는 걸 후회 한다.

“등산로 입구에 선다는 건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거야. 등산로 입구까지가 멀거든.”

'산에 오르면 그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북알프스 오모테긴자> 편에는 고등학생 노가미 유이가 등장한다.

지방 동네의 작은 노래자랑 대회에서 트로피를 휩쓸던 가수지망생 노가미 유이는 음악 교사에게 방과 후 레슨을 받아 음악 대학에 기적적으로 입학해서 성악을 전공한다.

유이는 반주자 메이트이자 피아노 전공의 이와타 유카로와 유명한 음악가 집안 출신에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마에다 미사키와 함께 산에 올라간다.

출신도 성장 배경도 다른 세 명의 음대생들은 산을 오르는 동안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걱정을 한다.

평범한 회사원 아버지를 둔 유이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가인 부모님을 따라서 해외 초청 연주회를 다녔던 미사키가 독일 유학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부러워 하며 질투를 한다.

산을 오르는 동안 자연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이와타 유카로는 유이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을 작곡 하고 싶어 한다.

출발선부터 다른 미래의 음악가들은 과연 목표 했던 산 정상에 무사히 올라 갈 수 있을까?

돌아보지 않는다. 똑바로 앞을 보며 올라간다.

커다란 바위를 돈다. 창끝이 떡 나타난다. 공이 날아갈 거리 정도가 아니다 눈 싸움도 가능한 거리다. 하지만 이걸로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냉담하게 밀쳐내니까

'언젠가는 누군가 죽겠지?' 라고 기대하며 읽다가 다음 편 산에 올라가는 이들의 사연을 따라 가다 보니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면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오해와 갈등을 풀어 나가고 화해 한다.

산을 올라가는 과정은 종종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한 고비를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고비가 나타나고, 한 고비에 올라서고 나서야 산을 내려가는 동안 앞으로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 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미나토 가나에의 <등산 일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혼자 산에 올라가지 않는다.

손님과 가게 주인 사이로 만난 이들, 전공이 다른 대학 동기들, 갈등을 겪고 있는 엄마와 딸, 가업 승계자였던 오빠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가업을 있게 되어 힘에 버거웠던 이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동창과 함께 산에 올라간다.

서로 다른 삶을 살며 서로 다른 인생의 행로를 걸어가던 이들은 산에 오르는 동안 누군가로 부터 도움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

능선을 걷다 아담한 바위 밭을 올라간 곳에 정상이 있었어.

내 머리 위에는 하늘, 파란 하늘 단지 그것 뿐이야.

어느 날 문득 산에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양한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 내고 가고 싶은 산에 직접 등정 한 영상을 찍은 어느 유튜버 채널 영상에 시선을 고정 시킨다.

뒤이어 알고리즘으로 올라오는 비슷한 주제의 영상을 관람하다 어느 새 도파민에 중독 되어 눈으로 감상한 그곳은 이미 가 본 것이나 다름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의 여유가 있게 되면 타인에 대해 너그러워지지만 지금의 내 삶이 힘겨워서 나 살기도 급급할 경우에는 누가 어떻게 되던지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다.

소득 양극화로 인한 빈부의 격차 ,갈수록 줄어드는 안정적인 일자리로 불안한 앞날이 나날이 짙어지고 있는 이 사회가 지옥이라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산은 천국인 것이다.

지난 괴로운 날들은 괴로웠다고 인정해도 돼.

힘들었다고 입 밖에 내어 말해도 돼.

그리고 그걸 지나온 자신을 그냥 위로해줘.

이제부터 다음 목적지를 찾으면 되는 거야.

-미나토 가나에의 <노을 진 산정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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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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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굿바이, 콜롬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학계에 데뷔한 필립 로스는 1969년 율법의 결벽 속에서 성(性) 불능이 된 유대인 변호사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는 문제작<포트노이의 불평> 출간 즉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평단과 종교계를 뜨겁게 달아 오르게 만든다.

뜻밖에도 독자들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든 <포트노이의 불평>에 열광하고 필립 로스는 단숨에 문학계 중심 인물이 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필립 로스는 1970년대부터 유럽 문학계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이며 동유럽권 출신 작가들과 교류 하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체코 68혁명 세대의 중심 인물이였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과 밀란 쿤데라와 만남을 통해 꾸준히 서신 교류를 이어가던 중 평소 자신이 존경 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무덤이 있는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다.

그는 이념이나 사상 체제 비판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서방 세계로 망명한 동유럽권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그들의 작품이 영미권에 출판 할 수 있게 힘을 쏟는다.

1970년대 필립 로스는 공산 체제하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유린 당하는 동유럽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 자전적 분신(分身)인 네이선 주커만을 주인공 또는 관찰자로 등장 시킨 일련의 소설을 발표하며 학계의 부조리와 타락한 지식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투영시켰다.

작가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1988년 경 필립 로스는 뉴욕 맨해튼에 머물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친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TV에 네가 나오고 있다"는 친척 앱터의 말에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그 전화는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었다.

나흘 후 작가 필립 로스는 인터뷰 취재 일정이 잡혔던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로부터 "조만간 예루살렘에서 강연한다고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마침내 누군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1988년 1월, 신년이 밝은 지 며칠 뒤에 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 친척 앱터가 뉴욕의 내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 주었다. 트레블링카에 근무하던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내가 예루살렘에서 방청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대작전>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방청 하고 있었던 또 다른 필립 로스라는 인물은 현시대 유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전체주의라며 유대인을 유럽에 재정착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던 필립 로스는 수면제 ‘할시온’ 부작용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여서 이 모든 것이 수면제 부작용으로 인한 자신의 환각이 아닐까 의심한다.

때 마침 예루살렘에서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던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있다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실에 전화를 건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로 전화해서 511호실로 연결 해 달라고 말했다. 목소리를 위장하기 위해 나는 프랑스 말씨를 썼다.

자신을 ‘필립 로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칭범에게 작가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기자 ‘피에르 로제’라고 역으로 사칭하고 진실을 알기 위해 그와 대화를 시도 한다.

" 여보세요, 로스 씨? 필립 로스 씨 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정말로 그 작가예요?"

"그렇습니다."

"<포트노이의 불평>의 작가?"

"그래요. 그래요. 누구십니까?"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순간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실화 인지 작가 필립 로스가 창작한 허구적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앞선 작품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다.

그는 '샤일록 작전'에서도 자신을 사칭하는 '필립 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나치 집권기 유대인 수용소 간수의 전범 재판이 한창 진행 되는 것과 동시에 점점 격화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봉기를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기로에 서 있는데 소설을 써요? 이제 저는 유대계 유럽인들의 재정착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리즘에."

작가 필립 로스의 사칭범은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을 방청 하고, 유력 정치인을 만나 정치적 주장을 공표한다.

사칭범은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디아스포리즘을 주창하며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일삼자 이 소식을 들은 진짜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사칭범을 대면한다.

자신을 사칭하고 다니는 자를 만나러 간 작가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 땅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고 이들의 입을 통해 박해를 받았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밀어내는 정복자의 잔혹한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승리 했다. 이와 함께 확인된 것은 유대인의 귀화 또는 동화 또는 정상화가 아니라 유대인의 힘, 홀로코스트의 냉소적인 제도화가 시작된다.

필립 로스가 마주한 이스라엘 땅의 사람들 중 친척 앱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폭력의 후유증을 떨쳐 내지 못한 상태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은 이들에게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점령지 라말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팔레스타인 출신 조지는 작가에게 이스라엘 압제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유대인들의 군사국가가 의기양양하게 으쓱거리는 가운데 이제 정복자가 된 유대인이 과거에는 희생자였으며 순전히 그 역사 때문에 정복자가 되었음을 온 세계에 시시각각 날이면 날마다 일깨워주는 것이 유대인들의 공식적인 방침이 된다.

군사 강국이 된 이스라엘은 촘촘한 첩보망을 통해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협력을 붕괴 시키는데 몰두 하면서 요인 암살과 정적 제거 스파이 색출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지식인들을 지원하며 소설과 영화에서 유대인들이 박해과 억압의 희생자라는 걸 전 세계인들에게 주입시키는 작업을 주기적인 홍보 캠페인처럼 펼치며 잔혹한 방법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죽이는 모습을 감춘다.

유대계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걸 끊임없이 상기 시키는 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지를 꿀꺽 집어 삼킨 뒤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역사적인 정의에 따른 정당 보복 조치라며 자기 방어 논리를 펼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는 이제 유대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성경에 새로운 장이 하나 더 생긴다면 하느님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민족을 파괴하려고 일억 명의 아랍인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거기 실릴 것"이라고 한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 중에서

작가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자는 스스로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투사라며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유럽에 재정착해서 이스라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이 나라의 영토를 1948년 수준으로 줄이고, 군대를 해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아랍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폴란드나 루마니아, 독일에 유대인을 재정착 시켜서 서구에 유대인을 분산 시키자는 주장에 맞서던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그 이면에 펼쳐 지고 있는 첩보 작전인 일명 <샤일록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들에게 모이셰 피픽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놈이 꾸미는 일과 내가 꾸미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이 조지 지아드에 대해 물어 보는 것에 모두 대답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첩보 작전, '샤일록 작전'에 가담하게 된 필립 로스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유대인 정체성과 그들의 역사적 고난, 그리고 현대 정치 상황을 밀도있게 서술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이 작품 맨 첫 장에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을 변형해서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며 현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인물과 장소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변형 시킨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필립 로스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샤일록 작전>은 1993년 출간 즉시 당시 첩보소설의 문법을 빌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이듬해 미국 최고 소설에 수여하는 펜/포크너상을 받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에서 이스라엘 법정에 선 존 데미야뉴크의 실제 삶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1940년 나치 시절 강제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는 동안 유대인 수용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데미야뉴크는 1988년 1월 예루살렘 지방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미야뉴크는 항소심에서 소련 측 증거를 제시하며 판결에 불복했지만 1심 판결을 받은 지 오 년 만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20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태어난 데미야뉴크는 스탈린 통치 당시 자행 되었던 대기근 홀로도모르(기아에 의한 살인 )에서 살아 남아 2차 대전 발발 이전 까지 집단 농장에서 트랙터 운전수로 일하다가 군에 자원 입대 한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독소 전쟁에서 패한 독일군과 유대인들을 수용했던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학살 증거가 철저히 사라져서 절멸 수용소라 칭함)에서 감시원 역할을 하다가 종전 후 수감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트럭 수송 담당을 하던 중 수용소에 탈출한 여성을 돕다가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다.

1952년 미국 이민청에 등록된 데미야뉴크의 서류에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소련군 출신으로 종전 후 난민 캠프로 이동하는 차량을 운전 했던 운전수라고 기록 되어 있었다.

미국 땅에서 강제 포로 수용소 간수였다는 과거가 사라진 데미야뉴크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하이오 주에 정착해서 포드사로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전기 기술자 일을 하며 함께 도망친 아내와 세 아이를 낳고 시민권을 받는다.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수감자들은 수감 당시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가 데미야뉴크라고 지목한다.

1986년 60세를 훌쩍 넘긴 데미야뉴크를 체포한 이스라엘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법정에 선 데미야뉴크는 자신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 했을 뿐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고문을 가 한 적이 없다고 적극 항소 한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무너지고 연방 체제의 사슬이 사라지고 나서 국가 주요 기밀 문서가 공개 된다.

소련 국가 기밀 문서에 의하면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는 데미야뉴크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였다.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했던 데미야뉴크를 기억하고 있는 생존자를 찾아낸 변호인단은 수용자들에게 데미야뉴크가 가장 친절했던 인물이였다는 증언을 받아 낸다.

장장 5년 동안 이스라엘 법원과 소송을 이어갔던 데미야뉴크는 독일과 폴란드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범죄 행위가 발견 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2002년 유대계 단체와 이스라엘 정부는 데미야뉴크가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 뿐만 아니라 29000명의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독일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던 기록을 찾아 내 그를 독일 법정에 세운다.

장장 10년에 걸쳐 미국 지방 법원과 이스라엘과 유대계 단체가 데미야뉴크의 시민권 박탈과 추방을 놓고 법정 공방을 펼치는 사이에 90세를 넘긴 데미야뉴크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독일은 소비보르 수용소 전범 재판을 종결 시켜 버린다.

데미야뉴크가 사망 하고 나서도 유대계 단체들은 끈질기게 그의 범죄 흔적을 찾아 다녔고 마침내 데미야뉴크로 추정되는 사진을 유대인 추모 기록관에 증거로 제출한다.

2025년 임기 두 번째를 맞이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의 자발적 출국과 이주를 돕겠다는 외교적 발언을 하고 나서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나눈 회담 자리에서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에게 통째로 넘겨 주는 '가자 점령’ 계획을 논의 했다.

이는 유대인이 나치에게 당한 인종말살 정책을 가자지구 주민에게 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유대인들끼리 분쟁을 벌어야 하는가 단순히 유대인과 유대인 사이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또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오. 세상에 이보다 더 다중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소?

모든 유대인의 내면에는 유대인 '무리'가 살아요. 착한 유대인, 못된 유대인, 새로운 유대인, 옛날 유대인, 유대인을 사랑하는 자, 유대인을 증오하는 자. 이교도의 친구, 이교도의 적, 거만한 유대인, 상처 받은 유대인, 경거한 유대인, 파렴치한 유대인, 거친 유대인, 점잖은 유대인, 반항적인 유대인, 달래는 유대인, 유대인 다운 유대인, 유대인에서 벗어난 유대인....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한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을 차용한 <샤일록 작전>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만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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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3-06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의 두 거대 기둥 할배들끼리 실제로 만난 적도 있었군요. 할시온 거 별로긴 한데 로스 할배 시절에는 졸피뎀이 없었나 보군... 아직도 번역될 소설이 더 남은 것도 신기하네요. 난 아직 할배책 쌓아 놓은 것도 너무나 많은데...

2025-03-06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3-07 18:29   좋아요 1 | URL
ㅋㅋㅋ역시 모르는게 없는 척 척박사 scott님!!!!
 
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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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흔적을 불현듯 책장과 서랍을 정리 하다가 꽁꽁 테이프로 붙여둔 상자 속에서 발견 될 때가 있다.

이번에 전부 버려 버릴까 아니면 추억의 저장고처럼 남겨 둘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은 지난 시절 노트 마지막 장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일기장이다.

그리고 언젠가 숙제로 제출 했던 것들이 상자에서 불쑥 튀어 나올 때도 있다.


몇 학년 때 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가사 숙제로 자수를 놓는 걸 제출 할 때 였던 것 같다.

실과 바늘로 무언가 꿰매는 것에 서툴렀던 나를 위해 오래전 외할머니께서 기본 자수 스티치 10개를 표본 처럼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주셨다.

자수 틀과 실, 바늘 그리고 직접 기본 스티치를 해서 디자인까지 고안해 주신 외할머니는 바구니에 색색 과일이 담긴 이 자수 스티치 옆에 이런 설명을 적어 놓으셨다.

-아우트라인 스티치:줄기, 덩굴, 윤곽선, 작은 글자등 가는 선을 표현 할 때 사용.한국 자수의 이음수와 같은 수법,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늘땀이 반씩 겹치도록 수놓아간다.

외손녀의 숙제를 위해 직접 자수 스티치 스크랩북을 만들어 주셨던 외할머니는 항상 손에 무언가 쥐고 계셨다.

그 무언가는 주방과 거실, 마당과 정원, 방안마다 달라졌고 하루 해가 질 무렵 거실 쇼파나 식탁 의자에 앉아 계실 때면 뜨개질 바늘이나, 펜 그리고 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항상 부지런하셨던 외할머니는 아침 방송 요리 프로그램을 볼 때도 노트를 꺼내 놓고 끄적이셨고 라디오를 틀어 놓았을 때도 노트를 꺼내셨다.

외할머니가 쓰셨던 노트는 아들과 딸이 학창 시절에 쓰던 노트들이나 어디선가 무료로 준 노트, 가계부나 부록으로 달려 온 것들이였다.

이따금씩 내 것을 구입 할 때 외할머니에게 새것을 사다 주면 무척 기뻐 하셨고 쓰기 아깝다며 서랍장에 넣어두셨다.

외할머니가 쓰는 것에 대해 가족들 모두 큰 관심을 갖지 않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나 삼촌들은 가계부를 적고 있다고 생각했고 집안과 관련된 것 장보기, 해야 할 일 같은 일정을 정리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노트에 무엇을 쓰고 계셨던 것일까?

여기, 반 세기 전 가족들 몰래 일기장을 사서 모두가 잠든 사이에 일기를 쓰는 여성이 있다.

“애초에 일기장을 산 것 자체가 실수였다. 그것도 아주 큰 실수. 하지만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기장을 산 건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처음부터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일기를 쓰려면 몰래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미켈레와 아이들에게 숨겨야 할 테니까. 나는 비밀을 만들기 싫다. 게다가 우리 집은 너무 비좁아서 비밀을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 중에서

1950년 11월 어느 일요일 아침 일찍 남편에게 담배를 사다주기 위해 집을 나선 발레리아는 남편 미켈레, 아들 리카르도, 딸 미렐라와 함께 살고 있는 마흔 세 살의 평범한 주부다.

그녀는 반질반질하고 새까만 표지의 두툼한, 학생들이 쓰는 평범한 공책 첫 장에 '발레리아'라고 자신의 이름을 쓰는 상상을 하며 공책을 산다.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담배가게와 문방구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일요일에 담배가게에서 담배 이외의 상품 판매를 금지했다.

공책을 사겠다는 발레리아에게 담배가게 주인은 '금지된 일'이라며 엄한 표정으로 거절을 한다.

발레리아는 담배 가게 주인을 설득해 공책을 손에 넣고 코트 속에 꼭 숨겨서 집으로 돌아 오지만 집안 어디에도 일기장을 안전하게 보관할 서랍도 없고 가족들 눈에 띄지 않게 쓸 장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는 나만을 위한 서랍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내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0년 11월 20일 첫 장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발레리아는 2주 넘게 한 글자도 못 쓰고 일기장을 감춰만 두고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을 곳을 찾기 위해 장소를 수시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녀의 일기장은 빨래 바구니 속에 들어 가 있을 때도 있고 부엌 찬장에 들어 가 있을 때도 있고 신발장 서랍, 옷장 속 낡은 코트 속에 들어 가 있다가 마침내 서랍 깊숙이 넣고 열쇠로 잠금장치를 해 놓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내가 나만을 위한 서랍을 가지고 싶다고 하자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뭘 넣으려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 중략 … 아니면 일기장을 넣어 놓을 수도 있자. 미렐라처럼.”

일기장이라는 말에 모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는 미켈레까지도.

“오 여보, 이 나이에 무슨 비밀이 있을 수 있겠어?”

- 금지된 일기 중에서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한 발레리아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귀족 가문이였던 외가가 몰락한 발레리아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겨우 은행원으로 취직한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는데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사무직에 취직한다.

귀족 가문 자녀들만 다녔던 학교를 졸업한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부유해서 여유롭게 쇼핑하고 티타임을 갖는 시간에 발레리아는 퇴근 후 장을 보고 세탁을 하고 집안 청소까지 하느라 한시도 쉴틈이 없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가난의 상징이자 수치였던 시대에 발레리아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 만으로 사회의 따가운 눈총과 편견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가족들은 그녀의 이런 노력을 전혀 고마워 하지도 않고 당연히 집안의 모든 일은 가족 모두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발레리아 몫이였다.

발레리아는 가족 몰래 숨어서 일기를 쓰면서 가족을 위해 사용해야 할 시간을 허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노트를 채워 나갈 수록 결혼생활의 위기,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모성의 버거움,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마주한다

겨우 푼돈을 모아 추위에 떨지 않으려고 산 코트를 딸 미렐라는 엄마는 늙었으니 새 옷 같은 건 필요 없다며 엄마의 코트를 입고 학교에 간다.

딸의 말에 동의 하는 남편 미렐라는 빚을 내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 잡혀 있고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일터로 나가는 아내에게 자신을 낳아 주고 키워준 어머니를 닮기를 바란다.

“내게도 생각이 있다는 것을 믿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 잘못된 감정에 빠져 있다고 믿기가 더 쉬웠던 거다.”

발레리아는 일기에 내면의 고백이 쌓여 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묻어둔 욕망을 일깨우고, 결국 그녀의 삶은 완전히 변모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아내와 어머니로 사는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가족들 눈을 피해서 일기를 썼던 발레리아는 혼란해지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토요일에 사무실을 나가고 뜻밖에도 주말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회사로 출근한 사장 귀도와 마주치게 된다.

그가 그림을 그리듯 내 이니셜을 손가락으로 훑었고, 우리는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이니셜을 훑는 그의 손동작은 기억한다. 마치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순간 몸이 떨렸다. 그의 손이 내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 내 피부를 어루만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글씨를 읽듯이 “발레리아”라고 했다.

마흔 세 살에 장성한 두 아이의 엄마 발레리아는 부유한 친구들처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여전히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고 있다.

발레리아의 매력을 알아 본 사장 귀도가 진심 어린 공감을 보여주자 그녀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 속에서 가족에게 헌신했던 지난 시간에 분노 하며 직장에서의 일이 자신에게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는 오래전에 끝났음을 깨닫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베니스로 귀도와 밀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는 항상 나의 삶을 하찮게 생각했다. 결혼과 출산 빼고는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로, 사소한 말투나 단어 선택이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일들만큼,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레리아는 몰락 귀족으로 평생 우아한 드레스 차림에 하인을 부려 온 그의 어머니를 '해묵은 종교화 인쇄물'처럼 바라보면서도 귀족 가문의 남편과 이혼한 친구 클라라가 평생 돈 걱정 없이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 한다.

대학생인 딸 미렐라가 이혼한 유부남과 연애 하면서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겠다고 선포하자 고난의 길을 자처 했다고 분노하고 권위적으로 여자 친구를 대하고, 자기보다 똑똑한 여동생을 깎아내리며 여성을 경멸하는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순된 인물이다.

그녀는 가난 했던 시절 남편 미켈레와 신혼 여행을 떠났던 베니스에 부유한 사장 귀도와의 밀월 여행을 계획 하지만 엄마를 무시 했던 아들 리카르도가 마땅한 일자리 없이 어린 여자 친구 사이에서 아이를 갖고 결혼을 선포 하면서 자아 독립 계획이 흔들기기 시작한다.

아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에게 맡기고 신발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어린 아내와 함께 ‘기회의 땅’ 아르헨티나로 가서 안정된 일자리를 찾으면 그 때 아기를 데려 가겠다고 말한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면서도 그 체제를 답습 할 수 밖에 없었던 발레리아는 1950년 11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약 반년가량 썼던 일기장의 두께 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아들의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사장 귀도와 함께 하겠다는 선포를 가족 앞에서 하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로 인한 파장을 걱정하며 이 모든 감정의 변화를 가져온 일기장을 불태워 버리기로 한다.

'최대한 빨리 일기장을 불태워야겠다. 지금 당장. 일기장을 다시 읽고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작별 인사할 시간도 없이. 이것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것이다.

다음 장에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올 나의 나날들을 아무것도 쓰지 않은 이 백지처럼 하얗고 매끈하고 차가울 것이다.'

내면을 고백하고 정체성을 서서히 찾아 갔던 발레리아는 일기장을 불태워 버리고 난 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기만 그녀 곁에 남겨졌다.

이 세상에서 딸로 태어나 아내로 어머니로 살면서 가족에게 자식에게 헌신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지난 세기는 지금 세기에도 수많은 여성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족쇄 를 채운 채 희생과 무임금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몇 년째 저출생 위기를 거론하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꼭 책임져야 할 모성 및 가족 보호와 교육, 보건의료는 대부분 기업과 민간병원, 사립학교와 학원이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을 ‘유료로’ 떠맡고 있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에 대주주 일가를 제외한 여성 등기이사가 몇 명이나 될까?

남녀 간 임금 차이는 왜 개선되지 않고 있는가?

출산과 육아가 각자 도생인 사회 구조 속에서 일하는 여성이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 조차 허용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에서 퇴근 하고 집으로 돌아 온 어머니들은 쉴 틈이 없고 가정 주부에게는 더더욱 쉴 수 있는 날이 없다.

쿠바 출신 외교관인 아버지가 주 이탈리아 쿠바 대사로 재직 하던 시절 이탈리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알바 데 세스페데스는 이탈리아 시민권을 갖기 위해 15살 나이에 이탈리아 귀족과 결혼 하지만 아들을 낳고 나서 2년 후 이혼을 한다.

여러 외국어를 능숙하게 했던 세스페데스는 영화와 방송,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며 당대 유명한 문인과 지식인들과 교류 하면서 24살 나이에 단편을 출간 하고 여러 장편 소설을 출간 하면서 20세기 이탈리아 사실 문학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여성작가로 자리 잡는다.

무솔리니 정권에 맞섰던 세스페데스는 1935년과 1943년 반파시스트 행위로 두 번 투옥 당하고 그녀의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금서로 지정된다.

1952년에 출간된 장편 소설 '금지된 일기장'은 로맨스 소설로 치부 되다가 알바 데 세스페데스가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게 되면서 세상에서 잊혀 졌다.

21세기 현대 고전으로 선정된 장편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 <프란투말리아>라는 에세이에서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을 통해 창작의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언급 하면서 세상에 다시 조명 받기 시작했다.

2023년 마침내 반 세기를 지나서 <금지된 일기장>이 미국에 출판되면서 작가 세스페데스는 세계 문학계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일기를 쓸 수 있다.

자신의 일상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복잡한 상념을 정리하는 일기의 독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하지만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현 시대의 여성들은 "되고 싶었던 <나>와 현실과 타협한 <나>의 모습"을 매일 마주하며 오늘도 내일도 일기장을 꺼내 쓰지 못하고 있다.

"일기장의 은밀한 존재는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지만,

솔직히 그 덕분에 내 삶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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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alea 2025-05-1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도와 헤어진 것 아닌가요? 가족들 앞에서 귀도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 내용이 어디에 있죠?
 
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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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쯤 비상 계엄이 선포 되고 하늘에선 군 헬기가 날아다니고, 국회 주변에는 장갑차가 배치되었고 무장한 계엄군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의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담장을 넘은 국회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 가고 시민들이 몰려가 군 경찰을 온 몸으로 막는 사이 자정을 넘긴 시각인 12월 4일 오전 1시쯤 의원 190명의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불안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술톤 얼굴의 내란수괴범이 오전 4시27분쯤 비상계엄 해제 선언을 한 직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갔다.

탄핵안 1차 표결이 이뤄진 지난 12월 7일 국회 앞에서 1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탄핵안 2차 표결이 진행된 지난 12월 14일 200만명으로 불어났다.

12월 14일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던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온 몸으로 막아 내어 지켜냈고, 이 모든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국격은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고 수십조에 달하는 국가 경제적 가치는 하루 아침에 모래가루가 되어 버렸다.

자격이 없는 권력자의 잘못된 선택과 탐욕으로 국가 전체가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에 한국 작가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단 한번 울려보지 못한 ‘한국어’로 연설을 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 중에서


전 세계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낭독 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나라 전체를 비상 계엄이라는 수렁 속으로 끌고 간 내란의 주역들의 실체가 사주, 역설, 무속과 관련 인물들이라는 속보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기본 정치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부재한 권력자가 비 상시적이고 비 이성적인 무속 비선 라인을 통해 내란을 모의 하고 계엄을 선포 하고 군병력을 통해 주요 인사들을 체포 하고 감금 할 계획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이 시국에 영화도 드라마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다섯 번 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침묵과 어둠 속에서, 말을 잃은 여자가 손톱을 바싹 깎은 손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동안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은 어디일까?

그 연약한 부분은 각자 만이 안고 있는 지난 시절의 상처, 사고로 인한 것 일 수도 있고 기억의 저 너머 고통의 한 순간 일 수도 있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는 모든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 해야 우리는 마침내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고전이라 일컫는 세기의 소설들은 '실패자의 기록물'이다.

한강 작가에 앞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비롯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까지 인생에 좌절하고 실패 하고 사랑을 잃고 슬퍼 하며 불행과 불운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기의 작품들을 단순히 실패자의 기록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거친 파도에 맞서 낚시 줄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의 삶이 형편 없다 할 수 없고 어머니가 죽은 날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아랍인을 총을 쏴 죽인 남자를 향해 살인자라 비난 할 수 없다.

주인 달링턴 경에 대한 존경을 넘어 맹목적인 헌신을 자처하던 집사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을 정도로 평생 동안 집사 업무에 매달렸지만 결국 주인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추락하면서 그의 경력과 인생에도 금이 가 버린다.

역사는 승리자의 말과 행동 그 결과만 기록 하지만 소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도 뜻하는 데로 생이 흘러 가지 않는 실패의 여정을 보여 준다.

2024년을 열흘 정도 앞두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첼로의 장례식. 한 무더기 국화꽃 사이 그녀의 영정 사진은 흐릿해서 더욱 애련했다.

교통사고 였다고, 그녀 아버지의 퀭한 눈은 허망했다.

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장례식장을 지키던 너는 꼿꼿했다.

나를 바라보던 너의 서늘한 눈빛은 얼음꽃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삐죽 고개 들던 악의는 눈물로 덮혔다.

-이선영의 <그물을 거두는 시간> 중에서

오랫동안 불화를 겪다 이혼 후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고스트라이터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최윤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이모 ‘선임’으로부터 자서전 집필 의뢰를 받는다.

조카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을 집필 하기 위해 지난 과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모 선임이 결혼 날짜를 잡은 아들에게 초대 받지 못하는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모자간의 화해를 도모하지만 뜻밖에도 이모 가족에게 깊게 패인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과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모의 과거를 알게 되는 동안 30여 년 전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의 유품 정리사라는 남자가 찾아와 윤지가 애써 지워버렸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유린 당한 듯 성장의 순간 순간을 녹슬게 했던 그 일은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아니,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상처가 아니었다.

소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향해 품었던 설렘과 그리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솟구친 질투가 불러온 악의였다.

언제나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강탈 당했던 이모 선임은 일찍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사회적 시선과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고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남편과 아들에게 현금 인출기 취급을 받을 뿐 아내 어머니라는 굴레에 갇혀 버린다.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한 시스템이었어. 인간이 인간 자체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거야. 그런데 그것과 대치 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거지.”

조카 선임은 가족들에게 외면 당해 쓸쓸하면서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모 선임의 삶을 기록해나가는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다.

미성숙 했던 청춘 시절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가던 윤지는 드문 드문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을 짜 맞춰나가던 중 자신 안에 움트고 있었던 악의 때문에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이모 선임은 자서전 집필에 필요한 구술을 전부 하고 나서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이제 너답게 살아. 이제 너를 그만 감추고 세상으로 나와. 숨기려다가 나처럼 애먼 사람 다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

이모 선임은 자서전 출간을 통해 지난 시절 사랑을 품었던 미란에게 참회를 하자 조카 윤지는 자신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선재를 찾아가 사과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스무 살, 자신의 손아귀에 사랑을 쥐고 싶었던 윤지는 수진을 걱정하는 선재를 미워 했고 K를 사랑하느라 선재를 외롭게 하는 수진을 증오 해서 희대의 악녀인 수진의 인생을 파멸 시키고 싶어 했다.

결국 윤지는 학생 운동으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서 형사들에 쫓기고 있었던 선재와 수진의 은신한 거처를 밀고 해버리고 두 사람의 삶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져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어 버린다.

내면은 항상 청춘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윤지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선재에게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난 시절 그가 학교 도서관에서 읽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책을 떠올린다.

늙어가는 대가로 얻게 된 젊음의 가면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늙은 형상으로 최후를 맞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비상 계엄을 선포한 내란수괴범은 사흘 만에 국민 앞에 서서 단 2분 사과를 하고 계엄의 정당화에 대한 변명은 20분간 늘어 놓았다.

내란수괴범을 옹호 하는 변호인단들은 헌재에서 살아 돌아 오면 착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궤변을 내뱉고 있다.

2022년 3월,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며 인간에게 충성 하지 않는 다는 자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에게 선서를 하고 나서 '공정과 상식’, ‘통합’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내란을 선동하는 괴물이 되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른다.

아니 알고자 노력할 시간이나 기회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삶에 위기가 닥쳐 왔을 때 뜻하지 않은 것을 겪게 될 때 비로소 '나'라는 인간을 되돌아 보게 된다.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 받아 혈세로 먹고 살았던 권력자와 무속 신앙으로 연결된 자칭 영적인 지도자라는 이들로 인해 국가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송두리 째 흔들리는 순간 국민이 목숨을 걸고 거리고 나갔고 촛불을 들었다.

이 세상은 애초에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모두 인내 하고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살아 가고 있다.

소설 <그물을 거두는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로 인해 인생이 무너져 버린 이들을 직접 찾아가 참회 하고 속죄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참회>는 범어 크사마(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빌고 뉘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크사마(ksama)가 한국 불교에 뿌리를 내리면서 참혹할 참(慘)와 뉘우칠 회(悔)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미안하고 후회스러워서 용서를 빈다는 의미로 확장 되었다.

기독교에서 < 속죄>는 어떤 죄라도 책임을 지고 신에게 고해 하고 고백해서 속죄를 해서 의롭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내란수괴범은 국민 담화문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통한 복귀를 공언 했다.

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거부 하고 있는 내란 수괴범은 앞으로도 영원히 국민 앞에 진심으로 참회와 속죄를 하지 않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켜야 하는 건 법과 질서, 정의 그리고 자유가 지켜 지는 민주주의다.

내란 수괴범의 운명은 헌재 재판소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사건번호는 '2024헌나8',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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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2-2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십시요!ㅎ

scott 2024-12-28 11:52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건강하게 한 해 마무리 잘하세요
새해 복 마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