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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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소세키의 <열흘 밤의 꿈>은 꿈을 꾼 화자가 [이런 꿈을 꾸었다.]라는 말을 시작하면서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 바라보는 현실의 이야기를 열흘 동안 하나씩 들려준다.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열흘 밤의 꿈>을 가장 좋아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잠을 통 이루지 못한 상태에 멍하게 앉아 있던 중에 문득 소세키의 이 작품이 떠올랐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잠을 못 잔 지 벌써 십칠 일 째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화자는 이렇다 할 불편을 느끼지 못해서 병원도 찾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조차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치과 의사인 남편을 내조 하며 외동아들을 키우며 일상 생활에 어떤 균열이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녀의 불면증은 대학 시절 부터 시작되었지만 제때 치료나 상담을 받지 않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은 채 일상 생활에서 불완전한 수면 패턴을 이어 나갔다.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졸음은 전철 좌석이나 교실 책상이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풋잠을 자듯 꾸벅 꾸벅 조는 동안 기묘할 정도로 자신의 의식에서 분리된 그림자 같은 존재를 느낄 정도로 온전하게 푹 잠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꾸벅 꾸벅 조는 동안 걷고,마시고, 먹고 자면서 대화를 나누었고 이런 상태를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었다.

그녀는 자는 동안 모든 일을 정상적으로 하는 램 수면 상태의 인간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신체의 각 기관이 둔해지고 탁해지면서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세계의 끝에 있는, 듣도 보도 못한 땅으로 그리고 내 육체는 내 의식과 영영 헤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에 단단히 매달리고 싶었다.]


모든 가족들이 깊이 잠든 밤마다 그녀의 정신은 또렷해져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째깍 째깍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또렷한 정신으로 날이 샐 때까지 들었던 그녀에게 어느 날 아무 전조 없이 느닷없이 까무러칠 정도로 잠이 쏟아져 버린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넘기고 죽은 듯이 잠을 잤던 그녀는 결혼 후 어떤 이유에서 인지 다시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현실 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불편을 겪지 않았다.

단지 잠을 자지 못할 뿐이였다.

남편도 아이도 그녀가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친구와 동업으로 치과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남편은 점심시간인 12시면 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아침을 준비하고 차리고 남편과 아이가 출근하고 나면 집안을 정리를 마치면 곧 남편이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오는 시간이 된다.

남편이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녀는 오후 시간동안 장을 보러 나가고 집으로 돌아 오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 외동 아들의 저녁 밥을 차려 준다.

늦은 밤 남편이 퇴근하고 마지막 저녁을 차려 주고 설거지를 마치고 주변을 정리하면 자정이 가까워진다.

빈틈없이 가족의 생활 패턴에 맞추고 나면 어느덧 늦은밤, 자정을 알리는 시계종이 울리면 그녀는 잠을 자지 못하고 어느 날 깜짝 잠이 들었을 때 악몽에 시달리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시 잠을 청하면 악몽을 꾸게 될 것 같은 두려움사로잡히자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고

가능한 긴 소설을 읽어보자고 마음 먹은 그녀는 톨스토이의 대장편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한다.

오래전 학창 시절에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의 스토리를 대충 알고 있었던 그녀는 날이 밝을 때까지 온 신경을 그 책 속에 파묻고 나서 일상 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매일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집안일을 재빨리 해치우고 오전 내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점심 때가 되면 책을 내려놓고 남편을 위해 점심을 만들었다.]


그녀는 결혼 생활 동안 눈을 감고 무감동적이게 기계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의무적으로 장을 보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았지만 밤 10시 부터 아침 6시까지 책을 읽고 나서 부터 집 안에 갇혀 있기만 했던 생활 반경을 차츰 넓혀나간다.

차를 몰고 나가 사는 곳 너머 지역을 돌아 당기기도 하며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 모습을 그녀의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는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처음 잠을 못 잔 것이 지지난 주 화요일, 그러니까 오늘로 딱 십칠 일 째다. 처음 잠을 못 잔 것이 지지난 주 화요일, 그러니까 오늘로 딱 십칠 일째다. 이로써 십칠일동안 한숨도 못잤다].


그렇게 열일곱 번의 낮과 열일 곱 번의 밤 동안 잠을 자지 않은 그녀는 문득 죽음을 떠올리며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일상의 잍탈은 점점 대담해진다.


[눈을 감아보았다. 그리고 잠의 감각을 불러 일으키려 해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각성한 어둠이 존재할 뿐이었다. 각성한 어둠...]

시간별 레인을 따라 맹목적으로 가족들의 삶의 패턴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았던 엄마, 아내, 그리고 한 여자는 이런 삶을 어디에도 소비 되지 않은 무의미한 삶이라 생각했다.

숨을 쉬고 있어도 온전한 정신 상태로 살아 있지 않는 자신을 위한 시간조차 없이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로 누군가의 삶을 챙겨주고 보듬어 주기 위해서 24시간 깨어 있어야 했던 그녀의 삶에서 한 권의 책은 텅비어 버린 머릿 속에 어디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각성 시키며 기억의 회로선을 움직이게 만든다.

사는 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악몽이나 가위 눌림 같은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문득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면 어떤 알람도 도착 하지 않았는데 하염없이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고 수면을 취하는 동안에도 머리 속 한 구역엔 폰이 보여주는 세상이 자리 잡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품을 열흘 동안 쓰고 나서 서랍에 넣어두고 몇 달 후 다시 꺼내 읽으면서 문장을 다듬어 나갔다.

작가들 중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하루키는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취침하고 다음 날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지속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 어느 겨울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방으로 한기가 파고 들었던 어느 날 불면증이 갑자기 찾아온다.

불면증으로 밤을 지새우며 쓰기 이야기는 원고지로 총 12매로 완성하고 그렇게 탄생한 단편들은 전 세계로 번역 되고 단편과 장편을 종횡무진 창작 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잠을 못 잔다고 일상이 엉망이 되지도 않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틈틈이 노트에 끄적이거나 책을 읽거나 오전 오후 시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

인간은 깨어 있는 동안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신체의 모든 기관은 각자가 맡은 역할에 맞춰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시간에 조금씩 매일 무언가 하고 있다면 별 볼일 없는 인생이 어제 보다 앞으로 더 나가며 먼 훗날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그렇게 쓴 시간들은 온전히 내 삶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소설을 발표한 이후 부터 하루키는 2024년 지금까지 총 15편의 장편 소설과 16편의 단편집을 출간 했다.

소설을 발표하지 않는 해에는 에세이나 논픽션, 번역서, 여행기 회문집, 그림책, 소설 안내집, 대담집까지 출간 해서 한 개인이 출간한 작품의 수는 벽 한 면을 차지 하고 있는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다.

이 정도의 분량을 쓰려면 매일 10매에서 20매 분량의 원고지를 채워야 가능 할 정도로 엄청난 창작력과 이를 뒷 받쳐 주는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1981년 단편집 <꿈에서 만나요>을 시작으로 2020년에 출간한 <일인칭 단수>까지 총 16편의 단편집을 출간한 하루키는 <TV피플>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종종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FM 무라카미 방송에서 <TV피플>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을 종종 읽어준다.


<TV피플>에 수록된 단편들은 총 6편으로 'TV피플'과 '비행기-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나'와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고도자본주의 전사' 그리고 '잠' 이 네 편은 작가 생활을 시작 한지 10년의 시간이 흐른 1989년에 완성했다.

단편 '잠'은 해외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로 독일의 출판사 듀몬트가 무라카미 측에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쉬크가 그린 일러스트를 넣은 책으로 재 출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인 하루키는 독일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자신의 책 <잠>을 읽고 마음에 들어서 일본어 판으로 단독 출간 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단편 '잠'에 대한 애정이 깊다.


<TV피플>에 수록된 단편들 모두 삼십 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단편들이지만 하루키 초기작에서 맛볼 수 있는 생생한 묘사와 비유,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장이 매 페이지 마다 살아 숨쉰다.

200페이지 분량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 첫 장을 펼쳐 들고 자정 시간을 넘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 장까지 읽게 된다.

(c)Kat Menschik


["그렇게 해서 나는 잠을 못 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일은 없다. 요컨대 나는 인생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 열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의 시간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루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그 시간은 지금까지 잠이라는 작업에―'쿨다운 하기 위한 치유 행위'라고 그들은 말한다―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나만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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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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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게 내리는 빗줄기로 무덥고 습한 공기로 가득 찰 때면 꺼내보는 영화가 있다.

눈부시도록 푸른 빛의 하늘, 뜨거운 햇살, 여름의 빛깔을 담은 영화 <call me by your name >

'이 모든 것이 올리버가 우리 집에 온 그해 여름에 시작되었다.

그해 여름에 유행한 곡과 그가 머무는 동안 그리고 떠난 후에 읽은 책들, 뜨거운 날의 로즈메리 냄새부터 오후의 요란한 매미 소리까지 모든 것에 새겨졌다.

여름, 익숙해진 냄새와 소리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 여름의 사건들로 영원히 다른 색조를 띠게 되었다.'

- 안드레 애치먼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중에서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탈리아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던 열 일곱살 엘리오 앞에 아버지(고고학자인 펄먼 교수)의 보조 연구원인 스물넷 대학원생 올리버가 나타난다.

이 영화는 눈이 부시도록 뜨거운 햇살과 푸른 바다 색깔의 하늘이 배경 화면을 가득 채운다.

욕망처럼 일렁이는 물결 무릎이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 헐렁한 셔츠 그리고 핑크 빛이 맴도는 복숭아

여자친구가 있는 엘리오는 올리버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일부러 거만하게 말을 걸고 그의 약점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만 열병처럼 회오리치는 마음을 들켜버린다.

그리고 엘리오는 피아노를 치다 음표를 그렸던 연필로 올리버를 향한 마음을 휘갈기듯 써 내려간다.

"그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

올리버. 올리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서…"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핑크 빛의 복숭아가 익어가는 과수원, 한적한 시골길, 인적이 드문 비밀스러운 강가는 두 남자의 사랑은 한여름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올리버 올리버 올리버."

영화는 줄곧 엘리오의 얼굴을 비추던 것에서 벗어나 잠시 올리버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깡마른 사지, 당당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의 엘리오와 다르게 차분하며 침착하던 엘리오는 올리버 앞에서 흔들린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푸른 빛이 사랑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름날 찾아온 손님은 언젠가 떠나버린다.

파란색 옷을 입은 두 남자는 광활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초록빛 들판을 휘젓으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화면 속에 비친 엘리오의 파란색 옷은 올리버의 파란색보다 더 짙고 푸른빛으로 비쳐진다.

엘리오의 첫사랑, 올리버

올리버가 떠나고 뜨거웠던 여름도 끝나버린다.

시간은 흘러 한여름 뜨거웠던 태양 아래서 무르익었던 과일들 초록빛을 내뿜던 잎사귀들 모두 새 하얀색 눈으로 뒤덮혔다. 가족들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올리버는 몇년 전 사귀었던 여자와 약혼을 한다는 말을 꺼낸다. 축하한다는 말을 내뱉은 엘리오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몸을 떨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모닥불 앞에 앉은 엘리오 시뻘건 불빛에 데어버린 것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든 엘리오

그제서야 깨닫는다, 겨울, 추운 겨울이 왔다는 것을.....

원작 소설에서는 한겨울 가을 날씨처럼 서늘한 어느 날 대학교수가 된 올리버가 엘리오의 이탈리아 별장에 찾아온다.

세월이 흘러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올리버는 여전히 멋졌다.

청명하게 빛나는 별 빛 아래 두 남자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그리워 하며 엘리오는 별장 곳곳에 남아있던 올리버의 흔적을 하나 씩 꺼낸다

그리고 엘리오는 그해 여름에 함께 했던 올리버의 이름을 부른다.

여기 있었고, 잠시 함께 살았고 그리고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올리버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그해 그 여름날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면 내일 이곳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향해 너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말한다.

여전히 올리버의 마음은 엘리오 처럼 푸른 빛이 였을까?

'“사랑 받고 싶어. 우리의 세상에는 마법이 부족하니까.'

-안드레 애치먼의 <여덟 밤> 중에서

사랑의 마법스러운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작가 안드레 애치먼은 어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누구와도 말하기 싫어서 크리스마스 트리 뒤편으로 숨어버린 20대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여덟 번의 밤의 시간으로 나눠서 두 남녀의 정신 세계를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 하듯 펼쳐 보인다.

'저녁이 반 쯤 흘렀을 때, 나는 저녁 전체를 역순으로 재생하게 될 것을 알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여덟 번의 밤>은 등장 인물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아닌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해서 첫 페이지부터 시작 되는 전체 문단의 길이는 다음과 같다.

버스,눈, 작은 비탈길을 올라가던 산책, 내 바로 앞에서 닥쳐오던 대성당, 엘리베이터 안의 낯선 사람, 복닥복닥한 커다란 거실에서 촛불에 밝혀진 얼굴들이 웃음과 예감으로 환히 빛나던 일, 피아노 음악, 걸걸한 목소리의 가수, 어디서나 나던 소나무 냄새, 내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면서 아무래도 오늘 밤 훨씬 일찍 혹은 조금 늦게 도착해야 했다고, 아니면 아예 오질 말아야 했다고 생각하던 일, 적갈색의 고전적 동판화들이 걸린 화장실, 그 옆 벽면의 스윙도어를 열면 이어지던 기다란 복도, 손님용이 아닌 사실로 이어지다가 현관 쪽으로 다시 한번 꺾으면 기적처럼 다시 나타나던 아까와 똑같은 거실, 그곳에 더 많이 모여 있던 사람들, 내가 조용한 구석이라고 생각했던 커다란 크리스마트리 뒤편의 창가, 그곳에서 누군가 내게 돌아서며 한 손을 불쑥 내밀고 말하던 일.

'나 클라라예요.'

-안드레 애치먼의 <여덟 번의 밤> 중에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난 이 십대의 두 남녀 프린츠 오스카르와 클라라 브런슈바이크는 뉴욕 곳곳을 거닐며 함께 영화를 보며 서로 에릭 로메르 감독 작품을 좋아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레오파르디의 시구절을 읊으며 일평생 한 번만 찾아 오는 그때의 그 순간의 사랑을 8일 밤에 걸쳐 쌓아 나간다.

차츰 무르익어 갈 것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은 얼룩진 곳이 서서히 희미해지듯 마법 같은 8일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치명적일 정도로 단호하고 도도할 정도로 상대의 말을 일축해버리며 각자의 지난 시절의 연인들을 향한 질투심에 활활 불타오른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던 프린츠 오스카르와 클라라 브런슈바이크는 온통 씁쓸함과 지루함으로 가득 찬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 누군가에게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새해 첫 축배'를 든다.

그래서 지금 나는 뭘 해야 하는가? 서서 기다려야 하나?

서서 궁금해 해야 하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작품의 배경은 뉴욕으로 106번가에서 시작된 만남은 브로드웨이가의 길모퉁이에서 남쪽 방향으로 한 블록 내려가 105번가에서 싹이 트고 이 길에서 꺾어지면 나오는 리버사이드 드라이브를 통과 하는 동안 사랑은 무르익어가다 마지막 8일 째 되던 날 밤 106번가로 돌아가면서 끝이 난다.

여덟 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두 남녀 사이에는 지고 지순한 사랑이 피어오르지도 않고 미쳐 버릴 정도로 절정에 다다르다 확 불살라 버리는 열정도 없다.

너무 이르고, 너무 급작스럽고, 너무 빠른 틱톡 시대의 사랑은 일상의 매 순간 빠르게 움직이는 전쟁터 같은 도시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릴 뿐, 사랑에 시간도 감정도 허비 하지 않는다.


'나는 클라라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맨 첫 번째 밤부터 마지막 밤까지, 심술과 자존심으로 또 그 사이에는 상당량의 두려움과 경고로 지배 되었던 한편, 가장 중요해야 마땅했던 그 하나의 단어는 말없이 남아 있으라는 선고를 받은 단어였다가는 이윽고 그것 역시도 단단하고 빙하 같고 또 바위같이 되어버렸던 일을 생각했다.'


너무 생각이 많으면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이런 상태가 된 이유에는 스마트 폰과 실시간 주고 받는 Sns 메신저 때문일 것이다.

클라라에 대한 사랑에 미련이 남은 남자 프린츠 오스카르는 마지막 이렇게 외친다.


'나는 그 단어를 한 번도 말하지 않지 않았는가? 눈에 다가는 밤에 다가는, 공원의 동상에 다가는, 내 베게에 다가는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단어를 말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 내가 당신과 영원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과 상실 역시도 틀림없는 동반자 이기 때문에...'

지난 세기의 연인들은 죽도록 싸우고 다음 날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가 죽도록 싸우고 잊어버리고 냉기로 가득 찬 얼음 바닥에 누워서도 서로를 향한 관심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았다.

사랑도 감정도 눈 녹듯이 녹아 버렸다 다시 얼어 붙는 사랑, 사랑, 사랑

세기 전의 이런 사랑은 이젠 전시장에 진열된 고미술 작품처럼 지난 시절의 영화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안녕, 나 오늘 밤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나 당신이랑 있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 친구들이랑. 당신 세상. 당신 집에서. 그리고 모두가 간 다음에도 머물고 싶어요. 당신처럼, 당신으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이 은신하고 있다고 할지언정, 내가 은신해 있듯이, 한스가 은신해 있듯이, 베릴과 롤로와 잉키와 이 도시의 다른 모든 이가 산 자든 죽은 자든 난파 된 채, 하자가 있는 채, 원하는 채 은신, 은신, 은신해 있듯이, 당신과 단둘이서만 있어서 끝내 내가 당신 냄새가 나고, 당신처럼 생각하고, 당신처럼 말하고, 당신처럼 숨 쉬게 되고 싶어요.

-안드레 애치먼의 《여덟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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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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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일시 정지 되었다.

동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지역 하청회사에서 25년 동안 근무 했던 다쓰로는 원자력 규제 위원회에서 새로운 규제 기준을 통과 시키며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이 재 가동이 되었다.

다쓰로는 원자력의 위험성과 심각성이 완전히 해소 되지 않은 시기에 더구나 폐원전 처리 문제도 해결 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 원자력을 재 가동 시키는 정책에 큰 불만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원자로 일을 하겠다며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해서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후쿠시마를 찾아간다.

지진 발생이 후 단 한번도 후쿠시마 땅을 가본 적이 없었던 다쓰로는 해변에 날아드는 연의 방향에 이끌려서 차에서 내리고 연이 날리는 방향을 쫓아간다.

[100미터 정도 앞에서 나이 든 남자가 연줄을 당기고 있다. 몇 명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달랑 한 사람뿐이었다. 연은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으며 바다 위에 떠 있다. 겨울의 전조처럼 서늘한, 북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서풍이다.]

-10만년 뒤의 서풍 중에서


연이 날리는 방향으로 따라간 다쓰로는 연을 날리는 남자를 만나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렸던 미국산 '게일러 카이트'연이라는 걸 알고 친근감을 보인다.

후쿠시마 해변가에서 연을 날리는 남자의 이름은 다키구치, 그는 쓰쿠바 기상청 기상 연구소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 취미로 연을 날리면서 습관처럼 기상을 관측하고 있었다.

다키구치는 기상청 근무 당시 고층 기상 관측 전문가로 라디오존데라는 관측 장치를 기구에 달아서 상공으로 띄워 넣고 예보에 사용할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했었다.

기상 관측 연구가인 다키구치는 1930년대에는 연에 온도계를 달고 기상을 예측하는데 이용했다며 다쓰로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해 보인다.

그는 매일 해변에서 연을 날리며 레이더도 기구도 드론 같은 최첨단 기상 관측 기기가 아닌 연 줄을 타고 손으로 느껴지는 상공 공기의 감촉과 온도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예측하고 습관처럼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다.

다쓰로는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연을 날리며 기상을 관측하는 다키구치가 동일본 후쿠시마 지역에서 원전이 있었던 도미오카마치를 갈 예정이라는 말에 원전 회사에 다녔었다는 말을 꺼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해에 다쓰로는 보수관리과 과장으로 승진해서 9월 말에 발생 했던 지진으로 인해 원자로 격납시설에 문제가 생겼는지 점검을 나섰다.

진도 4지진 발생으로 원자로의 안전 장치 역할을 하는 필터 벨트에 뒤틀림을 발견한 다쓰로 팀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부장은 새로운 규제 기준에 근거해서 진도 4정도로 배관이 손상되었다는 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니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하고 문제가 발생했던 원자로의 일시 가동 중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원자로 전력회사의 하청 회사에 소속된 다쓰로는 상사의 지시로 보고서를 수정한다.

그렇게 보고서를 수정하고 나서 리히터 규모 7.3 의 지진과 지진 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는 분명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언젠가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뒤바뀐 치명적인 인재 사고 였다.

다쓰로는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가 평생 동안 자랑스러워 했던 2호기 필터벨트의 뒤틀림 보고서를 수정한 직원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족이 사회로 부터 받을 막대한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원전 사고 이후 폐원자로 처리 시설회사 일을 시작한 다쓰로는 원전 사고 유출 발생 지점 근처에서 날리던 연을 따라 서풍으로 이동해서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부대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 전선에 날릴 계획을 세웠던 풍선 폭탄의 이야기까지 흘러 간다.

수소 가스를 채운 직경 10미터 짜리 기구에 소이탄과 폭탄을 매달아 지상의 기지에 띄워서 기구가 상공에 강한 편서풍을 타고 이틀 밤 낮으로 날아 미국 본토 서해안에 자동적으로 폭탄을 투하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43년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는 300여명이 매달려서 기압계를 탑재한 정밀한 고도 유지 장치, 영하 50도에 달하는 상층 공기를 견딜 수 있는 내한 전지를 풍선 기구에 설치 해서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군수품 제조 공장과 극장, 학교에서 학생들을 끌어다 놓고 풍선 폭탄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1944년 11월 편서풍이 불기 시작했던 날 일본 군부대는 풍선 폭탄을 날려 버릴 기지를 태평양에 면한 해안 세 곳에 설치한다.

후쿠시마현의 나코소, 지바현의 이치노미야 그리고 이바라키 현의 오쓰에서 1945년 4월까지 미국 본토를 겨냥한 풍선 폭탄 기구를 발사한다.

당시 발사된 풍선 기구는 총 1만 발로 약 천 개의 풍선 기구가 미국 본토까지 다다랐다.

일본 군이 날린 풍선 폭탄은 미국 오리건주 마을의 숲과 공원에 떨어져서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의 생물 병기 부서에서는 탄저균과 적리균, 우역 바이러스를 풍선 기구에 매달아서 미국 본토로 날려 버린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기상학자 아라카와 히데토시는 기구를 발사하는 고도와 적절한 계절과 바람 ,발사 지역 그리고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시간과 확률을 계산한다.

1944년 10월 말 오전 3시 풍선 폭탄에 세균을 장착한 기구를 날릴 준비를 갖추고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난 오전 5시 소대장이 '발사' 명령을 내리는 순간 풍선 폭탄은 날아 오르지 못하고 지면에서 폭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풍선 폭탄 사고로 고층 기상대 데이터를 계산하는 중앙 기상대 기수들이 사망한다.

풍선 희생자들 위령비가 세워진 곳에서 다쓰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 지난 시절 아버지와 함께 날렸던 연 세트(게일러 카르트)를 구매 했다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 폐기물은 지하 500미터까지 갱도를 파서 사용 완료된 핵원료를 특수한 재료로 덮어 묻는다. 이런 핵폐기물 처리는 인간이 고안해 낸 방법 중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10만년 동안 폐기물이 지상으로 올라 올 경우가 없다며 원자로 가동에서 나오는 모든 핵 폐기물 처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기후 이상 변화로 지구는 나날이 뜨거워 지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아서 바닷물 수위는 올라가고 있다.

열을 감지한 지변이 흔들리고 계절의 순환은 뜨거운 여름이 지속 되어 강렬한 햇볕과 장기간 무서운 양으로 내리는 비의 양으로 인간들이 파 묻어 놓은 핵폐기물 시설이 10만년을 버텨 낼 것 같지 않다.


고베 대학에서 지구 과학을 전공하고 도쿄 대학에서 지구 행성물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요하라 신은 1998년 '네 인생의 이야기'라는 단편으로 네뷸러 상을 수상한 컴퓨터 전문가 테드 창의 작품을 읽고 대중들의 시선에 맞는 픽션같은 과학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2003년 부터 도야마 대학 이학부 조교로 근무하면서 안정적인 일을 하게 된 이요하라 신은 2008년 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1년 만에 완성한 첫 번째 소설< 두번째 보름달>로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 마다 우리 일상에서 발생하고 마주 할 수 있는 과학적 현상과 기술을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삶과 연결 시키며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서점 직원들의 추천서에 이름을 올리는 인기 작가가 된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치 과학자가 일련에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가이드처럼 대화로 묘사로 풀어나가는 이요하라 신의 작품들은 SF장르에 속하지 않고 미스터리로 분류 된다.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은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과학적인 현상과 자연의 변화를 정확한 명칭과 장소를 제시 하며 마치 과학 잡지에 실리는 개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듯 서정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다.

과학자인 이요하라 신은 소설을 쓸 때면 '과학자가 보고 있는 풍경 그리고 세계의 모습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들여다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화두를 던져 놓고 글을 쓴다.

총 다섯 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에 맨 마지막 장에는 이요하라 신이 작품 집필에 참고한 문헌과 인터넷 사이트 주소가 빼곡하게 수록되어서 작가의 소설적 상상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 실제 우리 눈 앞에서 발생했거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요하라 신은 <팔월의 은빛 눈>에서 팔월에 은빛 눈이 내릴 수 있다는 가설을 이렇게 정의 했다.


[내핵은 지구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별로 크기는 달의 3분의 2 정도로 열방사 빛을 제거하면 은색으로 빛나는 별이다. 그것이 액체의 외핵에 싸여서 떠 있는데 그 별 표면은 전부 빽빽한 은빛 숲으로 높이 100미터나 되는 철로 된 나무 숲이다. 실제 그 정체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은 철 결정으로 외핵 밑 부분에서 액체 철이 얼면 내핵 표면으로 은빛 가루가 천천히 눈가루 처럼 흩날린다.]

-8월의 은빛 눈 중에서


은빛 숲에서 내리는 은빛 눈의 소리, 무덥고 습한 7월의 이요하라 신의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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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06-30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던 작가인데 너무 매력적인 리뷰네요. 저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scott 2024-06-30 12:39   좋아요 2 | URL
이 단편집 정말 좋습니다
과학적 현상을 이토록 현실감 넘치게 묘사한 작가의 문체가 너무 유연하고 탄탄해서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
 
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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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미국 대법원관 자리에 올라간 얼 워런(1891~1974)이 이끄는 대법원은 매사 진보적인 판결을 내려서 흑백 분리주의 정책을 유지 하고 있었던 미국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얼 워런 대법관은 흑백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나서 형사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를 두텁게 보장했고 선거구 인구 불평등을 위헌으로 판시하면서 보수 정치인들의 표밭을 뒤흔들어 버린다.

일련의 진보적인 판결에도 불구하고 미국 땅에는 여전히 흑인 전용 화장실이 존재 했고 가게와 공공 장소 학교 그리고 클럽 마다 흑인 사절이라는 푯말을 내걸었다.


1960년 11월 8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미국 전역에 진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963년 11월 22일 재선 선거를 앞두고 미국 텍사스 댈러스 파클랜드 헐스를 퍼레이드 하던 중에 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 당하고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 선거의 후보자 로버트 F. 케네디가 팔레스타인 난민 시르한에게 친이스라엘 성향이라는 이유로 선거 유세 중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면서 미국의 진보 정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워 지게 된다.


8년 후 1968년 대선을 앞둔 대통령 예비 후보 리처드 닉슨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률가를 대법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하고 1968년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워런 대법원장은 그가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1968년 6월 26일,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친구이자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1910~1982)를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한다.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은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한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때마침 에이브 포스터는 고액 보수를 받고 강연을 다녔던 과거 이력이 들통나버린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에이브 포터스는 친구이자 마지막 대통령 임기가 남은 존슨 대통령에게 지명을 철회 할 것을 요청했고 존슨은 이를 받아 들였다.


그 해 11월 공화당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 되고 워런 대법관이 이듬해 5월에 사임하면서 대법원에 두 명의 대법관 자리가 생기게 되어 닉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수의 가치를 내건 깃발 두 개를 꽂아 버린다.


가장 먼저 닉슨 대통령은 미네소타 출신이자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역임한 워런 버거(1907~1995) 컬럼비아 지구(DC) 연방항소법원장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그 다음으로 닉슨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클레멘츠 헤인스워스 제4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으나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 55로 인준이 부결되자 뒤이어 닉슨은 플로리다 출신인 제5연방항소법원 판사 해럴드 카스웰을 지명했지만 그 역시 인종차별 성향임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51로 인준이 부결되어버린다.

닉슨은 남부에 보수의 깃발을 꽂으려는 시도가 연달아 실패하게 되자 버거 대법원장이 추천한 미네소타 출신의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해리 블랙먼(1908~1999을) 제4항소법원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한다.

1970년 6월 상원은 해리 블랙먼을 94대0으로 통과시키고 1년 뒤 대법관 두 명이 건강 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자 닉슨 정부는 만세를 부르며 버지니아 출신으로 미국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루이스 파월(1907~1998)과 법무부 차관보이던 윌리엄 렌퀴스트(1924~2005)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면 미국 대법원을 완벽하게 보수주의자들이 장악 하게 만들어 버린다.

취임 한지 ​불과 2년 반 만에 닉슨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기록을 세워서 대법원을 보수 4인, 중도 2인, 진보 3인으로 바꾸어 버렸다.


미국의 진보 언론은 닉슨의 깃발이 꽂혀진 대법원을 ‘닉슨 대법원’이라고 불렀다.

1972년 1월 7일 일명 닉슨의 꼬리표가 붙은 대법관들로 구성된 미국 대법원은 잇달아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닉슨 정부를 경악 시켰고 미 전역으로 엄청난 진보적 개혁의 바람이 불게 만든다.

가장 먼저 1971년 4월 대법원은 먼 거리에서 통학 시켜서 라도 스쿨버스로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을 통합 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많은 백인 학생들이 멀리 떨어진 흑인 학생이 많은 학교로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게 돼서 백인 학부모들의 강력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닉슨은 이 문제에 연방법원이 개입하는 데 반대했으나 버거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원 판결로 자신을 지명한 닉슨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두 번째 진보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판결은 ​1971년 6월 30일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기밀문서로 분류된 펜타곤 페이퍼를 게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지만 대법원은 6대3 판결을 내리고 뒤이어서 사형에 대해 잔혹한 형벌이며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5대4 판결로 위헌으로 판시했다.

이 판결로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주(州)는 형법을 개정해서 사형 판결 요건을 엄격히 정해야 했고 차츰 미 전역으로 사형 집행이 중지된다.


지금까지도 찬반의 대립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 땅을 분열 시키고 있는 낙태 문제는 1973년 1월 22일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에 대법원이 낙태금지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여성의 사생활권을 침해한다며 7대2로 위헌 판결이 선고되기 시작하면서 미 대륙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여성은 자신의 의사로 낙태를 할 수 있고 3개월 동안 미국의 주정부는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규제할 수 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주 정부 법으로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닉슨이 꽂아 놓은 대법관들 모두 진보적인 성향으로 돌아서서 이번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 판결로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판결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명 운동(Pro-Life Movement)을 촉발 시키면서 미국을 두 개의 이념과 사상, 종교로 대립하는 양극화에 불을 질러 버렸다.


1980년대 낙태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정체성 차원의 문제가 되었고 1980년 11월 4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대법원에 또 다시 보수주의 깃발이 꽂히게 된다.

2016년 11월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생명을 지켜라’ 등의 팻말을 들고 낙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이들은 5개월 전 대법원이 텍사스주에서 낙태금지 법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이에 반발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일명 바이블 벨트 지역에 거주 하며 활동하고 있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대선 같은 대형 정치 행사에서 낙태 및 동성애 반대, 작은 정부, 총기 자유화를 내걸며 강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바탕으로 일반 유권자보다 적극적으로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전미복음주의연합(NAE)에 따르면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예수를 구원자로 믿으며 다음과 같은 신념을 내세우고 있다.


- 성경주의(성경이 절대적 기준)

-십자가 중심주의(예수의 희생을 강조)

-회심주의(성경에 의한 거듭남을 강조)

-행동주의(사회 참여)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2004년 대선과 2016년 대선에서 모두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79%)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81%)에게 완전한 몰표를 던져서 당선을 시켰고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키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단합하는 정치 집단세력이라는 걸 증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 한지 불과 8일 만에 낙태 반대론자인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 했고 2022년 6월 24일 .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을 제외하고 보수 성향으로 채워진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낙태는 각 주가 스스로 규제하도록 판결하면서 후 폭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삶 중 어떤 부분에서도 불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부자와 특권층 뿐만 아니라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공정한 사회입니다. 요즘 흑인의 힘이니 여성의 힘이니 이런저런 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태아의 힘은 어떨까요? 비록 세포에 불과 하다 해도 그들 역시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권리를 위해 싸울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낙태에 반대하는 연설을 패러디한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은 ‘트릭 E 딕슨’이라는 가상의 대통령을 내세워 그가 재선을 위해 펼치는 정치적 공작을 거침 없는 독설과 조롱, 유머를 뒤섞으며 공화당 출신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향해 빅 펀치를 날려 버린다.


낙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태아의 권리’를 주창한 1971년 4월 닉슨의 샌클레멘테 연설을 마치 한편의 풍자극 시나리오처럼 구성한 필립 로스는 태아 권리를 명분 삼아 (1972년 재선거 전) 태아 투표권까지 법제화 시켜서 재선에 당선 되기 위해서 온갖 모략을 참모들과 도모하는 소설 속 대통령 트릭 딕슨을' 리키(Tricky, 사기꾼)'로 부른다.


“이 나라가 다시 위대해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대량의 무지”라는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미 합중국 트리키 대통령은 12~13살 짜리 보이스카우트 단원 소년 세명이 반정부 세력 집단으로 파악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지자 정치·군사·법률 참모들을 모아 놓고 사살 진압과 즉결 처분 안부터 좌파 화 공작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한다.

트리키 대통령은 국가의 모든 정책을 마치 미식축구 전략 짜듯 추가 논의로 밀어붙이고 보수성향과 반대의 길을 가는 진보적인 국가를 향해 포르노 정부라 지칭한다.

그는 국가의 공권력으로 사회의 정의와 공공 이익을 우습게 보며 법원에 자신들의 가치 성향에 부합하는 법관들을 앉혀 놓고 시민들의 눈과 입을 가려 버린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법관들을 앉혀 놓은 트리키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아니”라,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전체주의적 지배 논리를 시민들에게 늘어 놓는다.

이토록 음험하고 음흉한 다크 베이스 같은 독심술을 품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작가 필립 로스는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두 개로 갈라 버리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건들을 수면 위로 올려 버린다.


[목사, 이건 내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요! 목사와 내가 보기에 더 훌륭한 퀘이커 교도가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어린 녀석 무리는 무시무시한 거짓말에 오염되어 있소. 그들의 정신을 깨우면서 동시에 대통령직의 위엄과 신망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만약 이 두 가지 중요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 동성애자라고 말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소. 예전에 나는 앨저 히스가 공산주의자라고 용감하게 말했어요. 흐루쇼프를 가리켜 약자를 들볶는 불한당이라는 말도 용감하게 했고,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도 나는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소!]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이 작품을 발표 할 당시 필립 로스를 향해 복음주의자들이 닉슨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맹비난을 퍼붓자 필립 로스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렇게 맞 받아쳤다.


'저는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뉴저지에서 성장하면서 오로지 국민 전체를 '전쟁 사업'에 총 동원 시키기 위해 라디오와 신문 같은 언론들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서 전투 소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자극했었죠.

저도 그 시절엔 열심히 깡통 모으는데 동참하며 동전 한 푼이라도 이념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군인 아저씨, 삼촌, 사촌 그리고 이웃들에게 보내줬습니다.

아주 대단히 헌신적인 뉴딜 당원이였죠.

1968년 닉슨 대통령은 우리 집안에서 악당으로 불렸고 종종 이모들은 신문에 그의 얼굴이 실리면 손에 부엌 칼을 들고 찍어낼 정도로 증오 했습니다.

저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정치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공산국가를 돌아 다니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우리 패거리>에 등장하는 트리키 대통령을 닉슨 대통령을 풍자하고 우스꽝스러운 똘아이로 그린 것이 아니라 리처드 닉슨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미국 땅에 똘아이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부패하고 음험 하고 무법적인 대통령은 닉슨이 처음이였고 조 매카시도 그 사람보다는 덜 했을 정도죠.

저는 일개 소설가로 고작 이런 이야기로 세상이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는 시위대 한 가운데서 고함 치며 피켓을 흔드는 것보다 종이로 인쇄되어 이런 인간이 버젓이 내뱉는 '미국'이라는 말에 어떤 애국심도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애착심도 없는 패거리들끼리 사기 치고 수작 부리는 꼴을 널리 읽혀지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1974년 필립 로스

마흔 살을 갓 넘긴 필립 로스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고 뚝딱 완성한 <우리 패거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6개월 전에 발표되었고 이 똘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반 세기를 지나 2022년 미국 땅을 두 개로 갈라 버린 낙태법 폐기 법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충격일 정도로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서 예언서처럼 읽혀진다.

복음주의가 미 정계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 닉슨 집권기로 1973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내리자 낙태를 죄악시하는 복음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거리로 나섰다.

2003년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찬반 논란이 극심했던 ‘부분 출산’(태아의 머리나 몸통 일부를 먼저 꺼내는 낙태 방식)을 금지하자 낙태 반대파는 이 방식이 매우 잔인하며 사실상의 영아 살해라고 반발했고 찬성론자들은 감염 위험이 적고 산모에게 안전한 시술이라고 반박했지만 부시 정권은 밀어붙였다.

2016년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강력한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 된 트럼프는 집권 이후 줄곧 반낙태, 반이민 정책을 펴며 복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구현했고 재임 중 3명의 보수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 세 명 모두 닉슨 시절에 헌법을 반기를 들며 진보로 돌아섰던 대법관들과 달리 보수적 판결을 충실하게 내리며 미국 사회를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대립 하게 만들었다.

현재 대선을 앞둔 미국은 전체 비율로 미세하게 바이든이 앞서고 있지만 경합주인 총 6개 지역에선 트럼프가 앞서고 있고 이 지역에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몰려 살고 있다.

필립 로스가 1971년에 쓴 <우리 패거리>의 우두머리이자 미국 역대 최고의 똘아이 대통령 트리키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미국 대통령, 또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십 대 소녀가 이분을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자유 세계의 지도자, 제 친구이자 저명한 재판관으로 현재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법조인은 얼마 전 제게 보낸 편지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최고급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남자가 이분을 '미군 최고 통수권자'로 부르는 걸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분은 평범한 의미의 지도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비범한 의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알았던 우리가 마치 반려동물에게나 붙일 법한 소박하고 허물없는 이름으로 그를 생각하는 겁니다.

어린 강아지에게나 붙일 법한 편안하고 친숙한 이름이죠.]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트럼프는 미국 언론에서 "불법무도한 사이코패스(lawless psychopath)"로 심리 전문가들에게는 자기도취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자로 불리고 있지만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는 우리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로 칭송 받고 있다.

여러 우려 속에서 이번 미 대선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지지자들이 똘똘 뭉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게 된다면 포퓰리스트 사이코패스 패거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는 현재 한국 정치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만들 것이다.



무능하고 교활한 정치인에게 작가가 펜으로 맞서는 최대치의 항거를 보여준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는 전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익 집단의 패거리들의 행태와 악행을 실랄하게 풍자한 세기를 뛰어넘는 걸작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념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상을 지킬 의욕과 능력이 있는 대 악마가 필요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해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은 우리 편입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계속 우리 편으로 묶어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편이니까요. 우리가 악의 편이니까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제가 대악마로 선출된다면 악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할 겁니다. 우리 자녀들, 자녀들의 자녀들은 올바름과 평화의 끔찍한 고통을 결코 모르게 할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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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7-06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스콧님~

scott 2024-07-06 02: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주말 동안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레이먼드 카버의 말 - 황무지에서 대성당까지, 절망에서 피어난 기묘한 희망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레이먼드 카버 지음, 마셜 브루스 젠트리.윌리엄 L. 스털 엮음, 고영범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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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루 종일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내가 깊이 생각했던 것, 그래서

하게 된 일이

떠올랐다. 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메리엔-지금 그녀는 자신을 애나라고

부른다- 에 대해 품었던 마음들

나는 물을 한 잔 받으러 갔다.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다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다음 주제로 쉽게 넘어갔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대못처럼 파고드는 그 기억.

1983년에 발표한 <대성당>으로 전미 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스트라우스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면서 3년 전 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던 시러큐스 대학 정교수 자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뮤즈이자 동반자인 시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위싱턴 주 포트앤젤레스로 이주하고 방문객 사절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고 타자기를 치는 동안에는 집안의 전화 선까지 모조리 빼버린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를 읽고 반나절 동안 시 한 편을 써낸 카버는 <대성당> 성공 이후 단 한편의 소설을 쓰지 못했지만 그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인터뷰가 줄을 이었고 서평과 추천사를 써 달라는 출판사에서 보내는 편지들이 매일 한 가득 도착했고 문학 행사를 여는 도시 마다 그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각종 문예지마다 카버의 문장을 흉내 낸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 정도로 1980년대 미국 문학계에 최고의 스타는 레이먼드 카버 였다.


1971년 <에스콰이어> 잡지에 <이웃 사람들> 단편이 처음 실렸을 때부터 카버의 글은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카버의 문장을 대폭 뜯어 고쳐서 미니멀리스트라는 호칭을 받게 만든 고든 리시가 편집하는 작품 마다 호평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더러운 삶을 사는 밑바닥 백인의 이야기를 팔아 먹는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의 단편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이 출간 되면서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수록된 단편들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에 책이라곤 없었던 환경 속에서 여덟 살 때부터 술을 마셨고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열 여섯 살의 여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던 레이먼드 카버는 지독한 가난과 파산과 알콜 중독으로 파멸 직전까지 내몰리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학업을 이어나갔고 글쓰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


사랑과 이별, 미움, 질투, 두려움, 슬픔 같은 살아가는 동안 느끼고 겪게 되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게 되는지 카버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인물들의 구석 구석을 냉정하게 들여다 보지만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 해주면서 연민의 시선으로 접근 한다.

단어 하나 하나에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의미를 담은 그의 글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살아가는데 절대로 잊어 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무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카버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미 전역을 돌아 다니며 주유소 시급일 부터 튤립 수확, 병원 청소, 화장실 청소, 장난감 조립, 쿠키 공장,교과서 편집일을 전전 하는 동안 파산과 불화, 중독과 이혼으로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부분은 부부 사이에서 발생한 이야기들로 그의 출세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보여준 의심과 질투, 분노는 이후에 출간한 작품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사랑'을 전면으로 내세운 이야기까지 지난 시절 고통과 절망에서 몸부림쳤던 모습을 겹겹이 이어 붙여 놓았다.



카버의 단편들을 모조리 읽고 나서 맨 앞 장으로 돌아가 두 번 세 번 읽어 나갈 때마다 그가 살아 왔던 인생들이 보였다.

16살 나이에 임신해서 무일푼에 카버와 결혼한 아내 메리엔은 불안정한 주거지에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어떤 일이든 마다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다녔고 남편 카버가 변변치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쓸 수 있게 배려 했고 아이들 양육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반면에 남편 카버는 아내가 사회적으로 승승 장구 할 때마다 외도를 의심했고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치료소를 들락 날락 거리는 동안에는 아내에게 칼을 휘둘러서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불화 속에서도 아내는 10여 년 동안 힘겹게 대학에 다녔고 법률가 꿈을 포기 하지 않았고 남편 카버는 아내가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 될 때마다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는 속 좁은 남자였다.


남편 카버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결혼 생활을 지키려 했던 아내 메리언 역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알콜에 빠져서 병원에 드나들었고 이런 부모를 뒷바라지 했던 속 깊은 딸 역시 알콜 중독자가 된다.

1977년 지역 문학 행사에서 만난 시인 테스 갤러거와 사랑에 빠진 카버가 먼저 이혼 서류를 내밀었고 5년 후 이혼을 한 카버는 과거의 나쁜 남자에서 벗어나 시라큐스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날개를 펼쳤다.


미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워싱턴주의 내륙의 소도시 야키마 출신인 카버는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노동자 남성의 마초적이면서 비굴하고 소심한 성격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완전히 분리된 시절에 성장했던 카버는 초기 작품에서 흑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이며 작품 속에서 거친 용어를 내뱉으며 노골적이게 흑인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과 공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를 수록 그는 사랑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나갔고 <대성당> 이라는 작품에서 장애를 가진 흑인과 백인이 하나의 펜을 잡고 함께 대성당을 그려내는 행위를 통해 나와 다른 피부색과 출신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만들어 나가는 모습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레이먼드 카버는 다중적인 시점으로 현란한 기교를 섞은 실험적인 성격의 스토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숨어 있는 나약한 모습을 그린 그는 한때 평론가들로 부터 '더러운 리얼리즘'이라는 혹평을 들었고 그가 쓴 시는 어떤 평론가도 공개적으로 평론을 쓰지 않을 정도로 일절 시인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1983년 <대성당>이 퓰리처 상 후보에 올라갔고 종신직 교수직에 엄청난 문학 기금의 수혜자가 되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언어로 책들이 번역 되어 미국 단편 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 하며 비로소 삶에 환한 등불이 밝혀지던 시기인 1986년 폐암 선고를 받는다.

연기와 기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타티야나 이바노브나가

뜨개질거리를 붙들고 조용히 앉았을 때, 그는 그녀의

손가락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살아가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내 친구...'그가 말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말아요! 현재에는 젊은, 건강, 불이 있지만 미래는 연기와 기만일 뿐이에요.! 스무 살이 되는 즉시 인생을 시작해요.

티티야나 이바노브나는 뜨개바늘을 떨어뜨렸다.

-안톤 체호프, <비밀 조언자>

폐의 3분의 2를 들어낸 대 수술을 받은 카버는 매일 아침 동반자 갤러거가 안톤 체홉의 단편 하나를 읽으면 그는 늦은 저녁 시간에 시 한 편을 썼다.

레이먼드 카버는 5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총 두 번의 인생을 살면서 마지막 생애 끝자락에서 체홉의 단편 속에서 자신이 살아 온 지난 날의 삶을 읽었다.

마지막 몇 해를 앞 둔 카버는 체홉의 단편들 속에서 시어들을 골라내고 행갈이를 해서 부분적으로 문장을 다듬어 시의 형태로 만들어 나가면서 체홉의 글 속에 자신의 삶을 끼워 넣었다.


예감

'어떤 예감이 들어요... 어떤 이상하고

암울한 예감 때문에 우울해요. 꼭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을 것만 같아요.'

'결혼하셨나요, 의사 선생님?' 가족이 있으시죠!'

'아무도요. 홀몸이에요. 심지어 친구도 하나 없어요.

부인 말씀해보시죠. 예감을 믿으시나요?'

'오, 그럼요. 믿죠.'

-안톤 체홉 <영원한 기계>


카버의 단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삶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싸움이 시작 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희생하거나 방관하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한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너무나도 무작위적인 주변부 인물들의 암울한 삶의 문제들을 카버는 마치 깃털로 살짝 건드리듯 부드러운 어조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전조등을 켜놓고 속삭이듯 긴장감 넘치는 대화체로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30여 페이지 분량 속에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이 담긴 인물들의 삶을 담아낸 카버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시와 소설을 동시에 썼을 정도로 밑바닥 부터 창작을 차곡 차곡 다져나갔다.



'꿈이란, 결국 우리가 거기에서 깨어나야 하는 어떤 상태입니다. 그런 순간은 발견되어야 하고 상상 되어야 하는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나는 지난 시절에 읽었던 카버의 단편집 보다 그의 시를 자주 읽고 있다.

그가 남긴 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사소한 기억들과 아버지, 낚시, 사냥, 여행,첫 번째 아내와 두 아이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인 시인 갤러거와 기타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는 모습까지 담고 있다.



만약 내가 운이 좋다면, 온갖 줄을 다 꽂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겠지. 튜브가 내 코로도

기어 들어가고 하지만 친구들 겁먹지 마!

지금 얘기해두지만 그거 다 괜찮아.

마지막 순간에 그 정도는 요구 할 수 있지

누군가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모두에게 전화를 돌려서

이렇게 말하겠지 '빨리 와, 얼마 못 갈 것 같아!'

그러면 다들 오겠지. 그러면 나로서는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생길 거야. 내가 사랑하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죽음 중에서

1988년 5월 마지막 인터뷰에서 카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입니다. 어린이였을 때도 어른이였을 때도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이였습니다. 작품을 출간하자 마자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 소설은 미니멀리즘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에게 검은 잉크로 휘갈겼다는 소리를 들은 시에는 제 삶의 모습이 투영 되어 있습니다.

비록 시인으로 불리지 않지만 지난 시절에 사나흘 정도 술이 깨어 있을 때 시를 쓰고 나면 이야기가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서 문장에 리듬감을 담아서 수시로 찾아 오는 잔인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쓰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쓰다보니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으니 곧 좋아 질 것이고 어쨌든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레이먼드 카버


이 인터뷰를 마친 카버는 한 달 후 양쪽 폐에 모두 암이 재발하고 6월 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시인 갤러거와 결혼식을 올린다.

7월 알래스카로 낚시 여행을 떠나고 돌아 와서 시애틀 병원에 입원하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한다.

1988년 8월 2일 포트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을 거둔 카버는 2틀 후 입관 되어 오션뷰 공동묘지에 안장 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가난과 고통에서 발버둥치며 사랑 받기 위해 글을 썼고 사랑 받았다고 생각할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에 세워진 화강암 묘비에는 '시인, 단편소설 작가. 에세이스트'라고 적혀 있고 가장 마지막 줄에는 <만년의 편린 Late Fragment>라 새겨져 있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 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 받았다고 느끼는 것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의 '만년의 편린' 중에서

50세로 세상을 떠난 카버는 25년 동안의 다섯권 분량의 소설과 시, 산문, 그리고 서문이 담긴 작가 선집에 수록된 것 까지 포함 해서 총 73편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여기 이 책 속에 25년의 작가 인생을 사는 동안 했던 24개의 인터뷰가 500여페이지 분량 속에 그의 인생 철학과 창작 과정들이 모두 담겨 있다.

각각의 인터뷰가 곧 인간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 이야기들로 이어져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결국 읽고 쓰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재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씁니다.'

-레이먼드 카버(1938-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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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5-31 0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정말 좋네요 재능은 누구나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 쓴다...ㅠㅠ

scott 2024-05-31 10:50   좋아요 3 | URL
네, 열정만이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힘 ^^

2024-06-0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