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가 잠깐 잤는데 꿈을 꾸었다. 내 팔에 쌀알보다 조금 작은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나는 예전에도 그런 게 생겼다가 나았다고 말했다. 엄마가 약을 바른다며 그것을 다시 보여달라고 해서 소매를 걷어서 팔을 보니 물집 같은 게 터져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엄마가 그런 거 알아보러 온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그 말 듣고 혹시 나도 죽는 것인가 했다. 병에 걸려서 죽고 싶지는 않나 보다. 책속에 바이러스 감염이나 페스트가 나와서 그런 꿈을 꾼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게을러서 죽지도 못한다. 죽으려면 자기 둘레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하나도 안 하고 사니,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해야 할 텐데.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나한테 별일 있을까 하는. 꿈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눈이 떠졌다. 꿈이어서 다행이다고 생각한 적은 많이 있기도 하다.

 

《둠즈데이 북》은 정복왕 윌리엄이 1086년 잉글랜드 지방의 인구 통계를 담은 책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중세학을 공부하는 키브린이 중세 시대에 가서 그곳에서 있었던 일과 사람에 대해 녹음해두는 것을 뜻한다. 여기 나오는 시대는 2054년 영국 옥스퍼드로 역사학자는 기계를 써서 지난 날로 떠날 수 있었다. 자유롭게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저 역사를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 시대에 간섭할 수는 없다. 키브린은 본래 1320년에 가야 했는데 문제가 일어나서 페스트가 퍼진 1348년으로 갔다. 이 일을 알게 된 것은 2부 끝에서다. 키브린이 떠나고 2054년 영국 옥스퍼드에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졌다. 인플루엔자가 변형되었다고 했는데, 신종 인플루엔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2054년에 바이러스에 감연된 사람이 아프거나 죽기도 했는데, 중세에서 페스트에 걸린 사람은 모두 죽었다. 키브린은 페스트 예방 접종을 받고 갔다. 그래서 괜찮았는데 키브린이 신세를 진 한 집안 식구들과 신부가 모두 죽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상하게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답답했다. 키브린이 사람들을 살리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어서였을까. 그래도 신부는 키브린을 성녀 캐서린이라 여겼고 키브린이 그곳에 와서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신이 왜 태어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무슨 뜻이 있길래. 나는 그런 생각을 해도 답은 아직 모르겠다. 정답은 없겠지만 앞으로도 찾아야 할 것 같다.(어쩌면 별거 없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키브린이 왜 모두가 죽고 마는 1348년으로 가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키브린은 중세 시대 사람들과 살았다. 영주 집안 식구들로 아이들도 있었다. 로즈먼드는 열세 살이었는데 얼마 뒤에 결혼한다고 했다. 로즈먼드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나이도 아주 많았다. 그리고 로즈먼드 동생 아그네스. 아그네스는 키브린이 하는 말을 처음으로 알아들었다. 키브린이 1320년이 아닌 1348년에 간 것은 키브린이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죽어가는 가운데도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을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어갈 때는 담담한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쓰다보니 마음이 조금 안 좋기도 하다. 2054년 영국 옥스퍼드에도 슬픈 죽음이 있었다. 그래도 2054년보다는 1348년에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책을 보다가 떠오른 게 있다. 거기에서는 여기와는 다르게 의사가 우연히 지난 날(에도 시대)로 가지만. 머리에 있는 종양 때문이었으려나. 그것은 일본 드라마 진(仁)이다. 원작은 만화라고 한다. 에도에 콜레라가 퍼졌을 때 진은 자신 때문에 역사가 바뀌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환자들을 내버려두려고 했다. 하지만 의사이기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기만 할 수는 없어서 환자들을 돌본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나오는 페니실린까지 만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키브린이 역사학이 아닌 의학을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그랬다면 몇 사람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여기에서는 역사에 간섭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려웠으려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얼마나 좋은 시대냐 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92년이지만. 1992년에서 1348년도 아주 먼 옛날이다. 책을 읽기 전에 조금 걱정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비 맞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나왔는데 추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선

 

 

 

 

☆―

 

“하지만 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키브린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왜 울고 계시나요?” 신부가 물었다.

 

“신부님은 절 구해 주셨어요.” 흐느낌에 목소리가 희석되었다. “그런데 전 여러분들을 구해 내지 못했어요.”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부가 말했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 주 그리스도조차 죽음에서 사람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알아요.” 키브린이 말했다. 키브린은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얼굴에 손을 댔다. 손바닥에 눈물이 고이더니 로슈 신부의 목으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하지만 성녀님은 저를 구원해 주셨지요.” 로슈 신부가 말했고 신부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두려움에서.” 로슈 신부는 콜록거렸다. “믿지 않는 마음에서 저를 구하셨습니다.”

 

키브린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신부의 두 손을 잡았다. 손은 차가웠으며 벌써 굳기 시작하고 있었다.

 

“전 모든 이 가운데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로슈 신부는 말하며 두 눈을 감았다.  (764쪽)

 

 

키브린은 손바닥을 뒤집어 어스름한 속에서 손목을 살펴보았다. “로슈 신부님과 아그네스와 로즈먼드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모두 기록해 놓았어요.”  (8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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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ズスイ-トホ-ム 5 (KCデラックス) (コミック)
こなみ かなた / 講談社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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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를 쌓아놓고 본다고 하는 말을 많이 봤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다른 책도 마찬가지다. 다른 책을 보는 사이사이에 만화를 한권씩 본다. 만화를 보고 나서 쓰는 것은 다른 책을 보고 나서 쓰는 것보다 더 자세한 줄거리다. 무엇인가 다른 말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생각만 하고 그냥 쉬운 쪽을 고르고 만다. 다른 말 쓸 게 거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쓰면 괜찮을 텐데, 줄거리라도 써야 마음이 편하다. 아무것도 안 쓰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 마음 때문에 괴로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괴롭게 하다니,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이것은 누구나 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국 모든 괴로움은 바로 자기 자신에서 오는 것이니까.

 

이 책 4권을 본 때는 2011년 8월이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그동안 왜 안 본 걸까. 사실 왜 그랬는지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때 이 책을 5권까지밖에 사지 않아서다. 지금은 9권 빼고 다 있다. 그리고 올해 10권이 나온다. 이 책은 한 해에 한권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좋은 것이고 어떻게 보면 안 좋은 것이다. 그림은 모두 컬러다. 그래서 책이 비싸다. 이 말은 예전에도 썼는데 또 썼다. 이 만화에는 그렇게 어려운 말이 쓰여 있지 않아서 쉽게 볼 수 있다.(다른 만화에도 어려운 말은 많이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 왜 아직도 다 못 봤느냐 하면, 보고 나서 쓸 일이 걱정스러워서다. 내가 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 이것은 어느 책이나 똑같다. 책 읽고 보는 것을 즐겨야 하는데 다음 일을 걱정하다니, 마치 오늘보다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는 것과 같구나. 이런 강박증 같은 것은 어떻게 고칠 수 있으려나. 그런데 강박증 맞는 말인가. 이런 말장난 같은 말은 이만 줄이고 이 책에 대해 써야겠다. 지금까지 이야기 조금, 5권에 나온 이야기 조금.

 

엄마 고양이와 떨어져 길을 헤매다 지친 새끼고양이는 공원에서 넘어진 요헤이와 만난다. 요헤이는 어린아이다. 요헤이는 집으로 고양이를 데리고 가자고 엄마한테 말한다. 하지만 요헤이네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었다. 엄마는 새끼고양이 주인이나, 맡아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 고양이를 잠시 집에 두기로 한다. 얼마 뒤 새끼고양이 이름을 치라 한다. 시간이 흘러도 치를 맡아줄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요헤이뿐 아니라 엄마 아빠 모두 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번은 농장을 하는 사람한테 치를 맡길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치가 없는 집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검정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퍼지고 관리인한테 들켜서 그 사람은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 검정고양이는 치와 친해지기도 했는데. 엄마 아빠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한다. 때마침 애완동물을 키워도 괜찮다는 말이 쓰여 있는 아파트가 보였다. 엄마 아빠는 앞으로도 치와 함께 살기 위해서 이사하기로 한다. 먼저 살던 아파트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들도 많다. 치가 요헤이네 식구와 살면서 일어난 일과 치만의 모험도 나온다. 우리는 치가 말하는 것을 알지만, 요헤이와 엄마 아빠는 모른다. 그렇다 해도 서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려나. 그렇지 않겠지.

 

이사한 집에서 치는 아직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이번에는 집 밖으로 나간다. 처음에는 치가 뜰에 있을 때 옆집 개 짖는 소리에 바깥으로 나가서 가까운 곳을 잠시 둘러보기만 했다. 어린이가 새로운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듯 새끼고양이도 바깥에 관심을 가졌다. 멀리까지 이어진 길에. 그렇다고 해서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집에서 나간 치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먼저 살았던 집에까지 간다. 그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말았다. 우연히 만난 얼룩고양이가 자기가 사는 집에 치를 데리고 가서 먹이를 주고 ‘이 집 고양이가 되는 게 어때’ 했다. 치는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리 방석에 자기 냄새를 묻힌다고 해도 그곳에는 요헤이도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치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치가 집에 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바로 옆집 개다. 치가 돌아간 뒤 얼룩고양이는 치를 어디에서 봤는지 떠올렸다. 치를 낳은 엄마 고양이와 형제들을.

 

집 바깥에 나온 치한테 얼룩고양이가 마마가 있는 곳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치는 마마가 뭐야 했다. 처음에 치가 엄마를 ‘마마’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새 그 말을 잊어버렸나 보다.(정말 나왔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요헤이가 엄마라고 해서 치도 엄마라도 했는데. 어쨌든 치는 마마가 우유를 준다고 한 말에 끌려서 얼룩고양이를 따라갔다. 그런데 치가 생각하는 마마가 조금 웃겼다. 얼룩고양이가 제대로 설명을 해줬다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얼룩고양이와 치가 가는 길 벽에 치를 찾는다고 쓴 듯한 종이가 있었다. 치는 본래 집고양이였나 보다. 얼룩고양이는 치를 집 앞까지만 데려다 주었다. 결국 치는 엄마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검정고양이를 만났다. 치가 사람을 피해서 숨었던 쓰레기를 덮은 그물 속에서 나오지 못했을 때 검정고양이가 나타나서 그물을 들어주었다. 치는 검정고양이한테 보고 싶었다고 했다. 검정고양이가 사는 집에서 치는 우유를 얻어먹고, 잠시 검정고양이 위에서 잤다. 그러고는 꿈을 꾸었다. 언젠가 있었던 일에 대한. 집에는 검정고양이가 바래다 주었다. 검정고양이네 집에서 치네 집은 똑바로 가면 나왔는데, 치가 집에서 나왔을 때 길을 되짚어 갔기 때문에 조금 복잡했다. 치도 언젠가는 그것을 알게 되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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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3-0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로 읽으시는거에요? 저는 애니때문에 듣는 건 어느정도 되는데 아직 읽지는 못하겠던데..ㅎㅎ 고양이 정말 귀엽네요. 예전에 고양이 카페에 간 적 있는데 거기 고양이들은 저렇게 귀엽지는 않더군요, 풋. 항상 만화가 현실보다 더 귀엽..

희선 2013-03-07 02:39   좋아요 0 | URL
이 만화에는 아주 쉬운 말이 나옵니다
일본말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면, 글을 읽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기본 글자만 공부하면... 만화는 한자에 요미가나(읽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게 많아요 만화는 볼 수 있는데, 아직 소설은... 소설도 보고 싶은데...
저도 만화에는 이렇게 귀엽게 나오지만 실제는 좀 다르겠지 하는 생각했습니다


희선
 

 

 

 

제가 만화를 많이 보는 것은 아닌데, 몇 편 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츠메 우인장》(미도리카와 유키)이 있습니다. 나츠메는 바로 이 만화에 나오는 남자아이입니다. 나츠메 타카시라고 합니다. 본래 일본에서는 이름보다 성으로 말할 때가 많잖아요. 하지만 나츠메는 타카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나츠메 외할머니인 나츠메 레이코를 뜻하기도 합니다. 나츠메가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것이 바로 요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묶은 책 우인장(友人帳)입니다. 우인장이라 하면 ‘뭐지’ 할 텐데, 일본말을 보면 친구 이름 책(이름은 제가 그냥 넣었습니다) 이라 할 수 있죠. 제가 이것을 깨달은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입니다.

 

먼저 우인장에 대해 설명해야겠군요. 나츠메 할머니인 레이코는 요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고 요괴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람보다는 요괴와 좀 더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된 것은 아닙니다. 레이코는 요괴를 만나면 늘 싸웠습니다. 레이코는 요괴와 싸워서 자신이 지면 요괴가 자신을 잡아먹어도 괜찮다고 했고, 레이코가 이기면 요괴는 레이코 부하가 된다는 계약으로 이름을 적은 종이를 주었습니다. 레이코가 이긴 요괴들 이름이 적힌 종이를 묶어둔 게 바로 우인장입니다. 레이코가 요괴와 친구가 된 것도 아닌데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친구라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군요. 우인장에 있는 요괴 이름을 레이코는 언제든 부를 수 있었지만 요괴 이름을 적은 종이를 받기만 하고 거의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모아두었던 것이었습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것이 레이코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레이코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바란 요괴들은 많았습니다. 그런 요괴를 레이코가 아닌 손자인 나츠메가 만나게 되고 우인장에 묶여서 자유롭지 못한 요괴들한테 이름을 돌려줍니다. 이름이 적힌 종이는 요괴한테는 목숨과도 같거든요. 그 종이를 태우면 요괴도 죽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레이코 손자인 나츠메 타카시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나츠메도 외할머니 레이코처럼 요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힘이겠지요. 부모님이 살아있어서 나츠메와 함께 살았다면 좀 나았을 텐데, 나츠메는 어렸을 때부터 친척집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요괴를 볼 수 있어서 행동이 이상했습니다. 친척들은 그런 나츠메를 보고 사람들한테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나츠메도 레이코처럼 사람뿐 아니라 요괴와도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날이고 만화는 나츠메가 아버지 먼 친척인 후지와라 부부 집에 살고 있는 모습부터 나옵니다. 후지와라 부부한테는 아이가 없었거든요. 둘 다 나츠메를 아주 반겨주었습니다. 후지와라 부부 집은 시골에 있었습니다. 다른 만화에서 보면 요괴는 도시보다는 시골에 더 많더군요. 그래도 나츠메는 그곳에서 살게 되면서 학교 친구를 사귀고, 나츠메 경호원인 야옹 선생을 만났습니다. 또한 나츠메가 요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친구도 만났습니다. 레이코와는 다르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나츠메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과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고, 요괴와도 말을 나누고는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요괴도 사람처럼 착한 요괴가 있는가 하면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요괴도 있었거든요. 나츠메가 어렸을 때는 요괴를 무서워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거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 아쉬워하는 것처럼 나츠메는 요괴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나츠메가 만나는 사람 가운데는 요괴를 없애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만화속 세상에서 잘 알려진 배우인 나토리 슈이치입니다. 겉으로는 배우지만 남들은 모르게 요괴를 없애는 일을 했습니다. 나츠메는 요괴라고 해서 모두 없애야만 하는 것일까 합니다. 나토리는 나츠메와 만나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나토리도 요괴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자랐거든요. 그러면서 요괴를 좋아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요괴를 식으로 쓰고 있으면서도요. 나토리가 한때는 나츠메한테 사람과 요괴 가운데 한쪽만 고르라고도 하지만, 나츠메 마음을 존중해줍니다. 요괴를 없애는 주술사는 나토리뿐 아니라 많이 있습니다. 마토바는 마토바 집안의 당주로 나츠메가 가진 요력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집안에 들어오기를 바랐습니다. 나츠메 때문에 후지와라 부부가 힘들어지거나 친구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나츠메는 잠깐 그런 말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곁에 있기로 합니다. 요괴를 볼 수 있는 사람 가운데도 이런저런 사람이 있고, 서로에 대해 알아도 마음이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나츠메 우인장》에서는 나츠메가 사람과 요괴를 만나며 자라가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가끔 레이코 이야기도 나옵니다. 레이코에 대한 것도 더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죽은 사람이기에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나츠메도 요괴 때문에 레이코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답니다. 이 책은 15권까지 나와 있습니다.(우리나라에는 14권까지입니다, 몇 달 지나면 15권도 나오겠죠) 여기에는 엄청난 모험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래도 거기에서 감동 받을 수 있습니다. 레이코를 그리워하는 요괴들을 보면 조금 슬픈 마음도 들더군요. 요괴와 사람의 시간은 다르거든요. 나츠메를 좋아해서 따르는 요괴도 많답니다. 야옹 선생은 언제나 나츠메가 요괴 일에 상관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도와줍니다. 나츠메가 죽은 다음에 우인장을 받기로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죠.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할지라도 정이 들어버린 거겠죠.

 

 

 

희선

 

 

 

 

 

 

                          

                                    나츠메와 야옹 선생 그리고 우인장

 

 

 

 

                          

                             뒤에 있는 요괴는 히이라기, 바로 옆은 나츠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토리입니다

 

 

 

 

 나츠메 뒤에 있는 요괴는 야옹 선생의 진짜 모습입니다

 야옹 선생일 때는 다른 사람한테도 보이지만 요괴인 마다라가 되면 보통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습니다

 야옹 선생일 때는 귀엽고, 마다라일 때는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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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2-22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오...ㅎㅎㅎ 저는 이거 애니로 봤는데.. 4기까지 나왔던가? 그럴거에요. 개인적으로는 나츠메 레이코가 정말 강력한 것 같아서... 손자인 너는 왜 저정도 힘이 없냐, 라고 구박해주고 싶었지만... 전형적인 소년만화적인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만 배제하면 뭐랄까, 보다보면 잔잔하고 좋았어요. 솔직히 고백하면 야옹 선생이 너무 캐릭터가 좋은 것 같달까

저는 최근에 마기, 라는 만화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희선 2013-02-23 00:58   좋아요 0 | URL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서 아는 사람이 많은 만화겠죠 사실은 저도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책도 보게 됐어요 지난해에 보기로 한 거지만...
레이코가 그렇죠, 그래도 나츠메도 요력은 세요 주먹으로 한대만 쳐도 요괴한테 먹히니까요 꽤 큰 요괴는 어렵지만... 그럴 때만다 야옹 선생이 나타나죠

제가 아는 만화가 별로 없어서... 마기는 찾아서 어떤 것인가 봤습니다


희선
 

 

 

 

이런저런 책에 대해 짧게라도 잘 쓰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런 것은 잘 못한다. 한번도 해 본 적 없고. 아니 생각해보니 한권에 대한 것도 잘 못 쓴다. 책 한권을 쓰려면 정말 힘들 텐데 그것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정말로 작가한테 미안하다. 몇달 전에 예전에 내가 책을 읽고 쓴 글을 조금 읽어봤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에도. 그것을 보다가 이 세 권에 대해 짧게 정리해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권은 기타무라 가오루가 ‘시간과 사람’을 주제로 쓴 소설로 《스킵 skip》 《턴 turn》 《리셋 reset》이다. 신기하게도 나도 이 순서대로 읽었다. 순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알아보니 나온 순서대로 본 것이 맞았다.

 

 

 

 

 

 

 

 

 

 

 

  스킵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만나다

  skip スキップ (1995)

  기타무라 가오루   오유아 옮김

  황매  2006년 05월 02일

 

 

 

 

《스킵 skip》은 말 그대로 시간을 뛰어 넘는 것이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라나고 나이를 먹어간다. 여기 나온 고등학교 2학년인 이치노세 마리코는 비 때문에 학교 축제를 하지 않게 되어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는데, 잠에서 깨어난 마리코는 마흔두 살이 되어 있었다. 정신(영혼)은 열일곱 살이었는데 몸이나 환경은 마흔두 살이 되어 있는 거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깜짝 놀랄지. 그곳에는 딸과 남편도 있었다. 딸과 남편한테 말을 해서 이해를 받기도 한다. 25년이 지나서 마리코 부모님은 벌써 돌아가셨다. 그 점을 마리코는 슬퍼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다시 마리코가 열일곱 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리코는 마흔두 살로 살아가기로 한다.

 

 

 

 

 

 

 

 

 

 

 

 

 

  turn  시간의 되풀이 속에서 나를 만나다 (1997)

  기타무라 가오루   이재오 옮김

  황매  2009년 03월 07일

 

 

 

 

 

여기에서 턴은 한번만 도는 것이 아니다. 돌고 도는 것이다. 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모리 마키는 29살이고 판화가로 한 주에 두번 미술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여름 어느 날 비탈길에서 다른 차를 피하다가 덤프트럭과 부딪치고 마키는 정신을 잃는다. 얼마 뒤 깨어나니 자기 집에 있었다. 그런데 바깥이 아주 조용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마키는 같은 날을 되풀이한다. 무엇을 해도 남지 않았다. 모리 마키가 있었던 곳은 이 세상과 저세상의 틈이었다. 실제 모리 마키는 병원에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바깥 세상, 아니 이 세상에 사는 사람과 전화로 연결된다. 그 사람은 일러스트레이터 이즈미로 마키의 판화를 써서 무엇인가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사람하고는 전화로 말을 할 수 없었는데 이즈미하고는 말할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얼마 뒤 마키는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자를 보게 된다. 그 사람이 마키한테 나쁜 짓을 하려고 했을 때 남자는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고 마키는 남자가 죽었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느꼈다. 마키는 자신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해도 마키는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한다. 마키가 깨어났는지 어땠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모두 사라져 버려. 밑이 없는 찻잔에 차를 따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아. 하지만 그 판화가 다시 또 다른 형태로 살아난다면 그것은…… 뭐라하면 좋을까. 부모 대신에 자식이 ‘만드는’ 일에 참가하는 것 같은 느낌일지도 몰라.”  (247쪽)

 

 

아무도 봐 주지 않고 누구도 말을 걸어 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차피 덧없게 사라져 버릴거라면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395쪽)

 

 

이 지구조차 언젠가는 형태를 잃어버린다. 영원하다고 한다면 한순간도 영원하다. 이런 당연한 것을 나는 어째서 잊어온 것일까. 핏기 없는 얼굴로 날마다 아무 성과도 없는 되풀이라고 말했던 나. 성과가 없던 것은 ‘날마다’가 아닌 ‘나’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어찌하여 살아 있는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396쪽)

 

 

 

 

 

 

 

 

 

 

 

 

  리셋   시간을 넘어서 나를 만나다

  reset  リセット (2001)

  기타무라 가오루   고주영 옮김

  황매  2007년 03월 15일

 

 

 

 

 

 

제목을 보고 바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에 있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단추다. 하지만 우리 삶은 잘못되었다고 해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리셋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환생이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소설 속 사람들은 죽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만난다. 그리고 알아본다. 시간이 조금 엇갈리기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정말 멋지다. 왜, 실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만화 <코바토>가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괴로운 일, 슬픈 일을 잊을 수 있어서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물에 흘려보내듯 마음의 가시도 시간에 흘려보낼 수 있다. 지금의 자신을 지우고, 다음 자신이 태어난다. 그런 것이지.

 

하지만 그때는 문득 ‘사라져 버린 초등학교 5학년의 나 자신’이 애달파졌다.  (192쪽)

 

 

평생 동안 우리는 여러 사람과 동물 그리고 사물과 만난다. 그리고 또, 손을 흔들어 주지 못한 채 많은 것들과 헤어지는 것이다.  (269쪽)

 

 

 

 

지금 생각났는데 이 소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소설에 나오는 ‘나’가 바로 지금을 살아가려 하는 것이다. 어떠한 형편에 놓여 있다 해도 말이다. 시간이 다른 모습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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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코의 마법 물감 사계절 중학년문고 21
벨라 발라즈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김지안 그림 / 사계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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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두 시 종이 울리면 피어나는 꽃

참하늘빛

1분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이상한 수위 아저씨 도움으로 꽃을 얻은 페르코

꽃즙을 짜서 그림속 하늘을 칠했어

파란 물감보다 더 예쁜 하늘

 

엄마 심부름을 끝낸 페르코

어두운 다락방에서 빛을 보았어

그림속 하늘에 뜬 달과 별이 반짝반짝

 

흐린 날에는 그림속 하늘도 찌푸렸어

주지와 칼리와 비밀 친구가 된 페르코

칼리한테는 잃어버린 파란 물감 대신 참하늘빛을 나누어 주었어

페르코는 남은 참하늘빛으로 연장 궤짝 뚜껑을 칠했어

밤에는 다락방에 올라 궤짝 속에서 작은 하늘을 바라보았어

 

칼리가 선생님 모자속에 참하늘빛을 발라서

화가 난 선생님

모자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비가 내렸거든

참하늘빛을 모두 버려버린 칼리

주지가 가진 그림속 하늘에서는

벼락이 떨어져 그림이 타 버렸지

세 친구는 다시 참하늘빛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

 

다락방 궤짝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페르코는

사람들 발소리를 듣지 못했어

사람들은 다락방에 있던 궤짝들을 들고 나가 마차에 싣고 어딘가로 갔어

그리고 불에 태웠어

페르코가 들어가 있던 궤짝은 뚜껑이 뒤집혀서 사람들이 물웅덩이라 여겼어

 

개를 피해 도망치던 페르코는

강물에 뛰어들어 궤짝 뚜껑을 타고 흘러갔어

사람들은 물 위에 떠 있는 페르코를 어린 성자라 하며 대접해주었지

물속에 그대로 두었던 궤짝 속 하늘은 사라져버렸어

그런데

페르코 반바지에서 작게 빛나는 참하늘빛

 

반바지를 소중히 여긴 페르코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반바지를 입었어

그런 어느 날 주지가 더는 반바지를 입지 말라고 하자

페르코는 주지 눈속에서 더 예쁜 참하늘빛을 보았어.

 

 

2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참하늘빛을 찾으며

자라나는 것인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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