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변호사
오야마 준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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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하면 마음이 차가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일 것이다.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듯이 하는 일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변호사는 돈이 안 되는 일은 잘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변호사를 가까운 데서 본 적 없다. 거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봤다(변호사만 못 본 것은 아니기도).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소설과 드라마에 나온 게 다 거짓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변호사 가운데는 돈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가진 힘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는 사람도 있다. 고양이 변호사 모모세 타로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모모세는 도쿄대 법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에서 손에 꼽히는 큰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모모세가 한번 고양이와 관계있는 일을 잘 해낸 뒤로 로펌에는 애완동물에 관련한 소송이 잇달았다. 일이 많은 것은 그렇다 치고 그 일은 돈이 별로 되지 않았다. 회사(로펌)에서는 모모세가 그곳을 그만두기를 바랐다. 모모세는 그곳을 나와서 법률 사무소를 열었다. 그리고 다섯 해가 흘렀다. 모모세는 서른아홉, 사무실에는 고양이가 열한 마리, 맞선은 서른번이나 잘 안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하나 같이 남다르다. 모모세는 일곱 살 때까지 미국에서 어머니와 살았다. 모모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모모세를 일본으로 데리고 와서 시설에 맡겼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모모세한테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위를 올려다보렴. 그러면 뇌가 뒤로 기울어 두개골과 전두엽 사이에 틈이 생겨. 그 틈에서 신선하고 놀라운 생각이 생겨날거야.” (11쪽) 모모세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고 변호사가 되면 어머니한테 도움이 될거라는 말에 변호사가 되었다. 모모세 법률 사무소에는 비서와 사무원이 있다. 비서는 노로 노리오로 예순이다. 법률 사무소 여기저기서 일한 사람으로 자칭 업계에서 수완이 가장 좋다고 한다.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지만(자칭) 가지 않고 있다고. 사무원은 니시나 나나에로 추정 연령은 쉰 살이다. 고양이를 보살피는 일을 하면서 사무원다운 일을 시켜달라고 한다. 그런데 비서 노로가 컴퓨터로 일하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면 배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모모세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가 열한 마리나 있다니 많기는 하다. 그래도 동물 병원 원장 마코토가 고양이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주기도 한다. 또 한 사람 결혼상담소에서 모모세를 맡은 다이후쿠 아코도 있다.

 

일을 의뢰하는 사람들도 재미있다. 법학부 학생이 와서 오랫동안 모모세와 이야기를 했는데 모모세는 법률 상담이 아니라면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고양이한테 국어와 수학 그리고 음악까지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법학부에 다닌다는 학생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고양이 과외였다. 처음에 그 말을 봤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그 학생은 고양이를 고양이로 대해달라고 주인한테 말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사는 맨션이 본래는 애완동무를 기를 수 없는 곳이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애완동물을 기를 수 있는 곳으로 바뀐다면서 그것을 모모세한테 막아달라고 했다. 자기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게 싫다면서.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고양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모모세가 가르쳐줘서 알게 되었다. 언젠가 하얀 고양이는 귀가 안 들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얀 고양이가 다 귀가 안 들리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친칠라 골든이 그런 종류인가 보다. 애완동물도 사람 처지에서만 보면 안 될 것이다. 사람과 말을 나눌 수는 없을지라도 마음은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고양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고양이 눈을 보고 말을 했다. 그것도 모모세가 가르쳐주었다. 그러고 나니 사람이 조금 달라졌다.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남편하고 일도 좋아졌다.

 

사실 중심 이야기는 따로 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시신을 도둑맞은 사람이 모모세한테 범인과 교섭해달라고 한 일이다. 이 일에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는데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래도 재미있다. 범인이 조금 모자란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정이 가기도 하니 말이다. 범인은 자신들 때문에 해를 입은 사람한테 미안해하기도 했다. 나중에 돈을 벌면 갖다주고 싶다고. 본래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무엇인가 잘못 흘러가서 나쁜 일을 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벗어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한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것일지도. 그런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이 소설은 밝다. 다행이다. 또 하나 놀라운 일이 있다. 그 사람 마음은 앞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왜인지는 나중에 알 수 있다.

 

책을 다 봐갈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옮긴이 말에 《고양이 변호사와 투명인간》 《고양이 변호사와 반지 이야기》가 더 있다는 말이 있어서 괜찮아졌다. 언젠가 이 두권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고양이와 같은 동물을 위해 애쓰는 변호사가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희선

 

 

 

 

☆―

 

“지위와 돈에 야심이 없는 사람은 강적이에요. 약점이 없는걸요.”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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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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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0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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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진, 책소개에서

 

 

 

책은 참 기분 좋은 무리들이다. 어떤 방에 들어갔는데 그 방이 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상상해보라. 책장에서 책을 빼들지 않더라도 그들이 내게 말을 걸고 나를 반겨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윌리엄 글래드스턴

 

 

 

바깥에서 보면 그냥 집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곳은 애팔래치아 산맥의 작은 마을 빅스톤갭에 있는 헌책방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입니다. 이런 곳에 헌책방이라니 하며 놀라워하시겠지요. 처음에 웬디와 잭이 집을 사서 헌책방을 할거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이 “헌책방이라고요? 당신들 미쳤군요!” 했다는군요. 그렇게 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군요. 웬디와 잭은 본래 언젠가 책방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웬디가 일하는 곳에서 안 좋은 일을 겪고는 그곳을 떠나려 했을 때 빅스톤갭에 오게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두 사람은 헌책방을 하면 딱 좋을 집을 보고 지금이 바로 바라던 일을 할 때다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책꽂이는 잭이 만들고 책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고르고, 광고를 해서 책을 가져오면 나중에 다른 책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지요. 작은 마을 사람들 마음이 좋다고 하잖아요. 그냥 책을 주신 분도 많이 있었답니다. 그게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안 좋은 일이기도 했답니다. 뭐든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잖아요. 잘못을 하고서 웬디는 책을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책방으로 모습을 갖추고 문을 연 날에는 손님이 아주 많이 왔습니다. 그때 웬디와 잭은 몰랐지만 그곳에 왔던 사람들은 책방이 오래 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답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얼마 뒤 웬디는 마을 터줏대감 가운데 한 사람과 관계가 틀어졌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책방에는 손님들 발길이 끊겼습니다. 작은 마을이니 소문이 금세 퍼진 거죠. 웬디는 마을 사람들 마음이 좁은 거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웬디와 잭이 정말 이곳에 눌러 살 생각이 있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웬디와 잭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헌책방이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신문에 헌책방에 대한 기사가 나간 거예요. 고양이 뷸라 사진도 실리고. 그 신문을 보고 책방에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났답니다. 웬디와 잭은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아 함께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에 사진이 실린 뷸라가 손님들 마음을 끌었답니다. 도서관에 있었다던 고양이가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그리고 요양원에 있는 고양이도. 책방에서는 동물을 만나는 일이 좋은 일인가 봅니다. 그런 책방에는 가 본 적이 없지만요.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은 사람에서 사람한테 소문이 퍼져갔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인 광고보다 사람이 퍼뜨리는 말이 더 믿음이 갈 것 같습니다. 어쩐지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처음 시작했을 때와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드는군요.

 

책방을 열었을 때 한 사람이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이 마을 문화회관 같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처럼 책방은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웬디와 잭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가끔 행사를 열었습니다. 돈이 드는 것도 있었지요.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에서는 차와 잭이 구운 쇼트브레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책방에서는 책만 살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때로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웬디와 잭한테 털어놓았습니다. 집이 불에 모두 타서 잃어버린 책을 찾으러 온 손님도 있었습니다. 책을 가지고 온 사람 가운데는 아이를 잃은 부모, 아내를 잃은 남편, 아버지는 떠나보낸 딸도 있었습니다. 웬디는 책방을 하려는 사람한테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웬디와 잭한테는 상담자격증은 없지만, 손님이 와서 말을 하면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편해진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인터넷 서점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도 했지요. 웬디는 ‘책방은 지역 공동체의 만남의 공간이고, 주민들한테 제3의 공간이다’ (264쪽)고 했습니다. 이런 책방이 마을마다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들만의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뜨개질을 하는 모임이지요. 헌책방을 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책방, 겉에서 보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힘들 겁니다. 이것은 어떤 일이든 같겠군요. 하지만 그 힘듦을 참아낼 수 있다면 자신만의 책방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에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고 여긴 사람들이 하나둘 일일 책방 주인 체험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하루쯤 다른 일을 해 보는 일은 설레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웬디와 잭이 마음놓고 쉴 수도 있으니 하나로 두 가지를 얻는 셈이죠. 아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책방을 맡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 모임도 했습니다. 책방에서 책읽기가 아닌 글쓰기라니, 이것도 좋지 않을까 싶군요.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일상의 일을 쓰거나 어느 때는 소설도 썼겠죠. 하지만 언제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났을 테니 안 좋은 일은 쉽게 잊었을 거예요. 웬디와 잭은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힘들어도 책방일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책뿐 아니라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도 좋아했습니다.

 

이런 책방 어떠세요.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에서는 오래된 책이나 얼마 없는 책(비싼 책)은 다루지 않습니다. 웬디와 잭은 자신들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책방은 빅스톤갭의 중심이 되어 사람들을 이어주는 일을 하게 되었지요. 한번은 글을 배우려고 하는 분한테,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웬디가 세 사람을 떠올리고 연락을 했더니,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책으로 이어진 인연인 것도 같네요. 이제 책방에 쉽게 들어오실 수 있겠지요. 천천히 둘러보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책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책을 찾기 어려우면 차를 마시면서 웬디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웬디가 좋은 책을 찾아줄 테니까요.

 

 

+더하는 말

 

이 말은 처음에 쓸까 했는데 그렇게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떠오르는 책이 있더군요. 처음은 책방에 찾아온 손님이 찾고 있는 책을 찾아주거나, 수수께끼 같은 일을 풀기도 하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지금 어떤 책 떠올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뒤에서 말할 겁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책은 몇 해 전에 나온 책으로 그때 많은 분이 읽었을 거예요. 지금 처음 알게 되는 분도 있겠지요. 본래는 다른 제목으로 나왔는데 세번째가 나온 뒤로 모두 《명탐정 홈즈걸》(오사키 고즈에)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모두 세 권입니다. 책방에도 책이 많지만 책이 아주 많은 곳이 한 곳 더 있지요. 바로 도서관입니다. 두번째는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오는 책인 《맑은 날엔 도서관에 가자》 그다음 편 《도서관의 기적》(미도리카와 세이지)입니다. 이것은 예전에도 말한 적 있군요. 그리고 마지막은 많은 분이 아시는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처럼 헌책방 비블리아 고서당을 찾아온 사람과 책 이야기가 나오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미카미 엔)입니다. 어쩌면 이밖에 더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쓰고 보니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과는 다르게 소설이군요. ‘명탐정 홈즈걸’에 나오는 책방은 헌책방이 아닙니다. 홈즈걸이라는 말처럼 책방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책에 대한 일을 풀어갑니다. 두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거의 한 사람이 다 풀어냅니다. 한 사람은 왓슨 같은 역이군요. 한 사람은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고 한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입니다. ‘비블리아 고성당 사건수첩’하고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책방과 도서관에는 맑은 날뿐 아니라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흐린 날

눈 오는 날

어느 때 가든 좋다

 

 

 

희선

 

 

 

 

☆―

 

헌책이 상품인 것은 맞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 책을 아주 소중하게 다룬다. 그 책들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속 글자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여러분도 알 것이다.  (189쪽)

 

 

“헌책방 주인은 여러가지 노릇을 할 줄 알아야 해요. 상담사에 문학비평가, 자료 찾기 전문가, 매니저, 재고정리 담당자, 청소부, 바리스타, 아동보호국 요원, 건물 관리인에, 아, 그렇지, 영업사원 노릇도 해야 하죠. 그러니 웬만하면 손님이 뭐가 필요한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어쩌면 바라는 게 책 둘러보기일 뿐일 수도 있으니까.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알아서 얘기할 거예요.”  (205쪽)

 

 

손님들은 자신의 암 투병기라든가 성질 더러운 옛 애인, 예쁜 손자들, 재수없는 직장 상사, 살면서 힘겨웠던 순간들, 무식한 친척들, 무식한 친척들, 또 무식한 친척들, 그리고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둥 저 사람을 죽여버리겠다는 둥 하는 얘기를 곧잘 쏟아놓는다. 사람은 속에 든 것을 쏟아 내야 사나 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와서 마음껏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책 파는 선술집 바텐더인 셈이다. 우리는 그들이 마음껏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누가 알겠는가, 그럼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지.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상대방이 마음의 짐을 덜기라도 하겠지.  (207쪽)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방이나 도서관, 아니면 책으로 꽉 찬 책꽂이가 사방 벽을 장식하고 있는 집처럼 책이 잔뜩 있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곳들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다.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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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평전 - 실존과 구원의 글쓰기 서강인문정신 16
이주동 지음 / 소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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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1883년 7월 3일에 체코 공화국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작가이고 보험공사관리였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거칠고 엄격한 군생활을 해서 그것은 카프카의 어린시절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 율리에 카프카는 착했지만 카프카한테 마음쓰기보다 아버지 말에 따라서 살았다. 카프카는 어린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하고 카프카를 다른 사람한테 맡겨두었다. 카프카를 돌봐준 가정부가 좋았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좋지 않았다. 카프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가정부가 카프카를 학교까지 데리고 가면서 선생님한테 카프카가 잘못한 일을 말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그것을 카프카는 아주 두려워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어린 카프카는 그 길을 아주 멀게 느꼈다. 아버지의 엄격함 때문에 카프카는 학교 선생님도 무서워하고 학교 자체도 무서워했다. 그래서 카프카는 자신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을 잘 몰랐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네 해 뒤에 프라하에서 가장 엄격한 오스트리아 왕립 김나지움에 다니게 되었다. 카프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 때다. 카프카는 아무도 모르게 글을 썼다. 하지만 그 글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카프카는 글을 쓰고는 없애기도 했다. 카프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수학은 싫어했다. 카프카는 낯선 나라들의 지형·기후·생물·사람을 보여주는 지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따듯하고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남쪽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평생 꿈꾸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 카프카는 전공 때문에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 카프카는 철학이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카프카가 법학과에 가기를 바랐다. 대학을 나온 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니. 카프카는 처음에 화학과에 다니다가 바로 법학과로 바꾸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카프카는 글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카프카가 즐겨 읽은 책은 작가의 자전 요소가 담긴 일기, 전기, 편지 모둠이었다. 그러한 책을 찾아서 열심히 읽었다. 카프카는 대학 졸업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까봐 무척 걱정했다. 이런 마음에 대해 앞에서는 못 썼는데, 카프카는 늘 불안했다. 낯선 일은 더욱. 누구나 그런 마음을 느끼지만 카프카는 누구보다 더 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카프카는 대학 생활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은 카프카를 힘들게 했다. 일을 아주 많이 해야 해서. 카프카한테는 글 쓸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뒤 일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였다. 시간은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일은 많았다. 카프카가 일을 잘했기 때문에. 노동자재해보험공사는 카프카한테 잘해주었다. 카프카가 아프면 쉴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카프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주는 곳이 있었는데, 카프카는 그 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라면 기뻐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카프카가 살았을 때 아주 좋았던 것은 아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힘들었다. 카프카는 그런 사람들 편에 서서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 따듯한 마음 때문에 카프카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은 일자리라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으면 괴롭다. 카프카는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것을 괴로워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글 쓰는 것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힘들었을지도. 카프카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조금 자고 산책을 하고 밤에 글을 썼다. 그런데 집이 시끄러웠다. 카프카는 식구들 모두가 잠들 때를 기다렸다가 글을 썼다. 어느 날은 글이 아주 잘 써져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카프카는 자신을 잊고 글을 써내려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어떨지 한번 경험해보고 싶기도. 카프카가 글을 그렇게 썼는데도 끝까지 쓰지 못한 게 많은 것은 여러 작품을 함께 썼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 먼저 끝내고 다른 거 쓰지 하기도. 사람마다 글 쓰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카프카는 하나를 쓰다가 다른 게 떠오르면 그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거다.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일할 때 쓰는 글도 늘 문학을 생각하며 썼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카프카는 일기와 편지도 많이 썼다. 일기로 글쓰기를 단련했다. 어떻게 쓰면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일기를 꽤 열심히 썼던 때가 있다. 그냥 별 생각없이 썼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보다. 지금부터라도 일기를 잘 쓰면 나아질까. 하지만 카프카와 같은 글은 쓰지 못할 것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평범하게 생각해서 말이다. 카프카는 꿈도 잘 적어두었다. 카프카의 글은 꿈과 비슷하다고(카프카 소설은 아직 하나도 못 읽어봤다). 꿈은 일이 쉽게 바뀌고 여기저기 갈 수 있다. 꿈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밖에 못하다니. 카프카는 글쓰기와 책읽기뿐 아니라 연극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늘 프라하가 아닌 곳에 가서 작가로 살고 싶어했는데 그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글쓰기는 카프카가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 만난 펠리스 바우어와는 아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거의 날마다 썼다고 한다. 그 부분을 볼 때는 재미있기는 했는데. 카프카한테 펠리스와 편지를 나누는 일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괴로운 일이 되었다. 카프카는 자신은 그대로 있고, 펠리스만이 바뀌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이면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펠리스와는 약혼을 두번이나 했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런 일은 카프카가 글을 쓰게 했다. 글을 써서 사랑이 깨져버린 일을 이겨냈다. 하지만 몸은 별로 좋지 않게 되었다. 펠리스와 두번째 약혼했을 때 카프카는 폐결핵이 되었다. 카프카가 펠리스한테 폐결핵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카프카가 펠리스한테 그 말을 할 때 마음속으로는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 그 글에서 그런 마음을 느끼다니. 내가 이상한 것인지도. 카프카는 펠리스와 자주 만나지 않고 편지만 엄청 썼다. 두번째 율리 보리체크와는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결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집을 얻지 못해서 잘 안 되었다. 그때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다. 율리 보리체크와 아주 헤어지지 않고 카프카는 밀레나 폴락과 편지를 나누었다. 밀레나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남자는 아내와 헤어질 마음이 없으면서 다른 여자를 사귀기도 하는데, 밀레나도 그랬다. 밀레나를 사귀고 헤어진 일 때문에 카프카의 건강은 아주 나빠졌다. 카프카가 끝내 결혼은 못했지만, 카프카를 진정으로 이해해준 사람을 만났다. 도라 디아만트다. 카프카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도라가 함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고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였을까. 고흐를 누구보다 잘 알아준 동생 테오가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는 결핵에 걸리면 모두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에는 낫기도 했나보다. 하지만 카프카는 결핵치료를 제대로 못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결국 후두 결핵까지 걸려서 죽게 되었다. 몸이 안 좋을 때도 카프카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예전에 나도 어떤 것을 쓰지 못해서 조금 괴로웠던 적이 있다. 그것은 편지다. 다른 글을 쓰지 못해서 괴로워했으면 더 좋았을까. 책을 보다보면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기도 하는데 나도 만난 듯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카프카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같지만, 나는 사람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이것은 아마 나한테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카프카는 글을 써서 자기 자신의 문제를 알아내려고도 했다. 나는 그런 일은 해 본 적 없다. 그런 것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은 못했겠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문제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카프카는 자신이 느끼는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썼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도 별로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글 하나 쓰지 못한 것인지도. 나는 그저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책을 읽고 쓴 것을 타이핑하고 나니 아주 기분이 안 좋았다. ‘이따위로 쓰다니’ 했다. 요새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나중에 보면 아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카프카 이야기를 하다가 내 넋두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어떠한 책이든 끝이 다가올 때면 아쉬운데, 이 책을 볼 때도 카프카의 죽음이 다가와서 마음이 안 좋았다. 카프카가 된 것 같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카프카와 가까운 사람 같은 느낌은 들었다. 결핵치료를 좀 잘 하지 왜 그런 거야 하면서 책을 봤다. 카프카를 나흘 동안 만나서 그랬을까. 그런데 카프카가 결핵치료를 잘 하고 조금 건강해졌다면 그 뒤에도 잘 살아남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쩐지 카프카가 그 뒤에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것 때문에 아주 괴로워했을 테니까. 아니, 그것은 그것대로 문학이 되었을까. 카프카처럼 나한테도 글쓰기가 살아가는 게 된다면 좋을 텐데.

 

 

*덧붙임

 

이 책은 평전인데 나는 평전보다 소설에 가깝게 읽은 것 같다. 한 사람이 나고 자라고 죽기까지 이야기이니 소설과 같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카프카는 실제 있었던 사람이다. 카프카가 행복하게 글을 쓰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카프카가 글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여동생은 카프카 마음을 알아주었다. 카프카는 여동생이 빌린 집에 다니면서 마음껏 글을 썼다. 그냥 거기에서 자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글을 쓸 때만 그곳에 갔다. 한때는 시골에 가기도 했는데, 그곳도 조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밤에는 조용했을 것 같지만 쥐가 많았다. 다른 소리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 잘 안다. 그래도 다른 것을 하다보면 그 소리를 잊기도 하는데 카프카는 그것도 힘들었던가 보다. 폐결핵은 마음 때문에 생겼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맞는 말이다.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닌데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폐가 나빠지는 게 아닌가 싶다. 심장인가. 공기가 나빠도 폐가 안 좋아질 수 있다. 지금은 폐결핵에 걸려도 약만 잘 먹으면 낫는다. 조금 오랫동안이지만.

 

이것은 대체 왜 썼을까. 본래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게 쓴 것 같기도 하다. 맞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생각났다. 그것은 책을 읽는 동안 카프카가 걸었던 곳을 함께 다닌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인데. 그게 참 좋았다. 여동생이 빌린 그집에 갈 때가 가장 좋았다.

 

 

 

희선

 

 

 

 

☆―

 

모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하고, 그 고유성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저마다 가진 고유성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학교도 가정도 이 고유성을 지우려고만 애쓴다. 그렇게 해야 가르치기 쉽고 아이 삶도 편해진다. 그러나 그에 앞서 아이들은 강요가 가져다주는 괴로움을 맛보아야 한다. ……그렇듯 내 고유성은 인정되지 않았다(KKANI 7).  (46쪽)

 

 

카프카는 작품을 쓰지 않을 때에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나 일기, 그밖에 무엇이든 글 쓰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카프카가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은, 글쓰기가 바로 카프카의 타고난 운명이고 카프카의 실존이고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4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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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0-1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카프카가 걸었던 곳을 같이 걷는 그런 기분을.

희선 2013-10-11 01:21   좋아요 0 | URL
가연 님도 그랬군요 책을 읽다보면 다 그런 기분을 느낄 것 같습니다
프라하에 카프카 박물관이 있다고 하더군요 조금 전에 알았습니다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니 당연한 것이군요


희선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2 (アフタヌ-ンKC) (コミック)
交田 稜 지음 / 講談社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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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왔을 때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지금은 덜하다. 내 마음이 이렇다니. 어떤 마음이든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만다. 잠시의 들뜸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아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많이 애태우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도 가끔 새로 나오는 책 빨리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을 사도 빨리 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에서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할 수 없지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책이나 내가 아직 못 본 책은 많으니까. 이런 마음은 여우가 ‘저건 신포도일거야’ 하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나는 ‘새로 나오는 책이 다 재미있지는 않을거야’ 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까. 무슨 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비블리아 고서당은 헌책방인데 새책에 대한 말을 꺼내다니. 어쩌면 나는 조금 늦게 이 책을 보게 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내용을 알고 있다 해도 내가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은 다를 것이다. 실제 읽어보고 어떤지 알아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마응미 조금 식기는 했지만 아주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나온 책은 고야마 기요시의 《이삭줍기 성 안데르센》, 비노그라도프 쿠즈민 《논리학 입문》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이다. 책이 많이 나온 것 같지만 처음과 끝은 끝과 시작이다. 알쏭달쏭한 말을 하다니. 첫번째는 앞에서 이어져 왔고, 마지막은 시작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한테는 제목이 같다 해도 꼭 그 책이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시다는 도둑맞은 책을 찾으려고 한 거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찾기 어려울지도 모를 텐데. 아니다, 현실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책 속에서 일어난 일은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시오리코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없을까. 시오리코가 책 내용을 생각하고 말한 것이 상대방한테 전해졌다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저 바람인 것을 알고 쓰고, 그것을 읽는 것은 좋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본 것이구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는 마음속에는 실제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어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한 말을 또 한 것 같다.

 

아무리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상대를 깊이 사랑하고 자신이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더할지도……. 하지만 상대는 자신한테 기대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부부는 서로 기대로 받쳐주고 살아가는 사이가 아닌가 싶다. 헤어지면 남보다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두번째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따듯하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쉽게 헤어지는 부부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여기에 나온 두 사람은 평소에도 서로한테 마음을 써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한테 일어난 일을 그대로 받아들였겠지. 그러니 평소에 잘해야 한다. 이것은 부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잘하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을 많이 쓴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게 다른 사람한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마음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조금 이상한 말이 나왔다.

 

어떤 책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갖고 싶기도 할까. 시오리코는 자신이 왜 다치게 된 것인지 고우라한테 말한다. 그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 때문이었다. 시오리코가 가지고 있는 책은 초판으로 책장이 잘려 있지 않고, 다자이 오사무가 누군가한테 쓴 말도 있다. 이 《만년》은 시오리코 할아버지가 얻게 되고 아버지한테 물려주었다. 아버지는 시오리코한테 물려주었다. 값을 매기면 아주 비쌌다. 하지만 시오리코는 그 책이 비싸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적어놓은 글을 좋아한다. 그런데 시오리코처럼 그것을 좋아해서 그 책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오오바 요조라는 이름으로 시오리코한테 메일을 쓰고 책을 자신한테 넘겨달라고 했다. 오오바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 소설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메일 보낸 것을 보니 스토커가 따로 없었다. 하루는 비블리아 고서당에 와서 큰돈을 내놓고는 《만년》을 팔라고 했다. 이때 그 사람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시오리코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시오리코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빌린 책을 아버지 친구한테 돌려주러 나갔다. 시오리코가 계단을 오르니 그 위에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시오리코를 계단에서 밀었다. 그렇게 해서 시오리코는 다쳤다. 시오리코는 오오바 요조를 끌어내는 일을 고우라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마지막은 조금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엇인가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기 손에 들어오지 않을 때 더 커지는 것 같다. 오오바 요조는 다른 책도 꽤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어떤 책을 지키고 싶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런 책이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으니 말이다(소중하게 여기는 책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갈까. 여기에서는 그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책,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기도 한다. 그런 일만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우라가 시오리코를 잘 도와주겠지.

 

 

 

희선

 

 

 

 

☆―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사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2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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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0-09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여기 주인공처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책을 넘기면서 그 책에 담긴 사연을 천천히 음미하는 그런.. 건 맞지 않는달까. 그리고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가지고 싶은 책은 이 지상엔 없을 것 같아요, 하하.

그러나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질때 더 가지고 싶어하는게 맞는 거 같아요, 풋.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오네요.

희선 2013-10-10 01:11   좋아요 0 | URL
아직 이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고우라가 시오리코한테 '겨우 책 때문에' 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에 나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만년>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한테 한 말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말 때문에 시오리코는 고우라가 자신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저는 '겨우 책'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어떤 책을 꼭 갖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할 수밖에... 조금 엉뚱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군요^^

우리가 어떤 책에 담긴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쉽게 알 수는 없을 겁니다 이런 책으로 조금 아는 것은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어떤 일이 없었나 생각해볼 수도 있잖아요


희선
 
달나라 소년 - 네가 어디에 있든 아빠는 너와 가장 가까이 있을게 푸르메 책꽂이 7
이언 브라운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동화일 것 같은 제목인데 동화는 아니다. 여기에는 현실이 그것도 아픈 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늘 아프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보는 나는 쭉 슬픔을 느꼈다. 내가 슬퍼한다고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겠구나. 워커 아버지인 이언 브라운보다 내가 더 객관성을 잃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이런 일 나와는 거의 상관없기는 하다. 그래도 느낄 수는 있다. 진짜 부모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슬펐나 보다. 앞에서 나와 상관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도움을 준다거나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축복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한테 장애가 있다면 어떨까. 내가 왜 이런 아이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너무 차가운 마음인가. 장애아를 낳고 이런 생각을 한번도 안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부모가 더 많을 것이다. 워커를 낳은 부모 이언 브라운과 요한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이언보다는 요한나가 더 그랬다(본래 엄마가 더 그런 마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워커는 세상에 나온 지 일곱 달째에야 CFC 진단을 받았다. CFC는 희귀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심장-얼굴-피부증후군(cardiofaciocu-taneous syndrome, CFC)이다. 워커는 발달장애인데다 말도 못한다. CFC 환자는 세계에 그리 많지 않았다.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힘들지 않았을까. 이언과 요한나는 일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워커를 돌봤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워커를 돌봐서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워커는 말을 못해서 이언과 요한나는 워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워커는 자기 몸을 때렸다. 그런 것을 막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아프다가 나으면 좋지만, 워커는 낫지 않는다. 언제나 그대로다. 짐처럼 여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부모이기에 자식을 사랑하겠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이 힘들어 보여서 편하게 해주려고 죽이기도 했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언과 요한나는 워커를 다른 곳에 보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워커를 받아줄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곱 해가 걸렸다. 두 사람은 아이를 자신들이 키우지 못하고 다른 곳에 보내야 한다는 데 마음아파하기도 했다. 워커가 떠나고 난 빈 자리가 쓸쓸하지 않았을까. 그 부분을 보는 나도 쓸쓸했는데. 워커를 다른 곳(그룹홈)에 보내기로 한 일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부모가 끝까지 돌봐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모도 사람이기에 지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도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거리두기가 아닌가 싶다.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볼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실제 워커가 그룹홈에서 지내게 되면서 조금 달라지기도 했다. 가끔 집으로 돌아왔다. 그룹홈에서 워커를 돌보는 사람은 워커를 자기 아이처럼 여겼다. 그래도 조금 거리를 두었다. 진짜 부모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언은 다른 CFC 환자들을 찾아다녔다. 어떤 아이는 워커보다 나았다. 말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이언은 워커가 자기 마음을 알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혀를 차는 게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모두 믿지는 않았다. 말을 못한다고 해도 워커는 다른 사람 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언은 다른 사람처럼 워커를 천사라고 하지는 않았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아이가 천사라고. 그리고 그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살아왔다고도 했다. 이언은 워커 같은 사람한테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고 싶어했다. 이 세상에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정말 그럴까. 이 말은 장애와 상관없이 한 것이다. 워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하면 정상이 될까, 저것을 하면 정상이 될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부모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래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장애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지역사회가 장애아를 둔 부모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도 자신들만으로 할 수 없을 때는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친척이 쉽게 도와주지는 않겠지만, 일로 하는 사람은 도와줄 것이다. 그게 순수한 도움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도와달라고 못할 거다. 나는 하지도 못할 것을 말하다니.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리거나 죽이는 부모도 있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지적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갑자기 이언이 워커를 보며 생각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목숨은 소중하다고. 집안에 장애인이 있어서 잃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이언이 생각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중에 봤을 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게 뚜렷하게 썼다면 좋았을 텐데. 이언은 워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워커가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누군가한테 전할 수 없다 해도 말이다.

 

 

 

희선

 

 

 

 

☆―

 

나 자신의 목표는 소박하다. 때로 워커의 세상으로 발을 디뎌 보는 것. 지적장애인을 알기 위해 거기 가 보는 것(그들이 내 영역 속에서 사는 것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인 장애인들에 대한 내 두려움을 마주보는 것. 그들을 고치려거나 구제하려 들지 않고 내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그저 그들과 더 붙어 있는 것.  (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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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0-0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는 정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에 공감합니다.

희선 2013-10-04 01:3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사회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희선

2013-10-03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4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