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おまえさん
미야베 미유키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2013년 05월 31일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소설에는 연작으로 나오는 게 있다. 《진상》은 그 가운데 하나로 《얼간이》와 《하루살이》 다음 이야기다. 오하쓰 시리즈는 더 쓴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것은 더 쓸건가보다. 상권이 끝나고 나온 편집자 말에 쓰여 있다. 두권으로 나뉘어 있고 두권 다 좀 두껍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서 그렇게 두껍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 읽고 나면 시간이 엄청나게 지나버리겠지만. 나는 책을 그렇게 빨리 못 본다. 그렇다고 아주 천천히 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책은 거의 쉬지 않고 이틀 동안 보았다. 그래서인지 조금 정신이 없기도 하다. 여유를 가지고 봤다 해도 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말하는 검》 뒤에서 보았다. 그때는 언젠가 나오겠구나 했는데, 책이 나오고 바로는 아니지만 보게 되어서 기쁘다. 지난번 이야기 ‘하루살이’에서 시간이 조금 흐른 듯하다. ‘하루살이’를 본 지 오래되어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나온 사람은 다 잊지 않았다. 다시 보게 되어서 반갑기도 했다.
여기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나온다. 이것을 느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래도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얼간이’에서부터 나온 무사 이즈쓰 헤이시로(얼간이 무사라고), 헤이시로와 거의 닮지 않고 머리도 좋고 얼굴까지 예쁜 처조카 유미노스케(지금까지 사건을 많이 풀었다), 이번에 새로 나와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사람 혼조후카가와 마치 순시관인 마지마 신노스케, 오캇피키 마사고로가 데리고 있는 짱구 산타로(기억력이 아주 좋다), 정이 많은 오토쿠(전에는 조림 가게를 했는데 가게를 넓혔다). 글로 쓰여 있는 예쁘다, 못생겼다는 말을 쉽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저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유미노스케는 남자아이인데 아주 예쁘게 생겼다고 한다. 전에도 그랬지만 진짜 어떨지 보고 싶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마치 순시관이 된 마지마 신노스케는 못생겼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달리 말하지 않는데 헤이시로만은 신노스케 얼굴에 대해 말했다. 자기 얼굴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헤이시로와 유미노스케가 나오는 이야기에는 예쁜 사람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다리맡에서 쓰지기리(주로 에도시대 무사가 밤거리에서 무차별로 통행인을 칼로 베어버리는 일로 칼을 시험하거나 검술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다)를 당한 듯 죽어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약방 가메야 주인도 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체를 본 겐에몬은 원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했다. 이 일에는 한사람이 더 관계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죽임 당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낌 그 사람은 스무해 전 일을 털어놓는다.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은 지금 일어난 일을 스무해 전에 일어난 일의 복수라고 여겼다. 이 일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짱구(산타로) 엄마 오키에가 나타나서 마사고로와 아내인 오콘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채소가게 며느리를 식칼로 위협해서 소동을 부린 센타로. 유미노스케네 집안에도 일이 있었다. 큰형이 어쩌면 이복누이일지도 모를 사람과 혼인하겠다고 한 거다. 유미노스케 아버지와 큰형은 여자 얼굴을 보았다.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유미노스케가 아들 다섯인 집안의 막내라는 게 예전에도 나왔을 테지만, 내가 아는 것은 헤이시로가 유미노스케를 양자로 들여 일을 물려준다는 것뿐이었다. 에도 시대에만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집안 일을 장남만이 물려받았다(사정이 있을 때는 달랐겠지만). 장남이 아닌 사람은 살아가기가 조금 어려웠다고 한다. 어딘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곳조차 없는 사람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반대로 장남은 장남대로 다른 것은 못하고 집안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거다. 유미노스케 셋째형 준자부로가 처음 나왔는데 조금 재미있었다. 다섯 형제 가운데서 앞으로 일을 정하지 않은 사람은 준자부로밖에 없었다. 그런데 준자부로는 뭐든 하면 잘할 듯하다.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그냥 한량으로 살아갈지도. 여기에서 갑자기 마지마 신노스케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겠지만, 신노스케는 준자부로를 조금 샘하여 미워했다. 겉모습뿐 아니라 성격 모두 다. 신노스케는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닌데, 신노스케한테도 좋은 점이 많이 있다. 성실하고 무술을 잘한다. 그러고 보니 준자부로도 무술을 조금 배웠구나. 아직 헤이시로는 유미노스케를 양자로 들이는 일을 결정하지 못했다. 유미노스케가 헤이시로와 셋째형 준자부로와 있을 때 모습이 조금 달랐다. 당연한 일인가.
사람 속마음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겪어서 지금 그렇게 되었는지도 알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마음을 몰라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안 좋은 마음을 키우는 사람이 있었다. 장남한테만 집안을 잇게 하는 일도 어떤 사람 마음이 비뚤어지는 데 한몫했다. 사랑 때문에 천륜을 저버리다니, 이런 이야기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그냥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어주면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남자는 여자를 인형처럼 자기 마음에 들게 만들고 싶어할까. 그런 재미를 붙인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좋아한 사람도 있다(그러고 보니 신노스케도 그랬다). 그 사람이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니, 모토미야 겐에몬이 학문을 하라고 했다. 이 말 참……. 모토미야 겐에몬은 마지마 신노스케 친척으로 첫째가 아니었다.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학문으로 마음을 다잡은 게 아닐까.
책 이야기도 내 생각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미야베 미유키는 농도 짙은 연애 소설을 써 보고 싶었다고 한다. 여기 나온 이야기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연애 소설과는 아주 다르다. 본래 사랑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 어두운 것은 아니다. 책 속에 나오는 모두가 잘되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괜찮지만,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이쪽을 더 좋아할지도. 학문을 하려면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 나는 학문까지는 아니고, 그냥 책을 볼까 한다.
에도시대 사람이 나오지만 그때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래서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 언젠가 다시 한번 더 보고 싶기도 하다. 그때가 올지 모르겠다.
희선
☆―
“예전에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인연이란 어디선가 끊어내거나 풀어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을 불러들인다.
“죄라는 것은 아무리 괴롭고 슬프더라도 한번은 청산해야 하고, 눈처럼 시나브로 녹아서 없어지는 일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하권, 128쪽)
“누굴 좋아하네 반했네 보고 싶네 그립네 하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죠. 하지만 행복에 겨운 사람 둘레에는 불쌍한 사람도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럴 때 평생 그 사람한테 매달려 울고불고하거나 될성부르지도 않은 일을 이루겠다고 덤벼드는 쪽이 더 불행하지 않을까요?” (하권, 447쪽)
학문에 힘쓰면,
“힘쓸수록 사람이라는 존재의 모호함, 혼돈의 깊이를 알게 된다. 동시에 사람이 학문이라는 정밀한 체계를 만든 까닭도 그 모호함과 깊은 혼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래서 재미있다. 그래서 그 길은 멀다. (하권, 4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