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기특하구나, 나를 생각하다니.”

 

고양이는 인간처럼 울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는 게 어떤 건지 그 느낌을 알 듯했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을 때, 떠오른 게 당신이었어. 여기까지 오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어.

 

그렇지? 당신은 어떻게든 해줄 거지? 아파서 미치겠어.

 

너무 아파서 무서워. 나, 어떡하지?

 

“좋아, 좋아. 이제 괜찮아.”

 

남자는 폭신폭신한 수건을 깐 상자에 나를 담아 은색 왜건에 태웠다.  (13쪽)

 

 

아주 가끔 책 앞부분을 조금 보고도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하게 아는 것은 아니고 그냥 느끼는 거다. 처음에 별일 아닌데 내가 왜 이러지 했다. 중간이 넘고 확실하게 나온 것을 보고 그랬서였나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겁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책은 거의 혼자서 볼 테지만 둘레에 사람이 있을 때도 있겠지. 이 책은 혼자 있을 때 봐야 한다. 도서관이나 차 안, 전철에서 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고, 웃음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읽는 내내 눈물나게 하면 읽기 힘들잖아. 여기까지 쓰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앞으로 어떻게 쓰면 좋을지. 나나와 사토루.

 

나나는 본래 길고양이였다. 나나는 어느 맨션 주차장에 누군가 세워둔 은색 왜건 보닛 위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다. 은색 왜건 주인은 미야와키 사토루로 나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때는 이름은 없었고, 나중에 사토루가 나나라고 지었다. 나나는 사토루가 어렸을 때 기르던 고양이 하치와 닮았다. 사토루가 본래 고양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하치와 닮은 게 사토루 마음을 더 끌지 않았을까. 나나와 사토루는 나나가 다치고 함께 살게 된다. 사토루는 나나와 살기 위해 집을 옮겼다. 그리고 다섯해가 흘렀다. 사토루는 나나와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나나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다. 은색 왜건을 타고 사토루와 나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러 다닌다. 사토루는 그동안 일 때문에 바빠서 나나와 함께 어디에 다니지 못했다. 처음으로 둘이 함께 어딘가에 가게 되었다. 도시에서 살면 쉽게 시간을 낼 수 없을 것이다. 나나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서 다니는 게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둘이 함께 여기저기 다녀서 다행이고 사토루가 나나와 함께 돌아와서 다행이다. 사토루 혼자였다면 쓸쓸했을 것이다.

 

어릴 때 친구,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러 다니는 사토루가 부러웠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친구가 거의 없다. 아주 없지는 않은가. 어릴 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옛날과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어쩌면 친구도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자주 만나지도 않고 살아가는 것도 아주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사토루 친구들은 다 지금 사토루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다. 옛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것을 보면서 소설은 옛일을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까지 많이 봐왔는데 이제서야 하는 느낌이다). 그 안에는 좋은 일도 있지만 아픈 일도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사토루는 어둡지 않다. 그래서 다들 사토루를 좋아했던가보다. 이런 사람 진짜 있을까. 사토루를 너무 착하게 그린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나는 또 어떻고, 이런 고양이라면 함께 살고 싶기도 하다. 사토루가 어릴 때 기른 하치는 사람이 침울해보이면 위로해주었다고 한다(하치라는 개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나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고양이는 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나나여서 암고양이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나는 수고양이다. 꼬리가 7자 모양으로 구부러져서 나나(일본말로 7은 나나)라고 한 거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도 고양이 털을 보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모모는 조금 다르다. 그냥 고양이, 개라고 하는 것보다 이름을 지어주면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사토루는 어릴 때 함께 살았던 하치를 식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에 보내고, 사토루가 중학교 수학여행 때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가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차비를 마련했는데, 하치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가 사토루한테 하치와 제대로 헤어지고 오라고 해서 사토루는 가는 김에 여기저기 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사토루가 정이 많은 듯하다. 어릴 때 헤어진 고양이를 오래 잊지 못하다니 말이다. 하치는 사토루를 잊지 않았을까. 고양이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하치도 사토루와 헤어지고 낯선 곳에 가게 되어서 슬펐을 것 같다. “얼굴에 얼룩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어서 하치(일본말로 8)였어. (17쪽)

 

나나와 사토루의 여행을 따라가보길. 친구들이 보는 사토루를 만날 수 있다. 서로 몰랐던 친구들은 사토루 때문에 한자리에 모이고 사토루와 나나 이야기를 나눈다. 재미있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고 하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보고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거겠지. 동물이 사람한테 주는 위안도.

 

언젠가 나도 나나 같은 고양이를 만났으면 좋겠다. 다시 생각하니 나나 같은 고양이는 안 되겠다. 나나는 사토루만의 고양이였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책에 나온 고양이를 보면 아주 좋은데 실제는 어떨지 알 수 없다. 아마 실제로도 좋을 거다. 다른 것보다 내가 잘 놀아주지 못해서 고양이가 쓸쓸해할 것 같아서 함께 살기 어렵겠다. 그냥 앞으로도 책으로만 만날까보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잃기는커녕 나나라는 이름과 사토루와 산 다섯 해를 얻었다.  (20쪽)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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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8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츠나구 :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창구.

 

 

사람이 살아가면서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죽음이 아닌가 싶다. 오늘이 지나고 밤에 잠을 자면 어김없이 다음날이 찾아오리라고 믿는다. 늘 같은 날이지만 사실 오늘이라는 날은 늘 다른 날이다. 나도 내일은 언제나 오는 거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내일부터’ 한다. 어쩌면 그렇게 태평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아니 벌써 이렇게 된 거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라 그럴 수밖에 없는 걸 어떻게 하나. 오래전에는 내가 무엇이든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하기에 아주 늦은 때는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그저 자기 위안일 뿐이다. 때가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내버려두고, 지금부터라도 몇 해 뒤 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생각하고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몇 해 뒤에 내가 살아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냥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생각만으로 끝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나은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역시 책을 보면 자신을 더 생각하는 듯하다.

 

아직 나는 죽은 사람 가운데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아주 가까운 사람이 죽지 않아 다행이다). 언젠가는 생길까.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나한테는 언제까지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조금 쓸쓸한 일일지도. 실제 우리는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사람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신이 있으면 귀신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도 책 속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바라서 지어낸 것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책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도 만난다. 한동안 본 책들을 생각하니 죽은 사람이 나온 책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 만나게 된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죽음을 자주 잊는다고. 사고나 사건으로 죽는 사람이 나오는 책은 볼 때도 있지만, 그 뒤는 알 수 없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그 뒤를 알 수 있느냐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아주 모르는 채로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과 숫자 7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위화의 《제7일》은 읽지 못했지만,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보았다. 여기에서 7일은 죽은 사람이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다른 데서도 7일이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츠나구’는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주체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죽은 사람이 주체다.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이 이승에 오는 것이고, ‘츠나구’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거다. 주체가 누구건 서로 미련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츠나구’에서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단 한번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더 쉽겠다. 살아있을 때 한번, 죽었을 때 한번. 살아있을 때는 죽은 사람 가운데서 한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죽은 뒤에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세계는 다르다. 그러니 이런 규칙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경계란 확실히 있어야 하니까. ‘츠나구’에도 7이 나온다. 죽은 사람을 만나는 호텔방 번호 뒷자리가 모두 7이다. 그리고 거의 저녁 7시부터 만나고, 그 방에서는 달이 잘 보인다고 한다. 죽은 사람을 가장 오래 만날 수 있는 날은 보름달이 뜬 밤이다.

 

갑자기 죽음을 맞은 탤런트 때문에 살아갈 힘을 잃은 사람은 탤런트를 만나고 싶어한다. 장남으로 두해전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사고로 죽은 단짝 친구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일곱해 전에 사라져버린 약혼녀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츠나구를 만난다.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먼저 하는 사람은 고등학생 남자아이다. 처음에는 예전부터 그 일을 해온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아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온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는 조금 차가워 보이기도 했는데 그 아이가 이야기를 할 때는 또 달랐다.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츠나구’는 남자아이 할머니 친정 집안에서 사회공헌으로 하는 일이란다. 소문은 돈이 많이 든다고 나 있지만 실제로는 돈을 받지 않는다. 다른 네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마음이 풀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츠나구가 되어 사람들을 보고 남자아이가 한층 자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자아이한테도 다른 사람한테 쉽게 말할수 없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상하게 죽은 일이다. 이 일은 할머니한테도 아픔이었는데 그게 풀렸다. 이렇게만 써두면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남자아이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산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하기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이 앞으로도 잘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을까 싶다. 죽은 탤런트 미즈시로 사오리는 자신이 있는 곳은 캄캄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고로 죽은 고등학생 미소노 나쓰는 남자아이한테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많이 하라고 했다. 우리가 죽은 사람 마음을 실제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죽은 사람을 만난 사람은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을 잘 살아가고, 살아있을 때 서로 마음을 써주는 게 좋겠다.

 

 

 

*그냥

 

이 책을 보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지난해 언젠가 한 생각이다. 아이가 사고로 죽고 귀신이 되는 거다. 엄마는 일 때문에 아주 바빠서 평소에 아이를 잘 돌봐주지 못했다. 아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전학온 아이였다. 그 아이한테 귀신이 된 아이가 말을 해서 엄마와 만나고 마음을 풀고 저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생각만 하고 못 썼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과 비슷한 것 같은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츠나구’와 비슷하게 한다면 ‘엄마의 본분’이라 하면 될까. 하지만 ‘츠나구’처럼 쓴다면 아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지는 않겠다.

 

 

 

희선

 

 

 

 

☆―

 

“세상이 불공평한 건 당연한 거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불공평하지. 아무한테도 정당한 건 없어.”    (46~47쪽)

 

 

“제발 만나세요. 부탁입니다.”

 

그것이 비록 산 사람을 위한 행위일 뿐이라 해도, 남은 사람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짊어질 의무가 있다. 흐르는 일상은 막을 수 없다. 자신을 위해 잃어버린 사람을 살려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뒤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끝없이 이기적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설령 슬프고 뻔뻔한 사고방식이라 해도.  (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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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2-07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좀 다르겠지만, 예전에 보았던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생각이 나는군요. 그것도 죽음과 삶 사이에 있는 일종의 중간지대를 배경으로(림보라고 하나요?) 한 이야기였는데, 사후에서의 나머지 시간들을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영화였습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특별히 몸이 안 좋지 않는한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해 보는 경우가 없습니다만, 아주 가끔 매우 가깝게 다가온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젊은 친구의 장례식에 간다거나 하는...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 장례식이란 결국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조금 마음이 불편해지고는 하지요.

상당히 특이한 느낌의 소설일 듯 합니다.

희선 2014-02-09 01:38   좋아요 0 | URL
잠깐 찾아보니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떤 기억을 가지고 갈 것인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군요 어쩐지 저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쓰바키 야마 과장의 7일간>에서도 이 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있는 곳에 먼저 가더군요 <원더풀 라이프> 영화 본 적 없는데 내용은 어디에선가 들어본 것 같은 것은 왜인지 모르겠네요^^

영화 이야기를 보고 생각난 게 있는데 제목이 뭐지 하면서 찾아봤습니다 사실 내용도 가물가물합니다 지난해 본 드라마로 <주마등주식회사>라고 합니다 소개에 나온 말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주마등 주식회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자신의 삶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니, 재미있기도 하지만 조금 무섭기도 하죠 끝은 거의 안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비밀을 알게 되기도 하거든요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차례가 있지만 가는 것은 차례가 없다고 하잖아요 누구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음을 더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례식도 그렇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야 하니까요 어쩌면 그것은 죽은 사람과 제대로 헤어지려는 의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잊지는 않겠지만요 이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은 살아있을 때와 똑같아요 한번 만난다고 해서 미련이 다 풀리지는 않는다고도 하더군요 맞는 말이죠^^


희선
 

 

 

 

  진상   おまえさん

  미야베 미유키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2013년 05월 31일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소설에는 연작으로 나오는 게 있다. 《진상》은 그 가운데 하나로 《얼간이》와 《하루살이》 다음 이야기다. 오하쓰 시리즈는 더 쓴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것은 더 쓸건가보다. 상권이 끝나고 나온 편집자 말에 쓰여 있다. 두권으로 나뉘어 있고 두권 다 좀 두껍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서 그렇게 두껍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 읽고 나면 시간이 엄청나게 지나버리겠지만. 나는 책을 그렇게 빨리 못 본다. 그렇다고 아주 천천히 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책은 거의 쉬지 않고 이틀 동안 보았다. 그래서인지 조금 정신이 없기도 하다. 여유를 가지고 봤다 해도 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말하는 검》 뒤에서 보았다. 그때는 언젠가 나오겠구나 했는데, 책이 나오고 바로는 아니지만 보게 되어서 기쁘다. 지난번 이야기 ‘하루살이’에서 시간이 조금 흐른 듯하다. ‘하루살이’를 본 지 오래되어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나온 사람은 다 잊지 않았다. 다시 보게 되어서 반갑기도 했다.

 

여기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나온다. 이것을 느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래도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얼간이’에서부터 나온 무사 이즈쓰 헤이시로(얼간이 무사라고), 헤이시로와 거의 닮지 않고 머리도 좋고 얼굴까지 예쁜 처조카 유미노스케(지금까지 사건을 많이 풀었다), 이번에 새로 나와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사람 혼조후카가와 마치 순시관인 마지마 신노스케, 오캇피키 마사고로가 데리고 있는 짱구 산타로(기억력이 아주 좋다), 정이 많은 오토쿠(전에는 조림 가게를 했는데 가게를 넓혔다). 글로 쓰여 있는 예쁘다, 못생겼다는 말을 쉽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저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유미노스케는 남자아이인데 아주 예쁘게 생겼다고 한다. 전에도 그랬지만 진짜 어떨지 보고 싶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마치 순시관이 된 마지마 신노스케는 못생겼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달리 말하지 않는데 헤이시로만은 신노스케 얼굴에 대해 말했다. 자기 얼굴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헤이시로와 유미노스케가 나오는 이야기에는 예쁜 사람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다리맡에서 쓰지기리(주로 에도시대 무사가 밤거리에서 무차별로 통행인을 칼로 베어버리는 일로 칼을 시험하거나 검술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다)를 당한 듯 죽어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약방 가메야 주인도 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체를 본 겐에몬은 원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했다. 이 일에는 한사람이 더 관계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죽임 당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낌 그 사람은 스무해 전 일을 털어놓는다.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은 지금 일어난 일을 스무해 전에 일어난 일의 복수라고 여겼다. 이 일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짱구(산타로) 엄마 오키에가 나타나서 마사고로와 아내인 오콘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채소가게 며느리를 식칼로 위협해서 소동을 부린 센타로. 유미노스케네 집안에도 일이 있었다. 큰형이 어쩌면 이복누이일지도 모를 사람과 혼인하겠다고 한 거다. 유미노스케 아버지와 큰형은 여자 얼굴을 보았다.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유미노스케가 아들 다섯인 집안의 막내라는 게 예전에도 나왔을 테지만, 내가 아는 것은 헤이시로가 유미노스케를 양자로 들여 일을 물려준다는 것뿐이었다. 에도 시대에만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집안 일을 장남만이 물려받았다(사정이 있을 때는 달랐겠지만). 장남이 아닌 사람은 살아가기가 조금 어려웠다고 한다. 어딘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곳조차 없는 사람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반대로 장남은 장남대로 다른 것은 못하고 집안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거다. 유미노스케 셋째형 준자부로가 처음 나왔는데 조금 재미있었다. 다섯 형제 가운데서 앞으로 일을 정하지 않은 사람은 준자부로밖에 없었다. 그런데 준자부로는 뭐든 하면 잘할 듯하다.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그냥 한량으로 살아갈지도. 여기에서 갑자기 마지마 신노스케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겠지만, 신노스케는 준자부로를 조금 샘하여 미워했다. 겉모습뿐 아니라 성격 모두 다. 신노스케는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닌데, 신노스케한테도 좋은 점이 많이 있다. 성실하고 무술을 잘한다. 그러고 보니 준자부로도 무술을 조금 배웠구나. 아직 헤이시로는 유미노스케를 양자로 들이는 일을 결정하지 못했다. 유미노스케가 헤이시로와 셋째형 준자부로와 있을 때 모습이 조금 달랐다. 당연한 일인가.

 

사람 속마음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겪어서 지금 그렇게 되었는지도 알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마음을 몰라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안 좋은 마음을 키우는 사람이 있었다. 장남한테만 집안을 잇게 하는 일도 어떤 사람 마음이 비뚤어지는 데 한몫했다. 사랑 때문에 천륜을 저버리다니, 이런 이야기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그냥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어주면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남자는 여자를 인형처럼 자기 마음에 들게 만들고 싶어할까. 그런 재미를 붙인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좋아한 사람도 있다(그러고 보니 신노스케도 그랬다). 그 사람이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니, 모토미야 겐에몬이 학문을 하라고 했다. 이 말 참……. 모토미야 겐에몬은 마지마 신노스케 친척으로 첫째가 아니었다.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학문으로 마음을 다잡은 게 아닐까.

 

책 이야기도 내 생각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미야베 미유키는 농도 짙은 연애 소설을 써 보고 싶었다고 한다. 여기 나온 이야기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연애 소설과는 아주 다르다. 본래 사랑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 어두운 것은 아니다. 책 속에 나오는 모두가 잘되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괜찮지만,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이쪽을 더 좋아할지도. 학문을 하려면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 나는 학문까지는 아니고, 그냥 책을 볼까 한다.

 

에도시대 사람이 나오지만 그때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래서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 언젠가 다시 한번 더 보고 싶기도 하다. 그때가 올지 모르겠다.

 

 

 

희선

 

 

 

 

☆―

 

“예전에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인연이란 어디선가 끊어내거나 풀어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을 불러들인다.

 

“죄라는 것은 아무리 괴롭고 슬프더라도 한번은 청산해야 하고, 눈처럼 시나브로 녹아서 없어지는 일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하권, 128쪽)

 

 

“누굴 좋아하네 반했네 보고 싶네 그립네 하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죠. 하지만 행복에 겨운 사람 둘레에는 불쌍한 사람도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럴 때 평생 그 사람한테 매달려 울고불고하거나 될성부르지도 않은 일을 이루겠다고 덤벼드는 쪽이 더 불행하지 않을까요?”  (하권, 447쪽)

 

 

학문에 힘쓰면,

 

“힘쓸수록 사람이라는 존재의 모호함, 혼돈의 깊이를 알게 된다. 동시에 사람이 학문이라는 정밀한 체계를 만든 까닭도 그 모호함과 깊은 혼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래서 재미있다. 그래서 그 길은 멀다.  (하권, 4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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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 2014-02-0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동안 얼간이 -하루살이 읽고 있는데요. 미미여사 시리즈는 참 좋아요

희선 2014-02-02 23:25   좋아요 0 | URL
지금쯤은 다 보셨겠군요 하루살이도 재미있게 봤는데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희미하게 생각납니다 이모아라이 언덕의 도신 사에키 조노스케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요릿집 주방장이었던 히코이치도, 이 두 사람도 이번에 나옵니다 히코이치는 조금 길게 사에키 조노스케는 아주 잠깐 이야기로만...

그때 제가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더군요 여기에서 헤이시로 아내가 그런 말을 했군요 처음 유미노스케가 나왔을 때는 측량을 자주 했는데 하루살이에서는 그만두게 되지요 사람 마음은 측량할 수 없다면서... <진상>에서 유미노스케가 이런저런 말을 합니다 '말은 허상이다' 이런 말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mira-da 님이 이 책을 보신다면 아실 수 있겠군요

지금도 제가 책을 잘 본다고 하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더 잘 못 본 듯합니다^^


희선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보면서 저는 언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게 됐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잘 생각나지 않더군요. 그냥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어떤 책을 처음 봤는데 그게 정말 좋아서 지금까지 내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같은 말을 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차를 오래 타야 해서 책을 봤습니다. 그때는 차 안에서 책을 봐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차 안에서 책을 못 봅니다. 멀미를 해서. 그러고 보니 이것도 몇해 전 일이군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차를 타는 일이 거의 없어서. 일본 진보초 거리에는 헌책방이 늘어서 있을까요. 그곳에는 작은 헌책방이 많다고 하더군요. 책방마다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헌책방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실 저도 헌책방에 몇 번 안 가 봤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책을 사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사는 곳에는 그런 책방이 한 곳도 없습니다. 지방은 헌책방을 하기에 더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진보초 거리에 늘어서 있는 책방 가운데 한 곳이 모리사키 책방입니다. 여기는 근대문학 전문이라고 합니다.

 

다카코는 한해 동안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고 일도 그만두었습니다. 헤어졌다기보다 사귀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하는 말 ‘가끔 다카코와 만날 수 있겠지’ 였어요. 이 사람 정말 못됐습니다. 다카코는 그 일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거의 잠만 자며 보냈습니다. 어느 날 외삼촌이 다카코한테 전화를 해서 모리사키 책방에 와서 살고―일을 그만두었으니 돈을 못 벌잖아요―일을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래서 다카코는 모리사키 책방 2층에서 살면서 아침에는 책방을 지켰습니다. 다카코가 거의 잠만 자서 외삼촌 사토루는 다카코한테 잠자는 괴물이라고 했답니다. 얼마 뒤 사토루 외삼촌은 다카코한테 함께 어딘가에 가자고 했어요. 그곳은 사토루 외삼촌이 자주 다니는 카페였어요. 책과 카페 참 좋지요. 잠만 자던 다카코가 잠이 오지 않아서 책을 읽게 됩니다. 그날 본 책이 아주 좋아서 왜 지금까지 책을 읽지 않았을까 했어요. 저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다카코한테는 있었군요.

 

애인과 헤어진 일을 책을 보고 이겨낸 것은 아니예요. 책이 조금 도움을 주었을 거예요. 다카코가 모리사키 책방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 때문에 다친 마음을 고친 게 아닌가 싶어요. 카페에서 일하는 도모 짱, 모리사키 책방 단골손님인 사부 씨, 그리고 사토루 외삼촌. 누구보다 사토루 외삼촌 때문에 다카코는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런 다카코가 부러웠습니다. 저한테는 사토루 같은 외삼촌이 없으니까요. 사토루 같은 외삼촌이 있고 헌책방을 한다면 더 좋을 텐데요. 아쉽게도 이뤄지지 않을 일이군요. 사토루 외삼촌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서인지 다카코한테 좋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토루 외삼촌은 다카코 때문에 힘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다카코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사토루 외삼촌은 생명의 놀라움을 깨달았다고. 사람은 서로 살아가는 힘을 주고받는 게 아닌가 싶군요. 다카코는 사토루 외삼촌한테 헤어진 사람 이야기를 하고 그날밤 그 사람 집에 가서 놀라고 아팠던 자기 마음을 그 사람한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카코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떤 말은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면 안 되겠지요.

 

사토루 외삼촌 아내 모모코 외숙모가 집을 나가고 다섯해 만에 집에 돌아왔어요. 다카코는 사토루 외삼촌한테 부탁을 받고 모모코 외숙모 마음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다섯해 만에 돌아왔는데 사토루 외삼촌은 모모코 외숙모가 어제 나갔다 돌아온 사람처럼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대단하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다시 내쫓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앞에서 사토루 외삼촌이 모모코 외숙모가 어디에 있든 행복하면 좋겠다고 했군요.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려운 일입니다. 모모코 외숙모와 사토루 외삼촌 이야기도 있고, 다카코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모리사키 책방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편하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만남이 여러번 이어지다보니 다카코는 그 사람한테 조금씩 마음을 썼습니다. 사실 남자는 카페에서 예전에 만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렇다 해도 여자는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남자가 여자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다카코가 조금 실망했습니다. 그 뒤로는 다카코가 카페에 자주 가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카코와 그 사람은 카페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다카코가 카페에 두고 간 책 때문에.

 

책방이라는 공간이 나오지만 책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군요. 그렇다고 아주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예요. 양념처럼 나옵니다. 사토루 외삼촌과 모모코 외숙모는 그곳(모리사키 책방)을 좋아했고 다카코도 좋아했습니다. 사토루 외삼촌은 자신이 편하게 있을 곳이 바로 모리사키 책방이라고 했어요. 그런 곳이 있다는 거 정말 좋지 않을까요. 집이 그런 노릇을 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을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사토루 외삼촌은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알려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기 위해서도 그렇고 목적을 이루는 데도 그렇겠지요. 그게 바로 살아가는 거겠군요. 사토루 외삼촌이 한 말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빨리 바뀌어가는 세상에 지쳤다면 모리사키 책방에 한번 들러보세요. 한번쯤 멈추어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거 좋잖아요. 그런데 저는 언제나 멈추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 저도 이 책을 보고 마음이 따듯해졌습니다. 엄청난 일은 없지만 작은 일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도 좋았습니다. 책으로 둘러싸인 모리사키 책방 2층은 어떨지.

 

 

 

희선

 

 

 

 

☆―

 

“글쎄다. 실은 어디를 돌아다녀도,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삶이라는 거야. 늘 헤매면서 살아가는 거지. 다네다 산토카가 지은 하이쿠에도 있잖니? ‘헤치고 들어가도 들어가도 푸른 산’이라는 시구가.”  (51쪽)

 

 

외삼촌은 먼저 “다카코야, 이곳을 떠나기 전 내게 약속해줄 게 있어”하고 운을 뗐다.

 

“누굴 사랑한다는 걸 두려워하지마.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해야 해. 설령 거기에서 슬픔이 생겨나더라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사는 쓸쓸한 짓은 하면 안 돼. 나는 네가 이번 일로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까봐 무척 걱정이야. 사랑하는 건 멋진 일이란다. 그걸 부디 잊지마. 누군가를 사랑한 추억은 마음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아. 언제까지나 기억속에 남아서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준단다. 나처럼 나이를 먹으면 그걸 알 수 있어.”  (100쪽)

 

 

“거기서 일하긴 했지만 난 책에 대해서는 거의 몰라요. 겨우 어귀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으응? 하고 와다 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특별히 잘 안다든가, 잘 모른다든가 하는 거하고는 관계가 없지 않을까요? 한권의 책과 만나서 그것 때문에 얼마만큼 마음이 움직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런 걸까요? 하긴 외삼촌도 늘 비슷한 말을 하곤 했어요.”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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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1-3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 저는 언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책이 좋아서 읽은 건지, 혹은 위안을 주는 것이 책밖에 없어서 그랬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앞으로도 책을 손에서 놓기란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저도 모리사키 책방에 가보고 싶네요.

희선님 설 잘 보내시구요. 길다면 길지만 그래도 여전히 짧게 느껴지는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더불어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

희선 2014-02-01 00:58   좋아요 0 | URL
이틀이 빨리 지나가버렸습니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지만...^^
책은 참 좋은 친구예요 언제나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이것을 영화로도 만들었다고 해서 한번 찾아보니 예고편이 있더군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하고는 조금 다르더군요 이 말을 하고 다시 보니 그렇게 나쁘지도 않더군요 책 속에도 나오지만 헌책방 먹고살 정도로 될까 하는 생각이...^^ 그곳에서 바로 책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터넷으로 사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것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블리아 고서당도 인터넷으로 책을 팔았으니까 다른 곳도 그러지 않을지...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희선
 
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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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집에서 몇 날 며칠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스티안은 여전히 아이처럼 아이우올라 부인한테 응석을 부리는 것을 즐겼다. 부인의 과일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주 맛있었지만, 갈수록 엄청난 식욕은 진정되었다. 바스티안은 덜 먹었다. 부인은 그걸 알아차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인의 보살핌과 애정도 받을 만큼 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욕구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정도로 마음속에서 아주 다른 종류의 갈망, 지금까지 바스티안이 거의 느끼지 못했고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바람들과 다른 욕망이 깨어났다.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갈망이었다. 바스티안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고 슬펐다. 하지만 그 바람은 점점 더 커졌다.  (629쪽)

 

 

지금까지 책을 보다가 끝이 나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끝났구나 했던 것 같기도 해. 책이 아닌 만화영화가 끝났을 때는 아주 아쉬웠어.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어릴 때 그것을 더 좋아했어, 만화영화. 어릴 때부터 책을 보고 벌써 끝났구나 하고 아쉬워했다면 좋았을까. 사람은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는데 바보 같은 일 같기도 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데 말이야. 잘 생각해보면 만화영화와 책 아주 다르지 않아. 둘 다 재미있는 이야기잖아. 그래, 난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해. 나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는 그런 이야기. 이 ‘끝없는 이야기’는 우리를 환상 세계로 이끌어줘. 책 자체가 바로 환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해. 나와 네가 책을 보는 것은 언제나 환상 세계에 가는 것이야. 너는 환상 세계 좋아해. 그런데 이 책 어린이책 맞아, 왜냐구, 이 책을 보면 조금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어린이를 얕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도 나름 생각하고 느끼겠지. 이야기가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고.

 

오래전에 한번 이 책을 봤어. 오래돼서 다 잊어버렸는데 다시 보니 아주 조금 생각나기도 했어. 환상 세계가 무너져가고 있고 그것은 어린 여왕이 아파서였어. 어린 여왕한테 새 이름을 지어주어야 병이 낫는다고 했어.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사람 세상에 사는 사람뿐이었어.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아트레유야. 아트레유가 행운의 용 푸후루와 모험하는 이야기를 바스티안이 보고 있었어. 조금 복잡한가. 바스티안은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했어. 바스티안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어느 고서점에 들어가. 그곳에서 바스티안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주인 몰래 외투에 숨겨서 가지고 나와. 바스티안은 조금 외로운 아이야. 아버지는 엄마가 죽고는 얼이 빠진 듯해서 바스티안한테 마음을 써주지 못했어. 어쨌든 그날 바스티안은 공부하기도 싫고 집에 가기도 싫어서 학교 창고에 숨어서 책을 읽어. 바스티안은 좀 통통한 아이로 책읽기와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 좀 정리가 안 된 것 같네. 아이들은 자신을 괴롭히고 아버지는 자기한테 마음을 써주지 않으니 많이 쓸쓸했겠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바스티안은 바로 환상 세계에 가지는 못해. 그래도 결국 가. 바스티안 마음에는 지금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지. 바스티안은 어린 여왕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어. ‘달아이’라고. 그리고 환상 세계에서 모험을 해. 이름만 지어주고 환상 세계를 구했다 하면 재미없잖아. 이 책은 ‘끝없는 이야기’니까. 이야기는 자꾸 가지를 뻗어가지,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도 많겠지. 어딘가 떠나면 늘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하잖아. 바스티안은 다시 자기 세계에 돌아가야 하는데 환상 세계에 있으려고 해. 아트레유와 푸후루가 옳은 말을 해주는데도 바스티안은 둘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 말을 들어. 마녀였구나. 그런데 마녀는 바스티안이 무엇을 하기를 바란 걸까. 그것은 잘 모르겠어. 환상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여왕의 표시 아우린을 빼앗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환상 세계를 다시 위기에 빠뜨리려고 한 걸까. 혹시 너는 알아. 어쩌면 바스티안을 영원히 환상 세계에 가둬두려고 한 것일지도.

 

아우린에 모든 바람을 말하기 전에 바스티안은 알게 됐어. 자신이 그동안 한 게 모두 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바스티안은 환상 세계에서 이야기를 했어.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우린을 바스티안이 갖고 있어서 바스티안이 한 이야기는 진짜 일어났어.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바스티안은 달아이(여왕)를 만났을 때 모습이 바뀌었어. 그 뒤 바스티안은 힘이 세지기를 바라고 자기 이름이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기를 바랐어.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그게 좋을까. 바스티안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 때마다 바스티안은 사람 세상의 기억을 잊었어. 아트레유와 푸후루는 바스티안이 어떻든 친구로 남았어. 그렇다 해도 잠시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바스티안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바스티안은 열살이나 열한살쯤 된 사내아이거든. 책을 읽고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런데 아트레유는 바스티안과 비슷한 또래인데 좀 어른스러웠다. 아트레유가 그랬던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이 아트레유를 길렀기 때문일거야. 바스티안과 다르게 아트레유는 자기 자신을 좋아했어.

 

‘끝없는 이야기’지만 바스티안이 환상 세계에서 겪은 일은 끝이 났어. 그렇다고 바스티안 이야기가 다 끝난 것은 아니구나. 환상 세계에서 바스티안이 만든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아트레유가 끝내주겠다고 했어. 아트레유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트레유가 도와줘서 바스티안은 자기 세계로 가게 해주는 생명의 샘에 갔어. 거기에 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자신한테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어. 그것은 바스티안을 기다리는 아버지야. 그리고 바스티안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 바스티안이 한 모험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거였어. 이야기에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이런 말만 하면 ‘뭐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런저런 일을 겪어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고 깨닫는 거지.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도 비슷해. 어렸을 때는 경험이 없어서 실수도 많이 하고 쉽게 넘어지잖아. 나이를 먹으면 조금 나아지지. 하지만 어느 때든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 그래야 환상 세계와 사람 세계가 막히지 않지.

 

바스티안처럼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고 싶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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