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오다 마사쿠니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제목을 우연히 봤을 때는 산문인가 했습니다. 제목만 슬쩍 보고 무슨 책인지 안 찾아봤습니다. 나중에 소설인지 알았습니다. 어쩐지 요새는 다는 아니지만 새로 나오는 책을 빨리 아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지 몇해 되었군요. 이 말은 제가 여기저기 본다는 뜻이군요. 잘 모르던 때는 마음 편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로. 새로 나오는 책 빨리 알아서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안 좋습니다. 책을 바로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여기저기 안 보면 될 텐데 말입니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한번 알면 다시 안 보기 어렵기도 하죠. 아니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못할 것 없기는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안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연이 있으면 만나는 책이 있는 거겠죠. 이 책은 저와 연이 닿은 걸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가끔 이런 생각하는데 왜 다시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보려고 마음먹으면 볼 수 있다는 건지, 쓸 때는 무슨 생각을 했을 텐데 뭔지 모르겠네요). 사람 마음은 왜 그대로가 아닐까요. 바람 같은 마음은 남의 마음만 말하는 게 아닌가봐요. 자기 마음도 다루기 어려운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이 책이 산문이라 생각했을 때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 암컷과 수컷이 있다는 건 어느 날 자신이 산지도 모르는 책이 나타나서일까 했어요(이건 제 생각인지 다른 글을 봐서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겠군요. 저는 책을 아주 많이 사지 않아서 그런 적은 별로 없습니다. 사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잊기도 하지만. 지난해에 어떤 책을 보고 ‘내가 이런 책도 샀구나’ 했어요. 어떤 책은 거기에 있을 텐데 하고 찾아보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데 옮긴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책이 저절로 움직인 건 아닐 거예요. 아주 가끔 모습을 감추는 책도 있군요. 이건 책뿐 아니라 물건도 그러네요. 저는 아주 늦게 자기 때문에 방 안이 어두운 시간이 길지 않아요. 그래서 제 방에 있는 물건은 쉽게 움직이지 않겠죠(제가 잘 때 움직일지도). 집 바로 앞에 가로등이 있어서 불을 꺼도 방 안은 어둡지 않아요. 그 가로등은 아침이 될 때쯤 꺼집니다. 이것을 아는 건 제가 그때까지 깨어있었던 적이 있는 거군요. 맞습니다. 지금은 소리뿐 아니라 빛 또한 공해예요.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네요.

 

앞에서 저런 말해서 밤에 책이 움직이는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움직이는군요. 집 안에서 달각달각, 딸각딸각, 파닥파닥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답니다. 저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동화 같은 거 보면 어두운 밤에 집 안 물건이 움직이기도 하잖아요. 이 책이 그런 환상이냐 하면 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대로 현실도 있습니다(동화도 그렇군요). 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둘레 사람, 둘레에 있는 건 식구겠죠. 아내를 시작해 부모 형제 아이들. 이 이야기는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손자가 자기 아들한테 들려주는 거예요. 어쩐지 복잡하죠. 책 앞부분 읽을 때 집중이 잘 안 됐습니다. 그래서 좀 놓치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는지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언젠가 태어나고 자라면 이 책을 보겠죠. 외증조할아버지처럼 환서를 모으고 장서인을 찍고 언젠가 라니나헤라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겠죠. 죽어서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는 거 멋질 듯합니다. 나, 도이 히로시는 외할아버지 후카이 요지로가 환서를 모으고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는 이야기를 해요. 요지로만 그렇게 된 게 아니예요. 외할머니 미키도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게 했습니다. 요지로가 그만큼 미키를 좋아한다는 거죠. 다시 태어나도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요지로도 그런 마음이었군요.

 

요지로가 아내 미키만 생각한 건 아닙니다. 아이와 손자에 증손자까지 생각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앞날을 알면 사람은 그것을 바꾸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지로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아도 바꾸지 않았습니다(저는 알고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손자와 증손자를 위해서. 그러고 보니 언젠가 달에 갔다 온 아버지가 자신한테 사고가 일어날 것을 알고도 어딘가에 가는 걸 보았군요. 《궁극의 아이》(장용민)에 나오는 신가야도 좋아하는 사람과 딸을 위해 죽었네요. 이런 일이 진짜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래전에 무엇인가 하나라도 잘못됐다면 지금 자신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면 역사는 벌써 씌어있고 우리는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인가 할 수도 있겠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라고 한 말일 거예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앞날을 아느냐면, 책과 책이 낳은 환서 때문이에요. 쓸데없는 책도 나오지만, 아직 쓰이지 않은 책도 나오거든요. 그것은 언젠가 쓰일 책이기도 합니다(일어날 일이군요). 히틀러는 그 책 때문에 죽을 위기를 많이 넘겼다고 했습니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죠.

 

히로시가 자신이 초등학생 때 할아버지 요지로가 사고로 죽었다고 했을 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그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때는 어쩐지 슬펐습니다. 그 뒤에 또 다른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것은 환상에 가깝지만 요지로한테 실제 있었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책 읽기 힘들어하던 미키한테 요지로가 책을 소리 내 읽어준 거예요. 미키는 난독증 같은 것으로 읽고 쓰기를 잘 못해요. 그래도 요지로가 편지 썼을 때는 가끔 답장을 썼습니다. 미키가 읽고 쓰기는 잘 못해도 그림은 잘 그려서 화가가 됐습니다. 요지로가 죽고 몇해가 흐르고 미키가 쓰러졌다 일어난 다음에는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요지로는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에요. 형은 전쟁에 나갔다 오고 좀 이상해지고 동생은 해군에 자원해서 죽었습니다. 요지로도 죽을 뻔했는데 살아돌아옵니다. 이런 이야기도 조금 있다구요. 볼 것이 많은 때지만 아직 책을 보는 사람은 많다는 말도 하더군요. 사람이 죽으면 책이 된다고 했네요. 여기에는 말장난이 많이 나옵니다. 요지로가 미키를 생각하면서 그 마음을 바로 나타내지 않고 발음이 비슷하거나 글자가 비슷한 말을 씁니다(그것은 일본말이에요). 우리말로 한다면 바로 사랑이라 하지 않고, ‘사탕’ ‘사과’ ‘사기’ 같은 말을 꺼낼까요. 생각나는 건 이것뿐이네요. 일본말로는 고이(恋)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가가 여기에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식구 그런 이야기뿐 아니라. 한 집안 이야기로 봐도 괜찮고 신기한 책 이야기로 봐도 괜찮겠네요.

 

 

 

희선

 

 

 

 

☆―

 

사람이 사람한테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고 시간이다.         (84쪽)

 

 

“어이, 히로봉, 책이란 말이지.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게 늘어나는 거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 자기 뇌를 살찌우겠다고 지식을 먹지만, 사실은 책 쪽이 사람 뇌를 먹는 거다. 아니 뇌만이 아니지. 혼까지 같이 먹어. 그렇긴 해도 나처럼 여기까지 오면 이제 읽는 걸 그만둘 수 없단 말이지. (……)”  (22쪽)

 

 

“히로봉,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벌 써 다 읽었단다……. 책은 참 재미있어. 책을 영영 못 읽었으면 세상이 절반뿐이었을거야. 아아, 저세상에 가기 전까지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369쪽)

 

 

책이란 본래 끝없이 입이 무겁다. 누가 들어펴기 전까지는, 그리고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입을 꽉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은 나이 먹어가는 것이고, 또 그렇기에 목숨이 다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450~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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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夜中のパン屋さん 午前1時の戀泥棒 [文庫]
ポプラ社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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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빵집 - 새벽 1시의 사랑도둑

(우리나라에서는 《한밤중의 베이커리》라는 제목으로 두 권 나왔습니다)

오누마 노리코

 

 

 

이 책 첫째권을 본 건 2012년이에요. 다음 권 나왔다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첫번째가 괜찮아서 두번째 것도 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이제 만났습니다. 이 책은 두 권 더 나왔습니다. 모두 네 권입니다. 처음에는 밤에 여는 빵집이구나 하면서 봤습니다(밤 11시부터 다음 날 5시까지). <심야식당> 알고 있어서 그것을 생각하기도 했지요. 시간이 더 흘러서는 맥주바 ‘가나리야’를 알았네요. 늦은 시간에 여는 식당이나 빵집 괜찮을 듯합니다. 지금은 늦은 밤에도 일하는 사람 많잖아요.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늦은 밤에 밖에 나가지 않아서, 집에서 아주 가깝지 않으면 거의 안 가겠네요. 빵집이라고 했는데, 빵집 이름은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예요. 블랑제리가 프랑스말로 빵집일까요. 구레바야시는 사람 이름입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이름이군요. 블랑제리라는 말 때문에 거리가 좀 먼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이곳이 손님을 고르는 가게는 아니예요. 누구나 쉽게 편하게 오기를 바랄 겁니다. 밤에 문을 여는 건 그것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니 구레바야시 아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빵집을 하려고 했는데, 미와코는 사고로 죽었습니다. 미와코 뜻을 남편 구레바야시가 이은 거예요.

 

세해가 꽉 차게 지난 건 아니지만 첫째권을 본 건 세해 전이군요. 이번과 비슷하면서 조금 달라 보이는 것도 같아서요. 그때는 구레바야시 빵집 사람과 그 둘레 사람 이야기였거든요. 미와코 이복 동생이라고 찾아온 노조미, 엄마하고만 사는 고다마, 뉴 하프(몸은 남자 마음은 여자, 지금은 겉모습은 여성) 소피아, 변태(스스로도 이렇게 말함) 각본가 마다라메. 빵집 주인 구레바야시와 빵 만드는 히로키 이야기도 조금 나왔네요. 고다마, 마다라메, 소피아는 여전히 나옵니다. 빵집 단골이기도 하고 친구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도 괜찮군요. 일본에는 이런 이야기 많군요. 고다마, 마다라메, 소피아는 다 구레바야시 빵집에서 만나고 서로 돕기도 했습니다. 노조미도. 초등학생 고다마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사람 사귀는 건 잘 못하고 쓸쓸하다고 해야 할까. 이번에 책을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히로키가 중학생일 때 여자친구였던 유이 요시노가 찾아옵니다. 지난번에는 이야기가 흐르면서 한사람 한사람 늘어났는데(어쩌면 조금 나왔다가 다음에는 더 나왔을지도), 이번에는 유이 요시노만 들어왔다고 해야겠네요. 다른 일이 밝혀지고 여러 사람이 더 나왔군요. 히로키 친구도 있고.

 

누구나 처음부터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바라는 건 아닐 거예요.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래전에 안 누군가를 찾아갈 때도 있겠지요. 요시노는 그런 마음으로 히로키를 찾아온 거예요. 히로키가 중학생 때는 불량스러웠나봐요. 집안 사정이 그리 안 좋아서 그랬다고 하는데, 집안이 엉망이라고 모든 아이가 길을 잘못 가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런 아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안 좋을 때 히로키는 구레바야시 아내 미와코를 만나고 달라졌어요. 미와코를 만나지 않았다면 빵 만드는 히로키는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미와코가 히로키 가정교사를 하게 됐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군요. 첫째권에 나왔을지도 모르는데. 요시노는 요시노가 아니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하다니. 무슨 도움이 필요해서 요시노가 히로키를 찾아왔을까 싶겠군요. 이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동생이 잘못해서 그것을 히로키가 막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위험한 일도 있었군요. 일은 어떻게든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짧게 말하다니. 아주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 해도 누군가를 돕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히로키는 미와코가 자신한테 손을 내밀어준 것처럼 자신도 그런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나쁜 짓을 하는 사람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을 거기에서 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잖아요.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까요. 잘살던 사람이 못살게 되거나, 못살던 사람이 잘살게 되면. 달라지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달라지는 사람도 있겠군요. 사람은 약하다는 것을 이럴 때 느낍니다. 안 좋은 일이 자꾸 일어나면 마음이 꺾이고 말겠죠. 남을 속이고 빼앗은 걸로 예전 것을 되찾는다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보통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겠네요. 그것만 있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자꾸 생각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을 히로키가 막은 거예요. 히로키만 그 사람을 걱정한 건 아니군요. 그런 모습 보니 부럽더군요(이런 말 또 썼군요). 마다라메는 좀 웃겼습니다. 구레바야시, 히로키, 노조미가 요시노가 나쁜 짓을 했다고 말하니, 요시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하고는 셋한테 절교라고 했습니다. 세 사람은 ‘절교’라는 말 초등학생 때 뒤로는 들어본 적 없다고 했어요. 저는 한번도 안 들어본 듯합니다. 말싸움 한 친구가 없었군요. 그런 일도 좋은 추억이 될지도 모를 텐데 없다니 아쉽네요. 마라라메가 다쳐서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히로키 옛날 여자친구 이야기도 있고, 구레바야시한테 미와코가 보낸 슈트렌을 히로키가 만들기도 했습니다. 슈트렌은 독일에서 성탄절에 먹는 빵인데, 이것은 바로 만들었을 때보다 시간이 지났을 때 더 맛있다고 하네요. 미와코가 쓴 조리법을 히로키와 노조미가 찾아보았는데 거기에 ‘사랑’ 조금이라고 적혀있었어요. 정말 사랑인가 했는데 허브 종류였나봅니다(향신료인가). 그것을 넣으면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와코는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구레바야시한테 그것을 보냈습니다. 저는 빵 좋아하는 편인데 이름은 잘 몰라요. 여기 나오는 건 거의 프랑스 빵인 듯합니다. 저는 비싼 건 안 먹어봤습니다(없어 보이는 말을). 여기에서 파는 빵 비쌀 것 같아요. 그런데도 빵을 평등하다고 하다니. 저는 이 말 이해하기 어렵네요. 좀더 읽어보면 알까요. 노조미는 히로키한테 초콜릿 만드는 것을 배우고 만들어서 모두한테 나눠줬어요. 노조미가 구레바야시 빵집에 오고는 처음 하는 일이 많다고 하니, 구레바야시가 다음에는 모두와 꽃놀이 가자고 했어요.

 

늦은 밤 붉은 밝힌 빵집 어쩐지 등대 같네요. 미와코는 빵집이 누군가한테 우산이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블랑제리 구레바야시, 미와코 뜻대로 되었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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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안 보는 책 가운데는 먹을거리와 관계있는 것도 들어간다. 한때 그런 책이 자주 보이기도 했다. 거기 담긴 건 먹을거리보다 그것에 얽힌 추억이다. 나는 그런 게 없다. 없는 건 이것만은 아니구나. 그래서 피하는 게 좀 있다. 사람은 대리 만족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한번이라도 해 보거나 생각해야 그런 것도 좋아하지. 아니다 이건 내 마음이 좁아서다.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 그대로 보면 좋은데, 나는 그런 적 없는데 하니까(부러워하는 거다). 그렇다고 늘 안 보는 건 아니다. 어쩌다 우연히 잘 모르고 볼 때도 있다. 그때는 이걸 왜 보기로 한 거지 하기도. 화과자는 먹을거리고 비쌀 것 같지만 과자라는 말이 들어가니 괜찮고, 맏물 이야기는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니까 괜찮다.

 

 

 

 

 

무엇에든 이야기가 있다

 

  화과자의 안   和菓子のアン (2012)

  사카키 쓰카사   김난주 옮김

  블루엘리펀트  2014년 08월 12일

 

 

 

 

 

 

 

 

 

 

 

 

 

지금까지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일본은 먹을거리로 이야기를 잘 쓴다. 먹을거리와 장인이 이어진다고 해야겠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장인이지만, 먹을거리를 만드는 사람도 장인에 가깝다. 대를 이어서 그것을 하기도 하니까. 지금은 그게 줄어들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든다. 무엇인가 생각하고 쓴다니 부럽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 이야기가 되는 것도 괜찮겠지. 표구사, 시계사도 이제 그리 많지 않겠다. 이 책을 보다보니 그런 게 생각났다. 표구사, 시계사는 먹을거리와 관계없지만. 이런 것과 비슷한 이야기 또 있다. 책방 이야기라고 할까. 책방이기는 해도 사람과 책 이야기구나(《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미카미 엔). 《화과자의 안》은 일상 수수께끼에 가깝다. 화과자와 사람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읽어보면 재미있다.

 

우리나라에도 전통과자가 있는데 그것은 평소에 먹기 어렵고 비싸다. 우리 한과는 무엇을 마실 때 먹으면 좋을까 하니 수정과랑 식혜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사람도 차를 즐겨 마시기도 했지만, 그게 서민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것보다 아는 게 별로 없다. 차 마실 때 과자도 먹었을 것 같은데. 일본은 차와 과자를 먹는 게 널리 퍼졌다. 이 말을 하기 전에 홍차와 양과자 이야기를 할까 했는데, 그것도 잘 모른다. 커피를 마실 때도 과자를 먹기도 할 테지만, 어쩐지 커피는 느긋하게 마시지 않을 것 같다. 영국만 그런 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홍차는 차 마시는 시간에 천천히 과자와 먹을 듯하다. 홍차는 맛있게 마시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차도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쉽게 차를 우리는 사람도 있다. 찻잎만 넣고 물만 붓는. 일본은 일반 가정에서 차와 과자를 먹기도 하고 격식을 차린 다도라는 것도 있다. 다도는 여러가지와 관계있구나. 오래전에는 차 마시는 자리에서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이 가진 다기를 보여주고, 사람들과 족자를 보기도 했다. 차를 마시면서 화과자도 먹었다. (여기저기에서 본 것을 이렇게 말하다니.)

 

앞에 말을 보고 다도 모임이 나오는가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건 안 나온다. 백화점 지하 화과자 가게 미쓰야에서 일하는 사람과 손님 이야기다. 제목 ‘화과자의 안’은 화과자 안에 든 것이라는 뜻도 있고 이름(애칭)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화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메모토 교토 이름에 ‘안’이 없어서, 화과자 가게 이름이 ‘안’인가 했는데 가게 이름은 미쓰야였다. 교코라는 이름 안에 ‘안’이 있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더 모르겠다. 교코라는 이름은 살구를 뜻하는 ‘안즈杏’에 ‘코子’자를 써서 교코杏子라고 읽는다(찾아보니 안즈杏子 이 말도 살구, 살구나무였다). 화과자에 들어가는 소를 나타내는 일본말 ‘안코(앙코)’짱이라 하려다가 안짱이 되었다. 안은 빨강머리 앤이기도 하다. 일본말로 앤은 안アン이라 읽는다. 이런 거 몰라도 읽다보면 알 텐데. 교코는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일을 찾아보려다 백화점 지하 화과자 가게에서 일하기로 한다. 교코는 자신이 키도 작고 살이 쪄서 못생겼다 하지만 점장 쓰바키 하루카와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교코를 귀엽다고 한다. 쓰바키는 교코를 봤을 때 붙임성 있어 보인다고 했다.

 

화과자 가게 미쓰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넷으로, 늘 넷이 일하는 건 아니다. 손님이 적은 시간에는 둘, 손님이 많은 시간에는 셋 이런 식으로 일한다. 점장 쓰바키는 일 잘하는데 도박을 좋아하고 속에는 아저씨가 들어있다고 한다. 이 말은 미쓰야 사원으로 앞으로 화과자 장인이 될 다치바나 소타로가 했다. 다치바나는 교코를 봤을 때 좀 무뚝뚝했는데, 그것은 일부러 그런 거였다. 교코는 자기 겉모습 때문에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자신이 통통해서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다치바나도 그런 남자겠지 했는데 좀 달랐다. 다치바나 안에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그렇다고 동성애자는 아니다. 일본에서는 여자아이 같은 남자를 ‘오토멘(乙男)’이라고 한다. 여자아리를 나타내는 오토메(乙女)를 그렇게 바꿨다고 해야겠다. 다치바나는 교코 얼굴에서 볼이 찹쌀떡 같아서 좋다고 했다. 안짱이라는 것도 다치바나가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하는 다른 한 사람 사쿠라이는 예전에는 불량했는데 지금은 얌전한 대학생 모습이다. 어쩐지 재미있는 사람이 모인 듯하다.

 

점장 쓰바키는 관찰력이 뛰어나서 손님이 사는 화과자를 보고 손님이 놓인 형편까지 다 알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가게에서 자세하게 말 안 해도 자신이 어떤지 알면 또 그곳에 가고 싶을 것 같다. 다치바나는 화과자 장인이 될 거여서 그런지 화과자를 잘 알았다. 교코는 미쓰야에서 일하면서 화과자를 알고 공부한다. 점장 쓰바키가 본 대로 교코는 손님을 잘 대한다. 그것은 좋은 점이다. 화과자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가보다. 그게 재미있다. 어떤 이야기인지 하나쯤 말해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화과자를 옛날식 그대로 만들지 않고 지금에 맞게 만든다. 달마다 나오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그 달에 맞는 주제로 만든다. 그 나라 고유의 것을 오래 지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우리도 우리 것을 오래 지키고 물려주면 좋겠다.

 

 

 

 

☆―

 

앞을 보고 걸어간다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산 사람은 줄곧 울고만 있을 수 없다.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땅만 보고 살아온 스기야마 씨에게 쓰바키 점장은 손을 내밀었다.

 

소중한 사람은 당신 가슴속에 있으니까, 그 사람을 슬프게 하면 안 되죠.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121쪽)

 

 

“양과자와 화과자 차이점이 생각났어. 지금 얘기해줄게. 아주 단순해. 이 나라 역사야.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써서 이 나라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서 이 나라 사람들 관혼상제를 색칠하는 것. 그게 화과자가 하는 일이야. 저번에 말해주려고 했는데 깜박했네.”  (249쪽)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

 

  맏물 이야기   初ものがたり

  미야베 미유키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2015년 02월 19일

 

 

 

 

 

 

 

 

 

 

 

 

 

지금까지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기분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 맛있는 것을 먹고 ‘아, 행복해’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구. 그것은 먹는 것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군. 많이 먹는 것하고는 달라. 무엇인가를 즐기는 사람은 사는 게 좀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사람에 따라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다르겠지. 내가 아주 안 먹는 것도 먹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것 때문에 즐거운 적이 없을 뿐이야. 먹을거리에 정성을 쏟는 사람도 있잖아. 그것은 자신이 먹을 것을 할 때보다 다른 사람한테 해줄 때 그럴까. 자신이 먹을거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 있어. 얼마전에는 화과자 이야기를 보았는데, 또 먹을거리라니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이 소설에서 먹을거리가 앞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얼마 뒤에는 빵집 이야기 만날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책을 만나다니 좀 신기하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내가 정성들여서 하는 먹을거리는 그저 그렇게 생각해도 과자, 빵은 괜찮게 생각해(반대여야 할까). 그렇다 해도 비싼 걸 먹는 건 아니군.

 

맏물은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 맨 처음에 나는 것으로, 이걸 먹으면 수명이 75일 늘어나서 좋은 것으로 여긴대.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은 처음 알았어. 무엇이든 제철에 난 게 좋다고 하잖아.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 때문일지도. 시간이 지나면 제철에 난 거라도 맏물은 아닐 테지만. 몇해 전에 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는 에코인의 모시치 대장이 나왔어. 모시치는 치안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인 요리키나 도신 밑에서 범인 찾기와 잡는 일을 맡는 직책 오캇피키야. 지금 생각하니 그때는 나오는 사람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하는 것을 더 봤어. 모시치라는 이름이 자꾸 나와서 이 사람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했어. 지금이라고 책을 두루두루 잘 보는 건 아닌데, 조금 마음 써서 보려고 해(이 말 얼마전에도 한 것 같군). 어느 날 후카가와 도미오카 다리 기슭에 이상한 노점이 나타났다고 해. 새해가 된 때였나. 그곳은 새벽 두시까지 문을 연다더군. 새벽까지 문을 연다고 하니 <심야식당>이 떠올랐어. 나중에 볼 빵집도 새벽 동안 문 여는 곳이야. 에도시대는 밤이 되면 거리는 어두울 테니 많은 사람이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겠지. 새벽 두시까지만 장사하는 건 그 때문일거야. 가게에서 파는 건 유부초밥인데 국물도 있어. 이곳 주인 어쩐지 ‘심야식당’ 주인과 비슷한 느낌이야.

 

모시치는 유부초밥 가게 소문을 듣고 한번 찾아가 보고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찾아가. 간장을 지고 팔러 다니던 오세이가 죽임 당한 일을 풀 때 그곳에서 먹은 순뭇국에 수제비를 넣은 게 도움이 됐어. 모시치는 유부초밥 가게 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하기도 해. 예전에는 무사였는데 지금은 먹을거리를 팔게 된 걸까. 노점이나 매춘부한테서 돈을 뜯는 뱃집 가지야의 가쓰조와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이런 말이 나오면 이 책을 보는 사람도 알고 싶잖아. 책을 끝까지 보면 ‘끝난 거야’ 하는 말이 절로 나와. 아홉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일은 어떻게든 풀리지만, 유부초밥 가게 주인하고 영감 스님 미치도 일은 더 알 수 없어. 유부초밥 가게 주인이 그 가게를 하게 된 까닭은 나오는군.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였어. 아이일까 아니면 형제일까. 버린 아이를 찾고 싶다고 했으니 아이일지도 모르겠군. 왜 형제일까 했느냐구. 에도시대 때는 무사 집안이나 상인 집안은 쌍둥이를 꺼렸대. 쌍둥이가 나면 재산 나누기가 힘들다고. 이런 이야기도 있고 첫째, 둘째 이야기도 나와. 첫째는 첫째대로 집안을 이어야 하는 부담, 둘째는 둘째대로 집안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하더군.

 

어떤 사람은 쌍둥이에서 하나를 버렸는데 시간이 흘러서 딸이 죽었어. 버린 딸을 다시 찾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딸을 데려다 키우는 사람한테 큰돈을 쓰려고 했어. 아이를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버린 거니 잘못이 있는 건데. 돈으로 잘못을 씻을 수 있을까. 그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딸이 가난한 집에서 사는 게 불쌍했대. 돈이 없다고 해서 안 좋은 건 아닌데, 행복을 돈이 있고 없고로 생각했나봐. 쌍둥이여서 일곱살 때 집안에서 쫓겨나고 다른 집 사람이 됐는데, 후계자가 죽었다고 쫓아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인 일도 있어. 불러들이는 건 괜찮은데 지금 가진 가정을 버리라는 거야. 그런 억지를 쓰다니. 가정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니 재산을 노리는 사람이라 했어. 그 사람은 집에 돌아올 마음이 없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안 좋은 일을 한 사람도 있었어. 그다음에는 그 사람이 집안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죽었어.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벌을 받는다 하는 말이 떠오르는군.

 

아무리 좋아해도 그 사람이 예전과 달라지면 마음이 식기도 하겠지. 사람은 사람 욕심을 내도 화를 당하는 듯해. 돈 때문에 어린 자식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더군. 모시치는 그런 것을 아주 싫어했어. 현실에서는 아무리 괴로워도 참지. 참지 못하고 상대를 죽이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미야베 미유키 에도시대 소설에서는 언제나 마음을 잘 다스려라 하는 것 같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뿐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도.

 

 

 

*더하는 말

 

예전에 에도시대 소설(일본소설이라고 해야겠군)을 보면서, 다리 이름과 다리라는 말이 있는데 왜 또 다리를 쓸까 했어. 본래도 그렇게 쓰였을까 했지. 강이나 산도 그래. 산은 많이 못 봤지만. 도미오카바시에는 다리라는 말도 있어. 이것은 도미오카(富岡) 다리(橋)야. 우리말로 옮길 때 도미오카 다리가 아닌, 도미오카바시 다리라고 하기로 약속한 걸까(나는 이것을 보면서 다리 다리라고 생각해) 후지산은 후지산인데. 이건 일본말로도 후지야마가 아닌 후지산이라 하더군. 일본 지역 이름에 강(川)이나 다리(橋)가 들어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산(山)도 들어갈지도.

 

 

 

희선

 

 

 

 

☆―

 

“가난뱅이는 일하고 또 일하고,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더욱이 너는 몸집이 크니 제대로 된 인연은 없을 게다. 스스로 벌어서 잘 살아야 한다고, 저는 줄곧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30쪽)

 

 

“오늘 밤에는 어디를 가도, 도깨비들은 바늘방석이지요. 도깨비는 밖으로, 도깨비는 밖으로, 하면서 콩으로 팔매질을 당하고 도망쳐 나와야 하니까요. 그러면 무척 가엾다면서, 주인장이 도깨비들에게 술을 대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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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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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도깨비한테도 갈 곳이 필요하다.  (390~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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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참 잘 간다. 시간은 사람 사정 봐주지 않고 저 혼자 잘도 간다. 얼마전에 ‘희망이 외롭다’는 시를 보았는데, 시간도 외로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게 답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큰일이 일어난 곳에도 삶이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일이 되면 이런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야겠지. 마음의 시간은 멈춘다 해도, 하루하루 날이 가면 슬픔이나 아픔은 조금씩 낫는다. 그렇다고 그게 깨끗하게 없어지느냐 하면 아니다. 사람은 아프고 슬퍼도 웃는다. 사람이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사람한테 그런 힘(슬픔에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는)이 없었다면, 지금 인류는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엄청나게 커다란 말을 하다니. 2014년 10월 27일 밤에 컴퓨터를 켰더니 그 소식이 있었다. 세상을 떠난 게 겨우 몇 시간 전이라니 믿기 어려웠다. 라디오 방송에서 쓰러지고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좋아지기를 바랐는데.

 

누군지도 제대로 못 쓰다니. 마왕, 신해철 뭐라고 하면 좋을지. 고스트스테이션, 고스트네이션 잘 들었으니 마왕이라고 할까보다(마음속으로는 마왕이라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신해철이라고만 한 듯. 뒤에 오빠도 붙였던가. 오빠라는 말은 하기 어색하다. 형이라는 말이 있구나. 이 말이 좀더 편한 느낌이지만 해본 적은 없다). 책 제목은 조금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책 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샀다. 이 책 살 때 노랫말 모음집 준다고 해서 그것을 받으려고 주문과 취소를 되풀이했는데도 못 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운이 없구나 했다. 다 생각나지 않고 몇회인지 잘 모르지만, 1988년 12월 24일이라는 것은 기억한다. 맨 마지막 16번인 무한궤도도. 16번이 대상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정말 그런 생각을 했는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했다고 생각한다. 꽤 오래전부터 알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앞에서 고스트스테이션, 고스트네이션 말했는데, ‘하나 둘 셋 우리는 하이틴’도 들었다(마왕이 그만두고 얼마 뒤에 윤종신이 했다. 그때는 잘 안 들었다). 다음이 밤의 디스크쇼, 그다음이 음악도시다. 밤의 디스크쇼에 친구 생일 축하해 달라는 엽서 보냈는데 그게 나왔다. 그렇게 나온 건 내가 엽서를 예쁘게 꾸미거나 글을 잘 써서는 아니고 마왕이 그 방송 진행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라디오 방송 처음에는 열심히 들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듣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 꼭 그만두었다. 밤의 디스크쇼뿐 아니라 음악도시도. 고스트스테이션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라디오 주파수 돌리다 알게 된 건지. 그때 그거 듣고, 이 사람이 이랬단 말이야 했다. 밤의 디스크쇼나 음악도시 할 때는 달랐던 것 같은데. 바뀐 건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방송하게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 끝날지도 모르니 고스트스테이션 잘 들으려고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이것은 MBC에서 할 때 한 생각인가. MBC에서 하다가 그만뒀을 때 아쉬웠다. 2008년에 SBS에서 했다는 건 몰랐다. 아니 알았던가, 그때 못 들은 듯하다. 라디오로 들을 수 없어서 그랬을지도. 2012년 8월에 우연히 MBC에서 하는 거 들었다. 꽤 반가웠는데 며칠밖에 듣지 않았다. 새벽에 라디오 안 들은 지 오래돼서. 새벽에는 듣지 않아도 여전히 라디오 듣는다. 라디오 이야기만 하다니. 라디오 방송으로 많이 만나서겠지. 지난해 구월에 배철수 아저씨가 쉬어서 마왕이 음악캠프를 진행했다. 잠시지만 오랜만에 라디오 방송하는 거 들어서 좋았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해도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이젠 할 수 없겠다. 지난해 10월 28일에 음악캠프 끝날 때 마왕이 음악캠프에서 한 말 들려줬다. 참 좋은 말이었는데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다니. 라디오 방송은 진행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일대일로 만나는 거다 했던가.

 

처음에 말하려고 했는데 못했다. 이 책 보기 전에 꿈에 마왕이 나왔다. 꿈에 나온 것만 기억하고 어떤 내용인지 모른다. 그전에도 꿈에 나온 적 있을 텐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노래 들은 건 생각난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어도 기분이 이상한데, 마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믿기 어렵고 시간이 좀 흐르니 슬펐다. 마왕은 나를 몰라서 내가 예전처럼 마음 별로 안 써도 섭섭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게 미안했다. 지난해에는 음악캠프에 나온 거 들어서 소식 조금 알았다.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온 듯한데 그런 건 거의 못 봤다. 올해 오월에 MBC에서 한 <휴먼다큐 사랑>도. 이거 알았으면 봤을 텐데. 이제와서 하는 생각은 들지만. 지난해 10월 27일 뒤부터 라디오에서 노래 들으면 ‘진짜 세상에 없구나’ 생각했는데 이건 지금도 그렇다. 마왕이 한 음악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만 아쉽다. 이 책 보니 목소리 들리는 듯했다. 고스트스테이션, 고스트네이션에서 한 말 같기도. 사람이 죽어도 산 사람 마음속에 살아있다고 한 말을 실제 느꼈다. 이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겠다. 저마다 다른 추억을 가졌겠지.

 

누군가는 마왕을 알아서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오래전에 들은 말 하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한다는. 그 말대로 하려고 한 적도 있지만, 늘 그러기는 어렵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책을 보니 그런 말은 없어서. 좋아하는 거 해도 어려움은 있다. 어쩌면 그런 뜻으로 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저런 말 본 적 없다.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한 말을 기자 같은 사람이 앞뒤 자르고 썼다는 말을 했는데,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여기에는 지어낸 말도 있다고 나온다). 그 말 들었을 때 무슨 그런 사람이 있나 했을지도. 글로 그 말을 보니 ‘그런 일 괴로웠겠다’ 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힘들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말도 있지만, 모든 게 참은 아닐 거다. 나는 그런 데 거의 관심없기는 하다. 어떤 말은 다 그대로 믿기도 한 것 같다(이건 소문을 말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좀 다를지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마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영향 많이 받았겠지.

 

마왕은 음악에서 소리(사운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데, 그러고 보니 이 말 여러 사람이 했다. 음악 하는 사람은 다 그런지도. 듣는 사람은 노랫말, 멜로디일까. 멜로디가 먼전지 노랫말이 먼전지. 소리 잘 몰라도 그게 좋다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마왕도 사랑 노래 만들었지만, 그게 아닌 것도 많다. 삶, 죽음, 마왕의 철학. 예전에는 철학과여서 그런 노랫말을 쓰는가보다 하기도. 그런데 학교 마치지는 못했구나. 성당에 다닐 때 이런저런 것을 물어봤다는데 그거 재미있다. 그런 생각을 해서 철학과에 갔나 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보기를 들면 성경 같은 거(이건 다 읽지 못했다. 예전에는 몇 권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하나도 없다). 무엇에든 의문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의문을 가지기도. 내가 생각하는 건 별로인 것 같고, 나는 아직도 내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다른 사람처럼 생각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나는 나대로 생각해도 괜찮겠지. 단 내가 옳다고 우기지 않기, 그것은 잊지 않아야겠다.

 

무한궤도 신해철 넥스트 노댄스 비트겐슈타인 크롬(이것은 음반은 아니고 그냥 이름이다). CD가 다 있다면 좋겠지만 조금밖에 없다. CD 들을 수 있게 됐을 때 하나씩 사두는 건데 왜 안 샀을까. 지금까지 공연 손으로 꼽을 만큼밖에 안 봤는데, 그 안에 넥스트도 들어간다. 친구도 넥스트를 좋아해서 함께 갔다. 그때 친구가 가자고 한 것 같다. 그 친구는 언제부터 넥스트를 좋아했을까. 무한궤도 때부터 알았을까. 아쉽게도 그건 물어본 적 없다. 멀리서 한번이라도 공연 봐서 다행이다. 라디오에서 가끔 노래 나오면 좋겠다. 이건 내가 바라지 않아도 그렇게 되겠지. 마왕이 ‘있을 때 잘해’ 자주 말했다는데 나는 잊었나보다. 책을 보다보니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가끔 뭐 한다더라 하는 소식 듣고 살기를 바랐는데. ‘있을 때 잘하기’는 마왕에 한한 건 아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한테는 그래야 한다. 나는 그러고 있는지, 그래야 할 텐데.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_민물장어의 꿈에서

 

 

 

엄청난 일은 없지만 마왕 신해철이 있어서 웃고, 음악과 말을 듣고 힘을 받기도 했다. 받기만 하다니. 잘 알려진 사람과 보통 사람 사이에서는 주고받는 게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음악 듣고 CD 사는 게 답일지도.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 덜 슬플까. 그건 아니겠지. 우연히 라디오에서 음악을 들을 때면 마음속이 따끔따끔 할지도. 어쩐지 마왕은 ‘웃고 살아’ 할 것 같다.

 

 

“마왕, 편안하게 쉬세요. 어쩌면 그곳에서도 늦은 밤에 방송하면서 놀지도 모르겠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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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枕 (小學館文庫 な 14-1) (文庫)
나쓰메 소세키 / 小學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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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몇해 전에 《신의 카르테》(나쓰카와 소스케)를 읽고 그 안에 나온 나쓰메 소세키 소설 《풀베개》를 알았다. 거기에서 이 책을 즐겨읽은 사람은 내과의사 구리하라 이치토다. 책을 언제나 가지고 다니고 외우기도 했다. ‘신의 카르테’에서는 죽음과 삶을 이야기한다. 삶, 죽음은 많은 책에서 말하는 주제다. ‘신의 카르테’에는 삶보다 죽음이 더 많이 나온다. 죽는 사람이 나와서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어쩌면 그건 죽음보다 삶을 이야기하는 건지도. 병에 걸려도 그 병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지만, 죽음을 맞는 이야기도 많다. 이치토가 일하는 병원에는 대학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말기암 환자가 찾아온다. 이치토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잠시 아픔을 가시게 할 뿐이다. 환자를 보낼 때마다 이치토는 힘들어한다. 그래도 그곳에서 이치토를 만난 사람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치토는 아픈 사람 마음을 생각하는 의사다. 대학병원은 환자를 제대로 안 보고 나을 수 있는 사람만 받기도 한다. 환자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건 진찰 시간이 짧다는 거다. 사람이 많이 가서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좀더 마음을 쓰면 좋을 텐데. 나는 병원에도 잘 가지 않는데 이런 말을 했다. 병원은 할 수 있는 한 안 가고 싶다.

 

이치토가 늘 가지고 다니고 즐겨읽는 모습을 보니, 나도 언젠가 《풀베개》를 봐야겠다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나보다. ‘신의 카르테’를 보고 ‘풀베개’를 읽어보겠다고 작가한테 말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나쓰카와 소스케는 여기에 해설을 썼다. (이것은 다른 이야긴데 나쓰카와 소스케가 쓴 《신의 카르테 3》 뒤에는 강상중이 글을 썼다. 그 책을 읽으려고 사두었는데 아직 못 보았다. 강상중은 이름만 알고 잘 모른다.) 나쓰카와 소스케는 소세키 소설에서 ‘풀베개’를 가장 먼저 보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소세키 소설 이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 책을 본 뒤 그 말을 보고 ‘맞아, 맞아’ 했다. 나쓰카와 소스케 이름은 지은 거다(소세키도 본래 이름이 아니구나). 나는 나쓰메 소세키하고 관계있는 이름으로만 생각했는데 여러 곳에서 가져온 거였다. 나쓰메 소세키에서 한 글자 ‘나쓰夏’, 풀베개에서 한 글자 ‘소草’, 가와바타 야스나리에서 한 글자 ‘카와川’,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서 한 글자 ‘스케介’를 써서 나쓰카와 소스케(夏川草介)가 되었다. 이름을 이렇게도 짓다니. 소세키는 이름뿐 아니라 소설 제목에서도 가져왔다. 소설을 쓴 것도 이 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세키 글을 보고 글을 쓴 사람은 나쓰카와 소스케만은 아니겠지.

 

 

산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정을 따르면 자신을 잃는다. 자기 뜻만 내세우면 답답하다. 어쨌든 사람 세상은 살기 힘들다.  (7쪽)

 

 

이 소설 시작하는 부분이다. 두번째 문단에서 이지(理智)는 지(智)만 쓰여 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에는 이지라고 쓰여 있어서 나도 그렇게 썼다. 알고 써야 하는데. 십이국기 시리즈를 여러권 이어서 봤으니 ‘풀베개’도 읽어보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읽었지만, 아직 만날 때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 이름이 ‘요’라는 것도 조금 읽은 다음에 알았다. 앞에도 이름이 나오는데 그것을 이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무슨 뜻으로 생각하고 본 건지. 예전에 소세키가 만든 말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렇구나 했다. 《풀베개》는 소세키 자신도 이것을 쓰기 전에 쓴 소설과 다르다고 했다고 한다. 이 소설 우리말로 만났다 해도 잘 몰랐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본 다음에 쓸까 하다가 그만뒀다. 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쓰려고. 앞에서 다른 말을 한 건 그래서다.

 

그림 그리는 요는 사람 사는 세상과 떨어진 시골 온천여관에 간다. 요는 그곳에서 그림은 그리지 않고 시만 쓴다(쓴다기보다 생각하는 건가). 그림보다 시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는 결혼했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여관집 딸 나미를 만나고 이발소에도 가고 절에 가서 스님을 만나기도 한다. 예술을 말하고 서양 작가 이름도 많이 나온다. 요가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은 요가 만나는 자연이다. 봄풍경이라고 해야겠다. 산벚꽃, 동백, 목련, 명자나무. 요는 명자나무가 되고 싶다고도 한다. 다른 것도 말했을 텐데 적어두지 않았다. 요는 온천여관에 가기 전에 꾀꼬리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는데. 요는 양갱을 보고 서양 먹을거리는 색이 좋은 게 없다고 한다. 양갱은 일본에서 만든 과자일까. 일본에서는 차와 단 과자를 함께 먹기도 한다. 양갱을 내놓을 때가 많고 물양갱이라는 것도 있다. 이런 말을 늘어놓다니. 책 제대로 본 거 맞아 할지도.

 

해설을 쓴 나쓰카와 소스케는 《풀베개》에서 봐야 하는 것은 말이라고 했다. 이런 말 안다고 내가 잘 보는 것도 아닌데. 책을 다 본 다음에 본 말이고. 나는 말을 어떻게 쓰면 좋은지 잘 모른다.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은데. 요가 책을 보고 있으니 나미가 공부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요는 책상 위에 책이 있어서 아무데나 펼쳐서 본다고 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법은 없다고. 이 말 봤을 때 이것은 이 책을 그렇게 보라는 건가 했다. 나는 그런 적 별로 없지만, 어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아무데나 펼쳐봐도 괜찮다. 혼자 시골 여관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면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없다. 이 소설은 그림이나 시 같은 것인지도. 소세키 다른 소설을 본 다음에 이 책을 봤다면 더 나았을까, 일본말을 더 안 다음이었다면, 한번 더 읽어봤다면. 언젠가 다시 이 책을 볼 날이 올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는 말을 잘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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