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는 자신이 사람과 다르다는 걸 느끼다

 

 

치즈 스위트 홈 10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3년 04월 23일

 

 

 

언젠가 동물을 기른다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건 귀여워도 실제 기르면 이것저것 마음 써야 해서 힘들지도. 동물과 함께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아예 기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좀 안 좋을까. 가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동물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보기도 한다. 그때는 함께 살다보니 좋아하게 되는 거다. 동물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도 달라지기도 한다. 동물과 아이는 마음을 닫은 사람이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게 하는지도. 누군가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기 때문일까. 동물뿐 아니라 아이도 이것저것 챙겨줘야 한다. 마음을 쓰면 그것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비슷한 점이 있구나. 제멋대로인 아이도 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동물은 사람한테 무언가 하지 않아도 괜찮기는 하다. 고양이보다 개가 사람 마음을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는 가끔만 놀아줘도 괜찮을 것 같지만 개는 마음을 많이 써야 할 듯하다. 이것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사람이 동물 마음을 다 알 수 없겠지만, 마음을 쓰면 동물도 그것을 알 거다.

 

앞에서 동물을 기른다면 고양이가 좋겠다고 했는데 마음뿐이다. 그것은 내가 쓸쓸할까봐서일지도. 그냥 앞으로도 책만 봐야겠다. 책만 봐도 괜찮다. 따스함이나 무게는 느낄 수 없지만. 어쩌면 동물은 언젠가 죽기 때문일지도. 만화속에 나오는 치(고양이)는 여전히 새끼고 죽지 않는다. 죽음을 가르치는 만화도 있지만. 책임보다 먼저 동물이 죽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겠다(나도). 동물을 한번 길러본 사람은 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 같은 아픔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고, 다른 동물로 아픈 마음을 낫게 하기도 한다. 사랑으로 다친 마음을 다음 사랑으로 낫게 하는 것과 같구나. 먼저 아플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잘 안 될 것을 생각해도. 이런 말을 하다보니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가 싶기도 하다. 그럴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지금 마음을 따를 때가 더 많다. 그러고 나중에 아쉬워하기도. 몰랐다면 더 나았을지도 한다. 이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 일어났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귀여운 치를 만나고 이런 말이라니.

 

앞에 것 9권을 보고 10권을 넘겨보고 아빠가 치를 찾는다는 벽보 보는 게 뒤인지 알았다. 앞부분을 제대로 안 보고 뒤를 봐서 그렇다. 이거 보기 전에도 한번 넘겨봤다. 무슨 이야기일까 하면서. 그렇게 봐도 잘 몰랐다. 치나 다른 고양이 보고 귀엽구나 했다. 처음부터 천천히 보고서야 어떤 내용인지 알았다. 갑자기 사람도 대충 보면 잘 모르고 차근차근 보면 조금이라도 알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코치가 치와 집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코치도 치와 요헤이네 집에서 함께 살까 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코치는 길고양이여서 사람 집에서 사는 게 답답할지도. 그래도 치와 친구다. 치는 코치가 가는 것을 보고 여기에서 살면 좋을 텐데 하기도. 코치는 자기 잠자리로 돌아가고는 거기가 편하다 느끼고 치는 집이 편하다 느꼈다. 바깥에서 살다 사람과 사는 고양이도 본 적 있는데, 그 고양이는 마음대로 밖에 나다니기는 했다. 치도 그러기는 하는데 돌아다니는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은 듯하다. 치는 다른 고양이보다 어리게 보이기도 한다. 코치나 치 형제인 새끼 고양이와 말투가 좀 다르다. 그게 귀엽기는 하다.

 

엄마나 마마나 같은 말인데 코치는 마가가 뭔가 한다. 치는 엄마는 알아도 마마는 모르다니. 우리나라에는 마마가 아닌 엄마라고 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 일본에는 엄마보다 마마라고 하는 아이가 더 많은 듯하다. 치가 생각하는 마마는 좀 이상하다. 삼색털 고양이가 치 마마가 있다고 해서 치와 코치가 보러가지만 못 만났다. 치와 닮은 새끼 고양이 둘을 만나고 함께 논다. 그렇게 놀다 집으로 간 치는 요헤이한테 다른 고양이와 꼬리잡기를 하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요헤이한테도 같이 놀자고 하지만 요헤리한테는 꼬리가 없었다. 엄마 아빠도. 밥을 먹으려고 식탁 앞에 앉은 엄마 아빠 요헤이를 보고 치는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꼬리, 손, 말이. 밖에서 치는 검정고양이를 만나고 그런 말을 한다. 검정고양이는 사람과 고양이는 다른 종이라 말한다. 손이 아니고 앞발이라는 말도. 고양이는 사람과 살면 자신도 사람으로 느낀다는데 치는 자신과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다니. 그런 생각을 하고 치가 조금 우울해했는데, 검정고양이와 같이 있어서선지 치 기분이 좀 나아졌다. 까마귀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코치는 그거 알고 있었다.

 

치를 찾는다는 벽보를 보는 건 아빠가 휴대전화기로 치 사진을 찍고, 바깥에서 이런저런 사진을 찍을 때다. 아빠는 엄마와 요헤이한테 말을 하려다 요헤이와 치가 함께 노는 모습을 보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엄마가 치를 찾는다는 벽보 사진을 보고 어떻게 할지 아빠한테 묻는다. 요헤이와 치가 형제 같다면서 둘을 떨어뜨릴 수 있느냐고. 엄마는 연락 안 하는 게 낫겠다 생각하는 거겠지. 연락해도 치를 데려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고양이는 언제까지나 어미와 함께 사는 건 아니니까. 치 어미와 다른 새끼가 지금은 함께 살아도 언젠가 두 마리도 누군한테 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먼저 하다니. 다음에 연락하고 치가 요헤이 식구와 함께 살아도 괜찮다는 말 들으면 좋겠다. 치 소식을 몰랐던 주인은 치가 잘 산다는 것을 알면 마음 놓을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기보다 다음 권을 보는 게 낫겠다.

 

 

 

 

            

 

 

 

 

 

 

 

치는 세라

 

 

치즈 스위트 홈 11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4년 04월 23일

 

 

 

드디어 지난해 나온 11권을 보았다. 10권 본 지 얼마 안 돼서 무슨 말로 시작하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권씩 보면서 치가 조금 자랐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많이 자란 건 아닌 듯하다. 11권에 나온 치는 다른 때보다 더 귀여워보인다. 뭐든 어릴 때는 귀엽다. 이건 아이도 다르지 않다. 아니 아주 가끔 귀엽지 않은 아이도 나타난다. 아이라고 이것저것 알고 싶어하고 순수한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무엇에든 쉽게 물들기 때문에 아이는 순수한 건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아이를 본 적 없다. 책이나 만화에서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아이 같지 않기도). 어린이는 힘이 없으니 어른이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부모도 있다.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보다 힘없는 아이나 동물을 괴롭히기도 한다. 심해지면 죽이기까지 한다. 날 때부터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인 사람 있을까. 그런 사람 있을 것 같기도 해서다. 거의 어릴 때 부모한테 맞고 자라면 안 좋아진다. 어릴 때 겪은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어린이 이야기하다 이런 말로 흐르다니. 아이도 동물도 어릴 때 마음을 많이 쓰면 좋겠지.

 

동물도 그렇고 아이도 자라면 어쩐지 아쉽다. 그건 왜일까. 자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일지도. 그런 것도 있지만 부모를 떠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를 찾지만, 좀 자라면 자기 혼자 다 자란 듯이 군다. 나도 그랬겠지. 나이를 먹고도 부모한테 잘하지 못하고 잘 살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면 아이를 바라는 사람 마음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어릴 때는 괜찮아도 자라면 멀어지니까.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닐 텐데. 동물은 자라도 그 집에서 살고 아이도 나이를 먹으면 어릴 때와는 다르게 부모한테 잘하겠지. 사람이 동물이나 아이한테 무언가를 바라는 건 아닐 거다. 마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기쁠 테지. 무언가 바랄 때 괴로운 거다. 바라지 않고 주는 게 참사랑이구나. 사람은 그런 것을 저도 모르게 배우고 자기 아이나 동물한테 주는 건지도. 아이를 바라는 사람 마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 부모한테 조금이라도 기쁨을 주었겠지. 지금도 그런 아이가 많겠다. 동물도.

 

지난번에 치는 자신과 요헤이네 식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요헤이네 집에 다른 아이가 찾아와서 요헤이와 둘이 놀았다. 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자기하고 왜 놀지 않을까 한다. 그것보다 둘이서 뭐하는 건가 했다. 요헤이와 엄마가 외가에 가서 밤에 돌아오지 않았다. 치가 그 말을 코치한테 하니 요헤이와 엄마가 다른 집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코치 형제도 다른 사람이 데리고 가고는 그 뒤로 만나지 못했다고. 동물은 다른 집으로 가도 사람은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데. 코치도 사람이 어떤지 잘 모른다. 새끼고양이여서 그런 거구나. 코치가 치한테 기대하지 마라 하지만, 치는 요헤이와 엄마가 돌아왔으리라 생각하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갈 때 치는 어미고양이를 만난다. 치를 보고 ‘세라’라고 했다. 치 이름이 본래 세라였구나. 이 이름은 그 집 사람이 지은 걸까. 어미고양이가 지은 걸까. 요헤이와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둘을 본 치는 기뻐했다. 사람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올 때와 하룻밤 자고 올 때는 고양이도 다르게 느낄까.

 

다음날 요헤이와 엄마 아빠는 홋카이도에서 온 생선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마당에서 먹는다. 치도 함께. 거기에 코치가 찾아오고, 얼마 뒤 치 어미고양이도 나타난다. 치 어미고양이는 치가 들어가는 집을 봐두었다 찾아온 거였다. 고양이가 새끼를 잃어버리면 찾으려 하고 만나면 기뻐하기도 할까. 치는 어미고양이가 ‘세라지’하니 요헤이 뒤에 숨었다. 그때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는 일 때문에 프랑스에 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치를 찾는다는 벽보가 나오고 아빠 일이 나오다니. 외국에 가도 동물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치와 함께 살기 위해 지금 집으로 이사했는데, 치와 요헤이는 헤어질까. 요헤이도 밖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벽보를 보았다. 요헤이는 거기에 쓰인 글자를 읽지 못했다. 나중에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고 치를 찾는다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을 알기 전에 치가 요헤이가 만든 종이 장식을 찢어서 요헤이는 치한테 화냈다. 고양이가 뭘 알겠나 싶은데. 치는 뭐든 노는 걸로 아는데(아기도 그럴 테지). 치는 요헤이가 화내서 밖으로 나가서 풀을 뜯었다. 검정고양이가 그 모습을 보았다. 치가 검정고양이한테 요헤이와 있었던 일을 말하니 검정고양이가 풀을 하나 뜯어서 날렸다. 치는 그것을 잡고는 즐거워했다. 단순한 놀이를 좋아하다니. 치가 검정고양이를 따라 공원에 가니 고양이가 여럿 있었다. 거기에서 삼색털고양이가 치한테 진정하고 들어 한다. 삼색털고양이가 치한테 한 말은 치가 지금 사는 집은 진짜 집이 아니고, 진짜 엄마(마마)에 형제가 있다는 거였다.

 

고양이인데 어쩐지 사람 같구나. 앞에서 코치가 치한테 치도 다른 데서 데리고 왔다는 말을 했을 때 치는 아니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치는 요헤이와 만난 일을 기억해내고 자신은 어디에서 온 걸까 한다. 치와 닮은 새끼고양이 둘을 만나고 어미고양이도 만난다. 어미고양이는 치한테 자신이 ‘마마야’ 한다. 다른 집에서 사는 아이 앞에 진짜 엄마가 나타나는 것 같다. 이 만화는 사람 이야기도 하지만, 고양이 처지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말할 수 있어도 고양이는 말 못한다. 말 못해도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는구나. 그런 것도 사람이 쓴 거지만. 이런 이야기 나오는 건 끝날 때가 다가왔다는 건가. 요헤이네 식구와 치가 사는 이야기였으니까. 치가 요헤이와 함께 살기를 바랐는데 이제 어떻게 될지. 좋은 쪽으로 흐르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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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夜中のパン屋さん 午前3時の眠り姬 (ポプラ文庫 日本文學) (文庫)
오누마 노리코 / ポプラ社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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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빵집 : 새벽 3시의 잠자는 공주

 

 

 

이 책이 네권이나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네번째가 새벽 3시여서 새벽 5시까지 나오는 거 아닐까 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긴 첫번째 거는 가게를 여는 밤 11시가 아닌 새벽 0시였군요. 그렇게 생각하다니 단순하지요. 구레바야시 빵집에 새벽 0시에 찾아온 건 노조미였을 거예요. 첫번째 거 써둔 거 찾아봤다면 좋았을 텐데, 이 기억이 맞는지. 새벽 1시에는 히로키(빵 만드는 사람)가 중학생 때 사귄 여자친구가 찾아오고, 새벽 2시에는 노조미 학교에 전학온 미마사카 고타로였습니다.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는 형식이군요. 이번에도 찾아왔어요. 노조미 사촌 사야가. 사야가 노조미를 찾아온 건 노조미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구레바야시 빵집에 노조미 엄마는 없었지요. 사야가 노조미한테 제멋대로 구는 게 저는 안 좋아 보였습니다. 사야는 어렸을 때 노조미를 괴롭혔거든요. 자신이 그때 한 일을 잘못했다 생각했지만, 노조미를 잘못 알고 있더군요. 자신이 괴롭혀도 울지 않았다고. 그거야 겉으로 울지 않은 것뿐이죠. 노조미는 구레바야시 빵집에 살면서 많이 밝아졌지만, 사야한테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 버릇이 없어지지 않아서. 사야는 사야대로 힘들었다고 하지만,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다니. 지나간 일이니 잊으라고 해야 할지. 제가 그런 일 겪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노조미보다 비뚤어졌나 봅니다.

 

부모라면 아이를 지켜야 하는데 그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사야 부모예요. 노조미한테는 외삼촌, 외숙모군요. 노조미가 그 집에서 산 게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는데 노조미도 사야와 같은 환경에서 지낸 적이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때렸어요. 사야, 사야 오빠 그리고 노조미도. 사야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할아버지한테 맞아도 아무 말 못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집안 사람을 꽉 잡고 살았군요. 할머니도 맞았습니다. 할아버지 자식인 사야 아빠나 노조미 엄마도 어렸을 때 맞았을 것 같아요. 노조미는 어렸을 때 왜 다른 어른이 할아버지 폭력을 피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맞으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할머니도 할아버지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야 엄마는 참는 게 식구를 위한 거다고 사야한테 말했습니다. 사야는 엄마 때문에 참고 공부도 잘하려고 애썼는데, 엄마가 일을 하고는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야가 그것을 알았을 때 사야 엄마는 사야한테 아무한테도 말 안 하는 게 식구들을 위한 거다 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다니. 사야는 그때부터 불량스러워지고 나쁜 아이들과 사귀다 집을 나갔습니다. 지금은 예전 남자친구한테 쫓긴다면서,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와 찾아왔습니다.

 

집을 나가면 그렇게 이성을 사귀는 게 당연한 건지. 거의 그런 식으로 흘러서 진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얼마전에도 비슷한 말을, 이걸 먼저 썼네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해야 하는데). 청소년이 집을 나가면 할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야는 노조미 엄마가 자기 엄마와 다르게 살아서 멋지게 보였다고 합니다. 노조미한테는 그렇게 좋은 엄마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같은 사람도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과 조금 떨어져서 사는 사람이 다르게 보기도 하죠. 저는 멀리에서 보는 사람보다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 마음을 더 생각하는군요. 사야보다 노조미한테 마음이 기운 건지도. 노조미 엄마는 마음과 다르게 노조미한테 행동했습니다.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 마음을 나타내야 하는데. 노조미한테는 공부해도 소용없다 그랬지만, 일하는 곳에서는 노조미 자랑을 하고 노조미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랐더군요. 다른 때는 진짜 마음을 알면 그렇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그래서 어쩌라구’ 했습니다. 이것도 노조미 마음이군요. 노조미와 같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군요. 사람한테는 좋은 면도 있고 안 좋은 면도 있지요. 제가 누군가의 좋은 면보다 안 좋은 면 때문에 안 좋은 일을 겪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떤 거냐 말하라고 해도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워요. 소설에서는 그런 일 뚜렷하게 말하는데 현실에서는 애매하군요. 이 책이 저도 잘 모르는 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나 봅니다.

 

두번째였는지 세번째였는지를 보면서는 노조미가 부러웠습니다. 노조미가 구레바야시 빵집에 오기 전에는 그렇게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구레바야시와 히로키가 노조미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 둘뿐 아니라 구레바야시 빵집에 자주 오는 손님 고다마, 소피아, 마다라메도. 고다마 엄마 오리에, 지난번에 나온 수상한 의사 아베, 고타로, 고타로와 고다마 아빠 미마사카.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군요. 히로키가 빵을 새로 만들면 모두 불러서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소피아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했을 때는 도우려고 하고 걱정했어요. 사야와 형사 야스다, 사야 남자친구 무라카미 준야, 무라카미 준야 엄마도 나왔네요. 무라카미 준야와 엄마인 무라카미 료코 이야기도 나옵니다. 료코는 준야 친엄마가 아니고 새엄마예요. 료코는 준야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고 사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정인지 말 안 했군요. 두 사람을 보면 피가 섞이지 않아도 식구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준야와 준야 엄마 사이만 그런 건 아니군요. 구레바야시와 노조미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구레바야시 빵집을 중심으로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네요.

 

구레바야시 빵집은 구레바야시 아내 미와코가 하려던 거예요. 미와코가 밤에 빵집을 열려고 한 건 노조미 때문이었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었을 테고, 그 뒤에는 우산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노조미한테도 우산이 있어야 했군요). 실제 그렇게 됐네요. 구레바야시 빵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가졌으니까요. 이 세상에 마음 다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겠군요. 누군가 때문에 다친 마음이 다른 누군가 때문에 낫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겠지요.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어두운 밤이 가면 밝은 아침이 온다는 것도. 어두운 밤을 구레바야시 빵집에서 보내고 밝은 아침을 맞는 것도 괜찮겠네요. 구레바야시 빵집이 불을 밝힌 모습을 보면, 자신을 위해 불을 밝혔구나 하는 사람 많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처음 볼 때도. 소설 속이 아닌 현실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이것은 꿈이군요. 꿈이기에 더 좋아 보이는 거겠지요. 아니 현실에서도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가겠지요. 구레바야시 빵집 같은 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미처하지못한말

 

사야는 어떻게 되고 노조미 기억은 어떻게 됐을까 할지도 모르겠군요(그게 뭐야 할지도). 사야는 자신이 엄마가 한 말 ‘식구를 위해서’ 에 저주받았다고 생각하고 저주를 풀려고 눈썹을 밀고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다고 달라질까 싶지만, 어리니까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요. 노조미는 이 세상이 별볼일없다 해도 사야와 무라카미 준야가 보낸 시간이 있다면 그런 것(저주)은 뛰어넘을 수 있다 말해요. 노조미는 구레바야시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지금 웃을 수 있으니까요. 노조미는 미와코와 만난 일을 기억해내요. 부모는 아이를 버려도 아이는 부모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노조미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노조미 엄마는 노조미가 미와코를 좋아하는 것을 시샘한 듯합니다. 자신이 잘 돌보지 못해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처럼 보이면 그런 마음이 드는가봐요. 노조미 엄마는 노조미한테 자신하고 살려면 미와코를 싫어하라고 했어요. 노조미는 미와코를 싫어할 수 있을까 하다가 아예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일 있을 수 있을까요. 《추억의 시간을 고칩니다》(다니 미즈에)에도 그런 사람이 나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는 찾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때 일을 잊어버린 사람. 어른은 제멋대로군요. 자기 사정이 안 좋을 때는 그곳에 보냈으면서, 가면 안 된다 하고 싫어하라고 하다니.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른보다 아이 마음에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괜찮다면 그때 응어리 풀어야겠지요. 예전에 텔레비전 드라마 보면서 쉽게도 마음을 풀어서 뭐 저런 게 다 있어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한 건 그때가 아니고 나중이군요(살다보니 마음이 비뚤어져서). 저는 그게 어려운 듯해서요. 좋은 마음으로 사는 게 훨씬 낫겠죠. 부모자식뿐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지켜야 할 건 잘 지키면 좋겠습니다. 저라고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힘이 있을 때는 그 힘을 휘두르기보다 힘없는 사람을 지켜야죠. 제가 어릴 때 맺힌 걸 잘 풀지 못했나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워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누구의 마음이든 ‘그렇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렵네요. 이 이야기는 좋게 끝났습니다. 그거면 될 텐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희선

 

 

 

 

☆―

 

“상관있어요! 당신 마음이 당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렇게 멋대로 상처받거나 슬퍼하면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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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기   放浪記 (1930)

  하야시 후미코   이애숙 옮김

  2015년 03월 23일

 

 

 

 

 

 

 

 

 

 

 

 

(2015년 6월 X일)

 

며칠 동안 소설이 아닌 책을 봤더니 소설이 보고 싶었다. 소설 안 봤다고 해도 이 책 보기 전에 본 소설이 아닌 책은 두권이다. 두권보다 앞에 본 책은 소설이지만 실제 있었던 사람 이야기고, 그 앞에는 전기를 보았다. 소설도 사람 이야긴데 안 본 것 같은 느낌이 들다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재미있게 보면 좋을 텐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재미있게 보았다고 하는 책도 나는 잘 못 본다.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기는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울하다. 나는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싶어서.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건 내가 어릴 때부터 책을 잘 읽지 않았기 때문일까다. 잘 모를 때는 여러번 보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번 봐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바에는 시간 많이 들여서 두번이나 봐야 할까 한다. 잘 모를 때 두번 본 일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바로 책을 두번 보는 것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보는 게 나을 거다. 시간이 흐른다고 내가 많이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 아주 조금은 달라지겠지. 책 잘 못 읽어도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아야 할 텐데.

 

소설이 보고 싶다 생각하고 이 책을 보았는데 이것을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책 소설보다 일기에 가깝다(제목도 ‘방랑기’구나). 날짜가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고, 줄거리를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말 맞지 않다. 소설에는 줄거리 알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별로. 읽으면서 ‘이게 대체 뭐야’ 한다. 나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해서. 앞에서는 이해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구나. 이 책은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시간이 흐르는 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쓴 건 다섯해쯤이라고 한다. 일기라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책으로 내지 않겠지. 나는 일기를 잘 못 써서 그런 일은 아예 생각도 못한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많이 보았다고 한다. 어떤 것이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1920년대 모습이 나와서일까.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이 좋아했을지도. 이 책이 나왔을 때라고 해도 잘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겠다. 연재를 했을 때도 그리 좋지 않았을 때고 책은 전쟁 때 나왔다.

 

사람은 언제부터 한 곳에서 살게 됐을까. 한 곳에서 살게 되고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되었다. 농경사회가 되고는 사람은 한 곳에서 살고 글을 쓰게 되었다(기록이라고 해야겠다). 그전에는 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돌지 않았을까(먹을 것 때문에 돌아다기도 했겠다). 떠돌아 다닐 때도 살던 곳에 남고 싶은 사람 있었을지도. 책 제목에 ‘방랑’이라는 말이 있어서.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고향이다. 고향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인데, 난 곳과 상관없이 자란 곳이 고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 않나 싶다. 그때는 제2의 고향이라고 하는구나. 하야시 후미코도 난 곳이 있지만, 자신한테는 고향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한 곳에서 살지 않고 부모와 함께 여기저기 다닌다. 친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게 되고는 후미코와 엄마를 내쫓았다. 후미코 엄마는 다른 사람과 살게 되는데, 새아버지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그런 것을 보고, 그냥 딸하고만 살지 왜 다른 사람을 만났을까 했다. 일본도 가부장제 사회여서 여자 혼자 아이와 사는 게 쉽지 않아서 그랬을 테지.

 

책을 볼 때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이 ‘나와 비슷하구나, 아니면 나와 다르구나’ 한다. 언젠가도 말했을 테지만 책에서 나랑 비슷한 사람 거의 못 봤다. 내가 그렇게 달라서는 아니고 이상해서일지도. 생각은 보통으로 하지만. 가난이라는 것을 말할 때 앞에 ‘찢어지게’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무엇이 찢어진다는 걸까. 후미코는 아주 가난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이기 때문일지도. 어렸을 때부터 후미코는 장사를 했다. 부채와 화장품을 짊어지고 팔러 다녔다. 물건보다 먹을 것이 잘 팔렸다. 탄광촌에는 조선사람이 있었다고. 그렇게 돈을 벌면 책을 빌려다 보았다. 후미코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었다. 가난해도 책을 읽었다니. 나는 어렸을 때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옛날에는 책도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텐데 거기에 관심을 갖다니. 어떤 기회로 책을 보게 됐는지도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내가 가난하게 살고 지금도 가난하다 생각하는데 찢어지게 가난했던 적은 없다. 먹을 게 없어서 굶은 적 있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가난하다 해도 어릴 때부터 일도 하지 않았다(집에서는 했구나). 후미코가 어렸을 때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살기 어려워서 어린이도 일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쯤부터 일하는 아이 많았을지도.

 

여기 나오는 이야기는 후미코가 어렸을 때보다 스무살 넘었을 때 일이다. 드라마 같은 거 보면 가난한 사람은 누군가를 꼭 사귄다. 가난해서 처음 사귄 사람과 헤어질 때가 많고 나중에 부자를 만나기도 한다. 이건 신데렐라 이야기잖아. 후미코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그런 것을 바란 것 같기도 하다. 벼락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까. 도쿄에 갈 때는 애인과 함께 갔는데, 애인은 자기 누나가 가난한 후미코와 결혼하는 거 반대한다면서 떠난다. 부모도 아니고 누나가 반대한다고 떠나다니. 후미코를 그렇게 좋아한 건 아니었을지도. 스무살이 넘었을 때 후미코는 공장에서 일하고 카페에서 일하고 길에서 장사를 하고, 사무원도 한다. 여급으로 일할 때 일이 많이 나온다. 이름을 ‘유미’라고 했다. 자신한테 30엔이 있다면 글을 쓸 텐데 하기도.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도 후미코는 책을 보고 시를 쓰고 동화를 썼다. 어떤 동화였을까. 후미코는 왜 한가지 일을 오래 하지 않았을까. 월급이 아닌 그날 일한 돈을 받아서였을지도. 1920년대는 여자가 혼자 살아가기 힘든 때다. 지금하고는 아주 달랐다. 지금은 여성이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도 그때는 그리 쉽지 않았겠지.

 

중요한 건 아닌데 후미코가 자주 헤어진 남자를 생각해서 대체 이 사람이 앞에 나온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했다. 누군가와 헤어지면 그 사람을 자꾸 생각하기도 하겠지. 그러고 보니 한번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난 것도 같다. 내가 가장 알기 어려운 건 이 점이다(이것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람은 거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가. 한때는 시인과 함께 살았는데 후미코를 때렸다. 엄마가 후미코한테 후미코도 자신처럼 남자 복이 없다고 했다. 결혼까지 한 사람은 괜찮았나보다. 동화를 써서 잡지사에 가지고 가니, 후미코가 쓴 동화를 고쳐서 다른 사람 이름(편집자)으로 잡지에 싣기도 했다. 후미코는 그 일을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후미코는 동화보다 시를 쓰고 싶어했다. 여기에도 시가 실렸다. 시 잘 모르지만 후미코가 쓴 시 괜찮게 보인다.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시가 아닌 글이라고 하다니. 앞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누군가한테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중요할지도.

 

한 곳에서 살지 않고 여기저기 떠도는 삶은 힘들다. 내가 그렇게 살아본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후미코가 쌀밥이 먹고 싶다 생각한 시간이 길었지만, 그런 시간이 나쁜 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내 일이면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 일이면 나쁘지 않다고 하다니). 좀 길었지만 그때가 있어서 글을 썼다. 아니 후미코는 힘들 때도 책을 읽고 글 쓰는 걸 그만두지 않았구나(가끔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글이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사람들이 자기 글을 본다는 것을 알면 기쁘겠지. 저세상에서는 모를까. 아니 알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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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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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3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眞夜中のパン屋さん 午前 2 時の轉校生 (ポプラ文庫 日本文學) (文庫)
오누마 노리코 지음 / ポプラ社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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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빵집 : 새벽 2시의 전학생

 

 

 

빵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지난번에 말하지 못한 게 하나 있습니다. 다음 권 보고 하지 했습니다. 제가 빵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잖아요. 좋아하면 자신이 만들고 싶기도 하죠. 빵 만들기 배워보고 싶기도 하네요. 이 책에 나온 ‘구레바야시 빵집’이 진짜 있다면 좋을 텐데. 책 속에라도 들어가고 싶군요. 그러면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몇해 전에 빵 만들기 배워볼까 했습니다. 나라에서 내주는 것으로. 이게 안 좋았나 봅니다. 제 돈을 내고 배우려고 했다면 별 말 안 했을지도 모를 텐데, 저한테 말을 그렇게 안 해서 어떻게 배우느냐고 하더군요. 말하는 거하고 빵 만드는 거 무슨 상관있을까요. 그 말 들으니 기분 나쁘더군요. 기다려도 연락 안 왔을지도 모르겠지만, 배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세상은 말도 잘해야 살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런 걸 한두번 느낀 건 아니기도 하네요.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기도 하더군요. 이건 인터넷도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말 잘하는 사람이 나오는군요. 그 사람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사람 생각이 다 옳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일 뿐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새롭게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말 잘하는 사람 가운데는 사기꾼이 많죠. 앞에서 말한 사람 사기꾼은 아니예요. 의사로 어렸을 때 꿈이 마법사였어요. 대학생 때는 좋은 일 하는 모임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처음 생각과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그거 보니까 신흥종교 같은 게 생각났습니다. 신흥종교만 그런 건 아니군요. 무엇이든 시작은 좋은 생각이었다 해도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 그곳은 처음과 달라지죠. 돈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다르고 바라는 일도 다 다르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처음 생각한 게 무엇인지 다 잊어버릴지도 모르죠. 그런 일은 어디에서든 일어나는 거네요. 어쩌면 그래서 벌써 생겨버린 어둠은 쉽게 없애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해서 균형을 맞추는 건지도. 하지만 균형이 깨지고 어둠이 커지면 그곳은 사라질지도 모르죠.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보다 적은 사람이 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어떤 때는 많은 사람이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하는군요. 좋은 일 하려는 모임 일은 조금 나왔는데 이 말을 했네요. 그런 것을 만든 것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서였다고 합니다. 뜻은 좋지만……. 저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복과 불행도 균형이 맞아야 하니까요. 아니 사람마다 생각하는 행복은 다르겠네요.

 

엄마가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서 살게 하면 아이는 안 좋겠지요. 그래서일까요. 노조미는 어느 때 기억을 잊은 듯했습니다. 맨 처음 것을 보고 말해서 지난번에는 말 안 했는데, 노조미는 구레바야시 빵집에 얹혀 삽니다. 노조미 엄마가 구레바야시 아내 미와코한테 노조미가 동생이라고 했어요. 그 말을 한 건 노조미가 구레바야시 빵집에 오기 얼마전이 아니고 오래전이었던가봐요. 그렇게 말했다고 한 건 미와코가 쓴 편지 때문이군요. 어쩌면 노조미 엄마가 말한 게 아니고 미와코가 그렇게 하기로 한 건지도. 지난번에는 어린 노조미와 미와코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습니다. 노조미는 미와코를 한번도 만난 적 없다고 했는데. 구레바야시와 히로키는 노조미가 기억을 찾았으면 해서 과일 샌드위치를 만들어요. 하지만 노조미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의사(아베 슈헤이)가 기억하지 못하면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 나오니 노조미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기도 하네요. 구레바야시는 뭔가 안 것 같은데. 노조미 엄마 잠깐 나왔습니다. 마지막에는 구레바야시 빵집에 찾아왔습니다. 다음 권에서 뭔가 알 수 있겠네요. 네, 이 책 한권 더 있습니다.

 

이번에는 ‘새벽 2시의 전학생’인데 그 말은 아직 못했군요. 노조미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됐어요. 같은 반에 남자아이가 전학왔는데 이 아이 좀 이상했습니다. 미마사카 고타로는 왼손에 인형을 끼고 복화술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아버지를 파멸시키겠다는 말을 하더군요. 고타로 아버지는 미마사카 겐시로 고다마 아버지기도 합니다. 고다마는 초등학생으로 첫째권에서 구레바야시 빵집 사람과 알게 되고는 지금도 친하게 지냅니다. 그런 사람이 더 있군요. 마다라메, 소피아. 아야노와 다가타도 여전히 나왔습니다. 고타로와 고다마는 형제인가, 했습니다. 맞아요, 엄마가 다른 형제네요. 고타로는 처음에는 노조미가 지금은 사이가 멀어진 어릴 적 친구와 이야기하게 하고, 고다마 엄마가 사귀는 의사(아베)를 노조미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그런 일을 한 진짜 목적은 의사인 자기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을 안 보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아이 같았습니다.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버지가 자신한테 관심 갖기를 바랄까요. 가끔 그런 이야기를 봐서.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고타로가 하려는 일을 알고 노조미와 구레바야시와 히로키는 말리려고 합니다. 그 일을 제대로 한 사람은 아베 슈헤이예요. 아베는 고타로 아버지 미마사카 겐시와 친구였습니다. 잠깐 연극을 하기도. 고타로, 고다마 아버지 미마사카 겐시는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생각을 아주 안 한 건 아니더군요.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되는지 몰랐던 겁니다. 앞으로는 좀 나아질지도. 사람은 누군가 때문에 조금 달라지기도 하는가 봅니다. 그 상대가 아이일 때가 많은 듯하네요. 고타로도 어렸을 때는 아버지한테 칭찬받으려고 뭐든 열심히 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는 아버지를 원망하다니. 이것은 지나갔군요. 고다마는 누굴 닮았는지 참 착합니다. 미마사카를 위해 빵을 만들고 마음을 썼습니다. 고타로가 왜 노조미 가까이에 왔을까 하는 것에, 고다마는 모두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어서였다고 했어요. 저는 고타로가 노조미 사정을 알아서 그런 것 같은데.

 

여러 권으로 나온 책은 쓰기 어렵군요. 이렇게 읽고 쓰는 거 처음이 아닌데 이런 말을 했네요. 중심 이야기도 있고, 여러 사람 마음이 나오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고다마 엄마가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그것을 보니 뭐든 잘 못하면 천천히 하면 어떨까 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엄마도 그렇죠. 아이를 쓸쓸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봅니다. 잘 못하는 것도 날마다 조금씩 하다보면 익숙해지기도 하겠지요. 뭐든 하루 아침에 잘할 수 없잖아요. 다음에는 노조미 이야기가 나올 것 같네요. 미와코 이야기도. 지금까지도 나왔는데 이런 말을 했군요. 이 책을 보고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구나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몰라도 산 사람이 그 사람을 기억하니 그 사람은 살아있는 거지요.

 

 

(중요한 건 아니지만, 진작에 타이핑하고 봤다면 틀리지 않았을 텐데 싶습니다. 늘 게을러서 문제군요. 새벽 2시라고 해야 하는데 새벽 1시라고 했답니다. 지금은 고쳤죠. 앞으로는 조금만 게을러야겠습니다.)

 

 

 

희선

 

 

 

 

☆―

 

“처음부터 피가 섞여 있으니까 말해도, 부모가 조건 없이 애정을 준다고 할 수 없어. 그런 것을 생각하는 건 아이의 오만이라는 거야. 너도 기억해두는 게 좋아. 모든 부모가 조건 없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양복 옷깃을 정리하면서 미마사카는 말했다. 그 얼굴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래서 노조미도 되받아쳤다.

 

“……아아, 그런가요. 훌륭한 지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마사카 선생님도 기억하세요. 아이 쪽은 어떤 부모라 해도 조건 없이 부모를 생각한다는 거라는 걸……!”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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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태양이 가진 비밀

 

  데가미바치 17

  아사다 히로유키

  集英社  2014년 01월 04일

 

 

 

 

 

 

 

 

중간채용된 치코

 

 

 

몇달이 지나서야 16권 다음인 17권을 보았다. 얼마전에 19권 나와서 빨리 앞에 것 두권을 보고 19권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번 이야기와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아주 없는 건 아닌가. 이 책이 만화여서 본래 띄엄띄엄 나오지만, 나도 띄엄띄엄 봤더니 여러가지를 잊어버렸다. 라그 엄마가 남긴 편지를 본 다음에 라그는 왜 ‘깜박임의 날’에 태어난 아이들을 바로 찾으러 가지 않는 건가 했는데, 그건 그 일 보고를 아직 위에 하지 않아서였다. 깜박임의 날(열두해 전)에 태어난 다섯아이한테는 빛이 없는 이곳 앰버그라운드의 아주 오래전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그 기억을 이으면 무엇인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다. 깜박임의 날 태어나고 앰버그라운드의 아주 오래전 기억도 잠들어있는 사람. 아니 꼭 사람에 한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번에 그 기억을 가진 동물이 나왔다.

 

여러 번 하는 말인데, 내가 이 책을 보기로 한 건 편지 배달하는 이야기여서였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 마음이다’ 하는 말도 있었는데. 앞에는 편지를 보내고 받는 따듯한 이야기도 있다. 언젠가부터 이곳 앰버그라운 정부의 비밀과 반정부집단 리버스(이건 다시 태어나다인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어디에든 작은 이야기도 있고 커다란 이야기도 있구나. 이번에는 슬프지만 마음 따듯한 이야기와 오래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기도 한다. 라그는 편지를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편지 받을 사람이 죽어서 그 편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나타나서 편지를 찢어버렸다. 여자아이는 라그와 같은 비로 중간 채용된 치코(뒤에서 읽으면 코치라니, 새끼고양이 치 친구가 코치여서 생각난 거다)였다. 갑충 카베르네와 비들이 싸워서 일손이 많이 모자랐다. 라그가 치코한테 도시 안내를 하면서 함께 편지를 배달했다. 여기저기 다니다 편지 받을 주소가 돌로된 나무에 갔다. 주소가 집이 아니어도 된다니. 앞에서 편지 받을 사람이 죽었는데, 이번에도 편지 받을 사람이 죽었다. 그곳에 편지 받을 아이 엄마가 있어서 안 일이다.

 

아이 엄마가 편지를 쓴 건 몇달 전이다. 엄마는 집에 돌아가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편지에 썼는데, 아이는 마차 사고로 죽었다. 엄마는 편지를 왜 이제야 가져왔느냐면서 죽은 딸한테 편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억지스러운 일이지만 라그는 가만히 있을 아이가 아니다. 라그는 아이 엄마와 돌나무 위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죽은 딸이 쓰던 공책과 망원경이 있었다. 라그가 심탄총을 쏘니 기억이 보였다. 아이는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그 나무 위에서 보고 언젠가 자신도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치코는 다른 데 갔다가 돌아와서 아이 엄마한테 편지를 주었다. 그것은 아이가 엄마한테 보낸 거였다. 아이가 살았을 때 엄마가 함께 시간을 오래 보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엄마는 아이와 살기 위해 일을 했다. 아이는 그것을 잘 알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죽은 사람 마음 모를 텐데, 물건에 담긴 기억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그것을 알 수 있구나. 아니 우리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는 아니더라도 알려고 하면 조금 알 수 있겠지.

 

라그는 엄마가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를 찾으라고 했다는 말을 하치노스(이 말은 벌집이다. 편지 배달하는 사람을 벌bee이라고 하니 그렇구나)에서 보고 했다. 갈라드(관장이던가, 대리던가)는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를 찾는다고 신문에 냈다. 왜 찾는지 말하지 않고 선물을 준다고 썼다. 사람이 아닌 동물한테 보내는 편지가 있었는데, 치코가 그것을 라그한테 배달하라고 했다. 그 편지는 어니스트 시게튼(이 이름은 시튼이 생각난다)이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그 사람이 어렸을 때 (열두해 전) 깜박임의 날 태어난 카피카바 새끼 폰타한테 보내는 거였다. 카피카바, 이름 처음 들어본다. 꽤 커다란 동물인데 새끼는 아주 작았다. 폰타는 아주 빨리 자랐다. 얼마 뒤 마을 밭이 엉망이 되었다. 시게튼은 폰타가 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여기고,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해서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게 폰타를 숲에 데리고 가서 두고 왔다. 시게튼은 폰타가 커서 사람들을 해친다고 여기고 편지를 썼다. 폰타는 몸집이 아주 컸다. 하지만 폰타가 사람을 해친 건 아니었다. 그 숲은 갑충이 지나는 길이었다. 오래전에도 폰타가 일부러 밭을 엉망으로 만든 게 아니고 갑충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다가 그렇게 된 거였다. 시게튼은 폰타와 살려고 집을 다 정리하고 그곳에 왔다. 폰타는 시게튼을 기억했다. 폰타가 쓰러졌을 때 아주 오래전 기억이 나타났다. 해가 있는 앰버그라운드였다. 이곳에 본래는 해가 있었을까. 해가 아닐지도.

 

예전 하치노스 관장이었다가 지금은 리버스에 들어간 로이드가 라그한테 편지를 보냈다. 로이드는 라그한테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인공태양 안에 잠든 커다란 갑충이 깨어났을 때 그것을 쓰러뜨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정부는 갑충을 키우려고 인공태양을 만든 걸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리버스가 좋은 집단인지 잘 모르겠다.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람이 모였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옳을까.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데가미바치 18

  아사다 히로유키

  集英社  2014년 08월 04일

 

 

 

 

 

 

 

소중한 사람들에게

 

 

 

며칠전에 예전에 알았던 사람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찾아본 건 아니다. 실제 만난 사람도 아니고 인터넷 때문에 알게 된 사람이어서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서 가 보면 된다. 그렇게라도 남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게 있다 해도 지금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참 오랫동안 쓰는구나. 앞으로도 쓰겠지. 예전에 알았다가 어쩌다 연락이 끊겼는데, 다시 무슨 말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가끔 생각해도 다른 사람은 나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갑자기 왜 나한테 말하지?’ 하면서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예전보다 잘 살면 좋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서. 예전에는 무엇인가 꿈이라도 꾸었는데, 지금은 꿈도 없는 것 같다. 아니 아주 없는 건 아니고 이룰 수 있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작은 것을 할 뿐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 해야 할까. 책 읽고 쓰기. 올해는 밀린 만화를 봐야겠다. 이것은 ‘꿈’이라 하기 어려울까.

 

이야기가 조금 다른 데로 흘렀다. 편지 이야기를 잠깐 하려고 했는데. 이 만화가 ‘데가미바치(레터 비)’니까. 이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구나. 데가미바치는 편지 배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이때는 하치(벌)만 말해야 하나, 비라고 하니까). 앞에서 말한 예전에 알았던 사람(언니)한테 편지를 많이 썼다. 편지를 처음 받거나 가끔 받으면 그게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별 말 없고 어쩐지 어두운 말이 쓰인 편지를 자꾸 받으면 별로 기쁘지 않겠지. 내가 그렇게 어두운 말을 자주 쓴 건 아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때는 쓸쓸하기도 해서 편지를 자주 썼다(쓸쓸했다보다 심심했다고 해야겠다). 이 말은 언젠가 했을 텐데, 내가 편지를 자주 안 쓰게 된 건 책을 읽고 쓰고 난 뒤부터다. 책을 자주 읽게 됐을 때부터 그랬다면 예전에 편지 자주 안 썼을지도 모르는데. 꼭 그 편지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것 때문에 멀어진 것 같다. 내가 쓰기만 하고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 소식 없는 것을 조금 섭섭하게 생각했다. 편지보다 실제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좋겠지 하면서. 그런 생각 지금은 안 할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가보다. 똑같은 잘못을 하기 전에 알면 좀 나을지도.

 

책을 읽고 쓰면서 편지를 덜 쓰게 됐지만, 편지를 안 쓰는 건 아니다. 편지 이야기도 여러 번 하는구나. 이런 것뿐 아니라 편지도 잘 쓰고 싶다. 잘 쓰기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쓰다니. 좀더 생각하고 써야겠다. 생각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지도. 사는 곳이 가깝든 멀든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이런 말하니 편지 쓰고 싶기도 하다. 여기에 나오는 데가미바치가 편지를 배달해주면 더 좋을 텐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집배원이 그 일을 하는구나. 요즘은 편지가 줄어들어서 배달하는 보람이 없을까. 나는 편지를 자주 써서 편지가 줄었다는 실감이 없다. 내 처지에서만 생각하면 안 되겠다. 누군가 한사람한테 보내는 편지는 줄었다 해도 여러 사람한테 보내는 편지는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인터넷 공간에 글 쓰는 사람 아주 많으니까. 그것 또한 편지다. 작가가 쓴 책, 만화도 편지와 같다. 어떤 책이든 편지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쓴 사람이 무슨 말 하는 건지 더 알려고 할지도. 친구가 쓴 글은 좀 더 집중해서 보고 무슨 뜻이 있을까 알려고 하지 않는가. 책을 읽고 쓰는 건 답장(또 다른 편지)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건 어떻게 하면 잘 쓸지.

 

이제는 이 책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지난번에 나는 조금 잘못 알았다. 앰버그라운드에 오래전에 진짜 해가 있었나보다 한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해가 아니고 정령충이 갑충이 되기 전에 정령호박이 되고 빛을 낸 거였다. 지금 앰버그라운드에 있는 인공태양 안에는 그 정령호박이 있다. 그 갑충 이름은 스피리터스다. 갑충은 사람 마음을 먹이로 하는 것으로 정령호박 안에 있는 정령충이 깨어나서 되는 거다(정령충이 마음을 잃으면 갑충이 되는 거구나). 이것은 오래전에 나온 건데 잊어버렸다. 이번이 18권이니 앞에 것은 많이 잊어버릴 수밖에. 지금 앰버그라운드에 위험이 다가오려고 한다. 인공태양 속 갑충 스피리터스가 깨어나면 이 세계 사람은 모두 죽는다. 스피리터스는 엄청나게 큰 갑충이다. 여제는 잠자는 스피리터스한테 마음을 주는 장치에서 그것을 더 크게 만드는 일을 하는데, 지금 여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제는 딸만 낳았는데, 이번 여제는 라그(남자아이)를 낳았다. 진짜 사람은 아니지만. 라그는 여제가 되지 못한다. 어쩌면 라그 엄마가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서 라그가 태어난 건지도.

 

리버스를 이끄는 로이드는 라그한테 자신들이 스피리터스를 쓰러뜨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스피리터스를 쓰러뜨리려면 여제와 엄청난 수의 마음을 희생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일을 치코한테 시킬 생각이었다. 라그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기를 바라지 않았다.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면 그 방법을 쓰는 게 낫다고 본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마음을 잃고 죽었다. 정부에서는 마음이 끊기지 않는 인공정령을 만들려고 실험을 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도 많고 사람 모습이 아닌 사람도 많다. 치코도 정령이 되지 못한 사람이다. 그 연구를 하는 사람도 괴로워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건 처음 나왔다. 라그는 왼쪽눈에 있는 정령충 마음을 깨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일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였다. 지금까지 시간이 거의 천천히 흘렀는데, 이번에는 한해 가까이 흘렀다. 라그는 사람들한테 사람들 바람이 적힌 편지를 많이 모아달라고 말해두었다. 편지가 바로 마음이기도 하니까. 마지막에 라그가 나왔는데 모습이 조금 바뀌었다. 라그는 스피리터스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라그와 치코 수도 아카츠키에

 

  데가미바치(LETTER BEE) 19

  아사다 히로유키

  集英社  2015년 04월 03일

 

 

 

 

 

 

 

수도 아카츠키

 

 

 

이 만화를 보려고 했을 때 책이 여러 권 나온 뒤였다. 그때는 그때까지 나온 것을 빨리 보고 싶어서 조금 부지런히 보았는데, 언젠가부터 밀렸다. 드디어 올해 4월에 나온 19권까지 보았다. 다음 권은 겨울쯤에 나온다고 한다. 지난번에 편지 이야기를 하고 다음에는 쓸 게 없겠다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다. 이번 19권 제대로 본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 생각한 게 처음이 아니기는 하다. 책을 본 다음에 쓰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잘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거라고 해야겠다. 만화에 쓰여있는 게 아닌 내가 아는 대로 설명하는 거 말이다. 책은 자신이 보는 게 더 재미있겠지. 내가 만화를 보고 줄거리를 자세하게 쓴 건,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보면 도움이 될까해서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그것도 자꾸 쓰다보니 늘어났다. 이것은 다른 만화 이야기기도 하다. 그 만화 밀린 거 본 다음에는 어떻게 쓸지.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한데, 아직 안 본 것을 먼저 생각하다니. 중요한 것을 짧게 쓰면 좋을 텐데 어렵다.

 

앰버그라운드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이곳이 지금처럼 돌아가게 하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어쩐지 이곳에는 구조가 있고 그것을 사람이 지키는 것 같기도 하다. 비밀을 알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 사람이 제대로 나온 건 아니지만 정부 있다. 정부에 반대하는 게 ‘리버스’다. 정부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쓰는 것인가. 앰버그라운드 수도는 아카츠키다. 수도 아카츠키에는 인공태양이 있고 인공태양 안에는 갑충이 되기 전에 잠든 스피리터스가 있다. 정부에서는 인공태양이 꺼지지 않게 하려고 여제를 두고 많은 사람 마음을 더 크게 만들어서 스피리터스한테 주었다(자는데도 마음을 줘야 한다니). 여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인공태양이 깜박였다. 지난번에 인공태양이 깜박이는 간격이 줄어들고 갑충이 여기저기에 나타났다. 이 세계가 달라지려고 하는가보다. 사람 마음이 담긴 편지를 전해주는 따듯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니(전에도 한 말이구나). 세상을 구해야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거 처음부터 생각했을까.

 

자기 왼쪽눈 정령호박 속 정령을 깨우려고 한 라그는 돌아왔다. 삼백오십팔일이 지나서. 전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겉모습뿐 아니라 분위기도. 다른 사람은 라그를 반가워했지만, 저지는 인공태양이 깜박였을 때 마음을 빼앗긴 실베트를 보고도 울지 않는 라그를 보고 의심했다. 라그는 슬퍼도 기뻐도 잘 울었는데 이제는 울지 않았다. 겉으로는. 저지가 라그 진짜 마음을 알게 되는 건 헤드 비 후보를 고르는 심사 때다. 저지가 갑충한테 잡혔을 때 라그가 구했다. 그때 라그 마음이 저지한테 흘러들어갔다. 라그는 지금 정령충과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게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반은 라그 반은 정령충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정령충이 아주 다른 건 아니다. 그것은 라그의 한 부분이다. 겉으로 울지 않는 라그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실베트를 생각하고 울었다. 실베트는 어쩌다가 마음을 빼앗겼을까. 그것은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다. 실베트 마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실베트뿐 아니라 인공태양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다 마음을 되찾으면 좋겠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도 있겠지.

 

헤드 비 후보는 라그와 치코가 되었다. 리버스는 커다란 배를 만들어서 거기에 많은 사람을 태우고, 치코가 아카츠키로 가게 되자 그 배도 떠났다. 배에 탄 건 마음을 바칠 사람이다. 라그는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으려 했다. 라그 생각대로 되면 좋을 텐데, 그렇게 했을 때 라그는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정령충이 라그한테 심탄으로 라그 마음은 쓰지 마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라그는 좀 달라진 건지도.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저지와 많은 사람이 라그가 떠날 때 라그한테 편지를 주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예전에 나온 사람들이었다. 저지는 말이 아닌 편지에는 솔직하게 마음을 써서 편지가 대단하다 했다. 저지는 라그한테 쓴 편지가 처음으로 쓴 건가보다. 이 말 안 했는데 저지도 예전하고 달라졌다. 키도 크고 실력도 늘었다. 스피리터스를 쓰러뜨리는 일을 라그와 치코한테만 맡긴 건 아니다. 남은 사람도 돕기 위해 움직였다.

 

수도 아카츠키에는 사람이 지하에 있었다. 그냥 사는 게 아니고 (마음을 빼는) 기계 안에 있었다. 그 숫자는 엄청나고 모양은 벌집 같다. 여기 사람들은 아카츠키에서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이건 내가 생각한 건지도. 그런 말이 나와서 그랬는지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한 건지. 아카츠키 정보가 다른 지역 사람한테 흘러가는 일이 거의 없었던 건지도. 헤드 비는 데가미바치면 누구나 꿈꾸는 일인데, 헤드 비가 하는 일은 여제가 많은 사람 마음을 늘리면 그것을 인공태양한테 주는 거였다. 여제는 사람 마음을 크게 하는 장치다. 라그와 치코가 아카츠키에 닿고 얼마 뒤 인공태양이 꺼졌다. 아주 꺼진 건지 빛이 다시 들어올지. 어쩐지 곧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떨지. 내가 보는 얼마 안 되는 만화에서 하나라도 끝나는 게 있으면 좋겠다. 만화는 참 길게도 나오는구나. 그런 거 그리는 사람 대단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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