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르헤스 1971 Eduardo Comesaña






보르헤스의 수수한 집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의 개인 도서관이 바벨탑처럼 어마어마할 것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실제로는 수백 권의 책들만 보관했고 그것들조차 방문객들에게 선물로 줘버리곤 했다. 가끔 어떤 책들은 그에게 감상적인 혹은 미신적인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가 기억하는 몇 줄의 문장이었지, 그 문장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라는 구체적 형태는 아니었다.

나는 그와는 정반대다. (중략) 위로는 아주 중요하다. 내가 스스로를 위로할 목적으로 침대맡에 놔둔 물건은 언제나 책이었다. 나의 서재는 그 자체로 위로와 조용한 안식의 장소였다. 나는 우리가 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우리를 소유하기에 이런 안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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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가란 무엇인가 - 요사 / 보르헤스의 수수한 집
    from 에그몬트 서곡 2022-09-25 19:24 
    '작가란 무엇인가'의 요사 인터뷰에 보르헤스에 관한 부분이 재미있다. 요사가 보르헤스의 집으로 인터뷰하러 가서 집이 수수해서 놀랐다고 말했더니(벽이 벗겨지고 지붕에서 물이 새는 지경이었다고), 보르헤스가 이 말에 맘이 상해서 다음부터 냉담하게 대했다는 것. 요사가 보르헤스로부터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옥타비오 파스가 알려 주었다고. 요사와 파스는 둘 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들. 알베르토 망겔의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에도 보르헤스의 서재가 수수하다고 표현한
 
 
 
오디세이아 / 페넬로페의 꿈

망겔의 '서재를 떠나보내며'가 출처이다. 

보르헤스 1963 By Alicia D'Amico(1933-2001)


'보르헤스의 꿈 이야기'에 '두 개의 문'(아이네이스)과 '페넬로페의 꿈'(오디세이)이 나온다. 코엔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서 주인공은 율리시즈란 이름의 고양이를 맡게 되고, 뮤지션인 그가 오디션을 보러 간 시카고의 클럽 이름은 '뿔의 문'이다.  미국 시카고에 '뿔의 문'이란 이름의 공연장이 실제 있다고 한다.





오디세이아 제19권에서 페넬로페는 꿈에 대해 말하면서 그 꿈이 두 개의 문에서 온다고 말한다. 한 꿈은 은은한 유광의 상아 문을 통해서 오는데 우리를 속이는 꿈이다. 다른 한 꿈은 번쩍거리는 뿔의 문을 통해서 오는데 진실을 말하는 꿈이다. 어쩌면 작가들은 그들의 꿈(꿈을 꾸기는 했지만 지어낸 꿈)을 기록하는데 상아의 문만 사용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재주가 거짓말을 하는 데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다만 작가들의 거짓말을 가리켜 진실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 거짓말은 단지 리얼하지 않을(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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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알게 된 이후 리바는 시도 때도 없이 가정에 근거한 얘기를 늘어놓고 망상과도 같은 연애 감정을 끝없이 묘사했는데 그건 내게 일종의 자장가가 되었다. 리바는 내 불안에 자석 같은 역할을 했다. 내게서 불안을 쏙 빨아냈다. 그녀가 근처에 있으면 나는 불교의 선승과 같았다. 두려움도 욕망도 보통의 세속적 관심도 전부 초월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지금을 살 수 있었다. 과거도 현재도 없었다. 생각도 없었다. 그녀의 모든 허튼소리에 좌우되기에는 내가 너무 진화했다. 그리고 너무 냉담했다. 리바는 화를 내거나 열의를 불태우기도 하고 우울함이나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를 거부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빈 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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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구겨진 침대 시트 같은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고 오후 중반쯤이리라 추측했다. 로비에서 폭풍우에 유의하라는 수위의 인사를 무시하고 밖으로 느릿느릿 걸어나가 도로를 따라 걸었다. 보도 위와 도로 경계에 높이 쌓인 눈더미들 사이로 구불구불 나 있는 길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으나 공기는 사납고 축축했다. 눈이 더 내리면 도시 전체가 파묻힐 것 같았다. 길모퉁이에서 스웨터를 입고 씰룩거리며 걸어가는 포메라니안 한 마리와 그 돌보미 옆을 지나쳤다. 개가 다리를 하나 올리고 판판한 유리처럼 얼어붙은 보도 바닥에 오줌을 누는 모습이 보였고, 뜨거운 것이 치익 하며 얼음을 녹이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 안에 뚫린 둥근 공간에서 잠시 김이 오르다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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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조금 보았다. 음대 출신 작가, 저 세계는 어쩌면 대부분 본인을 살리에리라고 여기며 사는 건 아닐지......


이런 대사가 드라마에 나오다니, 새로 시작한 '나의 해방일지'도 엉겁결에 꽂혀 보는 중 - "나를 추앙해요." 어이 없지만 임팩트가 강하다. 여자,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남자, 자기가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추앙'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이 드라마 작가가 화제작 '나의 아저씨'를 썼다고, 그건 여태 못 봤다.

Johannes Brahms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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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04-23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해방일지 좋다고 얘기 들어서 주행준비중입니다. 나의 아저씨가 엉엉울며 본 인생드라마였어서요 . 왜그런지 손석구도 김지원도 그작가 드라마에 잘 맞을꺼같습니다.

브람스~는 음 풋풋해서 좋아했어요 .ㅎㅎ
좋아하는 드라마얘기가 나와서 말이 많았습니다.^^

서곡 2022-04-23 09:35   좋아요 1 | URL
브람스는 상심과 좌절이 초반부터 느껴져서 맘이 좀 아프기도 하네요 저는 박해영 작가 작품은 처음인데요 이게 뭐지, 어어 하며 스며들고 있어요. ㅋㅋ 나의아저씨 저도 기회되면 정주행하려고요 주말 잘 보내시길요 ~~~~

singri 2022-04-23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음대 나온 작가였었군요 전개가 세세해서 아 저기도 장난아니구나 했던 기억입니다 음 뭐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라면 상심과 좌절이 거의 다 입니다ㅎ 박은빈을 좋아해서 팬심으로 죽 본 드라마에요. 피아노 들으니 차분해집니다. 서곡님 페이퍼에 음악이 빠지면 심심. 주말 잘보내세요

서곡 2022-04-23 10:44   좋아요 1 | URL
문화재단 집안 손녀 바이올리니스트로 나온 배우도 참 멋져요 ㅋ 배우들이 연주연습 열심히 해서 작가가 인터뷰에서 대단하다고 칭찬했더라고요 / 조성진이랑 경쟁했던 케이트 리우가 당시 폴란드 현지에서 인기가 좋았대요 단정하지요 네 댓글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