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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예 남편 아내
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1월
평점 :

"피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주인 노예 남편 아내 Master Slave Husband Wife 》는 2024년 퓰리처상 전기(傳記) 부문 수상 작품으로 한 노예 부부의 탈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이 이야기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이 책이 '논픽션'이라는 점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미국 역사 속에 기록된 인물들이고, 이야기에 소개된 사건들은 그 시대의 신문 기사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이 기록하고 싶은 의미를, 소설이 말하고 싶은 생각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되새기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남북전쟁 전前의 미국 사회를, 역사를 만나본다는 즐거움에 크래프트 부부의 자유를 향한 목숨을 건 탈출 이야기의 긴장감이 더해지면서 왠지 모르게 촘촘하게 주석 하나하나 검색하며 읽어보고 싶었다. 서평을 빨리 올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출판사에는 미안했지만 천천히 만나보고 싶었다. 우일연 작가도 인사말에서 언급했듯이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라는 점이 큰 울림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무엇이 있을까? 우리를 분열의 시대로 내몰고 있는 것들이.
p.38. 어머니를 노예로 만든 남자는 엘렌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아버지이기도 했고.
유럽 전역이 혁명이라는 소용돌이로 불타오르던 1848년 미국 조지아주의 예속 피해자(노예)인 윌리엄과 엘렌 크래프트 부부는 자유를 찾아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속박'이라는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8000여 킬로미터의 대탈출을 시도한다. 백인 남자 주인으로 또 그 주인을 섬기는 노예로 위장한 부부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당시 미국에서 예속 피해자(노예)들에게 안전한 곳은 어디였을까?

한국계 미국인 우일연 작가의 친절함은 당시 부부의 탈출 경로를 그림(지도)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사진들을 짧은 설명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미국 남북 전쟁의 원인을 '노예 정책'의 찬반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깊은 속내를 알 수 있었다. 목화 재배를 위한 노동력(노예)이 필요했던 남부보다는 덜하지만 면화 산업을 위한 목화가 필요했던 북부도 노예 정책에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방보다는 유지.
p.583. 우드빌에서 활동하는 그들에 대한 반대는
이번에는 남부가 아닌 북부에서 찾아왔다.
당시 상원 의원들(다니엘 웹스터, 헨리 클레이, 존C.캘훈)의 연설을 통해서 인간(노예)이 주택처럼 담보로 사용되었던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이 재산이 되고, 재산이니 당연히 거래의 대상이 되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학교, 공공시설, 교통수단 등에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시키고, 흑인에 대한 차별을 법적으로 정당화한 '짐 크로 분리법'이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품게 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억압받았던 이들의 긴장감 넘치는 탈출 기록과 미국이라는 커다란 공동체, 연방이 형성해 가는 과정을 정말 재미나게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글이 눈길을 빼앗고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아 소설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든《주인 노예 남편 아내》와 함께 떠나는 미국 역사 여행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