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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예전에는 독서가 여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라고 한 누군가의 말처럼, 독서는 나를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이동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행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요즘은 독서가 운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일상 생활만으로는 체력이 키워지지 않기 때문에 운동으로 근육을 만들고 체력을 키우는 것처럼, 평상시에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것만으로는 언어 능력이나 사고력이 충분히 길러지지 않기 때문에 독서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소설가 이승우의 산문집 <고요한 읽기>에 따르면 독서에는 또 다른 효용이 있다. 독서는 지금과 다른 나, 더 나은 나가 되는 활동임을 넘어 진정한 나, 나도 몰랐던 나가 되는 활동이다. 젊은 시절 대부분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저자는 두 가지에 몰두했다. 하나는 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다. 오랜 세월 문학과 종교에 대해 사유하고 창작을 하면서 저자는 문학과 종교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다. "문학에 유사종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38쪽)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책이라는 물리적 대상을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읽는다. "책을 읽을 때 독자가 실제로 읽는 것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책(속 문장)은 '나'를 잘 읽도록 돕는 광학기구일 뿐이고, 그 광학기구가 있어서 나는 '나'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6-7쪽) 이 책에서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기 자신을 읽어 오면서 이정표가 되어준 작가와 책들을 소개한다. 그중에는 헤르만 헤세,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이스마일 카다레, 디노 부차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미셸 투르니에 등이 있고 성경도 빠지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은 <고요한 '읽기'>이지만 이 책에는 '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처럼 책이 책을 낳는다. 그러므로 책을 낳고(쓰고) 싶은 사람은 먼저 책을 낳을 책을 만나야(읽어야) 한다. "위대한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태어난다. 작가가 작가를 태어나게 한다. 책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들의 자궁이다. 책은 책에서 나온다." (51쪽) 쓰기가 되는 읽기를 하려면 그저 인쇄된 글자를 읽고 줄거리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그치면 안 된다. (저자처럼) 한 단어, 한 문장에 천착하며 사유를 종으로 횡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자처럼 읽고 쓸 수 있을까. 부디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