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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밀
최진영 지음 / 난다 / 2024년 10월
평점 :

어떤 소설가들은 산문 쓰기가 소설 쓰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소설은 진실을 써놓고 거짓이라고 해도 되지만, 산문은 거짓을 써놓고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소설가가 쓴 산문을 읽을 때 귀한 느낌이 든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어서 허구를 가정하는 장르를 택한 사람들이 허구를 가정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쓰는 진실이라니. 소설가를 흠모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떤 비밀>은 2024년에 출간된 최진영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책이 두툼해서 다 읽기까지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글 한 편 한 편이 편지 형식이라서 생각보다 금방 읽었다. 구성도 저자가 집필 당시 거주하던 제주의 24절기를 따라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마치 내가 제주에서 한 해를 보내는 느낌마저 들었다. 글의 주제는 사랑이 압도적으로 많다. 로맨스를 뜻하는, 좁은 의미의 사랑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뮤지션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사랑을 포괄한다.
그중에 나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나눈 사랑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자처럼 나도 그 시절 친구들과 무시로 긴 편지를 주고받고 이유 없이 선물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만나고 싶어했다. 먼 길을 걸어 친구 집까지 바래다주고 반대로 친구가 우리 집까지 바래다 주는 일도 자주 있었다. 지금은 애인에게도 좀처럼 쏟지 못하는 정성을 그때는 친구들에게 열심히 쏟았다. 그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중에 지금도 연락이 닿는 친구는, 아쉽게도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면 그 시절 우리가 했던 일들이 모두 무의미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때 내가 친구들에게 받은 사랑과 그들에게 준 사랑으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듣고, 재미있는 글은 나눠 읽었던 그 시절이 즐거웠기 때문에 지금도 음악을 사랑하고 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친구뿐 아니라 그동안 살면서 가족에게, 동료에게, 연인에게 받은 사랑도 크든 작든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 어려운 사랑보다 쉬운 미움에 골몰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