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 최고the Best가 아니라, 유일함the Only으로 승부하라!
김정태 지음 / 갤리온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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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스펙은 '지식'에 관한 것으로 '행동'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 사람이 진정 어떠한 사람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저는 어디를 졸업했고, 현재 하는 일은 무엇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일 뿐이다. 여기에 감정을 덧입히면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장면을 영화 보듯 소파에 앉아 지켜봤던 적이 있어요. 그때 난민의 어려움을 처음으로 접했고, 난민을 돕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롤 모델을 찾기가 힘들고, 이해해주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죠. 난민 NGO에서 난민과 관련된 강좌를 들었고, 졸업하고 현재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 중동 지역에 중고 제품을 수출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소개하거나, 면접에서 답변을 한다면 십중팔구 문전박대를 당할 것이다. 하지만 '영웅의 사이클'과 '거룩한 불만족' 그리고 흐름을 이어가는 일련의 '행동'을 포함한 스토리로 다가갈 때, 집으로 초대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p.39)



한동안 스펙이 화제였다가 작년까지만 해도 스토리, 스토리텔링 얘기를 어디가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쏙 들어갔다. 그렇다면 요즘 최고의 화두는 무엇인가? 내 생각엔 '멘토'인 것 같다.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서도 많이 듣고, 출판계에서는 유독 자기계발서 제목 중에 '멘토'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책이 자주 눈에 띈다. 스펙, 스토리만으로도 부족해서 이젠 타인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는, 어쩌면 이제는 너무 식상해져버린 제목이 붙은 책을 읽었다. 내용도 식상하냐고? 음... 스펙을 원하는 사람이 보면 새로울지 모르지만, 스토리를 원하는 사람이 보기엔 속은 기분이었다. '스토리는 기회를 부른다', '업이 직을 가져다 준다', '다수가 선택한 길이라고 안전하란 법은 없다' 등등 메시지는 멋지다. 하지만 문장을 곱씹어 읽어보자. 스토리는 수단일뿐이고, 기회, 직(職), 안전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스펙을 쌓는 것과 다를 게 뭔가.

 

저자가 진정으로 스토리가 스펙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면, 나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공 사례가 여러번 나온다. 저자는 이렇다할 자격증이나 소위 '빽'도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국제기구(유엔 산하기구 유엔 거버넌스 센터)에 취업했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청년역량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와 워크샵을 진행하고 사회적 활동도 하며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가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뭔지 고백한 대목들은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내 주변에 이런 선배, 이런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저자는 '멘토'를 테마로 다시 책을 내는 것도 좋을듯...)

 

이런 저자의 '스토리'를 그대로, 여실히 전달하기만 했더라도 저자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그저 '사례'로 처리했기 때문에 여느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책이 되어버렸다. 감동도, 자극도 덜하다. 그러다보니 외부에서 기회를 찾지말고 내면을 관찰하여 자신만의 체험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귀한 메시지도 빛을 잃고, 결국 스펙을 '스토리'라는 말로 바꾼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만 낳은 것 같다.
 
  

스토리는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스토리를 수단으로 보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다. 사랑도, 청춘도, 그리고 이제는 스토리마저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시대에 나는 스토리를 목적으로 사랑하니 외롭고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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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London Voice - 삶은 여행… 두 번째 이야기
이상은 지음, 신정아 사진 / 북노마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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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은이 좋다. 이 분 음악을 많이 들어본 것도 아니고, 88년 강변가요제 대상곡인 '담다디'는 그 때 고작 두 살이었던지라 잘 알지도 못한다. 맨처음 좋아하게 된 노래는 아마도 <비밀의 화원>. 스무살 무렵 교정하느라 한창 치과에 다녔는데, 치과 안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몇 번이나 이 노래가 나왔다. 우연치고는 너무 자주 나와서 '이 노래가 나랑 무슨 인연이 있나?' 싶었을 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노래도 많이 나왔는데 내가 유독 이 노래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어 한동안 참 많이도 들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 서정적인 가사가 좋았다.

 

이상은이라는 뮤지션을 좋아하게 된 건 그보다 후의 일이다. 집에 있다 보면 적적해서 배경음악처럼 라디오를 틀어 놓곤 하는데, 어느날 주파수를 돌리다가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라는 방송이 잡혔다. 그 때가 마침 새로운 음악 없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좋아하는 올드팝부터 최신 외국 음악, 세계음악 등 다양한 노래가 나와서 좋았다. 진행스타일도 좋았다. 말투는 털털하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느낌은 조심스럽고 차분했다. 나도 그녀 나이쯤 되면 이렇게 때묻지 않은 느낌으로 음악 얘기, 사는 얘기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London voice는 딱 이상은 같은 느낌의 여행기다. 작은 것 하나에 유난히 감동하기도 하고, 오노 요코처럼 그녀가 무진장 좋아하는 화두에는 열정적으로 달려든 여행의 기록들이다. 그래서 그녀의 팬으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읽고나니 그녀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런던은 이상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도시라고 한다. 8년 전 미술을 배우는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가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 후 도망치듯 떠났던, 아픈 추억이 서려있는 땅. 그래서인지 첫부분부터 다시 런던땅을 밟는 설렘, 과거의 자신과 재회하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찾은 런던은, 전처럼 춥고 싸늘하고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는 예술의 의미를 알고 싶어 번민하는 처지여서 도시마저도 스산하고 쓸쓸하게 보였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보헤미안 뮤지션이자 자유인이기 때문에 보는 느낌도 달라졌나보다. 만약 지금 내가 런던 땅을 밟는다면 어떤 느낌으로 보일까? 여행은 외부의 것이 아닌, 내 안의 것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녀의 경우를 보니 정말 맞는 것 같다.

 

 

8년 후 다시 런던을 찾아야 할지 꽤 많은 고민을 했다. 8년 전 아쉽게 떠나왔던 곳이기에 꼭 한번 다시 오고는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사랑에 다친 사람이 다음 사람을 겁내듯이, 또 같은 상처를 입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떠났다. 다행이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하기만 했던 내가 편안하게 웃을 줄도 알고, 무엇보다 자주 웃고 있으니까. 내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변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 확신을 믿었고, 난 지금 런던이다. (pp.102-3)


여행지뿐 아니라 그곳의 음악, 미술, 그리고 그녀 주변의 이야기 등등 많은 주제가 화제로 등장한다. 음악과 미술은 그녀의 전문분야니까 빼놓을 수 없는 주제.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을 비롯하여 그녀 주변사람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부분은 살짝 놀랐다. 하긴 나도 어떤 그림이나 어떤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녀에게도 그런 추억들이 있을터. 그때만큼은 아티스트로서의 옷을 벗고, 주변인들에게 편안하게 이런저런 바람들을 늘어놓는 느낌이 편하고 재미있었다.

 

영국 미술과 음악의 좋은 점, 우리나라 인디씬에 대한 기대, 더욱 우호적이고 풍성한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소망 등등, 단순히 여행의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세심한 감성과 독특한 관점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에세이처럼 쓴 부분도 좋았다. 다른 이가 하면 빈말 같고 듣기 좋은 말로만 들릴 것도, 이상은은 몸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와닿았다. 왜 다 똑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의 어른이 되는 걸까? 난 남들에 비해 얼마나 다르고 개성적으로 살고 있을까? 그녀를 보면 이런 내면의 소리(voice)들이 날 파고들고 반성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밑줄 한 번 긋고 반성하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책 (일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영국의 풍부한 상식)에서 인상 깊었던 건, 영국에서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이 '돈'이 아닌 성격과 취미, 취향, 흥미라는 것이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말을 전적으로 신봉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와 직업을 뛰어 넘어 누구나 자신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참, 이런 대목도 있었다. (일본이나 우리처럼) "나는 어떤 회사에 다니는 누구입니다" 식으로 자신의 학력과 경제력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처럼 자신의 '계급'을 여전히 강조하는 사회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나는 남미에서 수입한 유기농으로 재배한 커피를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자기소개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예찬하는 부분이 참 끌렸던 게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도 똑같다. 내 이야기를 음악에 담고, 은근슬쩍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직접적으로 내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아니지만, 가사 하나하나에서 내가 느껴지는 음악이 필요했다. 그런 음악이 좋았다. 내 작은 일부라도 음악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음악을 하는 이유다. 세상이 정해 놓은 '영토'에서 아등바등하며 살기보다 오로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네 삶도 한층 풍성해지리라.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pp.116-7)


나의 하찮은 재주로 어떤 글이야 쓰기가 쉽겠냐마는, 여행기는 감상을 글로 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이 책도 읽은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감상문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른다. 뭘 알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감상을 남기는 건데도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상은을 보면 언제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멋지다. 나도 나만의 삶, 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그녀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이상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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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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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아는 자만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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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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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은 원래 내가 읽으려고 했던 책은 아니다. 정확히는, 순전히 내 실수 때문에 읽게 되었다.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쓴 <예술가의 방>이라는 책이 있다. 언젠가 서점에서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억해두었다가 며칠 전에 마침 도서관에 있기에 빌렸는데, 아뿔싸! 잘못 빌렸다. 출판사도 똑같고 제목도 비슷한데, 이 책은 '예술가'가 아니라 <작가의 방>이었네.

 

... 뭐, 이것도 운명이려니.  

그런데 원래 실수나 우연에서 비롯되는 일 중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이 많다고 하듯이, 이 책도 행운 같은 책이었다. 내용도 좋았고, 국내 주요 문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게 되어 앞으로 책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작가의 방>은 한국일보 수속논설위원 박래부 기자가 여섯 명의 문인의 방을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여섯 문인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이라니...!!! 인터뷰를 한분씩 따로 엮어도 책으로서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책에서 다 만나게 되다니 사치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이문열의 서재는 머리 싸매고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자신의 새로운 글을 길어 올리는 창작의 산실이다. 또한 지칠 때 차 마시며 쉬는 곳이기도 하며, 쓰임새에서는 또 다른 사적 열망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집필용 책상 옆에 우스운 인연으로 갖게 된 검도용 죽도 한 자루가 놓여 있기도 한 그의 큰 서재는, 그 자체가 평생 추구해 온 탈이념적, 복고주의적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혹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딧세이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문열의 방 p.13)

 

주변 환경과 건물은 밝고 화사하건만, 자폐아의 방 같다는 그의 서재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처럼 유독 폐쇄적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하지 않은 창조와 창작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 또한 그의 방이기도 하다. (김영하의 방 p.63)


예술가의 방이든 작가의 방이든, 처음에 누군가의 방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은 방도 대단할까, 어떤 은밀하고 사적인 비밀이 있을까 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궁금증 말이다. 확실히 작가들의 방은 뭔가 달랐다.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장서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과 사진, 장식품들... 하나하나 특별하고 개성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방들은, 정확히는 서재 내지는 작업실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한, 은밀하고 사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조금씩 무너졌다. 뭐, 애초에 그들이 남들과 똑같이 밥 먹고 옷 갈아 입는 공간을 보고 싶다는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지만. (대체 그걸 봐서 어쩌겠느냐...)

 

오히려 이 책은 슬프고 무겁다. '작가의 방'이라는 제목은 너무 신변잡기적이어서, 마치 저자가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여기 나온 작가들의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다들 전쟁, 민주화 등 시대로부터 비롯된 깊은 아픔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마치 그 아픔과 고통을 토해내고 분출하듯이 작가들은 글을 썼고, 그런 그들의 산고를 지켜본 것이 바로 그들의 방이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엄숙해지고, '작가의 방'을 넘어 '작가의 삶', '작가의 숙명'이라는 주제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직 생각이 다 여물지 못해 글로 풀어쓸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아픔과 시대적인 비극을 거름 삼아 작품이라는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감성과 사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작가의 삶이고 숙명이 아닐까.

 

그들(작가들)은 책을 거름 삼아 또 다른 책을 생산해 내고 있었고, 그들의 서재는 고서점 같기도 하고 과거의 온갖 정신이 누워 있는 박물관 같기도 했다. 그 방은 과거의 무덤이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신생아실이었다. (글쓴이의 말 p.5) 


여섯 작가 중 나는 신경숙, 공지영, 강은교 같은 여성 작가들 얘기가 더 좋았다. 내가 여자라서 우대하는 게 아니라, 일단 이 분들이 소개한 방이 내가 기대한 '방'의 개념에 더 가까웠고, (김영하는 대학교에 있는 개인 연구실, 김용택은 본가 서재를 소개했다) 특히 신경숙의 <외딴 방>에 얽힌 이야기는, 저자가 신경숙을 취재하고 싶어서 이 책을 기획한 게 아닐까 싶을만큼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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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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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식탁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갖가지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흰 벽, 수공 소나무 캐비닛, 조리대, 주방 기구들, 장식장에 깔끔하게 쌓인 흰 웨지우드 접시들, 메모판에 핀으로 꽂은 가족사진, 냉장고를 장식한 학교 알림장과 애덤의 그림. 그 모든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물질적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가짜일 뿐이고, 언젠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등에 짊어진 건 그 물질적 안정의 누더기뿐이라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언젠가는 그 모든 걸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p.251)

 

 

며칠전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다 읽고도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해되지 않아서 어제 한 번 다시 읽었다. 벤이 변호사로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다가 우연한 사건으로 인생이 역전되는 부분까지는 꿈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는 책인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가진건 꿈뿐인 처지로서, 현실에 굴복하고 꿈을 포기한 벤이 파멸하기를 은근슬쩍 바랐다. 마치 벤이, 비록 아무 가진 것 없어도 '사진가'로서의 자존심은 지키며 사는 게리를 비웃고 미워했듯이 말이다.

 

어쩌면 삶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외줄타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꿈쪽으로 몸이 쏠려 넘어진 사람을 조롱하고, 현실적이다 못해 속물이 되어버린 사람을 경멸하는 것이다. 사실 가장 어리석고 멍청한 건 꿈과 현실, 어느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외줄을 타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빅 픽처>의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는 조국인 미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한다. 책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는 미국 중심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이 반미 성향이 높은 프랑스인들의 취향을 자극한 모양이다.

 

뜬금없이 웬 미국을 비롯한 현대 문명의 본질 얘기를 꺼냈느냐 하면 ... 미국 문화의 핵심이라고 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꿈'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로 바꾸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헐리웃 영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인데, 그네들의 꿈은 아주 간단하다. 부와 명예를 얻거나, 여자라면 멋진 부자와 결혼하기. 그리고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꿈을 그러한 물질적인 개념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벤도 똑같다. 로스쿨에 들어가고, 월가의 변호사가 되고,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고, 상류층만이 사는 마을로 이사를 가는게 곧 자기 꿈인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깨닫게 된다. 그것은 성공한 변호사이자 중산층 가장의 삶일뿐, 자기 자신은 한번도 그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는걸.

 

 

그러나 이 책을 두번째 읽은 지금은, 무엇보다도 저자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 후회하고 급기야는 자기혐오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꿈과 현실 사이의 외줄타기는, 어쩌면 나같은 범인(凡人)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숙명 같은 것. 어떤 학교에 갈 것인가, 무슨 전공을 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하는 굵직한 결정부터 위시리스트에 담긴 물건을 지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사소한 결정까지 등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 끝에 내린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행여 후회하고 되돌리려는 순간, 인생은 절벽 아래로 쳐박힌다.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진정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이 책의 프랑스 판 소설 제목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라고 한다. 자신의 삶이라. 어젯밤 침대에 누워 내 인생을 누군가와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와 바꿀지 생각해보았다. 다행인지, 아니면 무슨 자신감인지 달리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내 삶에 꽤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by 이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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