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리코더 - 못하는데 어째서 이리도 즐거울까 아무튼 시리즈 76
황선우 지음 / 코난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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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마 등쌀에 못 이겨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배워서 성인이 된 후 주변 사람들이 이런저런 악기를 취미로 배울 때에도 별다른 흥미나 관심을 못 느꼈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악기 연주에 관심을 가지게 한 사람이 <아무튼, 리코더>의 저자 황선우 작가다. 황선우 작가는 음악가도, 음악 전공자도 아니다. 영문과 출신에 잡지 에디터를 거쳐 작가, 팟캐스트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오랫동안 음악은 듣는 것이지 직접 연주하는 것,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2017년 크리스마스에 동거인 김하나 작가에게 리코더를 선물 받고 팬데믹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연습하면서 그의 음악 생활이 달라졌다.


황선우 작가의 책 <아무튼, 리코더>에는 그가 리코더를 불게 된 계기와 리코더로 인해 달라진 일상, 새롭게 발견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팬데믹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심심함을 달래려고 황선우 작가는 리코더를, 김하나 작가는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놀았다. 그러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기능을 켜고 연주하면서 '서울사이버음악대(서사음)'이 탄생했고, 점점 북토크나 동네서점 이벤트에 불려 다니게 되었다. 최근에는 여둘톡 3주년 행사에서 800명을 대상으로 연주를 선보였다. 여기까지는 황선우 작가의 팬이자 여둘톡 애청자로서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 리코더 실력 향상을 위해 따로 수업도 받고 한 번의 연주를 위해 백 번을 채울 정도로 연습하신 줄은 몰랐다. 역시 대단...!


리코더를 불기 시작하면서 리코더를 불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모습도 흥미로웠지만, 자기 자신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저자에게는 음과 음 사이의 거리와 관계로 계이름을 파악하는 능력, 즉 '상대음감'이 있다. 리코더를 본격적으로 불기 전에는 자신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고, 있다 한들 쓸 데도 없었다. 저자가 리코더를 통해 있는지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것처럼, 어쩌면 나도 뭔가 새로운 걸 해보면 숨어 있던 재능을 찾게 될지도...?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못해도 즐거운 게 무엇인지부터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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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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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살면서 가볼 일이 있을까 싶었던 지역 중 하나다. 소설가 김금희의 남극 체류기 <나의 폴라 일지>를 읽으니 남극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갈 수 있다고 해서 가고 싶어 할 만한 곳도 아니다. 알다시피 남극은 지구 상에서 인간과 문명의 영향을 가장 덜 받은 지역으로 환경 및 생태계 차원에서 보호할 가치가 높다. 그래서 남극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갈 수 있고, 보통 과학적 발견이나 연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갈 자격을 얻는다. 운좋게 선발이 되어도 해상생존교육, 기초안전교육 등을 통과해야 하는데, 부산까지 가서 1박 2일 동안 수중 훈련을 받는다니 난 못한다...


어떻게 남극 체류 허가를 받고 온갖 교육과 훈련을 통과한 다음 긴 비행 끝에 남극에 도착해도 '내가 남극에 머무를 만한 인간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남극과 남극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입장에서 인간은 남극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균, 식물, 벌레 이동의 '매개자'이다. 남극에 체류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치약, 샴푸, 화장품, 샤워젤 같은 일상용품이 남극의 미세플라스틱 농도를 높이고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남극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쓰레기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며 자신들이 남극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걸 내가 해낼 수 있을 리가...


그러나 오래 전부터 남극에 가고 싶었던 저자는 남극에 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고, 결국 한겨레 특별 취재기자 자격을 얻어서 남극에 한 달 간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남극에 가기 위한 교육과 훈련도 통과하고 건강검진도 받고. 마침내 2024년 2월 1일 남극에 도착한 저자가 남극 세종 기지 안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 입실했을 때에는 내가 다 뿌듯했다. 살면서 많은 방을 가졌지만 이 방을 가장 자랑스러워 하리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기지에서 생활하는 연구원, 대원들을 인터뷰하고 기지 주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관찰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창문을 열면 펭귄이 보이고 고래가 보이는 나날. 상상만 해도 흥분된다.


문체의 영향도 있겠지만, 전에 읽은 김금희 작가의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와 구성이나 전개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공간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역할로 일정 기간 동안 일하게 된 주인공이 그곳에서 만난 다른 분야의 직업인들과 엮이며 이런저런 희로애락을 겪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그 공간에 오고 싶어 했던(와야만 했던) 이유를 깨닫는 줄거리(?)라는 점이 그렇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도 그렇지만 <나의 폴라 일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언젠가 출간될 남극 배경의 소설도 기대된다. 그때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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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돌파 그렌라간 1~10 박스 세트 - 전10권 - 완결
모리 코타로 지음, 나카시마 카즈키 감수, GAINAX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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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돌파 그렌라간>은 2007년에 공개되어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의 만화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대작을 만든 가이낙스가 11년의 공백을 깨고 공개한 만화였다고. 이 만화의 첫 정식 한국어판 코믹스가 마침내 대원씨아이에서 출시되었다. 그것도 무려 단행본 총 10권을 특별 제작 박스에 소장할 수 있는 박스판으로. ​ ​ ​ ​ 






노란색과 검정색의 대비가 분명하고 로봇 만화답게 메카닉이 연상되는 이미지가 디자인된 박스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단행본 표지 일러스트와도 잘 어울린다. 총 10권인 단행본은 표지 일러스트가 세로가 아닌 가로로 인쇄되어 있어서 신선하고 특별한 느낌을 준다. 각 인물의 이미지를 크게 볼 수 있는 점도 좋다. 가이낙스 애니메이션 하면 폰트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 만화의 표지도 폰트를 잘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 ​ ​ ​ ​ 






이 만화는 지진을 피해 지하 세계에 살면서 땅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7살 때 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그후로 계속 지하 세계에서 살면서 굴착꾼으로 일해온 시몬은 형제처럼 지내는 '그렌단'의 리더 카미나로부터 지상에는 벽도 천장도 없으니 얼른 나가서 모험을 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의 말을 따를지 말지 고민하며 언제나처럼 땅을 파던 시몬은 땅에 묻혀 있는 거대한 금속 얼굴을 발견하고, 이 사실을 카미나에게 알려주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이제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천장이 무너지고 금속 얼굴의 전체 실루엣이 드러난다. ​ 






지진이 두려워서 땅속에 살고 있던 주인공이 공포와 불안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성장 만화로서의 매력이 큰 작품 같다. 주역 메카닉인 그렌라간의 비주얼도 멋있고, 함께 등장한 여자 캐릭터를 시작으로 줄줄이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도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작화도 그렇고 설정이나 내용도 90년대-2000년대 만화 느낌이 낭낭해서 그 때 그 시절 만화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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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 마스다 미리의 좌충우돌 여행기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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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로 읽은 책을 오랜만에 한국어판으로 다시 읽었다. 한국에는 2021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원서는 2011년에 출간되었다. 그만큼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아마도 지금의 마스다 미리 작가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행동, 쓰지 않았을 것 같은 문장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불쾌했다거나 실망했다는 건 전혀 아니고, 그동안 여자 혼자 여행한 이야기로 에세이를 몇 권이나 낸 저자가 삼십 대 시절에는 혼자서 국내 여행조차 해본 적이 별로 없고,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남들이 이상하게 볼 거라는 편견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거나 하고 싶은 체험을 포기한 적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른세 살 끝 무렵부터 서른일곱 살까지 일본의 47도도부현을 한 달에 한 곳씩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일본에는 도도부현이 47개나 있는데 전부 안 가보면 아쉽잖아?'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여행 초반에는 지역 명물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먹느라 고생했고, 혼자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때라서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 외로웠다. 가장 놀란 건 비용이다. 여행에 쓴 돈을 모두 계산해 보니 무려 220만 엔. 원화로 약 2천만 원이 넘는다. 원흉(?)은 예상대로 교통비다. 여행지마다 '이번 여행에서 쓴 돈'이 정리되어 있는데 이 항목을 보면 교통비 비중이 가장 높다. (일본) 국내 항공편 비용이 몇십만 원 이러니 한국 갔다오는 게 차라리 싸다는 말이 나오지...


그렇게 비싼 교통비를 치르면서 도착한 여행지에서 하는 일이 산책하고 밥 먹는 게 고작이라서 심심하다, 아쉽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평소에 하지 않는 새로운 일, 특별한 일을 하는 여행보다 평소에 하는 일을 새로운 장소에서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 이를테면 낯선 도시의 서점을 구경한다든지 강변을 걷는다든지. 그러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후 서점에 가거나 강변을 걸을 때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원서를 구입한 게 언젠가의 도쿄 여행에서였는데, 책만 봐도 그 때의 날씨와 서점의 풍경, 분위기 등이 떠오른다. 원서 사러 일본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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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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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볼턴. 정세랑 작가의 추천으로 알게 된 작가로 기억한다. 국내에 출간된 샤론 볼턴의 책은 총 3권인데, 그중에 <희생양의 섬>을 먼저 읽었고 이번에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읽었다. <희생양의 섬>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재미있었다. 주인공의 직업이 형사나 탐정이 아니라 수의사라서 동물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이야기 전개도 추리 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의 전형적인 전개로부터 약간 벗어나 있어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영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클래라 베닝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웃에 사는 여성으로,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는 딸의 침대 위에 독사로 보이는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는 제보였다. 서둘러 달려간 클래라는 무사히 뱀을 구출하고 아기를 구하는데, 그날 하루 동안 뱀과 관련된 비슷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난다. 날씨가 더워져서 뱀이 많이 출몰한 것 같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지만, 수의사이기 이전에 파충류 전공자이기도 한 클래라는 평범한 시골 마을에서 보기 힘든 종류의 뱀이 나온 걸 보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대량의 뱀을 푼 것 같다고 의심한다. 


이 소설은 여러 장르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먼저 이 소설은 평범한 수의사가 뱀 때문에 피해를 입은 환자의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 탐정이 되어 범인을 찾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코지 미스터리'로 분류될 만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낡은 저택이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고딕 미스터리'로 분류될 수 있다. 얼굴의 화상 때문에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어 온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성장 서사의 요소도 있고,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명의 남성과 '썸'을 탄다는 점에서 로맨스 서사의 요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에서 종교적인 면이 흥미로웠다. 뱀은 구약 성경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로,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보통 악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떤 교파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영적인 깨달음, 혹은 지식을 상징한다고 보고 뱀을 선악과 나무의 수호자, 지식의 수호자, 이해와 계몽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426쪽 참조). 뱀을 사악하게 여기는 건 유대교와 기독교가 지배하는 서구 문명뿐이고, 다른 문화권, 이를테면 힌두, 그리스, 노르웨이,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에서는 뱀이 지혜와 불멸, 생명과 다산, 지식을 나타낸다는 내용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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