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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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밖에 나오는 것보다 교도소 안에 있는 편이 차라리 나아요.

그곳엔 친구들이 다 있거든요. 누가 나를 판단하지도 않고요. 내 범죄 기록에 대해서 욕하지도 않고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에요. 하루 종일 운동하거나, 아니면 작업장에서 일하지요.

돈은 아주 조금밖에 못 벌지만 먹고 잘 수 있고, 게다가 빨래까지 해주잖아요.  

텔레비전도 있고, 어학과 컴퓨터 수업도 받게 해주고요.

밖에 나오면 일자리도 없죠, 얻어 걸리는 숙소라곤 더럽고 누추하죠, 놀림받죠,

남들 시선이 두려워요. 그래서 어느새 다시 구걸을 하게 되는 거에요......"

 

올리비에 로뱅은 호되게 한 방 맞은 것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람들은 자유로운 상태를 좋아하지 않아...... 자유는 고뇌인거야.  

사람들은 충분한 자유가 없다고 불평하기나 좋아하지.

하지만 막상 자유를 주면 어찌할 바를 몰라. 그래서 자유를 박탈하겠다고......  

깜짝 놀랄 만한 식으로 이런 제안을 받으면 그들은 동의하고, 마침내 자유의 중압감에서 놓여나 안심을 하지.>

 

그는 혼자 생각했다. 그는 깊숙이 눌러앉았다.

로마가 공화정이었을 때 황제가 되려는 카이사르에게 로마인들이 어떤 환호를 보냈던가, 그 기억이 났다.

프랑스 사람들이 어떻게 투표로 나폴레옹 3세를 제위에 앉혔는지도,  

일본 여행 갔을 때 일본인이 털어놓던 말도 생각났다.

<유권자들이 민주적으로 뽑은 사람과, 태양의 자손인 천황의 아들, 둘 중 어느 쪽이 낫죠?>

 
   

 
 

이제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이번에 읽은 <파라다이스>가 가장 좋았다.

너무 자신 있게 얘기했나? 정정한다. 내 취향에 가장 맞는 책이었다.

 

'있을 법한 추억', '있을 법한 미래'라는 작은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총 두 권에 실린 열일곱 편의 단편들은 모두 베르베르의 상상력 속에서 탄생한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1권을 보자. <환경파괴범은 모두 교수형>, <꽃 섹스>, <영화의 거장> 등등 제목만 보아도 웃음이 큭큭 난다.

환경파괴범은 모두 교수형이라니!

본문의 내용은 더 웃기다. 미래에는 환경 오염을 우려하여 전력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운행시키려면 장정들이 도르래를 돌려야 하고,  

텔레비전 뉴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 연극처럼 상'연'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볼까. 불과 몇 십년 전에 존재했던 초기 형태의 엘리베이터는 전력이 아닌 인력으로 운행되었고,

텔레비전, 컴퓨터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극, 방송의 시초는 연극이다.

기술을 가동시킬 에너지원이 없다면 그 때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2권은 <당신 마음에 들 겁니다>, <상표 전쟁> 등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미국화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본다는 점은 여느 프랑스 작가 내지는 유럽 출신 작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상상 '이라는 형식을 빌려서인지 비극적인 분위기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2권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는 <농담이 태어나는 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가들이 써주는 농담을 자신이 쓴 것 마냥 연기하며 살아온 유명 코미디언이 유머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내용인데,

오와라이 팬한테 '코미디언의 고뇌'라는 주제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또 있을까.

요시모토 직원이 이 책을 읽고 제안서를 올려서 판권을 사서 직접 영화하하면 재밌을 것 같다.

주인공은.... 고뇌에 찬 일본 최고 게닌 역할이니까 역시 맛쨩이 어울리려나.

하지만 프랑스와 일본의 거리와 문화 차이 등등을 고려했을 때, 소망은 소망일뿐.

맛쨩이 다른 극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더 빠르겠다. 에휴...

 

 

 

그래도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기분 좋다.

이것이 바로 상상의 힘,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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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창조자 - 똑같이 주어진 시간, 그러나 다르게 사는 사람들
로라 밴더캠 지음, 송연석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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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열심히 일할 용의가 있고 또 주어진 업무를 괜찮게 해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그 이상이 되기 어렵다.

주어진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딱 들여야 할 시간만 투자하고,  

즉각적으로 뻔히 보상받을 수 있는 일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집에 와서는 TV에서 뭘 하고 있는지 등 일과 무관한 것들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최근 메릴랜드 대학교의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불행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보다 20퍼센트 이상 TV를 더 많이 본다고 한다.

자신의 불행을 잊게 해줄 도피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인적인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pp.100-1)

 
   


 

학교도, 회사도 안 다니는데 뭐 그리 바쁘냐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

그러면 하고 싶은 공부도 맘껏 하고, 책도 하루에 두 권은 읽고, 봐야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실컷 볼 수 있을텐데.

 

<시간창조자>의 저자 로라 밴더캠은 다르게 말한다. 일주일동안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총 168시간.

이를 꼼꼼히 분석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창조'하면서 살 수 있다고 한다.

있는 시간도 부족한데, 새롭게 시간을 만들 수 있다니!

늘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허둥지둥대며 사는 사람으로서 솔깃하지 않을 수 있을쏘냐.

 

 

 

 시간 창조 과정 8단계

 

1. 시간을 기록한다.

2. 나만의 100가지 꿈 목록을 만든다.

3. 나의 핵심 역량을 확인한다.

4.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

5. 핵심 역량 시간을 블록 단위로 뭉쳐 168시간을 채운다.

6. 나머지는 무시하고 최소화하고 아웃소싱한다.

7. 자투리 시간의 기쁨을 누려본다.

8. 필요할 때마다 적응력을 키운다.
 

 

 

저자가 시간을 창조하기 위해 제시한 방법들은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시간을 기록하는 건 대학교 때 경력계발센터에서 주최한 프로그램에서 시켜서 해본 적이 있고,

나만의 100가지 꿈 목록을 만드는 건 김수영 님의 책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에서 본 적이 있고,

핵심 역량을 파악하는 것은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에서 진작에 해봤다.

(※ 참고로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을 구입하면 강점을 찾을 수 있는 온라인 테스트 응시권이 따라온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과정을 겪고 저런 책들을 읽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 책이 필요하다는 말도 된다.

꿈 목록은 - 아직 오십 개도 못 채웠지만 - 틈틈이 작성하고 있고,

핵심 역량도 - 탐구심, 사고, 책임, 학습자, 질서 등이 나왔다 - 이미 파악했다.

남은 건 저자의 설명을 따라 핵심 역량 시간을 뭉치고 나머지는 비우며 시간을 관리하는 것뿐! 오예!!

 

그 결과를 소개해보자면...

 

먼저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취미 생활을 직업과 관련되는 쪽으로 더욱 연계해나갈 생각이다.

나의 취미는 독서, 그리고 외국 영상 보기.

그러므로 전문분야와 관련이 있는 역사나 국제정치, 외국어, 경제경영 관련 도서를 집중적으로 읽고,

관련된 주제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있으면 다른 것보다도 먼저 볼 생각이다.

앞으로는 관련 분야의 책만 엄선하여 구입하고, 관련 없는 분야의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겠다.

 

저자의 경우 작가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자기 글을 분석해달라고 의뢰하거나 직접 분석하고,

의뢰받은 글이 없을 때에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거나 일기를 쓰거나 소설에 활용할 장면들을 스케치했다고 한다. (p.141)

시도 때도 없이 페이스북을 확인하거나 관심 없는 분야의 글을 쓰는 것보다는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이 편이 훨씬 낫다고 하는데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 지금 하는 일이 내적 동기 요인들을 활용하는가(어렸을 때 좋아했다거나 공짜로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 지금 하는 일이 합리적인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가?

* 주기적으로 내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볼 정도로 난이도가 있는 일이 생기는가?

* 작업 환경이나 조직, 동료 직원들이 내가 최고의 능률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 누군가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을 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지 말아달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마지막 질문이 중요하다.

만약 누군가가 이 일을 못 하게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나는 자신있다. 먼 길을 돌아서 선택한 길이고, 하루하루가 충만하다고 느낄만큼 지금의 일(공부)을 하는 순간이 즐겁다.

비록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고, 남들보다 돈을 덜 번다고 해도,

다른 일을 할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기에 지금 하는 공부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지금 당장은 뜻이 확고하지만, 언젠가 초심을 잃고 방황할 때 꼭 위의 질문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야지.

그리고 시간관리도 효율적으로 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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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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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오프라 윈프리 쇼>가 25년의 긴 역사를 뒤로 하고 종영되었다.

방송을 제대로 본 적은 몇 번 없지만,

해당 방송사 뉴스를 즐겨보는터라 종영 며칠전부터  <오프라 윈프리 쇼>에 관한 소식을 본의아니게 많이 들었다.

25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챙겨보았다는 사람, 전부 녹화까지 해두었다는 사람 등등

쇼의 역사와 인기 만큼이나 쇼를 사랑하고 쇼의 종영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그런데 몇몇 시청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송사 홈페이지에 마련된 게시판을 보니 간혹 쇼의 종영을 축하하는(?) 글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오프라 윈프리 쇼가 방영된 25년 동안 왜 미국인의 삶은 더 악화되었는가'하는 것.

오프라 쇼는 알려져있다시피 북클럽, 카운슬링, 메이크오버 등 대중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기획이 많았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되었을까? 폭력 사건과 우울증, 자살 건수가 줄었나?  

근본적으로 대중들의 삶이 바뀌었나?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에 관심이 갔다.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유방암을 선고받고 같은 유방암에 걸린 환자들을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긍정적인 사고, 낙관주의, 자기계발을 맹신하는 분위기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된다.

그 후 <시크릿>을 비롯한 자기계발서 열풍, <긍정의 힘>으로 유명한 조엘 오스틴의 긍정신학, 마틴 셀리그먼 등

'긍정을 팔아서' 돈을 번 작가, 종교인, 심리학자들의 이면을 파헤치고,  

긍정적 사고의 배경과 문제점 등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도 있다. 

  

 

   
  긍정적인 사고는 경제의 과잉을 변명해 주고 잘못을 덮어 주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긍정적 사고를 장려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업이 되었다.

책과 DVD 등 관련 상품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수십만 명에 달하는 '라이프 코치'와 '경영 코치' 및 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심리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 혼란에 따른 중산층의 불안감이 이런 상품의 수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유를 특정 경제 조류나 경기 왜곡에서 찾는 것은 망설여진다.

역사를 볼 때 미국에서는 온갖 종류의 분파와 종파, 신앙요법, 엉터리 상품 판매자들이 득실거렸으며

긍정적 사고 산업과 마찬가지로 이익을 많이 내는 부류가 번창해 왔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정말 그럴까?'하는 생각이 앞섰는데

이 책을 읽으니 괜히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저자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메시지가 아닌,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허울 좋게 쓴 얘기였으니 감동이 없었을 수밖에.

 

특히 긍정적 사고, 동기 부여, 유인 설계 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에 더 좋은 구조를 만들기 위한 개념이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애초에 동기 부여나 유인 설계 등은 경영학이나 심리학, 교육학 등에서 나온 개념일텐데,

소수의 자본가, 기업가가 독점하는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학문조차도 모두 돈으로, 이윤으로 치환이 된다.

하기야 이제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니고, 학생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예비 노동자, 아니 인적'자원'인걸.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는 긍정적 사고 라는 것의 개념을 더욱 분명히 정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 긍정적 사고는 사회과학에서 말하는(일단은 이 책이 사회학 도서니까) '이상주의'와는 다른 개념인 것 같고,

경영학에서 말하는 경력개발(커리어관리), 시간관리 등의 개념과는 또 다른 것 같다.

그러므로 자기계발서라고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보고 자기에게 맞는 것만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우선이다.

 

근데 과연 긍정적 사고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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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일레인 N.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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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에 이어 내향성에 대한 책을 한 권 더 읽었다.

 

칼 융의 연구에 기반하여 내향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점은 근본적으로 같지만,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은 내향성 중에서도 민감한 성격, 즉 민감성에 더 주목했다는 점이 다르다.

내향성과 민감성이 어떻게 다르냐 하면ㅡ

내향성은 대개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외향성에 반대되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반면,

(그러나 <긍정의 배신>에도 나왔듯이 긍정적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민감성은 내향성 중에서도 감정에 충실하고 지적인, 보다 긍정적인 어감을 살린 개념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민감한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하다. 좋은 일이 있으면 더 행복해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더 좌절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이 책에서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감정적인 것을 비이성적인 것과 동일시하는 통념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만들고,

다시 또 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뭔가를 배울 때 감정적으로 관여하면 더 효과적으로 배운다.

이처럼, 정보를 보다 세심하게 처리하는 사람일수록 감정이 풍부하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를 민감한 성격이 아닌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 다른 이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소리나 냄새에 반응한다

* 감수성이 풍부하고 직감이 빠른 편이다

* 폭력물이나 공포물은 잘 못 본다

* 한 번 겪은 일은 오랫동안 기억하는 편이다

*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평소보다 훨씬 못한다

 

 

참고로 나는 일곱개 다 해당된다. (민감성종결자?)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 성격이 민감한지 자각하지 못하고

수험생 스트레스이거나 사춘기라서 감수성이 풍부한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대학교 때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받으면서 곁다리로(?) 심리검사 같은 걸 받았다가

그 때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들의 감정을 지각하는 능력이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민감하다는 게 결코 병은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하는 정도?

그리고 나는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부모님 사랑 듬뿍 받고 자란 덕분에 살면서 별 힘든 점도 없었다.

(어린시절에 받은 트라우마나 어려움이 없는지는 객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테스트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시길.

참고로 난 해당사항이 하나도 없었다^_^v 부모님 고맙습니다!)

 

다만 감각으로 들어오는 인풋이 워낙 많다보니 내부에서 처리가 잘 안 되면 많이 힘들다.

그래서 민감한 사람들이 대개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하고,

복잡하거나 시끄러운 환경에 놓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민감한 사람들은 틈틈이 꼭 쉬어주고,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나 사람과 덜 접할 필요가 있다.

직업도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보다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전문직이나 연구직 같은 것이 좋다.

넓고 얇은 인간관계를 부러워하기보다 좁지만 깊은 인간관계에 충실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또한 자신과 똑같은 민감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만나고 교류하는 것도 좋다.

주변에서 찾기가 힘들다면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책 읽기는 이보다 더 민감하고 내밀할 수 있을까 싶을만큼 섬세한 취미이므로 나부터 강력 추천.

 

<긍정의 배신>을 읽고난 직후라서 그런지 자기계발서 얘기 또 한 번.

시중에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나와 있지만, 이런 책들은 표적 독자도 너무 넓고(20대, 30대...),

성격이나 가족, 또래집단 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실천만 일방적으로 강조해서 읽고 나면 되레 답답할 때가 있다.

차라리 수고스럽더라도 자기 성향에 맞는 심리학 또는 의학 서적을 찾아서 탐독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를 읽고 내 성격이 내향적이라는 것은 발견한 이후

이번에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을 읽고 민감한 성격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해서 아주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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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는 틀렸다 -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아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 박형준 옮김 / 동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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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분이 주식 투자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건강을 돌보지 못해서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생뚱맞을지 몰라도 <GDP는 틀렸다>를 읽으면서 그 분 이야기가 생각났다. 경제 발전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국가 내부의 문제, 즉 국민들의 삶의 질, 행복, 복지에 대해서는 무심해진 우리네 현실이 딱 암에 걸려 돌아가시기 직전의 그 분 상황과 비슷하지 않나.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떤지 몰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런 모순에 대해 절감한 모양이다. (브루니 얘기만 늘 화제가 되어서 몰랐는데 사르코지가 이런 대통령이었다니, 부럽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 이제까지 GDP나 물가지수 등의 측정 도구가 세상을 정확히 측정하고 진단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위정자와 학자들의 착각일뿐, 실제로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이나 평등도는 하락하고 있다. 왜 그럴까? 혹시 이제까지 사용해온 측정 도구 ㅡ 즉, GDP나 물가 지수 등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사르코지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2008년 2월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하여 아마르티아 센, 장 폴 피투시 등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을 초빙하여 위원회를 설립했다. <GDP는 틀렸다>는 바로 이 위원회의 연구 보고서이자 프랑스와 세계의 경제 석학들이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스티글리츠가 지은이로 소개되어 있기에 딱딱한 경제 이론서일 줄 알았는데, 대통령과 관료들이 핵심을 파악하기 쉽도록 쉽고 명료하게 쓰여 있어서 독자로서 득 본 기분! (살다보니 프랑스 대통령이 받아보는 보고서를 내가 다 읽네...!!! 허허허) 

  

2. 

학자들은 보고서에서 종래의 계량 방식이 경제와 삶의 질을 동시에 이룰 수 없는 상쇄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환경을 개선하면 성장 지표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p.25)' 관점은 국민들로 하여금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삶의 질이나 행복, 환경 같은 이슈들은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령 '경제 대통령'이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최악은 피하는 선택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듯이.  

 

   
  통계와 회계 방식은 우리의 열망, 즉 우리가 사물에 부여하는 가치를 반영한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관, 경제관, 사회관, 인간에 대한 개념 그리고 사람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생각 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여러 지표들을 마치 우리와 외적인 관계에 있는 ㅡ 즉, 의심할 여지가 없는 ㅡ 객관적 데이터로 취급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 (중략)...  

또한 이런 방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자만에 빠진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 크나큰 간극을 만든다. 시민들은 전문가들이 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의견들을 전혀 체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시민들은 자신들이 속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때문에 둘 사이에 놓인 심연은 매우 위험한 것이 된다. 민주주의에서 이것보다 해로운 요소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통계 수치들이 허구이고, 조작되었으며, 거짓 정보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삶이 점점 팍팍해지고 어려워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통계 수치는 그들의 생계수준이 향상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속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pp.6-7)
 
   

 

  그 결과 가계보다는 기업,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 경제정책의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고, 생산, 자본, 금융 등의 이슈만 부각되어 국민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환경, 인권, 교육 등의 이슈는 자연히 소외되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학자들은 새로운 계량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생산보다는 소득과 소비에 주목하고, 기업보다는 가계의 입장을 강조하며, 소득과 소비가 재산과 함께 고려될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계와 사회의 작동 방식에 큰 변화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가계 내의 가족 성원들 사이에 주고받던 서비스의 대부분이 지금은 시장에서 구매되고 있다. 이런 전환은 국민계정의 소득 상승으로 여겨져, 마치 생활수준 자체가 향상된 것 같은 착각을 만드는데, 사실 이런 변화는 비시장적 서비스가 시장으로 이동했음을 반영할 뿐이다. (p.63)  
   

  

  프랑스 대통령이 소집한 위원회가 만든 보고서인만큼 프랑스의 현실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많고, 그래프나 통계 자료도 프랑스와 미국, 영국 등 서구 국가들의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만약 한국이라면 어떨까' 라는 가정을 하면서 읽다보니 잠시 멈추어 곰곰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령, 학자들은 또한 GDP 등의 지표가 자본재의 감가상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등 정보기술 자산이 자본재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프랑스보다도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입할 때 더욱 적절한 지적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고 있는 전자, 반도체 강국이다. 하지만 이들 산업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나 1인당 GD가 정보기술 자산의 감가상각이 반영되지 않은, 즉 과대평가된 수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들 기업이 정말로 국내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이다.

   

3.     

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측정 도구가 어떤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권고했을뿐, 새로운 도구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하기야 반세기 넘게 사용한 GDP(전에는 GNP가 더 자주 쓰였지만) 등의 측정 도구를 대체할만한 도구를 단시간 내에 발명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더군다나 정부가 앞서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을 떼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는 점은 참 부럽다. 이런 노력이 계속 이어지고 전세계로 퍼지다 보면 위원회가 제시한 새로운 지수 '국민총행복'이 국내총생산을 대체할 날이 정말 올지도 모르니...  

 

   
 

우리의 측정체계는 평균값을 기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평균값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의 믿음이 형성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평균적인 개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증대되는 불평등은 평균값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점점 더 넓혀놓고 있다.  

평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는 방법의 하나다. - 니콜라 사르코지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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