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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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9-05-11  

 
대학시절, 언젠가 한 교수님이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경제학은 서양의 학문이라고 여겼던 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개념과 수식을 외우며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건만, 정작 우리나라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엄두도 못 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얼마전 다산초당에서 나온 한정주의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세웠으며, 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이 득세했던 조선에서 경제학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이 발붙일 틈이나 있었을까? 목차를 살펴보니 박제가, 이익, 정약용, 박규수 등 18세기를 전후로 등장한 실학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이지함, 이중환, 채제공 등 언뜻 실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들도 있다. 빙허각 이씨라는 여성 경제학자의 존재는 아예 새롭다. 이들을 왜 경제학자라고 부르며, 이들이 어떻게 조선을 구한 것일까? 의문을 품고 책을 펼쳤다.  

 

책머리에는 ‘조선을 구한 경제학자 13인의 가상 좌담’이 펼쳐진다. 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 사상의 연결점과 차이점 등을 제시하여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 대해 대략적인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간의 논쟁을 자유무역협정(FTA)과 결부시켜, 이러한 논의가 현실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생각해보게끔 한 점도 좋았다. 

 

학자들의 사상과 현대의 문제를 연결하는 시도는 좌담 후에 이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 중에도 자주 엿보인다. 가령 채제공이 ‘시전 상인은 생활필수품을 개인 상인으로부터 싼값에 매점한 후 비싼 독점 가격을 매겨 백성에게 팔아 큰 이익을 남기려고 했다(p.81)’고 지적한 부분은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독점의 문제, 그 중에서도 대형 유통업체의 폐단을 이르는 듯했다. 박제가가 ‘소비를 촉진하면 생산 역시 활기를 띠고 상업은 나날이 발전해 나라와 백성의 삶은 풍요로워진다(p.137)’고 말한 대목에서는 케인즈의 유효수요설의 원조가 조선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질 정도다. 조선의 사상이라고 하면 왠지 고루하게 느껴지는데, 오히려 그 당시에 이미 이렇게 파격적이고 신선한 주장을 했다니 신기하다.

 

이 책의 제목은 언뜻 부적절하게 보인다. 18세기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급속히 몰락한 조선의 향방을 보면, 그들의 사상이 ‘조선을 구한’ 것이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조선의 방대한 학문적 성과와 치열한 지적 환경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는 조선을 구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리 역사에도 이런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조선의 경제학자’라는 주제 외에는 서술방식과 구성 면에서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책머리의 ‘가상좌담’처럼 새로운 서술방식을 계속 시도했다든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나오는 대로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순으로 인물들의 순서를 개연성 있게 배치했더라면 더욱 읽기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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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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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권남희의 <번역에 살고죽고>. 나나 동생이나 일본어 할 줄 알고 번역에 관심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서 이 책 나왔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권남희 님이 최근에 번역하신 <카모메 식당>도 둘이 같이 읽은터라 겸사겸사 읽었다. 동생이 먼저 읽고 '강추'했는데 읽어보니 강추 받을만 했다.

일단 이 책은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라는 부제 답게 쉽고 재밌다. 백수로 지내다가 엉겁결에 번역가가 된 과정, 번역가로 살며 한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보람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20년차 번역가로서 후배들과 입문자들에게 알려주는 노하우 등 실용적인 이야기까지 내용도 다채롭다.

일본어 번역에 대한 얘기도 당연히 많이 나온다. 일본어, 참 어렵다. '일본어는 웃으면서 들어가고 울면서 나온다' 는 말도 있듯이 배우기 시작할 때는 쉽지만 본격적으로 할라치면 정말 어렵다. 나도 학원 같은 데 안 다니고 공부해서 한글자막 없이 영상 다 보니까 쉽게 배운 건 맞는데, 방송에는 잘 안 나오는 어려운 단어나 문어체 표현은 아직도 잘 모른다. 신조어도 많고, 방언도 많고...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언어인데도 쉽게 배울 수 있다보니 어느 정도 실력만 되면 '아무나' 자막 만들고 기사나 인터뷰를 해석해서 올린다. 일본어를 모를 때는 그런 자막이라도 좋다고 영상을 봤는데, 이제 보면 오역이 얼마나 많고 오글오글하던지. 그러니 전문가는 더욱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잘 번역해 놓아도 일본어는 할 줄 아는 사람도 많고 잘 하는 사람도 많으니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오역이라고 문제를 제기할테니 말이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저자가 그토록 좋아하는 일본문학을 마음껏 읽고 번역이라는 형태를 통해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좋아보였다. 좋아서 일본소설 읽고 좋아서 번역하다가 직업이 된다. 이거야말로 최상의 직업, 최고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난 그렇다.)  

게다가 이 분은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어릴적의 꿈도 이뤘다. 번역의 세계에는 우연히 입문했다고 썼지만, 저자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 쓰고 책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했다. 그 결과 번역가가 되어 많은 책에 역자로 자신의 이름을 실었으며, 이제는 이렇게 직접 책을 썼다. 간절히 바라고 끈질기게 노력하다 보면 언제가 되든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ㅡ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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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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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을 읽고 오가와 이토의 신작이자 두번째 작품인 <초초난난>을 추천받아 이번에 읽어보았다. '초초난난'은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그것도 모르고 나는 팬심에 '초난'이 먼저 떠올랐다) 소설 내용도 제목 그대로 주인공 시오리가 기노시타 라는 남성을 만나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문제는 이 기노시타 라는 남성이 기혼남이라는 것. 그와 있으면, 그저 마주보고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인데도 너무나 행복했지만, 어린시절에 부모의 이혼으로 평화롭던 가족이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지는 일을 겪었던 시오리는 자신이 기노시타와 사귀어도 될지, 과연 사귄다면 그 끝은 무엇일지 걱정되어 좀처럼 맘을 열지 못한다.

 

그러나 불륜을 소재로 한 여느 소설과 달리 이 책은 애처롭지도, 처연하지도, 질척거리지도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숨겨진 주인공은 바로 '음식'. 기모노 상점이 주 배경인만큼 일본의 전통요리와 가정요리가 줄줄이 등장하고, 도쿄 안에서도 일본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동네인 야나카와 아사쿠사의 명물이 심심할라치면 나오고, 시오리가 사랑해마지 않는 케이크, 빵 같은 베이커리도 쉴새없이 나온다. 푹빠져 읽고 있자니 내가 사랑에 고픈 건지 배가 고픈 건지 모를 지경이었달까...ㅎㅎ

 

음식, 사랑, 가족... 오가와 이토는 이런 본능적인 소재들을 참 좋아하는지(누가 싫어하겠냐마는.) 소설 곳곳에 <달팽이 식당>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줄줄이 이어지는 음식의 향연, 읽는이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만드는 음식 묘사...  

  

게다가 <달팽이 식당>이 판타지가 살짝 가미된 여성의 성장소설이라면, <초초난난>은 전형적인 애정소설. 기노시타 이 남자는 또 왜 이렇게 멋있는지, 그에 대한 묘사도 죽음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니 태클 사절.) 책 읽는 내내 동생이랑 '기노시타한테는 이거 데이트가 아니라 먹자계 아니냐'며 흉을 봤지만, 먹자계라도 좋으니 이런 남자 한번 보기나 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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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함정 - 가질수록 행복은 왜 줄어드는가
리처드 레이어드 지음, 정은아 옮김, 이정전 해제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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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본 건데도 어느 일본방송의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인기 절정의 젊은 여배우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자기 취미는 사진 찍기라면서 쉴 때도 그 사진을 보면서 옛날일을 회상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패널 중 한 사람이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느냐며 차라리 그 시간에 지금의 감정에 집중하라는 말을 했다. 당시 나도 그 여배우처럼 사진 찍고 보는 걸 매우 좋아했던터라 '나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 자연스럽게 사진과 카메라로부터 멀어졌다.   

 

듣는 사람에 따라 그 패널이 쓸데 없는 참견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분이 중요한 지적을 했다고 본다. 그 후에 어디선가 행복은 무엇을 성취하거나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데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사진을 찍는다는 것, 무언가 기록하고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다보면 현실을 소홀히하게 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행복은 감정이다. 기쁘고 즐겁고 만족스럽고 설레는 모든 감정을 통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뚱맞은 예일지도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까지도 '기쁜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등등 '~인 것 같다'는 말을 붙이는 걸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닐런지. 

 

리처드 레이어드의 <행복의 함정>을 읽었다. 레이어드는 런던 정경대 교수이며 토니 블레어 정부의 경제자문을 지냈고 2000년 부터 상원의원을 역임하고 있는 경제학자로, 행복, 삶의 질에 관한 연구로 이른바 '행복 황제'로 불리며 2010년에는 <더 타임스>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승려 마티유 리카르와 함께 꼽혔다. (이런 조사는 누가 하는 걸까? 왜 나는 빼고 하는 거지?) 그의 행복에 관한 연구는 영국 캐머런 총리,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등 유럽 국가의 수장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르코지가 소집한 경제 위원회의 연구 보고서를 담은 <GDP는 틀렸다>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는데, 어쩐지 행복과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더라. 요즘 유럽 정부들의 정책, 특히 경제 정책은 이 레이어드라는 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모양이다. 

 

   
  돈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같은 액수의 돈에 다른 사람들보다 덜 만족해한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믿는다. 경제적 인간은 돈을 위해 일하며 더는 일할 수 없을 때까지 일에 매달린다. 사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다른 일을 한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들은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보고 경제학을 연구하는 것이다. (p.193)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라고 해서 행복을 마냥 강조하는, 이른바 긍정론 쪽의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레이어드는 벤담, 밀의 이론을 분석하며 행복의 개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소득과 생활수준은 높아지는데도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연구하고, 경제적인 척도 외에도 사회 전체의 행복을 측정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개발하려고 애쓰는, 지극히 학문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절대적인 행복보다 상대적인 행복을 중시한다. 즉 남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더 나은지를 척도로 행복을 평가한다. 그러나 한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익숙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갈망하지만 일단 그렇게 되면 금방 권태를 느끼고 우울증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행복의 비밀 중 하나는 당신보다 더 성공한 사람과 비교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항상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아닌 낮은 사람과 비교하라. (p.81) 행복의 비밀은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그래서 흥미를 잃지 않는 대상을 찾는 것이다. (p.82)'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 높은 소득에 적응하게 될까? 이를 가장 쉽게 알아내려면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그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소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해야 한다. ...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필요 소득'이 현재 자신이 받는 실질소득과 매우 강하게 연관돼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받는 소득에서 1달러가 오르면 필요 소득에서도 최소 40센트가 올라갔다. 즉 올해 1달러를 더 벌면 행복해지지만, 다음해에는 40센트가 더 오른 기준으로 자신의 소득을 평가하는 것이다. 결국 올해의 소득 가운데 최소 40%가 내년에는 '사라져버리는' 셈이다. 

이것은 소득에 대한 중독을 알 수 있는 척도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익숙해지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자동차나 집 같은 물질적인 소유물이다. 광고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돈을 써서 '중독을 채우라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 만약 물질적인 소유물에 대해 익숙해질 것을 미리 예상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데 과도하게 돈을 써버릴 것이다. 결국 그 돈은 자신의 여가를 희생해서 버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습관화 과정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 그 결과 우리 인생은 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버는 식으로 왜곡되고 있으며 다른 취미나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 (p. 83) 
 
   

 

전반부에는 개인 수준에서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논의도 등장하지만, 궁극적인 내용은 후반부에 있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인물인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공정책을 세울 때, 특히 경제나 복지 정책을 마련함에 있어 개인의 삶의 질, 행복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놀랍게도 저자는 자유주의, 개인주의 사상이 만연한 영국의 학자답지 않게(일반적인 생각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영국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공동체, 권위, 종교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인이 사회 전체적인 생활 수준은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과거에 있던 가족, 마을, 종교, 조직 같은 공동체가 해체되어 안정감을 잃어서라고 한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들은 경제적 개념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외부 효과를 창출하는데, 경제적 개념으로 환산되는 것만을 인정하는 풍조로 인해 공동체보다도 당장 나, 내가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게 되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은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이다.   

  

내 생각엔 공동체, 종교 같은 문제로 멀리 갈 것도 없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될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불행하다고 느끼면 둘이나 셋이 더 낫고, 반대라면 혼자가 더 낫다. 그건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그보다도 저자가 현대인들이 궁극적으로는 가족, 연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린 시절의 꿈을 하나둘 이루며 사는 삶을 소망하지만, 당장 눈 앞에 놓인 돈, 즉 보수나 명예, 지위 같은 것에 정신이 팔려 감정을 무시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국의 경우 가족 해체, 우울증, 자살, 종교의 권위 하락 같은 사회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처방으로 공동체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 같다. 만약 우리나라라면 계급, 조직 내의 모순, 불합리를 해결하고, 권위가 있어야 할 집단이 권력만을 휘두르는 세태를 바로잡는 데에서 행복이 출발하지 않을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남보다 더 벌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동네에 살고, 더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행복한 것일까.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수장들과 학자들은 이미 이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제기하고 있는 추세다. 더 벌고 더 가지기 위해 애쓰는 건 이미 한물 간 트렌드. 행복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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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6-1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진 않지만 어떨까? 싶은 책들 리뷰가 많아서 왔다가 즐겁게 놀다갑니다. 아주 좋은데 손님이 아직은 발견못한 그런 서재군요. 행복의 함정.. 마지막 구절에 대해 저는 늘 고민하는 것 같아요. 더 벌어서 나쁠 건 없지만 버는 데에 치중해 쓰는 일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면 것도 불행한 거라 생각해요. 요즘은 너무 돈자랑하려는 사람이 많아서요.ㅠㅠ 저는 어떻게 버느냐보다 어떻게 쓰는냐를 듣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은 늘 자기가 얼마나 버느냐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만요. 또 올게요. 반갑습니다.^^

키치 2011-06-12 21: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 덧글 달아주신 분은 처음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어떻게 쓰느냐. 저도 관심 많고, 중요하고 매력적인 주제이지만 아직 많이 다뤄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서 아쉬워요. 소비자학 뭐 이런 제목으로 연구하시는 분도 많지만 아직 마케팅, 경영 쪽 이슈로만 다뤄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 관련된 책 더 찾아 읽으면서 공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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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본성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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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사회과학대학에 들어간 것이기에 따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혹시 나와 맞는 학문일까 싶어 경제원론 수업을 들었다가 '아, 경제학을 공부해 놓으면 살면서 손해는 안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경제학 복수전공을 신청했더랬다. 그 후로 대학 4년을 정치외교학에도, 경제학에도 미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졸업하는 바람에 백조 신세를 면치 못한 나. 이따금씩 경제학을 복수전공하길 잘 한 걸까 자문하곤 했는데, <돈의 본성>을 읽으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려운 책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니!! (그러나 '읽었다'고 해서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다.) 

<돈의 본성>은 케임브리지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제프리 잉햄이 지은 책이다. 잉햄은 사회학자로서는 드물게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을 아우르는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와 노동, 화폐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경제학이 정치철학에서 출발한 학문이고, 사회학이 사회과학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과학의 꽃'과 같은 학문임을 생각하면 그리 드문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제학의 연구 대상으로만 여겨지기 쉬운 화폐의 속성에 대해 권력, 계급, 사회적 함의 등 사회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지극히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분석했다.  

 

먼저 저자는 화폐를 권력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화폐를 상품이나 다름없는 '중립적 베일'로 간주하여 화폐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무시하는 정통 경제학의 화폐 이론에 딴지를 건다. 너무나 당연해서 잊기 쉽지만, 돈은 종이 한 장, 금속 덩어리에 불과하다. (요즘은 物化되지 않은 돈도 매우 많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화폐는 군주와 귀족, 상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가와 시민 사이의 대결의 산물로, 그것을 통제할 힘을 가진 자에게는 절대반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대결의 결과 화폐를 통제할 힘은 정부와 자산계급에 돌아갔다. 그 후 이들은 시민, 노동자에게 화폐를 지극히 공평하고 평등한 교환의 매개인 양 주입시켰고, 시민, 노동자는 화폐의 속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소유하는 데 골몰하는 종속자로 전락했다.  

 

   
  자본과 노동 사이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권력균형 상태가 변화하면, 이것은 화폐의 구매력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 권력균형을 변화시키는 중심적인 투쟁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투쟁이다. 역사적으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투쟁은 가장 중요한 계급투쟁이었다. (p.178)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 하기 위해 저자는 역사 속에서 증거를 찾았다. 그 중에서도 독일어와 일본어 등 여러나라의 언어에서 화폐나 지불을 뜻하는 말의 유래를 분석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언어야말로 대표적인 사회적 산물이 아닌가!) 가령 독일어로 화폐를 뜻하는 겔트라는 말은 보상금, 희생(고대 영어로 Geild)이나 조세(고트족 언어로 Gild)라는 말은 물론이고 범죄(guilt)라는 말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어로 지불을 뜻하는 하라이라는 말은 죄 씻김 이라는 뜻이 있다. (p.190) 화폐 단위인 실링(shilling)은 살인 또는 상해를 뜻하는 스킬란(skillan)에서 왔다. (p.196) 

 

화폐-자본의 권력적 속성에 대한 논의는 현대 경제학, 특히 몇 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도 의의가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반쪽이 미국 중심의 질서로 재편되면서 경제는 '대자본', '대규모 조직 노동', '금리 수취자'라는 3대 경제적 계급이 서로 불안정하게나마 타협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가 팽창하면서 대자본은 노동 가격 인상을 감수하지 못하고, 노동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하나, 그런 중에도 금리 수취자는 높은 이자율의 덕을 보는 데다가 탈규제로 인해 고삐마저 풀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세력균형의 축은 금리 수취자, 즉 화폐자본 및 금융에게 유리하게 재편된 것이다. 그러나 고평가된 금융 팽창의 끝은 투기 거품이 꺼지는 종말인 경우가 많다. 그런 사례는 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 수차례 목격했다. 

  

앞에도 썼듯이 읽을 수는 있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한장 한장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어렵다'고 느낀 이유는 돈을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이 아니라 날 때부터 존재했던, 주어진 것으로 자연스럽게만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돈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산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화폐, 즉 '돈'의 본성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적 속성이라는 개념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깝게는 금융을 감독해야하는 자가 그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서민들의 돈을 약탈하는 사건부터 돈을 가진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불평등과 모순을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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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6-1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복수전공 하셨군요. 사회과학대학 또한 어떤 면에서 보면 [모 아니면 도]라서 취업이 힘든 것 같기도 해요. 님 나이를 짐작할 순 없지만 저는 그랬던 것 같아요. 더 높은 학위를 요구하는 학문 같아요. 실제로도 그렇게 학문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구요. 그래도 좀 멋있어요. 정치외교학과 경제학이라~^^

키치 2011-06-12 21:42   좋아요 0 | URL
모 아니면 도 맞습니다^^ 아쉽게도 전 아직 도 쪽이네요.
그냥 공부하는 게 좋아서 선택한 전공인데 직업으로 삼으려니 참 힘드네요.
쉽게 빛 보려고 선택한 길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