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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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그 후로 14년이 지난 2025년 4월 10일 현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12차 방류가 시작되었고, 올해만 5차례 더 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지만,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아니 분명 (나를 포함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하지만 뉴스나 신문 같은 매스 미디어에서는 오염수를 방류했다, 같은 뉴스를 기계적으로 내보낼 뿐 이에 대해 항의하거나 부작용을 걱정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 이상 원전 건설을 하지 않고 기존 원전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력 사용량을 줄여야 할 테지만 요원한 일이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그리고 생활은 계속한다>는 아사히신문 기자로 이십여 년 간 재직한 저자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스스로 전기 사용을 줄이며 탈원전 생활을 실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마흔 살 때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 이후의 삶에 대비해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 내용은 저자의 첫 책 <퇴사하겠습니다>에 자세히 나온다.) 한 달 지출 중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생활비를 줄이는 과정에서 전기 사용료를 줄이기로 결심했는데 생각 외로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10퍼센트를 줄이는 게 어려우면 50퍼센트를 줄이라"는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말에 힌트를 얻어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전기제품 자체를 처분해 버렸다. 그 결과 전기 사용료가 줄어든 건 물론이고 생활도 대폭 간소해졌다.


냉장고 없이, 세탁기 없이, 청소기 없이 어떻게 살아? 싶겠지만, 저자가 해보니 의외로 쉬운 일이었다. 냉장고가 없으니 장 볼 때 식재료를 덜 사게 되고, 식재료를 덜 사니 요리를 많이 안 하게 되어서 요리에 쓰는 시간이 줄었다. 반찬 수도 줄었지만, 사실 반찬은 한두 가지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나는 그렇다). 세탁기도 없으니까 옷을 덜 사게 되고, 사더라고 세탁이 쉬운 옷만 사게 되고, 세탁이 쉬운 옷만 사니까 세탁하는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와 걸레로 청소하니 청소할 때마다 거슬렸던 청소기 소음을 안 들어서 좋다. 이 밖에도 전자레인지, 헤어 드라이어 등 당연하게 사용했던 전기제품이 의외로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가 팔랑팔랑... 나도 없애볼까?


저자가 처분한 전기제품 중에서 나라면 그래도 이건 처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은 냉장고다. 겨울에는 몰라도 여름에는 어떻게 하려고... 근데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여름은 여름대로 냉장고 없이 살 만하다. 무청(시래기)을 햇볕에 말려서 무쳐 먹고 끓여 먹고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듯이, 다양한 채소들을 햇볕에 말려서 먹을 수 있고 맛도 영양도 더 좋다. 저자가 냉장고 없이 살면서 요리의 달인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후속작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 자세히 나온다(지금 읽고 있다). 채식, 자연식물식 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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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와 오야마 2 - 완결
아이다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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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중연극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키타가와 엔노스케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집을 나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카페 마스터 이타미 코이치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타미는 몇 년 전 아내와 딸을 사고로 잃고 삶의 의욕을 잃었다가 우연히 엔노스케를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죽은 딸에게 못해줬던 것들을 대신 해주고 있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지내고 있던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친다. 엔노스케의 아버지가 이타미의 집에 나타난 것이다.


엔노스케의 이야기를 읽으며, 부모의 직업을 계승해야 하는 자식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지만, 한국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고 일본에는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처럼 스스로 직업을 택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직업을 계승하는 삶이 편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엔노스케의 경우처럼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잇는 삶을 사는 것으로 정해져 철이 들기도 전부터 일종의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하는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래도 이타미의 경우처럼 죽음이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은 경우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지... 


이 만화처럼 혈육도 아니고 혼인으로 연결되지도 않은 사람들끼리 가족을 이루어 사는 이야기가 요즘 일본에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가족은 필요한데 진짜 가족은 싫어' 또는 '가족은 필요한데 결혼은 하기 싫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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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와 오야마 1
아이다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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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때는 절대 안 봤을 것 같은 만화. 다 읽고 보니 이보다 설정과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제목을 찾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ㅎㅎ


대대로 대중연극을 해온 집안의 아들인 키타가와 엔노스케. 가부키의 여성 역을 의미하는 '오야마' 역도 훌륭하게 소화해 내서 아직 어린데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공연을 포기하고 집을 나온 엔노스케는 공원에서 혼자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말을 건다. 알고 보니 그 남자, 이타미 코이치는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삶의 의욕을 잃은 카페 마스터였고, 갈 곳이 없는 엔노스케는 카페 일을 거드는 대가로 이타미의 집에 머무르기로 한다. 


두 남자가 한 집에 살면서 친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BL 요소가 없다고 볼 수 없지만, 완결까지 다 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만화는 아버지와의 불화를 겪고 있는 엔노스케와 자식을 잃은 홀아비 이타미가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일종의 유사 가족물인데, (원)가족은 싫고 (새)가족은 원하는, 그러나 결혼은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기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일본풍을 대표하는 대중연극 배우, 다른 한 사람은 서양 음식을 주로 만드는 카페 마스터로 설정해 일본풍과 서양풍을 대비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에피소드를 나열한 점도 흥미롭다. 엔노스케는 이타미가 만들어주는 빵과 오므라이스를 먹고, 이타미는 엔노스케가 연기하는 대중연극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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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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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 트레이드 마크인 강렬한 아프로 헤어 때문에 이 분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읽어보니 문장이 술술 잘 읽히고 문제 의식과 접근 방법에도 공감이 간다. 저자의 첫 책인 이 책은 1965년생인 저자가 아사히신문이라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오십 살에 퇴사를 감행한 과정을 담고 있다. '퇴사'를 주제로 한 책이지만 퇴사를 계획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계속 회사에 다닐 예정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저자가 퇴사를 결심한 건 마흔 살의 일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신문 기자로 정신없이 일했던 저자는 선배들이 마흔 살이 될 때마다 "인생의 반환점에 다다르셨네요."라고 가볍게 말했다. 막상 자신이 마흔 살이 되자 '인생의 반환점'이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이대로 '회사 인간'으로서 일만 하면서 남은 생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일 안하고 놀고 먹을 정도로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비혼 비출산으로 의지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와중에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후배에게 업무 명령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오보 사건이 두 번이나 일어나며 이 회사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커졌다. 그래서 조금씩 퇴사를 준비했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퇴사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남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회사 다니는 게 즐거워져서 퇴사 계획이 미뤄지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회사 밖에서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씀씀이를 줄이는 노력을 했다. 근데 이게 의외로 즐거웠다. 저렴한 식재료를 사려고 대형 마트 대신 전통 시장에서 장을 보고, 비싼 여가 생활을 즐기는 대신 집 근처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발적 탈원전을 실천하면서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전기 제품을 처분했다. 그랬더니 구입하는 식재료의 양도 줄고, 옷도 줄고, 물건도 줄었다. (자발적 탈원전 생활에 대해서는 저자의 다른 책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 자세히 나온다.) 예전엔 돈을 많이 벌어도 쓸 돈이 늘 부족했는데 이제는 돈이 남아돌아 걱정(?)이다.


이 책은 일이나 회사를 부정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은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일을 좋아한다. 퇴사를 결심한 후에도 십 년이나 더 다녔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 겪은 어려움(주택 계약, 세금 납부, 실업 급여, 건강검진 등)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일만 하면서 사는 건 너무 아깝다. 회사에만 의존하면 자신의 진짜 능력이나 가치를 알기 어렵다. "매달 월급이 입금되는 데에 익숙해지다보면 어느덧, 저도 모르게, 일단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18쪽) 요즘 내 무기력, 우울의 원인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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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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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문보영 시인님도 미니멀리스트구나 싶어 반가워하며 읽기 시작했다. 읽어보니 초콜릿 포장지나 고무줄이 늘어난 바지처럼 '설레지 않아서'가 아니라 버려야 해서 버린 물건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처럼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작심하고 물건을 버린 이야기는 아니고, 시인인 저자가 그날 그날 버린 것들에 대한 단상을 기록한 일상 산문집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물건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쓰다 만 노트나 애착 베개처럼, 더는 필요하지 않지만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괜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나에게도 많이 있다.


근데 이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불안해서 버린다니. 보통은 불안해서 못 버리거나, 없어도 불안하지 않아서 버리지 않나. 불안해서 버리는 마음이란 뭘까. 일단 이 책에 나온 불안해서 버린 사례로는 진척이 없는 새 시집 원고가 있다. 마감 기한 전까지 원고를 다 쓸 자신이 없고, 다 쓴다 해도 그렇게 벼락치기로 쓴 시들을 자랑스럽게 여길 자신이 없다고 판단한 저자는 과감하게 원고를 엎었다. 그랬더니 그 전까지 불안감, 죄책감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해졌다. 세상 천지가 시 쓸 거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억지로 다녔던 학원을 끊었던 기억과도 비슷했다. 학원을 끊었더니 오히려 공부할 시간이 늘어나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기고 학업 성취도도 높아졌다.


버렸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도 있다. 어머니의 수술을 앞두고 저자는 가족들과 수술과 여행의 공통점을 나열하며 불안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수술 당일이 되자 온갖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고, 이대로 영영 어머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어머니도 금방 저자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저자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어머니의 소변을 컵에 받아 버리는 일에는 익숙해져도, 어머니와의 이별이라는 생각 자체에는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버려도 남아 있는 마음들을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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