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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 - 다채로운 말로 엮은, 어휘 산책집
권정희 지음 / 리프레시 / 2025년 12월
평점 :

이 포스팅은 리플레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우리는 매일 수천 개의 텍스트 신호에 노출된다. 스마트폰 알림, SNS의 단문, 업무 메신저 알림 등은 끊임없이 우리의 언어 처리 능력을 점유한다. 하지만, 정작 마음에 남는 말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IT 산업의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서 '속도와 효율'이 만들어낸 변화들을 취재해 온 입장에서 보자면 권경희 작가의 『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는 마치 과열된 서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 속의 산책로를 마주한 듯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예쁜 단어를 모아둔 ‘어휘집’이 아니다. 부제 그대로 “다채로운 말로 엮은, 어휘 산책집”처럼 우리가 잊고 지낸 우리말을 감각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언어 인문학 에세이에 가깝다. 또한 마케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언어 UX(User Experience)’를 확장하는 가이드북이다.
우리는 깊고 섬세한 감정을 표현을 충분히 해야 할 때도 “대박”, “헐”, “쩐다” 같은 단순 반복적인 언어로 감정을 압축해 버리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국립국어원 표준 규정을 기반으로 단어의 의미와 쓰임을 정확히 짚어주면서도, 그 단어가 지닌 감정을 잃지 않는 해설을 덧붙여 설명한다.
예를 들어 ‘수굿하다’, ‘해조음’, ‘해낫주그레하다’ 같은 단어들은 오래된 활자가 아니라, 마음의 결을 만져보는 섬세한 도구처럼 다가온다.


이 책은 3가지 포인트에서 차별점을 갖고 있다.
첫째, '정확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룬 어휘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어휘서가 문법 중심의 참고서이거나 감상 중심의 에세이로 치우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두 영역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국립국어원의 표기·의미를 기반으로 한 정확성 ▲단어가 품고 있는 온도와 결을 풀어내는 문학적 해설 ▲정보와 감성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애드온(Add-on)된 형태다.
둘째, ‘사라져가는 우리말’의 재발견이다. 책 속 단어들은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지만, 대체할 말이 없는 정교한 뉘앙스를 지닌 말들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잊고 있던 감정의 색을 되찾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어휘력 확장이 아니라, 일상 인식의 프레임을 바꾸는 경험에 가깝다. 마케터의 언어로 말하면, 이 책은 우리의 세계를 언어적으로 리브랜딩 해준다.
셋째, 읽는 행위 자체가 ‘휴식’이 되는 구성이다. 본문 미리보기에서도 확인되듯, 책은 글과 여백의 비율이 안정적이다. 단어 하나에 집중해 마음을 천천히 머물게 하는 편집 구조는 빠른 콘텐츠에 지친 독자의 뇌를 ‘디지털 디톡스’ 상태로 안내한다. “말을 배우는 일은 결국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라는 문장처럼, 한 단어를 곱씹는 일이 곧 내면을 정리 하는 행위가 된다.


생성형 AI가 일상 대화부터 기사, 보고서까지 자동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평균 이상의 텍스트는 이미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앞으로 경쟁력은 감정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이를 좀 더 정확한 포인트로 표현하는 능력, 즉 '언어의 디테일'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는 무더딘 말의 디테일한 감각을 되살리도록 돕는다. 거칠고 투박박하면서 별다른 공감 없이 마구 소비되는 온라인 언어 생태계 속에서도 그 단어가 주는 ‘의미’의 깊이와 ‘표현’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언어적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이 책은 한정된 단어로 카피를 뽑아내야 하는 마케터와 기획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뻔한 단어 선택에서 벗어나 신선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늘 같은 단어만 맴돌아 답답함을 느끼는 일반 독자들도 참고하면 좋겠다.
SNS에서는 수많은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실시간으로 업로드 되고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 잠시 벗어나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쉼표이자가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특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필수적인 '어휘 팔레트'로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