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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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 110여 년 전인 1913년의 정치를 비롯하여 주로 문화사를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1913년 세기의 여름>이다. 제목에 여름이란 계절이 들어가서 1913년 여름에 유럽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책의 내용은 1913년 1월부터 12월까지를 월별로 나누어서 기록하고 있다. 


1913년은 제국주의 시대였고 민족주의가 확산되었으며 발칸에서는 영토 분쟁이 일어 나고 있었다. 또한 문화적으로는 모더니즘이 음악, 미술, 문학을 비롯한 분야에서 널리 퍼져 나가던 때이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1913년 유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역사성 보다는 인물 위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플로리안 일리스'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3년 간에 걸쳐서 약 300여 명의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다. 그들의 전기, 자서전, 편지, 사진, 그림, 문학작품, 미술작품, 신문, 잡지를 자료로 삼았다. 



1912년에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2년 전에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1913년 12월에 <모나리자>를 찾게 된다. <모나리자>의 분실이 단순히 거액을 벌기 위한 도난이 아니었다는 것, <모나리자>가 이탈리아의 주요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 도난당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은 내가 가지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이탈리아인이었으니 이 그림의 주인은 이탈리아다. 이 걸작을 본래 영감을 불어넣어준 나라로 돌려 주는 것이 나의 꿈이다. " (p. 336)


1913년에 오스트리아 빈에는 스탈린도 있었고, 히틀러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위상은 아직까지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고, 그들의 만남을 위한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이유에서 빈에 있었다니.


"그러니까 1913년 초에 스탈린, 히틀러, 티토가, 다시 말해서 20세기의 가장 지독한 폭군 두 사람과 가장 역겨운 독재자 한 사람이 잠시동안 빈에 같이 있었던 셈이다. 한 사람은 손님방에서 민족문제를 연구하고, 또 한 사람은 남성쉼터에서 수채화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자동차의 커브길 승차감을 검사하기 위해 링슈트라세를 무의미하게 돌고 있었다. 거대한 연극 '1913빈'에서 이 세 사람은 대사도 없는 세 명의 엑스트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p.47~48)


프로이트와 융에 관한 이야기, 크림트와 에곤실레, 그리고 카프카, 릴케, 토마스 만, 뒤샹, 말레비치, 코코샤넬 등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1913년에 발표된 마르셀 뒤샹의 작품인 의자 위의 자전거 바퀴는 1917년 미술계를 발칵 되집어 놓은 변기에 자신의 싸인을 해서 출품했던 작품인 <샘>의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마르셀 뒤샹은 여전히 예술에 흥미는 없지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 그는 이렇게 자문한다. ' 예술작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고 나서 가을에, 새로 이사한 파리 생이폴리트 가의 집에서 갑자기, 평범한 부엌 의자 위에 끼워 넣은 자건거 앞바퀴가 등장한다. " (p. 330)


코코슈카와 알마(구스타프 말러의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출처 : 인터넷 검색: 바람의 신부> 


이렇게 <1913년 세기의 여름>은 그 해에 일어난 정치, 문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연극, 영화, 패션, 과학 등 모든 영역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등장인물이 300여 명에 달하는데,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워낙 유명인들이기에 이 책 저책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있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1913년 1월에서 12월에 걸쳐서 일어난 일들만을 간추려서 씌여졌다는 것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아쉬운 점은 책 속에 나오는 미술작품의 경우는 설명만 있고 작품의 사진이 없어서 하나 하나 찾아 보고 책을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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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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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을 다시 읽으려고 하는데, 이전에 썼던 리뷰가 생각나서 여기에 다시 옮겨 놓았습니다.

 - 2013년 11월 30일에 쓴 리뷰 -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다. <비밀>이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 책을 함께 읽는데,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모모가 이웃에 사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는 부분까지 읽어주고 그 다음은 자신이 떠난 후에 읽어 보라고 했다 고 한다. 드라마와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이 문장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밀>이란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소설을 다시 한 번 읽기로 했다.



먼저, 작가인 '에밀 아자르'에 대해서 알아보자. 요즘 화제가 되는 '조앤 k 롤링'의 <쿠쿠스 쿨링>은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발표되었다. 영국 출판계와 언론들은 이 소설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내 놓았다. 신인작가의 소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기자의 추척으로 이 소설의 작가가 '조앤 K 롤링'이나는 것이 밝혀졌다. 가난한 이혼녀이자, 무명의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녀가 <해리 포터>로 인하여 일약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르면서 부와 명예를 갖게 되었지만, 새로운 작품은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선입견을 떠나서 독자들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인정받은 작가들 중에는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책을 낸 작가들이 더러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로맹 가리'이다.

'로맹 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유태인이지만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소설가, 외교관, 영화감독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는데, 동일인에게는 한 번 밖에 주지 않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2번 수상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건 바로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도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는 1956년에 <하늘의 뿌리>로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을 수상한 후에 <자기 앞의 생>으로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또 공쿠르 상을 받았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4권의 소설을 펴냈는데, 그당시에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같은 인물일 것이라는 설이 떠돌고 언론의 추적을 받기도 했지만, 교묘하게 자신의 오촌 조카가 '에밀 아자르'인 것 처럼 활동을 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에밀 아자르'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름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로맹 가리'는 불행하게도 1980년 권총 자살을 하면서 자신의 유서에서 이런 사실들을 밝힌다. 그 내용은 그가 죽은 6개월 후에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글로 세상에 발표된다.


    


이 책에는 소설 <자기 앞의 생>의 뒷 부분에 이 글이 함께 실려 있다.

그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 시작하는 것, 다시 사는 것, 다른 존재로 사는 것이 내 존재에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고 글 속에 자신의 심경을 담아 놓았다.

'로맹 가리'에게 '에밀 아자르'는 새로운 탄생, 다시 시작함, 모든 기회를 다시 한 번 가져다 주는 그런 의미의 가명이었을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episode)가 있는 <자기 앞의 생>은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 소설의 사회적 상황이나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소재들이 지금의 싯점에서 읽기에는 그리 가슴에 확 와닿지는 않는다. 그리고 비루한 인생들의 이야기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읽혀지기 보다는 소설 속의 글들이 거칠기도 하고, 반복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현대작가의 소설들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꺼칠꺼칠하게 다가온다.

몸을 팔아서 살아가는 창녀. 성 전환자. 병든 자, 아내를 죽인 아버지, 정신병자,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의 단어 만으로도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고 살아 남은 로자 아줌마와 그가 돌보는 아랍인 아이인 모하메드 (모모)의 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자 아줌마는 강제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에 프랑스 뒷골목에서 몸을 팔면서 살아가다가 늙은 뚱뚱이 아줌마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까지 올라가는 것 조차 힘겨운 그런 몸으로 창녀들의 아이를 돌봐준다. 불법 매춘을 하는 여자들은 아이를 키울 수 없기에 창녀들은 그들의 아이를 로자 아줌마가 돌봐 주는 댓가로 돈을 준다. 그녀의 집에는 7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는데, 아이들의 엄마가 연락을 끊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아이들은 누군가의 집에 입양이 되기도 한다.

모모는 자신의 나이도 잘 알지 못한다. 열 살인가 했지만, 어느날 나타난 아버지에 의해서 열네 살임을 알게 된다. 열네 살 모모는 어릴 적에는 로자 아줌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말썽도 부리고, 거짓말도 하고, 창녀들 주변을 맴돌기도 하는 아이이다. 자신의 엄마를 죽인 정신병자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그의 아들이 아닌 척 할 정도로 적응력이 강한 아이이기도 하다.

로자 아줌마가 병에 걸리자 모모는 아줌마를 돌봐 주어야 하는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된다. 로자 아줌마는 뇌질환으로 치매 현상까지 오고, 서서히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의사는 로자 아줌마를 병원으로 옮기기를 권한다. 그러면 로자 아줌마는 병원으로, 모모는 빈민구제소로 가게 되는데....

모모는 생각한다. 안락사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로자 아줌마가 병원에서 오랜 세월을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이렇게 사회로 부터 멸시받는 소외계층에 대한 삶을 조명해 본다.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비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혈연관계도 아닌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준다. 처음에는 보호자의 입장이었던 로자 아줌마가 모모에게 보호 받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지만, 모모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로자 아줌마를 돌보는 일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상황도 좋지 않으나, 로자 아줌마와 모모에 기울이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모모는 자신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이처럼 소외받는 사람들에게도 생은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이 책 속에서 찾아야 한다.

모범적인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정은 우리 시대의 모자지간의 정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간섭하고 엄마의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우리 시대의 모자의 관계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기에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덮기 직전에 펼쳐지는 장면은 어쩌면 매스컴을 통해서 보았던 한 장면이기도 하다. 로자 아줌마가 강제 수용소에 잡혀 가던 때의 그 무서움과 같은 두려움이 있을 때마다 가곤 하던 지하층의 '유태인 피난처'. 그곳에서 발견된 두 사람.


 

하밀 할아버지가 들려준 "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없이는 살 수 없다." 는 그 말 한 마디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배우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고, 심지어 가족도 없는 그들에게도 생은 찬란하고 아름답다.

이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도 생은 존재한다. 그리고 사랑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생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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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면 책고래마을 61
김준호 지음, 용달 그림 / 책고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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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신학기가 되면 두근 두근, 우리 반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어떤 친구들이 우리 반일까? 
낯설기만한 새 학년, 첫 날
드디어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교실 풍경이 며칠이 지나면 차츰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선생님의 수업방식, 성격, 친구들의 이름 그리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문을 열면>은 이런 새학기의 시작과 함께 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마음의 문에 비교했다.

우리반의 친구들은 25명, 선생님 1분 그래서 모두 26명이다.
그렇지만 어떤 날은 선생님의 눈에는 어린이들이 한 명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두 명처럼, 또 다른 날은 세 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날은 25명이 된다. 

학습 분위기에 따라서 이렇게 변하는 것이겠지.

선생님은 어느 날은 호랑이처럼 '어흥'그렇지만 어린이들은 금새 우당탕 ! 우당탕!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고릴라처럼 '크아아아! 크아!'
어떤 상황에서는 공룡으로 변하지만 어린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 왜 그러세요'

이렇게 어린이들과 선생님은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서로 익숙해지는 것이다. 수목원에 가던 날, 드디어 우리 반은 서로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일이 생기게 된다.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마음의 문은 더 빨리 더 크게 열리는 것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일까?


어린이를 위한 좋은 책을 출간하는 <책고래>의 책들은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은 그림책이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하는 교사 '김준호'의 간결한 문장과 일러스트 '용달'의  책의 내용을 풋풋하게 표현한 그림이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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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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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즈와 구더기>라는 책제목부터 뭔가 아리송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16세기 이탈리아의 프리올리에서 방앗간을 하던 메노키오가 이단자로 몰려서 2차례의 재판을 받고 결국에는 교황청의 명령으로 화형을 당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를 미시사적인 관점에서 구성한 역사책이자 문학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까를로 진즈부르크'는 미시사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간혹 미시사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미시사 (微時史)연구는 1970년 이탈리아에서 성립되는데, 좁은 의미에서  역사의 현장들을 분석하여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하여 나간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인데 비하여 미시사의 주인공은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이며 그를 통해서 그 시대의 문화 등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치즈와 구더기: 1976년 출간> 는 이 책이 출간되기 이전인 1973년 가을 프린스턴 대학 데이비스 역사 연구소에서 '민중 종교'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거론이 된다. '카를로 진즈부르크'는 탐정소설가와 같은 치밀함과 이야기 구사력으로 메노키오의 행적과 사고를 치밀하게 따라가면서 재구성한다.  
    메노키오의 재판에서의 증언, 주장, 재판관과의 심문과정, 마을 사람들과의 나눈 이야기 그리고 그가 읽었던 책들이 그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했는가 등을 인용하여 적는다. 
    그당시에 방앗간 주인이었던 메노키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들은 그가 읽은 책들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6세기는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달 그리고 신대륙 발견 등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다. 
    메노키오가  종교 관련 서적을 구해서 읽는 것이 수월했을 것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농부가 이런 책들을 읽었다는 것도 그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메노키오 나름의 종교관, 우주관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노키오의 생각들을 살펴보면,
    그는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마리아의 처녀성, 교황과 교회의 권위 부정, 하느님과 성경, 그리스도, 천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인간은 모두 혼돈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우주 생성론을 주장한다. 
    또한, 성직자들은 그들의 권위를 이용하여 가난한 농민을 착취했다고 말한다.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한 지고지선한 존재는 아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p. 185)
    메노키오는 책을 읽을 줄 알았고 그를 통해 스스로 자기 나름의 생각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점이 로마카톨릭 관점에서는 이단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메노키오가 읽은 책들을 보면, <멘더빌의 기사>, < 그리스도적 삶을 위한 강론서>, < 성서의 약술가>, < 코란> < 데카메론> 등이다. 
    저자는 메노키오가 읽은 책의 목록, 메노키오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종파와의 관계 분석, 재판 기록 등을 분석하여 메노키오의 주장의 근거를 찾아 본다. 저자는 이런 메노키오의 독특한 생각은 지금까지 소홀하게 여겼던 민중 문화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며 이런 생각은 개인의 생각만이 아닌 민중 문화의 뒷받침이 되었다고 말한다. 


    메노키오는 종교재판에 고발되었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단적이고 불경한 발언'을 과감하게 주장한다. 그는 자신만만하고 설득력있게 자신의 독창적인 견해를 주장한다. 나름대로 성서와 문헌을 자유롭게 해석한 놀라운 추리력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앞 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이야기도 많이 있다. 


    " 메노키오의 이야기에서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의 독특하고 심오한 문화의 꽃이 대지의 표면을 뚫고 나와 꽃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 197)
    미시사적 관점에서 본 16세기 이탈리아 농촌의 방앗간 주인의 종교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의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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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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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폴 오스터의 작품들은 오래 전에 읽었다. <뉴욕 3부작>, <달의 궁전>등을...
    그리고 오랜만에 읽은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이 책으로 폴 오스터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됐고, 영화 <스모크>와 <블루 인 더 페이스>의 영화제작 과정과 시나리오를 읽게 됐다.
    결론은 폴 오스터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됐고, 작품 역시 마음에 깊은 감흥을 줬다.
    그래서 또 한 권의 폴 오스터의 작품인 <환상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작가인 폴 오스터는 "미국 문학에서의 사실주의적 경향과 신비주의적인 전통이 혼합되고, 동시에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명상적 요소가 한데 뒤섞여 있어, 문학 장르의 모든 특징적 요소들이 혼성된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 그는 현대 작가로서는 보기 드문 재능과 문학적 깊이, 문학의 기인이라 불릴만큼 개성 있는 독창성과 담대함을 소유한 작가이기도 하다.  "( 작가 소개글 중에서)


    1947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출생하여 1924년 4월 30일에 세상을 떠났다. 


    <환상의 책>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버몬트 대학의 비교문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짐머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 (7살, 4살)을 잃게 된다. 공항까지 바래다 주고 온 짐머는 공항 가는 길에 두 아들이 다투던 모습까지도 생생한데....비행기 추락사고로 가족을 잃는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거액의 보험금이 무슨 소용이 될까. 교수직도 잠시 내려 놓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로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던 중에 우연히 tv에서 무성 영화시대의 오래된 코미디영화를 보던 중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가족의 죽음 이후 몇 개월만의 웃음.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이기도 한 헥터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헥터 만의 영화를 연구하고 마스터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으로 찾아 다닌다. 짐머에게는 가족을 잃은 후에 비행기를 타는 공포가 있었지만 의사의 처방약을 먹고 비행 내내 잠을 자면서 헥터 만의 필름 그리고 그의 자취를 찾아 다닌다. 



    9달이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에 헥터 만에 관한 <헥터 만의 무성세계>라는 책을 쓴다. 

    그런데 헥터 만은 1928년 11월에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책을 본 헥터 만의 아내가 한 장의 편지를 보낸다. 자신들이 있는 뉴멕시코의 사막 한 가운데로 찾아 와 달라고...편지의 내용을 믿지 못하고 있던 중에 짐머를 찾아 오는 사람이 있다. 앨머 그런드라는 여인. 
    앨머 그런드가 헥터 만이 그동안 만들었던 영화를 보여 주겠다는 말에 그녀를 따라 헥터 만을 찾아 가게 된다. 세상에서 사라졌던 헥터 만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이자 소설 그 자체이다. 그리고 헥터 만을 만나지만 그 다음날 아침 그는 죽었고, 그의 유언에 따라 헥터 만의 모든 영화 필름, 작업일지, 영화 시나리오 등은 불에 타 버리게 된다. 그리고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데이비드 짐머와 앨머 그런드는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다시 만나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약속한다. 



    그러나, 세상은 왜 이리도 가혹할까!  이들의 이야기는 슬픈 사랑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추리소설이 아니지만 추리소설로 읽혀도 무방한 전개, 소설 속에 또다른 영화 이야기와 소설 이야기와 같은 인생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영화 장면까지도 섬세하게 짜여져서 한 권의 소설 속에서 몇 개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의 제목인 환상의 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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