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1 - 그랜드 얼라인먼트의 아이들
박정호 지음 / 피스토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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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펼치고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권이 아닌 4-5권 정도로 기획된 책이라고 하니 아쉽다. SF공상영화를 본 듯한 재미를 준다.

저자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영화 오멘을 보고 나서란다. 너무 허술한 공포영화라서 자신이 그런 소재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공상에서 시작하여 10여년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공포영화는 무서우면 된다는 신조로 굳이 내용을 따지지 않았다. 어릴 적 영화 오멘이나 엑소시스트를 보면서 제대로 된 공포를 느꼈었다. 그러니 같은 영화를 봐도 보는 사람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부족한 부분을 가려낸 사람은 멋진 소설을 완성했고 그냥 보던 사람은 다시 그 소설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성경 내용이 많이 인용되는데 처음에는 개신교 성경을 인용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신부님이 등장하는데 개신교 성경을 인용하니까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 점을 제외하면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그랜드 얼라인먼트의 아이들, 그랜드 얼라인먼트는 행성 직렬 현상이라고 한다. 그 순간에 태어난 사람은 2천년 전의 예수님과 현재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이다. 과연 이 아이들이 크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기대가 된다.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요한 묵시록의 종말은 올 것인가.

세계 종말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막을 사람은 누구인지 솔직히 요한 묵시록을 읽어본 적이 없다. 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 조금 무섭기도 해서 읽을 생각을 못했다. 책 속에 에녹 신부님이 묵시록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도 같다. 사실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소설이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영화 오멘에서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악마가 아이의 형상으로 나타나면 주저하게 된다. 순수하고 천사 같은 아기의 모습에서 악마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책 속의 지젤도 악마인 줄도 모르고 아기의 모습으로 살려 달라는 애원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런 부분이 공포다.

차라리 흉악한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면 맞서 싸울텐데 말이다.

공포의 코드이기도 한, 악마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잘생기고 지적이고 세련된 사람의 모습을 지녔다면 그가 악마인지 알 방법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악마가 세계를 지배한다면,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악마 같은 존재로 히틀러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대학살, 비극은 인간의 마음을 지녔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역사 속 악마 같은 사람들이 여기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악마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예전에 재밌게 봤던 퇴마록의 퇴마사도 떠오르고 해리 포터도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악마와 맞설 사람은 소설처럼 특별히 선택된 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다. 악마가 단 하나의 존재가 아니니까.

현실 속의 악마는 인간의 이기심과 타락 우리 내면에 있는 악한 마음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극한 공포를 주는 것은 귀신이나 유령이 아닌 악한 인간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은 이 세상을 인간 스스로 만들어가라는 뜻이리라.

세계의 종말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 저자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인류는 옛날에도 지금과 같았어. 단지 주변이 복잡해졌을 뿐이야. 인류가 진정 발전시켜야 할 것은 문명이 아니라 인간애의 회복이야. 인간애의 회복은 몇 개의 구호단체로 해소되는 게 아니야. 인류가 목숨을 걸고 매달려야만 가능하지. 형제와 형제,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끝없이 편을 가르고 다투고 미워하는 것을 학습하고 반복하는 이상 인류에게 발전이란 없어. 인류는 차라리 가난할 때가 더 나아.

 

소설 속 케이브의 말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전에 읽었던 책 <19년간의 평화 수업>이 생각났다. 우리가 배워야 할 평화는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의 실천, 인류애일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소설<세인트>의 결말을 나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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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도 괜찮아 - 여자 혼자 떠나는 깨달음의 여행
리비 사우스웰 지음, 강주헌 옮김 / 북센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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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겪게 되는 불행과 시련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한탄하고 절망하며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선택이다. 불행과 시련을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맞닥트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의 위로일까.

만약 팔다리가 절단되고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면 저자의 친구 네이토처럼

사랑하는 친구들의 병문안과 위로의 말이 그의 고통을 달래주지는 못할 것이다. 삶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원망한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삶에 대해서. 저자는 친구의 낯선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고통 받는 영혼은 외롭고 나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고통 받는 사람을 위로해 줄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저자 리비 사우스웰은 여행을 택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녀가 선택한 여행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인 것이다. 우리 인생이 여행이란 생각이 든다.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떠난 그녀도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 인생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시간이 달래주고 육체적인 고통이 슬픔을 잊게 한다. 여행 내내 사랑하는 저스틴과 친구들을 마음에서 놓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슬픈 현실을 벗어나 여행을 떠난다고 고통스런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외로움은 고통을 더 키울 테니까.

그녀는 침묵 명상을 체험했다. 침묵을 통해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현실의 시간을 잊게 된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열흘 간의 침묵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는 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든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쏟아내는 경험. 솔직히 어떤 느낌일지 가늠할 수 없다. 그녀의 솔직하고 담담한 글을 읽으면서 그녀의 밝고 따뜻한 면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녀가 경험한 깨달음은 그녀만의 것이리라.

지금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그녀.

자신이 고통을 겪어보았기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치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선한 마음을 지닌 그녀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녀의 여행 속의 인도인들은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일에 부딪칠  때마다 어쩔 수 없잖소?라고 한다. 또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지배 속에 고통받으면서도 삶은 본질적으로 즐거운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고 있다. 그녀가 만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보여준다. 삶의 고통을 없앨 수 없다면 받아들이라고. 세상에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을 알고자 하면 여행을 하라고 하나보다. 늘 살던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행다운 여행은 해본 적 없는 나에게 그녀의 여행은

그녀가 겪은 고통은 우리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녀가 여행을 통해 과거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며

나 혼자 중얼거려본다.. 행복해도 괜찮아. 행복하기 위해 사는거야.

이 책을 읽고 나니 헤르만 헤세의 글이 생각난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 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고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의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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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송승용 지음 / 엘도라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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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재테크 책은 아니지만 꼭 알아야 할 금융상품에 관한 진실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다. 부자가 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많이 버느냐만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이 될 테니까.

요즘 인기있는 펀드에 관한 진실, 예금과 대출에 관한 진실, 보험과 연금에 관한 진실, 생활 속 금융에 관한 진실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들이 많다. 그만큼 금융 지식이 부족했고 관심이 없었다. 모르면 담당 직원에게 물어 보거나 추천해주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책에서 말해 주는 가장 중요한 진실은 직원의 추천과 설명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객의 의사와 상관없이 금융회사가 그들의 편의대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해서 상품을 추천한다는 점이다. 전혀 책임감 없는 추천으로 손해는 고스란히 고객의 몫이 된다. 직원에게 충분한 설명을 요구하고 이해가 안되면 될 때까지 설명을 듣고 직접 설명서를 확인해야 한다. 금융회사에 대해 무지하다 보니 직원들 앞에 서면 위축되는데 당당히 소비자로서 그 권리를 주장하란 부분에 공감한다. 금융소비자들의 위축된 심리를 이용해서 좌지우지하려는 금융회사들은 철저히 외면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금융 선진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 스스로 제대로 선택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를 선택하고 부당한 대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줄 아는 현명한 금융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접을 받지만 모르면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재테크 정보만큼이나 중요하며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 정말 실용적이고 알찬 책이다. 물론 여기에 금융지식을 세밀하게 다뤄주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정보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금융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책 뒷부분에 부록으로 되어있는 <대한민국 2040 재무설계 플랜>은 정말 맘에 든다. 재무설계란 무엇일까? 재무설계는 우선 자신과 가족의 생애흐름에 맞추어 가족의 꿈과 희망이 반영된 재무목표를 설정한다. 수입과 지출을 예측하여 불필요한 소비지출을 통제하고 매년 지속적인 재무점검을 통해 설정된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는 것이 재무설계의 핵심이다. 기본적인 재무설계에 대한 안내지만 우리 가족의 재무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0억 만들기와 같은 재테크 열풍보다는 실속을 챙기는 재무설계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우리 가계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경영하는 것이 기본인 것이다. 기본을 알아야 흔들림이 없다. 재무설계는 평생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현재의 재정 상태부터 노후 문제까지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의 조언대로 재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은 본인 스스로 경제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겠다.
우리 나라가 금융선진국이 되는 그날까지 저자의 금융소비자 주권찾기 캠페인에 우리 모두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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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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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퍼즐을 좋아하세요? 글쎄요. 너무 심심한데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면 해볼 수는 있겠죠.

솔직히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한 번에 볼 수 있는 그림을 굳이 왜 조각으로 나눠서 끼워 맞추기를 하는지, 아직 재미를 느낄 만큼 해 본 적이 없어요. 흥미를 못 느끼니까 시도한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되면 심심풀이 정도로는 해보겠다는 정도예요.

그런데 자기도 자신을 모를 때가 있어요. 분명히 난 별로야.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해놓고 막상 하게 되면 누구보다 열중하게 되거든요. 입으로는 재미있지 않다면서 끝까지 퍼즐을 놓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마지막 완성된 퍼즐을 보며 흐믓한 미소를 짓는

<15년 전의 날씨>를 읽으면서 어색한 기분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인 볼프 하스와 여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이거든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하고-엄밀히 말하면 읽는 거지만요- 묵묵히 있어야 하는 답답함을 느꼈어요. 전혀 내용을 알 수 없는 대화에 끼어 있는 상태였어요. 볼프 하스가 말하길, 추리소설처럼 독자들이 미리 결과를 알아버리면 김이 빠지니까 이젠 안쓴다고 할 때부터 짐작했어야 되는데, 이 소설은 만만치 않았어요.

독일어로 Wetter [베터]는 날씨, 폭풍우, 광산 갱도 안에 있는 혼합 가스, 독가스, 폭발성이 있는 가스를 지칭한다.

 -이런 정보를 맨 앞장에 적어 놓은 이유를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서야 알았어요. 전 단순한 독자라서 작가의 심오한 의도를 헤아릴 겨를 없이 읽었거든요. 여기자가 처음에 한 질문대로 볼프 하스는 결론을 처음부터 밝히고 들어간 거죠. 하지만 섬세한 부분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저를 무척 답답하게 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두 사람은 이미 소설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지만 전 아는 게 없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알게 됐죠. 

15년 전의 날씨에 대해 우리가 별로 궁금해 하지 않듯이 소설의 주인공인 비토리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어요. 볼프 하스가 그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쓰기 전까지는요. 그냥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바로 두 사람의 역할이구나. 마치 이건 비밀인데 말야.하면서 한껏 궁금증을 유발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거죠.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란 걸 인정해야겠어요. 한 권의 책을 쓰면서 독자에게는 두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만들었고 돌멩이를 은별처럼 만들었어요. 진부하지만 언어의 연금술사라고나 할까. 나중에는 여기자와 볼프 하스 간에 대화 자체가 더 흥미로웠어요. 분명 서로 공적으로 만난 사이지만 소설을 통해 뭔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자의 지적이고 예리한 질문을 통해 볼프 하스가 새롭게 자신의 글을 해석하기도 했죠.

재미있던 표현은

 사람들이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왜 자동적으로 자신들의 이성은 옷장에다 그대로 둔 채로 두 사람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인지,…”

볼프 하스와 여기자는 공적인 인터뷰 중인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5일이란 시간- 뭔가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볼프 하스의 말처럼 두 사람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독자의 심정일까요? 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읽는다면 그런 느낌 테러를 받을 거예요.

“….헛기침은 억누르고 있는 강력한 이의 제기의 표현이거나, 침묵하고 있는 공동체 앞에서 발언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 아니라,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되는 상황을 참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저도 헛기침이 나왔어요.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니 헛기침 그 자체가 재밌어지더군요. 말의 묘미를 알게 해주는 독특한 책이었어요. 과연 여기자와 볼프 하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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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의 평화수업 - 소년원에서 명문대학 로스쿨까지, 감동적인 교실 이야기
콜먼 맥카시 지음, 이철우 옮김 / 책으로여는세상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콜먼 맥카시 선생님의 평화 수업을 읽으면서 평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저 신앙적인 의미의 평화만을 알고 있던 나에게는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힘, 평화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어릴 적부터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선생님만을 만났던 나에게 선생님이란 존재는 독재자와 같은 의미였다. 비단 나만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해진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 받는 학교 머리 길이는 어디까지, 옷은 어떤 식으로, 가방이나 신발 기타 외적인 것도 자기의 개성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법이고 감히 아니라고 말하는 학생은 기본 예의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육 받았으니 편안하게 사는 방법은 체제에 순응하는 것, 독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교육의 부작용일까.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보면서도 당당하게 항변하질 못하고 아예 눈을 감아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책에서는 두 종류의 교사를 설명한다. 학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교사와 학생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힘을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교사. 문득 예전에 보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님이 떠올랐다. 내게는 영화 속 인물이었다. 감동은 받았지만 내 인생에 영향을 주기에는 미미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다. 어린 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책을 통해 훌륭한 콜먼 맥카시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평화를 배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평화는 배워야 한다. 저자가 소개한 간디, 저넷 랭킨, 도로시 데이, 조디 윌리엄스  등등을 통해서, 우리 나라의 평화주의자는 알아봐야겠다.

그만큼 평화라는 주제가 낯설고 무심했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소리를 내기가 힘들고 어른들의 토론은 아이들의 몸싸움보다 유치하고 수준이 낮다.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느긋하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상대방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말을 자르고 자기 의견만을 주장한다. 이것은 TV토론이나 국회 회의를 얘기하는 것이다. 진짜 칼만 안들었지 언어 폭력, 전쟁과 같은 토론장을 보게 된다. 사회 엘리트라는 사람들이나 평범한 나, 모두가 평화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다. 평화에 대해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모른다고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어른들의 책임이다.

가정 안에서 아이들에게 평화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새겨진 평화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나 먼저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평화 수업 중에 동물에 대한 비폭력은 갈등이 되는 주제였다. 사형제도의 부당성, 폭력성에 대한 부분, 전쟁이나 다른 폭력적인 사회 이슈들은 내 견해를 바꾸기만 하면 되지만 동물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은 구체적인 실천,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육식을 포기하고 환경 보호, 동물 보호에 앞장설 수 있을까. 어쩌면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려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평화는 작은 생명의 권리라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인 것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지 당장은 자신이 없다. 익숙했던 나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 평화를 배우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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