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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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전직 의사였던 작가의 양심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의사들의 말실수, 치명적인 의료 사고 등 실제 벌어졌던 일들을 여과 없이 담고 있다. 그래서 서두에 조심스럽게 <주의사항>을 밝히고 있다.

잘못된 병원과 의사들의 관행을 고쳐 보려는 의도로 쓰여졌기 때문에 현재 훌륭하게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의사들과는 상관 없다는 점이다. 환자에게 헌신적인 의사들과 그런 의사를 만나 본 사람들은 이 책이 필요 없다. 문제는 이들을 제외한 일반 독자들이다.

이 책의 위험과 부작용은 책을 읽으면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르는 채 속는 것 보다는 제대로 알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그것은 아직까지 존경할 만한 의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병원과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하지만 그 사실을 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환자로서 병원을 갈 때면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 스스로 건강을 잘 관리하지 못한 대가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자신이 무슨 질병이 생긴 건지 설명을 들을 수도 없다. 그저 의사의 처방 대로 정해진 약을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예전에 아는 분이 심한 두통 때문에 동네 의원에 간 적이 있다. 의사는 혈압을 재보고 높다면서 혈압약을 처방했다. 이전에 혈압 문제는 전혀 없던 분인데 연세가 많으니까 대충 진단을 내린 것이다. 머리가 계속 아픈데다가 두피가 이상해서 피부과를 가보니 대상 포진이었다. 두통의 원인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본인이 피부과를 가지 않았다면 엉뚱한 혈압약을 계속 먹어야 했을 것이다.

환자는 철저히 약자 입장이다.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의사는 대단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냉정하게 자신을 맡겨도 될 만한 의사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종속적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이들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것은 의사지만 주도권을 넘긴 것은 환자 자신이다. 예전에는 의학 지식에 관해 거의 몰랐기 때문에 무조건 의사에게 끌려갔다. 요즘은 의학 지식, 정보가 넘쳐나지만 병원과 의사라는 권위를 앞세워 환자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이제는 잘못된 권위에 맞설 때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의지가 대단하다. 의료계의 치명적인 결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옳은 일이겠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가 밝힌 내용들은 의료계의 어두운 진실이다. 상처는 감추고 덮어버리면 곪는다. 내 몸의 일부니까 상처를 그대로 놔두어야 될까?

아니다. 누군가는 상처 나서 곪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는 더 커지고 심해질 것이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의료계의 고질적인 병폐에 차가운 메스를 댔다. 눈 앞에 드러난 상처가 보기 흉하지만 직시해야 한다.

누가 상처를 냈느냐 보다는 어떻게 상처를 치료할 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당장 이 책으로 인해 의료계가 변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현명한 환자들이 많아지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본다. 책 말미에 <환자들의 생존을 위한 도움말>이 실제 우리 나라의 경우도 실려 있었다면 더욱 도움이 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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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회사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5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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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변을 둘러보라. 아니, 멀리 볼 것도 없이 나 자신을 보면 알 수 있다.

바삐 움직인다. 바쁘다고 투덜대면서도 가끔은 바쁘지 않으면 불안할 때도 있다. 세상은 과학 기술의 진보로 더욱 편리해졌다고 하는데 왜 마음의 여유는 없는 것일까?

나만의 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는 몸을 편하게 만드는 일에는 신경 쓰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신경 쓸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없는 거겠지……

그런데 현대인의 심리를 콕 집어 이야기 하는 사람을 찾았다.

바로 일본 작가 호시 신이치다. 처음 만나 본 그의 쇼트 쇼트 스토리(초단편 소설)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춘 형식이랄 수 있지만 내용은 신랄하다. 마치 감추고 싶었던 약점을 들켜버린 듯 움찔하게 된다. 기발한 반전은 놀라우면서도 씁쓸하다.

이 책은 일단 읽어봐야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워낙 짧은 이야기라서 미리 내용을 말하면 시시해질 수 있으니까.

난 읽는 내내 작가가 궁금했다. 대단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 속에 몇 십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도대체 이야기 보따리가 얼만큼 되는 걸까?

매일 치약을 짜듯 쭉 누르기만 해도 이야기가 나오는 특별한 기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점은 호시 신이치의 시리즈를 플라시보 시리즈라 부른다는 것이다.

플라시보(위약 효과)는 실제 약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통해 실제 효과를 주는 현상을 말한다. 바로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내면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기회를 준다. 실제 일어난 현실이 아닌, 그럴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현실을 움직일 수도 있다.

엉뚱한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점점 그 매력 속에 빠져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다.

책 제목으로 등장한 <도둑 회사>도 그럴 듯 하다. 물론 현실에서 주변 사람들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가끔 재미 삼아 눈여겨봐도 좋을 것이다.

상상력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호시 신이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각성제처럼 정신을 번쩍 뜨이게 한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세상, 바쁘다며 자신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던 현대인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어때? 이래도 정신 못 차릴래?

무엇이 문제였지? 그냥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지다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잊을 때가 있다. 무뎌진 사람들을 깨우는 새로운 장르, 쇼트 쇼트 스토리의 매력을 제대로 느꼈다.

너무 바빠서 책 볼 시간도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핑계 댈 여지가 없는 명쾌한 책이다.

짧지만 긴 소설 쇼트 쇼트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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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암살자
데이비드 리스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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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도직입적으로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묵직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여기서 묵직한 느낌은 지루해서가 아니라 주제의 깊이 때문이다.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통해 윤리 수업을 받은 것 같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끝까지 볼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인물의 심리, 배경 묘사가 매우 치밀해서 저절로 영상이 펼쳐진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이 이야기는 살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백과사전 외판원 일을 하는 선량한 청년 렘 엘틱이 주인공이다. 평소와 다름 없이 책을 팔기 위해 방문했던 집에서 살인 장면을 목격한다. 피해자들은 그에게서 책을 사기로 했고 수표만 받아 나갔으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살인 현장의 목격자가 된 것이다. 그가 겪은 충격적이고 당황스런 일들이 내게도 혼란을 준다. 이건 추리 소설에서 범인을 찾는 재미는 없다. 이미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가 곁에 있으니 말이다. 대신 끊임없이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는 결말이 주는 안도감은커녕 온갖 윤리적 질문들로 머리 속이 뒤죽박죽 된 느낌이다.

우리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 누가 악한 사람들을 심판할 것인가? 생명의 존엄성에도 차등이 있을 수 있는가? 선한 목적이 악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도덕적 암살자는 말한다.

“……나도 평화주의자들의 원칙을 존중해. …… 하지만 누군가 칼을 들어야 한다면 내가 들 거야. 그렇다고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야. 난 그저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행동반경의 밖에 있다는 것뿐이지. 남북전쟁 때 남부군에서 싸운 위대한 영웅들을 봐……”

           (본문 468p)

 

살인 자체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인데 암살자의 말에 반박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그를 비난하려면 이제까지 훌륭한 위인이라고 칭송하던 전쟁 영웅들은 전부 위선이며 모순이 된다. 이것이 바로 찢어진 진실이 아닐까? 굳이 그를 비난하자면 아무도 그에게 악인을 심판하라는 권한을 준 적이 없다는 점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진실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암살자의 말대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나 자신은 얼마만큼 선량한 사람인가?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내가 렘 엘틱이 된다고 해도 그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이없게 범죄 사건에 휘말린다면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량한 시민의 입장보다는 범죄자의 입장과 더 가까워진다. 범죄자도 한 때는 선량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이 단순한 변명일까?

참 알쏭달쏭 묘한 추리 소설이다. 이토록 교훈적일 수 있을까 싶다. 그것도 암살자가 우리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모순된 세상 속에서 제대로 된 진실을 찾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암살자는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고귀한 사명을 수행 중이었으니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세상에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을 보면 극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이 있다. 과연 무엇으로 그들을 처벌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이 궁극적으로 바른 세상을 위한 것인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동물 학대에 대한 부분은 새로운 주제를 던진다.

동물보다 인간이 더 우월한지, 그것을 이유로 잔혹하게 죽여도 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채식주의자가 되는 길 밖에 없다. 하지만 육식을 포기하라면 자신이 없다.

<도덕적 암살자>는 이야기가 어렵다거나 지루하지는 않으나 너무나 심오한 질문들을 던져 당황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책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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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윤지강 지음 / 예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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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설헌 초희는 누구인가?

허균의 누이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역사는 많은 것을 묻어버렸다.

? 단지 허초희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강한 자들의 전유물인지도 모른다. 시대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여인네의 삶은 한낱 먼지처럼 사라지고 만다. 다행히 허난설헌의 작품이 허균에 의해 남겨졌기에 우리는 그녀의 이름 석자를 기억할 수 있었다.

시대는 바뀌었다. 여자이기에 인정받지 못했던 천재 시인 허초희, 비록 소설이지만 그녀를 만났다는 점이 기뻤다. 치열하게 자신을 놓지 않고 비뚤어진 세상과 맞선 그녀야말로 영웅이라고 칭해야 하지 않을까? 풍유나 즐기던 양반들의 전유물인 시가 그녀를 통해 민중의 외침이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이 그녀의 시를 통해 찬란히 빛을 발했다.

역사는 순종하며 내조한 신사임당만을 칭송할 뿐,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 허난설헌은 외면했다. 역사적인 기록마저 거의 없는 것도 그녀의 존재를 애써 무시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또한 그녀의 시라고 알려진 <가위>도 작가의 짐작대로 그녀가 썼을 리 없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음탕한 문장으로 여겨질 만한 시로서 그녀를 모함할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囊中之錐(낭중지추) 주머니 속에 든 송곳처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녀의 미모와 재능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것 같다. 그것이 불행이

된 것은 시대적 비극이다. 여인의 삶을 정해진 틀에 맞추기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자유롭기란 어려운 일이다.

시는 그녀에게 있어 삶의 힘이며 자유에 대한 갈망이지 않았을까 싶다. 간혹 신사임당과 비교하여 폄하된 것도 그녀의 불행을 그녀의 탓으로 돌린 당대의 편협한 평가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 생각된다. 여성으로서의 천대는 참는다 해도 끓어오르는 예술 혼을 억누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성이 시를 쓴다는 것이 죄악시 되는 사회에서 시를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스물 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안타깝고 서글프다. () 많은 그녀의 삶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시를 쓰는 일도 사랑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앗아간 세상은 어쩌면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선계(仙界)를 노래했다. 시대를 꿰뚫는 현안을 지녔으나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공존할 수 없는 선계는 우리에게도 이상향일 것이다. 정말 그녀가 신선이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허난설헌은 위대한 시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그저 비극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비극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비록 세상은 그녀를 외면했어도 그녀의 시에는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가 주는 감동은 소중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를 노래하는 마음은 진실되며 아름답다.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시인이여, 영원히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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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부자 척피니 - 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
코너 오클리어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물푸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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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실제로 억만장자라면?

혹은 억만장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쪽이 더 놀라운 사실일까?

이 두 가지 모두 해당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의 억만장자였던 척 피니다.

그는 가난한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 부자들의 공통된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진취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식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40여 년 전 미국 상황이 젊은이들이 꿈을 펼치기에 더 좋은 조건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느 상황이든 부자가 되는 사람은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척 피니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의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 아니다. 척 피니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다.

엄청난 성공으로 부를 얻은 그가 어떻게 자신의 전 재산을 익명으로 기부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를 놀라게 한 점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기부했고 철저히 익명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면세 소매점인 듀티 프리 쇼퍼즈(DFS)의 공동창업자인 척 피니를 1988 <포브스>는 미국 갑부 목록 23위에 올리면서, 그의 재산이 13억 달러라고 소개했다. 그 때까지 사람들은 그가 억만장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무척 검소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색 바랜 티셔츠에 흔한 시계를 차고 있는 남자가 억만장자라니, 모두가 놀랐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실제로 그는 억만장자가 아니었다. 1984년 척 피니는 이미 모든 재산을 기부한 상태였다. 자신이 억만장자인 것도 숨겼지만 억만장자가 아니란 사실도 숨긴 것이다.

그가 존경했던 앤드류 카네기보다 더 많은 기부를 했고 부자로서의 책임, 세상에 대한 인류애를 지닌 그를 우리는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부자들이 있다. 듀티 프리 쇼퍼즈의 공동창업자인 밥 밀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면서 척 피니와 대조를 이룬 삶을 산다. 그는 자신의 부를 최대한 즐기면서 살고 있으며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자선활동도 한다. 하지만 밀러는 재산 대부분을 가족들에게 물려 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척 피니는 소박하고 검소한 삶처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을 묵묵히 갈뿐이지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사실 강요한다고 한들 누가 전 재산을 기부할 수 있겠는가?

피니의 비밀 자선사업이 본의 아니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애틀랜틱 필랜트로피즈(자선단체)도 지금까지의 익명 방침을 바꿨다. 익명의 기부는 훌륭하지만 결국 아무도 기부에 대해 모른다면 기부를 장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비밀스런 자선단체에서 이제는 가장 투명한 자선단체가 되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척 피니와 같은 부자가 되기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처럼 척 피니 역시 자신의 다섯 자녀들에게 존경 받는 부모란 점이 마음에 남는다. 겸손한 그는 자신의 성공을 행운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행운인 것은 훌륭한 부모님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다.

 

내게는 절대 변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내가 자랄 때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합니다. 사람은 그가 자라 온 방식에 따라 삶의 모습이 어느 정도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일했지만 부자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늘 살피셨습니다.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을 통해 배웠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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