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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정유진.한정선 옮김 / 노엔북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대부분 '나를 아는 것'에 초점을 두기 마련이라, 책 제목을 봤을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기계발서라고만 짐작했는데, '자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며 진정한 자아 찾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자신의 벽》은 '자신'에 관한 책이지만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사회와 젊은이들을 걱정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고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어요. 일본 대표적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 1937년생 도쿄대 의대 명예교수이자 저명한 해부학자인데 본업과 별개로 70년 넘게 곤충을 관찰하고 수집해온 곤충 애호가이자 연구자라고 하네요. 2003년 『바보의 벽』은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바보의 벽'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으로 일본 교양신서 사상 최고판매를 기록했고, 당시 '바보의 벽'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대요.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요로 다케시는 전공인 해부학,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제시하며 일본에서는 요로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라고 하네요.
"「자신」 이란 지도 위에서 현재의 위치를 나타내는 화살표 정도에 불과하며, 본질적으로 누구에게나 내재된 기능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 사회적으로 보아도 일본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개성을 살려라」, 「자신을 확립하라」는 교육은 젊은이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해온 것은 아닐까요.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강요해 왔으니, 결과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32p)
'진정한 나'를 '현재 위치를 가리키는 화살표'로 여긴다면 굳이 진정한 자아를 찾을 필요가 없고, 갈팡질팡 흔들려도 괜찮다는 거예요.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체이므로 개인처럼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치레)'가 존재하는데, 본심 즉 본질적인 부분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개성을 발휘하라"고 이야기한들 실현되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 방황하는 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생물학적으로 나의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공생 상태의 자연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개인 중심의 사고방식이 확산되면서 자신을 주변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세우고 관계를 끊어버려서 문제가 생긴 거죠. 가장 원시적인 의식은 외부 환경에 대응하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현실적인 환경 적응을 위해 뇌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 의식이 진화해왔다는 것, 따라서 의식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행동이나 사고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신의 몸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현대인들의 뇌는 의식만 비대해져서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혼란에 빠진 것이니, 의식 밖의 것에 주목하라고, 가능한 한 자연과 접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은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정치는 현실을 움직이지 않는다', '선거는 주술이다', '리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등등 정치에 대한 소신은 일본의 특수성을 고려한 내용이기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네요. 중요한 건 부딪히고, 망설이고, 도전하고, 실패하며 스스로 확신을 키워가야 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벽은 바로 자기 자신, 눈앞에 해답이 있는데 정답이라고 여기지 않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