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 2 1 (1) (양장)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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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상한 일이에요. 부고 소식을 통해 그의 존재를 알게 됐으니 말이에요.

폴 오스터, 미국 작가인 그는 일흔일곱 해를 살다가 2024년 4월 30일 뉴욕 브루클린 자택에서 숨을 거뒀어요. 그가 없는 세상에서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며 그를 떠올리고 있네요. '내가 그를 안다'라는 사실이 그의 삶에는 전혀 변수가 되질 않았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어땠을까요.

《4 3 2 1》은 폴 오스터의 장편소설이며, 그를 꼭닮은 주인공 퍼거슨의 인생 이야기를 네 가지 버전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숫자로만 표시된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목차에 쭉 나열된 1.0 으로 시작된 숫자는 또 뭔지는 차차 읽다 보면 알 수 있어요. 미리 맛보기, 예고편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책 맨 뒤에 나오는, 소설가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사를 먼저 읽으면 돼요. "끝까지 읽을 분들에게만 말하겠다. 이 소설의 분량은 너무 적다. ... 폴 오스터는 10년쯤 전부터 3년 동안 매일 손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4 3 2 1》은 같은 부모, 같은 주변 인물, 같은 지역을 배경으로 동일 인물의 충분히 가능했던 네 개의 삶을 순서대로 오간다. ... 소설가는 이 삶에서 실현되지 못한 것들을 쓰는 몽상가다. 이론적으로 소설가는 무한 권의 소설을 쓸 수 있다. 하지만 3년 동안 매일 써도 이 정도 분량밖에 쓰지 못한다."

소설가는 몽상가라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퍼거슨이라는 인물을 통해 꿈을 꾸는 느낌이 들어요. 퍼거슨 1, 퍼거슨 2, 퍼거슨 3, 퍼커스 4 ... 만약 시간이 허락된다면 더 많은 퍼거슨들이 등장했을 거예요. 여러 퍼거슨들이 저마다의 선택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들 모두는 결국 퍼거슨이라는 것. 가보지 않은 길, 살아본 적 없는 삶의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질 때 그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심하지 않으면 풍덩 빠져 버릴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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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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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맘 먹고 읽게 된 《돈키호테》라고 말하면 거짓말.

사실 첫 장을 펼치기가 어려운 것이지,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눈과 손이 이끄는대로~

따지고 보면 이 방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써내려간 작가도 있는데, 그 소설을 읽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요.

《돈키호테》 2권은 세르반테스가 1권을 출간한 지 10년이 지난 1615년 속편으로 발표한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 의 완역본이에요.

1권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 (1605년)에서 돈키호테는 이달고였으나 기사의 삶을 살았고, 기사가 되었기 때문에 2권 속편에서는 기사라는 호칭이 붙은 거예요. 독자에게 드리는 서문을 보면, 세르반테스의 재치가 느껴지네요.

"이거야 참! 고명하시거나 평범하신 독자여, 이 서문 속에 『돈키호테 제2편』, 그러니까 토르데시야스에서 잉태되어 타라고나에서 태어났다고들 하는 그 작품의 작가에 대한 복수나 싸움이나 비난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 이 서문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만족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 가난한 자도 명예를 가질 수 있습니다만, 부도덕한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가난이 고귀함을 흐리게 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어둡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불편함이 있고 궁핍하더라도 덕은 그 틈바구니로 얼마간 스스로의 빛을 내는 법이니, 고귀한 정신을 갖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따라서 보호를 받게 되지요. 이 작품은 확장된 돈키호테, 그리고 마침내 죽어 무덤에 묻히는 돈키호테를 당신께 드리고 있다는 겁니다. 무덤에 묻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것으로 충분합니다. 또한 이 기발한 미친 짓거리들에 대해 소식을 알리는 것은 정직한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지요. 새로운 이 미친 짓들에 개입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너무 많으면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 법이고,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부족하면 약간은 소중하게 여겨지는 법이니까요. 잊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페르실레스』가 이제 끝나 가고 있으니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라 갈라테아』 후편도 곧 나올 겁니다." (33-39p) 1권이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사기꾼들이 속편을 멋대로 출간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에 세르반테스는 정식으로 속편을 내면서 종지부를 찍은 거예요. 재미있는 건 레모스 백작에게 드리는 헌사에서 돈키호테 속편을 간절히 기다리는 독자들 중에 중국 황제가 있다면서, 사신을 통해 중국 황제가 스페인어를 가르칠 학교를 세워 거기서 읽을 책은 돈키호테 이야기이고, 총장은 세르반테스가 맡아 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겸손과 오만을 동시에 부릴 수 있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요. 그의 삶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난』 서문에서, "내 목숨이 끝나 가고 있다. 내 맥박이 달려온 기록을 보면 아무리 늦어도 이번 일요일이면 끝날 것이고, 나는 나의 삶의 여정을 마치게 될 것이다." 라면서, 독자들에게 "안녕 은혜여, 안녕 우아함이여, 안녕 나의 즐거운 친구들이여! 나는 죽어 가니 곧 다른 세상에서 다시 기쁘게 만나기를 바라오!" (908p)라는 글을 남겼는데, 일요일보다 이른 금요일(1616년 4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네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던 것 같아요.. "세상만사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고 그 시작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늘 쇠락해 가니, 특히나 인간의 목숨이 그러하다." (878p) 라면서 돈키호테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 속편, 2권의 마지막은 '안녕'이라는 뜻의 라틴어 'Vale'로 끝맺고 있어요. 착한 돈키호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돈키호테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삶을 산다면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기꺼이 안녕,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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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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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벽돌책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완역본을 읽는 건 처음이에요.

읽지 않은 책인데 왠지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명작들이 있잖아요. 특히 돈키호테는 연극, 뮤지컬로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라서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돈키호테를 마음 속에 품고 있었는데, 김호연 작가님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다가 너무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난 거예요.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그러다가 《돈키호테》를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었더니 눈앞에 딱!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새로운 한국어판 《돈키호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 책이 나온 거예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라서 읽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싶었는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신세계였어요. 서문을 보면, "한가로운 독자여, 제가 제 지혜의 산물인 이 책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사려 깊고 가장 멋진 책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27p)로 시작되는데,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돈키호테의 아버지'라고 표현하면서 무작정 못난 아들을 자랑하는 팔불출이 아니라 철저히 '계부의 입장'에서 했노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났네요. 책을 쓰는 일이 가장 힘들었지만, 실은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서문을 쓰는 게 가장 힘듭니다." (28p)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돈키호테 데 라마차에 대해서는 몬티엘 지역 주민들의 말을 빌려, "지금까지 그 지역에서 나왔던 가장 순수한 연인에 제일 용감한 기사였다" (36p) 라며 돈키호테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네요. 아무리 소설 속 인물이라고 해도, 이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 가족과 다름 없을 것 같아요. 더군다나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 작가의 진심이 통했네요.

이번 완역본에는1605년 초판본 표지와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를 만날 수 있어요. 폴 구스타브 도레는 프랑스 삽화가이자 판화작가이며 그가 그린 《돈키호테》의 삽화가 현재까지 그려진 삽화 중 최고로 꼽는다고 해요. 실제로 삽화를 보고 있노라면 인물들의 표정과 주변 풍경들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묘하게 빨려드는 느낌이에요. 삽화 아래에 짤막한 설명이 적혀 있어서 동화책 같기도 해요.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있는 돈키호테의 주변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그림 아래에는 "기사 소설에 푹 빠진 그는 이제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53p) 라고 적혀 있는데, 그림 자체가 예술이네요. 검은 펜으로 그려진 세밀화, 흑백의 그림인데도 묘사가 탁월해서 입체적으로 느껴져요.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인데 이미 삽화가들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영상을 넣어준 것 같아요.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돈키호테》 1권은 1605년 세르반테스가 쉰일곱 살 되던 해에 발표한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 전편이고 , 2권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615년 속편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 를 번역한 것이라고 하네요. 세르반테스는 이듬해 4월 세상을 떠났어요.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돈키호테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게 될 줄 알았을까요. 왠지 알았던 것 같아요. 발표된 당시에도 폭발적 인기를 누렸는데, 다들 바보가 아니라는 걸 티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훌륭한 사람들이라면 척 알아볼 수밖에 없는 걸작 《돈키호테》니까요.


"책 돈키호테여, 네가 조심해서

훌륭한 사람들에게 가면

경험이 없는 자도 네가 뭘 모른다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네가 바보들의

손에 들어가고자

안달할 때면

설혹 그들이 똑똑한 척하더라도

즉각 그들이 바보임을

알게 될 것이다." (37-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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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고정욱 지음 / 샘터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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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동화작가 고정욱님의 신작 에세이가 나왔네요.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은 고정욱 작가님의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가 담긴 책이에요.

담담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좌절했던 경험과 여러 번의 고비를 들려주고 있어요. 마치 도미노처럼, 딱 한 번 멋진 도미노 현상을 보기 위해 몇 번씩 반복해서 쓰러진 도미노를 세우고 또 세워서 최종적으로는 아름답게 쓰러지는 단 한 번의 장면을 구현내듯이, 저자는 좌절하고 실패해도 다시 살아갈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해주네요. 고정욱 작가님의 대표 작품으로는 <가방 들어 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등, 주로 장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마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요.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잘못되거나 틀린 게 아니라는 것, 장애인 역시 어딘가 불편함을 지녔을 뿐이지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장애에 대한 편견과 오해, 차별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려면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해요. 저자는 장애 때문에 어려서부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가장 많이 도와주고 지지해줬던 가족 덕분에 사랑을 느끼고 배웠다고 해요. 힘들어서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소중한 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 책 그리고 용기와 소명 덕분이었다고 이야기하네요. 그러니 삶이 힘들고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나 보자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한 번도 좌절한 적 없는 사람은 아직 일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저자는 여러 번 쓰러지고 세워진 도미노처럼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해봤기에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어요. 거창한 조언이나 철학 없이, 그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네요. 우리는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며,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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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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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근래 요 몇 달 동안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었어요.

을사오적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동의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을 가리키는 말인데, 120년이 지난 2025년 또 다른 을사년에 이들을 떠올리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마저도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고위관료를 보면서 한심했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올바른 역사 교육이 절실한 시기인지라 이 책을 읽게 됐네요.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는 현직 도슨트 문재옥님과 함께 하는 한국 근현대사 14곳을 답사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에서는 병인양요부터 개항까지 조선을 지켰던 강화도에서 시작하여 조선 근대화의 현장인 북촌과 정동, 일제 침략의 현장인 남산, 명동, 남대문, 독립운동의 현장인 북촌, 종로, 효창공원, 해방 정국의 현장인 돈암장, 이화장, 경교장, 삼청장,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인 서대문형무소와 4·19기념탑,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주는 창신동, 평화시장, 을지로 특화 거리, 세운상가, 소공동,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북악산길, 청와대, 세종대로를 답사 코스 지도와 함께 소개하고 있어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이 강화도와 인천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아이들과 역사 탐방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일상의 장소들이 역사를 알고 나면 특별한 역사의 현장으로 인식되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운 것 같아요. 딱딱한 역사책이 아니라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장들을 둘러보며 역사의 장면들을 떠올리니 새삼 역사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네요. 지금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민주주의를 향한 한 걸음, 조금은 더딜지 몰라도 끝까지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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