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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했다고? ㅣ I LOVE 아티스트
파우스토 질베르티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현대미술은 난해한 것 같아요.
처음에 <샘>이라는 작품을 봤을 때 좀 놀랐어요. 변기가 예술품이 된다는 게 엉뚱한 장난처럼 느껴졌거든요. 미술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 건 알겠는데 왜 대단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는 걸까요.
《마르셀 뒤샹,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했다고?》는 파우스토 질베르티 작가의 어린이 그림책이에요.
저자는 이탈리아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어린이책 작가인데, 사랑하는 두 자녀에게 현대 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기 위해 이 그림책을 만들었대요. 일단 마르셀 뒤샹의 얼굴 그림이 인상적이에요. 깔끔한 몇 개의 선으로 특징을 잡아낸 것이 신기해요. 색감만 보면 흑백의 그림, 단순하지만 마르셀 뒤샹과 작품을 소개하는 데에 꽤 효과적인 방식인 것 같아요. 저자가 그림으로 표현한 뒤샹의 작품들을 사진으로 찾아보니 거의 똑같은 이미지더라고요. 무엇보다도 뒤샹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 해설이 훌륭한 것 같아요.
"뒤샹의 작품은 정말 이상하고 특이했지. 그렇지 않아? 그것들은 그림도 아니고 조각품도 아니잖아! 그럼,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해 왔지. 예술 전문가들조차도 말이야. 하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래, 뒤샹에게 필요한 것은 이름이었어. 그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가만히 있다가, 이렇게 말했지.
레디메이드!
... 이미 만들어진 물건들을 고르고, 사인하고, 제목을 붙여 전시한 저 소변기나 자전거 바퀴처럼 말이야. 그것들을 예술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거야. 놀이야, 예술과 함께 노는 거야."
(*레디메이드 : 기성품, 즉 대량으로 미리 만들어 놓고 파는 물건을 뜻함. 뒤샹이 이미 생산한 제품을 예술 작품으로 전시하며 자신의 작품에 붙인 말.)
그러니까 뒤샹이 해낸 것은 기존의 예술적 개념을 뒤엎고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고, 현대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에요. 예술은 무엇인가, 뒤샹은 예술의 본질이 물질적 요소가 아닌 기성품에 의미를 부여한 제작 의도에 있다고 본 거예요. 물론 처음부터 인정받은 건 아니에요. 공중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용 소변기에 붓으로 'R. MUTT 1917' 사인을 하고는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미국 뉴욕의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했는데, <샘>을 전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난리가 났지만 결과적으론 전시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해요. 근데 협회 사람들이 몰랐던 놀라운 사실은, 당시 협회 작품설치 위원회 의장이었던 마르셀 뒤샹이 몰래 <샘>을 출품했던 거예요. 뒤샹의 의도를 읽는 것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어요. 전혀 아름답지 않은 소변기를 통해 왜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고 감각적이어야 하는지, 왜 이것은 예술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든 거죠. 레디메이드 개념을 처음 고안한 뒤샹 덕분에 미술이란 작가의 행위 없이 선택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의 확장,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열린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일상의 사물들을 가져다가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뒤샹의 작품처럼 예술품으로 인정받지는 못할 거에요. 중요한 건 예술은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누구든지 새로운 관점으로 특별한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위대한 예술가 마르셀 뒤샹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멋진 그림책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