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카페 도도 카페 도도
시메노 나기 지음, 장민주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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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견디기 힘든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미레이는 여름날 1인 전용 카페에서 먹었던 푸딩을 떠올린다. 푸딩과 푸딩 틀을 나이프로 분리한 다음 접시를 덮고 뒤집는다. 틀을 빼내면 접시에 푸딩이 해방된 것처럼 떨어졌다. 뚜껑을 덮은 마음, 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때 주인장이 푸딩에 찔러 넣었던 미니 나이프를 보여주었던 것 같은데... '양날.' 양면성, 이면, 모든 방향. 한쪽만 보면 알 수 없는 진실이 있는 게 아닐까. 양면을 볼 때 비로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p.104


도시의 어느 거리 한구석,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호젓이 자리한 작고 비밀스러운 카페가 있다. 카운터에 의자 다섯 개, 정원에 테이블 세트 하나가 전부인 작은 카페 도도. 주인장 소로리는 도시의 바쁜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이곳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1인 전용 카페라서 손님들은 모두 혼자서 방문한다. 오늘은 저녁에 문을 열고 얼마 안 되어 벌써 만석이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안개 속의 페이스트리 파이'이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누군가 지켜보는 걸까 싶어 가슴이 철렁하면서 손님들은 페이스트리 버터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흠뻑 들이마신다. 안개 속에 있는 모두의 마음이 언젠가는 화창하게 개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소로리는 손님들에게 오늘의 메뉴를 가져온다.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장 소로리는 키가 훤칠하고, 수줍은 눈웃음을 띠고 있는 남자다. 진지하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차분한 이미지에 비해 약간 덜렁대기도 하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인물들을 위로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신비로운 음식을 개발해 내 놓는데, 지난 1권과 2권에서는 이런 음식들이 등장했었다. 자기긍정력을 높여주는 주전자 커피, 비 내리는 날의 샌드위치, 나를 돌보는 달콤한 디저트 마시멜로 구이, 숲의 선물 버섯 타르트, 꿈에 잘 듣는 스튜, 행복을 가져오는 통사과구이 그리고 그대만의 정답 스패니시 오믈렛, 상처받지 않도록 오이 포타주, 시간을 되돌리는 버섯 아히요, 자신감을 주는 앙버터 토스트까지 이름만 보더라도 어떤 음식인지,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 메뉴들이다. 겉보기에는 어디에나 흔히 있을 법한 주택가의 한구석에 이런 카페가 있다면 갑자기 초현실적인 공간에 빨려 들어온 듯한 기분도 들 것만 같다. 어쩐지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메뉴들이니 말이다.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떠오르길 기다리는 오차즈케. 

변함없이 독특한 메뉴 이름이군요. 소로리는 그날 방문하는 고객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레시피를 생각하나 봅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 모르겠네요. 소로리가 생각한 메뉴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저절로 이 숲을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고개를 숙인 채 골목에 나타난 이 손님도 틀림없이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테죠.              p.162


'카페 도도'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이자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다. <밤에만 열리는 카페 도도>, <카페 도도에 오면 마음의 비가 그칩니다>에 이어 <시간이 멈춘 카페 도도>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달리는 일상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을 때, 도시의 떠들썩한 소음으로부터 떨어져 조금은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이곳을 찾아 온다. 주인장 소로리가 개발한 ‘오늘의 추천 메뉴’에 따라 각 장이 구성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안개 속의 페이스트리 파이, 견디기 힘든 마음에 뚜껑을 덮는 커스터드푸딩, 흑백을 가르지 않는 케이크 살레,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떠오르길 기다리는 오차즈케, 잠시 멈춤을 위한 미트소스 그라탱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실직과 이혼으로 인해 평소 함께 하던 도예 교실 동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없고, 누군가는 의류 업계에서 일하면서 프리랜서 판매원에게 경쟁심을 느끼며 위축되어 있고, 또 누군가는 근속 연수가 긴 베테랑임에도 매번 혼잡한 지하철 역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이다. 직장에서 퇴직 후 엄마를 도와주다 혼자 베이커리를 운영하게 된 누군가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가게 이전 때문에 고민이다. 


이렇게 나이도 하는 일도, 성격도, 처해 있는 상황도 모두 다른 4명의 여성들은 카페 도도를 통해서 멈춤의 시간을 가진다. 지치고 힘든 손님들이 카페 도도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고,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도 힐링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카페 도도를 찾아온 손님들은  ‘오늘의 추천 메뉴’ 한 접시로 위로 받고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간다. 우리는 더 많이, 더 많이,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바라며 살고 있다. 사실 행복의 허들을 내리면 아주 작은 일에도 만족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 작품은 행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특별한 이름이 붙은 오늘의 추천 메뉴를 만나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실제로 도쿄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탄생했는데, 카페 도도같은 곳이 정말 있다면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날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음식과 깊고 향긋한 커피 향이 반겨주는 곳, 카페 도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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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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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그녀가 확실하게 아는 것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이룩했던 깊은 연결은 죽어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p.77


10년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그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30년 이상 함깨 했던 애나는 그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남겨진 이는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아주 좋은 봄날 아침이었다. 바움가트너는 서재에서 글을 쓰다 필요한 책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부엌에서 나는 냄새에 가보니 아침으로 먹을 달걀을 삶던 냄비가 타버렸고, 그걸 들어올리려다 손을 데고 만다. 일주일에 두 번 집에 와서 청소를 해주던 플로레스 부인의 딸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다쳐 어머니가 일을 못가게 되었다고 울먹이고, 바움가트너는 어린 소녀를 달래주느라 10분이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전기 회사의 계량기 검침원을 지하실로 안내하다 헛딛는 바람에 무릎과 팔꿈치를 다친다.


바움가트너는 이날 아침에만 두 번째로 아파서 소리를 지른다. 이제 그는 쓰고 있던 에세이도, 가져갈 계획이던 책도, 누이에게 전화를 걸기로 한 약속도 모두 까맣게 잊어 버린다. 이상한 사건 사고로 얼룩진 그날, 통증과 피로로 인한 안개 속에서 시커메진 냄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에게 <그때>라는 사라진 세계가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대학원 1학년생이던 때부터,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고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양장점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 이르기까지.... 한 인물의 내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아내가 평생 써왔으나 한 번도 발표한 적 없던 글들과 바움가트너가 집필하고 있는 원고들이 그의 내적인 여정과 긴밀하고도 자연스럽게 뒤얽히면서 그는 비로소 과거를 두려움 없이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에게는 엄숙하지만 의기양양한 순간, 평생 다른 어떤 때와도 다른 시간이다.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마흔두 살에 마침내 아버지라, 그는 생각한다. 42년의 실패와 좌절, 그러다 이제 적어도 이 하룻밤, 적어도 이 몇 시간 동안은 행복을 닮은 어떤 상태로 있을 법하지 않은 전환이 이루어졌다.                p.151~152


이 작품은 폴 오스터가 투병 중에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이 작품을 가제본으로 먼저 만나보았다.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때문인지, 본책의 표지가 정말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본책으로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허구와 환상을 넘나들며 한 사람의 삶을 그려나간다. 물론 삶 전체가 아니라 주인공이 70년이 넘는 인생 가운데 마지막 2년 정도라는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읽다 보면 생애 전체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한 사람의 삶은 정원 속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 속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삶의 조각들을 그러 모은다. 특히나 이 작품은 폴 오스터가 죽음을 앞두고 써낸 그의 유작이기에 더욱 절실하고도 감동적이다.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을 수도, 예상치 못했던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삶이지만, 우리가 그 모든 일에 미리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맞이하게 되는 기쁨과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에 망치로 두들겨 맞아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는 절망이 공존하는 것이 삶이니 말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 '상실'과 기억' 또한 갑작스럽게 우리를 찾아온다. 냄비가 그을리고, 그가 층계에서 굴러 떨어지던 날 견고하게 묻어 두었던 과거에 금이 가고 쪼개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밀도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 작품은 상실과 기억에 관한 아름다운 사유를 보여준다.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지는데,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걸까. 폴 오스터의 빛나는 마지막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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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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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봤습니다. 어깨에 똥을 싸지르는 비둘기보다 당신이 나은 게 하나라도 있을까요? 역겹고 불쾌하기 짝이 없군요. “왈왈왈, 나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허접한 머저리입니다. 사람들 주목을 받고 싶어 칭얼거리는 개새끼입니다.” SNS에 영광을 돌려야겠네요, 아주 잠시나마 유명세를 누렸을 테니. 내가 당신에게 답장을 쓰는 게 그 증거입니다.          p.8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사십대 작가 오스카는 파리의 거리에서 우연히 동경하던 배우 레베카를 본다. '위험하고, 치명적이며, 연약하고, 애처롭다가도, 때론 영웅적이기까지 한 여자'였던 그녀가 '살이 올랐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옷차림에 피부 상태도 엉망'이었다고,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다. 레베카는 '지고의 아름다움이 완전히 몰락해버렸다'고 자신의 외모를 폄하하는 글을 보고 그에게 항의하는 메일을 보낸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시작되는 그 메일에서 그녀는 역겹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의 감정을 온갖 저주의 말과 함께 내뱉는다. 적의로 가득찬 레베카의 메일에 오스카는 의도적으로 신랄하게 쓴 글이었다며 사과를 하지만, 사실 그녀의 반응이 꽤 재미있었다는 말로 답신을 보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이어가면서 마치 친구사이처럼 각자의 속에 있던 말을 나누게 된다. 오스카는 도서 홍보 담당자였던 이십대 여성 조에에게 미투 고발을 당했고, 알코올과 마약 등 온갖 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고, 레베카는 오십대에 접어들면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제한되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오스카는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이 노동 계급 출신인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주장했다. 한편, 20대 조에는 몇 년 전부터 페미니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악의에 찬 공격과 살해 및 강간 운운하는 협박 등의 댓글에는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오스카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한 뒤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항의 글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조에가 느낀 감정이 틀렸다고, 그녀의 관점이 테러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찾아내 위협하고 모욕하는 글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폭로를 이어나간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의 성이 저지른 사기이다. 남자들의 성관계 목표는 사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보다는 인정에 가깝다." 여기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친구는 말합니다. 여성에 관한 음모론에 가까운 생각 말입니다... 피의자는 언제나 희생자인 척합니다.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퍼뜨립니다. 그 사이에 ‘인정’은 있을 수 없다고요. 그들에게 여성은 이상한 성이자, 적에 해당하는 성별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p.102


비르지니 데팡트는 남성 작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폭력과 포르노그래피를 정면으로 다루며 프랑스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가이다. 데뷔 이래로 열일곱 살에 겪은 집단강간,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이력, 성 노동자로 일한 경험, 퀴어로서의 정체성 등 비주류 여성으로 살아온 삶을 질료 삼아 폭력적 남성성과 정상성을 겨냥하는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데뷔작 <베즈 무아>에서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포르노그래피와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고, <킹콩걸>은 실제로 열일곱 살에 집단강간을 당하고 성 노동자로 일한 경험 등을 다룬 논픽션이었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 소개되었었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다. 주류에서 소외돈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가 궁금했다면, 이번에 나온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처음 만나도 좋을 것 같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20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번 작품은 미투 고발자인 20대 여성과 미투 가해자인 40대 남성, 그리고 관찰자이자 방관자인 5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서간체 소설이다. 현대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가 '서간체'라는 형식으로 쓰여 더욱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세 인물이 치열하게 반목하는 과정을 통해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세대 갈등과 남녀 분열이 극심해진 현대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청년 세대와 기득권 세대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을까. 현실감 넘치는 인물 설정과 신랄한 유머로 무장하고 갈등과 논쟁의 장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이 뜨거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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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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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이라는 이슈에는 '같은 환자'끼리의 연대와 돌봄, '같지 않은 환자'들 개개인의 계급성까지 중층적인 '진짜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분포돼 있다. '환자'가 끝내 외모를 변화시키고 획득하고 싶었던 지위나 사회적 인정에 관한 문제도 이 '외모 인생 이야기' 속에 포함돼야 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얼굴과 이름을 바꾸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성공 사례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이는 성형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환상을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 '인생 메이크오버' 또한 시장 경제의 바탕 위에서 돈과 네트워크, 정보력 있는 사람들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다.               p.111



제목인 '바디올로지(bodiology)'는 몸을 뜻하는 '보디body'와 학문을 의미하는 '올로지-ology'를 결합한 조어다. 몸에 관한 담론으로부터 시작해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가슴, 엉덩이, 각선미, 발, 얼굴, 성형, 거식증, 피부, 손, 눈물, 단식 등 신체의 각 부분이나 몸과 관련된 스물아홉 편의 글은 한겨레 신문에 칼럼으로 연재된 것을 책으로 묶었다. 


여자들 중에 다이어트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먹으면 살이 쪄 뚱보가 될 거라는 공포와 불안감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급기야는 자신의 몸을 지나치게 통제해서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10대 여성의 거식증은 매년 늘어가고 있고, 이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는 섭식장애의 대표적 질환이다. 때로 거식증은 지나치게 먹는 '신경성 폭식증'으로 변하기도 한다. 거식증은 완치가 어렵고 치사율이 약 5퍼센트로 정신 질환 중 가장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라 이는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거식증은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며 예산을 투입해 더 깊고 넓게 연구하고 개입해야 할 이슈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마른 몸을 아름답다고 보는 시선, 날씬한 몸에만 주어지는 기회, 몸이 큰 여성을 비난하고 수치심을 주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을 굶주리게 한다. 우리는 위험한 것이 굶는 여성이 아니라 굶기는 사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한 손으로 다른 사람을 껴안고, 다른 손으로 공격하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 나아가 주먹은 반드시 남을 가격하기 위해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주먹은 저항하기 위해서 휘두를 때, 데모할 때 유용하다. 쓰러진 사람이 각오를 다지면서 다시 일어설 때, 타인에게 용기를 줄 때도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린다. 주먹을 쥘 때 엄지손가락은 나머지 손가락과 다른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이를 맞섬opposition이라고 한다. 엄지의 맞섬은 도구적 인간, 싸우는 인간, 저항적 인간을 만들어냈다. 평화가 투쟁과 저항 없이 저절로 이뤄질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손은 그 빛과 그림자 모두를 거머쥐도록 변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p.188


이 책에는 문학 작품 속에 드러난 이성애자 남성들의 유난한 가슴 사랑, 크고 빵빵한 엉덩이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든 역사 속에 숨어 있는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 걷고 싶을 때 걷고, 가고 싶은 곳에 언제라도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한 보행의 자유를 얻지 못했던 여성들의 역사, 객관적 미인의 기준을 세우고 예쁜 얼굴을 판별하기 위해 과학을 동원해 수치화되는 얼굴 에 관한 담론,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성형 강국 한국'이라는 말, 피부를 가진 동물이 접촉을 통해 느끼는 사회적 온기, 공기마저 자본이 되는 세상 등 다양한 담론이 담겨 있다. '몸'이라는 것이 단순한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억압과 폭력이 새겨진 텍스트라는 점이 이 모든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있다. 인류의 몸이 언제부터 강력한 물적 자본으로 부상했는지 살펴보고, 사회적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몸을 향한 우리의 모든 편견을 부서뜨린다. 


몸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시선, 담론, 말뭉치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몸을 가꾸는 것이 자기계발의 일부로 취급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얼굴, 성형, 살집, 머리카락, 섹스와 출산, 피부, 허기와 식인(카니발리즘), 죽음, 부활 등 인간의 몸 이야기에는 인류가 겪은 억압과 권력, 극복의 서사가 모두 담겨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몸 담론으로 본 사회사이자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인의 신체에는 한반도의 근대사가 응축되어 있다. ‘얼평’ ‘몸평’의 변화상을 통해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읽는 경험은 가히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우리 모두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이라는 신전을 짓는 건축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 몸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고, 언제든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을 통해 몸을 향한 보이지 않던 수많은 억압에 대해 깨닫게 되고, 사회 속에서 우리 몸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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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프로젝트 - 나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집중의 힘
에릭 퀄먼 지음, 안기순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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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언가에 시간을 쓸 때마다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나무 바닥에 손수 페인트칠을 하느라 쏟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다른 일을 해서 350달러를 벌 수도 있다. 비용이 349.99달러 이하이면 외주를 주는 대안에 즉시 "Yes"라고 해야 한다. 이 공식은 꽤 간단해 보이지만 설사 돈이 있더라도 실천하기 어렵다. 잔디를 깎거나 나무를 다듬거나 집을 청소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게으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지불해서 시간을 살지 묻는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누구나 단호하게 "Yes"라고 대답한다.            p.154


《해리 포터》 조앤 K. 롤링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2위로 선정된 에릭 퀄먼은 전 세계 55개국 5,000만 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동기부여 전문가이다. 그는 구글, 페이스북, 삼성 등 글로벌 기업, 버락 오바마, 워렌 버핏, 일론 머스크 등 전 세계 셀럽들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집중과 유지'가 있다. 한 기업의 대표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비결’을 '집중'이라고 말했는데,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가장 어려운 점" 또한 '집중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집중과 유지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바로 최고의 난제인 ‘일과 생활’에서의 균형 실현이 가능한 유일한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중을 학습할 수 있을까? 근육처럼 훈련할 수 있을까?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답을 들려 준다. 우리는 대부분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면서도, 작은 보폭으로 한 번에 한 걸음씩 꾸준히 내디디면서 한 달, 1년, 일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매일 어떤 작은 단계를 밟아서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12개월 동안 집중할 목록을 열두 가지로 좁혔다. 집중할 일과 집중하지 않을 일을 미리 선택하고, 가장 중요한 대상에 집중하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가지 주제를 정해 집중을 훈련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추진력을 유지해야 한다. 스페인어 학습 앱에서 단계를 계속 살리든, 40일 동안 초콜릿을 끊든, 딸이 100일 동안 하루 15분씩 피아노 연습을 하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추진력을 사용해야 한다. 자신에게 효과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사용하라.

우리는 사고방식을 급진적으로 바꿔야 한다.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나는 10년 동안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변화는 언어 학습 속도를 급격하게 증가시키는데 유용하게 작용했다.             p.251~252


1월에는 '성장'에 집중하기로 한다. 사람마다 성장시키려 집중하는 대상이 다를 수 있지만, 처음에는 자신이 절대 실패하지 않을 대상을 중심으로 집중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결과를 도출하는 데 중요한 대상에 집중해보자. 내가 잘해야 하는 한 가지를 정한 뒤, 의도적으로 집중해 보는 것이다. 극적인 집중은 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2월에는 '시간 관'를 집중 강화 대상으로 정하고 연습해본다. 일정표를 짜고,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을 작성하고, 잘 정리해서 시간을 잘 관리해보는 것이다. 3월에는 '가족과 친구', 4월에는 ‘건강’, 5월에는 ‘관계’, 6월에는 ‘배움’에 집중해 본다. 그리고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포커스 프로젝트’의 메인 솔루션인, ‘창의성’에 집중하는 것을 시작한다. 8월에는 '공감', 9월에는 '마음챙김', 10월에는 ‘베풂’, 11월에는 '감사', 그리고 12월에는 '스스로에 집중'하는 것으로 프로젝트가 끝이 난다. 마지막 달에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습관에 집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매일 주어지는 시간의 양은 누구에게나 같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같은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누군가는 늘 시간에 쫓겨 허덕이며 살아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집중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이 책과 함께 매일 연습해보자.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새로운 결말을 맞기 위한 삶을 오늘 시작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감정과 몸이 늘 극도로 지쳐 있다면, 상당히 바쁘게 일하는데도 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면, 여러 가지 일을 완수하지만 여전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느라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레이디 가가, 톰 행크스, 제니퍼 로페즈가 극찬한 ‘포커스 프로젝트’의 미러클 솔루션이 번아웃을 극복하고, ‘일과 생활’의 완벽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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