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세계 - 시공을 넘어 공명하는 영혼의 행방
에노모토 마사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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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야기를 지탱해야 할 중요한 배경은 극 중에 아예 그려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려진다. 관객의 상상에 모든 걸 위탁한다. 애니메이션은 시간에 구속되는 미디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끝내려면 '생략'과 '편집'이 필요하다. '무엇을 그릴지'가 아니라 '무엇을 그리지 않을지'가 중요해진다. 시간제한이 큰 단편 작품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발상을 택했을 때 '중경의 배제'는 필연이 된다. 이는 신카이가 추진한 표현의 효율성과 경제성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p.71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언어의 정원>, <스즈메의 문단속>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모든 작품을 해설한 책이다. 문예평론가 에노모토 마사키는 초기의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영상문학으로 분석한다. 또한 각종 매체에 소개된 인터뷰, 대담 등을 모아 각 작품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후반부에는 <날씨의 아이>와 <스즈메의 문단속>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의 최신 인터뷰도 꽤 긴 분량으로 담겨 있다. 


유화를 그리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머니의 책장에서 책을 골라 읽었던 소년 시절부터 신카이 마코토라는 재능이 탄생한 배경도 흥미로웠고 그가 디지털 애니메이션 독립 제작을 시작한 과정을 다루고 있어 인상깊게 읽었다. 첫 번째 출발이 되었던 <별의 목소리>의 메이킹 스토리, 새로운 제작 환경에서 만든 첫 장편 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제작 환경을 최소한으로 했던 <초속 5센티미터>,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오마주 <별을 쫓는 아이>,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감독이 주제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의 조화에 대해 고민했던 <언어의 정원>,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인기작 <너의 이름은.>, 이야기에 적합한 캐릭터를 찾기 위해 고심했던 <날씨의 아이>, 현실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 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 작품을 글로 읽어 내는 시간은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주었다. 




내가 사는 곳을 좋아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도쿄의 풍경을 아주 좋아합니다. 사람이란 장소에 추억이 쌓여야 그곳을 좋아하게 됩니다. 좋아하지 않던 곳도 친구와 수다 떨며 돌아오거나 좋아하는 여자와 나란히 걸었다면 특별한 장소가 되잖아요. 그런 경험을 거쳐 서서히 도쿄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추억과 기억이 엮이면 장소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때 느낀 점을 이후 모든 작품에 관통하는 철학 비슷한 원체험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p.315~316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장르를 크게 좋아하지 않던 일반 관객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가장 최근 작인 <스즈메의 문단속>만 하더라도 국내 관객수가 558만이니 그 대중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이유없는 죽음이라는 결과에 대항하기 위해 이른바 재난 3부작을 만든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이다. 각각 서로 다른 형태의 재난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견딜수 없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삶이란 반복되는 상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고, 우리는 그 상실감을 끌어안고 또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간절한 마음이 이뤄내는 기적이라는 희망과 낙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는 시간 구성과 시골과 도시의 대조적인 배치, 고층 빌딩과 전차에 대한 집착 등 신카이 작품의 표현에서 핵심이 되는 각종 모티프와 '세계를 긍정하는 의사'에 집약되어 있는 그의 이념, 커뮤니케이션과 디스커뮤니케이션, 혹은 교류와 단절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최대 주제를 짚어낸다. 아름다운 하늘과 구름 같은 자연, 전봇대와 전깃줄, 건물 등의 생생한 인공물 묘사로 상징되는 배경 미술에 대한 분석과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를 잃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의 딜레마 등을 문학적 시점에서 평론하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는 자신은 타고낭 능력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독서 취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하드한 물리 이론으로 버무려진 그렉 이건의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류츠신의 <삼체>도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SF의 상상력과 함께 자신만의 애니미즘과 판타지가 융합된 비주얼 세계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바탕이 되어 준다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너의 이름은,>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데, 각자 한 편씩은 좋아하는 작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이 책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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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변호사 파란 이야기 21
허교범 지음, 현단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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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언제나 피해를 당한다. 세상에는 아주 착한 사람이 약간, 아주 나쁜 사람도 약간, 양쪽 다 아닌 사람이 잔뜩 있다. 나쁜 사람은 언제나 착한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그건 늑대가 양을 찾는 것과 이유가 같다. 이것이 변호사의 생각이었다. 변호사는 세상을 믿지 않았다. 이번에도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 사실이 아니지만 어쨌든 반 아이들 전부가 그렇게 믿을 테고 그러면 사실이 되는 세상이었다.                p.43


그 일은 체육 시간을 전후로 일어났다. 그날 체육 시간에는 편을 나눠 피구 대결을 했는데, 성희가 발목을 삐어 혼자 보건실에 가게 된다. 간단한 치료를 받은 뒤 교실에 왔는데, 한 사람의 책상이 넘어지고 내팽개쳐진 가방 속 물건이 모두 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사람의 악한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 장면에 놀란 성희는 물건을 하나씩 주워 담았고, 마침 체육 시간이 끝나고 온 아이들은 모두 성희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범인이 되어 버린 성희에게 선생님은 학급 재판을 제시한다. 그렇게 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반장이 검사가 되었고, 변호사를 맡겠다고 나선 아이는 반에서 가장 영향력이 미미한 사람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책만 읽는 아이가 변호사가 된 것이다. 피고인 성희를 비롯해서 반장과 아이들 모두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재판장인 선생님의 생각만은 달랐다.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재판까지 이레, 일곱 날이 남았다.


사실 아이들은 다 반장 편이었고, 반장은 피고인인 성희를 미워했다. 선생님은 반장에서 판사 자리를 권유했지만, 반장이 검사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거였다. 피고인을 파멸시키려는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누가 변호를 맡든 이길 확률이 없는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변호사 역할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아이도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변호사가 혼자 교실에 남아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도 파악했다. 하지만 재판을 다루는 법정 스릴러를 많이 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는 재판에 대해 많이 알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래서 변호사 역할을 맡아 보라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쉽지 않겠지만, 네가 새로운 변호사가 되어 이 사건을 뒤집는 건 어떠냐고 말이다. 




둘이 동시에 대답했지만 변호사의 표정은 정말 조금도 죄송해 보이지 않았다. 검사는 이 순간 변호사가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 드디어 마침내 결국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기가 겨우 검사 흉내를 내고 있다면 이 아이는 나이만 어린 변호사에 가까웠다. 이대로는 승산이 전혀 없었다.

절망 어린 시선으로 본 방청석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바람 앞의 어린 가지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p.134


변호사는 세상을 믿지 않았고, 이번 사건도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고 생각했다. 변호사의 기준으로는 확실히 나쁜 사람인 반장이 자기 인기를 이용해 검사가 되어 착한 사람을 마구 공격했고, 이대로라면 착한 사람은 모두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힐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는 화가 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판에서 이길 수 있을까. 판정은 선생님이 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정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도 성희를 믿지 않았다. 모두들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사건에서 변호사는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과연 진실이 밝혀지게 될까.


이 작품은 추리 동화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와 판타지 동화 <이리의 형제>를 쓴 허교범 작가의 어린이 법정 스릴러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인 추리 소설들이 대부분 어린이 탐정이 등장해서 범인을 찾는 전형적인 이야기들이었기에, 어린이 법정 스릴러를 한번 써보기로 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추리 과정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사건이 종결지점에 이르렀을 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논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벌인 재판이 어린이들의 귀여운 놀이나 어른 흉내가 아니라 진지한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오해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을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그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단서를 찾아내며 차근차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어린이 문학에서 흔치 않은 장르이기에 더욱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는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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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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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빈센트: 지금이 2023년이니까 사건으로부터 거의 20년이 되었군요. 왜 지금 다시 그 사건을 들추려는 거죠?

가이 하워드: 진실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게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 사건은 거의 20년간 우리 가족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범인을 밝히고 그를 감옥에 가두기 전까지 우리는 평화를 되찾을 수 없을 겁니다.           p.34~35


2003년 10월 3일 금요일 밤, 런던 서부의 부유한 동네에 있는 한 집 정원에서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당시 피해자의 부인은 파티에 참석 중이었고, 집에 있던 사람은 2층에서 자고 있던 열 살배기 아들뿐이었다. 밤늦게 극장에서 돌아온 부인의 10대 딸들에 의해 참혹한 현장이 발견되었고, 신고도 그들이 처음 했다. 사고였을까? 가정폭력? 아니면 강도의 소행이었을까.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끝에 있던 시신은 얼굴과 머리를 심하게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 집은 텅 비어 있었고,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도둑맞은 물건도 없었으며, 그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를 만한 뚜렷한 동기도 없는 것 같았다.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이 사건은 20년간 해결되지 않은 미제로 남게 된다. 


2023년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가이 하워드는 20년 전 자신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리얼크라임 쇼 <인퍼머스>의 감독을 맡는다. 전 세계에 스트리밍되는 이 프로그램은 리얼크라임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호평을 받아왔다. 그렇게 당시 사건에 연루되었던 주요 인물들을 비롯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법정 심리학자, 런던 경찰청의 퇴직 형사, NYPD 출신의 사설탐정, 현직 법의학자, 왕실 변호사, 프리랜서 기자로 이루어진 출연진들은 프로그램이 촬영되는 동안 사건에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들은 최신 법의학 기술을 동해서 당시의 증거들을 재검토하면서 증언을 재조사하고, 목격자들을 다시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은 8화로 제작되어 매 회차가 한 편씩 공개된다. 회차를 거듭하며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엇갈리는 증언과 끊임없이 속고 속이는 두뇌 싸움 속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년 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사건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난 20년 동안 루크 라이더의 죽음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진실은 런던 경찰청의 수사망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장악한 수천 명의 아마추어 탐정의 조사도 피해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누군가 그를 죽이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를 죽인 살인자는 과연 누구인지. 하지만 신실이 곧 밝혀지게 될까요?                p.462~463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말한 톨스토이는 틀렸다. 불행한 가족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하게 와해된다는 사실이 <인퍼머스> 시리즈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오 혜택받은 집안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프로그램 3화가 공개된 뒤, 언론에 보도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기자는 가족 간의 이야기야말로 <인퍼머스>에서 얻는 알짜배기 통찰이라며, 가정불화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퍼머스>라는 프로그램은 이번에 일곱 번째 시즌인데, 그 동안 리얼크라임 장르를 다루며 악명 높은 미제사건들을 다루어왔다. 이 시리즈는 예리한 보도와 깊이 있는 분석, 사건과 가장 밀접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특종들로 정평이 나 있고, 몇 차례 수상 이력도 있을 만큼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아온 독자라면, <인퍼머스>라는 프로그램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도 들 것 같다. 


"놀라지 마십시오. 단언컨대 지금부터 아주 아찔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실제 리얼크라임 쇼를 보며 시청자가 되어 추리에 참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방송 각본, 미디어 리뷰 기사, 인터넷 게시판 등 미디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나누는 '대화'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반적인 소설에서 등장하는 서술자의 시선이 없기 때문에 초반에는 다소 낯설고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끊임없는 반전과 충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방송 회차가 거듭되고, 그에 대한 언론의 시선과 실시간 인터넷 반응, 그리고 등장인문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들이 더해지면서 점점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카라 헌터는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영국 내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지금까지 27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대표작이 애덤 폴리 형사 시리즈라고 하는데, 평범한 구성의 추리소설 시리즈도 매우 기대가 된다. <가족 살인>은 영국의 영화 제작사 닐 스트리트 프로덕션에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워낙 눈앞에 영상이 보이는 듯한 생생한 작품이었던터라 스크린에서 보여질 버전도 궁금해진다. 자, 기발한 설정과 독창적인 구성, 곳곳에 배치된 단서와 반전이 백미인 리얼크라임 쇼에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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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샤의 후예 3 : 저항과 부활의 아이들
토미 아데예미 지음, 박아람 옮김 / 다섯수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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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겪은 모든 고통에 복수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쇠사슬에 묶인 두 손을 바라본다. 내 갈색 피부를 노려본다. 환하게 번쩍거리던 문신은 사라졌다. 새하얀 머리카락도 빼앗겼다. 그토록 열심히 싸워 되찾은 마법이 죽어 버렸다. 나의 오리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리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어떻게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일까.            p.17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낸, 매우 놀라운 마법의 세계를 보여주는 오리샤의 후예, 그 세번째 이야기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마법 판자지 3부작의 첫 번째 작품 <피와 뼈의 아이들>이 2019년에, 두 번째 작품 <정의와 복수의 아이들>이 2022년에 나왔으니, 거의 6년 만에 시리즈가 완결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디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검은 마법사들의 왕국, 그 동안 만나왔던 그 어떤 판타지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더욱 어둡고, 더욱 아름다운 마법의 세계가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하니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시리즈가 마무리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기에, 3권을 읽기 전에 1권부터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오래 전 오리샤 왕국에는 희귀하고 신성한 마자이족이 번영을 누리며 살았다. 열 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마자이들은 신들로부터 제각기 다른 재능을 부여받고, 마법의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불을 일으키거나, 마음을 읽거나, 미래를 내다보거나, 질병을 치료하거나, 죽은 자를 불러오거나 등등.. 마자이는 태어날 때부터 새하얀 머리칼을 갖고 있는데, 모두가 날 때부터 신들에게 재능을 받는 건 아니었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열세 살 이후부터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는데, 11년 전부터 마법이 세상으로부터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일부 힘있는 자들이 마법을 남용하기 시작했고, 마법의 힘을 가지지 못한 코시단은 점점 마자이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가 커져 결국 그들을 모조리 학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하얀 머리칼을 갖고 태어났으나 부모와 마법을 한꺼번에 잃은 마자이의 아이들은 왕국의 최하층민으로 전락해 온갖 차별과 폭력 속에 살아가게 된다. 시리즈의 주인공 제일리 역시 여섯 살 때 왕이 보낸 병사들에 의해 엄마가 죽는 장면을 목격했고, 엄마처럼 검은 피부에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마자이였다. 1권에서는 사라진 마법을 되찾기 위해 마자이인 제일리와 코시단인 오빠 제인, 그리고 오리샤의 공주 아마리가 전설의 사원으로 향하는 모험기를 그렸었다. 




'이제 끝내는 거야.' 끝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리라 마음을 다진다. 예바가 산 정상에서 일러 준 비밀들이 떠오르며 우리가 서 있던 그 산처럼 내 안의 깊은 곳을 울린다.

파괴된 오리샤가 눈앞을 아른거린다. 나는 잃어버린 이들의 유골을 세어 본다. 오늘밤 발디르 왕은 우리가 가는 곳에 있을 것이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싸워야 한다.' 예바의 깊은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그가 네 영혼에서 거둬 가려는 그 힘을 네가 사용해야 해.'             p.296~297


2권에서는 제일리 일행이 무사히 마법을 되찾은 이후의 이야기를 그렸다. 마법이 돌아온 오리샤 왕국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긴다. 바로 마자이 선조가 섞인 귀족들도 마법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전체 인구의 8분의 1이 마법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가운데 약 3분의 1은 '티탄'으로 저마다 열 개의 마자이 부족 중 한 부족과 비슷한 마법을 가졌다. 전편의 의식 이후 귀족과 군인 가운데 새하얀 한 줄기 머리카락을 가진 티탄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힘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꽤 강력하다. 제일리는 연인의 배신과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고, 마자이를 몰살하려는 적들로부터 자신의 부족을 지켜야 한다. 아마리는 왕위에 올라 여왕이 되어 수많은 오리샤인들이 수십 년에 걸쳐 겪어온 폭력과 박해의 이야기를 끝내고 평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통치 방식에 의구심을 품었던 왕의 아들 이난은 아버지와는 다른 왕이 되고자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왕궁을 되찾아 마침내 마자이의 시대가 시작되나 했는데, 일행들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 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났었다.


3권에서 제일리는 공중에 매달린 새장 같은 감옥 안에서 깨어난다. 제일리를 포함한 마자이들이 고국에서 강제로 끌려온 지도 꼬박 한 달이 되었고, 그들을 끌고 온 것은 해골족이었다. 수백 년의 압제 끝에 마자이들의 투쟁이 끝나려는 참이었는데, 과거 어느 때보다 승리에 가까이 다가갔던, 거의 다 이긴 전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게다가 해골족들은 매일 밤 제일리에게 굵은 바늘을 찔러 넣고 독한 마자사이트를 투입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마법을 느낄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해골족의 왕 발디르는 제일리를 찾기 위해 마자이 사람들을 납치했고, 바다에 던져 넣었다. 전설에 따르면 마자이 중에 태양의 피가 흐르는 자가 있다고 했고, 그걸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인 거였다. 그리고 마자이가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원동력이자 성스러운 신들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제일리를 찾아냈고, 그녀의 가슴에 금빛 메달을 박아 넣는다. 앞으로 제일리는 어떻게 될까. 마자이들은 해골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제일리는 그들에게 반격할 수 있을까. 전편들에 비해 분량이 작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휘몰아치는 이야기 전개로 압도적인 서사를 보여준 마지막 편이었다. 


작가인 토미 아데예미는 무장하지 않은 흑인 어른들과 아이들이 경찰의 총에 맞은 사건을 연일 접하게 되던 시절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두렵고 화가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과 분노를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울 힘을 갖고 있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서 울어 주길, 그리고 이제 일어나 작게나마 저항의 몸짓을 시작하길, 그리하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1권의 내용이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으며 2027년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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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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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뉴턴은 총 세 권으로 구성된 『프린키피아』의 마지막 권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려고 했으나, 영국 왕립학회 회원들의 반대로 결국 제3권도 앞선 두 권처럼 비과학자들은 이해하기 힘든 책이 되었다. 질량의 개념부터 그가 수립한 중력의 법칙(지금 쓰이는 것처럼 방정식 형식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까지 『프린키피아』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주제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내용은 우리가 지표면에서 경험하는 중력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힘, 그리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힘과 하나로 연결해 설명한 것이다.                p.160


책장에 꽂힌 책을 한 권 꺼내서 거기에 적힌 글자들을 읽는 것만으로 우리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쓰인 글과 만난다. 글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이것이 과학을 존재하게 하는 글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과학은 다른 사람의 발견과 이론을 토대로 삼아 그 위에 다른 발견과 이론을 쌓는 방식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주변에서 관찰한 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한 2천5백여 년 전부터, 책은 과학을 전파하는 데 중심이 되었다. 40권이 넘는 대중 과학책을 쓴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2500년에 걸쳐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책들과 그 책을 쓴 과학자들을 조명한다. 


이 책은 고대 학자들이 남긴 최초의 과학적인 기록들부터 시작해 인쇄 기술의 발명으로 시작된 과학책의 르네상스기를 거쳐 다양한 분야가 발전했던 19세기,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 유전학이 등장한 20세기를 지나 대중과 호흡하기 시작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책의 역사를 살펴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글자를 거울에 비친 형태로 쓰거나 자신만 알아볼 수 있도록 메모를 남기는 등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과 발명을 감추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을 남겼었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책으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초고에는 동료 과학자 로버트 훅의 이름이 꽤 여러 번 등장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지자 결국 출간 전 훅의 이름을 원고에서 전부 지워버렸다는 등 위대한 과학책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도 너무 흥미진진했다. 곤충이 주제인 파브르의 책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그림이 아닌 독자를 사로잡은 그의 문체였다는 사실과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지금까지 출판된 현대의 모든 과학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도 놀라웠다. 




『상대성 이론』은 전체적으로 친근한 어투이기는 하지만, 현대의 대중 과학책 기준에서는 교과서 느낌이 물씬 나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상대성 이론을 설명한다. 이론을 수립한 당사자가 직접 저술한 책인데 상대성 이론의 역사적, 개인적 배경은 나오지 않고 26쪽에 이르러서야 이 이론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철로를 달리는 기차와 번개 칠 때 나타나는 섬광이 예시로 나온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저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런 측면에서 『상대성 이론』은 책을 사는 사람은 많아도 완독하는 사람은 드물기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의 책 <시간의 역사>의 예고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p.250


출판사가 그림이나 사진이 포함된 표지를 디자인해서 과학책에 입히기 시작한 건 현대에 들어서부터다. 그리 멀지 않은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대중 과학책은 표지가 영 칙칙했다. 과학을 진지하게 다루는 책이라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려고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도 있었고, 과학자가 대중을 주 독자로 삼아 책을 저술하는 일조차 과학자의 본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동료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중 과학책의 표지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내용과 어울리고 독자들의 기대에도 부합하도록 디자인되기 시작했다. 1988년에 출간된 스티븐 호킹의 책 <시간의 역사>는 과학책이 한 권도 없었던 수많은 책장에 한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블랙홀과 우주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를 일약 스타로 만들고 대중 과학책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호킹의 성격과 그를 쇠약하게 만든 병을 대하는 방식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은 많아도 사 놓고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이 태반인 책으로도 유명한 이 책의 인기로 말미암아 출판계가 대중 과학도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올해 초에 나왔을 때부터 궁금했던 책인데,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선정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으로 선정된 기념으로 모집한 서평단으로 드디어 만나보게 되었다. 평소에도 워낙 과학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라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고화질 도판이 가득해 시대별 과학서들의 초판 표지와 삽화, 저자 이미지와 내지 속 내용 등 소장용 자료로서도 훌륭한 책이다. 수록된 도판이 무려 280여 점이나 된다고 하니, 도판만 훑어봐도 과학책의 유구한 역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과학 저술이 전문 자료에서 대중의 소통 수단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책으로 일구어 온 2500년 지성의 연대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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