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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3 ㅣ 아이네이스 3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때 부친은 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두에게 날은 온다. 돌이킬 수 없는 촌음을
모두는 살다 간다. 위업으로 명성을 잇는 건
덕이 일군 결과이니. 트로야의 높은 성벽 아래
신들의 자식들으 숱하게 쓰러졌고, 심지어
내 아들 살페돈도 쓰러졌다. 투르눗도 그의
운명이 그를 부르리니. 삶의 끝에 이르리라」 -제10권, 중에서, p.78
단테는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사후 세계인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했다. 단테는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유별나게 존경하는 걸로도 유명한데, 그래서 자신의 작품 <아이네이스> 속에서 안내자로 삼았던 것이다. 로마 최고의 시인이라 불리는 베르길리우스의 대표작은 전체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사시 <아이네이스>이다. 로마 건국의 역사와 신화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와 더불어 서양 정신의 원류를 형성한 대표적인 고전이다.

김남우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버전은 전체 12권을 삼분하여 마치 삼부작처럼, 세 권으로 나누어 나왔다. 1권부터 4권까지가 <아이네이스 1>, 5권부터 8권까지가 <아이네이스 2>,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아이네이스 3>에서는 9권부터 12권까지 묶었다.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29년부터 기원전 19년 죽을 때까지 꼬박 11년을 <아이네이스>에 매달렸다. 생의 마지막 3년은 원고를 들고 배경이 되는 희랍과 아시아를 돌아보기도 했는데,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길에 열병에 걸려 끝내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기게 된다. 그의 유고는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따라 편집되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전승에 따르면 베르길리우스는 우선 산문으로 글을 완성하고 12권으로 이를 나눈 다음 장면별로 운문으로 바꾸어 갔는데, 당장 완성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대로 놓아두고 다음 부분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네아스>에는 58개의 미완성 시행이 남아 있으며, 이것이 미완성의 흔적을 보여 주는 부분들이다.

그런 이후에 아버지는 다른 일을 궁리한다.
유투나를 동생의 전쟁에서 떼어 내려 한다.
전하는바, 복수 여신이라 불린 쌍둥이 재앙과
저승의 메게라를 섬뜩한 밤의 여신이 한날
한시에 낳았고 이들에게 똑같이 똬리 튼 뱀을
감아 주고 폭풍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한다.
신들의 왕이 가공할 죽음과 질병을 도모하고
전란을 당해 마땅한 도시를 위협할 때마다
이들은 유피테르의 권좌, 잔인한 왕의 문턱을
지키며 고통의 인간에게 공포를 일깨웠다. - '제12권' 중에서, p.203
이 책을 옮긴 김남우 역자는 로마 문학 박사로, 라티움어(라틴어) 원전을 직접 번역했다. <아이네이스>는 그가 12년간 치열하게 연구하며 번역한 대망의 결실이기도 하다. 라티움어로 된 원문 시행이 <여섯 걸음 운율>의 18음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우리말에서 최대한 가깝게 구현하기 위해 각 행을 18자 이내로 옮기는 <18자역>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원전을 충실히 살릴 수 있도록 원문의 행과 번역문의 행을 일치시켜 옮기고자 각별히 노력했으며, 페이지마다 상세한 각주를 달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서사시'라는 장르가 일정한 운율과 리듬을 지닌 운문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입으로 읊을 때 가장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줄바꿈이 거의 없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는 글이라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이 확실히 있었는데, 소리 내어 읽으면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나면서 확실히 몰입이 잘 되었다.

트로이가 멸망하고 도시를 빠져나온 아이네아스 일행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난다. 선조들의 땅이 이탈리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탈리아로 향하는데 폭풍을 만나 카르타고에 난파한다. 이후 7년간의 방랑 끝에 아이네아스 일행은 이탈리아의 쿠마이에 상륙하고, 운명으로 정해진 목적지 이탈리아의 티베리스강 하구에 도착한다. 이어 투르누스와 라티움 사람들이 합세해 전쟁이 시작되는데, 이번에 출간된 마지막 3권에서 본격적인 이탈리아 전투를 다루고 있다. 아이네아스의 용맹무쌍함이 펼쳐지고, 아이네아스와 누르누스의 맞대결로 장대한 서사가 마무리된다.
세 권의 책이 각각 이백 오십 페이지 정도로 나뉘어 나왔기 때문에 분량 자체가 많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줄글에 익숙한 독자로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트로이아의 영웅 아이네아스의 로마 건국 과정과 신화를 그리고 있는 이 서사시는 위대한 고전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한 잔상을 남겨 준다. 분명 내용은 어렵지만 어떤 페이지는 각주가 본문보다 길어질 정도로 꼼꼼하게 독자들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가이드가 되어 주고, 각권의 마지막에 수록된 역자 해설 또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준다. 전례 없는 라티움어 원전 완역본으로 만나는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는 꼭 한 번 쯤 읽어 봐야 할 고전 작품이다. 아름다운 장정으로 12년 만에 완간된 이 특별한 고전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