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김나현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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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건 오류」김나현작가님의 2025년 신작 장편소설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를 읽어보았습니다.

이나을(왠지 모르게 한 글자만 다른 사람이 생각난 것은 그저 기분탓이겠지요.)이라는 23살 신인 배우가 윤희재감독의 신작 영화에 전격 주연급으로 캐스팅되어 촬영 중이었으나 앵두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가 나을의 초등학교 시절 나을에게 학교폭력을 당하였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잘못하면 영화에서 하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사랑 사건 오류」에서도 한 번 경험해봤지만 여러 인물의 시점이 나와 어떤 분이 소설을 읽고 남기신 것처럼 조금 헷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기에 끝까지 읽었고 그저 읽은 후로는 나을과 나을을 둘러싼 인물들이 그저 행복했으면 하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을의 엄마는 도저히 용서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나현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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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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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작가님의 두번째 소설집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가 12월 1일에 출간되어 읽었습니다.

(봄에는 더 잘해줘)
영묵씨를 받아들이고 예뻐해주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극진하게 대하려는 영묵씨를 보며 ‘더없이 전형적이고 평범해서 내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어떻게든 단축해보고 싶었던(36쪽)‘ 나의 진부하지만 간절히 원했던 욕망.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잘 봐, 나는 너를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것처럼 너의 비밀도 모르는 척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의 비밀은 안전해.(51쪽)‘
서로가 지니고 있었던 깊은 상처와 분노에 쌓여 알고자 하지 않았던 진심, 그 누구도 영원히 몰랐으면 하는 비밀들을 더 늦기 전에 똑바로 바라보며 잘 지나온 홍주와 나 사이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천진한 홍주의 아들 원기.

(크리스마스에 진심)
‘너는 말이야. 동네 아줌마들, 할머니들 얘기 듣는 걸 좋아했어. 어른들 옆에 얌전히 앉아서, 어른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전부 다 알아듣는 것처럼 방긋방긋 웃으면서,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몇 시간이고 울지도 않고 나를 찾지도 않고 그렇게 오래오래 어른들 사는 얘기를 들었어. 너는 그런 아이였어.(105쪽)‘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로인해 돌려 줄 수도 없게 된 P의 디지털 피아노를 용이의 조카인 찬오에게 선뜻 주는 추운 겨울 한복판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산타할아버지의 모자같은 마음을 지닌 찬오대신 삼촌인 용이와 더 놀아주겠다고 약속한 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121~2쪽)‘
가족들에게 이미 죽음을 선고받아버린 장희의 삼촌 원진무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부산에서 진무 삼촌을 곁에서 지켜봐온 이영서씨를 만나 진무 삼촌과 화상 면회를 하고 진무 삼촌의 고장난 카메라를 작동시키며 한 시절의 끝이자 시작을 맞이하는 장희와 나.

(교분)
‘너는 항상 땅만 보고 걸었어.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러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 시절의 너는 너무 빛나서 어디서든 잘 보였는데.(164쪽)‘
그 시절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알아봐주고 이해해주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매번 단속해야 했던 김준일선생님과 자신을 빼닮은 후배이자 그 애인 김인경의 이름을 발음해보는 소설가 이윤범과 함께 잘 지나온 친구 재효.
(아마도 이재현편집자님이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단편일 것이라 생각이 드는 게 단편의 끝 여백에 페이지 표시를 하지 않았던 다른 단편과 달리 끝난 후 여백에 176 페이지 표시가 되어 있어서라는 저의 망상같은 추측을 해봅니다.)

(오프닝 나이트)
‘진짜가 아니구나. 삶을 내걸고 쓴 게 아니었구나. 아니, 어쩌면 기만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삶을 훔쳤다고, 자격도 없으면서 이득을 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아닐까?(199쪽)‘ 와
‘언제나 너의 첫 독자일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영광이 실은 내게 암묵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나를 습격해왔을 때, 나는 너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내 사진을 모두 숨겨달라고 말했다.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투쟁하고 싶어서 업로드했던 우리의 모습을 더는 사람들이 볼 수 없게 해달라고 말했다.(200쪽)‘ 같은 문장들을 읽으며 불현듯 떠올랐던 어떤 사람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
‘먼저 말해볼까 싶다가도 거절을 당하는 건 또 싫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건 나였고 우리의 공백은 펜데믹 때문은 아니었으니까.(232쪽)‘
코로나바이러스에 확진된 엄마를 대신하여 엄마와 함께 살던 동네에서 만난 한때는 하트현이라며 별명을 지어주며 선후배사이로 지냈으나 이제는 깍듯이 존대하는 ♥현이 빗어내는 만둣 가게가 있고 장현씨와 손을 마주잡고 거닐 수 있는 동네가 다시 좋아지려고 하는 선배이자 소설가인 나.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제가 떠올려버린 어떤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진짜 (진심으로) 사랑을 하여 자신들의 시절을 잘 지나오며 자신들에게 찾아로는 한 시절의 끝과 시작을 잘 맞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김병운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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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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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작가님의 두번째 소설집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가 12월 1일에 출간되어 읽었습니다.

(봄에는 더 잘해줘)
영묵씨를 받아들이고 예뻐해주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극진하게 대하려는 영묵씨를 보며 ‘더없이 전형적이고 평범해서 내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어떻게든 단축해보고 싶었던(36쪽)‘ 나의 진부하지만 간절히 원했던 욕망.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잘 봐, 나는 너를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것처럼 너의 비밀도 모르는 척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의 비밀은 안전해.(51쪽)‘
서로가 지니고 있었던 깊은 상처와 분노에 쌓여 알고자 하지 않았던 진심, 그 누구도 영원히 몰랐으면 하는 비밀들을 더 늦기 전에 똑바로 바라보며 잘 지나온 홍주와 나 사이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천진한 홍주의 아들 원기.

(크리스마스에 진심)
‘너는 말이야. 동네 아줌마들, 할머니들 얘기 듣는 걸 좋아했어. 어른들 옆에 얌전히 앉아서, 어른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전부 다 알아듣는 것처럼 방긋방긋 웃으면서,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몇 시간이고 울지도 않고 나를 찾지도 않고 그렇게 오래오래 어른들 사는 얘기를 들었어. 너는 그런 아이였어.(105쪽)‘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로인해 돌려 줄 수도 없게 된 P의 디지털 피아노를 용이의 조카인 찬오에게 선뜻 주는 추운 겨울 한복판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산타할아버지의 모자같은 마음을 지닌 찬오대신 삼촌인 용이와 더 놀아주겠다고 약속한 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121~2쪽)‘
가족들에게 이미 죽음을 선고받아버린 장희의 삼촌 원진무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부산에서 진무 삼촌을 곁에서 지켜봐온 이영서씨를 만나 진무 삼촌과 화상 면회를 하고 진무 삼촌의 고장난 카메라를 작동시키며 한 시절의 끝이자 시작을 맞이하는 장희와 나.

(교분)
‘너는 항상 땅만 보고 걸었어.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러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 시절의 너는 너무 빛나서 어디서든 잘 보였는데.(164쪽)‘
그 시절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알아봐주고 이해해주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매번 단속해야 했던 김준일선생님과 자신을 빼닮은 후배이자 그 애인 김인경의 이름을 발음해보는 소설가 이윤범과 함께 잘 지나온 친구 재효.
(아마도 이재현편집자님이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단편일 것이라 생각이 드는 게 단편의 끝 여백에 페이지 표시를 하지 않았던 다른 단편과 달리 끝난 후 여백에 176 페이지 표시가 되어 있어서라는 저의 망상같은 추측을 해봅니다.)

(오프닝 나이트)
‘진짜가 아니구나. 삶을 내걸고 쓴 게 아니었구나. 아니, 어쩌면 기만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삶을 훔쳤다고, 자격도 없으면서 이득을 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아닐까?(199쪽)‘ 와
‘언제나 너의 첫 독자일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영광이 실은 내게 암묵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나를 습격해왔을 때, 나는 너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내 사진을 모두 숨겨달라고 말했다.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투쟁하고 싶어서 업로드했던 우리의 모습을 더는 사람들이 볼 수 없게 해달라고 말했다.(200쪽)‘ 같은 문장들을 읽으며 불현듯 떠올랐던 어떤 사람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
‘먼저 말해볼까 싶다가도 거절을 당하는 건 또 싫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건 나였고 우리의 공백은 펜데믹 때문은 아니었으니까.(232쪽)‘
코로나바이러스에 확진된 엄마를 대신하여 엄마와 함께 살던 동네에서 만난 한때는 하트현이라며 별명을 지어주며 선후배사이로 지냈으나 이제는 깍듯이 존대하는 ♥현이 빗어내는 만둣 가게가 있고 장현씨와 손을 마주잡고 거닐 수 있는 동네가 다시 좋아지려고 하는 선배이자 소설가인 나.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제가 떠올려버린 어떤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진짜 (진심으로) 사랑을 하여 자신들의 시절을 잘 지나오며 자신들에게 찾아로는 한 시절의 끝과 시작을 잘 맞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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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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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더 잘해줘)
영묵씨를 받아들이고 예뻐해주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극진하게 대하려는 영묵씨를 보며 ‘더없이 전형적이고 평범해서 내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어떻게든 단축해보고 싶었던(36쪽)‘ 나의 진부하지만 간절히 원했던 욕망.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잘 봐, 나는 너를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것처럼 너의 비밀도 모르는 척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의 비밀은 안전해.(51쪽)‘
서로가 지니고 있었던 깊은 상처와 분노에 쌓여 알고자 하지 않았던 진심, 그 누구도 영원히 몰랐으면 하는 비밀들을 더 늦기 전에 똑바로 바라보며 잘 지나온 홍주와 나 사이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천진한 홍주의 아들 원기.

(크리스마스에 진심)
‘너는 말이야. 동네 아줌마들, 할머니들 얘기 듣는 걸 좋아했어. 어른들 옆에 얌전히 앉아서, 어른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전부 다 알아듣는 것처럼 방긋방긋 웃으면서,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몇 시간이고 울지도 않고 나를 찾지도 않고 그렇게 오래오래 어른들 사는 얘기를 들었어. 너는 그런 아이였어.(105쪽)‘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로인해 돌려 줄 수도 없게 된 P의 디지털 피아노를 용이의 조카인 찬오에게 선뜻 주는 추운 겨울 한복판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산타할아버지의 모자같은 마음을 지닌 찬오대신 삼촌인 용이와 더 놀아주겠다고 약속한 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121~2쪽)‘
가족들에게 이미 죽음을 선고받아버린 장희의 삼촌 원진무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부산에서 진무 삼촌을 곁에서 지켜봐온 이영서씨를 만나 진무 삼촌과 화상 면회를 하고 진무 삼촌의 고장난 카메라를 작동시키며 한 시절의 끝이자 시작을 맞이하는 장희와 나.

(교분)
‘너는 항상 땅만 보고 걸었어.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러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 시절의 너는 너무 빛나서 어디서든 잘 보였는데.(164쪽)‘
그 시절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알아봐주고 이해해주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매번 단속해야 했던 김준일선생님과 자신을 빼닮은 후배이자 그 애인 김인경의 이름을 발음해보는 소설가 이윤범과 함께 잘 지나온 친구 재효.
(아마도 이재현편집자님이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단편일 것이라 생각이 드는 게 단편의 끝 여백에 페이지 표시를 하지 않았던 다른 단편과 달리 끝난 후 여백에 176 페이지 표시가 되어 있어서라는 저의 망상같은 추측을 해봅니다.)

(오프닝 나이트)
‘진짜가 아니구나. 삶을 내걸고 쓴 게 아니었구나. 아니, 어쩌면 기만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삶을 훔쳤다고, 자격도 없으면서 이득을 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아닐까?(199쪽)‘ 와
‘언제나 너의 첫 독자일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영광이 실은 내게 암묵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나를 습격해왔을 때, 나는 너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내 사진을 모두 숨겨달라고 말했다.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투쟁하고 싶어서 업로드했던 우리의 모습을 더는 사람들이 볼 수 없게 해달라고 말했다.(200쪽)‘ 같은 문장들을 읽으며 불현듯 떠올랐던 어떤 사람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
‘먼저 말해볼까 싶다가도 거절을 당하는 건 또 싫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건 나였고 우리의 공백은 펜데믹 때문은 아니었으니까.(232쪽)‘
코로나바이러스에 확진된 엄마를 대신하여 엄마와 함께 살던 동네에서 만난 한때는 하트현이라며 별명을 지어주며 선후배사이로 지냈으나 이제는 깍듯이 존대하는 ♥현이 빗어내는 만둣 가게가 있고 장현씨와 손을 마주잡고 거닐 수 있는 동네가 다시 좋아지려고 하는 선배이자 소설가인 나.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제가 떠올려버린 어떤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진짜 (진심으로) 사랑을 하여 자신들의 시절을 잘 지나오며 자신들에게 찾아로는 한 시절의 끝과 시작을 잘 맞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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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우리는
정선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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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임작가님의 두번째 소설집 「그 밤의 우리는」을 읽었습니다.

(이후, 우리)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후 우리 사이에 있어야 할 쉼표가 없었던 것이 눈에 띄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코로나가 아닌 이름모를 감염병에 확진된 승희가 일주일간 남산타워가 보이는 호텔이지만 생활치료센터로 쓰이는 곳에서 일주일간 격리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같은 확진자인 유정과 감염되었어도 라마단기간에 기도하는 것을 빼먹지 않는 하산을 만나게 되는......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오래된 빌라 4층에 이사온 민재와 결혼한 송의 보금자리이자 모두의 보금자리이기도 한 옥상에 정아가 불현듯 찾아와 식물들을 심으며 휑한 옥상에서 초록이 싱그러운 정원으로 탈바꿈되는......

(아직은 고양이)
일곱번째 남자친구인 은재가 사라진 상황에 수진은 뜬금없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고양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목련책방의 주인이자 수진의 친구인 나는 고양이가 자주 책방 앞 목련나무에 출몰하는 것을 SNS에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수진의 말이 믿어지지 않고......

(인디언 돌)
엄마의 권유로 글쓰기 학원에 다니게 되고 가산점때문에 백일장대회에 나가게 된 나는 동급생인 아희를 만나 글을 잘쓰는 비법을 알려주며 친해지게 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로 멀어지게 되는......

(해저로월)
스페인에서 여행 중이던 수정이 아빠의 부탁으로 오래전 집을 떠나 곳곳에 떠돌다 객사한 고모 미경의 유해를 받기 위해 포르투갈에 위치한 오래된 게스트 하우스에 찾아가게 미경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클라라를 만나게 되고......

(속삭이는 깃발들)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기고 간 만둣가게에 남은 만두를 먹던 형지가 광장에서 ‘고양이 유령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에 참여한 삐삐와 함께한 예나를 만나게 되고 생전 엄마와 함께 성지순례로 갔던 페루에서 만난 마이라에게 보냈던 편지를 떠올리며 추억하고......

(바다 가는 날)
기억을 잃어가는 연분과 그의 딸이자 무릎이 아픈 엄마 명애와 그의 딸이자 운전과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언한 단이 요양원에 가게 되면서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며 그들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십일월이 지나면)
보호자와 함께 요양원에서 열흘간 지내게 된 대식의 보호자 소영과 해숙의 보호자 민재가 만나 공통점을 지닌 서로에 대해 알게 되며 한줄기의 희망을 지니게 되는......

「그 밤의 우리는」에 실린 8편의 단편들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데 첫 소설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미처 읽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 정선임작가님의 작품을 접하게 된지라 단편들을 실린 순서대로 읽었을 때는 마음에 와닿았고 생각할 것이 많았지만 읽고 난 이후의 느낌들을 여기에 표현하려고 하니 기억을 잃어버린 (바다 가는 날)의 연분처럼, 그동안 자신만의 멋진 삶을 개척해나갈 줄 알았던 (해저로월)의 고모 미경처럼, 도서관 이층 한번 들어가 문을 닫으면 나올 수 없는 비상문으로 들어가버린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의 정아처럼, 사라져버린 은재를 찾다가 역시 은재처럼 사라져버리게 된 (아직은 고양이)의 수진처럼, 통신요금과 유기농 생리대를 구입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백일장에 나가면서도 생태교란종 붉은귀거북을 차마 버리지(죽이지) 못하고 키웠으나 나와 세계가 달라진 (인디언 돌)의 아희처럼 무언가 제게서 사라져버렸고 그 사라진 무언가가 제게 다시 돌아오지 않고 앞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 머뭇거리게 되었지만 두 소설집이 출간되었던 십일월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사랑이란 말도 믿음과 희망이라는 말도 아직은 쓸 수 있기에 괜찮아질 것이라고 마음 먹어봅니다.
정선임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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