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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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이 무료로 제공하는 "미리 보기" 서비스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사이다 들이켜기 전, 김 빼기 일부러 하는가? 종이책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김 빼기, 굳이 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의 '미리 보기'를 클릭했다가, 그대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자가 이제는 훌쩍 큰 아들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편지 형식 도입부였는데, 부담스러울 만큼 저자의 고백이 솔직했다. '미리 보기'까지만 읽고 끝냈다면, 저자 정상훈을 '세속적 성공 면에서는 엘리트겠으나, 일상을 꾸리는 능력 면에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할 열패자'로 낙인찍을 뻔했다. 그렇지 않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다 읽고 나니, 저자의 과잉 솔직함은 오롯이 아들을 향한 애정과 자기성찰로 벗겨져 나온 피부 비늘이란 걸 알겠다.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얼룩덜룩한 피부의 비늘을 벗겨내고, 새 살을 돋우려 했던 것이다. 책 제목에서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지만, 그가 진정 희구하는 것은 극단적 선택이나 단절이 아니라, 충만하게 지속되는 하루하루였다.

*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의 저자 정상훈은 서울대학교 의대 출신으로 '행동하는의사회' 창립자이자 '국경없는의사회' 해외구호활동가였다. 굳이 "서울대 의대" 출신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릴 때 그의 지인들은 "서울대 나온 의사가 뭐 아쉬울 게 있어서"의 반응을 보였고, 그의 어머니에게 그는 "서울대 나온 의사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타인의 시선, 특히 어머니의 기대는 저자의 정신세계에 상당한 독이었다. 나는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읽으며, 가족,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한 개인의 정신세계에 이렇게 압도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곱씹어 생각하였다. 정상훈의 자기 파멸적이고 가족을 질식시키는 우울증은 뿌리를 두었는데, 바로 작가의 어머니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았다.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하는 게 일상이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라면 한 박스를 들쳐 매고 와서는 매일 저녁, 어머니가 차린 밥상 옆쪽에서 따로 입 꾹 다물고 라면을 드셨다는 일화는 듣기만 해도 폭력적이다. 저자는 결국은 가정을 깬 엄마와 같이 살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가 8살 난 아들과 아내 자궁 속에 둘째 아이를 남겨두고 아르메니아, 레바논, 시에라리온으로 떠나간 이유의 근원에도 어머니가 있었다. 저자는 어머니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입만 열면 서로 화를 내거나 상대를 정서적으로 괴롭혔다.

* *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가로서 정상훈 작가가 직접 경험한 건강 불평등 현장과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사이사이, 작가의 정신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한국을 떠나 시에라리온에 있어도, 저자에게 그 어머니는 제 몸의 세포 덩어리와 같아서 떨치려야 떨칠 수 없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의 현장에서도, 다제내성 결핵 감염의 공포 앞에서도, 에볼라로 인간이 존엄의 존재에서 그저 몸뚱어리로 전락하는 현장에서도 침착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그의 우울증, 더 나아가서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정상훈 작가는 왜 '아빠, 할머니한테 무섭게 말 안 하면 안 돼?"라고 부탁하는 큰아들에게 왜 할머니 앞에서는 그렇게 화가 나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의 큰 아들은 올해 성년의 나이에 들어선 것 같던데,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읽으며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성찰적인 인물인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겠다.

정상훈 작가의 솔직함에 압도 당해서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작가의 개인사와 정신적 문제 측면에서만 소개했기에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몸으로 기록한 현장일기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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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7-18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어떤 책인지 알겠어요. 리뷰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요.
서울대 나와서 왜 우울증인가가 아니고, 제 시각에서 보자면 우울증은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을 듯합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인간 관계에 서툴고 고립되어 공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떤 문제로 스트레스가 생기면 잘 풀 수 있는 방법을 모를 것 같아요. 운동을 좋아한다면 운동으로 풀 텐데,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사람이 드물 것 같아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서울대 출신이라서 오히려 정신이 덜 건강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씀이에요.
이게 저의 편견일 수 있겠어요. ^^

얄라알라 2021-07-18 17:14   좋아요 0 | URL
저는 저자 정상훈에 대해 이 책에서 전하는 정보 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이 정도 솔직한 자기성찰을 독자에게 드러낸 것도 결국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책의 후반부에서는, 저자가 어머니의 발병(치매)과 간병,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어머니와 화해한 내용이 등장하며 한결 톤이 부드러워집니다. 쓰면서 치유되고, 또 치유되었기에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 뭉클해집니다.

페크님 좋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7-18 2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리보기 하면 거의 사게
되더라구요...

아주 책쟁이들을 낚는 그런
서비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7-19 11:23   좋아요 1 | URL
ㅎㅎㅎ 미리보기 서비스는 레삭매냐님을 낚기위한 서비스군요^^

얄라알라 2021-07-19 23:42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께서 졸지에 ‘낚인˝ 분이 되어버리셨어요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1-07-19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꼭 읽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2021-07-19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7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8-05 19:09   좋아요 0 | URL
<낯선 이와 느린 춤을>
고양이라디오님께서 소개해주신 이 책도 챙기겠습니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 서른에야 진단받은 임상심리학자의 여성 ADHD 탐구기
신지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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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고치겠다는 건가? 너나 잘 살피세요." 

대학병원에서 "환자"의 ADHD 증상 감별해서 진단내리고 치료하는 임상심리학자 본인이 (알고보니) ADHD 범주에 속한다면?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의 저자 신지수가 그랬다. 그녀는 학창시절 교무실에 자주 불려 다녔다. 그녀가 제출한 반성문만으로 담임 선생님께서 두툼한 노트를 엮어낼 수준으로 자주 지적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지수는 ADHD 진단을 받지도, 받아볼 생각도 못했다. 까불까불 산만한 사내아이의 얼굴을 한 ADHD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과잉행동"을 진단 기준으로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에 여성에게 유병율 높은 "조용한 ADHD"는 주목받지 못했다. 저자 역시 "조용한" 즉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부주의형 ADHD였기에 진단받아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단초삼아, 정신의학에서 여성이 얼마나 배제되어 왔는지 어떤 점에서 불합리한지를 에세이형 문장에 담아낸다. 



저자는 DSM의 ADHD 진단 기준이 "여상의 증상을 세밀하게 감별할 수 있는 문장을 기술하는 데 실패"(75)했기에 젠더 적합성gender appropriateness에서 이탈되었다고 본다. 실제 DSM 도구 타당성 검증단계에 동원된 연구 대상의 78.4%가 남성, 84%가 백인으로 편향되었는데, 이는 DSM이 다루는 정신장애에서의 젠더평향성을 드러낸다. 여성의 "조용한" ADHD는 기껏해야 기질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등 다른 이름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한 마디로 제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의 전반부는 저자가 ADHD 진단 받은 이후 맹렬하게 공부한 정신장애 진단에서의 젠더편향성에 대한 학문적 논의와 그 극복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주를 이룬다. 신지수는 정신장애의 진단과 이해 과정에서 젠더 감수성 필요하며 과잉진단만큼이나 과소진단도 문제적이라는 시각을 보인다. 후반부는 저자가 실제 어떤 방법을 동원해 이 "장애"를 극복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다른 잠재적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약물치료의 힘을 믿는 책의 부록으로 본인의 "약물-콘서타-일지(약물 복용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의 기록)"를 공개한다. 약물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은 인지행동치료로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 


저자는 성장과정에서 그리고 현재의 삶에서 "ADHD"라는 이름을 진작 만났더라면 덜 빼았겼을 삶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과소진단으로 인해 ADHD 환자되기에서 누락된 다른 여성의 억울함에도 항변해준다. 


의료문제의 개념화와 진단 과정에서 젠더 편향성 문제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나는 ADHD 라는 진단명 남용 자체를 껄끄럽게 느껴온지라 "과잉" "과소"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는 반만 동의한다. 저자는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를 시작점 삼아, 이후로도 자신 외 다른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채집하여 좋은 후속작을 펴내줄 책임감 있는 의사라는 게 내 촉이다(문제제기만 하지는 않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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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14 2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자기자신을 아는게 가장 어려운 거 같아용! 해결책 안 내주시면 북사랑님께 크게 혼날 거 같은 분위기닷!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07-17 16:54   좋아요 1 | URL
^^ 앗? 그랬나요? 신지수 저자님 말씀도 잘 하시고, 호감형이시더라고요. 계속 문제 제기하며 이 분야에서 기여하시길 기대 + 팍팍 응원하며 썼어요.


파이버 2021-07-17 18: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막연하게 ADHD하면 천둥벌거숭이 남자아이들을 떠올렸었네요 .. 북사랑님 말씀처럼 adhd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막무가내로 혼만 냈던 옛날 부모님들보다 아동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는 지금이 약간 더 희망적으로 느껴져요. 신도시 같은 경우 아동 심리치료나 상담하는 곳도 부쩍 늘었더라구요. 약물치료에 대해 저도 긍정적이지는 않은데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해지네요

얄라알라 2021-07-18 17:19   좋아요 2 | URL
파이버님 질문에 대해, 제가 받은 인상을 말씀드리자면...신지수 작가는 진단 후 최적의 치료법(이 경우 투약)을 권고받으면 따르며, 그 효능을 추적관찰하는 데 능하신 것 같았어요.

˝천둥벌거숭이 남자아이들˝, 파이버님 콕 집어 단어 써주셨네요. 저도 ADHD하면 초등남자아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것 같아요. 저자가 병원에서 ADHD 환자들 상담해주면서, 정작 본인의 여러 증상도 그 질병명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안도했을까요?

2021-07-18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8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인적 능력이다."


"울컥" 포인트가 엉뚱하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 문장에도 울컥하다니! "울컥"이 올라와서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을 읽다가 잠시 쉬었다. 인간 본연의  성향으로서 돌봄. 단위시간당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어 팔리는 상품으로서가 아닌, 생명 있는 존재들끼리 서로 보듬고 살리는 본능. [선언 manifesto]되니, 무게감의 더해진다. 



코로나19 덕분(때문)에 공론의 장 중심으로 치고들어온 이슈가 바로 돌봄 아니던가?  2020, 2021년  '돌봄 경제' '돌봄 위기'를 주제로 한 웨비나와 컨퍼런스 찾기가 쉬워졌다. 언론과 학계가 '돌봄' 이슈를 띄워 주니, 일상에서도 이 용어가 새로운 뉘앙스를 담는다. "돌밥 돌봄해야 해서....(시간 약속 못 지킵니다), 제가 돌봄 담당이라 코로나 특히 조심해야 해요." 요새 카톡방 일상 대화에서 이런 표현을 자주 접하면서, 얼떨떨해진다. '애 봐야 해요. 애 보는 사람'이 반세기 전 표현인양 아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물론 '돌봄'은 '아이 돌보기'만을 의미하지 않고 훨씬 포괄적인 의미로 쓰인다).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의 저자들(더 케어 컬렉티브 the care collective)은 "보편적 돌봄 Universal Care"가 상식, 즉 삶의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이들이 정의하는 보편적 돌봄은 "모든 돌봄이 우리의 가정에서뿐 아니라 친족에서부터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 되는 것(41)"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돌봄의 상호의존성과 호혜성을 살려 전지구적 차원의 돌봄 공동체를 상상하고 실천할 필요를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코로나 19는 인간이 바이러스 및 비인간 존재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생존해왔다는 걸 각인시켜줬다. 돌봄 대상의 범주를 확장시켜 '내 새끼, 내 핏줄 관계'뿐 아니라 (그동안 약탈해온) 지구를 보듬어 안아야할 필요가 분명해졌다. 그러나 전개되는 현실은 다르다. 그걸 사람들은 '돌봄의 위기'라고 말한다. 백신은 개발되었지만, 국적을 선별하고 건강권을 모두에게 고루 나눠주지 않는다. 국경은 물리적으로뿐 아니라 관념적으로도 더 강화되었고 '회색지대'에는 돌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비통함이 커진다. 당장 4단계 방역지침이 내려지면서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은 "돌밥" 상비군으로서의 책무 다하기를 요구받는다. '여성화된 돌봄'에 대한 비판의목소리가 꾸준히 출력을 높여왔어도 여전히 위기상황에서 돌봄 상비군은 '여성, 그 중에서도 어머니'라고 빈곤하게 상상되고 실천된다. 저자들은 [돌봄 선언]을 통해서 "어머니와 여성뿐 아니라 모두가 돌봄 역량을 가지고 있고, 서로 함께 돌봄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 (85)"고 말한다. 


저자들은 인간의 돌봄 성향을 시장논리로 길들이고 왜곡시켜서 '우리 같은 사람, 내 것과 내 편 돌보기'가 마치 건강한 생존전략인양 응원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저항한다. 저자들은 타인의 고통, 타인의 돌봄 필요에 대한 무관심에서 깨어나라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신자주의 자본주의 기업의 위장술인 "무늬뿐인 돌봄carewashing"을 가려내고, 전통적으로 비시장 영역이었던 돌봄조차 아웃소싱하려는 흐름에 저항하라고 촉구한다. 


나아가 [돌봄 선언]은 "보편적 돌봄"을 실현할 행동 강령도 제시한다. 한 마디로 "일상화된 무관심"이라는 마취에서 깨어나 돌봄 성향을 일깨우라는 것이다. 이는 돌봄이 개인 차원의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관심한 친족, 무관심한 정치, 무관심한 국가, 무관심한 경제"라는 큰 틀 자체를 뒤흔들라는 제안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내 새끼, 내 가족과 친족' 챙기기의 편집증에서 벗어나 친족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옮긴이 정소영 박사도 지적하듯 "난잡함 promiscuity'이라는 개념이 의미 전복을 일으키며 저항의 의미로 쓰였다. 저자들은 핵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난잡한 친족promiscuous kinship'을 돌봄 대상으로 확장시키라고 제안한다.  '돌보는 공동체 만들기' 위해 지역도서관을 적극 활용하라는 제안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새로 정책이나 공공공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된 지역도서관을 거점으로 활용하라는 실용적 제안이니까. 도서관을 거점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책뿐 아니라 다양한 자원, 기술과 지식 등이 있다. 


혹자는 이런 제안을 들으며, 자본주의 논리와 돌봄 윤리의 타협점을 찾느라 머릿 속이 뜨거워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들은 선을 긋는다. 결코 타협할 수 없다고! "낸시 폴브레가 말했듯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보이지 않는 심장'을 생각하라고! 


선언문을 읽기만 해도 심장이 뜨거워진다. 뜨거운 심장의 연결. 책에서는 이를 "돌보는 관계의 글로벌 동맹" 확장이라고 표현했다. 부족하나마 지금 [돌봄 선언] 리뷰를 공유하는 것도, "확장"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뜨거움을 또 누구와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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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 제2국면]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요즘 대한민국 청소년들 (자발성 여부와 별개로) 독서량 정점은 "초4"이며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라 한다. Q가 올라오면 '너투브'에서 바로 A를 찾아내며 디지털 세계의 고속도로를 누비는 이들에게, 해외 이민가면서 '브리태니커 대백과'전집과 'why?'시리즈를 몇 달이나 걸리는 배편에 실어 나르던 세대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요즘 청소년, 책 안 읽는다 안 읽는다' 성토하면서, 청소년 교양서적은 꾸준히 양껏 쏟아져나오는 점이 항상 흥미롭다. 다양한 전공의 대학교수들이 자신의 강의노트를 각색한 청소년교양서를 펴내는 출판계 유행도 참 흥미롭다. 편집자들의 마법의 손길을 거쳐 나온 대학 강의노트는 이해하기 쉽고 재밌기 때문에, 특정 주제에 대한 입문서를 찾을 때 나는 종종 청소년교양서적을 뒤적인다. 요즘 청소년에게는 어떤 식으로 정보 전하고 소통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이유에서 두 권을 읽었다. 


[안전하게 로그아웃]은 서울대언론정보학교 김수아 교수가, [누가 내 머릿속에 브랜드를 넣어놨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경영대학 김지혜 교수가 썼다. 




[안전하게 로그아웃]의 저자 김수아는 서문에서 "온라인에서 무엇을 하지 말라는 식의 진부한...(중략)...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라고 밝혔는데, 실제 이 책을 읽으며 '가짜뉴스,' '디지털 시민윤리' '가상공간에서 자아정체감' '유투브와 생각 조정,' '잊힐 권리' 등 다양한 화두를 접할 수 있었다. [누가 내 머릿속에 브랜드를 넣었지?]의 저자는 실제 청소년을 키우는 엄마이자 학자로서의 저자가 자신의 얼굴사진을 전지현의 몸통과 합성하는 과감한 시도 등을 통해, 청소년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전지현이 광고하는 음료 마시면 나도 날씬해질 거야 식 멘탈 시뮬레이션 예시). 




"청소년을 위한" 이 좋은 교양서적의 홍수가 과연 독자로서 청소년의 요구 때문인가 궁금하다. 한 때 대학교육 단계에서 유통되던 정보들이 "청소년 타겟" 소프트 인문교양서로 가공되어 확산되는 맥락 또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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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7-12 18: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청소년대상 교양서적 좋은 것 같아요!! 전 얼마전에 5.18민주화운동 관련 책을 청소년교양서적으로 읽었습니다. 음 막상 사서 읽는 건 어른독자들이 아닐까 싶네요^^;

얄라알라 2021-07-13 02:59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께서 말씀하신 책, ㅅㅋㄹ 출판사였나 친숙했던 출판사 최신간이라 도서관에 신청한 책과 겹치는 것 같네요^^ 저도 실은 그렇게 생각해요. ‘청소년 교양도서‘ 구매자와 실 독자가 실은 어른이지 않을까하는^^

행복한책읽기 2021-07-13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안 읽는데 청소년 교양도서 꾸준히 나온다. 지도 늘 궁금해하는것. ㅋ 근데 출판업자들에겐 어린이 청소년이 효자 종목인듯해요. 꾸준히 팔리니까요. 우리 애들은 나랑 다른 시절을 산다는 느낌이 정말 확 들어요. 저는 모르면 메뉴얼 읽었는데, 요즘 애들은 너튜브에 물어보더라구요. 영상에 익숙한 세대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갈지. 전 그게 더 궁금해요^^

얄라알라 2021-07-13 15:51   좋아요 0 | URL
행복한 책읽기님^^ 제가 술탄듯 물탄듯 산만하게 벌려놓은 이야기에서 핵심을 콕 집어주셨네요. 네네, 제가 궁금한 게 그 부분이였어요. 팔리니까, 입시논술, 면접, 교양 구축(?) 프로젝트에 필요하니까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건가, 진정 요즘 청소년 다수가 이런 교양을 희구하는 걸까.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말만 들어도 부담 확 오는 저와 달리, 행복한 책읽기님께서 말씀하신 영상세대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갈까. 잘 융화할 수 있을까?^^ 저도 함께 궁금합니다!!
 
팬데믹 제2국면 - 코로나 롱테일, 충격은 오래간다
우석훈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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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7월 8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수 1,275



1년 전,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전염병 관련한 책들을 탐독했다. "포스트 코로나"가 키워드라면 최소한 책제목과 목차 스캔이라도 했다. 대변환의 흐름에 넋놓고 쓸려가서는 안 되겠다는 조바심, 그리고 팬데믹으로부터 회복할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엉켜 있었다. 그러나 2021년 2분기가 시작되었어도 여전히 코로나 소식이 뉴스생방송 1번 꼭지로 등장한다. 심지어 "1,275명"이라는 믿기 어려운 숫자까지. 피로감이 몰려온다. 사명감도 떨어지고, "포스트 코로나" 진단을 내놓는 전문가들의 혜안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전염병 X"가 그렇게 빨리 2019년에 올지 예측도 못했는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 10년 내다보기 한다고? 전망한다고 흐름을 틀지는 못할 테고, 휩쓸려가지 뭐!' 이런 게으른 협상으로 2021년엔 코로나 관련 책들을 일부러 더 멀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은 책이 경제학자 우석훈의 [펜데믹 제2국면]. 한 자리에서 다 읽고, 두번 째 읽을  때는 강의 받아적듯 정리했다. 적어도 내게는 굉장히 좋은 책이다. 많은 분께 알리고자, 무거워진 손가락의 지방을 이기고 자판을 두드린다.  


펜데믹 선언 초기에, 우석훈 교수에게 집필요청이 쇄도했다. 마침 '팬데믹경제학' 자료를 모으던 그였지만, 출간시기 조율에 신중했다. 그는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 이후'를 생각한다는 것이 내 양심에 맞지 않았다."(9)라고 썼다. 속공 대신 지공을 선택한 그는 팬데믹으로 인한 롱테일 long-tail현상을 추상적 논의 차원이 아닌, 현장성을 가미해 쓰고자 했다. 미래형 문장이 아닌 현재 진행형 시제로. 그래서 제목도 [펜데믹 제2국면]이다. "제 2국면"은 바로 2021년 이 시점, 선진국 우선으로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국가간 불균형이 벌어지는 시점이다. 



우석훈은 코로나의 긴꼬리(Long-tail)가 길게 4년 이상 갈 것이고, 이후 '코로나 균형'이 이뤄질 것이라 전망한다.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터인데,  그렇다고 국민 모두가 고급 세단을 타게된다는 뜻이 아니다. 4부 소제목이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인데, 우석훈은 이를 "험한 산길 달리는 만원 버스"(161)에 비유한다. 좌석에 편히 앉은 사람은 부자와 공직자이며, 서서 가는 자들은 청년과 가사노동자.  멀미 때문에 중도 하차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은 대학비정규직 강사나 문화경제 분야 종사자 등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강화된 국가주의 및 "서울자본주의" 그리고 경제권력의 폭주를 방관해서는 소수의 착석자와 다수의 입석자 혹은 중도하차자로 인해 무늬만 선진국 꼴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석훈은 경고한다. 


특히 2부에서 우석훈은 국민의 감시가 집중되어야 할 틈새를 명확히 타케팅해주는데 바로 재난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의 전형들로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스마트 의료'라는 용어로 새롭게 포장한 원격진료 tele-medicine, 또 다른 하나는 '수소경제'이다. 둘다 이미 진행형이다. 우석훈이 '수소계의 헤리티지 재단'이라고 비꼬는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은 수소경제로 이익보는 세력들과 퇴직 공무원을 주축으로 한다. 

관련해 우석훈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 "행정부는 비대면 진료 정책을 코로나 극복에 기여한 의료계에 주는 선물로 포장했다. 이전에 비대면 진료를 시급하게 추진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의 가닥이 잡힌 것은, 주치의 제도 지역거점 병원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있기 때문이었다 (103)."
  • "수소경제가 코로나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대책이라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재난자본주의다 (111)."



펜데믹 제 2국면, 제 3국면 그리고 코로나19의 삼촌과 사촌 펜데믹들이 또 도래할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며, 사람을 먼저 살리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는 경제학자 우석훈. 그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데, 앞으로도 그의 제언들에는 귀를 쫑긋 세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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