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메리의 아들 밀리언셀러 클럽 73
아이라 레빈 지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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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7년 전 아들 앤디를 악마숭배자들에게 빼앗긴 후 정신을 잃었던 로즈메리가 장기요양원에서 기적적으로 정신을 차립니다. 혼란스러운 시간이 잠시 흐른 후, 로즈메리는 미친 듯이 아들을 찾습니다. 하지만, 곧 아들 앤디가 전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 인류에게 추앙받는 절대적 존재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앤디와 조우한 로즈메리는 악마숭배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훌륭하게 성장한 앤디를 발견하고, 앤디가 행하고 있는 모든 인류애적 행위에 감명 받습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앤디의 눈에서 발견되는 위험한 눈빛 때문에 로즈메리는 자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던 중, 악마의 의식을 연상시키는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로즈메리는 27년 전의 악몽을 떠올립니다.

 

이 작품의 앞선 시리즈인 로즈메리의 아기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출판사 소개글만으로도 앞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서 크게 무리는 없었습니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죽음의 키스라는 제목이 낯익긴 하지만 아이라 레빈의 작품을 읽는 건 처음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악마숭배는 그리 좋아하는 코드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특이해서 호기심도 많이 동~ 했습니다.

 

호러-공포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지만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는 예상외로 순진하게진행됩니다. 두 모자의 상봉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지고, 27년을 건너뛴 로즈메리의 현실적응도 너무 순탄합니다. 살인사건은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었고, 앤디의 근친상간적인 행동들은 위험하다기보다는 다소 밋밋해 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읽는 동안 긴장감을 딱히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좀 무서운 이야기가 안 나오나, 뒤통수를 칠 반전은 어디쯤 가야 나오려나, 하는 느긋한 기분으로 페이지를 넘기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데 남은 건 겨우 여섯 페이지.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건가, 궁금하던 차에 순식간에모든 상황이 종료되어 버립니다. 제 눈을 의심하면서 앞뒤 페이지를 몇 번씩 다시 읽었고,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인터넷 서점의 서평들까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읽은 건지 꼭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워낙 큰 스포일러라서 다른 독자들 역시 구체적인 언급은 안하고 있었지만, 제가 잘못 읽은 게 아니라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라 레빈이 1929년생이고, 50~6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작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13년의 독자로서 이런 엔딩을 맞이하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사족이지만, 신뢰도 높은 브랜드인 밀리언셀러클럽이 굳이 이 책을 73번 째 리스트에 올렸어야 했나, 라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더불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프로비던스 저널의 추천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곤 비슷한 경험(미디어나 유명작가의 추천사가 얼마나 믿을 것이 못 되는지)을 여러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제대로 속았다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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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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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2012) 이맘때 유리고코로를 통해 누마타 마호카루와 처음 만났습니다. 읽는 내내 초점이 나간 사진을 보는 듯, 또는 포토샵으로 일부러 가장자리를 부옇게 뭉개버린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모호함보다는 묵직함이, 찜찜함보다는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서평들을 보면 일관된 톤을 유지해온 것 같은데, 그런 누마타 마호카루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하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연작 형식의 세 편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새끼고양이에서는 주인공인 고양이 이 노부에와 도지 부부의 집에서 살게 된 계기를 보여줍니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으나 결국 유산을 겪어야만 했던 노부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새끼고양이를 몇 번이고 내다버리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식구로 받아들입니다.

절망이라는 블랙홀에서 고양이 몽은 조연으로만 등장합니다. 대신 중학생 유키오와 새끼고양이의 짧은 만남이 펼쳐집니다. 자신보다 19살 밖에 많지 않은 말없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유키오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듭니다. 힘없고 약한 존재에게 무한한 살의를 느끼게 되고 심지어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구한 인연으로 만난 새끼고양이 덕분에 겨우 그 수렁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어느새 5살이 된 고양이 몽을 목격합니다.

멋진 이별에서 고양이 몽은 15살이 된 할아버지 고양이가 되어 있습니다. 몽을 집안에 들였던 노부에도 7년 전에 죽었고, 이제 몽은 칠순이 다 된 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에 이른 도지는 점점 기력을 잃고 병치레까지 하게 된 몽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세 편의 이야기에서 일관되게 언급되는 테마는 삶과 죽음입니다. 몽을 내다버리려 했던 노부에는 버리는행위 자체를 뱃속에서 죽은 자신의 아이를 장례 치르는 것과 동일시합니다. 번외편 같은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유키오는 좀더 노골적인 모습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속에 느닷없이 끼어든 새끼고양이는 그의 혼란을 종식시켜줍니다. 몽의 마지막 5년을 그린 세 번째 이야기는 전형적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신파의 느낌이 들 정도로 몽과 도지의 이별을 묘사합니다.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 지하철에서 읽지 말라는 홍보 문구가 끌렸습니다. 제대로 한번 울어볼까, 라는 욕심도 들었고, 그것이 누마타 마호카루의 작품이라고 하니 기대감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울 준비를 한 탓인지, 정작 울컥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좀 억울하긴 했지만, 누마타 마호카루의 독특한 문체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울컥 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실은 냉정하게 거리감을 두고 있고, 간혹 판타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심리묘사 덕분에 깊은 감정이입이 쉽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소설 속으로 절대 푹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누마타 마호카루만의 특이한 장치들이 곳곳에서 눈물샘을 막았다고나 할까요?

 

세 번째 이야기의 부제인 멋진 이별은 역설적인 제목입니다. 어쩌면 고양이 울음은 작품 전체가 역설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삶과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고 버려져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새끼고양이의 생환과 성장기를 바탕으로 10대가 겪는 절망, 40대의 불임과 임신과 유산, 70대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회고하는 일상이 한데 버무려져 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 자체도 역설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다르면, 신조어 만들기가 유행인 일본에서 누마타 마호카루는 イヤミス(이야미스)의 대표작가라고 합니다. ‘싫다라는 뜻의 イヤ와 미스터리의 ミス를 합친 말로, 말하자면 다 읽고 났을 때 기분이 나쁘거나, 찜찜한 느낌을 주는 미스터리를 뜻합니다. ‘고양이 울음은 미스터리가 아니다보니 이야미스의 범주에 들어가진 않겠지만, 어쨌든 편하고 밝은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몽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도지 외에는 대부분 크고 작은 그늘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어쩌면 다 읽은 후 싫다라는 느낌이 드는 독자도 적잖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너무 거창하거나 철학적이지 않되 묵직하고 담담하게 포장된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면 누마타 마호카루의 고양이 울음이 제격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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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원숭이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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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은 뒤 미치오 슈스케 작품 가운데 읽은 게 뭐가 있더라?” 하면서 독서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꽤나 당황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몇 권은 있으려니 했는데 제대로 읽은 장편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이 리스트에 있었지만,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접었으니 온전히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앤솔로지인 혈안에 실린 단편 여름의 빛이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었습니다.

왜 이런 착각을 했는지 곰곰이 돌이켜보니 광매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구체의 뱀’, ‘술래의 발소리’, ‘달과 게등 읽어봐야지, 하고 눈여겨봤던 작품들이 적잖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딱히 관심 두지 않았던 외눈박이 원숭이부터 읽게 됐으니 미치오 슈스케와는 별난 인연으로 시작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도청 전문 탐정인 미나시는 유명한 악기업체로부터 의뢰받은 라이벌 기업 도청 미션을 수행하던 중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과 마주칩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얼마 전, 미나시는 지지부진하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우연히 알게 된 후유에를 탐정사무소로 스카웃했습니다. 미나시가 특이한 귀 모양 덕분에 초능력에 가까운 청력을 갖고 있다면 후유에는 특이하게 생긴 눈과 함께 초능력에 가까운 시력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미나시는 큰 헤드폰을, 후유에는 큰 선글라스를 항상 착용하고 다닙니다. 이야기는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는 내용과 7년 전 미나시를 떠난 후 자살한 아키에의 사연을 추적하는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됩니다.

 

미스터리 외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미나시가 머무는 기묘한 아파트 로즈 플랫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과거 미나시의 탐정 스승이었던 노하라 영감, 무뚝뚝한 마키코 할머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도헤이, 쌍둥이 10대 도우미, 미나시의 비서 호사카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소동극 같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냅니다. 후반부에 가면 미나시와 후유에를 비롯하여 이들 모두의 엄청난 비밀이 드러납니다.

 

초반부를 읽으면서 왠지 제 취향이 아닌 가볍고 코믹한 장르물의 냄새가 나서 조금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귀와 눈의 소유자인 주인공들과 소동극의 조연 같은 로즈플랫의 구성원들도 그랬고, 사건 자체도 그다지 독하거나 개성 있는 편이 아닌데다 미나시의 추리 역시 조금은 뜬금없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반부터 두 사건의 이면에 있는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긴장감과 속도감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느닷없이 이야기의 톤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두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미스터리 자체는 완결되지만, 정작 그 뒤에 깜짝 놀랄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걸 서술트릭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작가에게 완전히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그리 불러도 무리는 아닙니다. 작은 힌트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이 정도만 밝히겠지만, 어쨌든 마지막 20여 페이지쯤부터 기가 막힌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왜 이 작품의 제목을 외눈박이 원숭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는 적당한 분량인데다 초반의 약간 나이브한 내용과 전개 때문에 저처럼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마지막 장까지 달리고 나면 미스터리로서의 완결성은 물론 이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따뜻함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뒷표지에 적힌 홍보문구 - 냉철한 두뇌, 따뜻한 감성까지 요구하는 감성미스터리 - 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도 동감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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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손바닥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윤덕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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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준으로) 이 작품이 살육에 이르는 병보다 두 달 정도 먼저 출간됐지만, 인터넷서점이나 카페에 올라온 서평을 살펴보면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독자가 아비코 다케마루와의 첫 인연을 살육에 이르는 병을 통해 맺은 것 같습니다. 그런 탓인지 기대감은 만발했으나 실망했음이란 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쪽에 더 가까운 편임을 전제로 간략하게 서평을 써볼까 합니다.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홀수 장이 교사’, 짝수 장이 형사로 되어있고, 마지막 9장만 미륵이란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교사 쓰지는 여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때문에 근무하던 학교도 옮겨야 했고, 아내 히토미와는 각 방을 쓰며 거의 별거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히토미가 사라집니다. 냉전 중이었던 상황 탓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쓰지는 경찰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누명을 벗기 위해 아내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곧 히토미가 구원의 손길이라는 신흥종교단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형사 에비하라는 야쿠자와의 연루설에 뇌물수수 등 부패혐의로 내사를 받던 중 아내 가즈코가 러브호텔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자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발견된 고가의 미륵상을 통해 가즈코를 살해한 범인이 구원의 손길이라는 신흥종교단체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만난 두 남자가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해, 또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구원의 손길에 잠입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탑니다.

 

두 챕터 쯤 읽은 후 이 작품의 제목이 미륵의 손바닥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곤 두 남자의 결말이 꽤나 씁쓸하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아무리 애써봐야 결국 미륵의 손바닥안에서 놀아난 꼴밖에 안됐다는, 그런 결론이 기다릴 것 같은 짐작 때문이었습니다.

두 남자의 이력을 보면 그런 결말을 맞게 돼도 그리 불쌍하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둘은 각각 원조교제와 부정부패라는 전과가 달려있고, 아내를 찾는 목적도, 아내의 살해범을 찾는 목적도 전혀 정의롭지 않습니다. 쓰지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마지못해 아내를 찾아 나선 셈이고, 에비하라는 아내가 살해됐다는 사실보다는 러브호텔에서 저지른 불륜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꽤 센 반전과 충격을 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살육에 이르는 병을 먼저 본 업보(?) 탓인지,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아쉬웠습니다. 미륵의 정체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고, 분량이 크게 넘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급 마무리된 이유도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물론 아비코 다케마루만의 개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지만, 앞서 깔아온 이야기의 기초공사들이 허망해진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100% 몰입해서 읽기가 어려웠던 것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신흥종교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정도는 아니다보니 리얼리티 면에서 왠지 남 얘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신흥종교라는 소재 자체는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나절도 안 돼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도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만든 쉬운 전개와 복잡하지 않은 구도덕분이었습니다. 이런 점은 장르물에 있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이 작품에 관해 판정 내리자면 장점 대 단점이 4:6 정도? 그래도 장점을 4로 본 것은 쉽고 안이하게(?) 읽은 덕분에 결말의 충격을 어느 정도는 무방비 상태에서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의 서평에 아예 더 많은 내용을 넣어서 보다 긴 장편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단편 정도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전적으로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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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구보 미스미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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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록작 소개 가운데 약간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된 경우가 있습니다)

 

19금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따뜻한 소설보다도 진한 여운을 남겼던 구보 미스미의 전작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동생같은 작품입니다. 네 편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된 점, 또 아픈 과거를 지닌 채 겨우겨우 살아가는 상처투성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와 닮은꼴 또는 시즌 2의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소라낙스 루복스 - 유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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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 세 사람의 이야기

해변 가까이 들어와 목숨이 위험해진 고래 때문에 큰 소동이 벌어진 어촌 마을. 그곳에 모인 유토와 노노카와 마사코는 어머니와 남매로 위장한 채 며칠의 시간을 보내는... 그런데 자살로 치닫던 그들의 마음이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묘한 이유로 길 잃은 고래에게 이입되는...

 

세 주인공에게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남긴 것은 어머니들입니다. 비뚤어졌거나, 이기적이거나, 혹은 집착에 가까운 광기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인공들의 유년기를 지배한 끝에 삶 자체를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범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과거 또는 현재의 상처들이 꾸준히 자가발전하면서 결국 이들을 모두 죽어버리고 싶은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들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서로를 만남으로써 치유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19금 에피소드에 비해 조금은 싱거웠지만 현실감만큼은 훨씬 더 강렬했습니다. 다만, 우연에 우연을 통해 만난 주인공들이 평범하지 않은 유사한 상처를 지닌 점은 조금은 작위적으로 보인 게 사실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구보 미스미는 매일 애를 쓰지만,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다든가 멀리 가버리고 싶다든가... 그런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작의를 밝혔습니다. 말하자면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만, 캐릭터에 관한 한 일부러 작정하고 설정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길을 잃고 해변으로 밀려온 고래 역시 세 주인공의 치유를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상징인데, 우선 그들을 한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고, 그들과 비슷한 처지 - 마치 죽기 위해 해변 가까이로 다가온 듯 - 임을 암시했으며, 더 나아가 자살을 꿈꾸던 주인공들이 같은 처지인 자신(고래)에게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살아남아라!”라고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현학적인 태도로 이 상징을 강조하려 했다면 부작용이 났겠지만, 구보 미스미만의 편안한 문장 덕분에 전체 이야기에 잘 녹아들었다는 생각입니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의 메인 코드가 불임’, ‘출산’, ‘사랑이었다면, 이 작품은 일그러진 가족과 모성’, 그리고 삶과 죽음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두 편 모두 캐릭터는 상처투성이들이고, 그들이 겪어내야 하는 일상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비록 구보 미스미가 그들에게 살아남아 사랑하라고 끝까지 힘을 주고 길을 열어주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들이 앞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반드시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나마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는 제법 기운을 차린 등장인물들 덕분에 위안을 받았지만, 이 작품은 어딘가 불안함이 남아있는 그들을 방치하고 돌아선 것 같아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 소개에 절망을 탁월하게 그리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고 적혀있는데, 그것이 구보 미스미의 매력이고 개성이긴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희망 역시 탁월하게 그릴 줄 아는 작가임을 스스로 입증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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