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술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5 링컨 라임 시리즈 5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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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교의 여학생, 메이크업 아티스트, 승마를 사랑하는 변호사 등 일련의 인물들이 단 하루만에 동일범에 의해 기괴한 형태로 살해되거나 그에 준하는 위기에 빠집니다. 현장에서 수거한 증거들을 분석한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범인이 마술에 능한 인물임을 확신한 것은 물론 다음 범행 현장까지 예측해내지만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견습 마술사 카라의 도움으로 범인의 윤곽을 포착한 라임과 색스는 3년 전 한 서커스장에서 벌어진 화재 참사를 범행동기로 여기지만, 이후 범인은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여 두 사람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립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다섯 번째 작품의 제목인 사라진 마술사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뒤 마술사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범인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마술계에서 이른바 탈출 마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고도의 수법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한 마지막 반전에서 밝혀지는 마술사의 비밀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사라진 마술사의 핵심 키워드는 미스디렉션(misdirection)입니다. 의도적으로 관객의 주목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 뒤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기술을 선보이는 마술사의 필수 덕목으로, 단순히 사물을 이용하는 물리적인 미스디렉션은 물론 관객의 의식까지 장악하고 오도하는 심리적인 미스디렉션도 있습니다.

유명 마술사의 이름에서 따온 말레릭이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범인은 근접, 환상, 동물, 탈출 등 모든 종류의 마술은 물론 독심술과 복화술에도 능한데다 미스디렉션의 천재로 라임과 색스를 수차례 곤경에 빠뜨리곤 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동격서의 귀재라고 할까요? 라임과 색스는 번번이 그가 쳐놓은 미스디렉션의 함정에 빠져 엉뚱한 곳에서 허우적대다가 큰 위기를 맞이하곤 합니다. 무엇보다 말레릭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난제인데, 막판에 이르기까지 제프리 디버는 연이은 반전을 통해 독자의 궁금증을 극대화시킵니다. 숱한 착오를 겪는 라임과 색스가 그 미스디렉션을 역이용하여 말레릭을 제압할 거란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직접 읽기 전까진 좀처럼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 미스디렉션이 사라진 마술사에서 가장 아쉬운 설정이기도 한 점입니다. 사실 제프리 디버는 미스터리계의 미스디렉션의 장인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반전과 트릭에 관한 한 1인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뿐 아니라 다른 시리즈나 스탠드얼론에서도 그의 미스디렉션은 매번 독자를 희롱하다가 큰 충격에 빠뜨리곤 합니다. 그런데 사라진 마술사의 미스디렉션은 다소 과도하게 설정된데다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아서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생각입니다. 좀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만일 말레릭이 애초 자신의 목표에만 매진했다면 오히려 완전범죄를 쉽게 이뤄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미스디렉션을 복잡하게 이용하는 바람에 모든 걸 망쳐버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거듭되는 반전을 맛보는 쾌감은 짜릿했지만 말레릭의 납득하기 힘든 행동과 범행 때문에 이내 의아해진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말레릭 못잖게 눈길을 끈 인물은 견습 마술사이자 말레릭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선한 마술사카라입니다. 마술이 단순히 오락이나 눈속임이 아닌, 과학과 예술과 심리학의 영역에 닿아있음을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 말레릭의 내면과 미스디렉션에 대해 결정적인 조언을 건네기도 합니다. 천하의 라임마저 감동시킨 카라의 마술은 마지막 반전에도 등장하는데, ‘링컨 라임 시리즈의 팬이라면 앞선 작품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흥분과 여운까지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스디렉션 얘기만 하느라 정작 내용에 대해선 별로 언급 못했는데, 라임과 색스를 감쪽같이 속인 말레릭의 미스디렉션 자체가 모두 스포일러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만, 매 장면마다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라며 고민하며 마지막 장까지 달려야 하는 건 독자로선 나름 즐거운 고문이라 할 수 있으니, 가급적 줄거리나 다른 분들의 서평을 접하지 말고 바로 본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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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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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절도 현장에서 체포될 뻔했던 루카 마리노는 스미스라는 정체불명의 남자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그의 지시를 받아 위험천만한 미션을 수행하는 스파이가 됐습니다. 매번 다른 이름과 신분을 제공받은 루카는 절도, 사기, 몰카 등 온갖 불법적인 미션에 투입돼왔고, 현재는 루이지애나의 사업가 라이언을 표적 삼아 활동하며 에비 포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순조롭게 라이언의 연인이 되어 스미스가 원하는 정보를 캐던 루카는 어느 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여자가 나타나선 스스로를 루카 마리노라고 소개한 것은 물론 진짜 루카 마리노의 과거까지 완벽하게 숙지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혼란에 빠졌던 루카는 이내 스미스가 어떤 목적을 갖고 그녀를 자신에게 보냈음을 깨닫습니다.

 


애슐리 엘스턴은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첫 작품부터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첫 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는 도메스틱, 서스펜스, 스파이 등 다채로운 스릴러 서사가 혼재된 작품으로, 오랫동안 유능한 스파이로 암약해온 루카 마리노가 오직 사서함을 이용한 우편물과 기계음으로 변조된 통화만으로 지시를 내리는 미스터리한 보스 스미스와 정면 대결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유능함을 인정받긴 했지만 루카는 스미스가 결코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했습니다. 특히 훈남 사업가 라이언을 상대로 한 미션을 수행하면서 루카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스미스의 지시 내용이나 미션 진행 속도가 평소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외모는 물론 자신의 과거까지 복제한 여자가 나타나고 뜻밖의 사건까지 벌어지자 루카는 이번 미션에 다른 의도가 깔려 있음을 확신합니다.

 

루카가 갖은 위기를 겪으며 스미스와의 대결을 도모하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와, 과거 루카가 수행했던 몇몇 미션의 전모를 그린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스미스의 스파이가 되어 8년 동안 완벽한 거짓말과 가짜 신분으로 불법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루카는 매번 자신의 표적에게 동정심을 품거나 감정을 이입하는 등 뼛속까지 사악한 스파이가 되진 못했습니다. 스미스의 넘버원 스파이로 인정받기 위해 분투한 적도 있지만 어느 샌가 스미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한 루카는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조금씩 반격을 위한 무기들을 준비해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스미스의 진짜 의도를 파악한 직후부터 교묘하고 은밀하게 그를 무너뜨릴 계획을 진행시킵니다.

 

뛰어난 스파이이자 거짓말쟁이로서의 루카의 카리스마와 매력도 대단하지만, 엄청난 정보력과 네트워크를 지닌 정체불명의 보스 스미스 역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입니다. 수하의 유능한 스파이들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할 뿐인 단순한 악당 보스가 아니라 오락과 쾌감을 위해 수하들을 상대로 야비하고 잔혹한 계략을 일삼는 그의 행태는 그 어떤 악당 캐릭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서늘한 냉기를 내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루카가 뛰어난 스파이라 해도 언제 어디서든 상대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희롱하다가 죽일 수 있는 스미스는 난공불락처럼 보이는데, 이런 긴장감 덕분에 마지막 장까지 조금도 안심할 수 없는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하필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생기는 바람에 한 번에 완주하지 못하고 서너 차례에 걸쳐 나눠 읽었는데, 그래선지 재미있게 읽고도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첫 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는 결과를 다 알고 읽어도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 작품이라 바쁜 일이 마무리되는대로 꼭 한 번 찬찬히 재독할 계획인데, 어쩌면 띄엄띄엄 읽은 첫 번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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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레이디 조지애나 레이디 조지애나 시리즈 1
라이스 보엔 지음, 김명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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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32, 스코틀랜드 래녹 성에 사는 21살의 조지애나(이하 조지’)는 세계의 절반을 호령한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인 왕족이지만 남은 일생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답답한 날들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 래녹 성의 공작인 이복오빠 빙키가 메리 왕비와 짜고 자신을 몰락한 동유럽 왕조로 시집보내려 하자 조지는 특단의 결정을 내리곤 런던으로 가출합니다. 하녀 한 명 없이 평생 해본 적 없는 일을 겪으며 고난의 홀로서기에 나서지만 조지는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끔찍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집안 욕실에서 한 남자가 익사한 채 발견된 것입니다. 경찰은 그 남자와 만나기로 돼있던 이복오빠 빙키는 물론 조지에게도 의심의 눈길을 보냅니다. 결국 조지는 스스로 탐정이 되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한국에 소개된 Rhys Bowen의 작품은 두 편인데, ‘탐정 레이디 조지애나는 라이스 보엔으로, ‘팔리 들판에서는 리스 보엔으로 작가명을 표기했습니다.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녀의 레이디 조지애나 시리즈2007‘Her Royal Spyness’(본 작품의 원작)를 시작으로 2023‘The Proof of The Pudding’까지 17편이나 출간된 베스트셀러 시리즈입니다. 다만 한국에는 이 작품 단 한 편만 소개된 뒤 더는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는데, 당시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한 탓으로 보입니다.

 

일단 설정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1932년의 영국이 배경인 점도, 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음울한 분위기에 거의 파산 일보 직전인 래녹 성에 갇힌 채 청춘을 갉아먹고 있던 무늬만 왕족21살의 조지가 살인사건 해결사로 활약한다는 설정도 눈길을 끕니다. 또 조지가 런던에서 만난 다양한 조연들도 그 면면이 독특합니다. 왕족이지만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이복오빠 빙키를 비롯하여 우연히 재회한 스위스 귀족학교 동창생들, 2년 전 사교무대에서 만났던 아일랜드 귀족 가문의 자제, 어머니의 복잡한 남성편력 때문에 유년기에 잠시 가족이 됐던 남자 등이 그들인데, 문제는 적잖은 인물들이 살인사건 조사에 나선 조지를 꽤나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런던에서의 홀로서기를 도와주던 절친은 물론이거니와 노골적으로 대시하며 조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남자들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스러운 구석들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 범인이 있다고 확신한 조지는 경찰의 의심을 뒤집기 위해 왕족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변신을 거듭하며 분투합니다.

 

이야기의 거의 절반쯤은 골 때리는 왕족조지의 런던 정착기에 할애됩니다. 다소 지나칠 정도의 우연들을 통해 런던에서 여러 남자와 재회한 조지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1932년을 배경으로 한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처럼 흥분과 경계와 두근거림을 번갈아 경험합니다. 왕족으로 살아온 탓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집안일에 당황하는 장면들도 유쾌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집안 욕실에서 익사체가 발견되면서 조지의 상황은 180도 급변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지의 타고난 성정들이 위력을 발휘합니다. 가문의 품격과 역사를 소중히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미래까지 함부로 결정당하는 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반골 스타일은 물론 어떤 위험도 개의치 않고 진실을 향해 폭주하는 대단한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조지는 그 어떤 장르물의 여주인공보다 매력적이고 흡인력이 강합니다. 이 시리즈가 17편까지 이어진 건 거의 전적으로 조지의 캐릭터 덕분이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미스터리 자체만 놓고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거듭된 우연과 작위적인 상황들 때문에 조지의 추리와 조사는 현실감이 떨어지곤 합니다. 막판에 밝혀진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왕족 출신의 초짜 탐정인 조지가 베테랑 명탐정들처럼 뛰어난 추리와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기막힌 미스터리 해결사로 활약하는 것 자체가 더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결국 기대했던 것만큼의 만족감을 느낄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소개글대로 유머러스하게 그린 코지 미스터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좌충우돌 탐정 입문기정도의 기대감만 갖고 읽는다면 나름 재미있는 책읽기를 경험할 순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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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2 - 하우스메이드의 비밀
프리다 맥파든 지음, 황성연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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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의 나이에 대학에 다니며 사회복지사가 될 계획을 갖고 있는 밀리 캘러웨이는 살인 전과 때문에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하우스메이드 외에는 일자리를 찾기 힘든 형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IT 재벌인 더글러스 개릭의 연락을 받고 맨해튼 펜트하우스의 하우스메이드가 된 밀리는 자신의 천운에 감격하지만, 이내 평범하지 않은 개릭 부부의 상황을 감지하곤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손님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 웬디, 처음엔 친절했지만 밀리가 웬디에게 관심을 갖자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남편 더글러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인 웬디의 멍투성이 얼굴, 그리고 빨래와 세면대에서 발견되는 핏자국 등 밀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밀리는 웬디가 처한 끔직한 상황을 직접 목격합니다.

 


서평에 앞서 편집에 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빠른 속도로 책을 읽는 편인데도 12개나 되는 오타를 발견했는데, 모든 독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제 경우엔 책읽기를 방해하는 오타를 견디지 못합니다. 또 그런 상태로 책을 판매한 출판사의 태도도, 일반독자조차 쉽게 찾아내는 12개의 오타를 방치한 편집자와 번역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우스메이드 2’는 내용만으론 별 5개도 충분하지만, 편집에 관한 한 별 1개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 강간당할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10년을 복역한 밀리는 출소 후 하우스메이드로 일하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을 여러 번 구해낸 적 있습니다. 때론 불법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남자들을 응징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 모태 오지라퍼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밀리가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한 건 그것이 법을 어기지 않고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리는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서 또다시 가혹한 상황에 처합니다.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웬디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던 밀리는 그녀를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밀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6개월 된 연인 브록의 존재입니다. 은수저 출신의 변호사인 그는 밀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결혼까지 꿈꿉니다. 하지만 밀리는 자신의 살인 전과를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와의 사랑이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그런 와중에 펜트하우스의 일이 터지자 밀리는 자신에겐 사랑과 결혼이란 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허상임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한편 위기에 처한 여자들을 구할 때마다 자신과 함께 행동했던 전 연인의 존재가 늘 밀리의 마음 한 편에 남아있습니다. 그가 곁에 있다면 웬디를 구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에 2년 전 일방적으로 소식을 끊고 이별을 초래한 그가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연인의 이름이나 캐릭터를 밝히지 않은 건 전작인 하우스메이드에 대한 대형 스포일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많은 서평에서 이 연인의 이름을 공개할 텐데, ‘하우스메이드를 읽지 않은 채 그 서평들을 접한 독자라면 아쉽지만 그 스포일러를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1개를 뺄 정도로 아쉬웠던 건 서론이 너무나도 길고 장황했던 점입니다. 본격적인 사건은 중반부쯤에 터지는데, 그 전까지는 전작과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는데다 유사한 상황들이 반복될 뿐이고, 현재 연인인 브록과의 갈등 역시 밀리를 민폐캐릭터로 보이게 할 정도로 지루하게 되풀이됩니다.

물론 본격적인 사건이 터진 뒤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프리다 맥파든 특유의 몰아치는 반전과 짜릿한 스릴러 서사의 쾌감이 연이어 폭죽처럼 터집니다.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진 폭력과 학대의 진상이 드러나는가 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 속에서 허우적대던 밀리는 천운 같은 반전 덕분에 큰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모태 오지라퍼 하우스메이드로서의 타고난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우스메이드 시리즈는 모두 세 편이 출간됐습니다. ‘The Housemaid's Wedding’이라는 단편이 있긴 하지만, 장편으론 2024년에 출간된 ‘The Housemaid Is Watching’이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치명적인 하우스메이드 밀리 캘러웨이의 세 번째 활약도 조만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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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살리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2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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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연방법원 판사 줄리아 커먼스와 그녀의 경호원 앨런 드레이먼트가 판사의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새 파트너 프레더리카 화이트와 함께 플로리다로 날아간 에이머스 데커는 사건 현장을 보자마자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현지 요원은 판사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자의 보복살인으로 추정했지만, 한 사람은 총으로 깔끔하게, 한 사람은 칼로 무참하게 살해된 현장을 본 데커는 별개의 살인사건일 가능성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 시절 첫 파트너였던 메리의 자살, 데커의 뇌에 이상 변화가 감지됐다는 연구소의 통보문, 느닷없이 배정된 새 파트너, 그리고 최근 들어 자꾸 떠오르는 죽은 아내와 딸의 추억 등 데커는 극도로 불안하고 심란한 상태에서 좀처럼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해 곤경에 빠집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이머스 데커의 일곱 번째 이야기인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는 여느 전작들보다 이 시리즈의 팬들에게 호기심과 기대감, 안타까움과 연민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오랜 파트너 알렉스 재미슨이 뉴욕으로 떠난 뒤 데커에게 반강제로 배정된 새 파트너 화이트는 첫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물론 데커와 비슷한 가슴 아픈 상처를 지닌데다 수차례 충돌과 화해를 거듭하며 데커의 진지한 파트너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단숨에 시리즈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한편 매 작품마다 아내 캐시와 딸 몰리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던 데커가 메리의 자살로 인해 더더욱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며 우울증 이상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라든가 뇌에 이상 변화가 감지됐다는 통보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장면은 그에게 주어진 잔혹한 운명을 다시 한 번 절절히 느끼게 만들어서 독자의 마음을 안타깝고 스산하게 만듭니다.

 

데커는 화이트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다른 범인에 의해 벌어진 별개의 살인사건으로 여기고 수사를 진행합니다. 탐문을 거듭할수록 판사와 경호원의 숨겨진 사연들이 밝혀지고 두 사람의 살해 동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데커의 추론은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초능력에 가까운 데커의 과잉기억증후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 불안하고 심란한 상태에서 좀처럼 수사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새 파트너 화이트가 큰 힘을 발휘합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듯한 데커에게 정면으로 대들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가며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던 화이트지만 그의 과거 속 비극과 현재의 고통을 알게 된 뒤로는 자신의 가족사와 속내까지 터놓으며 치유와 위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미스터리의 구도만 보면 592페이지라는 분량은 다소 과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는 데커의 무간지옥 같은 고뇌, 화이트의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롤러코스터 같은 교감이 미스터리 못잖게 중요한 서사라서 그 부분에 꽤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 같으면 과도한 분량에 다소 불만을 품었겠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는 사건보다 두 사람의 개인사가 더 강렬한 인상을 풍겨서 조금도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데커와 화이트의 수사는 판사와 경호원 주변 인물들을 거듭 탐문하는 게 전부입니다. 물론 탐문 중에 얻어낸 정보를 통해 새 인물들이 조사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오랜 과거 속 사건과 인물까지 소환되면서 사건의 외연은 초반보다 엄청나게 확장됩니다. 막판까지 반전이 거듭되는 가운데 화이트의 도움으로 초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된 데커는 판사와 경호원의 죽음의 진상을 극적으로 밝히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했던 몇 가지 의문 - 왜 데커에게 새 파트너가 갑자기 배정됐나? 왜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현지 요원들이 아닌 데커와 화이트가 수사의 주체가 됐나? - 이 마지막 장에서 풀리면서 짜릿한 쾌감과 함께 앞으로 이어질 후속작에서의 두 사람의 활약에 큰 기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검색해보니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2022) 이후 에이머스 데커의 여덟 번째 이야기는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620분의 남자 시리즈3편까지 나왔던데, 데이비드 발다치가 언제쯤 데커-화이트 콤비의 두 번째 이야기를 선사할지 그저 궁금하고 기다려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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