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 상 스티븐 킹 걸작선 2
스티븐 킹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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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역사를 가진 오버룩 호텔은 혹독한 기후 탓에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문을 닫습니다. 그 기간 동안 관리자로 취업한 잭 토런스는 가족과 함께 아무도 없는 호텔에 머물게 됩니다. 잭은 단편소설과 희곡을 쓰며 교사로 재직했지만, 치명적인 알코올중독과 학생 폭행으로 인해 해직됐고, 그의 폭력은 가족을 향한 적도 있습니다.

한편 아들 대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5살 소년입니다. 같은 능력을 지닌 오버룩 호텔의 요리사 딕 할로런에 따르면 그것은 빛(샤이닝), 환상, 예견이라 부르는 것이고,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오버룩 호텔에서의 생활이 결정되자마자 대니는 그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감합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하나둘씩 현실이 되어 잭과 아내 웬디, 대니 앞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생물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버룩 호텔이 내뿜는 광기는 세 사람을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은 물론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몰아붙입니다.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서평단에 뽑혀 책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전편이라 할 수 있는 샤이닝을 읽기로 했습니다. “36년 만에 출간된 샤이닝의 속편이라는 홍보문구처럼 닥터 슬립샤이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이제는 중년이 된 대니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36년 전 5살 소년이던 대니가 겪은 참극을 읽어야 닥터 슬립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스티븐 킹의 대표작 샤이닝을 뒤늦게나마 읽게 됐습니다.

전체적인 인상부터 말하자면, 호러물이나 스티븐 킹의 마니아가 아니라면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닙니다.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기 힘든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버룩 호텔의 카리스마는 때론 난해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서평을 쓰기 전 내용을 복기하는 동안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오버룩 호텔 곳곳에 배치된 여러 가지 소품들입니다. 잭이 수시로 씹어 먹는 아스피린 계열의 엑세드린은 그의 광기를 부추기는 촉매제 같았고, 호텔 곳곳의 크고 작은 소품들은 마치 직접 눈으로 보듯 상세하게, 또 곧이어 벌어질 어떤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긴장감 있게 묘사됐습니다. 잭에게 창작욕과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스크랩북, 스스로 움직이는 낡은 엘리베이터, 살아 움직이는 동물 전정나무, 그리고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보일러 등은 초반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가볍게 언급되다가 사건과 함께 그 의미를 증폭시키면서 오버룩 호텔이 내뿜는 악마적 기운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소품못잖게 인상적이었던 건 오버룩 호텔 곳곳에서 수시로 들리는 환청 같은 누군가의 목소리입니다. ‘또 이성을 잃었군, .’, ‘그곳 가까이 가지 마라... 절대로.’, ‘이리 나와, 이 새끼! 이리 나와서 남자답게 벌을 받아!’ 등 주로 잭과 대니가 듣곤 하는 이 기괴한 목소리는 내용도 섬뜩하지만 특이한 방식으로 서술돼서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즉 따옴표나 괄호로 표시된 채 문장의 한 가운데 툭툭 삽입되거나 맥락 없이 끼어들곤 하는데, 처음엔 이런 방식이 너무나 낯설기도 하고 그 의미조차 알 수 없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러 차례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직접 들리는 듯한, 즉 오버룩 호텔의 환청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으스스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스티븐 킹의 작품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그의 세계관이나 독특한 서술방식이 낯설 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다 읽은 뒤 몸과 머리가 얼얼한 상태에서 읽은 해설 : 스티븐 킹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덕분에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전반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샤이닝을 읽으면서 이건 뭐지?”라고 의문을 품었던 부분들이 적잖이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본편의 줄거리가 공개돼있어서 해설을 먼저 읽어선 안 되겠지만, 스티븐 킹의 초심자라면 한번쯤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입니다.

 

(해설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스티븐 킹의 여러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 고립된 공간과 고립된 인간(가족), 또 거기에서 비롯되는 끔찍하고 기이한 비극은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연상시켰습니다. 토속적인 느낌이 강조된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서도 비극은 고립과 밀접하게 연관돼있습니다. 또한 가족염력이라는 개념 역시 두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코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선 느끼지 못했던 위화감이 샤이닝에서 감지된 것은 미국식 호러는 왠지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현상일 거라는 문화적 선입견 때문인 듯 보입니다. 어쨌든 스타일이나 화법 자체가 전혀 다른 작가들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호러물을 위해 비슷한 코드를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로워 보인 건 사실입니다.

 

책이 배송 되는대로 닥터 슬립을 읽을 예정인데, 아마 샤이닝을 읽지 않았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나 몰입감이 훨씬 떨어졌을 거란 생각입니다. 스티븐 킹의 호러물을 연이어 읽는 것이 정신건강에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36년이 지난 후 대니 토런스가 어떻게 성장했을지, 또 이번에는 무슨 기막힌 상황과 마주칠지 궁금하다 보니 닥터 슬립이 배송되는 즉시 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어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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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량 - 마지막 15분의 비밀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김인순 옮김 / 예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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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섹스는 물론 술과 담배까지 금지할 정도로 엄격한 교리를 표방해온 엘로힘 교회에서 지역목자와 상담역이라는 높은 지위를 갖고 있던 남자들이 연이어 독살당합니다. 율리아 뒤랑은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동료 형사들과 탐문을 이어가던 중 피살자들이 실은 추악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됩니다. 범인은 피살자들과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뒤랑의 탐문과 추리는 사소한 단서들 외에는 계속 헛발질만 날릴 뿐입니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피살자들의 난잡한 과거사가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지만, 대부분 엘로힘 교회 신도인 사건 관련자들과 유족들은 굳게 입을 다뭅니다. 그 사이 교회와는 연관 없는 희생자가 나타나자 뒤랑은 패닉에 빠집니다.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두 전작 - ‘영 블론드 데드’, ‘12송이 백합과 13일 간의 살인’ - 때보다 뒤랑은 더 많은 맥주를 즐겨 마시고, 더 많은 담배를 입에 달고 삽니다. 이번에 그녀가 맡은 사건은 피살자들의 훼손 상태만 놓고 보면 전작들보다 덜 잔혹하지만, 사건의 배경과 동기는 역시 가족이 연루된 끔찍한 과거사를 중심으로 설정돼있습니다.

 

피살자들의 가족은 하나 같이 폭압적이고 경직된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고, 피살된 가장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종교에 결부시켜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어왔습니다. 또한 그들은 집밖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탐욕과 욕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삶과 그 가족을 붕괴시키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막장에 콩가루까지 버무린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전형들입니다. ‘가족이 안식처이자 보호벽이 아닌 상처를 내는 흉기로 존재할 때 그것은 타인보다 더 지독하고 무자비하게 작동할 따름입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입장임에도 피살자들의 추악한 단면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뒤랑은 욕지기와 함께 지금 자신이 꿈꾸고 있는 행복한 가족에 대해 회의를 느낍니다. 그녀가 만나고 있는 베르너 페트롤은 유부남입니다. 불화 중인 아내와 곧 이혼할 거라며 뒤랑과의 행복한 미래를 몇 번씩 맹세하지만, 뒤랑은 그의 말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한편에선 수사가 진척되면서 베일에 싸여있던 끔찍한 가족사가 한 꺼풀씩 벗겨지지만, 다른 한편에선 동료 형사 프랑크가 아내의 임신 소식에 마냥 행복해합니다. 뒤랑은 진척 없는 수사와 가족의 극단적인 양면을 지켜보느라 온종일 진이 빠집니다. 이렇듯 가족이라는 코드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치사량은 자극적인 느낌이 강했던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무겁고 비극적인 인상을 풍깁니다.

 

1년 간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세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일정한 패턴의 전개와 엇비슷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범인 또는 피살자에게 불행한 가족사를 부여함으로써 무게감과 진정성을 어필합니다. 동시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합니다. 대중성이 우선되는 장르에서 이런 포장은 당연히 선호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에 수반되어야 할 복잡하고 치밀한 이야기 구성이 늘 부족하다 보니 왠지 얄팍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좀 풀어서 설명하면, 뒤랑과 동료들은 같은 인물, 같은 장소를 며칠씩 연이어 탐문하고 뒤지고 다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적인 진척을 이뤄내진 못합니다. 간혹 촘촘한 눈썰미나 번득이는 추리가 빛나기도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제보나 예상치 못한 상황 덕분에 수사가 일보 전진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범인을 특정하게 되는 계기는 우연하고 엉뚱한 곳에서 발견됩니다. 등장인물은 많고 크고 작은 해프닝들이 자주 벌어지지만 단선적인 구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범인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고, 범행 동기는 알고 보면 조금은 맥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건 먹고, 마시고, 씻고, 갈아입는 뒤랑의 사생활은 과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미루어보아 이런 아쉬운 점들은 후속작에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스릴러는 중독성이 무척 강합니다. 율리아 뒤랑 역시 희소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여형사로서의 중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단선적이고 이런저런 비슷한 아쉬움이 눈에 빤히 보이더라도 작가와 주인공이 쳐놓은 잔혹하고 끔찍하면서 다분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레임은 쉽사리 외면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뒤랑과의 만남에서는 이왕이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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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예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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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쿠보의 투고 때문에 오카야 맨션의 괴담을 조사하기 시작한 는 맨션과 인근 주택단지에 살고 있거나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비슷한 현상을 목격했거나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목을 맨 기모노 차림의 여자 형체, 그 여자의 허리띠가 사악사악 다다미를 쓰는 소리, 벽을 기어 나오는 아기의 형상, 찰싹찰싹 뺨을 만지는 차가운 촉감 등이 그것입니다.

와 쿠보의 탐문은 오카야 맨션과 주택단지의 과거 속으로 향하고, 그곳에 오래 살았던 인물이나 절 관계자 등을 통해 거의 1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끔찍한 괴담의 실체와 근원을 조금씩 파악합니다. 오카야 맨션이 자리 잡은 터에서 오래 전부터 참혹한 사고, 방화와 살인, 자살 혹은 강제 동반자살 등 비극적인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을 알게 된 는 그 시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 웬만한 괴담수집가도 다루기를 꺼려한다는 오쿠야마 괴담에 도달합니다.

 

오노 후유미 스스로 라는 작가로 등장하여 괴담의 근원을 쫓는 이야기로,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에 가까운, 그래서 독특한 공포감을 주는 작품입니다. A 집안의 흉사를 조사하다 보니 B 집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B 집안을 조사하다 보니 그 선대에서 C 집안과 연루된 사건이 있었고...

결국 오카야 맨션과 주택단지에 현재 거주 중인 인물들에서부터 시작된 의 취재는 금세기 - 지난 세기 - 고도성장기 - 전쟁 후 - 전쟁 전 - 메이지&다이쇼 시대까지 이릅니다. 자연히 수많은 인물과 가계(家系)가 등장하고, 또 그만큼의 괴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등장인물과 가문 이름 때문에 읽는 내내 꽤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이야기 구조 상 불가피한 설정이라 여기저기 메모를 남겨가며 읽어야만 했습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잔예라는 제목에 있습니다. 그 의미를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첫 페이지부터 읽어나갔는데, 엔딩에 이르러서야 그 뜻을 미리 알고 읽었다면 훨씬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아두면 유용한 팁이라서 본문에서 잔예의 뜻을 소개한 문장들을 발췌, 편집해봤습니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촉예(触穢)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더러움에 접촉하면 전염된다는 사고방식이다. 특히 죽음에 의한 더러움은 사예(死穢)라고 해서 중시했다. 죽음은 모종의 더러움을 낳는지도 모른다. 더러움에 닿은 우리도 주술적으로 방어한다. 죽은 이를 공양하고 땅을 정화한다. 하지만 너무 강한 탓에 그러고 나서도 남는 무엇이 있다면? 그곳에는 더러움의 잔여물인 잔예(殘穢)가 남았다.”

 

즉 메이지와 다이쇼의 교체기에 일어난 끔찍한 죽음이 탄생시킨 더러움(사예)이 시간의 흐름과 주술적인 정화의식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잔여물(잔예)로 살아남아 끊임없는 전염(촉예)을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오염된 땅과 집이 그곳을 찾는 사람을 오염시키기도 하고, 오염된 자가 누군가를 방문하거나 누군가가 오염된 자를 방문할 때 전염되기도 합니다. 또한 그림이나 칼, 가구나 건축 자재 등이 매개체가 돼서 전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설 중 하나인 사또와 처녀귀신(부임하는 사또마다 첫날밤에 처녀귀신을 보고 죽어나간다는 이야기)처럼 붙박이 더러움이 아니라, 강력한 전염력을 지닌 탓에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무차별로 퍼져나가는 잔예라는 개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르포에 가까운 의 탐문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제까지 읽은 소설 중 가장 무섭다라거나 손닿는 곳에 책을 놓기조차 두렵다는 야마모토 슈고로 상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물론 늦은 밤, 혼자 책상에 앉아 읽다보면 자꾸 등 뒤가 서늘해지거나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문득문득 천장을 올려보거나 멀쩡한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막판에 진실이 밝혀지는 미스터리보다는 이런 종류의 무서움이 있다는 식의 평면적인 르포에 가깝기 때문에 소설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흑사의 섬을 통해 호감을 갖게 된 오노 후유미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별 세 개에 그치게 만든,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완독하는데 사흘씩이나 걸리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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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릭스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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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ak

1. ~에 광적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

2. 괴짜, 괴물 같은 사람

3. 기형아, 기형인 것

4. 기이한 일

 

K** 종합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일어난 세 가지 기이한 이야기를 다룬 호러 미스터리입니다. ‘프릭스라는 제목대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기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태어난 직후부터 외부와 완전히 통제된 채 완전한 어른이 되기 위한 약을 먹어온 다다시, 교통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자신의 정체성과 죽은 남편의 과거를 추적하는 소노코, 그리고 추악한 외모의 의학자에 의해 곱사등이, 외눈박이, 비늘얼굴, 세 개의 팔, 누에인간 등 끔찍한 기형으로 개조된 다섯 명의 프릭스와 그들에 관한 악몽을 꾸는 작가가 등장합니다.

 

수록작 세 편 모두 진실 찾기를 뼈대로 삼은 미스터지만, 워낙 극단적인 이야기들이라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합니다. 그저 상상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캐릭터와 상황들로 꽉 차있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놀랄만한 반전이 숨어있다는 정도가 소개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수록작 모두 1989~1996년에 초고가 쓰인 이력을 갖고 있는데, ‘어나더어나더 에피소드S’에서 맛봤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호러 미스터리의 매력이 실은 꽤 오래 전부터 쌓여온 내공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이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섬 악마와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영화 프릭스라는 두 걸작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혔습니다. ‘외딴섬 악마는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읽어봤거나 제목이라도 들어본 작품이지만, 영화 프릭스는 영 낯설어서 검색을 해보니 1932년 작품이었습니다. (참고로 2002년에 개봉된 괴물거미가 나오는 프릭스는 전혀 무관한 작품입니다.) 사지가 없는 자, 샴쌍둥이 자매, 팔로 걷는 사람, 난쟁이 등이 모인 서커스단이 등장하는데, 수록작 중 마지막 편인 프릭스-564호실 환자의 등장인물 설정과 거의 비슷합니다.

 

문득 쓰하라 야스미의 일레븐중 첫 번째 수록작인 오색 배가 생각났습니다. 거기에도 배에 머물며 흥행을 벌여 연명하는 기형의 존재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소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 구단을 비롯, 팔 없는 청각장애인 가즈오, 무릎 관절이 거꾸로 달린 기요코, 분리된 샴쌍둥이 사쿠라, 다리가 없는 유키노스케 등입니다. 괴담이나 전설, 신에 대한 서사가 풍부한 일본 미스터리의 특징에 기형역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겐 낯설기만 하지만 프릭스일레븐을 보면 호러에 대한 그들의 상상력은 그저 신기해 보일 뿐입니다.


요즘 같이 덥고 습한 날이라면 프릭스를 읽기에 딱 알맞은 시기입니다. 이왕이면 어나더시리즈와 시리즈까지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스터리를 연이어 읽는다면 책과 함께 하는 피서로는 제격일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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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블루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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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고교 야구선수 가쓰히코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그와 함께 선수생활을 하다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야마세 역시 의문의 익사체로 발견됩니다. 가쓰히코의 동생 신야 문제로 우연히 사건에 휘말린 탐정 하스미와 딸 가요코는 영리한 전직 경찰견 마사와 함께 살인사건의 진상 파악에 나섭니다.

한편, 아내의 죽음 이후 대형 제약사 총무과장 보좌라는 한직으로 밀려난 기하라는 고다 전무의 협박범 소다와의 연락책이라는 불쾌한 미션을 맡습니다. 뒤늦게 고다 전무가 협박당하는 이유를 알게 된 기하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인질로 잡힌 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다 전무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가쓰히코의 죽음에 소다라는 인물이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된 가요코는 그의 행방을 찾던 중 누군가에게 납치된 뒤에야 사건의 전말을 깨닫습니다. 5년 전, 고다 전무가 벌였던 끔찍한 만행이 당시 12살 소년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 만행의 유산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일련의 참혹한 사건들을 일으켰다는 것을...

 

미미 여사의 첫 장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색다른 기대감을 가졌던 작품입니다. 1989년에 발표됐다고 하니 25년 전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첫 장편을 너무 늦게 읽게 된 건 유감이지만, 어쨌든 파릇파릇했던(?) 미미 여사의 과거와의 만남은 괜찮은 느낌이었습니다.

 

미미 여사답게 첫 장편부터 사회적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탐욕스러운 대형제약사의 만행, 그것을 미끼로 협박과 사기를 일삼는 쓰레기 같은 어른, 그리고 형을 잃고 남은 가족들마저 해체되는 참담함을 겪어야 하는 어린 신야의 운명 등 분노를 자아내는 사회적 이슈를 한데 버무려놓았습니다.

이야기는 심플해 보이지만 캐릭터와 사건은 꽤 복잡하게 이뤄져있고, 무관해보이던 두 사건 - 가쓰히코의 죽음과 대형제약사 협박범 - 이 접점을 이루는 지점은 정교한 장치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부녀 탐정 하스미 일가와 탐정견 마사가 신야와 함께 하나씩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단서 속에 숨은 의미들을 조합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도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 어디선가 비슷한 장면을 본 것 같기도 하지만 - 허망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전해주면서 수사에 참여한 모든 인물들과 독자에게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첫 장편인데다 25년 전의 작품이다 보니 미미 여사의 저력이 발휘된 모방범이나 낙원을 읽은 독자라면 이런저런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사건 속에 담으려다가 혼란을 야기한 부분도 있고,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된 퍼펙트 블루의 정체는 적잖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사건을 일으키거나 끌고 가는 인물들에게 부여된 동기도 조금은 모호한 점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친절하게사건의 전말을 설명한 부분은 오히려 사족이 됐습니다.

 

사실, 제 경우 이 작품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미미 여사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25년 전의 첫 장편이라는 정보 때문에 어딘가 좀 어설픈 데가 있겠지라며 마치 대리인이나 변호인이라도 된 듯 편파적인 호평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애써 중립적인 태도로 결론을 내리자면... 미미 여사 본인의 역작들과 비교하면 역시 설익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이 작품 정도의 완성도도 갖추지 못한 채 이름값만으로 버티고 있는 작가들에 비하면 퍼펙트 블루는 별 4개는 충분히 자격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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