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의 가족
가와세 나나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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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설정이 눈길을 끄네요. 동반자살하려던 자들과 아기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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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박사의 네 아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브리지트 오베르 지음, 양영란 옮김 / 엘릭시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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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박사의 집에서 일하는 30대 가정부 지니는 우연히 한 연쇄살인마의 범행고백이 적힌 비밀일기를 발견합니다. 어려서부터 여자만 골라 죽여 온 살인마는 범행과정은 물론 자신이 느낀 쾌감까지 자세하게 기록해놓았습니다. 자신이 마치 박사의 네 아들 중 한 명이라고 살인마 스스로 밝히긴 했지만 문제는 네 아들이 모두 18살의 쌍둥이라는 점. 살인마는 비밀일기가 들킬 경우를 대비하여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감춘 문장으로만 일기를 적어놓았습니다. 지니는 큰 충격을 받지만 경찰을 피해 다녀야만 하는 처지 때문에 신고할 엄두를 못 냅니다. 그러던 중 살인은 계속 벌어지고, 지니의 초조함은 극에 달합니다. 한편 살인마는 누군가 비밀일기를 훔쳐 읽는 사실을 눈치 채곤 일기 속에 노골적인 살해 경고를 남깁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프랑스 작가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브리지트 오베르는 1995철의 장미’(고려원)라는 작품으로 한국 독자와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여 프랑스 범죄소설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라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그동안 한국 독자와는 인연이 잘 닿지 않았던 셈입니다.

마치 박사의 네 아들은 쌍둥이 트릭이라는, 고전적이고 상투적이면서도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까다로운 설정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내용도 연쇄살인마와 가정부 지니의 일기 또는 편지로 이뤄져 있어서 형식 또한 무척 독특한 작품입니다.

 

살인마가 과거의 범행과 쾌감을 비밀일기에 기록하는 동시에 무차별 살인을 이어가고, 그 기록을 발견한 지니가 신고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초조함에 휩싸이는 이야기가 초반부에 펼쳐지고, 이어 누군가 비밀일기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살인마가 지니를 의심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살인마는 비밀일기 속에 지니를 향한 공개적인 경고와 협박을 담기 시작하고, 그걸 읽은 지니는 극도의 공포와 함께 과연 네 쌍둥이 중 누가 살인마인지를 알아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 대목부터 누가 범인?’이라는 미스터리 코드보다는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심리 스릴러가 더 강렬하게 펼쳐집니다.

 

독자는 살인마의 비밀일기 속 정보는 물론 가정부 지니가 알아낸 정보들을 기반으로 네 쌍둥이 중 누가 범인인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비밀일기를 훔쳐 읽는 걸 눈치 챈 뒤로 살인마가 기록하는 정보는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게 되고(고의적으로 지니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거짓정보를 남기기도 합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데다 알코올 의존증이 심각한 지니의 일기 역시 100%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이라 독자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네 쌍둥이와 관련하여 위화감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어떤 장면에선 혹시 호러 판타지로 장르가 바뀌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위화감이 심해서 독자로선 더욱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뜻밖의 반전과 함께 진범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리는데, ‘해설에서 지적한대로 마치 박사의 네 아들수수께끼를 푸는 본격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아쉬움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일기와 편지라는 형식 때문에 살인마 후보인 네 쌍둥이는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한 채 병풍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수 없었고, 독자 입장에선 이들 중 누가 범인일까, 라는 궁금증조차 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살인마와 지니가 일기와 편지를 통해 심리 스릴러를 펼치는 대목 역시 비슷한 상황들이 연이어 반복되면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었는데, 그래선지 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프랑스 문학하면 난해하고 어려운 서사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마치 박사의 네 아들은 간결하고 선명한 문장들로 이뤄져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트릭과 형식 모두 독특하고 미스터리와 심리 스릴러의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참고하신 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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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2 - 다시 만난 친구 아르테 오리지널 7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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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노 현의 소도시 마쓰모토에 위치한 혼조병원의 소화기 내과 5년차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는 여러 가지 이유로 괴짜로 불립니다. 근대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광팬으로서 그의 소설을 줄줄 외우고 다니는 것은 물론 말투까지 고풍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뛰어난 의술과 함께 오직 환자의 미소만 생각하는 선한 능력자이기도 하지만, 입이 험하고 차림새도 영 허술한데다 자신을 근면성실의 전형이라 자화자찬하는 등 어딘가 4차원 같은 인상이 짙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끌어들이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외래든 응급실이든 그가 나타나는 곳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환자가 몰려들어서 동료의사와 간호사들로부터 장난기 섞인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신의 카르테 1’의 서평에 쓴 구리하라에 대한 소개글입니다.)

 

인간미 넘치는 괴짜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가 펼쳐 보이는 감동적인 메디컬 휴먼 드라마,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구리하라가 겪는 시련이자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종종 (의사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망각되고 마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도 의사의 일이라는, 현실에선 좀처럼 볼 수 없을 것 같은 이상적이고도 감동적인 주장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두 가지 시련이자 교훈이 실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5년 전 구리하라와 함께 의대를 졸업한 후 도쿄의 대학병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던 신도 다쓰야가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구리하라가 근무하는 혼조병원에 부임합니다. ‘의학부의 양심이라 불릴 정도로 모범생에 엘리트였으며 자신의 장기(將棋) 친구였던 다쓰야의 부임에 열악한 지역병원에서 고군분투하던 구리하라는 그저 반가울 뿐이지만, 얼마 후 그의 불성실한 태도가 병원에 회자되자 믿기지 않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귀향한 진짜 이유를 알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다쓰야를 통해 새삼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구리하라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의사로서의 지난 5년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혼조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일하는 간호사와 스태프들조차 간혹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밤샘 당직을 마치고도 종일 외래환자를 봐야 되고, 퇴근 후든 휴일이든 호출을 받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선지 구리하라는 자신을 포함한 혼조병원의 의사들을 수면 부족과 저혈당을 거느린 채 자신의 생명을 깎아내고, 발치에 무성히 널려 있는 부조리와 답답함을 차내며 병원이라는 이름의 도깨비 섬에서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열악한 지역의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구리하라는 그런 와중에도 스스로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잊은 채 의료 활동에 매진해 왔습니다. 밤낮없이 과로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의사라면 감당해야 할 당연한 일로 여겼고, 며칠씩 집에 못 들어가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온 것입니다. 하지만 다쓰야의 귀향은 구리하라에게 큰 충격을 안깁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사람답게 살 권리 사이에서 구리하라의 고뇌는 커져갈 뿐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도 의사의 일이라는 구리하라의 주장은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다쓰야의 주장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치료 가능한 환자에게 매진하는 것만으로도 과로와 격무에 시달릴 판인데 치료 불가능한 환자까지 전력을 다해 돌본다면 사람답게 살 권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모두 손에 쥘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하나를 반드시 버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확신한 구리하라는 의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열심히 살겠다는, 실은 초인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을 취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눈물을 쉴 새 없이 이끌어낼 정도로 감동적이고 이상적인 의술을 펼쳐 보입니다.

 

심각한 의료대란을 겪고 있는 요즘엔 구리하라나 다쓰야 같은 의사의 존재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구리하라처럼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도 의사의 일이라고 여기며 의료 현장에서 혼신의 힘을 쏟는 진짜 의사들의 노고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많이 봐온 전형적인 메디컬 드라마와는 약간 결이 다른 주제를 다룸으로써 신의 카르테 2’는 의사에 대해, 의술에 대해,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주제는 묵직하지만 혼조병원 안팎의 여러 인물들의 감동적이고 따뜻하면서도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들 덕분에 독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물론 중환자가 많은 병원이 무대이다 보니 수시로 안타깝고 애절한 죽음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 대목에선 누구나 눈물샘이 폭발하듯 터지는 경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리하라가 그런 죽음을 거듭 겪으며 진짜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다음 작품인 신의 카르테 3’시간의 풍경이라는 다소 오묘한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새 인물이 또 등장하는 것 같은데, 1편에 비해 한 뼘 훌쩍 성장한 구리하라가 3편에서는 또 어떤 경험들을 통해 지독하고도 따뜻한 성장통을 겪게 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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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장난
시미즈 가루마 지음, 최주연 옮김 / 모모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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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장난은 주문을 통해 망자를 소생시키는 의식을 다룬 공포물입니다. 신체 일부를 땅에 묻은 뒤 엘로힘 엣사임이라는 주문을 진심으로 외우면 망자가 온전한 몸을 되찾아 소생하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여러 번 차용된 설정이긴 하지만, 작가 시미즈 가루마는 단지 공포에만 방점을 찍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다채로운 심리와 거듭되는 반전을 잘 활용함으로써 스토리의 힘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포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주인공 이하라 나오토가 저지른 금지된 장난은 어린 아들 하루토에게 주문을 통한 소생 의식을 알려준 일입니다. 잘린 도마뱀 꼬리를 땅에 묻고 주문을 외우면 도마뱀이 되살아난다는 아빠 나루토의 장난기 섞인 거짓말을 믿은 아들 하루토는 진심을 다해 주문을 외우며 도마뱀의 소생을 기원합니다. 장난이 지나쳤음을 깨달은 나오토는 또 한 번의 거짓말로 하루토를 속여 소생 의식을 겨우 중단시켰지만,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은 건 아내 미유키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입니다. 하루토가 사고 현장에서 몰래 갖고 온 엄마의 잘린 손가락을 땅에 묻고 소생 의식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미유키의 잘린 손가락이 묻힌 봉분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음을 감지한 나오토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망자의 소생 의식, 영능력자, 빙의 등 여러 가지 초자연적 현상이 등장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등 전형적인 호러물의 구도를 갖추고 있지만, ‘금지된 장난은 드라마틱한 설정을 통해 무척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불륜과 의심, 질투와 집착, 그리고 거기에서 자라난 지독한 복수심이 그것인데, 그래선지 단지 공포심을 일으키는 데만 방점을 찍는 순수 호러물보다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서늘함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불륜과 질투와 복수는 과거 나오토의 직장후배였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살아가고 있는 히로코를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5년 전, 나오토와 마음으로 불륜을 저지르던 히로코는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끔직한 괴현상 때문에 직장을 잃고 정신병원에 수용됐고, 퇴원 후에는 그 모든 괴현상들이 나오토의 아내 미유키의 저주 때문이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미유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오토의 집을 방문한 히로코는 아들 하루토의 망자 소생 의식에 미유키의 혼이 호응하고 있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곤 그대로 얼어붙습니다. 미유키의 혼이 여전히 자신을 저주하고 있으며, 만일 그녀가 소생한다면 5년 전처럼 단지 끔찍한 괴현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아들이 벌이는 망자의 소생 의식에 충격을 받은 나오토가 독자의 공포심을 대변하며 수세적이고 나약한 입장을 맡았다면, 히로코는 괴현상에 시달렸던 5년 전의 연약한 모습과 달리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태도로 초자연적인 존재와 맞서는 인물입니다. 소생 의식의 주인공인 미유키는 마땅히 처단돼야 할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거꾸로 연민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며, 엄마의 소생을 간절히 바라는 하루토 역시 순수함과 비통함을 발산하며 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앞서 드라마틱한 설정을 통해 무척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라고 언급한 건 바로 이런 특별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 때문입니다. 피와 체액과 살점이 난무하는데다 막판의 반전에 이르기까지 내내 서늘함을 유지하는 호러물이지만 애틋하고 안쓰러운 감정들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금지된 장난은 시리즈로 이어져 세 편 정도 더 출간됐다고 합니다. 막판 반전과 함께 독자에게 던져진 흥미로운 떡밥 때문에 후속작이 무척 궁금해졌는데, 이 작품이 호응을 얻어 한국 독자들도 후속작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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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구시키 리우 지음, 곽범신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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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두 명의 여아를 잔인하게 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2인조 중 한 명이 옥사하자 당시 수사진에 소속됐던 호시노 세이지는 복잡한 심경에 빠집니다. 진술도, 단서도 확고하지 못한데다 구식 DNA 검사의 신뢰성도 떨어졌기에 세이지는 그들이 진범이 아닐 것 같다는 심증을 품은 바 있고, 그 심증은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 5년이 지났지만 세이지는 개인적인 차원의 재조사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손자 아사히와 그의 절친이자 컴퓨터와 영상제작에 탁월한 데쓰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경찰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SNS를 통해 사건을 알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예상 밖의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세이지 일행은 진범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이 들어간 택배를 받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구시키 리우는 2019사형에 이르는 병’(死刑にいたる)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된 작가입니다. 지금까지 그 작품을 읽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서술트릭의 명작인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殺戮にいたる)의 후광에 기대려 한 듯한 다소 경박해 보인 제목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TIGER’ 역시 처음엔 관심 밖에 뒀던 작품이지만, 원죄(冤罪) 사건, 즉 누명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흥미를 갖게 됐고, 일단 초반 100페이지까지만 읽어볼 심산으로 첫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세이지와 아사히와 데쓰가 이끄는 이른바 팀 호시노가 당시 담당기자였던 오노데라, 인권변호사 가타기리, 방송사 프로듀서 후쿠나가 등과 함께 30년 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일단 사건을 환기시키고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인터넷과 SNS를 이용하여 관심을 유도합니다. 우회적으로 압박을 가하며 조사 중지를 요구하는 경찰과 관종 아니냐?”는 식의 인터넷 상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팀 호시노는 두 범인의 주변인물은 물론 유족들을 꼼꼼히 탐문하며 30년 전 경찰이 놓친 게 뭔지 알아내려 분투합니다. 그러던 중 진범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이 들어간 택배가 언론사에 배송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여론과 언론이 들끓기 시작하고 팀 호시노의 재조사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과연 팀 호시노30년 전 경찰의 수사를 뒤집고 원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범죄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TIGER’는 꼼꼼하게 기록된 수사일지처럼 읽히는 작품입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한 여론몰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긴 해도, ‘팀 호시노가 숱한 발품을 팔아가며 탐문하고 조사하는 내용들이 무척 상세하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30년 전의 사건이다 보니 남아있는 기록도, 주변 인물들의 진술도 선명하지 않은 탓에 다소 장황한 묘사가 불가피했겠지만, 독자에 따라 초반부터 지루함을 느낄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또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 벌어진 유사한 사건들까지 자세하게 인용하곤 하는데 때론 작가의 과욕으로 보였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또한 사건과는 무관한 몇몇 인물들의 설정도 딱히 설득력이 없어 보였는데, 아무래도 수사일지 혹은 논픽션처럼 건조하게 읽힐 가능성 때문에 작가가 나름 드라마를 만들어 넣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메인 스토리 속에 잘 녹아들었다면 좋았겠지만, 다 읽은 뒤에도 왠지 따로 논 것 같은 인상을 지우진 못했습니다.

 

물론 잘 짜인 범죄 미스터리답게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며 예상 밖의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세이지가 30년 동안 품어왔던 여러 종류의 위화감의 정체도 깔끔하게 해소됩니다. 적잖은 인물과 수많은 단서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모두 제자리를 잘 찾아들어간 느낌이라고 할까요? 다만 언론이 가세했다고는 하지만 민간인인 팀 호시노의 조사가 인터넷과 SNS의 힘으로 큰 어려움 없이 성공한 점이라든가 진상이 밝혀질 경우 여러 모로 곤란해질 것이 분명한 경찰의 압박이 생각보다 약했던 점이 무척 아쉬웠는데, 다소 과도했던 수사 일지 같은 대목들 대신 팀 호시노의 위기나 경찰과의 갈등이 들어갔더라면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사형에 이르는 병을 안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구시키 리우는 범죄자의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하기로 이름난 작가라고 합니다. 각 챕터 말미에 범인이 여아들을 납치하고 폭행하고 살해하는 장면들이 실려 있는데, 그 대목을 보면 출판사의 소개글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뒤늦게라도 사형에 이르는 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TIGER’의 경우 피해자들이 불과 7~8세의 어린 여아들이다 보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된 범행 장면을 읽는 건 고역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꼭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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