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감각 아름다운 밤에
아마네 료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5월
평점 :
호시모리市에서 신원미상의 노숙자 중년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엽기 살인사건이 연이어 두 건이나 벌어지자 언론은 범인에게 플레임(Flame)이라는 별명을 붙입니다. 그런데 플레임의 세 번째 희생자가 신원이 확실한 여고생 가렌으로 밝혀지면서 수사진은 혼란에 빠집니다. 가렌의 오빠인 17세 소년 산시로는 범인을 향한 복수심에 사로잡히지만 그보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때 긴 은색 머리의 신비한 미소녀 탐정 오토미야 미야가 접근해선 플레임 사건을 의뢰받아 수사 중이라며 살해된 가렌에 대해 물어옵니다. 경계심이 앞서던 산시로는 미야가 공감각 능력자란 사실에 더욱 놀라지만 이내 그녀의 조수가 되어 가렌을 살해한 진범을 직접 응징하기로 합니다.

‘공감각 아름다운 밤에’는 2024년 ‘희망이 죽은 밤에’(일본 출간 2017년) 이후 두 번째로 한국에 소개되는 아마네 료의 작품으로 2010년 메피스토상을 수상한 데뷔작이자 ‘공감각 미소녀 탐정 오토미야 미야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희망이 죽은 밤에’가 생활안전과 여경인 나카타를 앞세운 사회파 미스터리였던 반면, ‘공감각 아름다운 밤에’는 공감각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미소녀 미야가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특수설정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선 ‘미야(美夜)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2017년까지 모두 네 편이 출간됐는데, 그만큼 미야의 매력이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감각은 “특정한 감각이 또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으로, “글자에서 색을 보거나 소리를 형태로 인식하는” 등 다양한 경우가 존재하는데, 주인공 미야의 공감각은 청각이 시각을 불러일으켜서 어떤 소리를 들으면 색이나 형태가 보이는, 이른바 ‘색청’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하는 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선명한 파란색이, 살인 욕구에 사로잡힌 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강렬한 진홍빛이 보이는 것입니다.
공감각 못잖게 미야를 돋보이게 하는 건 독특한 외모입니다. 뛰어난 미모와 은색의 긴 머리카락 덕분에 어딜 가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소리를 색과 형태로 볼 수 있는 능력에다 눈에 띄는 외모까지 갖춘 미야의 캐릭터는 화려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에 잘 어울려 보이지만 그녀가 다루는 사건은 잔혹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해서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동생 가렌을 살해한 범인을 응징하기 위해 미야의 조수가 된 산시로, 그리고 안드로이드 로봇처럼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엘리트 경찰 야하기가 미야와 함께 플레임 추적에 나섭니다. 작은 단서 하나 남기지 않은 플레임의 완벽한 범행 때문에 수사는 난항을 거듭하는데, 무엇보다 여성 노숙자 사건과 가렌의 사건이 전혀 다른 패턴으로 이뤄져서 동일범에 의한 소행인지, 모방범이 개입한 상황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이 주목한 건 “왜?”, 즉 범행 동기입니다.
출판사 소개글 가운데 “와이더닛 미스터리의 새 지평”이란 문구가 있는데, 그만큼 이 작품에선 범인의 정체 자체보다 범행 동기가 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그리고 막판에 드러나는 플레임의 범행 동기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끔찍함 그 자체라서 반전 이상의 충격을 안겨줍니다.
미야의 캐릭터와 공감각 능력도 흥미롭고, 각기 다른 목적으로 플레임 추적에 나선 산시로와 야하기의 미묘한 갈등도 눈길을 끌어서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달릴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공감각이란 설정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미스터리 서사가 다소 허술해 보였고, 초능력이 아니라 분명히 실존하는 증상인 미야의 공감각이 뒤로 갈수록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과대하게 포장돼서 현실감이 떨어진 점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겉으론 발랄한 미소녀로 보이지만 실은 공감각 능력이 초래한 지독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품고 있는 미야의 과거사가 후속작에서 밝혀질 것 같긴 한데, 계속 찾아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론 ‘희망이 죽은 밤에’에서 맛본 아마네 료의 사회파 미스터리를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어서 고른 작품인데, 뜻밖의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진하게 남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감각이란 특수한 능력과 본격 미스터리의 조합이 궁금한 독자라면 한번쯤 미야의 신비한 매력에 관심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